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519
– 200화에 계속 –
2부 200화 14개조 요구
“하필이면 그 원세개가 중국의 정권을 잡다니, 이거야 원!”
“국민당이 이렇게 허무하게 무너질 줄은…….”
“일본에서 정변을 지원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어찌 되었건, 대한은 정통성이 없는 군사정권을 인정해서는 안 됩니다!”
“그게 무슨 말이오? 현실적으로 봐야지요. 권력을 잡은 이들을 무시하고 중국에 대해서 무슨 논의를 할 수 있겠소?”
“저런 정권은 오래 가지 못합니다. 원세개와 야합해 봐야 소탐대실일 겁니다.”
“차라리 잘됐습니다. 저들의 정변을 명분으로 삼아 산동에 계속 주둔합시다!”
“그리 섣부르게 나설 때가 아니오!”
한국의 정당들은 대부분 원세개의 쿠데타에 부정적이었다.
개화당 지도부는 원세개와는 오랜 악연이 있었다. 개혁적 자유주의 정당을 자임하는 신민당은 국민당 정권을 지지하고 군사정권을 거부했다. 인민주의 정당인 진보당의 전봉준은 원세개를 ‘동양 인민의 적’이라고 노골적으로 비판했다. 제국당만은 약간 결이 달랐는데, 중국의 정변을 틈타 산동을 차지하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한국 정부는 중국 내부의 내정문제에 대해 개입할 생각이 없습니다. 하지만 민의에 의해 선출된 합법적인 정부가 군사정변으로 전복되었다는 사실에 우려를 느끼지 않을 수도 없습니다.”
대한제국은 일본과는 다른 길을 걸었다. 쿠데타 정권을 승인하기를 거부하고, 주중 한국대사 김가진을 일시적으로 소환하여 귀국시켰다.
이 조치는 원세개 정권으로서는 타격이었다. 대한제국은 중화민국과 유일하게 대사급 외교관계를 맺은 나라였고, 주중 외교관 중에서 가장 격이 높았다. 그만큼 우방이라 할 수 있는 나라가 승인을 거부한 것이다.
한국에 이어 ‘도덕외교’를 주창한 미국의 윌슨 행정부도 군사정권에 대한 승인을 거부했다.
영국과 프랑스는 승인을 했어도 도움을 줄 생각은 없었으니, 원세개 정권은 일본에 더욱 의존해야 할 상황이었다.
‘원세개가 끝내 살아남아 정권을 장악한 건 대단한 일이지만, 실제 역사보다 훨씬 암담한 상황이지. 북양군벌을 확고한 기반으로 갖고 있는 것도 아니고, 청조를 무너트린 대가로 손문에게서 대총통을 넘겨받았다는 합의도 없었고. 여러 군벌을 포섭해 연립정권을 세웠는데, 사공이 많으면 산으로 가는 법. 과연 오월동주가 얼마나 오래갈 수 있을까?’
국민당은 허약하기 짝이 없었어도, 혁명과 민의에 의해 선출되었다는 정통성을 갖고 있었다. 원세개는 그 정통성을 힘으로 무너트렸다.
‘삼국지로 비유하자면 동탁 같은 존재인 건가. 힘만 있을 뿐 정통성이 미미하고, 지방을 장악할 능력도 없고. 군웅할거로의 길을 열었군.’
만약 원세개가 실제 역사처럼 북양군벌의 총수로서 압도적인 무력을 지니고 있어도 중국 전역을 통제할 수 없었는데, 지금처럼 여러 파벌이 연립한 형태라면 오래갈 수가 없었다. 그저 힘만으로 권력을 잡을 수 있다면, 또 다른 야심가가 나타날 것이다.
* * *
국민당과 그들을 지지하는 군소 군벌들의 저항이 산발적으로 일어났으나, 한 달여 만에 모두 진압되었다. 마침내 중국을 차지하게 된 원세개는 기세등등했다.
“허, 조선이 크긴 많이 컸어. 조선 주제에 감히 중국을 승인하길 거부해? 가소로운 놈들, 그럼 우리도 거부하면 그만이다!”
기세가 오른 원세개는 주한 중국대사관을 철수시켰다. 그러자 당혹감을 느낀 건 일본이었다.
“대총통, 지금 한국과 대립할 때가 아닙니다. 한국은 연합국의 일원이고, 수십만 대군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적대해서 좋을 게 하나도 없습니다.”
“내가 원해서 그러는 게 아니라, 저들이 나를 거부하는 게 아니오? 한국 황제와 내가 수십 년 전에 악연이 있다고 아직도 원한이 있나 본데, 나는 저들과 대립할 생각이 없소.”
주중 일본공사 히오키의 설득에 원세개도 태도를 누그려 텄다.
“그렇다면 우리 일본이 중재해 주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주면 고맙지요. 부탁하겠소.”
일본 외무대신 가토 다키아키는 밀약을 맺은 당사자인 김옥균을 찾았다. 때마침 김옥균은 신병 치료를 이유로 일본 온천에서 휴양 중이었다.
“각하, 일한 양국 간에 밀약을 맺어 중국 정책에 대하여 공동보조를 취하도록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어찌하여 협력을 거부하는 겁니까?”
“글쎄요, 이 늙은이는 이미 정부에서 물러난 처지라 뭘 알아야지요. 나는 보다시피 몸이 안 좋아서, 뜨뜻한 온천물에 몸이나 담그고 있소. 이놈의 류머티즘에는 귀국의 온천이 효과가 좋습디다.”
김옥균이 딴청을 피우며 온천 타령이나 하자, 가토가 조바심을 냈다.
“각하께서 한국의 실력자임을 모르는 이가 누가 있습니까? 대체 이유가 뭡니까? 설마 귀국 황제께서 30년 전에 원 총통과 악연이었던 걸 아직도 원한을 품고 계신 겁니까?”
“이보시오, 외무대신! 우리 성상께서 그토록 속이 좁은 분이라는 거요? 귀국 일부 언론이 우리 성상을 러시아 스파이라고 운운하는 기사를 썼던 걸 기억하시오? 그따위 선동에 넘어가 일부 친일 분자들이 감히 성상을 폐위하려는 음모까지 꾸몄소!”
30년 전 원한 운운에 김옥균이 정색하며 언성을 높였다.
“그건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일본 정부와는 무관한 일이었습니다.”
“참을 수 없는 모욕이었지만, 성상께서는 대범하게 넘어가셨지. 동양 평화와 국익을 위해 일본과 동맹을 맺는 길을 택하셨소. 그토록 그릇이 크신 분이거늘, 그까짓 30년 전 구원(舊怨) 때문에 원세개와 대화하기를 거부하실 것 같소?”
김옥균이 반대로 10년 전 일을 가지고 공박하자, 가토는 고개를 숙였다.
“제 본의와 다르게 무례하게 들렸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그럼 알려주십시오. 대체 귀국이 중국 신정권과 논의를 거부하는 이유가 뭡니까?”
“대한은 국민당 정권을 가장 먼저 승인하고 지지해 왔습니다. 그들과의 신의를 저버릴 수도 없거니와, 국민당은 혁명을 성공시키는 조건으로 중국 18성을 제외한 지역의 영유권을 포기했지요. 덕분에 청국이 북방에 터전을 잡을 수 있고. 원세개나 군벌들이 이 합의를 깨트리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어디 있습니까?”
김옥균이 명분과 실리에 대해 모두 언급하자, 가토가 원세개를 대신해 해명했다.
“원 총통은 옛 합의를 깨지 않을 겁니다.”
“그걸 어찌 압니까? 일본국 외무대신이 중화민국 대변인이라도 됩니까?”
“그들이 누구 덕에 정권을 잡았는데, 원세개는 일본의 지지가 없으면 오래 버티지도 못할 겁니다!”
가토는 저도 모르게 정변의 배후에 일본이 있다는 걸 까밝히고 말았다.
“그래서 안 된다는 겁니다! 국민당 정부는 한국과 일본에 고루 우호적이었지만, 국민당 정부를 무너트리고 독점적인 친일 정권을 세우겠다는 심보가 아닙니까? 이래서야 양국 간의 합의는 시작부터 무너진 게 아닙니까!”
김옥균의 공박에 가토는 답변이 궁색해졌다. 애초에 한국은 물론이고 열강까지 배제하고 일본에 고분고분한 정권을 세우려고 했던 시도였다.
“국민당은 다루기가 어려웠습니다. 고분고분한 정권을 세우면 귀국에도 좋은 일이 아닙니까?”
“그건 귀국의 생각이고, 우리는 국민당과 충분히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습니다. 산동 문제도 적당히 잘 협의할 자신이 있었지요.”
“국민당이 순순히 이권을 내줬겠습니까?”
“한일 양국 간의 합의는 중국에서 공동으로 이익을 도모해 보자는 거였지, 쿠데타를 일으켜서 친일적인 정권을 세우라는 제안이 아니었습니다.”
“귀국의 입장은 잘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독자적으로 국익을 도모할 수밖에 없겠군요.”
“뜻대로 하십시오. 원세개 정권이 있는 이상, 우리가 협조할 일은 없을 겁니다.”
가토와 김옥균의 회담은 얼마 전 밀약 합의 때와 달리 결렬되고 말았다.
김옥균은 곧장 귀국길에 올랐고, 일본 외무성은 독자적인 행보에 나섰다.
“동맹이라고 배려해 줬더니, 이제는 일본의 위에 서려고 드는군. 한국 따위의 협조가 없어도 충분히 우리 뜻대로 중국을 요리할 수 있다.”
일본 외무성의 강경책은 일본 정부 내에서도 우려를 낳았으나, 가토는 군부의 지지를 얻어 그대로 밀어붙였다.
“이래서야 중국뿐만 아니라 주변국과 열강도 반발할 터인데.”
“열강이 전쟁에 휘말려 중국에 신경 쓰지 못하는 지금이야말로 절호의 기회입니다. 이번 기회에 중국에 교두보를 확실하게 확보해야 합니다.”
마침내 일본의 대(對) 중국 요구안이 준비되었다.
* * *
1915년 3월 18일.
주일 중국공사 히오키는 임시대총통 원세개에게 일본의 요구안을 내밀었다.
「 제1호. 산동 권익.
1. 중국 정부는 독일이 산동에 관한 조약으로 소유하는 일체의 권리·이익·양여 등의 처분에 대하여, 전후에 연합국 정부가 독일 정부와 협의할 일체의 사항을 승인할 것을 약정한다.
2. 중국 정부는 산동성 내 또는 그 연해 일대의 토지 또는 도서를 어떠한 명목으로도 타국에 양여하거나 대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약정한다.
3. 중국 정부는 지부(芝罘, 옌타이)-청도(칭다오)-제남(지난)을 잇는 교제철도의 운영권을 일본에 윤허한다.
4. 중국 정부는 가급적 빨리 외국인의 거주 및 무역을 위하여 자진해서 산동에 있어서의 주요 도시를 개항할 것을 약속한다.
제2호. 복건·절강에 있어서의 일본국의 우선권
1. 중국과 일본은 해남도(하이난)·아모이(샤먼)·복주(푸저우)의 조차와 아모이-복주 철도 관리 경영권을 다시 99개년씩 연장할 것을 약정한다.
2. 일본 국민은 복건 및 절강에서 각종 상공업 건물의 건설 및 경작을 위하여 필요로 하는 토지의 임차권 또는 소유권을 취득할 수 있다.
3. 일본 국민은 복건 및 절강에서 자유로이 거주 왕래하여 각종 상공업 및 기타의 업무에 종사할 수 있다.
4. 중국 정부는 복건 및 절강에 있어서의 광산의 채굴권을 일본 국민에게 허용한다. 그 채굴할 광산은 별도로 협정한다.
5. 복건과 절강에 있어서 철도·광산·항만의 설비(조선소 포함)에 관하여 외국 자본을 필요로 하는 경우에는 먼저 일본과 협의한다.
6. 복건 및 절강에 있어서의 정치·재정·군사에 관하여 고문을 필요로 할 경우에는 반드시 먼저 일본과 협의한다.
7. 무창(武昌, 우창)-구강(九江, 주장)-남창(南昌, 난창) 철도, 항주(杭州, 항저우)-남창 철도, 항주-조주(潮州, 차오저우) 철도 부설권을 일본에 허용한다.
제3호. 한야평공사(漢冶萍公司)의 합작.
1. 중일 양국은 한야평 공사의 재건을 공동으로 진행하고, 합작하여 운영한다. 중국 정부는 일본 정부의 동의 없이 공사에 속하는 일체의 권리와 재산을 처분하지 않겠음을 약정한다.
2. 일본 투자자 채권 보호의 필요상, 중국 정부는 한야평 공사에 속하는 광산을 독점적으로 동 공사에만 개발 및 채굴을 허용하도록 한다.
제4조. 영토불할양(領土不割讓)
1. 중국 정부는 중국 연안의 항만 및 도시를 타국에 양여하거나 대여하지 않을 것을 약정한다.」
1조는 산동의 독일 권익을, 명목상 전후 연합국 정부의 승인을 받을 때까지 일본에 넘기라는 요구였다.
2조는 복건과 절강에서 일본의 특수이익을 승인하라는 요구였다. 이 요구대로라면 복건과 절강은 사실상 일본의 반(半)식민지였다.
3조는 내전 중에 파괴되어 재건 중인 중국 최대의 제철소, 한야평 공사의 운영권을 일본에 넘기라는 요구였다.
4조는 명목상 중국의 영토를 존중하지만, 경쟁자인 제3국을 배제하겠다는 의미였다.
4조 14항에 걸친 요구안을 읽어 본 원세개는 어이가 없다 못해 황당할 지경이었다.
“공사, 일본 정부는 미쳤소? 이걸 내가 받아들이리라고 생각하고 요구하는 거요?”
“대총통 각하께서 일본 정부의 요구를 수락하시면, 일본은 차관을 제공하고 각하의 정권을 적극적으로 보호할 것입니다.”
“수락하지 않겠다면?”
“다음에는 더 많은 요구를 하게 되겠지요. 그때는 제가 아니라 제국해군이 찾아올지도 모릅니다.”
수락하면 원세개 정권을 보호하겠지만, 수락하지 않겠다면 군사력을 동원하겠다는 노골적인 협박이었다.
일본의 지원을 받아 정권을 잡은 원세개지만, 이건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지금 나를 협박하는가! 일본은 중국을 우호국이 아니라 속국의 노예처럼 취급하는 거요?”
“그럴 리가요. 일본은 동양 평화를 위하여 필요한 조치를 취하려는 것입니다.”
“일본이 이따위 협박을 하면, 제3국은 가만히 있겠소?”
“대총통 각하, 현실을 생각해 보시지요. 누가 각하를 돕겠습니까? 유럽 열강들은 모두 전쟁 때문에 정신이 없습니다. 대규모 함대를 동원하여 함께 싸우는 연합국 일본을 저버리고 중립국 중국을 지지해 줄까요? 그럼 미국과 한국만 남는군요. 그런데 두 나라 모두 각하의 정권 자체를 승인하지 않았습니다.”
히오키의 협박에 원세개는 고립무원을 절감했다. 그 말처럼 자신을 도울 수 있는 국가는 하나도 없었다.
“이 14개 조항만 받아들이시면, 일본은 각하의 정권이 영구하도록 돕겠습니다. 각하께서도 손해 보는 일은 아닐 것입니다.”
“아무튼, 이건 내가 혼자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오. 생각할 시간을 주시오.”
“물론 시간은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제3국에 알린다고 해도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할 겁니다.”
원세개가 시간벌기에 나서자, 히오키는 다시 한번 협박을 했다.
“일본이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따위 무도한 요구를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이따위 요구는 논할 가치조차 없습니다. 선전포고해야 합니다! 싸우다 죽을지언정 일본의 요구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국무총리서리이자 안휘파의 수장인 단기서는 격렬하게 반발했다. 강한 중국을 염원하는 단기서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폭거였다.
“맞습니다! 무력으로 일본의 야욕을 무찔러야 합니다!”
“열강에도 알려 일본의 야욕을 저지하게 하지요!”
“하지만 영국과 프랑스는 동맹인 일본의 편을 들지 않겠소?”
“만약 그들이 그리 나온다면, 차라리 독일과 손잡고 일본과 일전을 벌입시다!”
“말이 되는 소릴 하시오! 일본도 모자라서 영국과 프랑스까지 적으로 돌리잔 말이오?”
“지금은 일본과 전쟁할 때가 아닙니다!”
군벌 연립정권은 의견 통일이 되지 않은 채 말만 분분했다.
각지의 군벌들이 연명으로 일본과 맞서 싸우겠다고 천명했지만, 순수한 애국심에서 비롯된 행동이 아니었다.
“일본과 일전을 벌이면 대총통 원세개가 앞장을 서야겠지. 이기든 지든, 원세개의 힘이 쫙 빠지고 말 것이다.”
“일본이 상전 노릇 하는 꼴은 못 보지만, 그렇다고 원세개가 왕 노릇 하는 꼴도 못 보지.”
원세개도 군벌들의 심리를 파악하고 있었다.
“제일 먼저 타격을 입는 건 내 군대일 텐데, 누구 좋으라고 대일 항전에 나서나? 그렇다고 일본의 요구를 순순히 수락하자니, 반대파들이 미친 듯이 짖어댈 테고…….”
진퇴양난이었다. 굴복하기는 싫고, 무력으로 맞서 싸우기도 어려웠다.
“어쩔 수 없다. 일본이 홀로 이런 식으로 나오면 열강도 불쾌하겠지. 이이제이, 열강을 이용하여 일본을 억제하자.”
원세개는 열강에 희망을 걸고 지원을 요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