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54
– 54화에 계속 –
54화 봉기(蜂起)
민겸호는 대원군과 완화군을 동시에 역모의 배후로 만들려는 음모를 획책했다. 사헌부를 움직여 김광훈과 신선욱을 탄핵하도록 초안을 잡고, 당장 자기 손안에 들어온 ‘폭동 주모자’ 4인을 엄히 신문했다.
“네 이놈들, 배후를 똑똑히 밝히거라. 누가 네놈들을 사주하여 선혜청에서 폭동을 일으키게 했느냐?”
“배후라니, 당치도 않소!”
“13개월 만에 지급된 쌀에 모래와 겨가 섞여 있으니, 천치가 아니고서야 어찌 화가 나지 않겠소?”
민겸호는 회유에 들어갔다.
“네놈들이 말만 똑바로 하면 그깟 밀린 급료가 문제더냐? 나는 병조판서 겸 선혜청 당상이니라. 너희의 뒤를 봐주지.”
“그게 무슨 소리요?”
“네놈들 폭동의 배후에 운현궁, 이 석 자만 댄다면 부귀영화를 보장해 주마.”
병사들은 격분해서 외쳤다.
“우리를 이용해 감히 대원위 합하를 역모로 몰아넣으려는 것이오? 어림도 없는 소리 마시오!”
“대감을 어찌 믿겠소? 그렇게 분다 한들, 우리를 역모의 하수인으로 몰아넣어 죽이려 하겠지!”
“애초에 선혜청에서 급료를 제대로 주지 않아 이렇게 된 것이 아니오?”
“그게 대감의 뱃속으로 들어간 걸 우리가 모를 것 같소!”
“저, 저런 무식한 놈들이…….”
민겸호가 벌컥 화를 냈다.
“저놈들이 바른말을 토해 낼 때까지 매우 쳐라!”
병사들에게 극심한 고문이 가해졌다. 하지만 이들은 민겸호가 원하는 대답을 해 주지 않았다.
“이런 지독한 놈들. 네놈들을 모조리 군기시(軍器寺)에서 참할 것이다! 아니, 네놈들은 역적이니 그 가족까지 벌하리라!”
뜻대로 계획이 풀리지 않자, 민겸호는 애먼 가족들을 상대로 화풀이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주동자로 지목된 훈련도감 포수 김춘영과 유복만이 극심한 고문을 당하고 있으며, 이들이 곧 사형당할 것이란 소문이 퍼져나갔다.
김춘영의 부친인 김장손과 유복만의 동생인 유춘만을 중심으로, 옛 오영 군사들은 투옥자 구명을 위한 통문을 작성했다.
병사들은 체포된 이들이 단순 소요가 아니라, 역모 혐의를 받고 있다는 말에 크게 놀랐다.
“민겸호 이 개자식이 대원위 합하를 역적으로 몰려고, 우리 형제들을 고문하고 있다네!”
“뭐라고? 이런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놈을 봤나!”
“민겸호는 무지막지한 작자지. 훈련도감 병사들을 모두 역적으로 몰아 죽일지도 모르네!”
마침내 병사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형제들, 언제까지 당하고만 있을 건가? 민겸호란 놈이 병조판서랍시고 한 일이 무엇인가? 선혜청 당상이랍시고 한 일은 또 무엇인가? 우리에게 와야 할 급료를 빼돌려 제 놈과 민가들의 사복만 채웠지! 그럼에도 우리는 참고 또 참았네. 그런데 참았을 뿐인 우리를 역적으로 몬다네. 언제까지 참을 건가?”
김장손의 선동에 병사들이 일제히 외쳤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소!”
“가세나, 민겸호를 벌하러!”
“와아!”
“민겸호를 죽여라!”
임오년 6월 9일. 수백 명의 병사들이 무장한 채로 민겸호의 집으로 몰려갔다.
“굶어 죽는 것이나 법에 따라 처형당하는 것이나 죽는 것은 똑같다. 마땅히 죽일 놈은 죽여서 우리의 억울함을 풀겠다!”
“민겸호, 이 개자식은 어디에 있느냐?”
마침 민겸호는 부재하고 없었다. 하지만 병사들의 분노는 멈추지 않았다.
“다 때려 부숴!”
창고를 박살 내자, 가득 쌓인 쌀가마니와 금은보화가 보였다. 병사들의 증오는 극에 달했다.
“이 개자식, 많이도 해 처먹었구나!”
“우리를 굶겨 놓고선, 그 쌀을 빼돌려서 제 놈의 배를 채워?”
이들은 민겸호의 세간살이를 다 부수기 시작했다.
“이건 다 나라를 도적질한 재산이다! 1전이라도 집어 가는 자는 용서치 않겠다!”
병사들은 나름대로 기율을 지켜서, 민겸호의 재산을 약탈하지 않고 한데 모아 불 질렀다.
비단, 주옥, 패물들이 타 불꽃에서는 오색이 나타났고, 인삼, 녹용, 사향노루가 타면서 나오는 향기는 수리 밖에서도 맡을 수 있었다.
민겸호의 집을 다 때려 부수고 재산에 불을 지른 건 시원했으나, 지도자들은 곧 냉정을 되찾았다.
“민겸호가 분명히 보복하려 들 것이네.”
“이럴 때가 아닐세. 어서 운현궁으로 가서 대원위 합하께 직소를 하세!”
“그러세나. 우리뿐만 아니라 국태공께도 위험이 닥칠지도 모르니!”
병사들은 운현궁을 향해 우르르 몰려들었다. 순식간에 운현궁 앞은 왁자지껄해졌다. 지도부는 병사들을 이끌고 운현궁으로 들어가 겸손히 청했다.
“대원위 합하! 도적 민겸호가 쌀을 도적질한 것도 모자라, 저희를 역적으로 몰려고 합니다. 더욱이 저희의 배후에 운현궁이 있다고 거짓 토설까지 강요한다고 합니다. 합하께서 이를 바로잡아 주십시오!”
“내가 그대들의 밀린 급료를 대신 내주려 해 준 것은, 그대들이 나라의 근간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찌 나라를 지키는 병사들을 굶기는 게 제대로 된 나라라고 하겠는가. 그대들은 내 손자이자 주상의 장자인 완화군을 기억하는가?”
“예, 갑자기 사라지셨다고 들었는데…….”
“나는 완화군에게 늘 나라와 왕실을 생각하라 가르쳤다. 사실 완화군은 청국에 들어가, 대국의 신임을 얻어 부를 축적하고 있었다. 완화군이 얼마 전 마침내 조선으로 돌아와, 자신이 얻은 부를 조선을 위해 쓰려고 했다. 바로 그대들을 위해 밀린 급료를 대신 내주려고 한 것이다.”
“오오, 완화군 대감께서…….”
“역시 국태공이 총애하신 손자다우셔. 우리 같은 자들을 생각해 주는 분이 또 누가 있단 말인가!”
병사들이 감동한 듯 웅성거렸다. 대원군은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조정을 장악한 자들이, 나와 완화군의 본의를 왜곡하고 역모를 운운하니 안타까운 노릇이다. 저들에게 눈엣가시나 다름없는 나와 완화군을 제거하려는 속셈이겠지.”
“이제 알겠습니다! 저들은 국태공과 완화군 대감을 역적으로 몰려는 것이었군요!”
대원군은 비장한 어조로 말했다.
“그러나 나는 공적으로는 성상의 신하요, 사사로이는 생부가 된다. 완화군 역시 성상의 장자이다. 역모의 수괴로 이름이 올리는 게 가당키나 하겠는가? 나는 즉시 창덕궁으로 가 거적을 깔고 성상께 대죄(待罪)를 청하고자 한다.”
대원군의 말에 병사들 사이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안 됩니다! 국태공께서는 우리 병사들의, 아니 백성들의 희망이십니다. 어찌 범 아가리로 스스로 들어가시려 한단 말입니까?”
“그럼 나와 완화군, 그대들 모두가 역적이 되는 상황을 지켜만 보고 있어야겠는가? 민겸호는 결코 그대들을 살려 두려 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책임지고 대죄를 청하면, 성상께서 용서하실지도 모른다.”
대원군은 마음에도 없는 말을 비장한 어조로 했다.
그럴수록 병사들은 더욱 애가 탔다.
“합하, 저희 신민을 아끼는 합하의 큰 뜻을 어찌 모르겠사옵니까? 하오나 가시면 안 됩니다!”
“역적은 저 민겸호와 민씨 놈들입니다. 합하, 저희에게 명을 내려 주시옵소서. 저 역적놈들을 토벌하겠나이다!”
“나는 진작 나라를 좀먹는 도적들을 토벌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러나 이는 주상의 치세에 누가 될 수 있으니, 어찌 함부로 나서겠는가?”
대원군이 거듭 주저하는 태도를 보이자, 병사들은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누가 감히 국태공의 충심을 의심하겠사옵니까? 합하께서 나서서 이 나라를 바로잡아 주시옵소서!”
마침내 대원군은 결단을 내렸다.
“좋다! 그대들의 충심은 잘 알겠다. 그대들은 별도의 명이 있을 때까지 기다리도록 하라. 내가 나라를 바로잡고, 그대들이 살길을 알려 주겠노라!”
“와아아아!”
“국태공 천세!”
병사들의 환호성을 뒤로하고, 대원군은 심복 허욱에게 명했다.
“자네가 저들 사이로 들어가 지휘를 맡도록 하게. 일단 동별영의 무기고를 확보하고, 무위영, 장어영, 의금부, 포도청부터 장악해야 하네. 별기군은 병사들의 증오를 받고 있는 데다 민가의 사병이나 다름없으니, 하도감도 공격해서 그들을 제압하도록 하게.”
“대원위 합하의 명을 받들겠나이다!”
사실상 쿠데타나 다름없는 명령이었다. 대원군의 충실한 심복, 허욱은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조아렸다.
안영흠과 장무영은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조선 역사상 유례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음에도, 이들이 더 놀라고 있는 건 따로 있었다.
“군 대감께선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 예상하실 수 있었단 말인가?”
“참으로 그분께서는 신묘한 지혜를 타고난 분이 틀림없습니다.”
두 사람은 입을 모아 이선을 찬양했다.
이들도 마음 같아선 병사들 사이로 뛰어 들어가 민씨 척족들을 때려잡고 싶었지만, 이선의 엄명이 있었다.
“절대 군란에는 개입하지 말고, 지켜만 보오. 나와 그대들이 해야 할 일은 수습이지, 난리에 동참하는 것이 아니오. 변동 사항이 있을 때마다 내게 보고하시오.”
이선의 말은 늘 옳았으므로, 이들은 마음을 꾹 억누르고 명을 따랐다.
“무영, 그대는 어서 인천으로 가 군 대감께 보고하도록 하게.”
“예!”
훈련도감 병사들이 민겸호의 집을 때려 부쉈다는 소문이 퍼져나가자, 임금과 민씨 척족의 실정에 분개하고 있던 백성들까지 들고일어났다.
백성들은 운현궁에서 나와 기세등등한 병사들에게 합류했다.
“쌀값이 하루가 멀다 하고 폭등하니 감당할 수가 없소! 도성에 굶는 이들이 허다한데, 저 민겸호란 놈은 선혜청 당상이 돼서 세곡미를 빼돌려 제 배 속을 채웠다고 하오. 이게 가당키나 한 말이오?”
“선혜청과 민겸호 놈을 다 때려 죽여야 하오!”
“민겸호뿐이겠소? 민씨 놈들이 해먹은 걸 다 토해 내게 만들어야지!”
“민씨 놈들은 왜놈의 앞잡이요! 왜놈들과 화의를 맺은 이후로 쌀이 계속 빠져나가 쌀값이 오르는데도, 이놈들은 이를 수수방관했소.”
“수수방관이 아니라 쌀을 팔아먹었겠지. 세자가 얼마 전에 가례를 올렸는데, 중전이 일본에서 비단 사는 데다가 돈을 엄청나게 썼다지 않소? 그 돈을 뭘로 줬겠소?”
“저런 쳐 죽일, 백성들은 굶어 죽는데 아홉 살 꼬마가 결혼하는 데다가 그렇게 많은 돈을 써? 중전이 원흉이로구만!”
지금까지 백성들의 분노는 임금이나 왕실이 아닌, ‘간신’과 ‘탐관오리’에만 집중되어 있었다. 분노의 방향이 중전에게 향하는 건 유례없는 일이었다.
“민겸호와 민씨들이 군졸들만으로 모자라 국태공까지 역적으로 만들려 하고 있소. 우리를 아껴 주시는 분은 오직 국태공뿐이오! 이를 지켜만 볼 수 있겠소?”
“어찌 감히 그분을 역적으로 몬단 말인가!”
“국태공을 모시고, 중전을 끌어내립시다!”
“우리 뒤에는 대원위가 계시니, 걱정하지 마시오! 국태공께서 우리를 이끌어 주실 거요!”
“와아아아아!”
수천수만의 병사와 백성들이 모여들었다.
이들은 동별영의 무기고를 습격해 무기를 나눠 갖고, 제일 먼저 의금부와 포도청을 습격해 파옥했다.
“형제들! 우리가 구하러 왔네!”
병사들은 고문으로 만신창이가 된 주동자들을 보고 더욱 격분했다.
“민겸호 놈을 똑같이 만들어 주자!”
“간신과 탐관오리들을 모두 죽여라!”
“때려죽여라!”
봉기군은 6월 9일 당일, 민씨 척족들의 집을 하나하나 습격해 모조리 파괴해 버렸다. 무위영과 장어영 병사들까지 반란에 가담하면서, 궁궐을 제외한 한성 전역이 봉기군에게 넘어가 버린 상황이었다.
더욱이 한성의 빈민들이 죄다 반란에 가담하면서 실제 역사보다 더 큰 규모로, 혁명적인 봉기가 발생한 것이다.
도성 방위를 책임지는 무위 대장 이경하가 급히 병사들을 진정시키려 했으나, 봉기군의 엄청난 규모를 보고 지레 포기했다.
도성은 통제 불능이었다. 백성들의 증오 대상이 된 자들은 살기 위해 재산을 다 버리고 궁으로 숨어들었다.
“쥐새끼 같은 놈들!”
“여기서 멈춰서는 아니 되네. 창덕궁으로 가세!”
봉기의 지도부를 맡고 있는 허욱이 외쳤다.
“근데 이대로 궁으로 가면 정말 역적이 되는 거 아니오?”
분노한 백성들이 무기를 들고 궁궐에 난입하는 건 조선 왕조 500년 역사상 유례없는 일이었다.
임진왜란 때 도성을 버린 선조에게 분노한 백성들이 경복궁으로 몰려갔다고는 하지만, 이미 왕이 도망치고 없는 빈 궁궐에다가 분노를 쏟아낸 것이었다.
이번에는 임금이 버젓이 있는 궁궐에 난입하겠다는 것이었다.
“궁으로 가지 않으면 의미가 없네. 중전을 끌어내리지 않으면 우리 모두가 역적이 되는 상황이야. 이미 활시위는 떠났다 이 말이네!”
“그렇소! 모든 사태의 원흉은 중전에게 있소. 민씨 몇 놈만 쳐 죽인다고 될 일이 아니오. 중전을 끌어내립시다!”
“우리 뒤에는 국태공이 계시다! 모두 안심하고 궁으로 가자! 역적은 우리가 아니라 저들이다!”
“나라를 좀먹는 도적들을 때려잡고, 국태공을 도와 나라를 바로잡자!”
임오년 6월 10일, 1882년 7월 24일.
무기를 든 병사와 백성들이 왕이 있는 궁궐을 습격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만약 이 순간 서양인 관찰자가 있었다면, 떠오르는 장면이 있었을 것이다.
1792년 8월 10일. 프랑스 국민들이 튈르리 궁전을 습격해 국왕 루이 16세와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를 끌어내린 사건.
봉기군의 주축은 국왕과 왕비의 ‘배신’에 격분한 시민군과 수만의 상퀼로트(무산계급)였다.
90년의 시차를 두고 지구 반대편에서 기묘한 형태로 재현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