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524
– 205화에 계속 –
2부 205화 대한육군항공대
“니콜라이 대공이 해임되고 황제 폐하께서 직접 총사령관을 맡으셨다고?”
“폐하께서 총사령관에 오른다고 전황이 달라질 리가 있겠나?”
전방의 하급 장교인 표트르 최조차 차르의 조치에 실망했다. 니콜라이 대공이 무자비하기는 해도, 황족 중에서는 유능한 군인이었다. 전쟁에 대해 전혀 모르는 차르보다야 나을 터였다.
‘도저히 이 전쟁이 어떻게 될지, 아니 내가 살아남을 수 있을지나 의문이군.’
표트르는 다른 병사들처럼 승전에 대한 기대를 포기했다. 새로운 목표는, 이 무의미해 보이는 전쟁에서 살아남는 것이었다.
전쟁은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안개처럼 끝이 보이지 않았다.
빌나(리투아니아 빌뉴스) 함락 이후, 독일군의 공세는 잠잠해졌다. 이미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전역이 독일의 손에 넘어갔고, 날도 점차 추워지면서 공세를 중단한 것이었다.
전황이 소강상태에 접어든 1915년 10월 하순, 표트르는 야전군 사령부의 부름을 받았다.
“표트르 알렉세예비치 초이 중위, 귀관은 제국육군항공대 사령부로 전속되었네.”
“예? 제가 말입니까?”
의외의 명령이라 표트르는 놀랐다. 종종 전선에 나타나 하늘을 나는 항공기를 부러워하긴 했지만, 그 자신이 항공대에 배치될 것이라곤 생각도 못 했다.
“저는 보병 출신이라 항공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습니다만…….”
“상관없네. 사령부에서 귀관에게 기대하는 건 한국어 실력이니까. 귀관은 통역장교를 맡게 될 거네.”
“예? 통역장교요? 러시아어를 못하는 고려인들도 징집되었습니까?”
표트르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고려인들 중에선 러시아 학교를 다니지 않아 러시아어를 못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런데 그런 이들을 육군 내의 엘리트인 항공대에 배치하진 않았을 것 같았다.
“그게 아니라, 한국이 항공대를 파견했네. 그쪽에서도 러시아어 통역관을 파견하긴 했는데, 원활한 소통을 위해선 우리도 통역을 배치해야지. 귀관은 양군 간에 연락장교도 겸하게 될 것이다. 이상.”
표트르는 이제야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 자신이 한국군 연락장교로 배치된다는 명령에 기분이 미묘했다.
‘부모님의 나라가 러시아로 항공대를 파견했단 말인가.’
표트르 알렉세예비치 최는 러시아 연해주에서 태어나고 자란 고려인이었다. 함경도 출신인 그의 부모는 러시아로 이주하여 부농으로 성공했다.
1880년대 이주 초기, 연해주는 이주민들에게 기회의 땅이었다. 통역으로 시작해 군수상으로 크게 성공, 이주민들에게 아낌없이 지원하여 고려인 사회의 지도자로 떠오른 표트르 세묘노비치 최, 최재형이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표트르의 아버지도 부농으로 성공할 수 있도록 최재형이 많은 도움을 주었고. 표트르의 이름도 바로 최재형에서 따온 것이었다.
“우리 한인들은 주로 농업에 종사하지만, 러시아 사회의 다양한 영역으로 진출할 필요가 있네. 특히 장교는 인종차별이 덜하고 빠르게 성공할 수 있는 길이지.”
최재형은 재능 있는 고려인 청년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해 유럽 러시아로 유학 보냈고, 표트르는 사관학교에 진학했다.
사관학교 졸업 후, 휴가를 얻어 소위 군복을 입고 귀향한 표트르에게 최재형의 격려가 있었다.
“30년 전 고려대대 이후 한인들은 여러 장교를 배출해 왔고, 러시아제국을 위해 충성해 왔네. 대표적으로 빅토르 김 대령이 있지. 앞으로 더욱 우리 한인들의 능력과 충성심을 보일 필요가 있네. 그 선봉에 있는 자네는 한인 사회의 자랑일세!”
“감사합니다. 선생님의 기대에 반드시 보답하겠습니다!”
표트르도 고려대대의 전설에 대해 익히 들어 왔었다. 이주 초기인 1881년, 러시아 당국의 행정력은 미치지 않고, 국경 너머에서 온 중국 마적들이 들끓어 이주민들에게 큰 고통을 안겨 주던 시절.
조선의 왕자가 나타나 군대를 조직하고, 마적들을 무찌르고, 이주민 사회의 기초를 닦았다.
그 왕자가 바로 오늘날 한국 황제이고, 그를 보좌했던 사람이 바로 최재형이었다.
최재형의 영향을 받은 표트르는 자연히 러시아 국적이면서도 한국인의 정체성을 잃지 않았고, 한국어와 러시아어를 모두 유창하게 구사했다.
‘30년 전만 해도 아무것도 없는 나라라고 들었는데, 이제는 독자적인 항공대를 운영해 러시아에 파병까지 가능하다니.’
표트르는 묘한 기대감과 자부심이 들었다. 비록 러시아인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그는 언제나 ‘카레예츠(한인)’였다. ‘카레예츠’의 범주에는 그처럼 러시아 국적의 고려인이나 진짜 한국인이나 모두 들어갔다.
결국 한국이라는 나라의 위상이 그의 인생에도 영향력을 미쳤으니, 한국이 파병까지 할 정도로 러시아의 우방이란 점은 그의 인생을 바꿨다.
최전선의 참호에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운명에서, 육군항공대 사령부의 연락장교로 바뀌었으니 말이다.
* * *
1915년 11월. 모길료프, 스타프카(총사령부).
제국육군항공대는 스타프카 직할로, 육군항공대 사령부 역시 모길료프에 있었다.
육군항공대 사령부 장교로 배속된 표트르는 모길료프로 전속됐다.
사령부에 전속을 신고하자, 대령 계급을 단 동양인 고급장교가 표트르의 앞에 나타났다.
“귀관이 표트르 최 중위인가?”
“예, 그렇습니다!”
“반갑네. 난 빅토르 니콜라예비치 김 대령일세.”
“안녕하십니까, 대령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빅토르 김 대령의 명성이라면 표트르도 익히 잘 알고 있었다. 러일전쟁의 공훈자이자, 고려인 최초의 장군 후보로 여겨지는 영웅이었다.
“표트르 세묘노비치(최재형)로부터 귀관에 대한 추천서를 받았네. 귀관의 약력을 살펴보니 사관학교 성적도 출중하고, 전방에서 1년간 복무하며 공훈도 세웠더군. 그래서 내가 귀관을 선발했네.”
“영광입니다!”
“나는 스타프카 소속으로 한국군과의 연락을 총괄하고 있고, 앞으로 귀관은 내 직속으로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예, 알겠습니다!”
표트르는 여러 고려인 장교 중에 자신이 빅토르 김으로부터 선발되었다는 말을 듣고 기뻤다.
“그럼 바로 업무를 시행하지. 따라오게.”
표트르는 빅토르의 안내를 받아 사령부 한쪽으로 향했다. 러시아군과 다른 제복을 입은 동양인이 빅토르 김과 경례를 주고받았다.
“안녕하십니까, 장군님. 앞으로 통역 겸 연락장교를 맡을 이를 데려왔습니다.”
“대한국 육군항공대 사령관 노백린 참장이오. 반갑소.”
“표트르 최 중위입니다, 각하.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예의를 갖춘 표트르의 인사에 노백린이 껄껄 웃었다.
“러시아에서만 살지 않았소? 한국어 인사에 정통하군.”
“미리 연습했습니다.”
“하하! 그런 준비성 좋소. 귀관은 당분간 우리 항공대 조종사들에게 항공과 관련된 러시아어 회화를 가르쳐 줬으면 하오.”
표트르의 첫 임무란, 바로 한국 육군항공대 조종사들에게 항공과 관련된 러시아어를 가르치는 것이었다.
항공대 조종사들은 한국군 내에서도 최고 엘리트였고, 미국 유학파도 있었기에 대개 영어가 유창했다.
문제는 러시아 조종사들은 대개 프랑스어나 독일어를 구사할 줄 알았지만, 영어를 할 줄 아는 이가 드물다는 것이었다.
함께 작전을 수행할 연합군 간에 의사소통은 중요했다. 한국 조종사들은 신속하게 러시아어를 익히게 되었다.
‘제길, 항공 용어는 나도 잘 모른다고.’
사관학교에 진학하기 전 표트르는 사범학교에 재학했었는데, 아무래도 사범학교 학력 때문에 뽑힌 게 아닌가 싶었다.
러시아에서 사용하는 항공 용어 자체가 대부분 프랑스어에서 기원한 것이었고, 표트르는 이중으로 끙끙대며 언어를 가르쳤다.
그 과정에서 표트르는 비행대장인 유왈보 참령과 꽤나 친밀해졌다. 연배도 비슷했고, 말씨도 유사했다.
“최 중위 부모님은 고향이 어딥니까?”
“함경도 원산입니다.”
“오, 어쩐지. 나는 평양 출신이지만 어린 시절에는 양부를 따라 원산에서 살았다오. 이거 반갑군.”
이야기를 들어보니, 유왈보는 이미 칭다오 전투에서 독일 항공대와 교전을 벌인 경험이 있었다.
“그런데 독일 항공기는 겨우 1대에 불과했소. 대한 항공대에는 사실상 이번이 첫 참전이지. 그러니 철저히 대비해야 합니다.”
“연합군이 함께한다는 건, 군의 사기에 큰 힘이 될 겁니다.”
표트르는 한국군의 참전 자체에 높은 점수를 주었다. 당장 전력 상승에 큰 도움이 되진 않겠지만, 말로만 듣는 게 아니라 눈으로 보이는 연합군의 존재는 떨어지고 있는 사기에 반전 요소가 될 수 있었다.
육군항공대 파병은 실질적인 요소보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더 컸다.
원수부 항공국장 노백린은 사령관을 맡게 되었다.
첫 파병 전투비행단은 광무 복엽전투기 20대와 일리야 무로메츠 중폭격기 10대로 구성되었다.
이는 대한제국 육군항공대 전력의 대부분을 차지했고, 특히 조종사들은 쉽게 대체할 수 없는 한국 최고의 엘리트들이었다.
“러시아군의 지휘는 받되, 독자적인 작전권을 갖게 될 것이네. 항공대를 헛되이 소모해서는 안 되네. 철저한 현지 적응 훈련 후에 전선에 투입하도록.”
“삼가 대원수 폐하의 명을 받듭니다!”
이선은 노백린에게 특명을 내렸다.
대한육군항공대 구주전투비행단은 러시아 제1전투비행단과 함께 남서전선군에 배치하기로 합의했다. 독일군이 아닌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이 주력인 전선이었다.
명목상 남서전선군 편제하에 있었지만, 작전에 재량권을 갖고 있었다.
“대한육군항공대 출진!”
“대한의 용사들이여, 공훈을 세우고 무사히 돌아오라!”
육군항공대 구주전투비행단은 국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나섰다.
전투기와 폭격기는 특별열차에 실려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타고 유럽 러시아로 향했다.
모스크바를 경유해 모길료프에 도착한 육군항공대는, 우크라이나 키예프 비행장으로 이전해 현지 적응훈련을 마칠 예정이었다.
“전선이 소강상태로 접어들었고, 적도 겨울철에는 별다른 공세가 없을 게 확실합니다.”
“3개월간 현지 적응훈련을 한 후, 내년 2월부터 전선에 투입하는 거로 합의했습니다.”
한국 육군항공대의 투입은 1916년 2월로 예정되었다.
1915년에 연전연패한 러시아군은 1916년 봄에 대공세를 계획했다.
남부전선에서 상대적으로 만만한 오스트리아-헝가리군에게 일격을 가하고, 카르파티아 산맥을 넘어 헝가리 평원으로 가는 길을 열겠다는 계획이었다.
독일군에 연전연패하고 있는 러시아군이지만,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을 상대로는 강세를 보였다.
“이탈리아의 참전으로 오스트리아군의 전력이 약화된 건 다행이나…….”
“불가리아가 적으로 참전하는 바람에 세르비아가 붕괴한 게 치명적이군요.”
1915년 10월, 불가리아가 중부 동맹국에 합류했다.
연합국은 불가리아의 중립을 대가로 마케도니아의 일부를 떼어 주겠다고 제안했으나, 세르비아와 그리스의 반발로 협상이 지지부진했다.
동맹국은 1913년 2차 발칸전쟁에서 불가리아가 상실한 모든 영토를 보상해 주고 세르비아 영토를 추가로 할양해 주겠다고 제안하자, 불가리아는 4국 동맹에 합류하는 길을 택했다.
불가리아의 참전은 세르비아군의 붕괴로 귀결되었다. 오스트리아-헝가리를 상대로 의외로 분전하고 있던 세르비아는 불가리아군의 일격에 무너지고 말았다. 인구 500만에 불과한 불가리아는 단기간에 60만 대군을 동원하는 기염을 토했고, 패전 이후 칼을 갈아온 불가리아군의 공격에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의 공세가 더해지자 세르비아는 수도 베오그라드에 이어 국토 대부분이 함락되었다.
11월 말, 연합군은 세르비아의 방어를 포기했고, 세르비아군은 겨울에 알바니아 산맥을 넘어 그리스령 코르푸로 고통스럽게 퇴각하는 과정을 거쳤다.
세르비아 전선은 붕괴했고, 연합군 발칸원정대는 그리스령 테살로니키(살로니카)에 틀어박혔다.
“러시아가 튀르크로부터 해방시킨 불가리아가 적이 되다니, 어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슬라브-정교회 형제를 배신하다니, 이런 배은망덕한…….”
갈리폴리 작전의 실패, 동부전선의 참패, 발칸전선의 붕괴는 러시아의 군사적 전망을 갈수록 암울하게 만들었다.
불가리아는 1878년 러시아-튀르크 전쟁의 승리로 해방된 이래 대표적인 친러국가였으나, 발칸전쟁 이후 친독으로 돌아서고 말았다.
세르비아에 비수를 꽂은 불가리아에 러시아인들은 배신감을 느꼈고, 공교롭게도 때마침 나타난 한국 육군항공대의 존재는 이들에게 기쁨을 안겨 주었다.
총사령관을 겸임하고 있는 니콜라이 2세가 모길료프에서 친히 환영 행사를 열 정도였다.
“대한제국 육군항공대 유럽전투비행단 사령관 노백린, 러시아제국 황제 폐하께 최상의 경의를 표합니다!”
“어서 오시오, 장군. 러시아는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하오.”
차르는 노백린에게 친근하게 악수를 청하고, 아직 특별히 전공을 세운 게 없는데도 성 게오르기 훈장을 수여했다.
연전연패를 거듭하고 있는 러시아로서는 분위기를 환기할 필요가 있었고, 소수나마 연합군으로 합류한 한국 육군항공대는 좋은 선전거리가 되었다.
“한국을 한때 동방의 불가리아로 여겼는데, 황인종 이교도인 그들이 오히려 더 충직한 벗이다.”
“과연 한국인들은 우리의 충실한 동맹이다!”
“한국 황제 폐하는 로마노프 왕조의 오랜 벗이 아니던가!”
“러시아 만세! 한국 만세! 연합군 만세!”
서부전선에 참전한 미국 의용군 ‘라파예트 비행대(Lafayette Escadrille)’가 프랑스인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은 것처럼, 한국 육군항공대도 러시아인들의 환대를 받았다.
“비행단만으로 이렇게 기뻐하다니, 육군이라도 파병하면 난리 나겠군요.”
“실질적으로 전력에 도움이 되느냐를 떠나서, 러시아인들이 느끼는 고립감을 극복할 수 있으니까요.”
1915년 말까지 동부전선은 러시아 단독으로 책임지고 있었다. 비록 소수라 할지라도 연합군의 등장은 군의 사기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터였다.
“내년에 계획된 러시아군의 공세가 성공할 수 있겠소?”
“솔직히 말씀드리면, 회의적입니다. 러시아군의 인력은 풍부하지만, 군수생산이 너무 부족합니다. 해외에서 많이 수입해 온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전선에는 야포와 포탄이 부족합니다.”
전시체제로 돌입했다고 해도, 러시아는 여전히 군수생산에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한국이 열심히 생산해서 수출했지만, 공급할 수 있는 물량도 한정적이었다.
“꼭 부정적으로만 볼 건 아닙니다. 서부전선에서 영불 연합군, 지중해전선에서 이탈리아가 동시에 공세를 가해 적들의 주의를 돌린 후에, 오스트리아-헝가리를 향해 일격을 가하면…….”
연합국은 1916년에 세 방면에서 총공세를 벌이겠다는 복안을 갖고 있었고, 러시아의 공세 계획은 그 일환이었다.
“그럼 아무래도 독일군의 전력은 서부전선에 집중되겠죠?”
“그럴 겁니다. 어쩌니저쩌니해도, 독일은 서부전선을 가장 중시하니까.”
멀리 한국에 있는 이선도, 1916년도에 독일군의 공세는 서부전선에 있으리라 예상했다.
‘역사대로라면 베르됭을 향해 독일군이 대공세를 펼치겠지. 그렇다면 러시아는 재정비할 여유를 얻을 수 있을 거야.’
육군항공대 파병 이후, 이선의 관심사는 당분간 러시아에서 중국으로 돌아왔다.
1915년 12월, 중국 정세가 다시 급변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