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512
– 193화에 계속 –
2부 193화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
1914년 9월, 유럽에서 열강 간의 대전쟁이 발발했다. 10월에 일본과 한국이 참전하면서, 아시아까지 세계대전이 확대되었다.
“대한제국 참전!”
“한국대사관으로 가자!”
“동양의 친구들을 향하여 경례!”
런던, 파리, 상트페테르부르크에는 태극기가 휘날렸다. 주재 한국대사관에는 박수갈채와 감사인사가 쏟아졌다. 주프랑스 대사 이준은 모여든 군중에게 즉석연설을 하여 답례했다.
“대한제국은 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동양의 평화를 위해 싸워 왔습니다. 이제 세계의 자유와 독립, 평화를 위해 여러분과 함께 싸울 것입니다!”
“와아아아아아!”
“대한제국 만세!”
전쟁 초기, 협상국(Entente) 혹은 연합국(Allies)에게 전황이 불리하게 전개되었다. 그렇기에 별다른 이해관계가 없어 보이는데도 참전한 한국을 향해 환호가 쏟아졌다.
“독일의 동맹은 오직 오스트리아뿐인데, 우린 유럽을 넘어 전세계에 동맹이 있다!”
“이 전쟁은 우리가 승리할 수밖에 없다!”
현시점에서 한국이 전쟁에 기여할 길은 실질적으로 독일령 산동 공격이 전부였지만, 심리적으로 불안한 사람들에게 아군이 하나라도 더 늘어난 데에 안도감을 주었던 것이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주재 공사는 즉시 선전포고문을 해당국 정부에게 전달하라. 빈 공사관은 폐쇄하여 중립국인 이탈리아로 이동한다. 공사관 업무는 중립국인 미국 대사관에게 위임하도록 한다.」
대한제국이 독일에 선전포고하고 3일 후, 오스트리아-헝가리에도 선전포고했다.
주오스트리아 공사 이영은 마침내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9월에 러시아와 오스트리아-헝가리가 교전 상태에 접어들면서, 이미 걱정이 태산이었다.
“아버지께서 남서전선군의 8군 참모장을 맡게 되셨다는군요.”
“그분께서는 무사하실 겁니다.”
“그러길 바라야죠. 결국 러시아와 오스트리아가 적이 되고 말았어요. 나는 이 나라가 정말로 좋았는데.”
“많은 사람이 전쟁을 막기 위해 노력했는데, 결국 이렇게 되고 말았군요.”
아나스타샤의 아버지이자 이영의 장인인 브론스키 중장은 러시아 8군 참모장으로 임명되어 갈리치아 전선으로 떠났다. 바로 오스트리아-헝가리군과 직접적으로 맞붙는 전선이었다.
오스트리아에 주재하던 러시아 외교관과 체류국민들은 이미 철수하기 시작했지만, 아나스타샤는 남편을 따라 남아 있었다. 하지만 10월 15일에 한국도 오스트리아-헝가리에 선전포고함에 따라, 한국 공사관도 철수해야 했다.
“귀국에 대한제국의 선전포고문을 전달하게 되어 매우 유감스럽습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군요. 귀국과 우리 제국은 불화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유감입니다.”
이영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외무대신 베르히톨트에게 선전포고문을 전달했다. 이미 7개국으로부터 선전포고문을 받은 베르히톨트는 교전국 하나가 더 추가된 것에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받았다.
이영의 짧은 오스트리아 공사 경험은 끝을 맞이했다. 공사관을 폐쇄하고 이탈리아로 이동하기 전,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트의 초청을 받아 벨베데레 궁전을 방문했다.
프란츠 페르디난트는 눈에 띄게 우울해 보였다. 전쟁을 막아 보려고 했지만, 주화파인 그의 입지는 크게 줄어들어 있었다.
“결국 두 나라가 전쟁을 하게 되었구려. 유감스러운 일이오.”
“안타깝습니다. 평화로운 시기가 오게 된다면, 두 나라의 우의가 재개되길 바랍니다.”
“러시아와의 전쟁은 물론이고, 프랑스나 영국과의 전쟁도 결코 바라던 바가 아니었소. 세르비아에 전쟁을 선포하면 결국 유럽 전체의 전쟁이 되리라고 그토록 경고했건만, 어리석은 자들 같으니라고!”
프란츠 페르디난트는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자신도 모르게 ‘카산드라의 예언’을 발산한 셈이었다.
“전하, 미래는 전하의 것입니다. 너무 심려하지 마십시오.”
“미래는 나의 것이라. 좋은 말 고맙소.”
프란츠 요제프는 놀랍도록 장수하고 있었지만, 80대 중반인 황제는 언제 서거해도 이상하지 않을 일이었다.
결국 황태자는 차기 황제였고, 즉위하면 제국의 정책도 바뀔 터였다. 프란츠 페르디난트는 제국을 다민족 연방국가로 재편하겠다는 목표가 있었다.
물론 독일은 오스트리아-헝가리가 전선에서 이탈하는 걸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고, 오스트리아는 갈수록 독일에 의존하게 될 터였다. 프란츠 페르디난트가 황제가 되더라도 난관이 깔려 있었다.
“평화로운 시대가 오면, 다시 만납시다.”
“예, 전하. 부디 그때까지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황태자비 조피도 이영 부부를 축복했다.
“대공 부부는 우리에게 있어 행운의 파랑새와 같았어요. 대공께서 만류하지 않았더라면, 암살자의 흉탄이 전하께 향했을지도 모를 일이지요. 정말 고마워요. 꼭 다시 만나길 바랍니다.”
“영광입니다. 두 분을 뵙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다시 빈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전쟁 발발이라는 역사를 바꾸지는 못했지만, 프란츠 페르디난트는 살아남았다. 그의 존재가 역사를 어떻게 바꾸게 될지는, 지켜봐야 할 일이었다.
* * *
독일 카이저는 ‘크리스마스가 되기 전에 전쟁이 끝날 것’이라고 자신했고, 독일군은 무서운 기세로 파리를 향해 쇄도했다.
개전 초기, 슐리펜 계획은 벨기에의 격렬한 저항에 부딪히는 변수가 발생했지만, 전반적으로 큰 변화 없이 진행됐다.
알자스-로렌을 탈환하기 위한 프랑스군의 공세, ‘제17계획’은 역설적으로 슐리펜 계획의 순조로운 진행을 허락한 셈이 되었다.
연합국의 당초 예상과 달리, 독일군은 전력의 8분의 7을 서부전선에 쏟아부었다. 8개 야전군 중에 7개 야전군이 서부전선으로 향했고, 동부전선에는 제8군만이 동프로이센에 주둔 중일 뿐이었다. 슐리펜 계획은 6주 이내로 파리를 점령하고, 프랑스를 굴복시킨 후에 러시아와 결전을 벌일 계획이었다.
프랑스군은 부랴부랴 독일군의 파리 진격을 막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쓰고 있었다.
「러시아군은 신속히 동프로이센을 공격하여 독일의 후방을 위협해 주길 바람!」
프랑스-러시아 합동논의에 따르면, 러시아는 넓은 영토와 낙후한 교통사정으로 인해 개전 3-4주 이내로 동원을 마치고 독일을 향해 공세를 펼치기로 약속했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프랑스는 계속 러시아를 향해 신속한 공세를 요구했다.
“어쩔 수 없군. 조속히 독일을 향해 공세를 감행한다.”
러시아군의 초기 전쟁계획은, 이른바 ‘A계획’과 ‘G계획’이 존재했다.
G계획은 독일의 동부전선 공세에 대비하여 전통적인 러시아 전략에 따라 영토를 내주어 시간을 버는 지연전을 계획했다. A계획은 전력을 독일에 집중하여 동프로이센과 슐레지엔을 향해 공세를 펼치는 것이었는데, 독일이 서부전선에 병력을 집중함에 따라 러시아는 A계획에 따라 움직였다.
러시아군의 평시 병력은 142만, 개전 6주 내로 453만 병력을 확보한다는 계획이었다.
이 엄청난 규모의 군대는 찬탄과 공포를 담아 ‘러시아 증기롤러’라고 불렸고, 러시아 증기롤러는 독일과 오스트리아를 짓밟기 위해 움직였다.
“프로이센을 향해 진격하라! 최종 목표는 베를린이다!”
개전 초기, 모든 국가가 다 그랬듯이 러시아도 낙관론이 지배했다.
장교들은 프로이센을 향한 진격 명령에 환호성을 터뜨렸다.
“조속히 베를린을 함락시킨다!”
“올해가 가기 전에 베를린에서 시가행진하자!”
“베를린 시가행진에 어떤 옷을 입어야 가장 멋있을까?”
“오만한 카이저의 얼굴이 죽상이 되는 걸 보고 싶군, 하하하!”
러시아군 장교단은 자신감에 가득 찼다. 동부전선의 독일군과 러시아군 병력 규모의 압도적인 차이에 도취되어 있었다. 98개 보병사단과 37개 기병사단이 전선에 동원되었고, 이는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를 압도하는 수치였다.
‘그야말로 김칫국을 사발로 들이키고 있군.’
‘독일군은 일본군이 아니거늘. 적을 얕보면 반드시 필패하는 법인데…….’
주러시아 대사 이상설과 주재무관 유동열 정령은 러시아군의 낙관적인 분위기에 위화감을 느꼈다.
이상설과 유동열은 본국을 향해 러시아의 동향을 담은 보고서를 올렸다. 개전 이후, 매주 장문의 동향 보고서가 본국으로 향했다.
‘임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임은 끝내 강을 건너셨네. 물에 빠져 돌아가시니, 가신 임을 어찌할꼬.’
러시아군이 독일-러시아 국경인 네만 강을 넘어 동프로이센을 향해 진격한다는 보고를 받은 이선은, 문득 공무도하(公無渡河)가 떠올랐다.
러시아군이 패배할 가능성이 컸지만, 이선이 적극적으로 러시아군의 전략에 개입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독일군이 서부전선에서 병력을 빼내려면 러시아군이 신속하게 공세를 펼쳐야 하는 건 맞는데, 문제는 그럴 능력이……. 차르도 작전에 개입을 하지 않는 상황에서 제3자인 내가 나설 순 없으니, 일단 지켜보는 수밖에.’
이선이 니콜라이에게 이런저런 조언을 한다 한들, 차르조차 비전문가로 인식하고 있는 러시아 군부가 말을 들을 리가 만무했다.
이선은 들어주지도 않을 연합군의 전략에 개입하기보다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전쟁에 대비하도록 했다.
* * *
동프로이센, 러시아 북서전선군 사령부.
동프로이센의 주도인 쾨니히스베르크, 더 나아가 베를린을 향한 러시아 북서전선군(제1군, 제2군)의 진격은 마주리아(Masuria) 호수에 이르렀다.
“이대로 계속 진격하면 베를린까지 진격하겠어, 하하.”
“군은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각하.”
북서전선군 참모장교 빅토르 김 중령은 동양계로서는 드물게 고급장교에 오른 이였다.
러일전쟁 시기, 브론스키의 명을 받아 공훈을 세운 빅토르 김은 출세가도에 올랐고, 군부의 실력자로 떠오른 브론스키를 후원자로 두어 탄탄대로였다.
인종차별이 심한 20세기 초, 다민족국가인 러시아는 예외적으로 소수민족 출신 장성들을 배출했다. 갈리치아 전선의 사단장인 라브르 코르닐로프(Lavr G. Kornilov)의 경우에는 투르키스탄 카자흐족 출신이었다.
빅토르 김 역시 고려인 최초로 장성의 반열에 오를 것이라는 예측이 있었고, 고려인 사회는 그를 자랑스럽게 여겼다.
“그런데 명령문을 평문으로 보내도 되겠습니까? 암호로 전환해야…….”
“사령부에도 암호집도 제대로 배포가 안 됐는데, 전선에 암호집이 있을 것 같나? 통신병들이 암호문을 숙지하고 있을 리가 없네. 평문으로 보내.”
북서전선군은 19개 사단, 프로이센을 방비하는 8군은 9개 사단이니 러시아군이 대책 없는 낙관론에 빠져 있었다.
북서전선군 사령관 질린스키 대장은 예하 1군과 2군을 향해 끊임없이 공세를 서두르라고 명령문을 남발하고 있었다.
공세에 대한 러시아군의 조급성은 파멸을 향한 길로 내닫았다. 러시아군은 빈번히 평문 통신을 남발했고, 이는 독일군 통신병이 중간에서 획득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크, 큰일 났습니다! 제2군이 포위되어 큰 손실을 낸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제2군이 대패, 사상자와 포로 다수……!”
북서전선군 사령부는 2군이 궤멸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독일군 8군은 2개 사단으로 하여금 북방의 1군을 저지하는 동안, 남방으로 진격하던 2군을 포위하는 데 성공했다.
북서전선군은 부랴부랴 퇴각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2군은 포위망을 뚫지 못했고, 참담한 결과가 기다리고 있었다.
러시아군의 사상자와 포로는 셀 수 없이 많았다. 1개 야전군이 통째로 소멸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독일군의 승리는 너무나 압도적이어서, 보고를 받는 쪽에서조차 믿지 못할 정도였다. 마주리안 전투는 독일군에 전설적인 승리의 상징이 되었다.
「아군의 압도적이고도 위대한 승리! 러시아군 섬멸! 아군 사상자 1만 5천, 러시아군 사상자 8만, 포로 9만!」
러시아군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독일의 사상자와 포로 17만 선전에 러시아는 과장되었다고 반박했지만, 2군이 궤멸당한 건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1군도 막대한 피해를 입고 출발지점인 네만 강으로 되돌아왔다. 북서전선군이 입은 타격은 러시아군 전체의 사기 저하로 이어졌다.
그나마 긍정적인 지점이 있다면, 러시아군의 동프로이센 공세에 화들짝 놀란 독일군 참모본부가 2개 군단을 동부전선으로 돌렸고, 프랑스군의 진격 저지에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군부의 기반인 프로이센 융커들의 고향인 동프로이센을 내놓을 수 없다는 정치적 판단이 독일군에는 전술적 대승과 전략적 오판을 안겨 주었다.
“애초에 단기전은 불가능한 목표였어. 무책임하게 공세를 독촉한 결과는 참사로구나…….”
동프로이센 전역의 참패는 러시아군으로 하여금 단기전의 승리가 불가능하다는 걸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내 결국 이럴 줄 알았다.”
동프로이센 전역의 대패 소식을 전해 들은 이선은 한숨을 쉬었다.
이제 장기전은 피할 길이 없었다. 러시아는 다른 나라들처럼 단기전을 예상할 뿐이었다. 장기전으로 접어든다면, 그만한 산업력이 뒤따라가지 않았다. 지난 몇 년간 민간공업은 상당히 발전했지만, 군수공업은 전쟁에 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450만이라는 막대한 병력규모와 달리, 러시아의 군수능력은 제한적이었다.
‘제국익문사와 군사정보국이 확보한 정보를 조합해 보면…….’
러시아 전역에서 야포를 생산할 수 있는 조병창은 오직 페테르부르크 조병창뿐이었다. 나머지 5개 조병창은 수리만 겨우 할 수 있는 정도였다. 러시아군의 규모가 확대될수록, 심각한 포병 부족 현상이 뒤따랐다.
기관총의 부족은 더 심각했다. 개전 당시 러시아군이 보유한 기관총은 약 4천 정으로, 보병대대 1개당 1정을 보급하기도 힘들 정도였다. 기관총을 생산할 수 있는 조병창은 오직 툴라 조병창뿐이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기본적인 제식무기인 소총과 탄약이었다. 개전 당시만 해도 소총 부족량이 35만 정에 달했다. 신병을 소집해도 소총이 없는 일이 비일비재했고, 훈련소에서는 목총으로 훈련을 했다. 탄약 부족도 심각해서 병사들에게 제한적인 탄약 분배가 이뤄질 정도였다.
군수공업의 부족함을 인지하고 있는 러시아는, 즉각 생산량을 증대했지만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했다. 해외에 무기생산을 주문해 봐도, 다른 나라들도 모두 주문한 무기를 생산하느라 러시아의 막대한 물량을 댈 여유가 없었다.
‘러시아는 장기전에 대한 대비가 전혀 안 되어 있군. 나라도 대비를 해 놔야겠어.’
한국의 군수공업이라고 해도 미국이나 영국에 비하면 조족지혈에 불과했지만, 러일전쟁 이후 축적된 경험이 있었다.
“용산-부평, 평양-남포, 함흥-원산, 남만주 안산-본계-무순 공업지대를 전시체제로 가동한다. 일단 소총과 탄환부터 대규모 생산에 들어가도록.”
마침 대한제국의 제식무기인 ‘광무 보총’, 혹은 ‘모총(矛銃)’은 러시아 제식무기 모신나강을 원형으로 하는 소총이었다. 즉 모신나강과 호환이 가능한 무기였다.
러시아가 외주를 맡긴다면, 언제든지 수출할 준비를 했다. 곧 러시아의 흑해-발트 해상 무역로는 봉쇄될 가능성이 컸기에, 태평양과 철도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질 터였다. 시베리아 횡단철도와 연결된 남만주철도를 통해 군수품을 수출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독일군의 서부전선 공세가 저지되고, 러시아군의 공세가 참패로 끝나면서, 장기전은 기정사실화됐다.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The war to end war)’은 이제 막 초기에 접어들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