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461
– 142화에 계속 –
2부 142화 신제국주의
1907년 10월 21일.
버킹엄 궁전에서 영국 국왕 에드워드 7세와 이선의 회담이 진행됐다.
“신의 은총으로, 그레이트브리튼-아일랜드 연합 왕국과 해외 영국 자치령의 왕, 신앙의 수호자, 인도의 황제이신 에드워드 7세 폐하!”
뚱뚱하지만 푸근한 인상의 60대 노인이 이선을 반갑게 맞이했다.
“연합왕국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폐하.”
“환대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폐하.”
이선과 에드워드 7세는 정중히 악수를 했다.
두 군주는 관례적으로 영국 근위대의 행진을 함께 사열했다.
이선은 대영제국 근위척탄병연대(Grenadier Guards) 대령 제복을, 에드워드 7세는 대한제국 근위기병연대 정령 제복을 입었다.
전반적으로 프로이센풍인 대한제국군에서 근위기병대만큼은 영국풍 레드코트를 입었기 때문에 영국군과 흡사해 보였다.
‘버킹엄 궁전에서 근위대 사열이라.’
이선은 다시금 격세지감을 느꼈다. 현시점에서 대영제국은 세계최강국이었다. 실제 역사에서는 대한제국은 1907년에 망국의 길을 걸었지만, 자신이 바꾼 역사에서는 세계최강국의 동맹국으로서 함께 근위대 사열을 하고 있었다.
물론 여기서 안주할 수는 없었다. 이선에게는 계속 목표가 있었다.
“폐하, 함께 식사하실까요? 먼저 시가와 코냑부터 하시겠습니까?”
“기꺼이 함께 하겠습니다.”
열병식이 끝난 후, 에드워드는 이선에게 술과 담배를 권했다.
1841년생인 에드워드는 66세로, 이선에게는 아버지뻘이었다. 나이는 많아도 여전히 애연가에 애주가, 대식가였다. 하루에 담배 스무 개비와 시가 12대를 피울 정도의 골초에, 술과 음식도 탐식할 정도로 마시고 먹어 댔다. 하루에 코스요리를 10번이나 먹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워낙 대식가여서, 별명이 ‘뚱보 에드워드’ 혹은 ‘배불뚝이’였다.
이선은 6년 전에 한 번 앓아누운 이후로는 마르가리타의 충고를 받아들여 건강관리에 힘썼으나, 외교를 위해서 오늘 절제를 풀기로 했다.
“신사 여러분, 마음껏 피우고 마십시다!”
에드워드의 선언대로 끊임없이 피우고 마시느라, 애주가인 이선도 대응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에드워드는 굉장히 유쾌한 성격이었다. 온화하나 재미없는 니콜라이, 허세와 장광설로 가득한 빌헬름과 비교하면 에드워드는 유쾌한 노신사였다.
“짐의 친애하는 조카, 니키와 빌리하고도 즐겁게 시간을 보내셨다고요. 그런데 겨울궁전과 상수시에 비교하면 버킹엄은 어떻습니까?”
“하나같이 웅장하고 화려한 궁전이나, 중요한 건 궁의 주인이 누구냐는 것이겠지요. 버킹엄이 가장 유쾌합니다.”
“하하, 듣던 대로 말씀을 정말 잘하시는군! 짐의 조카들도 폐하께 좀 배워야겠소.”
에드워드는 기분 좋다는 듯 껄껄 웃었다.
‘유럽의 삼촌(Uncle of Europe)’이라는 별명대로, 에드워드는 군주들의 삼촌이었다.
빌헬름은 누나의 아들이었고, 니콜라이는 처조카였다. 노르웨이 국왕 호콘 7세는 처조카이자 사위였고, 덴마크 국왕 프레데리크 8세와 그리스 국왕 요르요스 1세는 처남이었다. 그 외에도 유럽의 군주들 대부분과 인척관계로 엮여 있었다.
“아시다시피, 영국의 군주들은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습니다. 전제군주 혹은 명목상 입헌군주인 조카들보다는 짐이 여유로운 상황이니, 아무래도 사람을 대함에 있어 더 여유롭겠지요.”
에드워드는 입헌군주로서 정치에 개입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위치를 이용하여 외교 활동에 나섰다.
무려 64년을 재위한 어머니 빅토리아에게 가려 나이 60세에 즉위했지만, 그동안 에드워드는 폭넓은 견문과 교양을 갖췄다. 에드워드의 친절하고 유쾌한 성격, 타국에 대한 높은 이해는 호감을 불러일으켰다.
1903년 에드워드의 프랑스 방문은 영불관계를 개선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고, 이듬해 영불협상의 체결에 진전을 가져왔다.
영국 국민에게 ‘평화 조정자(Peacemaker)’라고 불릴 정도로, 에드워드는 외교에 적극적이었다.
하지만 그런 에드워드에게도 숙적이 있었으나, 바로 조카 빌헬름이었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특히 카이저께서는…….”
이선은 말을 멈췄지만, 에드워드는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짐작했다.
“빌리를 대하는 건 확실히 골치 아픈 일이지요. 짐이 마지막으로 만난 게 재작년 킬(Kiel) 정상회담이었는데, 그때도 얼마나 시끄럽던지. 끊임없이 황화론에 대해 떠들더군요.”
러일전쟁이 막 터졌을 때였다. 빌헬름은 황인종의 위협에 대해 장광설을 늘어놓았고, 옛 몽골처럼 황인종들이 ‘20년 안에 모스크바와 포젠(포즈난)까지’ 올 거라고 내뱉었다. 그런데도 일본 및 한국과 동맹을 맺고 있는 영국은 ‘인종 반역’을 저지르고 있다고, 국빈으로 초대한 삼촌의 면전에서 비난했다.
“짐은 점잖게 한마디 했습니다. 극동의 우리 친구들, 일본인과 한국인들은 유럽인만큼 문명화되어 있고, 애국심이 강하며 예의범절이 바르다. 오직 피부색만이 다를 뿐이다.”
에드워드는 당대 유럽인 중에서 드물게 인종적 편견이 없는 사람이었고, 인종차별적 표현을 불명예스럽다고 여겼다. 어찌 보면 다양한 인종 위에 군림하는 대제국의 군주로서 갖춰야 할 바람직한 자세라고 할 수 있었다.
“짐은, 우리의 동맹이 인종과 국경을 넘어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모범이 되길 바랍니다.”
“지극히 옳은 말씀이십니다. 세계 평화, 자유와 질서를 지키는 동맹으로 기억될 겁니다.”
이선과 에드워드는 건배하며 의기투합을 했다.
“내년에 러시아를 방문할 예정이시라 들었습니다. 차르께서도 영국과의 화합을 고대하고 계십니다. 부디 좋은 결과가 있으시길 바랍니다.”
에드워드는 1908년에 영국 군주 최초로 러시아를 방문해, 영국과 러시아의 협상에도 힘을 보탤 생각이었다.
“폐하께서 영국과 러시아의 화합을 위해 중재하고 계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폐하는 동양의 평화 조정자로군요, 하하하.”
“하하, 우리 모두의 이익을 위해서지요.”
이선과 에드워드는 서로의 외교활동에 찬사를 주고받았다.
아쉬운 점은, 에드워드의 수명이 많이 남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그의 과도한 흡연과 폭식은 건강에 치명적이었다. 이미 폐와 기관지에 위험신호가 오고 있었지만, 에드워드는 절제하지 않았다.
“폐하, 짐이 조심스럽게 말씀드리자면, 지나친 흡연은 건강에 좋지 못합니다. 독일 황제 프리드리히 3세께서 일찍 돌아가신 것도 과도한 흡연으로 인한 후두암이었지요. 만약 프리드리히 3세께서 장수하셨더라면, 평화를 지키는 데 더욱 좋았겠지요. 짐은 평화 조정자인 폐하께서 장수하시길 바랍니다.”
즉위 99일 만에 서거한 프리드리히 3세의 사인은 후두암이었다. 만약 ‘독일 자유주의의 희망’이었던 프리드리히가 장수했더라면, 역사가 바뀌었을 수도 있었다.
“폐하의 조언, 감사합니다. 하지만 담배는 짐의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벗이라. 금연하고 몇 년 더 사느니 마음껏 피우다 가는 게 속 편합니다.”
에드워드는 피우고 있던 시가를 끄고, 다시 술잔을 들었다.
“자, 마음껏 마십시다! 양국의 우호와 세계 평화를 위하여!”
“양국의 우호와 세계 평화를 위하여!”
영국인과 한국인들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우호와 평화를 위해 건배했다.
며칠 후, 이선은 영국 왕태자 조지 프레더릭, 훗날의 조지 5세의 안내를 받아 세계 최강 대영제국 해군을 시찰했다.
영국 남부의 군항 포츠머스에는 영국 해군의 군함들이 요새처럼 늘어서 있었다. 대영제국을 지키는 해상의 강철요새였다.
“폐하, HMS 드레드노트를 소개합니다.”
제1해군경(해군참모총장, First Sea Lord) 존 피셔(John Fisher) 제독이 최근에 진수한 전함 드레드노트(HMS Dreadnought)를 자랑스럽게 소개했다.
드레드노트는 기존의 전함과는 차원이 다른 높은 화력과 방어력, 순양함에 필적하는 빠른 속도를 자랑하는 고성능의 혁신적인 전함이었다.
“훌륭합니다! 이런 전함이 있다면, 누가 감히 대영제국의 패권을 넘보겠습니까?”
이선의 찬탄에 왕태자 조지도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선보다 3살 위인 조지는, 형 앨버트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태자가 되기 전까지는 해군에서 복무했기에, 해군에 큰 자부심과 동지의식을 갖고 있었다.
“영국의 자랑이지요. 말씀하신 대로, 어떤 적도 제국을 넘볼 수 없을 겁니다.”
“한국 해군은 걸음마 단계이지만, 영국을 모범으로 나아가고자 합니다.”
“영국은 동맹국으로서 지원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한국 해군도 일본처럼 영국 유학파들이 중심이었다. 동아시아에서는 일본 해군이 워낙 압도적이었기에, 한국 해군은 일단 연안 방위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한국의 군비는 9할 이상 육군에만 집중됐다.
영국의 세계전략에 있어서도, 극동 문제는 일본에 해군을 외주하고, 한국에 육군을 외주하는 방향으로 잡았다. 일본이 극동의 영국이라면, 한국은 극동의 프랑스였다.
다만 일본 해군은 영국에서 군함을 구매하다가 점차 자체 건조로 방향을 틀고 있어서, 막 발돋움을 한 한국 해군을 새로운 구매처로 염두에 두었다.
한국 해군도 동맹임을 강조하며 영국으로부터 순양함, 구축함, 잠수함 구매를 고려했다.
‘분명 혁신적인 전함이다. 하지만 전함은 핵무기와 달라서, 적대국에 평화를 강요할 수는 없지.’
드레드노트의 등장으로 건함 경쟁은 절정으로 치달았다. 압도적인 전함으로 경쟁국을 압도하여 패권을 유지하겠다는 영국의 계산과 달리, 독일은 포기하지 않고 전함 건조에 박차를 가했다.
거듭되는 군비경쟁. 세계대전을 향한 전쟁기계의 움직임은 결코 멈추지 않았다.
“여러분, 내년에 국왕 폐하께서 러시아를 국빈방문하실 때까지, 협상을 완수하고자 합니다.”
외무장관 그레이 경이 각의에서 러시아와의 협상 완수를 선언했다.
자유당 정부는 보수당과 달리, 러시아와의 타협을 추구했다. 자유당을 주도하고 있는 ‘자유 제국주의자(Liberal Imperialist)’ 파벌은 러시아보다 독일이 위협적인 주적이라 판단했고, 러시아를 대독 포위망에 끌어들이기 위해 그레이트 게임을 끝낼 생각이 있었다.
다만 러시아 공포증에 시달리는 보수당 우파나, 러시아 차리즘에 반대하는 자유당 소장파와 노동당이 문제였다. 보수당 우파가 ‘러시아의 세계정복’ 의도를 의심해 반대한다면, 자유당 소장파와 노동당은 인권과 이념을 내세워 러시아 전제정과 타협하는 데 반대했다.
총리 캠벨-배너먼 경은 러시아와의 타협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내각의 실세, 자유 제국주의자 파벌은 늙은 총리를 몰아내기로 결정한 상황이었다. 파벌의 수장 애스퀴스, 그레이, 할데인은 총리를 퇴임시키기 위해 정치공작에 나서고 있었다. 자유당 소장파 지도자 로이드조지도 재무장관 입각을 조건으로 애스퀴스를 지지하기로 했다.
‘어차피 캠벨-배너먼은 오래 못 갈 거고, 자유 제국주의 파벌과 손을 잡아야겠지. 특별한 이변이 없는 이상, 저들이 10년 이상 영국을 통치할 테니.’
이선은 이영과 윤치호에게, 자유당 여러 파벌과 두루 돈독한 관계를 맺으라고 지시했다.
자주 정권이 바뀌는 프랑스 제3공화국과 달리, 영국은 정치적 안정이 보장됐다.
실제 역사에서, 애스퀴스는 1908년 총리에 취임하여 1916년까지 재임했다. 즉, 1차 세계대전에 뛰어든 영국의 총리였다. 그레이는 무려 11년이나 외무장관을 역임하며 영국의 대외정책을 결정했다. 로이드조지는 재무장관과 군수장관을 역임하고, 애스퀴스의 뒤를 이어 총리가 되었다.
이들은 영국의 운명뿐만 아니라, 유럽과 세계의 운명에도 영향을 미쳤다.
“짐의 예상대로라면, 향후 5년 이내로 극동 정세에 중대한 변화가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 동맹국은 공동으로 이에 대응해야 할 것입니다.”
이선은 외무장관 그레이와 별도의 회담을 가졌다. 영국 외무부의 독립성은 다른 군주국과 비교할 수 없었고, 외무장관이야말로 외교 정책의 총괄자였다.
“극동 정세의 중대한 변화라고 하시면?”
“중국 혁명이지요.”
‘혁명’이란 단어에, 그레이는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1906년 러시아 혁명, 1907년 페르시아 입헌혁명으로 인해 영국 외교는 크게 방향을 틀어야 했다. 안정을 중시하는 영국으로선 혁명은 피하고 싶은 일이었다.
“폐하께서는 혁명의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동양에는 전통적으로 천명이란 개념이 있지요. 유감스럽게도 청조의 천명은 끝이 보입니다.”
이선은 천명의 개념을 설명하고, 중국 정세의 변화에 대해 예측했다. 이선의 설명과 예측에 감탄한 니콜라이와 달리, 그레이는 회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폐하의 고견은 참으로 정교합니다만, 청조가 붕괴할 가능성은 50년 전 태평천국 전쟁 때도 제기되었습니다. 하지만 청조는 여태까지 버티고 있지요. 앞으로 더 버틴다고 해도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영국은 청조를 지지하여 태평천국을 진압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이미 청조가 영국의 무력과 경제력 앞에 굴복한 이상, 반(半)식민 상태로 최대한 버텨 주는 게 좋은 일이었다.
영국이 장강 유역을 독점적인 세력권으로 확보하고, 영국군이 티베트를 점령했을지언정, 청조의 주권만은 흔들리면 곤란한 것이었다.
“중국 남부 지역, 특히 광동, 호북, 호남, 사천은 혁명의 아성입니다. 성공하리란 보장은 없지만, 반란은 계속 일어날 겁니다. 그러다가 도미노처럼 무너지는 순간이 올지도 모릅니다. 이미 청조의 통제력은 한계에 도달했습니다. 장강 중하류 지역이 영국의 핵심 세력권이지요. 이 지역에 사는 신사들은 지배자가 청조에서 공화국으로 바뀐다 한들 전혀 개의치 않을 겁니다. 미리 대책을 세워 둬야 합니다.”
그레이도 중국 정세에 대해서 정기적으로 보고를 받았다.
광서제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의화단 전쟁 이후의 청조의 지배력은 점차 파편화되었다. 중국 본토 18성은 어떻게든 행정력이 유지되어도, 변방은 거의 손을 놓고 있는 상황이었다. 티베트와 신강, 몽골과 만주는 이미 열강에 의해 잠식되고 있는 상태였다.
“티베트와 신강, 몽골과 만주는 더 민감합니다. 이들은 전통적으로 중국의 영역이 아닌 청조의 정복을 통한 인적 지배를 받았기에, 중국 국민국가에 복종할 가능성이 적습니다.”
“그렇다면 폐하께서 생각하시는 바는 무엇인지 알려 주시겠습니까?”
이선은 자신의 복안을 자세히 설명했다. 그레이는 진지하게 경청하더니,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폐하의 제안에 감사드립니다. 정부에서 상세히 검토해 보겠습니다.”
이선은 일어서 그레이와 악수하고, 고개를 돌려 벽면의 세계지도를 바라봤다. 노란색으로 칠해진 대청국의 영역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대한제국은 제국주의 국가의 일원이 되어, 세계지도를 새로 그리려고 하고 있었다.
때는 바야흐로 20세기 초, 신제국주의(New Imperialism)시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