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5
– 5화에 계속 –
5화 대원군(大院君)
“네가 아팠다고 해서 걱정했느니라. 너는 주상의 장자이자 내 맏손자이니만큼, 그 역할이 중하다. 네게는 아플 여유도 없다는 걸 명심하거라.”
대원군이 애정을 담아 말하니, 이선도 화답했다.
“제가 이날까지 건강히 자랄 수 있었던 건 모두 할아버님의 덕분입니다.”
“그리 말해 주니 좋구나. 암, 자식이라면 마땅히 아비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지.”
대원군은 여러모로 뼈가 있는 말을 하며, 창덕궁 쪽을 쳐다보았다.
“주상께서는 이 아비의 생일을 맞이하여, 아무 전교(傳敎)도 없으신가?”
“예, 올해는 좀 늦으시는 모양입니다. 창덕궁에 사람을 보내볼까요?”
이재면이 안절부절못하며 답했다.
아무리 부자 관계가 나쁘다지만, 조선은 유학을 근본으로 삼은 효의 나라.
그렇기에 임금이 직접 대원군에게 인사를 드리진 않더라도, 매년 명절이나 생일이 되면 빠짐없이 승지를 보내 문안하고 예물을 바치게 했다.
그런데 올해는 승지의 문안도, 예물도 당도하지 않았다. 불효라고 해도 할 말이 없었다.
“되었다. 동궁전의 환후가 걱정인데, 이 늙은 아비가 눈에 들어오기나 하겠는가?”
대원군은 냉소적으로 답했다.
“할아버님, 세자 저하의 환후는 어떠한지요?”
이선은 이미 상황을 짐작했지만, 태연하게 물었다.
“글쎄, 이 늙은이도 궁에 못 들어간 지가 꽤 돼서 말이야. 동궁전은 어떠하신가?”
대원군이 이재면에게 물었다. 아버지와 동생 사이에서 중재해 보려고 노력하는 이재면으로선, 두 사람의 대립이 곤란하기 짝이 없었다.
“양전께서 힘써 기도를 하신 덕인지 많이 좋아지셨습니다. 곧 쾌차하실 겁니다.”
“너도 참 실없구나. 두창(痘瘡) 치료를 어의가 하지, 임금과 중전이 하느냐? 두창은 무서운 병이다. 어찌 기도로 통하리오.”
대원군은 더욱 냉소적인 태도였다.
중전 민씨는 4남 1녀를 낳았지만, 세자 한 사람을 제외하고 모두 돌을 넘기지 못하고 요절했다. 자식을 잇달아 잃은 중전의 충격이 큼은 당연했다.
그나마 하나 남은 세자조차도 병약하여 병치레를 앓고 살았다. 그럴수록 세자에 대한 중전의 집착은 강해졌고, 세자와 관련된 일이라면 아낌없이 돈을 썼던 것이다.
중전이 세자의 병을 낫기 위해 궁에서 매일 대규모 기도회를 열고, 무당을 각지의 명산으로 보내 쾌유를 축원한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미신과 낭비를 싫어하는 대원군으로서는 가소로운 일이었다.
“그만큼 세자 저하에 대한 중전마마의 사랑이 커서 그런 것이 아니겠사옵니까? 할아버님께서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옵소서.”
일부러 중전을 옹호하듯이 말하는 이선의 말에 대원군이 웃었다.
“훌륭한 말이다. 하지만 너도 주상의 아들이요, 중전의 아들이 아니더냐? 네가 아픈 동안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오직 세자에게만 열중하니 딱한 노릇이다. 너는 섭섭하지도 않으냐?”
후궁의 자식도 법적으로는 중전의 자식이었으니, 이선의 법적 어머니는 영보당이 아니라 중전 민씨였다.
“제 병은 가벼운 열병에 지나지 않았는데, 어찌 중병을 앓고 있는 세자 저하와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 중병이지. 대군이 벌써 셋이나 갔는데, 만약 세자까지 잘못된다면 이는 왕실의 비극이다. 결단코 있어서는 안 될 일이지.”
대원군은 무거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하지 않으냐? 완화군은 이리 건강하고 총명하게 자라는데, 어찌 유독 대군들만 이리 허약하단 말이더냐. 아비에게는 문제가 없고, 어미에게 문제가 있다는 뜻이겠지. 이 나라 조선에는 강건한 군주가 필요하거늘…….”
‘아 할아버지, 제발 그러지 마십쇼.’
이선은 내심 고개를 저었다. 대놓고 왕재(王才)로 완화군이 중전의 소생보다 낫다고 하는 말이었다. 둘만 있기에 망정이지, 누가 들으면 큰일이었다.
“양이(洋夷)와 왜적이 이 나라를 넘보고 있는데, 이 나라는 나날이 국운이 쇠하고 있구나! 이 일을 어찌하면 좋을꼬!”
본래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대원군이지만, 오랜만에 본 손자 앞에서 거침없이 시국을 비판했다.
“원산을 개항하고, 서양 국가들이 조약을 요구함을 말씀하시옵니까?”
이선의 말에, 대원군은 뜻밖이다 싶었다.
“네가 나랏일에 관심이 있느냐?”
“저도 조선의 신하이거늘, 어찌 모르고 지낼 수만 있겠습니까. 근래 조보(朝報)를 읽으며 세상 돌아가는 걸 살피고 있나이다.”
이선이 안영흠을 시켜 조보를 구해서 읽은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내 지식이 조보에서 비롯된 건 아니지.’
1876년, 흔히 강화도 조약이라고 불리는 조일 수호 조규(朝日修好條規)가 체결되었다.
조규에 따라 부산이 개항되었지만, 일본이 요구했던 원산과 인천의 개항, 한성 주재 일본 공사관의 개설은 조선 조정의 반대로 계속 연기되었다.
1879년 가을, 일본 측의 거듭된 요구로, 원산 개항에 합의했다. 대원군과 보수파는 거듭 반대했지만, 조정은 1880년부터 원산을 개항함을 확정했다.
그 무렵, 청나라 북양 대신(北洋大臣) 이홍장(李鴻章)이 영중추부사 이유원(李裕元)에게 서찰을 보내 조선의 개국을 권유했다. 일본의 조선 침투를 우려한 이홍장은, 조선이 서양 각국과 조약을 맺어 일본의 영향력을 줄이고자 했다.
이홍장이 친분이 있는 이유원에게 개인적으로 보낸 서찰이라고 하나, 이는 청나라 최고 실력자인 이홍장이 조선 조정에게 보내는 수교 권유문이나 다름없었다.
조정에서는 서양 국가들과의 수교를 두고 격론이 벌어졌다. 임금은 보수파의 눈치를 보느라 ‘서양과의 교류는 없다.’고 선언했지만, 내심 이홍장의 권유대로 서양 각국과의 수교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그럼 네 생각은 어떠하냐?”
“소손이 어찌 할아버님 앞에서 감히 정세를 논하겠습니까?”
이선이 겸손히 답하니 대원군이 껄껄 웃었다.
“개의치 말고 말해 보라.”
“서양의 힘은 실로 막강하다 들었습니다. 청국이 북경을 빼앗기고 황제가 열하로 몽진했던 게 벌써 20년 전 일입니다. 그동안 청국은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이는 데 힘을 썼다고 합니다. 일본은 더욱 적극적으로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여, 저들의 복식과 병선을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세계의 추세가 이러한데, 어찌 조선만이 작은 세계 안에서 안온히 있기만을 바라겠습니까. 청국과 일본이 그러하였듯, 우리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여 서양에 대적해야 합니다.”
이선은 마치 오래 생각했던 것처럼 술술 말했다.
당연하게도, 대원군과 반대되는 입장이었다.
“누가 네게 그렇게 가르치더냐?”
대원군은 의외다 싶었다. 완화군이 언제 외국에 대한 관심을 가졌단 말인가.
“제 스스로 조사하여 생각해 둔 바입니다.”
“혹여 네가 환재(瓛齋)의 무리들과 같이 어울리느냐?”
환재, 즉 전 우의정 박규수(朴珪壽)를 일컫는 말이었다. 박규수는 3년 전에 작고했지만, 박규수에게 사숙(私塾)하던 제자들이 조정에 진출하여 초기 개화파를 형성하던 참이었다.
“제가 박규수 선생을 직접 뵌 적은 없습니다만, 그분의 가르침은 독보적이라 생각하옵니다.”
“허, 환재가 북촌의 애송이들 머리를 바꾸어 놓았다더니, 내 손자까지 물들일 줄이야.”
“오해이십니다. 저는 아무와도 교류하지 않았습니다.”
“됐다. 네 말하는 걸 보니 환재의 무리들과 똑같은데 뭐가 아니라는 게냐.”
하지만 대원군은 딱히 역정은 내지 않았다.
“환재의 식견은 나 역시 높이 평가하는 바이다. 내가 조정에 있던 무렵, 그만한 식견은 가진 이가 또 없었지.”
대원군은 박규수를 조정에 발탁하고 중용한 인물이지만, 개항을 바라보는 관점은 달랐다.
“그러나 조선은 청국이나 일본과 다르다. 양이는 탐욕스럽기 그지없다. 저 청국조차 양이를 상대하지 못해 그런 치욕을 당했는데, 우리가 스스로 문을 열면 저들이 조선을 집어삼키고야 말 것이다. 지금 조선에 필요한 건 내정의 개혁과 군비의 확장이다. 그런 연후에야 저들을 능히 상대할 수 있다. 작금의 허약한 조선으로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
대원군은 결코 꽉 막힌 쇄국파가 아니었다. 현실주의자인 대원군은, 대국인 청나라마저 무너트린 서양의 힘에 전율했다. 그럴수록 더욱 저들과 교류해서는 안 되고, 먼저 시간을 들여 서양과 상대할 힘을 키우자는 것이었다.
병인양요와 신미양요에서 프랑스와 미국의 원정군을 격퇴하여 조선의 힘을 보여 줬다고 믿은 대원군은, 겨우 일본군 선박 한 척에 문을 열어젖힌 임금과 조정에게 크나큰 불신과 경멸을 갖고 있었다.
‘역시 대원군과는 당장 말이 통하기 어렵겠군.’
아마 이선은 현재 조선에서 가장 급진적인 문명 개화론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였다.
‘확고하고 철두철미한 조선의 근대화가 내 목표다. 부국강병, 식산흥업, 국민 국가. 오직 이것만이 조선을 지켜 내리라.’
하지만 그런 실체를 지금의 조선에서 바로 드러낼 수는 없었다.
‘흠, 이쯤 해 둬야겠다. 대원군과 논쟁한다고 해서 60 먹은 노인네의 생각을 단숨에 바꿀 수야 없지. 천천히 생각을 바꾸게 만들어야지. 지금은 내가 정세에 관심 있다고 어필한 것으로 족하다.’
어찌 되었건 이선은 대원군의 총애와 중전의 경계를 받는 이상, 당장은 대원군의 보호를 받아야 했다. 정견의 차이로 척을 질 필요가 없었다.
“소손의 생각은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앞으로 할아버님께서 많이 가르쳐 주시옵소서.”
이선이 겸손하게 한발 물러서자, 대원군은 껄껄 웃었다.
“아니다. 네 식견은 어린아이치고 훌륭했다. 아마도 환재의 가르침이겠지? 환재의 무리들은 박학다식하니, 어울려서 식견이 넓어지는 데 좋긴 하겠다마는. 하지만 그들에게 물들면 아니 된다. 오히려 네가 그들을 왕도로 이끌어야 하느니라.”
아무래도 대원군은 이선이 개화파들과 교류한 것으로 오해한 모양이었다. 이선은 굳이 오해를 깨려 하진 않았다.
“명심하겠습니다.”
대원군은 손자를 기특하게 여겼다. 비록 자신과 생각은 크게 다르지만, 열두 살로 보기 어려운 식견이었다.
‘그러고 보니 주상이 즉위했을 때가 꼭 16년 전 이맘때였지. 그때 주상도 보령 열둘이었고. 그때와 비교하면 완화군이 단연 총명하다. 내 뜻도 잘 따르고. 중전 소생인 세자하고 비교해도 훨씬 낫다. 이 아이를 왕재로 키워 보자. 결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진 않을 것이다.’
대원군이 흐뭇하게 손자를 쳐다보는 것과 달리, 이선은 다른 계산을 하고 있었다.
‘안 그래도 개화파들과 접촉하려 했는데, 잘 됐군. 대원군은 유능한 정치가지만 옛사람이라, 역시 끝까지 함께 가긴 어렵다. 그나마 현재 이 조선에서 대화가 통할 이들은 개화파들이다. 이들을 내 사람으로 만들어야지…….’
이선은 은밀히 자신의 세력을 키워 나갈 생각이었다. 대원군과는 동맹 관계라면, 개화파는 자신의 가신들로 키울 생각이었다.
“아버님, 도승지 영감이 왔습니다.”
이재면이 기쁜 낯으로 사랑채에 들어왔다. 임금을 대신하여 도승지가 왔다는 말에, 대원군은 일어나 사랑채 밖으로 나가 맞이했다.
“대원위 합하, 삼가 성상의 명을 받들어 합하의 탄일(誕日)을 경하드리옵나이다.”
도승지 이재완(李載完)이 대원군에게 고개를 조아렸다. 이재완은 남연군의 차남이자 흥선 대원군의 중형(仲兄)인 흥완군 이정응(李晸應)의 양자로, 임금과는 사촌 간이었다.
“올해도 잊지 않고 와주어서 고맙구려. 성상의 체후는 평안하시오?”
“예, 성상께 기쁜 일이 있어 합하께도 전해 드리라 하셨습니다. 운현궁으로의 전교가 늦어진 것도 이와 관련이 있습니다.”
“기쁜 일이라 하면 무엇이오?”
“동궁의 두후가 회복되었습니다. 하늘과 조종(祖宗)께서 돕고 안정시켜 주시어 동궁의 두후가 며칠 안에 나으시니, 막대한 경사가 무엇인들 이보다 더한 것이 있겠습니까! 이에 합하께도 경하의 말씀을 올리나이다.”
순간 대원군의 심정은 복잡했지만, 즉시 표정을 관리하고 기쁜 낯으로 화답했다.
“이는 종묘사직의 그지없는 복이니, 실로 열성조의 보살핌 덕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