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522
– 203화에 계속 –
2부 203화 연합국의 위기
다르다넬스 해협 돌파와 갈리폴리 상륙작전은 처음부터 가능성이 희박했다.
최초의 제안은 러시아에서 나왔다. 해협 봉쇄에 직면한 러시아는 해협 돌파 작전을 요청했다. 흑해 무역로를 상실한 러시아는 강한 경제적 압박을 받고 있었다.
이 제안을 서부전선 이외의 곳에서 활로를 찾으려는 영국 해군장관 처칠이 받아들였다.
그런데 육군장관 키치너 원수는 처칠의 무모한 계획에 반대했다.
“육군은 프랑스 이외의 어떤 곳에도 원정군을 파견할 수 없소. 정 공략하고 싶으면 해군만으로 하시오.”
“좋습니다! 그렇다면 해군의 힘만으로 콘스탄티노플을 무너트리지요.”
문제는 제1해군경(참모총장) 피셔 제독도 반대했다는 것이었다.
“해군만으로 다르다넬스 돌파하지 못합니다. 성공이 불확실한 작전에 신형 전함을 투입시킬 수 없습니다.”
이쯤 되면 육해군 중추의 반대에 물러설 법도 한데, 처칠은 자신의 작전에 집착했다.
“서부전선에서 단기간에 승리를 거두긴 어렵다. 먼저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해 오스만을 패퇴시키고, 중립을 지키는 그리스와 루마니아를 끌어들여 남쪽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를 공략한다.”
처칠의 장대한 대전략에 총리 애스퀴스는 동의했지만, 육군과 해군의 반대에 어쩡쩡한 규모의 병력을 투입시킬 수밖에 없었다.
해군은 최신예 전함을 제외했고, 지상군은 안작(ANZAC, 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군단과 해병사단, 의용군과 신병들로 모집된 육군사단으로 한정했다.
압도적인 규모도 아니고, 기습의 이점도 없는 상륙작전의 미래가 어찌 될지는 뻔했다.
“전함, 포격 개시!”
3월부터 4월 사이에 감행된 다르다넬스 포격전은 영불 연합함대에 상당한 손실을 발생시켰다. 이미 해협에는 기뢰가 촘촘히 박혀 있었고, 좁은 수로에서 기뢰를 피해 가며 포격전을 벌인다는 건 천하의 영국 해군이라 할지라도 어려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해군은 일시적으로 오스만 요새와 포대들을 침묵시키는 데 성공시켰다. 만약 이때 육군을 투입 시켰더라면 상륙이 성공할 수도 있었으나, 지상군 파견은 더디게 이뤄져 안작군단이 도달하는 5월은 되어야 상륙작전 투입이 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전함 충무공 이순신이 투입된 시점은 바로 이 시기로, 지상군의 상륙을 지원하는 작전이었다.
“끝내 갈리폴리로 가나? 안 가면 안 되는 거냐?”
구주원정함대로부터 보고를 받은 이선은 혀를 찼다. 파멸이 빤히 보이는 작전을 말리고 싶었지만, 문제는 연합국 간에 의견 조율이 거의 없었다는 점이었다.
이름만 ‘연합국’이지, 국가 간의 정보 공유와 작전 논의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러시아·프랑스·영국·벨기에·세르비아·몬테네그로·일본·한국 8국 연합국을 통괄하는 기구 같은 건 없었다.
그나마 서부전선의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서는 의사소통이 원활하게 이어졌지만, 지역적으로 분리된 서부전선과 동부전선 간에는 제대로 된 소통도 없었다.
“영국 육군과 해군 사이에도 조율이 안 되는데 연합국 간에 될 리가 있나.”
그나마 러시아는 이선과 니콜라이 2세의 친분 덕에 원활한 의사소통이 가능했다. 하지만 민주국가인 영국과 프랑스는 의사결정기구가 복잡했고, 설령 이선이 총리나 장관 누군가를 설득하더라도 그게 바로 결정에 반영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선은 주영대사 이한응을 통해 처칠에게 작전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으나, 이미 숱한 반대를 들은 처칠은 일축했다.
“황제 폐하께 걱정하지 말아 달라고 전해 주십시오. 만약 전함 이순신이 손실을 입더라도 계약에 따라 확실하게 보상해 드릴 터이니.”
처칠은 이선의 우려를 전함을 상실할까 봐 걱정하는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 걱정도 분명히 있었지만, 이선이 정녕 우려하는 건 연합군의 인명손실이 극대화되는 것이었다.
「친애하는 짐의 형제, 황제 폐하! 영국의 갈리폴리 작전은 긍정적인 결과를 내지 못할 것입니다. 영국 육군과 프랑스군은 남의 일 보듯이 하고 있고, 지상군이 부족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참전 의사를 드러낸 그리스군이라도 작전에 투입시켜야 하는데 그조차도 이뤄지지 않습니다. ……
만에 하나 승리하여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하더라도, 영국은 모든 성과를 독점하려 할 겁니다. 러시아의 남하를 우려하는 영국은 흑해함대의 지중해 진출을 막을 겁니다. 러시아가 해협을 통제하지 못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영국의 무모한 작전을 막아야 합니다. 폐하의 좋은 형제, 이선」
이선은 니콜라이에게 친서를 보냈다.
영국과 러시아가 연합국의 일원일지라도, 그레이트 게임을 벌인 숙적의 기억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차르도 영국의 콘스탄티노플 단독 점령계획에 불안함을 느끼긴 했지만, 이미 프랑스가 러시아에 승전 시에 보스포루스와 다르다넬스 해협의 통제권을 넘겨주겠다고 약속한 상태였다. 프랑스는 영국도 동의하리라고 확신했다.
“뭐, 어쨌든 함락시키면 좋은 일 아닌가? 설령 실패해도 손실은 영국이 보는 거지.”
차르 이하 러시아 군부는 ‘차르그라드(콘스탄티노플) 수복’이라는 대의 앞에 정신이 팔려 있는 상태였다. 현실적으로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의 주력을 상대해야 하기 때문에 콘스탄티노플에 병력을 투입시킬 순 없었지만, 영국이 해낼 수 있다면 좋은 일이었다.
중립을 지키고 있는 그리스도 오스만을 교전국으로 한정한다면 참전할 의사가 있다는 뜻을 전했다. 그리스는 3개 사단을 갈리폴리 작전에 투입시키겠다고 제안했으나, 러시아가 반대했다.
“그리스는 콘스탄티노플을 그들이 수복해야 할 고토이자 성지로 여기고 있다. 그리스군이 작전에 합류하면 문제가 골치 아파진다.”
그리스는 러시아 못지않게, 아니 그보다 더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수복을 원했다. 러시아는 성대한 과실을 그리스 따위에게 나눠 줄 생각이 없었다.
이는 영국도 마찬가지였으니, 프랑스의 약속과 달리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해도 러시아의 통제로 넘겨줄 생각이 없었다. 그야말로 동상이몽이었다.
“나도 모르겠다. 너희들 마음대로 해라. 난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어야겠다.”
‘연합국’의 의사소통 부재에 지리멸렬함에 이선도 더 이상 대전략에 조언하길 포기했다.
* * *
“전함, 포격 개시!”
“전군, 상륙작전 실시!”
1915년 5월 25일, 영국 지중해 원정군이 주력이 된 연합군 병력이 갈리폴리 해안에 상륙했다.
독일군 장성이자 오스만군 원수인 리만 폰 잔더스 장군은 제5군을 지휘하며 방어작전에 만전을 기했고, 그때까지만 해도 무명이었던 34세의 무스타파 케말(Mustafa Kemal) 대령을 발탁하여 참모장 역할을 맡겼다. 잔더스-케말 콤비는 상륙군을 향해 만반의 준비를 갖춰 두었다.
갈리폴리에 지옥도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저, 저런!”
“제기랄, 뭐 하고 있는 거야!”
전함 충무공 이순신에 탑승하고 있던 한국군 장교들은 지상에서 전해지는 참상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지구 반대편에서 온 안작군단 병사들, 대개가 신병인 영국 지중해 원정군은 오스만군의 대포와 기관총 앞에 추풍낙엽처럼 쓰러져 갔다.
연합함대가 해상에서 대대적인 포격을 가하고, 해군항공대가 출격하여 폭격을 가해도 오스만군의 철통같은 방어는 흔들리지 않았다.
“유보트가 동지중해로 진입!”
“으음, 그렇다면 해상에 계속 정박하는 건 위험하다. 일단 퇴각한다.”
독일 유보트 잠수함이 동지중해와 마르마라해에 진입했다는 소문이 퍼진 직후, 실제로 영국군 구형 전함 2척이 유보트의 어뢰 공격을 받아 대파됐다.
연합함대는 부랴부랴 안전한 그리스 렘노스 섬으로 피신했고, 전함 충무공 이순신의 전투 참여도 그것으로 끝이었다.
“천하의 영국군이 어찌 이럴 수가 있나!”
“왜 일본 함대가 작전에 끼지 않았는지 알 것 같군.”
수에즈에 파견된 일본 원정함대는 갈리폴리 작전 참여를 거부하고, 인도양으로 회항했다.
하필 함대 파견을 명분으로 삼아 14개조 요구를 정당화하던 일본이, 중국이 굴복하자마자 태도를 바꾼 것에 영국은 비난을 퍼부었다.
“이제 이용가치가 사라졌다는 건가? 저 일본놈들은 도대체 신뢰할 수가 없군!”
일본의 행태가 영국 입장에선 비열하기 짝이 없었지만, 무모한 작전에 익숙한 일본이 보기에도 갈리폴리 작전은 성공 가능성이 희박했다는 의미였다.
“영국 해군이라고 해서 반드시 유능한 건 아니다.”
“육해공의 완벽한 제병협동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상륙작전은 지극히 어렵다.”
영국 해군이 신형 전함의 투입은 최대한 아끼는 바람에, 충무공 이순신은 작전에서 별다른 역할을 한 바가 없었지만, 대한해군의 미래라 할 수 있는 신순성과 이재수 등 장교들은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해군 수뇌부가 갖고 있던 ‘세계 최강 영국 해군’에 대한 환상이 깨지고, 제병협동이 안 되는 무모한 상륙작전은 필패의 지름길이라는 교훈이 뇌리에 박혔다.
* * *
영국군이 갈리폴리에서 참담한 실패를 맛보는 동안, 다른 연합국 역시 사상자를 늘려 가고 있었다.
“Marchez, marchez!”
5월에 프랑스군이 서부전선에서 감행한 춘계공세는 독일군의 반격으로 좌절되었다. 독일군은 역사상 최초로 염소를 활용한 독가스를 개발해 프랑스군을 향해 뿌렸고,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프랑스군은 쓰러져 나갔다.
이제 금기가 깨져 버리자, 프랑스도 즉각 독가스를 군용으로 개발해 독일군을 향해 뿌렸다.
전쟁은 점점 인세에 강림한 지옥과도 같은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Avanti, avanti!”
6월 23일, 이탈리아가 삼국동맹을 탈퇴하고 오스트리아-헝가리에 선전포고함에 따라 동부전선의 압력이 일시적으로 줄어들었다. 오스트리아-헝가리는 병력의 일부를 이탈리아 전선으로 돌려야 했다.
이탈리아는 곧장 병력을 동원해 새 전선을 열었으나, 오스트리아 국경은 하필 천혜의 요새인 알프스산맥이라 공격 측에 극히 불리했다. 이탈리아의 공세는 지지부진하기 짝이 없었다.
“마침내 때가 왔다. 폴란드 돌출부에서 러시아를 몰아내고, 동부전선을 우세로 전환한다!”
서부전선과 지중해전선이 모두가 지지부진해짐을 틈타, 독일군이 동부전선에서 대공세를 개시했다.
슐리펜 작전의 실패 이후 몰트케가 퇴진하고, 참모총장과 육군장관을 겸임하게 된 팔켄하인은 독일군의 최고 실력자가 되었다.
팔켄하인은 서부전선을 중시했지만, 지금은 동부전선에 공세를 가해야 할 때라고 판단했다.
러시아에 상당한 타격을 가해 전의를 꺾고, 폴란드 돌출부를 확보하기 위해 대공세에 나섰다.
러시아군에게 치명타가 될 하계공세의 막이 올랐다.
“Vorwärts!”
6월 1일,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는 110만 병력을 동원해 폴란드 돌출부를 향해 대공세를 개시했다.
폴란드 남부의 제슈프-프셰미실(Przemyśl) 방면으로 독일 11군과 오스트리아-헝가리 2개 야전군이 진격했다.
프셰미실 요새는 전쟁 초기에 러시아군이 6개월간의 포위전 끝에 간신히 점령했던 요새였지만, 독일-오스트리아 동맹군의 공세 앞에 역으로 포위당하고 말았다.
러시아군이 오스트리아-헝가리를 상대로 우세를 점했던 갈리치아 전선(남서전선군)마저도 패퇴하기 시작했고, 독일군이 북부에서도 공세를 가하자 러시아군의 손실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시작했다.
6월 한 달 동안, 러시아군은 40만 이상의 사상자와 포로를 내고 전선이 붕괴했다.
이탈리아의 참전도 당장은 큰 도움이 되지 못했으니, 알프스산맥에 막혀 버렸기 때문이었다.
“이제 방어할 방법이 없습니다. 3방면에서 동시에 공격을 당하고 있는 폴란드 돌출부를 적에게 내주고 전선을 정리해야 합니다.”
“이대로 순순히 폴란드를 내주면 러시아제국의 위신이 어찌 된단 말이오?”
“예로부터 러시아의 전략은 공간을 내주고 시간을 얻는 것입니다! 지금은 지연전에 나서야 합니다!”
러시아의 비스툴라(Vistula, 비스와) 방어선은 서남북 3면에서 두들겨 맞고 있었다.
러시아군의 손실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설상가상으로 야포와 탄약이 부족해 제대로 된 반격을 할 수가 없었다.
이제 러시아군은 퇴각해서 전선을 축소할 수밖에 없었다.
「지연전을 펼치며 철수하라. 가능하면 최대한 오래 버텨 볼 것.」
“지연전을 펼칠 여유조차 없다. 제때 철수하지 않으면 포위섬멸당할 판인데!”
남서전선군 참모장으로 임명되어 철수 작전의 실무를 맡게 된 브론스키 장군은 씁쓸한 어조로 총사령관의 명령문을 읽었다.
“어쩔 수 없다. 포위당하기 전에 퇴각하라.”
최악의 전황 속에서도 분전하던 브루실로프 장군의 제8군조차도 포위당하는 최악의 사태를 피하기 위해, 일전에 점령했던 오스트리아령 갈리치아의 주도 렘베르크(Lemberg, 리비우)를 포기하고 퇴각했다.
“바르샤바로 진격한다!”
독일군은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를 향해 공세를 펼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그동안 바르샤바를 향한 공세는 번번이 실패했지만, 이번 전투는 서남북 3면에서 완전한 공세를 가할 수 있었다.
3차 바르샤바 전투는 러시아군에 최악의 패배를 안겨 주었다. 러시아군 15개 사단은 문자 그대로 궤멸당했고, 20개 사단도 전투를 포기하고 퇴각했다.
9월 5일, 마침내 바르샤바가 함락되었다.
“폴란드를 포기한다. 쿠투조프 장군의 전례를 따라 청야작전을 벌이며 퇴각한다.”
러시아군 총사령관 니콜라이 대공(차르의 당숙)은 폴란드 돌출부를 포기하고 전면적인 퇴각을 명령했다.
폴란드는 물론이고, 북으로는 리투아니아에서 남으로는 갈리치아까지 포기하고 수백 킬로미터 동쪽으로 퇴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러시아군은 고전적인 청야작전, ‘초토화’ 작전을 감행했다.
1812년 나폴레옹 전쟁보다 훨씬 거대한 규모에서 벌어지는 세계대전에서 초토화를 감행한다는 건, 여러모로 치명적인 결과를 낳고 말았다.
「러시아군이 폴란드 전선에서 전면적으로 패퇴하고 있습니다. 총사령부는 질서정연하게 이뤄지는 전략적 철수임을 강조하지만, 대패라는 소문이 파다합니다. 일설에는 사상자가 100만에 달하고, 포로도 100만에 달한다고 합니다. 200만이나 되는 병력이 소멸한 것입니다. 군수물자의 부족은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연합군의 조속한 지원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러시아군은 붕괴할 것입니다.」
주러시아대사관의 이상설과 이위종이 확보한 정보로 보낸 전문은 암울하기 짝이 없었다.
아무리 인력이 풍부한 러시아라도 200만이나 되는 병력이 소멸한다면 엄청난 손실이었다.
러시아군이 당장은 붕괴하지 않겠지만, 이런 손실이 누적된다면 실제 역사처럼 패전은 필연이었다.
“안 되겠다. 이대로 러시아가 패배하게 내버려 둘 수 없다.”
1915년은 연합국의 위기이자 실로 최악의 해였다.
개전한 지 꼭 1년, 그동안 산동 전역을 제외하면 전쟁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았던 이선이었지만, 이제 관망만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연합국의 일원인 대한제국에도 역할이 필요한 시기가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