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528
– 209화에 계속 –
2부 209화 군웅할거(群雄割據)
「지난 20년간 학자들은 서구화에 빠져 있었고, 간민(奸民)들은 반란을 일으켜 마침내 신해의 변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이에 공화제가 실시된 후 위아래가 무리를 지어 뇌물로 서로 싸우면서, 각각 사사로이 집단을 만들고 탐오하며 흉폭해져 도덕은 문란하여졌습니다.
신등은 눈을 뜨고 시세를 탄식하며 하늘의 화를 통절하게 느끼면서, 밖으로 각국이 방관하고 있는 사실을 살피고 안으로 백성과 나라의 진실한 사정을 살펴, 공화정체가 우리 백성들에게는 적합하지 않았음을 알았습니다.
이에 신등은 공동으로 맹세하노니, 대청의 신민을 대표하여 역적을 토벌하고 우리 황상께서 중국의 정권을 회수하기를 삼가 맹세합니다!」
강유위가 원고를 기초한 선전포고의 칙령이 반포되었다. 무술변법의 주도자였던 강유위는 진심으로 중국에 군주제의 복원을 기원했다.
“중화민국을 자칭하는 무리, 황은을 저버리고 반역한 역적 원세개, 풍국장, 단기서를 토벌하고 대청 황실을 북경으로 다시 모시자!”
“와아아!”
청조의 만주 천도 당시 장훈이 거느리고 온 북양군 잔여 병력, 변발을 유지하고 있다 하여 ‘변자군’이라 칭하는 부대가 주력이 되어 창설된 만주군이었다. 만주군 10만이 북경을 향해 진격을 개시했다.
“청국이 조약을 깨고 북경으로 진격을 개시했다고? 그렇다면 지금 남방의 전쟁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지!”
직례군벌 풍국장에게는 남방의 내전보다 북경으로 쳐들어오는 만주군을 막는 게 더 시급했다. 풍국장은 원세개의 남진 명령을 거부하고, 휘하 병력을 북방으로 돌렸다.
“공격! 공격하라!”
만주군과 직례군은 북경 동북방 승덕(承德, 청더)에서 치열한 교전을 벌였다.
청조의 피서산장이었던 열하(熱河, 려허)가 있는 곳으로, 1860년 2차 아편전쟁에서 북경이 영불연합군에게 함락되었을 당시 함풍제가 피신했던 곳이기도 했다.
“강희황제와 선제들이 계셨던 열하를 되찾자!”
한때 북양군 총사령이자 신해혁명 당시 혁명군을 위기로 몰아넣었던 노장 장훈의 저력은 사라지지 않았다.
치열한 전투 끝에 만주군은 승덕을 점령하고, 직례군은 북경으로 퇴각했다.
“대청의 여름 수도였던 승덕부를 수복했다! 이제 다음은 대청의 진정한 황도인 북경을 수복하고, 황실을 다시 황도에 모시자!”
“와아아아!”
“황제 폐하 만세, 만세, 만만세!”
기세가 오른 만주군은 봉천에 승전보를 전하고, 북경으로의 진격을 개시했다.
기세만으로는 마치 1644년 청조의 산해관 진격을 떠올리게 했으나, 그때와 비교하면 군사력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미약했다. 지휘하는 장교와 병사들도 대부분 만주인이 아닌 한인들이었다.
“전투는 승리했지만, 진지하게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만주군 단독으로는 풍국장의 직례파도 이길지 의문인데, 가망 없는 복벽에 병력을 낭비하자고?”
만주군 부원수 맹은원(孟恩遠, 멍언위안)은 북경 공략에 회의적이었다. 북양군 출신 맹은원이 만주에 잔류한 건, 장훈처럼 청조에 대한 충성의 이유가 아니었다. 길림 주둔 북양군 23진(사단) 맹은원으로선 길림이 자신의 기반이었고, 북양군 시절부터의 상관인 장훈이 그에게 청조의 고위직을 제안하자 만주에 잔류했다.
“말이 좋아 대청국이지, 토벌령에 응한 지역은 하나도 없지 않나. 심지어 외국의 지원도 없는데 대체 어찌 싸워 이기겠다는 건가?”
중화민국 토벌과 북경 공략을 명령하는 선통제의 칙령이 떨어졌으나, 대청국을 구성하는 지역 중 칙령에 응한 곳은 만주뿐이었다. 몽골의 복드 칸, 티베트의 달라이 라마, 신강의 양증신 모두 칙령을 무시했다. 청국의 실질적인 통치력이 전혀 미치지 않는다는 증거였다.
“노인네의 복벽 장단에 놀아 줄 이유가 하나도 없지. 주력이 병력을 소모하면 그때가 기회다.”
만주군 사단장 장작림은 아예 싸울 생각 자체가 없었다.
마적 출신 장작림은 그야말로 기회주의의 전형이었다. 친일 성향의 마적으로 출발하여 이른바 ‘만주의군’을 결성, 러일전쟁 중 일본의 유격대로 활동하다 전세가 바뀌자 편을 바꾸고, 전후에 한국이 남만주의 세력권을 확보하자 재빨리 친한파가 되었다.
제국익문사와 협조하여 혁명을 준비하는 동맹회에 기지와 병력을 제공해 청조에 반대하는 것 같더니, 막상 신해혁명이 터지자 혁명에 가담하길 거부하고 청조에 대한 ‘진충보국’을 내세웠다.
“장군이 청국 내에서 대한의 이익을 대리할 수 있다면, 장군은 장차 만주의 최고 권력자가 될 수 있을 것이외다.”
장작림은 주청 한국공사 이완용의 눈도장을 받아 협력관계를 맺었다. 청조의 만주 천도 당시, 봉천을 기반으로 성장한 장작림은 휘하 병력을 이끌고 청 황실을 맞이했다.
청국의 실세인 숙친왕과 장훈은 기회주의적인 태도를 보인 장작림을 썩 내키지 않았으나, 한국의 보증을 받은 그를 무시할 수 없었다.
장군이 된 장작림은 청 황실과 장훈에게 아첨하며 만주군의 재편에 적극적으로 협력했고, 군부의 실세 중 한 사람이 되었다.
“귀국은 북경 공략 시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글쎄요. 나는 수차례 말렸지만, 장 원수께서 이야기를 듣지 않으시니 원.”
만주군이 출정하기 전, 장작림은 이완용과 비밀리에 회동했다.
“대한의 입장은 대청국과 중화민국은 별개의 국가라는 겁니다. 중화민국의 강역은 중국 18성이요, 대청의 강역은 만주와 기타 등등이지요. 우리가 바라는 건 만주에 중국과 분리된 독자적인 국가가 확립되는 거지요. 중국에 복벽을 시도하는 게 아니라.”
“과연.”
“뭐, 사람은 깨져 봐야 정신을 차리는 법입니다. 일본도 러시아에 지고 나서야 대륙진출이 허황되다는 걸 깨닫지 않았소? 복벽이 불가능한 꿈이라는 걸 깨닫게 되면, 만주라는 울타리에 만족하겠지요.”
장작림은 이완용의 말을 이해했다. 이번 전쟁에서 만주군이 패퇴하면, 중국 수복을 부르짖는 장훈과 복벽파의 힘은 빠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만주 독자노선을 지지하는 친한파가 청국의 실권을 장악하게 될 것이다.
‘일단 장훈이 져야지. 그리고 장훈을 대신할 사람은 맹은원도 아닌 나뿐이어야 한다. 만주의 지배자가 될 수 있다면, 한국이든 러시아든 손잡지 못할 게 무어냐?’
장작림은 복벽 따위에는 관심도 없었고, 만주의 지배자가 되고 싶었다. 한국과 러시아가 만주의 실질적인 세력권을 지배하는 이상, 장작림은 일단 그들의 번견(番犬)이 되어 권력에 접근할 생각이었다.
“만청이 다시 북경을 침략하다니!”
“이런 무도한! 중화인민은 다시 만청의 압제를 받을 수는 없다!”
만주군의 승덕 함락과 북경 진격은 공화주의자들은 물론이요, 군벌들조차 화들짝 놀랐다.
그동안 호국전쟁에서 중립을 지키고 있던 안휘군벌 수장 단기서도 만청 토벌을 부르짖으며 현역으로 복귀했다. 대총통인 원세개의 명령도 없이, 단기서는 휘하 병력을 소집하여 북경으로 향했다.
모처럼 직례파와 안휘파라는 북양군의 후계파벌이 힘을 합쳐 만주군에 맞서 도합 10만이 넘는 병력을 전개했다.
명분은 거창하게 ‘민국 수호’를 내세웠지만, 만약 청조가 복벽한다면 북경에서 정변을 일으켜 퇴위를 강요한 단기서와 풍국장은 숙청대상 1호였다.
「단기서는 보아라. 이 배은망덕한 역적놈아! 내 너를 아껴 북경 방위의 중책을 맡겼거늘, 어찌하여 황상을 저버리고 나라를 배신하였느냐?
반역죄는 죽여 살점을 씹어먹어도 시원찮으나, 너의 본심이 중국을 부강하게 만드는 데 있다는 것을 안다. 저 민국 5년의 혼란상을 보아라! 중국에 정통성 있는 황제가 없이 어찌 군벌들을 제압하고 통일할 수 있겠으며, 강력한 국가를 만들 수 있겠는가?
네가 정신을 차려 다시 황은에 귀순한다면, 대청의 육군을 너에게 맡기리라. 함께 역적들을 토벌하여 강력한 중국을 만들자. 너는 천명에 맞서지 말고 귀순할지어다!」
단기서가 원세개-풍국장과 마찰을 빚고 있음을 인지하고 있는 장훈이 귀순을 독려하는 밀서를 보냈다.
「아직도 중국에 만청 황실이 복벽 할 수 있다고 믿다니, 너의 어리석음이 딱하고 가소로울 따름이다. 이미 어리석은 의화단을 끌어들여 북경이 외세에 의해 함락되었을 때, 청조는 천명을 다한 것이다. 나는 중화민국의 군인으로서 너희 만청 오랑캐의 개들을 토벌하고자 한다. 너희야말로 민심을 거스르는 역적들이니, 각오할지어다!」
단기서는 민주주의와 의회제를 부정하는 프로이센식 군국주의자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군주제의 복권을 바라는 건 아니었다.
“황은을 저버리고 배신한 역적 단기서와 풍국장의 개들을 죽여라!”
“아직도 복벽이 가능하다고 믿는 만청 오랑캐의 개들을 죽여라!”
만주군과 직례-안휘군은 모두 그 뿌리가 이홍장의 북양군이었지만, 지금은 적일 뿐이었다.
각자 대청국과 중화민국을 대표하여 싸우고 있기는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장훈·풍국장·단기서라는 군벌의 수령을 위해 싸울 뿐이었다.
3개 파벌 중에서 가장 단단한 세력을 자랑하는 건 안휘군이었고, 가장 취약한 건 만주군이었다.
“퇴각! 퇴각하라!”
전세가 불리해지자, 장작림이 제일 먼저 병력 소모를 거부하고 퇴각했다. 이윽고 길림군을 지휘하던 맹은원도 전투를 포기하고 후퇴했다.
단기서가 이끄는 안휘군은 북경 동북방 30km 지점에서 만주군을 격파하고, 전선을 다시 승덕까지 밀어붙였다. 공세의 동력을 상실한 만주군은 전선을 유지하기조차 버거웠다.
“청조가 먼저 조약을 깨트린 이상, 민국이 이를 준수할 이유가 없다. 자금성을 접수하라!”
1912년 퇴위조약에 따르면, 청 황실은 만주 이전 이후에도 자금성과 역대 황제들의 능묘를 소유하고 관리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었다. 청 황실의 봉천 천도 이후 중화민국은 조약을 지키려 들지 않았고, 마침내 전쟁을 명분으로 삼아 풍국장과 단기서는 자금성을 접수하고 청 황실의 자산을 몰수했다.
“중화민국의 수호자, 단기서 장군 만세!”
만주군을 격파한 단기서는 위풍당당하게 북경에서 승리의 개선식을 열었다. 그의 라이벌인 풍국장이 봐도 승리의 결정적인 공훈은 단기서에게 있었으므로, 개선의 자리를 양보해야 했다.
중화민국 5년(1916) 봄. 북방의 전쟁과 상관없이, 남방에서는 원세개 정권과 호국군의 전쟁이 계속되고 있었다.
“사천은 독립을 선언한다!”
“호남은 독립을 선언한다!”
“섬서는 독립을 선언한다!”
1916년 5월까지, 운남·광동·광서·귀주·사천·호남·섬서 등 서남부 7성이 독립을 선포했다.
특히 전략적 요충지이자 남부 교통의 핵심인 호남의 독립선언은 치명적이었다. 호남 자의국 의장이었다가 호남도독이 된 담연개(譚延闓, 탄옌카이)는 전쟁 초기에 관망하다가, 호국군 호남사령관 정잠(程潛, 청첸)과 채악의 설득을 받고 독립을 선포했다.
각지의 독립선언을 전해 들은 원세개는, 울화병에 걸릴 지경이 되었다.
“이런 망할 놈들! 내가 제 놈들에게 돈을 얼마나 퍼부었는데, 이제 와서 나를 이렇게 배신해!”
원세개의 명분이 그렇게 부족했음에도, 지난 1년간 권세를 누릴 수 있었던 건 돈이었다. 중국의 혼란이 이어지면서 군벌 간에 경쟁적으로 모병을 했고, 가장 돈이 많은 군벌이 우세를 점할 수 있었다. 실업자가 난무하는 현실에서, 급료를 많이 주는 군대가 최우선이었다.
원세개는 정부 예산을 횡령하고, 일본의 자금을 지원받아 친위군을 양성했다. 각지의 군벌들에게 넉넉한 뇌물을 뿌려 매수하는 작업도 계속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군벌 연립정권은, 막상 내전이 발생하자 모래성처럼 무너지고 말았다.
원세개를 지지하여 부총통 자리를 유지한 호광군벌 여원홍도 전세가 불리해지자, 중립을 선포하고 정전을 종용하기에 이르렀다.
“대총통 각하, 큰일 났습니다!”
“이번엔 또 뭐냐?”
“항주에서 반란이 일어나 절강이 독립을 선언했습니다!”
“뭐, 뭐라고?”
남경의 턱밑인 절강이 독립을 선언했다는 보고에, 원세개는 기겁을 했다.
“원세개 도당은 민국을 파괴하고, 우리의 고향인 절강을 제멋대로 일본의 세력권으로 넘겨주었다. 애국자라면 어찌 이를 용납하겠는가?”
절강 출신 장중정은 은밀히 원세개에 불만을 품은 청년장교들을 포섭했다. 신해혁명 당시 항주 함락의 공을 세운 장중정은 절강 청년장교들의 우상이었다.
5월 10일, 장교들은 봉기를 일으켜 절강도독 주서를 축출하고, 절강의 독립을 선포했다. 절강 독립으로 원세개는 턱밑까지 위협받는 상황이었다.
12일에는 중국은행과 교통은행이 내전의 위협을 들어 화폐 태환을 정지시켰고, 이는 원세개 정권에 치명적이었다.
원세개는 호국군에 국회 부활과 헌법 제정을 약속하며 정전을 요청했으나, 호국군은 원세개의 하야만이 정전 요건이라고 받아치며 거부했다.
이제 믿을 구석이라곤 막 만주군을 무찌르고 기세를 올린 북양파벌이었다. 원세개는 단기서를 다시 국무총리에, 풍국장은 육군총장으로 임명하여 반란 진압을 명령했다. 대총통직을 이어 나가려는 최후의 시도였다.
「대총통은 이미 국민의 신임을 잃었습니다. 이 파멸적인 내전을 끝내는 길은 대총통이 하야하시거나, 호국군이 자진해산하는 것입니다. 호국군이 자진해산할 가능성은 없으니, 중국을 내전의 수렁에서 구원하려면 대총통께서 조속히 사임하셔야 합니다.」
국무총리 임명을 받은 단기서는 오히려 원세개에게 하야를 요구했다. 말투는 정중했지만, 사실상 최후통첩이었다.
“이, 이, 쳐죽일 놈들! 하나같이 배신할 궁리밖에 없구나! 으, 으윽…….”
“대, 대총통 각하!”
원세개는 너무도 격노해 그 자리에서 졸도해 버렸다.
58세인 원세개의 병세는 급속도로 악화되었고, 죽음을 눈앞에 두게 되었다.
“끝장이야! 모든 게 끝장이야! 어젯밤에 하늘에서 큰 별이 떨어지는 걸 봤네. 이건 내 평생에 두 번째로 본 걸세. 처음 봤을 때는 이홍장이 죽었지. 이번에는 아마 내 차례일 거야.”
1901년, 이홍장은 의화단전쟁과 신축조약이라는 참사를 목도하고 사망했다. 나라를 실패로 이끌었다는 크나큰 한을 품고 사망한 건 마찬가지였으나, 원세개의 책임은 훨씬 무거웠다.
이홍장은 중국을 살리려고 분투하다가 황실의 견제를 받다 실패했다면, 원세개는 권력을 탐내다 중국을 파멸의 길로 접어들게 했다.
국민에 의해 선출된 정부를 쿠데타로 무너트렸고, 군사력으로 정부를 무너트릴 수 있다는 선례를 만들었다. 최소한의 정통성을 상실한 결과, 각지에서 군벌이 난립하기에 이르렀다.
이제 군벌들은 중앙정부가 통제하기가 완전히 불가능한 수준으로, 군벌들은 멋대로 세금을 걷고 군대를 움직였다. 사실상 수십 개의 정부가 난립하는 상황이었다.
군웅할거(群雄割據), 후한말에 비견될 대군벌시대의 도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