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451
– 132화에 계속 –
2부 132화 20세기의 운명
한러협약을 체결하고 발표한 후, 이선과 사절단의 공적인 러시아 방문 일정은 끝이 났다.
다음 방문지인 독일과 네덜란드로 향하기 전, 이선은 개인적인 일정을 볼 생각이었다.
9월 15일(율리우스력 2일). 상트페테르부르크 겨울궁전 앞 광장에서 제1근위보병사단 제1여단 프레오브라젠스키연대의 열병식이 있었다. 연대의 명예 대령으로 추대된 이선을 위한 열병식이었다.
이선은 프레오브라젠스키연대 대령 제복을 입고, 곁에는 대한제국 제1근위보병연대 정령 제복을 입은 차르 니콜라이 2세가 함께 서 있었다.
“Ура! Ура! Ура!”
우렁찬 만세 삼창을 시작으로 열병식이 시작되었다. 프레오브라젠스키 연대는 220년 전 표트르 대제가 창설한 이래, 러시아의 최고 정예부대로 손꼽히는 부대였다. 러시아가 싸운 모든 중요한 전투에는 프레오브라젠스키가 있었다.
“자랑스러운 우리의 총검 위에 영광의 소리가 끊이지 않으리라. 우리는 이를 들으며 영광스럽게 돌격할 것이라네. 러시아 첫 번째 연대의 가슴에 새겨진 긍지로써!”
충성스러운 근위대는 연대가(聯隊歌)를 부르면서 행진했다.
“용감한 프레오브라젠스키의 병사들이여! 기쁘게 차르를 수호하고 받들지라. 평생 영광스럽게 빛나리라! 만세! 만세! 만세!”
이선과 니콜라이는 부동자세로 경례하며 연대의 열병을 지켜봤다. 이선이 흘끗 옆을 쳐다보니, 니콜라이의 표정에는 신뢰와 흐뭇함이 가득했다.
과연 프레오브라젠스키는 차르의 가장 충성스러운 근위대였다. 군대의 충성심이 흔들렸던 1906년 혁명의 와중에도 굳건히 충성을 지켰고, 사회주의자들이 주도한 12월 봉기도 무자비하게 진압했다.
이 유서 깊은 연대는 러시아제국의 시작과 끝을 함께한 부대였다. 1917년 2월 혁명의 과정에서, 프레오브라젠스키의 병사들이 상관의 시위대 사살 명령을 거역하고 혁명으로 돌아서면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근위대의 충성심조차 잃게 된 왕조는 몰락하고, 공화국이 선포되었다.
‘아직 10년이란 시간이 남았으니까, 니콜라이가 똑바로 한다면 그렇게까지는 안 되겠지. 나는 멸망할 운명의 국가를 살렸다. 그렇다면 니콜라이도 할 수 있을까?’
이선이 망국의 운명을 피하고 대한제국을 살렸듯이, 니콜라이가 로마노프 왕조의 몰락을 막을 수 있을 것인가?
그날 오후, 겨울궁전에서는 이선과 영친왕 이영을 초대한 만찬이 있었다. 니콜라이와 알렉산드라를 비롯한 로마노프 황족들이 주최한 만찬이었다.
“우리의 친구, 한국 황제 이선을 위하여!”
“대한제국과 러시아제국의 영원한 우호를 위하여!”
이선과 니콜라이는 친밀하게 건배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만찬이 끝날 때까지, 이선은 정치와 관련된 말은 일절 하지 않았다.
만찬이 끝나고 내실에서 다과가 제공될 때는, 황족들은 모두 물러나고 니콜라이와 공주들만 남았다. 아직 몸이 완전히 성치 않은 황태자 알렉세이는 알렉산드라의 인도를 받아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얘들아, 인사드려야지. 아버지의 친구, 한국 황제 이선이란다. 나에게 형제와도 같으니, 너희에게는 삼촌이나 다름없는 분이지.”
“안녕하세요, 폐하!”
장녀 올가(Olga)를 시작으로 차녀 타티야나(Tatiana), 삼녀 마리야(Maria), 사녀 아나스타샤(Anastasia)가 차례대로 인사했다.
“안녕, 사랑스러운 공주님들. 사진으로는 많이 봤는데, 직접 만나게 되어 더욱 기쁘구나.”
“순서대로 올리쉬카(올가), 타누쉬카(타티야나), 마쉬카(마리야), 나스텐카(아나스타샤). 내 작은 보물들일세.”
네 자매는 두 살 터울을 두고 맏이인 올가가 12세, 타티야나는 10세, 마리야는 8세, 아나스타샤는 6세였다. 한창 사랑스러울 나이였다.
‘그 유명한 최후의 공주들이군.’
네 자매는 아름답게 성장했다. 자매간의 우의도 좋았다. 아버지인 니콜라이도 당대의 엄격한 가부장적 군주들과 달리, 자식들에게 지극정성이었다.
그야말로 행복한 삶이었다. 상상치도 못했던 혁명이 아니었더라면, 그들의 낙원도 부서지지 않았으리라.
“폐하, 폐하께서 알료샤의 병을 치료해 주셨다면서요?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하느님께서 폐하를 보호해 주시길!”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하느님께서 폐하를 보호해 주시길!”
맏이인 올가가 의젓한 태도로 이선에게 감사의 말을 올렸다. 동생들도 언니를 따라 했다.
형제자매 간의 우애가 두터운 공주들로선, 병약한 막내가 언제나 아픈 손가락이었다. 그런데 이선이 ‘치료’를 한 이후부터는 확연히 좋아졌으니, 어린 공주들도 기쁘지 않을 리가 없었다.
“하하, 그건 내가 한 게 아니라 의사가 한 거지. 아무튼 알료샤가 어서 낫길 바란다.”
“네, 빨리 나아서 같이 놀아야죠!”
“더 크면 폐하의 나라, 한국과 아시아에도 놀러 갈 거예요! 초대해 주실 거죠?”
“물론이지.”
“와아!”
“아버지랑 어머니도 같이요!”
“그래, 그래.”
공주들은 행복한 미래를 상상했다. 니콜라이도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딸들이 있으니 행복하겠군.”
“암, 더할 나위 없지. 하하하!”
니콜라이는 진심으로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니콜라이, 네가 전제군주가 아니라 평범한 아버지만 되었더라도…….’
결국 자식들까지 그렇게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된 건, 아버지 니콜라이와 어머니 알렉산드라 때문이었다.
수많은 기회가 있었건만, 결정적인 순간에서마다 보여 준 최악의 판단력으로 인해, 결국엔 비참한 최후를 재촉하고야 말았다.
‘인간으로선 좋은 사람일지 몰라도, 격동기의 군주로서는 최악이지.’
대학원생 이선우의 기억이 있던 시절을 떠올리면, 그는 니콜라이 2세를 경멸했다.
혁명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보여 준 차르의 판단력은 절망적인 수준이었다.
니콜라이 2세는 자신이 다스리는 나라와 국민에 의무감은 갖고 있으면서도, 알지는 못했다.
페테르부르크의 화려한 도시와 달리, 대다수 국민은 극심한 빈곤에 시달리고 있다. 부모는 아이를 잃고, 아이들은 부모를 잃었다.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건 극소수였다.
하지만 ‘백성들의 어버이’ 차르는 알지 못했다. 아니, 알고 싶지 않았다는 게 답일지도 모른다.
그는 절대군주와 가신, 백성의 충성으로 이어진 17세기 모스크바 대공국 시절을 이상향으로 생각했고, 여전히 존재하지 않는 동화 속의 세계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니콜라이, 잠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
“아, 편하게 하게.”
“국가 이야기일세. 어린 공주님들 앞에서 할 만한 이야기가 아니라서.”
이선의 요청에 니콜라이도 고개를 끄덕였다. 두 군주는 별실로 향했다.
“국가 이야기라니, 뭔가?”
“자네 딸들을 만나고 나서, 확신하게 되었네. 저 사랑스러운 아이들은 행복하게 삶을 살 권리가 있어. 그렇지 않나?”
“아, 그거야 당연하지. 난 아이들을 관례대로 정략결혼 시킬 생각도 없다네. 사랑하는 사람들과 혼인할 수 있다면 가장 좋은 일이지.”
유사 이래 지금까지, 군주의 여식이란 정략결혼의 대상이었다. 정치적 필요에 따라 외국의 군주나 왕족과 결혼하는 게 공주로 태어난 여인의 의무였다.
이런 점에서만큼은, 니콜라이는 진보적이었다. 그는 자식들을 정략결혼 시킬 생각이 없었다. 딸들이 스스로 사랑이라는 운명을 찾아가길 바랐다.
정말이지 아버지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사람이었다.
“이 나라에서 태어난 모든 아이도 마찬가지이길 바라네. 러시아에서 차르는 신민의 어버이, ‘어버이 차르’라고 하지. 나 역시 군주로서 2천만 신민의 어버이라고 불리네. 내 자식은 결코 다섯 명일 수밖에 없지. 2천만 신민의 행복이 곧 나의 행복이야.”
“뭐, 이르다 뿐이겠나.”
“자네는 의무가 더 막중해. 제국 1억 3천만의 운명이 자네에게 달렸네. 그들의 믿음, 그들의 행복을 저버리면 안 되네.”
이선의 말이 묘하게 훈계조로 들려, 니콜라이는 약간 불쾌감을 느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어찌 됐건 이선은 언제나 그에게 도움이 되는 친우였다.
“나 역시 위대한 선조로부터 러시아의 운명을 물려받은 사람일세. 나는 막중한 의무감을 갖고 제국을 다스리고 있네.”
“자네의 의무감은 믿어 의심치 않네. 다만 시대의 변화를 직시해야 한다는 거야. 우리가 살아가는 20세기는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있어. 10년 뒤에는 우리가 상상도 못 했던 시대가 열릴지도 몰라. 우리는 군주로서 변화의 첨단에 서야 하네.”
“도대체 그 변화란 무엇이란 말인가?”
“대전쟁과 인민주권.”
니콜라이는 묵시록적인 ‘대전쟁(Great war)’이란 말보다 ‘인민주권(Popular sovereignty)’이란 말에 눈살을 찌푸렸다.
“장차 일어날 전쟁은 국가 간의 운명을 총력으로 걸어야 할 전쟁일 거야. 전 국민이 동원되는 전쟁. 그런 파멸적인 전쟁의 시기가 도래한다면, 국민에게 양보하지 않을 수가 없네. 이제 국민의 목소리가 국가의 운명을 결정할 시대가 도래할지도 모르네.”
“자네 염려는 알겠지만, 전제조건은 대전쟁이 아닌가? 그런 전쟁은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보네.”
“그 근거가 뭔가?”
“주권자인 내가 전쟁을 원치 않거든. 그러니 그럴 일이 없지.”
“…….”
러일전쟁이란 참화를 겪고도, 니콜라이는 여전히 전쟁이 군주 한 사람의 결정으로 이뤄지는 일이라고 믿었다.
“군주와 정부, 군대만으로 결정할 수 있는 전쟁이 아니라, 국민이 원하는 전쟁이 일어날 수 있네. 러일전쟁은 시작에 불과하네. 세계제국을 향한 독일의 열망과 알자스로렌을 수복하길 원하는 프랑스의 보복주의, 발칸을 세력권으로 여기는 오스트리아-헝가리의 야망과 러시아의 범슬라브주의는 언제든지 충돌할 수 있어. 군주 몇 사람의 판단으로 결정될 문제가 아니란 말일세.”
이선은 1차 세계대전을 암시했다. 여전히 구시대에 머물러있던 니콜라이도, 전쟁에 여론이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러일전쟁으로 체험했기에 이선의 말을 무시하지 않았다.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국력을 차분히 키우고 국민의 지지를 모아야 하네. 마침 자네는 적절한 인재도 선발했어. 표트르 아르카디예비치 스톨리핀.”
“음, 유능하고 단호한 점이 마음에 들지.”
“25년 전만 해도 아무것도 없었던 가난한 나라인 한국도, 농민과 토지문제의 모순부터 해결하려고 노력했다네. 그 결과 망국의 위기를 피하고, 오늘날 내가 이 자리에 있는 게 아니겠나?”
니콜라이는 한국보다 러시아가 훨씬 크고 강력하다는 우월감과, 군주로서의 능력이 이선보다 부족하다는 열등감이 교차했다. 그 말대로 아무것도 없었던 한국이 이선의 영도 하에 25년 만에 열강의 말석에라도 끼려고 하지 않는가.
“러시아와 한국은 차이가 크지만, 비슷한 점이 있네. 인구의 절대다수가 농민인 나라라는 점이야. 토지문제, 농민문제의 해결이야말로 가장 기본적인 해결이 될 것이네. 스톨리핀은 현실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어. 군주에 대한 충성심도 남다르지. 그에게 힘을 실어 주게.”
돌이켜 보면, 니콜라이의 신하 중에 비테와 스톨리핀은 명석한 판단력과 단호한 추진력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유능한 이들은 군주를 대하는 태도도 불손했다. 가르치려는 태도였다. 바로 그 점이 니콜라이의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신하가 군주보다 우월하다는 것. 그건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공로자인 비테를 몰아냈다. 지금은 취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신뢰하는 단계지만, 비테보다 더 단호한 성격의 스톨리핀이 니콜라이의 신경을 거슬릴 날이 머지않아 올 것이다.
“내가 직접 발탁하여 임명한 총리일세. 당연히 힘을 실어 주지.”
“현명한 판단일세. 지금은 좌파가 스톨리핀을 비난하지만, 얼마 안 있으면 우파가 더 강력한 비난대열에 합류할 거야. 기득권을 가진 이들은, 결코 자신의 기득권을 건드리려는 개혁파를 용납하지 못하거든. 스톨리핀의 개혁은 혁명을 막기 위한 예방책이자, 제국과 왕조를 지키기 위한 수단일세. 자네가 발탁한 총리를 끝까지 믿어 주게.”
스톨리핀이 사회민주주의를 탄압했으므로, 당연히 사회주의자들은 스톨리핀을 싫어했다. 자유주의자들도 총리의 비입헌적이고 강경한 태도를 싫어했다.
하지만 보다 위협적인 건 우익의 공세였다. 스톨리핀의 토지개혁은 귀족들의 기득권을 침해했고, 이들은 벌 떼처럼 달려들어 개혁을 물어뜯었다. 총리를 끌어내리기 위해, 귀족들은 반동적 파벌을 형성해 차르에게 끊임없이 청원했다.
실제 역사대로 1911년 9월에 암살당하지 않았더라도, 스톨리핀은 결국 반동파와의 세력투쟁에서 패배하여 총리에서 내려와야 했을 것이다. 대부분 정당에 지지를 잃은 스톨리핀은 차르의 신임만 믿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그 차르가 반동파에게 귀를 기울였기 때문이었다. 한 치 앞도 보지 못하는 태도였다.
“인민의 힘을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되네. 작년의 혁명에서 봐서 알겠지만, 그들은 뭉치면 엄청난 폭발력을 갖고 있어. 절대 탄압이 능사가 아니야. 정치에는 적절한 양보와 타협이 필요하네. 자네도 보지 않았나? 10월 선언으로 바로 혁명의 향방이 바뀌는 걸. 부르주아지와 자유주의자들이 다시 제정에 충성하게 됐지.”
“으음.”
“독일의 비스마르크를 보게. 그는 융커 출신 전제정치 신봉자였지만,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노동계급과도 타협할 수 있었어. 사회민주당으로부터 노동계급의 충성심을 빼앗기 위해 다양한 복지법안을 선도해서 만든 게 아닌가? 스톨리핀의 토지개혁도 마찬가지야. 농민의 충성심을 되찾기 위해 필요한 일일세. 농민을 굳건한 기반으로 만들고, 의회를 통해 자유주의자들을 포섭한다면, 제정의 안정은 보장될 것이네.”
솔직히 말하면, 이선은 그렇게 해도 제정이 살아남을지 의문이었다. 제정 러시아의 모순은 수백 년간 켜켜이 쌓여 온 것이기에, 10년의 개혁으로 얼마나 되살릴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는 최후의 노력이었다. 스톨리핀과 개혁적 관료들이 구상한 대로 토지개혁이 이뤄진다면, 자유주의 혁명은 몰라도 사회주의 혁명은 막을 수 있을지 모른다.
“음, 자네의 조언은 언제나 내게 도움이 되네. 깊이 명심하도록 하지.”
이선은 거듭 자신이 아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조언을 최대한 했다.
본심이야 어쨌건, 니콜라이는 이선의 조언을 선선히 받아들였다. 비록 세상을 보는 관점은 크게 달라도, 최소한 이선이 자신의 친우로서 조언한다는 진심은 이제 의심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언제나 위기 시에는 이선의 도움이 유효했다.
“내 말을 경청해 줘서 고맙네. 자네에게는 가족들뿐만 아니라, 러시아 전체의 운명이 걸려 있네. 아니, 러시아를 넘어 유라시아와 세계까지.”
20세기의 운명을 결정한 러시아 혁명.
이선은 대한제국의 멸망을 막은 것처럼, 로마노프 왕조의 개혁과 사회주의 혁명 저지에 판돈을 걸었다.
아마 이선우의 기억만 있다면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 터였다. 그는 러시아 혁명과 소비에트 연방의 수립이 역사적 필연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선은 달랐다. 그는 이미 이 세계에 깊이 발을 담갔다. 그 자신이 군주였고, 니콜라이와는 개인적으로도 친우였다. 무엇보다 대한제국과 러시아제국의 긴밀한 관계가 중요했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돌아가기 시작했다.
과연 20세기의 역사는 어떻게 바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