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485
– 166화에 계속 –
2부 166화 자금성의 황혼
혼성 1협은 즉시 행동에 나섰다. 북경의 주요 요충지는 순식간에 정변군에 의해 점거되었다.
“바, 반란입니다! 혼성 1협이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뭐, 뭣이?”
“애신각라 재도를 생포하라!”
“어서 피하십시오, 전하!”
명목상 군자대신(軍諮大臣, 참모총장 격)이자 금위군 대도통인 재도는 허둥지둥 거리다 자금성 안으로 도피했다. 사령관이 이럴진대, 휘하 장교들이 의욕이 있을 리 만무했다.
삽시간에 육군부와 참모처는 모두 정변군에 의해 장악됐다.
“단기서 장군이 북경을 장악했다!”
단기서와 혼성 1협이 요충지를 장악하자, 안휘파의 선동을 받은 혼성 2협도 정변에 동참했다.
그나마 황실에 충성하는 부대는 근위대인 금위군뿐인데, 재도와 장교들이 도피하면서 금위군의 명령 체계는 엉망이 되고야 말았다.
심지어 금위군 내부에서도 정변군과 내통하는 장교들이 있었다. 금위군 사령부도 정변군에 의해 점거되고, 청조에 끝까지 충성하는 일부 장교들만이 부대를 거느리고 자금성으로 달려갔다.
“총리 각하, 우리는 정변군이 아니라 민심이라는 천명을 따르기 위해 궐기한 의군(義軍)입니다. 각하께서는 이해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내각총리대신 이경희와 각료들 대부분도 정변군의 수중으로 들어왔다. 군부에 이어 정부까지 장악된 상황이었다.
“궐기한 장령 40여 인은 연명으로 상소하오니, 황제 폐하의 퇴위와 공화정 선포를 촉구합니다. 오직 황제의 퇴위만이 중국을 분열과 멸망의 위기로부터 구원할 수 있습니다.”
“으음…….”
단기서가 고위 지휘관 40여 명이 연명으로 서명한 상소를 대신들에게 제출했다. 상소문을 읽던 사법대신 강유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꾸짖었다.
“그대들은 황상께 충성을 맹세한 무관이거늘, 어찌 무력으로 국가를 위협하는가? 13년 전, 군사반란으로 변법을 무너트리고 붕괴시킨 수구파 일당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수구파의 기해정변으로 변법의 실패를 경험했던 강유위는 쿠데타라는 방식에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강유위는 광서제의 충신이었고, 그 자신이 헌정을 주도하고 있던 입헌파 거두였기에 혁명을 용납할 수 없었다.
“다르지요! 그들은 역사를 거꾸로 되돌려 의화단과 같은 망종들을 끌어들여 나라를 망쳤지만, 우리는 중국을 멸망으로부터 구하기 위하여 결단을 내렸습니다!”
단기서는 강유위에게 고함을 내지르고, 이홍장의 조카이자 정치적 후계자인 이경희를 설득했다.
“문충공(이홍장)께서는 평생을 청조를 위해 헌신하셨지만, 청조의 몰락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문충공의 헌신에도 돌아온 건 만주 황실의 의심과 경계였습니다. 만주 황실은 거듭된 실정으로 의화단과 같은 참변을 일으켰겠지요. 차라리 문충공께서 일찌감치 궐기하시어 정권을 장악했더라면, 오늘날 중국이 이 지경까지 오지도 않았을 겁니다!”
증국번·이홍장·좌종당·장지동·유곤일 등 양무파 세대만 해도 유교적 세계관이 지배해 청조에 대한 충심을 지켰지만, 근대 민족주의의 영향을 받은 세대는 국가와 만주 황실을 동일시하지 않았다.
“중국을 향한 그대들의 충심은 잘 알겠소. 하지만 정변으로 국가를 뒤엎으려 한다면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오. 모든 일에는 절차가 필요한 법인데…….”
“국가의 운명이 걸린 비상시국이거늘, 어느 세월에 절차를 따진단 말입니까? 장훈이 호북도 모자라 우리의 고향인 안휘와 남경까지 불바다로 만드는 걸 보고 싶으십니까? 내전은 중국을 피폐하게 만들고, 멸망으로 이끌 뿐입니다! 각하, 결단을 내려 주십시오!”
단기서와 안휘파 장교들의 위협에 내각도 결국 정변을 추인하기에 이르렀다.
“잘 알겠소. 여러분의 결의가 담긴 상소문을 자금성에 전달하겠소. 자금성에서 논의가 이뤄지는 동안 무력사용은 삼가 주시오. 유혈사태는 피하고, 평화적으로 해결합시다.”
“우리도 결코 북경의 유혈사태를 원치 않습니다. 각하께서 원만한 중재를 이끌어 주십시오.”
이경희는 내각을 대표해 황실과 군대의 중재에 나서기로 했다. 만주 황실 입장에서는 머리에 총을 겨눈 상태에서 ‘중재’를 받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유혈충돌은 배제하되, 속히 자금성을 포위하고 대포로 경고하라!”
포병사령을 겸하고 있는 단기서는 포병을 동원해 자금성을 향해 포구를 겨누게 했다. 여차하면 당장이라도 대포를 쏠 기세였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경사에서 반란이라니,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자금성의 황족들은 혼란 그 자체였다. 급히 어전회의가 열렸지만, 청 황실의 무능과 지도력 부재가 단적으로 드러날 뿐이었다.
“금위군을 동원해서 당장 정변군을 진압해야 합니다!”
“대체 금위군은 2협이나 되는데 다 어디로 갔소? 왜 성내에 있는 부대라곤 이거밖에 없냔 말이오!”
황족들의 시선이 재도에게 향했다. 북경 육군의 지휘권은 재도에게 있지 않은가?
“군자대신, 대답해 보시오! 그대는 군을 맡았으니 병력 상황을 알 거 아니오!”
공친왕 부위(恭親王 溥偉)가 목소리를 높였다. 양무운동을 주도한 공친왕 혁흔의 손자였다.
“그, 그게……. 제가 직접 지휘를 하지 않아서 잘 모르겠습니다.”
선통제의 황숙(皇叔)이자, 섭정왕의 아우이자, 유럽으로 군사유학을 다녀와 황족 중에선 군사전문가로 통했던 재도였다.
하지만 황숙인 덕에 최고 지휘권을 맡았을 뿐, 실상은 전쟁에 무지한 26세의 애송이에 불과하다는 걸 실토하고 말았다.
“미칠 노릇이군! 대청에 이렇게 인재가 없단 말인가!”
“그나마 인재라는 단기서가 반란을 주도했으니.”
“대체 호북에 있던 단기서는 왜 북경으로 불러들인 거요? 차라리 전선에 있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단기서가 남부 반란군과 내통했다는 풍국장의 고발이 있지 않았소!”
“그러니까 적과 내통한 자를 왜 경사로 소환해서 군직을 맡겼느냔 말이오! 호랑이에게 안방을 내준 격이니…….”
“북양군을 지휘하는 장훈도 단기서를 변호했고, 단기서를 처벌하면 군부의 주류인 안휘파가 일제히 반기를 들었을 텐데, 어떻게 처벌한단 말이오?”
“제기랄, 결국 안휘파가 반란을 일으킨 건 마찬가지 아니오!”
황족들 사이에서 볼썽사나운 입씨름이 벌어졌다. 서로에게 책임전가와 비난이 쏟아졌다.
일곱 살 난 황제는 심각한 분위기를 깨닫지 못하고 옥좌 위에서 혼자 놀고 있었다. 황족들은 아무도 어린 황제를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제3자가 보면 한편의 희극이나 다름없었다.
“누가 일이 이렇게 될 줄 알았나! 애초에 우리 만주인들이 군권을 장악하지 못하고 한인들에게 내준 게 문제지!”
“그래서 열성조께서는 한인들에게 군권을 내주지 않은 건데…….”
“지나간 일을 따져서 뭘 하오? 이미 장발적의 난 이후 군권이 한인들에게 넘어갔는데!”
소수 지배자의 어쩔 수 없는 딜레마였다. 유교적 이념으로 만주 황실에 충성하던 한족들이, 근대 민족주의의 영향을 받아 청조를 ‘외세 강점’이라고 인식하게 된 시점에서, 청조의 중국 지배는 한계에 도달할 수밖에 없었다.
답이 없는 입씨름이 계속되던 중, 내각총리대신 이경희와 각료들이 입궐했다.
“황제 폐하 만세, 만세, 만만세!”
“총리,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오?”
“참모총판 단기서와 장령 40여 인이 연명으로 상소를 올렸습니다.”
“무기를 들고 상소라니, 가당키나 한 소리인가!”
섭정왕 재풍은 단기서와 정변군 장교들이 연명으로 서명한 상소문을 읽었다. 황제 퇴위와 공화정 촉구를 주장하는 상소에 화가 버럭 치밀어 올랐다.
“이 역적놈들! 여태껏 황은을 입고 황실의 녹을 먹었으면서, 남부 반란군에 부화뇌동해 이따위 망발을 부려!”
“섭정왕 전하!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저 역도의 무리들은 이미 경사를 장악했습니다. 저들은 대포를 자금성을 향해 겨누고 있습니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대포가 자금성에 겨누어져 있다니, 전쟁 경험이 없는 만주 황족들은 패닉 상태에 빠졌다.
“이, 일단 저들과 타협을…….”
“역적과 타협은 무슨! 전하, 북양군을 속히 회군시켜 역적들을 진압하게 하소서!”
“북양군은 저 멀리 회하에 있고, 반군은 지척에 있소. 북양군이 오기 전에 자금성이 대포로 두드려 맞으면 무슨 의미가 있소!”
“금위군이 목숨 걸고 싸우면 버틸 수 있습니다!”
전 총리대신, 숙친왕 산기가 결사항전을 부르짖었다. 하지만 각료들이 뜯어말렸다.
“안 됩니다! 정녕 황상께서 계신 자금성을 불바다로 만들려 하십니까?”
“단기서 일당은 주저하지 않고 대포를 쏠 겁니다!”
“자금성을 내주고 천도 항전하는 한이 있더라도, 역도들에게 굴복하면 안 됩니다!”
결단을 내려야 할 섭정왕 재풍도, 경험이 부족한 30세의 젊은이에 불과했다. 그에게 자금성을 버리고 항전을 이어 나갈 용기는 없었다.
“단기서 일당의 요구를 들어 보겠소. 안전을 보장할 터이니 입궐하라 하시오.”
단기서와 장교 40여 인은 정변군을 이끌고 자금성에 입궐했다. 대포가 자금성에 겨누어진 상황에서, 자금성 내의 금위군도 저항을 포기하고 순순히 길을 열어 주었다.
“황제 폐하 만세, 만세, 만만세!”
단기서는 아직까지 신하임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듯, 고개를 조아리며 만세를 외쳤다. 하지만 절은 하지 않았다.
“역적놈아! 네놈이 황제의 치세를 무너트리고 있는데, 무슨 만세 타령이냐!”
“말을 삼가라! 우리는 중국과 대청 황실 모두를 보호하고자 궐기하였지, 다른 뜻은 없다!”
“보호라니, 그 무슨 가당치도 않은!”
금위군의 만주족 청년 장교 양필(良弼)이 단기서를 향해 삿대질을 했다. 양필은 군주입헌유지회를 이끌며 공화정에 반대했다. 단기서가 가소롭다는 듯이 양필을 노려보자, 재풍이 제지했다.
“그래, 그대들이 원하는 게 대체 뭔가?”
“먼저 고사(古史)를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지금으로부터 꼭 두 갑자 전인 임자년, 법국에서는 인민의 혁명이 발발했습니다. 국왕 루이 16세는 외세와 손잡고 혁명을 진압하려다 결국 체포되어 감금되었지요. 공화국이 선포되었고, 루이는 반란 수괴가 되어 재판을 받았습니다.”
단기서는 꼭 120년 전인 1792년 프랑스 공화국 선포와 루이 16세 재판을 언급했다.
“결국 어제의 국왕 루이는 사형 선고를 받고 끌려 나가,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단두대에서 목이 잘려 죽었습니다.”
“네 이놈! 이 무도한 역적놈! 감히 여기가 어느 안전이라고 그따위 겁박을 하느냐? 감히 황상을 참수당한 법국 왕에 빗대느냐!”
숙친왕 산기도 분노를 참지 못하고 욕설을 내뱉었다. 황족들 사이에서 분노가 팽배했지만, 단기서는 여전히 냉소적인 태도로 말했다.
“민심과 천명을 잃은 군주의 최후란 그토록 비참하니, 신은 오직 그런 상황을 막고자할 뿐입니다. 내전이 지속되어 백성의 피해가 커지면 그 분노가 어디로 향하겠습니까?”
단기서의 협박은 말만이 아니었다. 이미 군사력으로 북경을 장악하고, 포구를 자금성에 겨누고 있었다. 만약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유혈사태는 피할 수 없으리라.
재풍은 한숨을 푹 쉬더니, 결단을 내렸다.
“반란군, 아니 중화민국 임시정부와 화의를 재개하도록 하겠네. 그럼 되겠나?”
“그에 앞서 북양군에 즉시 공세 중단 명령을 내리고, 현 전선을 유지하라고 하십시오. 이미 신이 북양군에 전보를 보냈습니다만, 황제 폐하의 칙명이 있어야겠지요.”
“……그리하겠네.”
청조는 저항을 포기했다. 북양군을 이끄는 장훈은 충성스러웠지만, 안휘에 있는 북양군이 북경까지 오기도 전에 자금성이 불바다가 될 상황이었다.
“단기서, 이놈이 감히 황상을 배신해! 내가 이런 놈을 믿고 북경을 맡겼으니!”
합비 전선에서 정전 명령을 받은 장훈은 분통을 터뜨리며 전문을 갈기갈기 찢었다.
“내 당장 북양군을 몰고 가 저 역적놈들의 머리를 날려 버리고 싶구나!”
마음은 당장이라도 북경으로 달려가 반란을 진압하고 싶었지만, 이미 대세가 기울어진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북경 정변 소식에 북양군의 군심도 크게 흔들렸다.
“총독 각하! 남북화의에서 유리한 조건을 얻어 내려면, 북양군이 건재해야 합니다. 지금은 전투를 벌일 때가 아닙니다.”
“크윽……. 폐하, 불민한 신의 어리석음을 벌하여 주시옵소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장훈은 분노를 삼키며 정전 명령을 받아들였다.
“북경에서 정변 성공! 단기서 장군이 북경 장악!”
“중화민국 만세! 애국적 신군 만세!”
북경 정변에 뒤따른 정전 명령과 화의 재개. 남경의 중화민국 임시정부는 축제 분위기였다.
신군의 봉기가 각지에서 벌어져 민국이 수립됐지만, 이번만큼 결정적인 사건은 없었다.
“단기서가 중국을 위해 큰일을 했소. 만약 그가 청조의 중국 지배를 끝낸다면, 나는 대총통 직도 넘길 수 있소.”
“대총통 각하, 그 무슨 말씀이십니까! 중화민국을 이끌 수 있는 건 오직 대총통뿐이십니다!”
손문은 대총통 지위에 얽매이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시급한 건 청조의 중국 지배를 끝내는 것이었다.
정변 4일 후, 4월 6일.
남북화의가 재개되었다. 북경이 안휘파 군벌에게 장악된 상황이었으므로, 청조의 협상대표 당소의도 민국의 요구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당 공, 민국의 요구를 받아들이더라도, 결코 만주와 변강은 민국에 넘겨선 안 됩니다. 열강은 민국 정부의 중국 지배를 승인하겠지만, 특히 러시아는 결코 민국의 만주 지배를 용인하지 않을 겁니다. 만약 그리되면 대한도 대청 황실을 형제로서 지지하고 보호할 겁니다.”
주청 한국공사 이완용은 당소의에게 ‘조언’을 했다. 당소의는 주한 청국공사를 지낸 바 있었으므로 이완용과도 친분이 있었고, 한국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공사의 조언을 염두에 두겠습니다.”
청조가 중국 18성에서만 지배권을 포기하면 된다는 민국 정부의 입장과 달리, 강력한 중국을 꿈꾸는 단기서는 만주와 주변부도 포기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단기서의 복안대로라면, 대청 황실은 퇴위하여 외국 군주의 예로 존중받되 청조의 모든 지배권을 신생 중화민국에 넘겨야 했다.
이는 열강, 특히 대한제국과 러시아가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이었다. 만약 그리된다면 군사력 동원까지도 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현실적으로 신생 중화민국이 청조의 모든 영토를 계승하는 건 불가능했다. 내우에 외환이 겹친다면 더 끔찍한 일이었으므로, 당소의는 현실적인 협상안을 들고 갔다.
268년 청조의 중국 지배는 종말이 임박했다.
청조의 중국 지배를 상징하는 자금성에, 황혼이 저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