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468
– 149화에 계속 –
2부 149화 왕들의 장례식
1910년 5월 6일, 에드워드 7세 서거. 향년 69세, 재위 9년이었다.
어머니 빅토리아 여왕의 오랜 치세에 가려 60세에 즉위, 채 10년을 재위하지 못하고 서거했다. 사인은 과도한 흡연으로 인한 폐질환과 심근경색이었다.
“포기하지 않겠네. 난 버텨 내야 해. 마지막까지 내 일을 해야 한다고.”
그 자신도 죽음이 원통한 듯, 마지막 순간까지 정무를 보다가 숨을 거두었다.
‘유럽의 삼촌’이라 불리는 에드워드의 죽음에 온 유럽, 아니 세계가 애도를 표했다.
「대한제국 정부는 대영제국 국왕 폐하의 서거에 가장 큰 애도의 뜻을 표하며, 동맹국의 슬픔을 함께할 것이다. 세계의 평화를 위해 노력한 전 국왕께서는……」
이튿날, 한국 정부도 즉각 애도의 조문을 보냈다. 황성에 조기(弔旗)가 게양되고, 이선은 주한 영국공사를 불러 정중한 조의를 표했다.
이어서 장례식 조문단이 구성되었다. 유럽은 물론이고, 전 세계에서 조문단이 영국으로 향할 예정이었다. 청국에서는 광서제의 이복동생인 재도(載濤), 일본에서는 메이지의 사촌인 후시미노미야 사다나루(伏見宮貞愛) 친왕을 파견하기로 했다.
“영국 현지에 있는 영친왕이 조문을 맡도록 하고, 별도의 조문단을 파견하도록 합시다.”
장례식은 5월 20일로 예정되어 있었다. 아무리 빨리 가도 한국에서 영국까지 장례식 시간에 맞춰서 도착할 수가 없었다. 먼저 현지의 이영과 주영 공사관이 장례식에 참석하고, 새 국왕에게 조의를 표할 조문단을 파견하도록 했다.
황실 대표로 의친왕 이강이, 정부 대표로 전 총리대신 김옥균이 선임되었다.
인선에서 보면 알 수 있듯이, 단순히 조문 목적이 아니라, 새 국왕에게 경의를 표하고 외교적 논의를 위한 파견이었다.
5월 20일, 에드워드 7세의 국장일.
화창한 봄날,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군주들과 대표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9명의 국왕, 40여 명의 왕족과 귀족, 50여 개 주권국가를 대표하는 특명전권대사들이었다.
제일 맨 앞줄에는 새 국왕 조지 5세와 빌헬름 2세가 나란히 말을 타고 움직였다. 그 뒤로 계속 왕족들의 행렬이 이어졌는데, 그중에는 대한제국 친왕 이영도 있었다.
‘기이할 정도로 화려한 행렬이군.’
이영은 유교를 국시로 삼는 조선 출신답게, 군주의 장례식이 성대한 건 당연하게 생각했다. 다만 상복을 입고 애도를 표하는 동양과 달리, 영국의 장례식은 달랐다.
왕족들은 깃털로 장식된 군모, 금빛 줄과 훈장으로 치장된 화려한 제복을 입고 세 명씩 줄을 지어 영구를 실은 마차와 함께 움직였다.
장례식이라고 하기에는 놀라울 정도로 화려한 행렬이었다. 장례식을 보기 위해 모여든 군중들은 행렬에 감탄했다.
근위대와 육·해군을 대표하는 장교와 병사들이 제복을 입고 행진을 했고, 고위 장성과 제독들도 뒤따랐다.
말하자면, 이 순간은 상징적인 순간이었다. 온 유럽의 군주와 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성대한 행진을 하는 마지막 순간이었다. 좋은 시절, ‘벨 에포크’의 절정이었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순간이었다.
각국 대표단의 면면을 보면 다음과 같다.
빌헬름 2세, 독일 황제, 전 국왕의 조카.
요르요스 1세, 그리스 국왕, 전 국왕의 처남.
프레데리크 8세, 덴마크 국왕, 전 국왕의 처남.
알폰소 13세, 스페인 국왕, 전 국왕의 조카사위.
하콘 7세, 노르웨이 국왕, 전 국왕의 조카사위.
페르디난트 1세, 불가리아 국왕, 전 국왕의 육촌.
알베르 1세, 벨기에 국왕, 전 국왕의 육촌.
마누엘 2세, 포르투갈 국왕, 전 국왕의 팔촌.
미하일 알렉산드로비치 대공, 러시아 차르의 동생, 전 국왕의 처조카.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황태자.
에른스트 루트비히 대공, 헤센 대공, 전 국왕의 조카.
에마누엘레 필리베르토 공, 아오스타 공작, 이탈리아 국왕의 조카.
페르디난트 공, 루마니아 왕세자.
알렉산다르 공, 세르비아 왕세자.
루프레히트 공, 바이에른 왕세자.
막시밀리안 공, 바덴 왕세자, 전 국왕의 조카사위.
유수프 에펜디, 오스만 제국 황태자.
메흐메트 알리, (영국의 보호령) 이집트 왕자.
후시미노미야 사다나루, 일본 친왕.
애신각라 재도, 청국 친왕.
이강, 한국 친왕.
보우라데, 시암 국왕의 조카.
시어도어 루스벨트, 전 미국 대통령.
스테판 피숑, 프랑스 외무장관.
기타 등등.
각국을 대표하는 화려한 면면이었다. 명단을 보면 유럽의 군주들이 얼마나 촘촘한 인척관계로 엮여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불과 몇 년 뒤에 이들이 국가를 대표하여 적이 되어 서로에게 총을 겨누게 되리라고는, 아무도 알지 못하는 일이었다. 실제로 이들 대부분이 군대를 지휘하거나 외교를 도맡아 적국의 파멸을 위해 앞장설 터였다.
근위대 군악대는 장례식 내내 슬픈 장송곡을 연주했다. 아무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왕들의 유럽’의 죽음을 알리는 장송곡이었다.
* * *
5월 27일, 대한제국 조문단이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하여 런던에 도착했다. 조문단장 이강은 즉시 조지 5세를 알현하여 국서를 전달했다.
“국왕 폐하, 대한제국 황제 폐하를 대리하여, 애도의 뜻을 전해 드립니다. 삼가 조문의 뜻이 담긴 국서를 봉정합니다.”
“짐은 귀국 황제 폐하의 조의에 진심으로 감사드리는 바입니다. 조문단 여러분도 먼 길을 오시느라 노고가 많았습니다.”
이강과 조지 5세는 서로에게 정중한 예의를 표했다. 올해 45세인 조지 5세는 점잖은 용모에 풍성한 수염을 길러 위엄 있어 보였다. 부친상을 당했음에도 군주로서의 책무를 다하기 위해 슬픔을 드러내지도 않았다.
특기할 점은, 이종사촌 니콜라이 2세하고는 판박이와도 같은 외모였다. 두 사람 모두 어머니를 닮았기 때문이었다.
“동아시아 대표단의 만찬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함께하시지요.”
“감사드립니다, 폐하.”
5월 20일 당일에 조지 5세는 각국 대표 60인과 만찬을 했다. 거리의 문제로 뒤늦게 도착한 동아시아 3국 대표단을 위해서 별도의 만찬이 예정됐다.
“영아, 오랜만이다. 공부는 잘되어 가느냐?”
“걱정해주신 덕분에 잘되어 갑니다. 황제 폐하와 황실 어른들께서는 강녕하십니까?”
모처럼 재회한 이강과 이영은 회포를 풀었다.
“모두 평안하시다. 자, 그럼 네가 유럽에서 있었던 일을 들어 볼까. 그동안 러시아 아가씨하고는 얼마나 진전이 있었지?”
“혀, 형님! 무슨 그런 걸 다…….”
“네 나이 벌써 스물넷인데 당연히 신경 써야지. 설마 유럽까지 와서 공부만 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여러모로 기질이 상극인 이강과 이영이지만, 형제의 우애는 여전했다.
“왕실 외교는 친왕 전하께서 어련히 잘 아실 터이고, 우리는 즉시 해야 할 일을 하세.”
왕실을 상대하는 일은 이강에게 맡기고, 김옥균은 즉시 외교적 사안에 몰두했다.
김옥균은 먼저 주영 미국대사관을 찾아 특사, 즉 시어도어 루스벨트 전 대통령과 회견했다.
“대통령 각하를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간 평안하셨습니까?”
“덕분에요. 저 역시 총리 각하를 뵈어 기쁩니다. 자, 앉으시지요.”
김옥균과 루스벨트는 오랜만에 만난 친구처럼 반갑게 인사했다. 김옥균은 김-태프트 밀약의 당사자로, 사실상 루스벨트와 밀약을 맺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두 사람은 잠시 환담을 나누다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에드워드 7세의 서거는 당장 정세를 바꾸진 않을 것이나, 또 다른 군주의 서거는 정세를 근본적으로 바꿀 가능성이 있습니다.”
“또 다른 군주라고 하면?”
“이건 극비인데, 청국 황제께서 위독하십니다. 아마 올해를 넘기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실제 역사라면 이미 광서제는 1908년에 서거했어야 했지만, 역사의 변화로 아직 살아 있었다.
“그럼 후계자는 누가 됩니까? 조문단으로 영국에 온 왕자는 아닐 거고.”
“가장 가까운 형제는 순친왕 재풍(載灃)인데, 청나라는 계승법상 같은 항렬에서 두 명의 군주가 나올 수가 없습니다. 광서제는 예외적인 경우였죠. 아마 순친왕의 아들이 차기 황제가 될 겁니다.”
“순친왕도 꽤 젊은 거로 아는데, 그 아들이면 대체 몇 살입니까?”
“올해로 5세입니다. 아, 서양 나이로는 4세군요.”
루스벨트가 헛웃음을 흘렸다.
“4살 아이가 어떻게 무너져 가는 제국을 다스립니까?”
“물론 순친왕에게 섭정을 맡길 거고, 헌법을 반포하고 내각제를 실시했으니 섭정과 내각이 통치를 하겠죠. 문제는 최후의 구심점인 광서제가 사라지는 순간, 입헌파, 양무파, 반동파들이 피 튀기는 권력다툼을 벌일 겁니다. 혁명파들은 이를 기회로 삼겠죠. 지방은 완전히 통제 불가능한 상황이 될 겁니다.”
김옥균의 예측에 루스벨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시나리오였다.
“저는 중국 혁명파들하고 개인적으로도 연이 닿습니다만, 이들은 미국식 연방공화제를 지향합니다. 아마 미국 유학파인 손일선(손문) 씨를 통해 미국에도 지원을 호소하고 있는 거로 알고 있습니다만.”
“그렇습니다. 미국에 종종 와서 재미 중국인들에게 지원받고 가죠. 연방 정부는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으니까.”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손일선이 중국의 토머스 제퍼슨이 될 수도 있습니다.”
김옥균의 비유에 루스벨트가 웃음을 터뜨렸다. 지금으로선 어림도 없는 전망이었다.
“재미있는 농담이군요.”
“농담이 아닙니다. 제게 명을 내린 황제 폐하께서는 진지하십니다. 우리의 만주 이권을 위하여, 중국 혁명에 대비해야 합니다.”
김옥균이 이선의 말을 루스벨트에게 전달했다. 김옥균의 설명에, 영민한 제국주의자인 루스벨트는 바로 핵심을 이해했다.
“아무래도 대비를 해야겠군요. 중국의 문호개방을 지키기 위하여, 만주 이권을 위하여.”
“그렇습니다. 우리가 잘 준비한다면, 어떠한 상황에서도 대처가 가능할 겁니다.”
김옥균과 루스벨트는 한동안 더 이야기를 했다. 루스벨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좋습니다. 나는 이미 은퇴한 몸이라, 태프트 대통령께 전해 드리도록 하지요.”
“감사합니다. 저도 각하의 제안을 황제 폐하께 전해 드리겠습니다.”
전직 총리와 전직 대통령은 동의의 뜻으로 악수를 했다. ‘전직’이었지만, 그들은 여전히 외교 정책의 실세였다.
이어서 김옥균은 외무부를 찾아 외무장관 에드워드 그레이 경과 회견했다.
의례적인 이야기가 오고 간 후,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포츠담 회담에 대해 영국 정부의 우려가 있는 거로 압니다만.”
“도대체 차르가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습니다. 귀국 황제 폐하께서는 알고 계십니까?”
“안 그래도 황제 폐하의 전언을 알려 드리려고 합니다.”
5월 9일, 공교롭게도 에드워드 7세 서거 직후에, 독일 포츠담에서 빌헬름 2세와 니콜라이 2세의 정상회담이 있었다.
1908년 에드워드의 러시아 방문, 이듬해 니콜라이의 영국 답방으로 영국-러시아 관계가 전례 없이 장밋빛을 보이자, 질 수 없었던 빌헬름은 니콜라이를 국빈으로 초청했다.
보스니아 위기 이후 한동안 냉랭했던 독일-러시아 관계지만, 갑자기 순풍이 불기 시작했다.
“오! 친애하는 짐의 형제 니키. 짐은 폐하를 위하여 특별한 준비를 했소.”
“친애하는 짐의 형제 빌리. 어떤 준비인지 궁금하군요. 발칸에서 러시아의 위신을 실추한 통첩 같은 건 아니겠지요.”
카이저와 차르는 서로의 근위대 제복을 바꿔 입으며 우의를 과시했지만, 니콜라이의 말에는 여전히 앙금이 남아 있었다.
“니키, 그 일은 미안하게 생각하오. 짐은 외무부를 말려 보려고 했지만, 영국 언론이 일으킨 문제 때문에 나설 수가 없었소. 하여튼 영국은 만악의 근원이오.”
“세르비아와 남슬라브 국가들이 러시아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지 폐하께서도 잘 아실 것이오. 독일이 오스트리아-헝가리의 편을 드는 바람에 짐과 러시아인들의 실망이 아주 컸소.”
“친애하는 니키, 거대한 대륙을 지배하는 러시아가 왜 그리 작은 발칸에 집착할 필요가 있겠소? 무릇 제국의 황제라면 보다 큰 그림을 그려야 하오. 오스트리아-헝가리에 발칸은 유일한 확장 루트요. 하지만 러시아는 얼마나 다양합니까. 터키, 페르시아, 투르키스탄, 중국, 태평양…….”
“발칸의 남슬라브 국가들은 러시아의 형제들이오. 그리고 러시아는 영국과 협정을 맺어 진출을 자제하고 있소.”
“그게 다 영국의 계략이란 말이오. 고인에게 이런 말을 하긴 유감이오만, 에드워드 삼촌은 평화의 전도사가 아니라 전쟁을 획책하는 사탄이었소. 영국은 독일과 러시아 사이에 싸움을 붙이려는 거요.”
“…….”
“이 작고 골치 아픈 발칸에서 싸우는 것보다, 더 위대한 영광이 러시아를 기다리고 있소. 저 거대한 아시아가 차르의 깃발과 하느님의 복음을 기다리고 있단 말이오!”
카이저는 화려한 언변으로 귀가 얇은 차르에게 야망을 불어넣었다.
독일과 대립할 필요 없이 우의를 다질 필요가 있다는 데에는 총리 스톨리핀도 동의했지만, 어디까지나 국내 개혁에 필요한 평화를 위해서였다. 비외르쾨 밀약을 겪어 본 러시아 관료들은 ‘카이저의 영악한 화술’에 넘어가지 말라고 차르에게 언질을 줬지만, 팔랑귀 차르는 또다시 솔깃해했다.
이미 이선에게서 유라시아의 천명을 계승할 운명의 러시아라는 ‘신탁’을 받았었기에, 러시아의 아시아 진출을 독려하는 카이저의 말도 나쁘지 않게 들렸던 것이다.
“포츠담에서 별일은 없었던 거로 보입니다. 단지 늘 그렇듯이, 카이저가 아시아를 향한 러시아의 야망을 부추긴 것 같습니다. 그 직후 차르께서 우리 황제께 몽골 독립 문제에 대하여 자문을 구하셨지요. 최근 몽골 왕공들이 러시아에 거듭 독립을 청원하고 있습니다.”
이선은 영국이 민감하게 생각할 정보는 빼고 전달했다. 애초에 ‘신탁’은 영국이 모르는 일이었다.
“러시아의 관심을 아시아로 돌려 영러 간에 다시 대립을 부추기려는 카이저의 상투적인 수법 같은데, 별일이 아니라니요? 몽골이라면 영러협상의 세력권을 넘지는 않는데, 청국의 주권과 영토 보전이 전제입니다. 독립이라면 선을 넘어서요. 몽골이 독립한다고 하면 티베트도 동요할 겁니다.”
영러협상에서 몽골과 북만주는 러시아 세력권으로, 티베트와 장강 유역은 영국 세력권으로, 신강과 화북 등은 중립지대로 설정했다.
중국 시장의 기득권자인 영국은 현상유지를 원했으므로, 러시아가 몽골 독립을 시작으로 청조의 붕괴를 유도하는지 의심했다.
“러시아는 혁명을 혐오하는 나라입니다. 혁명을 부추겨서 중국 분할을 시도할 리가 있겠습니까?”
“그건 그렇지요. 하지만 독립은 민감한 사안입니다.”
“청국은 인위적으로 외부에서 무너트리는 게 아니라, 내부에서 자연히 무너지게 될 겁니다. 유감스럽게도 청국 황제 폐하의 건강이 위독하십니다. 문제는 그다음인데…….”
김옥균은 루스벨트에게 했던 말을, 영국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약간만 바꾸어서 그레이에게 전달했다.
김옥균의 설명과 제안에 그레이도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각의에서 논의해 보도록 하지요.”
“예, 한국은 동맹국으로 언제나 귀국을 도울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귀국의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김옥균은 그레이와 악수하면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군주의 장례식 이후 대륙의 위기로.
유럽에서는 막연한 미래의 일이었지만, 중국에는 임박한 현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