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492
– 173화에 계속 –
2부 173화 왕족의 혼례
2차 한러협약이 체결되어, 대한제국 사절단의 임무도 종료되었다. 올림픽 폐막 이후 러시아에 온 대표선수단과 함께 귀국을 준비했다.
이영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떠나기 전, 만나야 할 사람이 있었다.
“대공 전하, 어서 오십시오.”
“감사합니다, 장군.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따님을 뵙고 가도 되겠습니까?”
“하하. 실례라니요. 전하의 방문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이영은 영국에서 체류하는 5년 동안, 여름방학이 되면 러시아를 방문해 안드레이 브론스키 장군의 저택을 방문했다. 봉천 전투의 영웅인 브론스키 중장은 육군참모본부에서 군제개혁의 중책을 맡고 있어, 이영은 명목상 군사 시찰의 핑계를 대고는 했지만, 물론 목적은 그게 아니었다.
“아나스타샤 안드레예브나!”
“오셨습니까, 전하.”
이영은 아나스타샤와 정중하게 인사를 나눴다.
20대의 숙녀가 된 아나스타샤는 더욱 아름다웠다. 10대 시절에는 발랄한 미소녀란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성숙한 미녀의 느낌이었다. 동양에서 온 왕자는 새삼 그녀의 미모에 감탄했다.
“전하, 너무 오래 쳐다보시는 거 아니에요?”
“아, 실례했습니다.”
이럴 때 이강이라면 ‘당신이 너무 아름다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운운했겠지만, 이영에게는 그럴 용기가 없었다.
말재주가 없는 건 아니었다. 이영은 엘리트가 모인 케임브리지에서도 최고 엘리트인 사도회에서 활동했고, 그의 토론 실력은 일취월장했다. 하지만 유독 여인 앞에서는 말재주가 사라져 버렸다.
놀랍게도, 두 사람은 지난 5년간 진도가 거의 나가지 않았다. 매년 여름마다 만났음에도, 두 사람의 관계는 여전히 ‘친구’였다.
이영이 아나스타샤에게 반했다는 건, 당사자는 물론이요 그 가족들도 아는 사실이었다.
“올해는 대공께서 특별한 말씀이 없으셨느냐?”
“음, 내년 여름이면 학위를 마친다는 거?”
“아니, 너와의 관계에 대해서 말이다.”
“아버지, 그분은 그런 말을 할 줄 몰라요.”
“허! 똑똑해 보이는 청년 같던데, 왜 그러는지 모르겠군.”
작년 여름에도 이영은 아나스타샤를 만나고 갔다.
이번에는 진도가 나가기를 바랐던 브론스키가 혀를 찼다. 금지옥엽처럼 키운 외동딸이었다. 어느덧 결혼 적령기가 되어 혼인을 청한 청년들이 한둘이 아니었건만, 아나스타샤는 전부 거절했다. 브론스키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기에, 딸을 재촉하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다.
“혹시 고국에 약혼자가 따로 있는 거 아니냐? 동양에서는 부모가 결혼을 정해준다면서. 더군다나 황족이니 말할 것도 없겠지. 설마, 너를 일시적인 유희거리로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아버지, 제발! 그분은 제가 허락하지 않으면 손목도 잡지 않아요. 얼마나 조심스럽게 저를 대하는지, 마치 도자기 인형 대하는 거 같다니까요.”
“……지난 4년 동안 손목 잡은 게 전부라고? 같이 무도회 간 적도 있지 않았니? 자연스럽게 몸을 밀착하게 될 텐데?”
“당연히 춤만 한번 추고 끝났죠. 그조차도 얼마나 조심스러워하던지. 그 이상은 바라지도 마세요.”
“귀족 영애라서 조심스럽게 대하는 건가? 아니면 동양 예법이 그런 건가?”
“저뿐만 아니라 어느 여인을 데려다 놔도 그래요. 하녀한테도 얼마나 조심스러워 하는데. 아마 영국에서도 다르진 않았을 거예요.”
“……점잖은 건지, 모자란 건지 모르겠다. 동양인이라 그런가?”
아나스타샤도 왕자가 뭘 원하는지 몰랐다. 이영의 나이 어느덧 만 25세, 아나스타샤도 23세였다. 한국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러시아에서도 여인의 결혼 적령기를 지나고 있었다. 친분을 맺은 지 어느덧 5년, 결론이 나야 할 시기였다.
“한국으로 귀국하게 됐어요. 8월에 개국기념일이 있고, 9월에는 태상황 폐하의 환갑이시라.”
“5년 만에 귀국하니 기쁘시겠네요.”
“음, 그렇죠. 하지만 유럽으로 다시 돌아오고 싶어요.”
“그러시군요. 이유는요?”
이영은 잠시 생각을 했다. 그는 자신의 처지를 알고 있었다. 황형은 자신을 아낄지 몰라도, 일부 종친과 신료들이 경계하고 있다는 것을. 조카들이 장성할 때까지, 자신은 해외를 떠돌아야 했다.
이런 이야기를 아나스타샤에게 할 순 없었다. 결국 그는 이런 대답을 했다.
“아직 공부할 거리가 많이 남아 있어요. 대학원까지 공부해 보면 좋을 거 같아요.”
“……그렇군요.”
빈말이라도 ‘당신을 보고 싶으니까요’ 이런 말을 할 줄 모르는 왕자였다. 그래도 아쉽다는 말은 했다.
“정확히 언제 다시 오게 될지 모르겠어요. 황제 폐하의 허락이 있어야 하니까. 음, 귀국하기 전에 좀 더 많이 만났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게요, 3주나 체류하시면서 만난 건 손에 꼽네요.”
“올해는 외교사절로 온 거니까요. 공무수행 중에 사사로운 만남은 가급적 자제해야죠.”
하여튼 엄청나게 성실한 왕자였다. 이강은 외교를 하는 와중에도 만날 사람은 다 만나고 다녔다. 언제나 처신을 조심히 하는 이영은 ‘본국에서 책잡힐 행동’을 하지 않았다.
“음, 공무라면 저도 요새 좀 해요.”
“어떤 공무요?”
“전러시아 여성 평등동맹에서 활동해요.”
“여성 참정권 운동 말인가요?”
이영은 놀라움을 표했다. 자유주의 정당인 입헌민주당원 아리아드나 투르코바(Ariadna Tyrkova)가 이끄는 ‘전러시아 여성 평등동맹’은, 주로 교육을 받은 진보적 여성들을 중심으로 참정권 운동을 했다.
“핀란드에서는 여성 참정권을 부여해서, 의회 의원들도 다수 배출했죠. 하지만 러시아에서는 아예 막혀 있어요. 러시아는 선거법 자체가 왜곡되어 있으니, 보통선거권 운동하고도 병행하고 있죠.”
1906년 혁명 이후, 러시아제국의 자치국인 핀란드는 유럽 최초로 여성 참정권을 인정했고, 20명의 여성 의원을 배출했다. 당대에는 놀라울 정도로 혁신적인 조치였다.
“그, 장군께서는 아무 말씀도 안 하시나요?”
“당연히 아버지한테는 비밀이죠. 친구들과 함께 예술협회에서 활동하는 걸로 해요. 물론 전하도 비밀을 지켜주셔야 해요.”
“네, 물론이죠.”
아나스타샤가 아버지에게도 말하지 않는 비밀을 공유한다는 사실에 이영은 묘한 만족감을 느꼈다.
“영국에서는 서프러제트 운동이 활발하죠?”
“그렇죠. 근래 아주 심해졌어요.”
영국의 여성 참정권 운동인 서프러제트(Suffragette)는 강성 노선을 타면서, 투쟁이 과격화되었다. ‘점잖은’ 영국 신사들은 서프러제트를 보면서 혀를 찼다.
자유주의자와 사회주의자들은 대개 보통선거권의 대의에 동조했으므로, 여성 참정권도 지지하는 입장이었다. 다만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면, 노동계급 여성을 배제한 부르주아 운동이었다는 점이었다.
즉 백인-귀족-부르주아-고학력 여성을 대상으로 한 참정권 운동이었다. 하층계급 여성은 관심 밖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특히 러시아처럼 신분격차가 심한 나라는 더했다.
당대에 가장 유명한 여성 정치가인 로자 룩셈부르크는 이렇게 지적했다.
「‘남성 특권’에 맞선 투쟁에서는 사자처럼 행동하는 부르주아 여성들은, 대부분 참정권을 얻고 나면 보수적이고 종교적인 반동 진영의 유순한 양이 될 것이다.」
전러시아 여성 평등동맹도 부르주아 자유주의 정당인 입헌민주당과 연합 관계라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자유주의적이고 애국주의적이었으나 사회주의와 급진주의에는 반대했다.
실제 역사에서도 이들은 2월 혁명 이후에 여군 부대를 창설하여 임시정부를 옹호했고, 볼셰비키 혁명에 격렬히 반대하여 백군을 지지했다.
“그런데 좀 위험하지 않나요? 정부에서 탄압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뭐, 헌법 제정 이후에도 집단적으로 정치적 목소리를 내는 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탄압하니까요. 그래서 가끔 러시아를 떠나고 싶을 때가 있어요. 전제정이라면 지긋지긋해요. 자유로운 파리나 런던으로 갈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이영은 새삼 귀족이자 장군의 딸인 아나스타샤가 대단하게 보였다. 자신이 반한 건 그녀의 외모뿐만이 아니라 진보성이라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었다.
어쩌면 집안 내력일지도 몰랐다. 이선도 독립운동가이자 사회민주주의자인 마르가리타와 사랑에 빠지지 않았던가?
“내년에, 나와 함께 가지 않겠어요?”
“네?”
“내년에 다시 유럽으로 올 겁니다. 그때 나와 함께 같이 가길 바랍니다. 파리, 런던, 로마, 베를린, 빈. 어디든 좋습니다. 함께 가요.”
이영은 마침내 용기를 내어 자신의 마음을 드러냈다. 직접적인 프러포즈는 아니었지만, 간접적으로 자신의 마음을 드러낸 것이었다.
“진심이신가요?”
“진심입니다. 나는 당신과 함께 가고 싶어요.”
이영은 좀 더 직접적으로 말했다.
“말씀은 고맙지만, 전하의 나라에서 허용하겠어요? 전하는 황위계승권이 있는 황족이지만, 저는 외국인에 백작가문에 불과한데요.”
러시아에서도 황족이 귀족과 결혼하면 귀천상혼(Morganatic marriage)이라 하여 무시당했다. 미하일 대공이 차르와 갈등을 빚는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내가 설득할게요. 형님, 황제 폐하라면 이해해주실 겁니다!”
오래전, 이강이 미국 배우와 결혼하겠다는 건 뜯어말린 이선이었지만, 이영은 다르리라는 기대가 있었다.
외국 여인과 결혼하면 보수적인 종친들은 노발대발할 거고, 자신은 자연스럽게 계승권에서 멀어질 것이다. 이영은 더 이상 눈치 보지 않고 외국에서 자유롭게 살고 싶었다. 물론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
“약속하시는 거죠?”
“맹세할게요.”
이영은 아나스타샤가 내민 십자가에 입을 맞췄다. 이영은 기독교도가 아니었지만, 신에 대한 맹세의 의미였다.
먼저 러시아 여인과 결혼한 이위종에게, 이영은 이런저런 조언을 들었다. 문화 차이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 어떤 말과 행동을 해야 하는지.
하지만 사랑은 교육만으로 될 일이 아니었다.
“십자가에만 입을 맞출 건가요?”
“아, 안 되나요?”
‘미혼의 규수에게 어찌 망측한 짓을 하겠는가!’
이영도 남자인데 왜 생각이 없겠냐마는, 그는 유교적 예법을 어릴 적부터 체화했다. 궁중 예법은 말할 것도 없고, 어머니도 유학자 가문의 여인답게 교육을 철저히 했다. 그러니 유럽에 와서 서양 학문을 익힘에도, 그 행동의 근본은 달라지지 않았다.
아나스타샤는 빙긋 웃으면서 손을 내밀었다. 얼굴을 들이밀기에는, 이영이 너무나 순진해서 그 자리에서 돌처럼 굳어 버릴지도 몰랐다.
이영은 허리를 깊게 숙이고 그녀의 하얀 손에 입을 맞췄다.
“반드시 아가씨에게 돌아오겠습니다.”
“전하께서 돌아올 날을 기다리겠습니다. 그리고 함께 떠나요.”
두 청춘남녀는 서로의 손을 한참 동안 꼬옥 붙잡고 있었다.
* * *
광무 16년 8월.
조선 개국 520주년과 태상황의 환갑을 맞이하여, 대한제국에서는 한창 축제분위기였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귀국한 이영과 대한제국 사절단은 개국기원절인 8월 14일 이전에 황성에 도착할 수 있었다.
“신 이영, 학업과 공무를 마치고 귀국하였습니다. 폐하께 삼가 복명(復命)합니다.”
“노고가 많았다. 논문 우등상을 받았다지? 네 총명함은 대한의 자랑이다, 하하.”
이선은 이영의 귀국을 기쁘게 맞이했다.
“학무대신, 러시아와 협상을 성공적으로 마쳐 기쁘게 생각하오. 경에게는 앞으로 더욱 중책을 맡기고자 하오.”
“황공하옵니다. 신은 견마지로를 아끼지 않겠습니다.”
“안 정령, 귀관은 대한의 국위를 세계만방에 빛냈네. 이에 짐은 귀관에게 정령 특진과 태극장 1등을 수여하기로 결정했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황제의 치하에 이상설과 안중근은 고개를 깊이 숙였다.
“영아, 넌 아직 막내를 보지 못했지? 예쁜 아이다.”
“아, 소식은 들었습니다. 감축드립니다, 폐하!”
6월, 황후 아영은 공주를 출산했다. 이선에게는 나이 마흔다섯에 얻은 막둥이 딸이고, 16세가 된 맏이 이진에게는 한참 어린 막냇동생이었다.
“아비가 된다는 건, 언제나 그렇듯이 책무가 막중한 법이다. 천방지축 같던 의친왕도 혼례를 올리고 나니 좀 진중해지더구나.”
이강도 어느덧 30대에 이르자, 결국 황실 어른들의 채근을 못 이겨 혼례를 올렸다. 부인 김씨가 임신하여 가을에 출산 예정이었다.
“네 나이 스물여섯이니, 슬슬 혼인을 염두에 두어야겠지. 태상황과 황태후 양전(兩殿)께서도 네가 혼인을 올릴 날을 기다리고 계시다.”
이영은 속으로 뜨끔했다. 형은 자신을 이해해줄 것 같지만, 부모님은 대체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고민이었다.
“그럼 오늘은 네 귀국을 축하할 겸, 황궁에서 함께 만찬을 하도록 하자꾸나.”
“삼가 명을 받들겠사옵니다, 폐하.”
이선은 이제 3남 3녀의 아버지였다. 그는 가정적으로도 행복한 사람이었다.
“황후, 우리 막둥이가 참으로 예쁘구려.”
“예, 참으로 복스럽게도 생겼습니다.”
갓 태어난 작은 아이가 잠든 채로 손발을 꼬물거렸다.
자식은 누구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사랑스럽지만, 막내는 더욱 사랑스러웠다.
“이 아이는 오라비들과 언니들이 있으니 든든하겠소.”
“예, 모두 기뻐하고 있사옵니다.”
황후 소생의 진, 희, 은과 마르가리타 소생의 안, 라. 모두 건강하게 자라고 있었다.
“이제 황자 진도 열여섯이니, 성년에 준하는 나이가 되었소. 정식으로 태자로 책봉할까 하오.”
“실로 나라의 경사이자 홍복이옵니다, 폐하!”
광무 12년에 제정한 황실전범에 따라, 적장자인 이진은 이미 황위계승 서열 1위였다.
다만 정윤(正胤)으로 지칭될 뿐 정식 태자 책봉은 미루고 있었는데, 어릴 적부터 태자로서의 무거운 책무를 짊어지게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었다.
황실전범에서 규정한 법적인 성년은 만 18세였으나, 조선에서는 관례적으로 16세가 되면 성년으로 규정하였으니, 태자 책봉에 적당한 시기였다.
“은과 안도 친왕으로 책봉해야 하지 않겠소?”
“황자인 이상 친왕으로 책봉됨이 마땅합니다.”
올해 11세인 이안, 7세인 이은도 친왕 책봉이 결정되었다.
적자-장자 우선 원칙이 적용되어, 계승 서열은 이진, 이은, 이안, 순친왕 이척, 영친왕 이영, 의친왕 이강의 순으로 이어졌다.
“금년 개국기원일에 태조 고황제와 열성조께 고하옵고, 황태자와 친왕의 책봉례를 행하도록 하겠소.”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태자와 친왕 책봉은 국가의 경사였다. 모두가 기뻐했지만, 마르가리타는 수심에 가득 찼다.
“안을 친왕에 책봉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겁니까, 폐하?”
“황제의 자식인 이상, 친왕으로 책봉되는 건 당연한 수순이오. 어찌 그러시오?”
“이 아이는 지금껏 주목을 받은 바가 없는데, 친왕으로 책봉되면…….”
이안의 존재가 공공연한 비밀이긴 하지만, 이제 황실의 일원이 되어 만인의 주목을 받을 터였다.
과연 보수적인 한국인들이 서양 혼혈 왕자를 받아들일까? 마르가리타는 걱정이 되었다.
“모친이 누가 되었건, 황제의 자식은 다르지 않소. 누가 감히 친왕에게 무례하게 대하겠소? 만약 그런 자가 있다면, 내가 용납지 않을 것이오.”
이선도 마르가리타의 걱정을 이해했다. 일부 보수적인 종친과 유림들이 안을 꺼려한다는 걸, 이선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욱 친왕으로 책봉하여 존엄을 갖춰야 했다.
“대한이 크게 변화했거늘, 황실이라고 변화하지 않겠소? 이제 외국 여인과 결혼하고, 자식을 보아도 이상하지 않은 시대가 오게 될 것이오.”
때마침 막내아우 이영이 러시아 여인과 결혼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건, 이선도 알고 있었다. 그 입장에서 반가운 이야기였다.
이선은 유럽 왕실처럼 외국 왕실들과 통혼하는 방향을 고려했다. 주변국들, 즉 러시아, 청국, 일본 모두 고려 대상이었다.
왕족으로 태어난 이상 완전히 자유로운 혼인은 불가하겠지만, 적어도 국적의 제한은 풀어두고자 했다.
이는 개정될 황실전범에 추가될 내용이었고, 이영은 첫 번째 수혜자가 될 예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