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527
– 208화에 계속 –
2부 208화 호국전쟁
1915년 12월, 손문은 김옥균과 모종의 밀약을 맺고 홍콩으로 돌아왔다.
얼마 후, 전 운남도독 채악(蔡鍔, 차이어)이 홍콩으로 손문을 찾아왔다.
호남성 태생으로 일본 육사 출신인 채악은, 신해혁명 당시 봉기군에 가담하여 운남과 사천을 해방시킨 서남지방의 영웅이었다.
운남도독으로 재임하던 중, 원세개의 군사정변이 발생하자 민국정부를 옹호하려 하였으나, 국민당 정권이 빠르게 무너지는 바람에 대응하지 못했다. 원세개의 경계를 받은 채악은 운남도독에서 사임하고, 신병치료를 핑계로 일본으로 떠났다.
“오랜만에 만납니다, 채 도독. 건강이 안 좋아 일본으로 떠났다는 말은 들었습니다만. 평안합니까?”
채악의 건강이 안 좋았던 건 사실이라, 원세개는 의심하면서도 일본행을 승인했다. 채악은 일본에서 치료를 받다 은밀히 대만을 경유해 홍콩으로 향했다.
“소생의 건강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대총통 각하, 저와 운남군은 원세개의 반란정권을 인정하지 않고 합법적인 민국정부만을 지지합니다.”
채악의 나이는 한창인 33세에 불과했으나, 깡마르고 창백한 인상으로 인해 군인이라기보다는 병약한 학자 같았다. 그럼에도 뛰어난 지도력과 굳건한 의지로 운남 장교들의 확고한 지지를 받고 있었다.
채악을 위험인물로 여긴 원세개의 경계와 감시에도 불구하고, 채악은 신임 운남도독 당계요(唐繼堯, 탕지야오)와 암호를 주고받으며 봉기계획을 세웠다.
“도독이 지지해 주니 천군만마를 얻은 것과 같소이다. 계획이 어찌 됩니까?”
“제가 운남으로 돌아가는 즉시, 운남군은 봉기를 일으키기로 계획했습니다. 운남을 시작으로, 귀주와 광서에서도 호응할 계획입니다. 이어서 각성에 봉기를 호소할 것입니다.”
중국의 남서쪽 끝인 운남에서 시작해 군벌정권을 타도하겠다는 계획은 얼핏 무모해 보였으나, 무모하기로는 둘째가면 서러울 ‘손대포’ 손문은 기꺼이 받아들였다.
“훌륭한 계획이오! 나는 광동에서 시작해 북벌을 개시하려 합니다. 나와 도독이 힘을 합쳐 각성에 지지를 호소하면, 원세개를 격파하고 북벌을 완수할 수 있을 것이오.”
운남군이라는 확고한 군사적 기반이 있는 채악에 비교하면, 손문과 국민당은 명분은 충분해도 병력이 없었다. 의아하게 생각한 채악이 물었다.
“광동에서 병력은 어떻게 확보할 생각이십니까?”
“전 강서도독 이열균과 광동도독 진형명이 광동을 접수할 계획이오.”
“하지만 원세개도 광동을 주목하고 있지 않습니까? 광동은 대총통 각하의 고향이자 국민당의 확고한 기반이니…….”
원세개도 친국민당 계열의 군벌들을 경계해, 이들을 모조리 도독과 독군직에서 해임했다. 강서의 이열균과 광동의 진형명(陳炯明, 천중밍)도 경질되어 홍콩으로 망명했다.
“그건 걱정 마시오. 광동인의 대부분은 여전히 우리를 지지하오. 도독은 걱정 말고 운남으로 가서 기의를 일으켜 주시오.”
“알겠습니다. 제가 운남에 도착하는 대로 전보를 보내겠습니다.”
“고맙소. 혁명의 승리를 위해 함께 목숨을 바칩시다.”
손문과 채악은 엄숙한 표정으로 악수했다.
채악은 엄밀히 말하면 국민당보다는 진보당에 더 가까웠으나, 원세개 타도라는 목표를 갖고 손문과 손을 잡았다.
운남에서 봉기를 일으키면, 광서군벌 육영정(陸榮廷, 루룽팅)과 진보당의 양계초가 호응하기로 했다.
운남군과 광서군이 사천과 호남으로 진격하면, 광동에서는 진형명이 봉기를 일으켜 손문을 추대하고 북벌을 개시한다는 계획이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국민당을 확고하게 옹위할 수 있는 병력이오. 3개 사단을 무장할 수 있는 자금을 지원받았으니 모병에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오.”
“호오, 3개 사단이면 광동을 장악하고 북벌을 개시하기에 충분할 겁니다.”
군사력의 부재를 절감한 손문은, 군벌이 아닌 정부 직속인 국민군 창설을 계획했다.
군자금의 출처는 바로 대한제국이었다. 제국익문사는 국민당에게 은밀히 자금을 전하는 한편, 무기도 홍콩을 통해 밀반입시켰다.
손문은 그 대가로 ‘중화민국은 북청의 강역을 영구히 포기하고 개입하지 않는다’는 밀약에 서명했다.
대외적으로 공개되지 않은 밀약이었지만, 한중 대표자 간에 합의는 이뤄졌다.
채악은 프랑스령 베트남을 경유해 운남의 성도 곤명(昆明, 쿤밍)에 도착했다.
중화민국 5년(1916) 1월 25일.
채악은 운남도독 당계요 이하 장교들을 소집하여 ‘호국군(護國軍)’ 창설을 선언했다.
“원세개는 민국과 민중을 배반하고 군사독재자가 되었다. 그런데 이에 만족하지 못하고 황제 즉위를 도모하고 있으니, 어찌 용납할 수 있겠는가? 이에 우리 호국군 일동은 다음과 같은 사항을 선포하는 바, 4억 중화민국 인민의 적극적인 호응을 바라노라.”
1. 국민이 합심하고 협력하여 독재자를 타도하고 공화국을 지킨다.
2. 군주제를 영구히 저지한다.
3. 제헌의회를 소집해 약법을 대체할 헌법을 제정한다.
4. 중앙과 지방의 권한을 정하여, 각성의 자유로운 발전을 도모한다.
독재 타도, 군주제 저지, 헌법 제정, 연성자치 실시를 골자로 하는 호국군의 선언문이 선포되어 봉기 참여를 호소했다.
운남은 상징적인 표시로 독립을 선언했다. 신해혁명 당시 호북을 시작으로 청조에서 독립을 선언한 것과 같은 맥락이었다.
이른바 ‘호국전쟁’의 발발이었다.
* * *
“채악이 운남에서 반란을 일으켰다고? 놈을 진작 제거했어야 했는데!”
운남 독립선언을 들은 원세개는 즉각 진압을 명령했다. 반란을 조속히 진압하지 않는다면, 마치 신해혁명 당시의 청조처럼 무너질 가능성이 있었다.
“주요 군벌들이 나를 지지하니, 변방의 적들이 어찌 감히 나를 위협하겠는가? 봉기가 서남 변방으로만 제한된다면, 충분히 막아 낼 수 있다.”
일부 성들을 제외하면, 군벌들 대부분은 원세개 지지를 천명해 왔다. 지난 1년 동안 원세개는 막대한 돈을 써 가며 직할군을 강화하고 군벌들을 매수했다. 4대 군벌인 남양파, 직례파, 안휘파, 호광파 모두 지지를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13개조 조약에 반대하며 고향에 돌아간 단기서가 마음에 걸리기는 했지만, 골수 프로이센식 군국주의자인 단기서가 민주주의와 연성자치를 외치는 호국군에 동조할 가능성은 희박했다.
“광동은 중화민국의 합법적인 지도자인 손문 대총통을 옹위하며, 호법정부가 수립되었음을 선언한다! 반역자 원세개를 토벌하자!”
운남 독립선언 1주일 후, 손문으로부터 호국군 제2군 사령관으로 임명된 이열균이 광동의 성도인 광주(광저우)를 점령하고, 이른바 호법(護法)정부를 선포했다. 원세개 정권을 불법정부라고 규정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사천으로 진격하여 해방시키고, 호북과 호남으로 진격한다!”
호국군 제1군(운남군) 사령관 채악은 병든 몸을 이끌고 몸소 사천으로 진격했다.
병력과 물자의 압도적인 열세에도 불구하고, 높은 사기를 자랑하는 호국군은 사천군을 격파하고 북진했다.
호국군의 선전에 귀주성도 독립을 선포했고, 당초 계획과 달리 사태를 관망하며 눈치를 보던 광서도독 육영정도 광서성의 독립을 선언했다.
운남의 봉기 한 달 만에 운귀-양광 서남 4성이 반란에 가담하자, 원세개도 다급해졌다.
“반란군을 조속히 진압하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마라!”
원세개는 남양군과 동맹 군벌들을 서남전선으로 거듭 보냈다.
여전히 병력은 원세개가 압도적으로 많았고, 전세도 불리하지 않았다.
‘청조도 압도적인 우세를 누리다가 망했지. 내가 남경에서, 단기서가 북경에서 민국에 가담했기 때문에 그리된 게 아닌가. 만약 군벌들이 이탈하면 끝장이다. 대안이 없을까? 역시 가장 강력한 동맹 상대는…….’
호국전쟁은 신해혁명 초반부의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신해혁명과 같은 불안감을 느낀 원세개는 일본에 더 밀착하는 길을 택했다.
어차피 일본과 조약을 맺고 욕을 먹은 바에야, 아예 일본을 뒷배로 삼아 반대세력을 진압하겠다는 속셈이었다.
「복건의 사법권을 양도한다. 무창-남창 철도, 항주-남창 철도, 항주-조주 철도의 부설권과 운영권을 양도한다. 청도와 연대를 포함한 산동 연해의 항구, 일본이 원하는 절강 연해의 항구를 일본에 조차한다. 일본인 재정고문과 군사고문을 초빙한다. 한야평공사 외에도 일본이 원하는 병기창을 중일 공동으로 운영한다.」
13개조 요구를 능가하는 매국적인 밀약을 제시하는 대가로, 원세개는 일본에 정권 지지와 내란 진압을 요청했다.
만약 일본이 이 제안을 받아들여 호국군을 제압한다면, 중국은 사실상 일본의 보호국 처지가 되는 신세였다.
“이런 미친놈들을 보았나? 아무리 열강이 유럽에서 전쟁 중이기로서니, 일본이 중국을 통째로 먹어 치우려고 해?”
어찌 된 노릇인지, 원세개가 제시한 밀약의 내용이 주중 미국 공사 폴 라인시(Paul S. Reinsch)의 손에 들어갔다.
진보적인 정치학자이자 윌슨 대통령의 동료인 라인시는 중국의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입장이었다.
“동양과 서양의 두 공화국은 더욱 가까워질 것이며, 경제와 무역에서 기꺼이 호혜적인 협력자가 될 것이다.”
국민당 정권의 민주주의 실험을 긍정적으로 보았던 라인시는, 원세개의 군사 쿠데타를 당연히 부정적으로 판단했다.
이윽고 일본이 충격적인 요구를 중국에 강요하고, 심지어 보호국이나 다름없는 매국적인 제안까지 나오자, 라인시는 원세개를 일본이 조종한다고 확신했다.
“일본 제국주의는 동양에서 악의 체현(體現)이고, 자유와 민주주의의 적이며, 장래에 있을 세계 분쟁의 원인이다.”
라인시는 미국 정부와 언론에 밀약 요청서를 폭로하고, 만악의 근원을 일본이라고 규정했다.
라인시의 폭로는 미국의 정책변화뿐만 아니라, 중국의 여론을 격동시켰다.
원세개와 일본 정부는 즉각 밀약 제안이 사실이 아니라고 발표했지만, 이미 중국 국민에게 각인이 된 상황이었다.
“원세개 이놈은 역시 일본의 꼭두각시였구나.”
“원세개는 일본의 앞잡이, 한간이다! 토원하자!”
토원(討袁), 즉 원세개를 토벌하자는 외침이 더욱 커졌다.
병력의 우세에도 불구하고, 원세개는 더욱 궁지에 몰리고 있었다.
일본도 원세개에 대한 지지를 포기한 것이다.
“미친 외교로 국제적 고립을 자처한 가토를 빨리 경질하시오! 가토를 경질하지 않으면, 내각이 무너질 걸 각오해야 할 거요!”
원로 이토 히로부미와 마쓰가타 마사요시가 총리 오쿠마 시게노부에게 외무대신 가토 다키아키의 경질을 요구했다.
이토는 중국에 대한 가혹한 요구로 서양 열강으로부터 따돌림당할 것을 우려했고, 실제로 라인시의 폭로 이후 미국의 압력이 들어오자 크게 우려했다.
“유럽 열강들은 전쟁 중이라 그렇다 치고, 미국을 어찌 무시할 수 있겠나? 미국도 중국 시장을 노리는 건 마찬가지 아닌가. 삼키지도 못할 중국을 먹으려고 미국한테 밉보인다면, 그야말로 소탐대실이다.”
원로들의 압박에 오쿠마도 태도를 바꿔 가토를 경질했다. 신임 외무대신 이시이 기쿠지로(石井菊次郎)는 원세개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전임 가토가 조약을 맺고 1916년도에 집행될 대중(對中) 차관분을 유보했다.
“이런 망할 왜놈들 같으니! 밀어 준다고 약속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태도를 바꿔? 배신자놈들! 신의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놈들!”
일본의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에 원세개는 당혹감을 느끼다 못해 분노가 폭발했다.
원세개는 총통 관저의 눈에 보이는 물건들을 죄다 집어던지고 난 다음에야 냉정을 되찾았다.
“이기면, 일단 이기면 되는 거다. 여전히 병력은 우리가 압도적으로 많다!”
원세개는 자신의 가장 충실한 동맹인, 직례파 수장 풍국장에게 남진을 명령했다.
북청과의 전쟁에 대비해 북경을 지키는 군대였지만, 발등에 불이 떨어진 원세개로서는 그딴 건 알 바 아니었다.
“원 영감이 내게 후계자 자리를 약속했는데, 이대로 쫓겨나면 곤란하지.”
원세개는 10년 임기가 끝나면 대총통직을 연임하지 않고 풍국장에게 넘겨주겠다고 약속했고, 탐욕스러운 풍국장은 이에 동조했다.
청조 최강이었던 북양군의 직계인 직례파를 이끄는 풍국장의 출진은 기울어가던 전세를 뒤바꿀 수 있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변수가 발생했다.
* * *
“미국을 움직여 일본의 개입을 막았으니, 이번엔 만주를 이용해 중국을 흔들어 볼까.”
급박하게 전개되고 있는 동양 정세에, 이선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원세개의 밀약 제안을 미국 공사가 확보할 수 있었던 건, 익문사에 매수된 중국 고위 외교관이 사본을 넘겨주었기 때문이었다.
주중 외교관을 철수시킨 한국은 직접 발표하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미국 공사관에 들어가도록 유도했고, 그 결과 미국이 일본의 개입을 막도록 압박할 수 있었다.
“중국에 내란이 발생했으니, 역적들을 토벌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부디 귀국이 도와주십시오!”
호국전쟁이 발발하자, 북청 군기대신 겸 총사령 장훈은 한국에 거듭 지원을 요청했다.
북청의 지원 요청을 번번이 거절하던 한국이었지만, 이번에는 외무대신 이완용이 성경 봉천부를 찾아 장훈과 회동했다.
“대한국은 대청국과 중화민국을 별개의 국가로 인정하는 입장이고, 복벽은 불가하다고 판단하여 지지하지 않습니다.”
“정 귀국이 동조하지 않는다면, 대청만의 힘으로라도 싸우겠소! 이 기회를 놓치면 북경으로 가는 길이 열리지 않을 거요!”
장훈의 노기등등한 태도에 이완용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두 손을 들었다.
“그건 말리지 않겠습니다. 귀국은 주권국가이니 뜻대로 군대를 움직일 권리가 있지요.”
“당연한 말씀이시오! 반드시 북경을 수복하겠소!”
장훈은 한국의 지원이 없다고 생각해도 이길 수 있다고 자신하는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황제 폐하! 중화민국을 자칭하는 역적의 무리들이 자중지란을 일으킨 지금이야말로, 대청의 열성조가 계신 황도를 되찾을 절호의 기회이옵니다! 부디 역적 토벌의 명을 내려 주시옵소서!”
여전히 11세로 어린 부의를 대신해 섭정을 맡고 있는 순친왕 재풍과 숙친왕 산기, 의정대신 강유위는 고심했다.
“역적들의 힘은 강하지만 대청의 힘은 약하오. 승리할 수 있겠소?”
“신등은 단지 죽기로 싸울 뿐입니다. 역적들이 분열한 지금이 아니면, 언제 북경을 수복할 수 있겠습니까?”
신해혁명으로 인해 만주로 밀려난 청 황실이지만, 이름만 만주족이지 북경 태생인 그들은 여전히 고향을 그리워했다.
중국 전역에 복벽을 성공시키진 못하더라도, 북경과 직례(하북)만이라도 탈환할 수 있다면 해 볼만한 도박이라고 판단했다.
“경의 충정에 깊이 감복하는 바이다! 장훈, 경을 직례총독 겸 토벌군 대원수로 임명하니, 대청의 열성조가 계신 북경을 되찾으라!”
“황제 폐하 만세, 만세, 만만세!”
황제의 칙명이 내려지자, 대청 황실을 대신해 만주군을 실질적으로 통솔하는 장훈은 ‘북경 수복’을 선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