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472
– 153화에 계속 –
2부 153화 방역전쟁
11월에 페스트는 일시적으로 소강상태였다. 사람들은 괴역질이 끝났다고 안심했으나, 근본적인 해결책이 없었으니 헛된 희망에 불과했다.
12월이 되자 페스트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하얼빈에서는 사망자가 하루에 100여 명씩 나오기 시작했다. 러시아 조차지와 만철 조차지에서는 확진자가 드물었지만, 흑룡강과 길림성 일대에 페스트가 계속 확산되었다.
그때서야 비로소 청 조정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고, 마침내 방역 책임자를 하얼빈으로 파견했다.
“청국에서 방역 전권을 파견했더군요.”
“그게 누굽니까?”
“이름이 뭐라더라? 케임브리지 의학 박사라던데, 이 선생은 누군지 아실 것 같습니다.”
이태준은 짐작 가는 바가 있었다. 그는 즉시 청국 방역 책임자를 찾아갔다.
“닥터 우!”
“오, 닥터 리. 여기서 다 만나는군요.”
오연덕(吳連德, 우롄더)는 본래 영국령 말레이시아 페낭의 화교 출신으로, 중국계로는 최초로 영국 왕실 장학금을 받아 케임브리지에서 의학 박사를 받은 수재였다. 즉, 그는 영국 국적이었다.
역시 케임브리지에서 의학을 공부한 이태준은 오연덕의 후배인 셈으로, 서로 안면이 있었다.
“선생께서 청국으로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중국은 조상의 나라이긴 하지만, 방역 전문가가 필요하다고 해서 받아들였지요.”
전염병과 세균학을 전공한 오연덕을, 1907년 양광총독 원세개가 영입했다. 오연덕은 중국어보다 영어가 더 익숙한 사람이었지만, 열악한 청국의 의료를 개혁하기 위해 도와달라는 원세개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그는 조상의 고향인 광동으로 돌아왔다.
이듬해 원세개가 양광총독에서 물러나 한직으로 좌천되자, 오연덕의 처지도 난감해졌다. 다시 영국으로 떠나려는데, 원세개의 천거를 받은 군기대신 장지동이 오연덕을 천진 육군군의학당의 부감독(교감)으로 임명했다.
“조정에서 이번 사태를 너무 안이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 내가 거듭 상소하여 직접 왔습니다. 동삼성(만주) 방역 전권의 책무를 맡게 되었으니, 사태 해결을 위해 만전을 기해야지요.”
“선생께서 전권을 맡게 되었다니 다행입니다. 청국 관리들은 정말 하나같이 답답해서 미칠 지경입니다. 필요한 방역대책을 세우려고 하지 않습니다.”
오연덕이 한숨을 푹 쉬었다. 청국 관리들의 무능함과 무책임에는 그 자신이 가장 분노하고 있었다.
“이 나라에는 머리가 굳은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의료적 필요를 위해 부검하고 화장하는 것조차도 유교적인 관점에서 망자에 대한 모욕이라고 생각하니까요. 병인을 알아내려면 부검이 필수요, 전염병을 막으려면 화장해야 하는데…….”
“한국에서도 20년 전까지는 그랬습니다. 단 20년 만에 많이 달라졌지요. 청국도 그렇게 될 겁니다.”
“그래요. 개혁을 위해서라도 이번 만주 방역은 반드시 성공해야 합니다. 중국인들은 물론이고, 서양인들에게도 보여 줘야지요.”
러시아와 만철 당국은 청국이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군대를 파견해 필요한 방역 조치를 취하겠다고 위협하자, 그때서야 청 조정은 비로소 반응했다. 방역은 주권과도 관련된 일이었고, 개혁파들은 내정간섭을 막기 위해서라도 방역을 성공시켜야 했다.
“내가 보기에는 아무리 봐도 피부가 아니라 공기로 전염되는 폐페스트 같습니다. 그런데 서양 의사들은 도저히 내 말을 믿지 않더군요.”
“오, 제 상급자도 같은 의견입니다.”
“그래요? 그럼 함께 논의합시다.”
오연덕, 그를 보좌하는 육군군의학당 조교수 임가림(林家林), 김필순, 이태준 4인은 독자적인 대책협의회를 구축했다.
하얼빈에 파견된 서양 의사들은 이 젊은 동양 의사들을 애송이 취급하며 무시했고, 이들은 독자적으로 병인 연구에 나섰다.
중국인들은 부검에 부정적이었으므로, 페스트로 죽은 일본인의 시신을 유족의 동의를 받아 부검했다. 폐 조직에서 페스트 감염을 확인한 4인의 의사는 확신했다.
“폐 조직이 감염됐군.”
“호흡기로 가염되는 폐페스트가 맞습니다!”
확신을 얻은 오연덕은 즉각 북경에 보고하고, 서양 의사들과 하얼빈 주재 영사들에게 알렸다.
“이 페스트는 피부가 아니라 호흡기를 통해서 사람과 사람으로 전염되는 폐페스트입니다. 무의미한 쥐잡기는 당장 그만두고, 당장 격리와 호흡기를 통한 전염 방지 대책부터 세워야 합니다.”
“폐페스트는 현재로선 이론에 불과하오. 작년, 국제페스트학회에서는 쥐벼룩에 의해 전염되는 선페스트만을 병인으로 공인했소.”
“이론만이 아니라 부검으로 증명했습니다!”
“글쎄요, 그건 닥터의 일방적인 주장이고. 먼저 학회에 보고하고 동료 평가를 받아야…….”
“지금 그럴 여유가 어디 있습니까? 당장 사람들이 매일 수백 명이 죽어 가는데!”
오연덕의 필사적인 외침에도 서양 의사들은 무시했다. 부검에 동참한 김필순과 이태준도 함께 호소했지만, 이 역시 편견으로 가득 찬 의사들에게 무시당했다.
“이미 국제학계에서 공인된 사실을, 동양인 애송이 몇 명이 한 명을 부검했답시고 뒤엎으려고 해?”
“애초에 미개한 중국인들이 미개하게 설치류나 먹고 미개한 위생 상태로 뒹굴다가 미개하게 전염병이 옮는 거 아닌가.”
“하여튼 중국인 더러운 건 알아줘야 해. 유럽이라면 절대 일어나지 않을 질병이오.”
서양인 의사들은 동양의 의학 수준을 우습게 여기고 있었고, 특히 중국인 의사는 더 우습게 여겼다. 일부 러시아 소장 의사들이 폐페스트 이론과 해결책에 동조했지만, 다수의 의견에 묻히고 말았다.
“안 되겠군요. 우리끼리라도 독자적인 해결에 나섭시다.”
“본국에 지원을 요청하겠습니다.”
오연덕은 북경에, 김필순은 황성에 페폐스트를 보고하고 지원을 요청했다.
“만주 폐페스트라. 맞아, 그랬지…….”
하얼빈에서 온 급보를 받은 이선은 문득 오래된 기억이 떠올랐다. 대학원생 이선우였던 시절, 근대 의학사 강의를 들은 적 있었다. 의학 자체에는 문외한이었지만, 근대국가가 질병과 같은 위기에 어떻게 대처하는지는 흥미로운 주제였다. 그 중요한 사례가 바로 만주 페스트였다.
‘내가 조선의 의료체계는 일신해서 이 나라에서 천연두나 콜레라는 끝장냈지만, 만주 페스트 발병까지 막을 방법은 없었지. 이번 기회에 만주의 의료체계도 일신해야겠다. 만주와 한반도는 지척이요, 철도로 연결되어 있으니.’
이선은 즉각 하얼빈의 안중근에게 전문을 보냈다.
「필요한 사항이 있으면 모두 보고하라. 지원을 아끼지 않겠음. 귀관에게 내탕금을 보내겠으니, 급박한 상황이라면 선조치 후보고해도 상관없음.」
안중근으로부터 한국 황제의 조치를 전달받은 오연덕은 깜짝 놀랐다. 북경에서는 아직 답이 없는데, 자국도 아닌 한국에서 신속하게 백지수표를 지원해 주겠다니.
“귀국 황제 폐하의 은의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한국의 일도 아닌데…….”
“만주는 한국의 지척이요, 대한과 대청은 형제지국이니 당연한 일이라 하셨습니다. 선생은 개의치 마시고, 먼저 필요한 조치를 취하십시오.”
오연덕은 감사를 표하며 고개를 숙였다.
“급박한 예산으로 은자 5만 냥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공기를 통해 감염되는 만큼, 의료용 마스크를 개조해서 일반인들도 쓰게 해야 합니다. 깨끗한 거즈와 천으로 마스크를 만들어 코와 입을 막아야 합니다.”
“수량이 얼마나 필요할까요?”
“하얼빈 인구를 생각하면, 최소 10만 장은 필요합니다. 물론 전염까지 생각하면, 다다익선입니다. 북경과 성경(봉천)에도 요청을 했습니다만…….”
“황성에 즉시 보고하도록 하지요.”
안중근의 보고를 받은 이선은 흔쾌히 수락했다.
“청은 10만 냥에 해당되는 내탕금을 즉시 보내겠다. 안산 공업지구에서 마스크 10만 장을 생산하여, 만철을 통해 하얼빈으로 운송하도록 하라. 요청하면 필요한 대로 더 만들어서 보내겠다.”
안산 공업지구는 한청 접경지대에 있어, 생산과 북만주로의 수송에 적합했다. 한국의 주요 공업섹터인 안산에서도 마스크 대량생산 경험은 없었지만, 황명으로 신속한 생산체제에 돌입했다.
한국에서 먼저 지원을 시작하자, 북경 조정에서도 체면과 위신의 문제로 다가왔다.
“대청의 일인데 어찌 이웃나라에 밀릴 수 있단 말인가? 즉각 예산을 편성해 지원하라.”
청 조정은 오연덕을 돕는답시고 방역 전문가를 추가로 파견했다. 바로 오연덕의 상관인 천진 육군군의학당 감독(교장)인 프랑스인 제라르 메즈니(Gerald Mesny)를 파견했다.
“내가 만주에 온 이상, 전권은 내게 주어져야 할 것입니다.”
“음, 먼저 현지 상황을 살펴보는 게 어떻소이까?”
메즈니는 만주에 도착하자마자 오연덕의 방역 전권위원 직위를 자신이 맡으려고 했다. 동삼성(만주) 총독을 맡고 있는 몽골인 석량(錫良)은 완곡히 거절하여 메즈니를 하얼빈으로 보냈다.
“닥터, 만주에서 발생한 페스트는 폐페스트입니다. 호흡기 감염을 차단하기 위해 격리를…….”
“폐페스트라니, 자네 그 이론 말인가? 검증되지 않은 이론에 정력을 낭비할 수 없네.”
“부검으로 검증되었습니다!”
“이봐, 나는 페스트 전문가일세. 나는 더 끔찍했던 운남 페스트도 경험했어. 이건 선페스트야. 전염병의 온상인 쥐잡기를 포기하다니, 자네 미쳤나?”
메즈니는 10살이나 어린 직속 부하가 선배 학자이자 상관을 가르치려 하니 불쾌하게 생각했다.
오연덕의 전권을 빼앗지는 못하더라도, 페폐스트 이론에 반대하는 서양 의사들과 연합해 선페스트를 고집했다.
해결책을 찾으려다가 갑자기 발목이 잡힌 오연덕으로서는 어이가 없었다.
뒤로는 무능한 조정이, 앞에서는 서양인 의사들의 편견이 필요한 방역을 막고 있었다.
「제가 할 일을 못 한다면, 저는 사임하겠습니다. 대신 후임으로 닥터 메즈니를 추천합니다.」
오연덕은 강수를 뒀다. 북경 조정은 일단 오연덕에 대한 재신임을 표명하고, 메즈니의 화해를 주선했다.
방역을 가로막는 극한대립은 어이없이 끝나고 말았다.
“닥터, 페스트 병원 시찰은 좋습니다만, 제발 마스크 쓰고 가십시오. 이건 호흡기로 감염되는 질병입니다!”
“마스크란 건 수술할 때나 쓰는 거지, 병원 갈 때 쓰는 게 아닐세. 누누이 말하지만, 페스트는 피부로 감염되는 거야. 자넨 의학 공부 다시 해야겠어.”
오연덕이 제안한 마스크 착용을 메즈니는 코웃음을 치며 거절했다.
메즈니는 하프킨 박사가 담당하고 있는 러시아 격리병원을 방문하면서, 나름대로 철저한 대책을 했다. 흰 가운, 모자, 장갑을 끼고 피부 감염을 막으려고 했다. 하지만 코와 입을 막는 마스크는 착용하지 않았다.
3일 후. 메즈니는 발열, 두통, 오한, 각혈 등 폐페스트의 전형적인 증상을 드러냈다. 검진결과 페스트로 확진되었고, 다시 3일 후 의식을 잃고 사망했다.
오연덕이 직접 부검을 했고, 폐페스트임이 밝혀졌다. 역설적이게도 메즈니는 자신의 생명으로 폐페스트를 증명한 것이다.
“공기와 비말의 감염으로 전파되는 폐페스트가 맞습니다!”
메즈니 사망 이후, 폐페스트는 완전히 검증되었다. 동양 의사들의 의견을 무시하던 서양 의사들의 높은 콧대도 꺾이고, 안면을 가리는 마스크 착용에 동의했다.
때마침 일본에서 파견한 세균학자 기타자토 시바사부로(北里 柴三郎)가 하얼빈에 도착했다. 콜레라와 결핵균을 발견한 로베르트 코흐의 제자이자 1894년 홍콩 페스트의 병원체를 발견하여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기타자토도 폐페스트에 손을 들어주었다.
일찌감치 폐페스트를 주장한 오연덕, 김필순, 이태준. 이 젊은 동양 의사들의 명성이 치솟았다. 이제 페스트 방역은 그들의 제안대로 진행되었다.
“자, 이제 적절한 방역대책을 세우도록 합시다.”
해가 바뀐 1911년 1월, 본격적인 방역이 이뤄지기 시작했다.
사전에 적절한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1월에 페스트는 절정에 달했다. 북만주에는 확진자와 사망자가 쏟아졌고, 마침내 봉천 이남에서도 첫 확진자가 나타났다. 치료제도 없었으므로, 확진자는 곧 죽음이었다.
화들짝 놀란 청국 정부는 오연덕에게 방역 대책의 전권을 주었다. 이미 한국에서는 일찌감치 시행되고 있던 방역법이 서둘러 제정되었다. 청국 최초의 페스트 방역법규였다.
만주 전역에서 철저한 격리, 소독, 검역, 교통차단이 이뤄졌다.
“그런데 왜 확진자가 계속 쏟아지는 거지?”
그 의문은 하얼빈 외곽 공동묘지에 가는 순간 풀렸다. 영하 30도의 추운 겨울, 끝도 없이 많은 시신이 대충 매장되어 널브러져 있었다. 의사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맙소사, 시신에 접촉한 동물들이 성안에 들어와 사람들에게 전염시키면 막을 방법이 없는데!”
“이제 곧 춘절(음력설)인데, 우리 중국인들은 객지에서 죽은 사람의 시신을 고향에 안장하는 습관이 있소. 귀성길에 오른 사람들이 시신을 들고 만리장성을 넘기라도 하는 날에는…….”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만주는 물론이요, 북경, 산동, 하북, 산서 등도 페스트의 먹잇감이 될 터였다.
절대 그럴 수는 없었다. 방역협의회의 지휘 아래 강도 높은 방역 조치가 취해졌다.
“아무리 방역을 철저히 해도, 만주가 페스트 천국이 되면 한국도 위태롭다. 어떻게든 여기서 막아야 해!”
이미 확진자의 대열은 봉천과 요양까지 지나갔다. 한국령으로의 진입이 눈앞이었다. 자치령에서도 확진자가 나오고 있었다.
“이동 통제! 위험지역 방문자는 월경 금지! 자국민도 반드시 검역소를 거치고 들어오라!”
한청 국경의 역들과 항구에 검역소가 설치되고, 일시적으로 외국인의 입국이 금지되었다. 한국인도 만주 방문자는 반드시 검역소에서 10일의 격리기간을 거쳐야 했다.
“방역은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전쟁이다! 전염병이라는 침략자가 물러날 때까지 안심하지 마라!”
15년 전 콜레라 유행 이후 한국은 방역에 대한 준비를 늘 해 오고 있었고, 방역위원장을 맡은 서재필의 진두지휘로 헌병과 경찰이 동원되어 철저한 통제가 이뤄졌다.
“이 추운 날씨에 매장을 할 여유가 없습니다. 즉시, 모두 화장해야 합니다.”
조상의 유해를 존중하는 전통을 유지해 온 중국인들에게 화장은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반대를 진정시킬 방법은 황명뿐이었다.
이선은 북경에 서한을 보내 한국식 방역법을 받아들이라고 촉구했고, 섭정왕 재풍도 동의했다.
「죽은 사람이 어찌 산 사람보다 중하겠는가? 오연덕에게 전권을 부여했으니, 뜻대로 진행하라.」
1911년 1월 30일, 선통(宣統) 원년 정월 초하루, 하얼빈 교외.
행복한 춘절이 되어야 할 시기에, 역병으로 목숨을 잃은 이들의 대규모 화장이 거행되었다. 마스크와 방역복으로 꽁꽁 싸맨 사람들이 휘발유를 붓고 수천 구의 시신을 소각했다.
하얼빈뿐만 아니라 만주 전역에서 강력한 방역과 소각이 이뤄졌다.
“반드시 얼굴, 코와 입을 보호해야 하오!”
모든 사람은 외출 시에 당국에서 나눠 준 마스크를 써야 했다. 생전 처음 마스크를 쓰는 사람들은 답답함을 호소했지만, 방역 당국은 단호했다.
엄격한 조치에, 2월부터는 만주 전역에서 확진자와 사망자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생산된 수백 만 장의 마스크가 만주에 수송되어 지급됐다. 방역을 주도하던 만주의 엘리트들은 한국의 행정력과 생산력에 감탄했다. 수만의 사망자를 낸 청국령 만주와 달리, 한국령 만주에서는 신속한 조처로 확진자가 없다시피 했다.
남만주 자치령 일대에서, 마적들과 손잡고 은밀히 군사훈련을 받으며 혁명을 준비하고 있던 중국동맹회의 혁명가들은 의문과 동시에 자괴감을 느꼈다.
“분명히 한국은 대청보다 수십 년 늦게 서구화를 추진했건만, 저들이 근대국가를 건설하고 있는 동안 청조는 대체 뭐 하고 있었단 말인가?”
“청국령 만주와 한국령 만주의 대비되는 상황을 보라. 이래서야 전 만주의 백성들이 한국의 지배를 받고 싶다고 해도 위정자들은 할 말이 있겠는가? 국민의 생명을 지키지 못하는 나라도 나라인가?”
혁명가들은 다시금 확신했다. 실패한 국가, 시대에 뒤떨어진 국가 청조는 망해야 한다고.
근대적 방역과 의료체계는 국민의 생명을 보호할 뿐만 아니라, 제국의 권위를 빛내는 장이기도 했다.
방역 전쟁에서 청국은 실패했고, 한국은 성공했다. 이미 명운이 갈린 두 나라의 운명을 상징적으로 대비시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