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52
– 52화에 계속 –
52화 개항(開港)
이선은 이미 조선과의 수교를 논의하기에 앞서 블라디보스토크로 온 베베르와 합의를 해 둔 상황이었다. 베베르는 러시아 외무부로부터 조선과의 수교에 대한 전권을 부여받은 상황이었다.
“제가 조선과의 수교를 책임지고 주선해 드리지요.”
“고맙습니다, 공작.”
“영사께서는 한 가지만 날 도와주십시오.”
“하하, 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 것이라면 뭐든지.”
조선과의 수교에 자신의 외교관 경력을 건 베베르는 크게 기뻐했다.
“고려대대 병력 일부의 지휘권을 내게 넘기고, 함께 조선으로 돌아가게 해 주십시오.”
“예? 내가 아무리 수교에 대한 전권을 받았다지만, 이건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닌데…….”
베베르는 난감함을 표시했다. 외교관인 그에게 군사 지휘권에 대한 결정을 내릴 순 없었다.
“당연히 결정을 내려 달라는 게 아닙니다. 결정은 황제 폐하의 몫이지요. 외무부의 반발이 제일 클 터이니, 영사께서는 상부에 보고만 잘해 주시면 됩니다. 이게 러시아의 국익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고, 말이지요.”
이선은 베베르에게 자신의 계획을 귓속말로 속닥였다. 베베르는 뜻을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선의 제안을 놓고 연해주 지방 정부, 태평양 함대, 동시베리아 총독부, 육군부, 해군부, 외무부 사이에서 논쟁이 오고 갔다.
군부는 전체적으로 지지하는 경향을 보였으나, 외무부는 난색을 표했다.
이럴 때 최종 결정권자는 황제의 몫이었다.
“짐은 이선 공작의 계획을 승인한다. 구체적인 실무 논의는 연해주 군정장관 바라노프 소장과 조선 수교 전권 공사인 베베르가 맡는다.”
전제 군주국인 러시아에서, 황제의 뜻은 지엄했다.
“역시 황제 폐하께서는 현명하십니다.”
황제의 결정이 떨어지자, 이선은 바라노프 및 베베르와 협의해서 고려대대와 기선 1척을 의용군(義勇軍)으로 편성했다.
“전례는 1876년의 발칸 의용군을 따른다.”
1876년, 오스만 제국이 불가리아와 세르비아의 독립 투쟁을 가혹하게 진압하자, 범슬라브주의를 부르짖는 러시아인들이 자체적으로 의용군을 편성해 독립 전쟁을 후원했다.
전례를 따라 고려대대는 러시아 육군 소속이 아니라 이선이 고려인의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개인적으로 모집한 ‘의용군’으로 규정되었다.
“의용 함대 소속 수송선 1척을 의용 함대의 주주인 이선 공작에게 대여한다.”
군대를 수송하려면 수송선이 필요했다. 기선은 애초에 러시아 해군이 아니라 의용 함대 소속이었으므로, 이들은 상선 깃발을 달고 활동했다. 선장 이하 선원들도 상선사관 신분이었다.
이선은 의용 함대에 거액을 투자한 주주임을 활용해, 영국에서 건조된 배수량 2천 톤의 증기선 ‘블라디보스토크’호를 인수했다.
이선은 이 배의 이름을 ‘카레야(Корея, 고려)’호로 명명해, 정체성을 분명히 했다.
이로써 편제상으로는 육·해군 모두 이선 개인이 책임을 맡은 의용군으로 독립된 것이었다.
1882년 5월 22일, 인천 제물포에서 조미 수호 통상 조약이 체결되었다. 이로써 조선은 서구 열강에게 문호를 활짝 개방했다.
6월 6일, 비슷한 조건으로 조영 수호 통상 조약이, 이윽고 6월 30일에 조독 수호 통상 조약이 체결되었다.
다만 이는 청나라의 주선 하에 체결된 조약으로, 근대적 외교 질서에 무지했던 조선은 청나라가 권하는 대로 조약을 확정 지었다.
조약에 난관을 빚은 점은, 청나라는 ‘조선은 청나라의 속방(屬邦)’임을 강조했지만, 서양 3개국은 속방 규정에 난색을 표했다.
결국 타협이 이뤄져 이홍장은 조문에서 속방 규정을 삭제하라고 했고, 조선은 내정과 외교에서는 완전한 자주’임을 천명하여 대등한 주권 국가 간의 조약으로 규정되었다.
이 점을 제외하면 청나라는 제법 성실한 중개인으로 조약을 주선했다. 조선에서 금지하는 기독교나 아편 무역을 인정하지 않는 조항을 넣었고, 관세를 일괄적으로 적용했다.
조선이 일본과 맺은 조일 수호 조규와 비교하면, 조선의 의견과 주권이 관철된 조약이었다.
이로써 미국·영국·독일 3국과의 조약이 모두 체결되었다.
이는 조선 전통적 외교의 종식과 사대교린 질서의 해체를 의미했다.
3국의 조약 체결 소식이 서양 각국으로 타진되지, 프랑스·이탈리아·러시아도 조선과의 조약 체결을 위해 서둘러 특사를 파견했다.
러시아 정부 역시 수교 전권 공사 베베르에게 즉시 조선으로 가라는 훈령을 내렸다.
이 러시아 대표단에는, 특별한 인물이 있었다.
“의용군 동지들! 우리는 조선으로 돌아간다. 우리의 고국 조선은 대내외적인 위기에 직면해 있다. 조선에서 일어날지도 모르는 변란과 외침을 막는 것이 우리의 주요한 임무이다. 우리의 고향 연해주를 마적에게 지켰던 것처럼, 우리의 고국 조선을 외적으로부터 지켜내자!”
“와아아!”
이선의 연설에 병사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내질렀다. 이들은 모두 이선이 왕자 신분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굉장한 애국심과 의무감을 가진 왕족으로 여겼다.
“모두 승선하라!”
이선은 러시아 당국을 설득해 ‘러시아인’은 베베르를 비롯한 소수의 문관들만 탑승시켰다. 무장한 이들은 모두 고려인이었다.
대부분 함경도 포수 출신으로, 마적과의 실전 경험이 있는 근대적 군대였다.
최신 소총인 베르단으로 무장하고, 개틀링 건까지 싣고 있는 200명의 부대는 조선에서 무시할 수 없는 무력이었다.
“최 동지, 연해주의 일은 동지에게 맡기겠소. 선편을 통해 자주 연락을 시도할 터이니, 뒷일을 잘 부탁합니다.”
이선은 연해주 업무와 연락 담당을 최재형에게 맡겼다. 왕의 아들인 이선이 노비의 아들인 자신을 ‘동지’로 대우해 주는 것에 최재형은 크게 감복한 터였다.
“예! 최선을 다해 임무를 수행하겠습니다.”
이선은 김학우와 정유진에게도 말했다.
“그대들이 원하던 것처럼, 조선으로 돌아가 큰 뜻을 펼쳐볼 때가 왔소.”
“네, 조선을 이곳처럼 발전시키는 데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무능하고 부패한 조선의 관리와 양반들에게 준엄한 심판을 내릴 수 있다면, 돌아가신 부모님께서도 기뻐하실 겁니다.”
이들은 부패한 관리들을 못 견디고 두만강을 건너 연해주로 갔어야 했던 만큼, 조선 지배층에 대한 악감정이 상당했다.
‘혁명이다. 백성들의 분노가 얼마나 무서운지 곧 임오군란으로 드러나겠지만, 거기에 근대적 무력이 합쳐지면 얼마나 무서운지를 조선 지배층에게 똑똑히 보여 줘야지.’
1882년 7월 17일, 블라디보스토크를 떠난 ‘카레야호’는 다음 날 함경도 덕원부 원산항에 도착했다.
“조선이다!”
“이야, 이거 간만이구만 기래.”
의용군 병사들은 감개가 무량한 듯 탄성을 내질렀다.
‘드디어 조선인가. 조선으로 돌아오기 위해, 우여곡절이 많았지.’
2년 4개월 만에 조선으로 돌아온 이선의 기분도 남달랐지만, 감상에 빠질 여유가 없었다.
원산은 중간 기착지에 불과했다. 카레야 호는 개항장인 원산항에서 잠시 쉬면서, 식수와 석탄을 보급한 후 바로 떠날 예정이었다.
동해안을 남하해 부산을 지나, 남해안과 서해안을 지나 제물포로 가는 항로였다.
원산은 이미 재작년부터 개항되어 일본 기선이 드나들었고, 나가사키-원산-블라디보스토크를 잇는 선박도 주 1회 운항했다.
그렇기 때문에 덕원부의 관리나 주민들은 서양 기선의 존재를 특별하게 여기지 않았다.
카레야 호는 러시아 상선기를 달고 있었고, 특별히 눈에 띄는 점도 없었다. 선원 일부를 제외하면 승객도 대부분 동양인이라, 그저 일본 선박이려니 생각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를 범상치 않게 여기는, 눈썰미 밝은 사람들도 존재했다.
“군 대감, 조선 관리를 자처하는 자가 문정(問情)을 하길 청합니다. 어찌할까요?”
“그 관리의 이름이 뭐라던가?”
“자신을 역관 백춘배라고 밝혔습니다.”
“백춘배라면, 사역원 역관입니다.”
“개항에 우호적인 인물이지요. 저희를 돕기 위해 아라사에 파견될 예정이었습니다.”
이제는 완전히 이선의 사람이나 다름없는 오위장 김광훈과 신선욱이 설명했다.
가급적 원산을 빨리 떠나려고 한 이선이었지만, 흥미가 동했다. 백춘배라면 자신도 알고 있는 이름이었다.
“만나 봐야겠군요. 승선을 허가한다고 하세요.”
30대 후반 정도의 사내가 배 위로 올라섰다. 조선인으로는 드물게 기선을 타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긴 하지만, 자신이 올라선 배가 일본 선박이 아니라 러시아 선박임을 알고 깜짝 놀랐다.
“어서 오시오.”
안면이 있는 김광훈과 신선욱이 자신을 맞이하자, 백춘배는 놀라서 말했다.
“김 공과 신 공이 아니십니까? 영감께서 어찌하여 이 배에…….”
“완화군 대감께서 찾으십니다.”
이선이 직접 백춘배를 맞이하러 선실에서 나왔다.
“반갑소, 백 공.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완화군 대감! 아라사에 계신다는 말이 참말이었군요…….”
“아라사로 갈 예정이었다지요? 나를 만나게 됐으니 갈 수고는 덜게 되었군요.”
이선은 짐짓 너스레를 떨었다.
백춘배(白春培)는 역관으로 유명한 가문 출신으로, 그 자신도 사역원 역관이었다.
1882년, 아라사 채탐사(採探使)에 임명되어 정보를 수집하러 가는 길이었다. 원산에서 블라디보스토크로 가는 일본 기선을 타기 위해 기다리던 참에, 뜻밖에도 러시아 선박이 기항한 걸 본 것이었다.
먼저 파견한 김광훈과 신선욱의 일을 돕기 위함이기도 했지만, 왕의 밀명을 그들에게 전할 목적도 있었다.
“두 분께서 어찌 완화군 대감과 같이 계신 겁니까? 분명 성상의 명은…….”
“우리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유를 알게 될 거요.”
김광훈과 신선욱은 차례로 러시아와 연해주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이선이 러시아에서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또 조선과 백성들을 얼마나 생각하는지도 설명했다.
“그런데 저 병사들은 다 뭡니까? 설마 아라사가 조선을 침략하려는 건 아니겠지요?”
백춘배의 힐난에 이선이 정색을 했다.
“반대로 알고 계시는군. 저들은 내가 아라사에서 모집한 의용군이오. 모두 우리 동포들이지. 대내외적으로 위기에 처한 조선을 지키기 위해 돌아가는 길이오.”
“위기라니요?”
“백 공의 눈에는 안 보입니까? 조선의 위기가? 이런, 내가 알기로 백 공은 대치나 고균과 교류하면서 세계의 정세에 밝다고 들었는데. 그들은 조선의 그 누구보다 개혁을 원하지 않습니까?”
그 말에 백춘배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대치(大致)와 고균(古筠)은 곧 유홍기와 김옥균을 일컫는 말로, 이들은 개화당의 지도자였다.
백춘배는 바로 유대치의 문인이자 김옥균의 측근이었다. 후일 김옥균이 동남제도개척사로 울릉도를 개척할 때 종사관으로 임명하여 실무를 맡았던 이다.
전통적으로 바다와 섬에 대한 영토 개념이 부족했던 조선이었다. 하지만 김옥균과 백춘배는 울릉도와 독도의 중요성을 간파해 조선 영토임을 분명히 밝혔고, 울릉도에 불법 이주한 일본인들을 쫓아냈다.
백춘배가 개화당의 일원으로 급진적인 변혁을 원한다는 건 소수의 사람들만 아는 일이었다. 그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주위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김광훈이나 신선욱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걸 어떻게…….”
“아, 오해는 마십시오. 비록 내 몸은 러시아에 있었지만, 나는 조선에 대해 정보가 많습니다. 지금 조선이 폭발 직전의 상황에 놓여 있다는 것도.”
이선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정보’를 늘어놓았다.
“지금 김옥균이 일본 도쿄에 있지 않습니까? 얼마 전에는 러시아 공사 로젠을 만나 환담도 나누었지요. 그 정보는 내게도 공유됐습니다. 김옥균은 개항뿐만 아니라 러시아에 대해서도 굉장히 우호적이더군요.”
“그, 그럼 완화군 대감께서 고균 선생에 대해서도…….”
“아아, 잘 알지요. 나도 그대들만큼이나, 아니 그대들보다 더 변혁을 원합니다.”
일본의 근대화 실정을 시찰하기 위해 체류 중이던 개화파 지도자 김옥균은, 서양 각국 공사관과 교류하면서 조선의 수교 가능성을 타진했다.
얼마 전인 6월에는, 러시아 공사관을 방문하여 주일 공사 로젠(Rosen)과도 밀담을 나누었다.
러시아에 공포감을 갖고 있던 청나라와 일본의 영향을 받아, 러시아에 대해 경계심을 보이던 다른 조선 관리들과 달리, 김옥균은 러시아에 대해 우호적인 관점을 보였다.
김옥균은 ‘러시아 정부가 이주한 조선인들을 보호’해 주는 것에 경의를 표하면서, 러시아에 대해 극찬한 뒤 서둘러 선린 우호 관계를 맺길 바란다고 희망했다.
이는 러시아가 청과 일본 모두를 견제할 수 있다는 계산에서였다.
‘갑신정변의 실패로 인해 후대에 친일파라는 이미지를 가진 김옥균이지만, 1882년 조선에서는 손꼽힐 정도로 외교 감각이 탁월한 관리지.’
김옥균이 원하는 건 조선의 개혁 그 자체이지, 일본의 힘이 아니었다. 누구든 조선의 근대화에 힘을 빌려줄 수 있다면 손을 잡을 수 있다는 주의였다.
이선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원하는 건 조선의 자주독립과 근대화이지, 러시아의 힘을 빌려 권력을 쟁취하는 게 아니었다.
김옥균에게 일본이 수단이었던 것처럼, 이선에게도 러시아는 수단이었다.
다만 김옥균은 끝내 실패해서 이용만 당하다 버림받았지만, 이선은 열강을 이용해 성공을 쟁취할 것이었다.
“백 공은 지금 아라사로 갈 때가 아닙니다. 즉시 원산에서 기선을 타고 일본으로 가세요. 그리고 김옥균 공에게 전하시오. 조선에서 곧 변란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조정에서는 김 공의 재능을 원하니, 어서 귀국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