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482
– 163화에 계속 –
2부 163화 장막 뒤편
북양군의 무한삼진 공세와 한구-한양 재탈환 소식은 북경에 승전보로 전해졌다.
청 조정은 크게 기뻐하며 장훈과 북양군 도통들의 관작을 올려 주고, 무창 점령을 명령했다.
“좋다! 이대로 기세를 몰아 무창의 역적들을 섬멸하라!”
“반란의 소굴 무창을 정복하면 역적들의 기세도 꺾이리라!”
혁명군은 궤멸적인 피해를 입고 다시 무창으로 퇴각했다. 북양군은 장거리 야포까지 끌고 와서 무창을 향해 포격했다. 북양군에게 자비란 없는 듯 했고, 무창 함락도 시간문제로 보였다.
무창에 집결했던 각성도독부연합의 대표들은 함락을 우려해 남경으로 이전했다.
이들은 남경에서 공화국 임시정부의 수립을 결정했다. 청조에서 독립을 선언한 14성의 느슨한 연합에서, 미국과 흡사한 연방정부의 수립으로 나아갔다.
“청조에 맞서 새로운 정부를 수립합시다!”
“좋소! 중화 인민은 민국 정부를 지지할 것이오!”
“각국에 청조를 대신하는 신정부의 수립 계획을 통보합시다.”
“열강의 지지를 받는 건, 민심을 얻는 것 못지않게 중요하지.”
혁명군에는 열강, 특히 장강 일대를 세력권으로 삼고 있는 영국의 지지가 중요했다.
북양군이 장강 도하를 쉽게 하지 못하는 이유는, 장강 강방함대 일부의 이탈도 한 요인이었지만, 강남까지 확전되는 걸 우려하는 영국의 방해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한야평 제철소의 파괴는 영국을 경악시켰다.
“대체 장훈 장군은 제정신입니까? 동양 최대의 제철소를 왜 파괴합니까? 이건 완전히 미친 자해행위입니다! 대영제국의 자본도 들어가 있다는 걸 잊었습니까?”
주청 영국 공사 존 조던은 황당해하며 청국 외무부에 항의했다. 주청 일본 공사 이주인 히코키치(伊集院彦吉)도 비난의 대열에 합류했다.
“일본국은 귀국을 믿고 한야평 석탄제철공사에 투자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손실을 끼치다니요. 반드시 일본이 입은 손해에 대한 배상을 해야 할 겁니다!”
영국과 일본의 항의에 직면한 청 조정은 당혹스러웠다. 한야평 제철소의 파괴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건 청국인데, 자신들보다 영국과 일본이 더 난리를 치니 당혹스러울 따름이었다.
“북양군 대도통 장훈과 용맹한 장병들은 반란 토벌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소이다. 진압 과정에서 불행하게도 부차적인 실수가 발생했을 뿐이오. 지금으로선 무엇보다 반란을 조기에 진압하는 것이 중요하오. 귀국이 손실을 입은 게 있다면, 전쟁이 끝나고 마땅히 보상하도록 하겠소.”
청국도 영국에 대한 감정이 좋지 못했다.
“영국놈들, 대체 누구 편이란 말이냐!”
말로는 「영국은 청국만을 유일한 중국의 합법정부로 지지한다.」고 해 놓고선, 영국은 손문의 주장을 받아들였는지 대청 차관 이행을 중단했다.
청군의 장강 도하에도 노골적으로 난색을 표하며 ‘남북화의’를 강요했다. 남북화의는 반란군을 남부의 대표로 인정하는 것이나 다름없었기에, 청조는 단호하게 거부했다.
“청 조정이 완고하니, 귀국 정부와 공사께서 고민이 많으시겠습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이렇게 말이 안 통해서야 원.”
주청 한국 공사 이완용은 조던과 회견했다. 조던이 주한 공사로 재직하던 당시 이완용은 외무협판으로 친분을 맺었고, 청국 공사로 이임한 후에는 더욱 가까워졌다.
한영일동맹이 체결된 후, 이완용은 적극적인 친영파로 변신했고, 영국의 대청 정책을 전폭적으로 지지했다. 조던도 이완용을 말이 통하는 인물로 여겨 괜찮게 생각하고 있었다.
“남북화의를 계속 추진하실 계획이십니까?”
“남부의 혁명파들은 화의에 응할 용의가 있어요. 하지만 섭정왕과 만주 왕공들, 북양군의 장훈 장군은 저렇게 완고하니.”
영국은 계속 화의를 주선했다.
그런데 어차피 양측의 주장은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었다.
청조는 완전한 영국식 입헌군주제를 실시하는 조건으로 혁명군의 무장해제와 각 성의 독립 취소를 요구했고, 혁명파는 청조가 중국 본토 18성에 대한 지배를 포기하고 만주로 이전하길 요구했다.
양측 모두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으니, 결국 어느 한쪽이 승리하기 전까지 협상은 이뤄질 수가 없었다.
“일본은 남경 정부를 승인할 용의가 있는 것 같던데, 귀국은 어떻습니까?”
“일단 청국만이 중국의 유일한 합법 정부라는 게 영국의 공식적인 입장입니다만, 전쟁이 강남까지 확산된다면 청국에 대한 지지를 원점에서 다시 고려해 봐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영국의 대청 정책은 사실상 청조의 승전을 방해하고 있는 셈이나 다름없었다.
영국은 장강 일대의 이권을 수호하기 위해서 혁명파를 막기 위한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과거를 돌이켜봐도, 청조의 위신을 거듭 실추시켜 각 성에 대한 중앙 정부의 권위를 약화시키고 반란과 해체를 초래한 장본인이 영국이었다.
영국의 하위파트너인 일본 역시 말로만 청국을 지지한다고 했을 뿐, 남경의 원세개와 접촉하여 무기 지원과 차관을 제안했다. 내전의 장기화로 이득을 취하고, 일본이 염두에 두고 있는 복건과 절강 지역의 세력권 확보를 위함이었다.
“귀국의 입장은 어떻습니까? 귀국은 청국과 형제의 나라라고 하면서도, 은밀히 첩보원들을 보내 혁명을 획책하고 있던데.”
“허허, 그런가요? 저는 금시초문입니다만.”
이완용은 오리발을 내밀었지만, 조던은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말했다.
“영국은 홍콩과 상해에서 활동 중인 귀국 첩보원들의 행보에 대해 파악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 정부와 무관한 이들입니다. 중국의 혁명이 아시아의 변혁을 이끈다고 믿는 자칭 아시아주의자들이지요. 그건 일본도 마찬가집니다.”
이완용은 ‘대한제국 정부’와 ‘아시아주의자’의 선을 그었다.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말이었지만, 조던은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그럼 귀국 정부에서 원하는 건 뭡니까? 러시아와도 손잡고 꾸미는 일이 있는 것 같던데?”
“한국이야 형제지국인 청국을 지지합니다만, 중국에 중국인의 민심을 얻는 정부가 들어서길 바라지요. 물론 만주와 몽골, 티베트와 투르키스탄에도 현지인의 민심을 얻는 정부가 들어서야 합니다.”
이완용은 ‘민심’을 강조했다. 이미 천명과 민심을 상실한 청조가 무력만으로 통치를 이어 나갈 수 없으며, 변경 지역에서도 독자적인 정부가 수립되어야 한다는 걸 드러냈다.
“그래서 근래 몽골과 만주에 러시아 스파이들이 모이나 보군요.”
“달라이 라마께서 영국령 인도에 망명해 티베트의 독립을 호소하듯이, 몽골 왕공들도 러시아에 독립을 호소하고 있지요. 티베트가 영국의 세력권이듯, 몽골과 북만주는 러시아의 세력권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남만주는 귀국의 세력권이고.”
“어휴, 우리야 소소하지요. 대영제국은 중국의 알짜배기인 장강 일대를 세력권으로 영위하는데.”
이완용의 엄살에 조던이 씩 웃었다. 이완용은 술잔에 아이리시 위스키를 따라 조던에게 전했다. 아일랜드 출신인 조던의 취향에 맞춘 선택이었다. 조던은 만족스러워했다.
“공사 각하, 우리는 동맹이 아니겠습니까? 대한제국은 대영제국이 중국에서 주도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무엇이든지 협력할 것입니다.”
“고마운 말씀이로군요. 그럼 본론을 이야기해 보시지요.”
조던의 요청에 이완용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지금의 중국 상황은 50년 전과 다릅니다. 청조는 태평천국을 진압했듯이 혁명을 진압하지 못해요. 그럴 능력이 없습니다. 그리고 지난 50년 사이에, 장강 유역에 투자한 영국 자본이 얼마입니까? 그걸 장기간의 내전으로 파괴하게 내버려 둘 수는 없지요.”
“지당하신 말씀.”
“영국은 청군의 장강 도하를 막고, 남경에 모인 혁명파들이 보전될 수 있도록 힘을 써 주십시오. 혁명파들이 중국 민족주의자들이긴 하지만, 의화단처럼 배외적이지는 않습니다. 그들이 원하는 건 근대화와 서구화지요. 혁명 소식을 듣고 제일 먼저 서양에 지지를 호소한 손문 씨만 봐도 잘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영국이 혁명파에 대해 우려하는 바는, 중화 민족주의자인 혁명파들이 청조가 열강들과 맺은 조약을 취소하고 이권을 회수하는 것이었다. 그런 우려가 사라진다면, 영국은 새 정부를 지지할 용의가 있었다.
“그리고 각 지방의 주도권은 혁명파가 아니라 보수적인 입헌파에 있습니다. 영국이 새 정부를 도우면, 기존의 이권을 갱신하는 데 주저함이 없을 겁니다.”
“좋습니다. 그럼 한국은 무엇을 원합니까?”
“형제지국인 청조가 망하는 걸 막아야지요. 청조가 중국 지배를 상실하더라도, 그들은 고향인 만주로 돌아갈 권리가 있습니다. 몽골과 티베트, 투르키스탄의 합법적인 지배권도 중국인보다는 만주인에 있지요.”
이완용의 복안, 아니 그가 읊고 있는 이선의 복안은 청국의 분할이었다. 느슨한 연방 체제로 구성되는 중국 18성과, 역시 느슨한 동군연합 체제로 구성되는 대청국(만주-몽골-티베트-신강)이었다.
신생 중국의 수도는 남경, 기반은 강남이 되어 그 후견인으로 영국·프랑스·일본이 되고, 북방으로 이전한 청조의 수도는 성경(봉천), 기반은 만주가 되어 그 후견인으로 러시아·한국이 되는 계획이었다.
“흥미로운 복안이군요. 본국 정부에 보고하도록 하지요.”
“좋은 답변을 기대하겠습니다.”
5국 앙당트(협상국) 체제가 힘을 합쳐 중국을 분할하고 후견하자는 계획을, 조던은 흥미롭게 받아들였다. 그는 새삼 옛일이 떠올랐다.
“그런데, 각하는 광서 황제의 신뢰를 꽤나 받으신 분 아닙니까? 황제가 서거한 지 2년도 안 되어 청조의 분할을 논의한다는 게 참 역설적인 일입니다.”
“그렇게 따지면 선제께선 각하도 신뢰하셨지요. 국가의 이익 앞에서, 사적인 친분이 뭐가 대수겠습니까? 약육강식의 시대에, 속이는 사람보다 속는 사람이 더 나쁜 거지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천연덕스럽게 말하는 이완용에게, 조던은 허허 웃음을 흘렸다. 동양에서 수십 년째 근무 중인 조던이 만나 본 그 어떤 동양인 중에서도, 이완용만큼 기계적인 인간은 찾아보기 쉽지 않았다.
“과연 그렇지요. 동맹을 위하여 건배합시다.”
“동맹을 위하여 건배!”
조던과 이완용은 위스키 술잔을 부딪쳤다.
이완용은 위스키를 썩 좋아하지 않았지만, 이때만큼은 달게 넘어가는 듯했다.
황제가 부여한 임무를 그 이상으로 달성하는 게 이완용의 목표였다.
자신이 청국이라는 먹음직스러운 재료를 열강들에게 잘라 주는 요리사 역할을 한다는 게, 이완용으로선 더없이 만족스러웠다.
* * *
한편, 몽골에서는 중국 혁명과 별개로 독자적인 행보에 나섰다.
작년 7월에 이미 독립을 결의했던 몽골 왕공들로서는, 때마침 일어난 중국 혁명으로 청조가 혼란에 빠지자 다시없는 기회로 여겼다.
몽골 불교의 수장인 8대 젬툰담바 후툭투는 비록 티베트 출신이었지만, 초대 젬툰담바 후툭투는 칭기스 칸의 후예인 할하 몽골의 수장 투셰트 칸의 아들인 자나바자르였다.
티베트 불교 교리상 8대 역시 초대 자나바자르의 거듭된 환생이었다. 즉, 8대는 환생을 통해 정신적으로 칭기즈칸의 후예라고 할 수 있었다.
오직 칭기즈칸의 후예만이 칸을 자처할 수 있었으므로, 젬툰담바 후툭투는 몽골인의 칸으로 추대되었다.
「대저 세상에 끝이 없는 것은 없다. 청조의 이러한 상황은 모두 천명이 다했기 때문이다.
우리 여러 몽골족은 모두 하나가 되어 독립을 이룩하고, 황교(黃敎, 티베트 불교)를 부흥시키며, 외세 지배와 고통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 ……」
1912년 1월 28일, 젬툰담바 후툭투의 ‘룬덴(Lünden)’이 선포되었다. 룬덴은 티베트 불교 수장의 조서(詔書) 또는 가르침을 일컫는다.
룬덴의 선포 이후, 몽골 왕공들은 재빨리 독립절차에 들어갔다.
2월 1일, 몽골은 청조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임시정부를 선언했다.
할하(외몽골) 아이막(맹)의 왕공 전원, 내몽골의 일부 왕공들도 대몽골국 선포에 동조했다.
청조는 중국 혁명에 정신이 없어 대응하지 못했으므로, 몽골 주재 청조 판사대신(辦事大臣) 산도는 저항도 해보지 못하고 우르가에서 추방되었다.
1912년 2월 18일, 임자년 정월 초하루. 한겨울의 매서운 날씨에 우르가에 모인 왕공들은 젭툰담바 후툭투를 복드 칸(Bogd Khan), 즉 신성한 칸으로 추대하고, 대몽골국 부활을 선언했다.
“만주족의 압제에서 벗어나, 대몽골국의 재건을 엄숙히 선언하는 바이다!”
“활불(活佛)이신 젭툰담바 후툭투 성하를 전몽골인의 신성한 대칸, 복드 칸으로 추대한다!”
“대몽골국 만세! 복드 칸 만세!”
복드 칸의 즉위식은 칭기즈칸의 즉위식을 전례로 삼았고, 독립 몽골국도 칭기즈칸의 대몽골국 재건을 선언했다.
만주족과 분리된 별개의 국가 선포이자, 칭기즈칸의 영광을 되찾겠다는 믿음이었다.
“즉위를 축하드립니다, 폐하.”
“고맙소, 몽골의 형제이자 귀한 손님들이여.”
즉위식에는 우르가 주재 러시아 영사 라브도프스키, 한국 영사 김규식이 참석했다.
“짐이 솔롱고스(한국)의 형제들을 얼마나 존중하고 있는지, 귀빈께서는 잘 아시리라 생각하오. 짐이 가장 아끼는 주치의도 솔롱고스에서 온 현인이지.”
복드 칸의 주치의는 다름 아닌 만주 페스트 방역의 주역인 이태준이었다.
하얼빈 페스트 국제회의 이후, 몽골에서 이태준을 초빙했다. 이태준은 도착하자마자 몽골에 유행하던 성병을 치료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근대의학에 뒤떨어져있던 몽골인들에게 이태준은 생불로 추앙받게 되었다. 복드 칸은 이태준을 자신의 주치의로 삼고, 몽골 의료 체계 확립의 역할을 맡겼다.
“황공하옵니다, 폐하. 실로 폐하의 신성한 덕이옵니다.”
김규식은 유창한 몽골어로 화답했다.
프린스턴에서 이승만과 함께 박사 학위를 받고 귀국한 김규식은 외무부에 다시 특채되었고, 몽골 주재 영사로 발령받았다.
외국어 습득에 탁월한 재능을 갖고 있는 김규식은 즉시 몽골어를 익혔고, 불교 교리에 대해서도 제법 잘 알고 있었기에 몽골인들의 환영을 받았다.
“오, 형제들이여. 우리 몽골인들은 솔롱고스를 모범으로 삼아 자주독립과 개혁을 쟁취해 나가고자 하오. 귀국 황제 폐하께 짐의 존경을 전해 주고, 부디 많은 조언과 지원을 아끼지 말아 주길 바라오.”
“예, 반드시 그리하겠습니다.”
김규식은 복드 칸에게 경의를 표했지만, 외교적 찬사 외에는 그 어떤 구속적인 약속도 하지 않았다.
러시아와 한국은 일단 청조를 배려해 몽골의 ‘독립’은 승인하지 않았지만, ‘몽골인의 자치’에는 동의했다. 라브도프스키와 김규식의 참석은 국가를 대표한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참석이었다.
화려한 게르(몽골식 장막) 뒤편에서, 김규식과 라브도프스키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대몽골국 선언까지는 몽골인들이 원하는 대로 진행됐지만, 내몽골까지 확대하는 건 막아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청조를 극단적으로 자극할 수 있으니까요. 미래를 생각하면, 만주와 몽골은 반목을 자제하고 동군연합으로 묶여야 합니다. 그래야 장차 거대한 중국에 대응할 수 있지요.”
“좋습니다. 그럼 본국에 보고하고 훈령을 기다리겠습니다.”
중국 혁명이라는 거대한 사건이 펼쳐지는 무대의 장막 뒤편에서는, 청국의 분할이 논의되었다.
과연, 중국 혁명은 동아시아 질서 변혁의 첫걸음이라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