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544
– 225화에 계속 –
2부 225화 혁명의 승리
5월 5일 저녁, 페테르고프. 주러시아 한국군 임시사령부.
한국군은 독일군 이외의 군대와 교전한다는 합의에 따라, 하계공세가 예정된 우크라이나 전선으로 이동했다.
군단 사령부는 제9보병사단과 제1기병사단을 이끌고 먼저 우크라이나 키예프로 이동하고, 나머지 병력을 순차적으로 이동시키려던 차에 혁명에 맞닥뜨렸다.
현재, 페트로그라드 교외 페테르고프에는 한국군 제1해병여단이, 남쪽 45km 지점인 가치나에는 제2근위사단이 주둔 중이었다.
“페트로그라드에 반란이 발생했으니, 우리더러 도시에 진입해서 반란군을 진압해 달라고? 왜? 러시아군은 대체 뭘 하고 있나?”
우크라이나행을 준비하다가 갑작스럽게 러시아군의 요청을 받은 근위 2사단장 이동휘 부장은 당혹스러웠다. 현재로선 사령부에 있는 군인 중 그가 최선임이었다. 해병 1여단장 안중근 참장도 급히 연락을 받고 왔다.
“페트로그라드 시내의 상황을 알 수가 없는 모양입니다. 주둔군 상당수가 반란에 가담했고, 정부가 얼마나 통제하고 있는지도 모르겠고요.”
“아니, 그렇다 해도 우리한테 순서가 올 이유가 없지. 병력이라면 바로 옆의 크론시타트에도 해병대가 있지 않나?”
페테르고프의 맞은편 섬에는 발트함대의 모항인 크론시타트가 있었다. 전력의 열세로 발트함대는 독일해군과 교전을 피한 채 크론시타트에 틀어박혔고, 수병과 해군보병대(해병대)가 주둔 중이었다.
“크론시타트에서도 연락이 끊겼습니다. 현재 정확한 상황이 파악되지 않는데, 아무래도 반란이 일어난 것 같습니다.”
러시아군은 전함 포템킨의 반란에서 알 수 있듯이, 해군이야말로 육군보다 더 장교와 사병 간의 알력이 심했다. 페트로그라드의 반란 소식이 크론시타트에 전해지자, 삽시간에 발트함대에도 반란이 확산되었다.
“총체적 난국이구만. 부관! 대사관하고는 연락이 여전히 안 되나?”
“예, 각하! 지금 페트로그라드와 전화를 연결 중입니다!”
“그래? 좋아, 바꿔 봐.”
이동휘는 부관이 건네준 전화기에 귀를 댔다.
“아, 여보세요? 페트로그라드 대한국 대사관? 여보세요? 안 들립니까? 이거 왜 이러지?”
전화기에서는 지직거리는 잡음만 전해졌다. 옆에 서 있던 안중근이 전화기를 잡았다가 놓았다.
“아무래도 전화선이 끊어진 것 같습니다.”
“미치겠군. 부관, 전보도 안 되나?”
“대사관에서 오늘 들어온 전문은 없습니다.”
“제길! 도대체 페트로그라드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한국군 사령부는 페트로그라드의 대사관과 정기적으로 연락을 주고받았는데, 오늘 오전부터 연락이 끊긴 상황이었다.
「페트로그라드의 봉기가 심각해지고 있음. 수도는 무정부 상태나 다름없음. 러시아 외무부와도 연락이 닿지 않아 정확한 상황 파악 불가. 러시아 군부로부터 중대한 제안이 들어와 본국의 훈령을 기다리고 있음.」
어제 마지막으로 도착한 전문의 내용은 반란이 일어났고, 정확한 상황 파악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페테르고프에는 연합군 파견장교들도 있었는데, 이들도 상황을 파악 중이라는 답만 했다.
“부관, 대사관에 다시 한번 전보 보내고, 키예프의 전선사령부에도 빨리 전보 보내게. 러시아군에서 출동 요청이 들어왔다고.”
“옛!”
본국은 물론이고, 대사관과도 연락이 끊겼다.
그런데 러시아군에서는 진압을 위해 출동해 달라고 요청한다.
졸지에 사단장인 이동휘에게 막대한 권한이 주어진 것이었다.
“안 장군. 귀관도 알다시피 우리 근위2사단, 옛 제4사단은 본래 평양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 외침(外侵)이나 반란 같은 심각한 상황이 발생하여 황성 방위가 위태로울 경우, 4사단은 즉시 황성으로 진격하여 적과 싸우고, 유사시 황제 폐하와 정부를 평양으로 호위하는 역할이 있었네.”
“아, 그렇습니까?”
4사단 창설 초기인 1890년대만 해도 한국의 안보는 불확실했고, 일본의 침략에 대비하여 여러 방책이 구상되었다. 4사단의 역할은 유사시 수도방위에 합류하고, 파천을 떠나는 정부를 평양으로 호위하는 것이었다.
한국의 국력이 강화되면서 역할은 방위에서 북진으로 바뀌었지만, ‘근위’라는 이름을 수여 받을 정도로 정예이자 황실과 가까운 부대였다.
“바로 지금과도 같은 상황이지.”
이동휘는 역설적인 느낌이었다. 러시아로 파병될 때만 해도 이런 일에 휘말리리라곤 생각도 못 했다.
“하지만 그건 대한 황실과 정부를 보호하는 역할이지. 러시아 황실은 우리의 영역이 아닐세. 우리 정부의 명령이 있다면 언제든지 페트로그라드로 진입하겠지만…….”
“소관의 생각도 장군과 같습니다. 해군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연합국의 일원으로 적군과 싸우러 왔지, 러시아 민중과 싸우라는 명령을 받지 않았습니다.”
“민중이라 할지라도, 만약 우리 대사관이 폭도들에게 습격당하는 상황이라면 군을 투입시켜야겠지. 근데 지금 상황은 모든 게 불확실해. 만약 정말로 주둔군 대부분이 반란에 넘어갔다면, 우리 군을 투입 시켜 봐야 의미가 없네.”
공교롭게도 이동휘와 안중근은 모두 1900년 북경 포위전을 경험한 바 있었다. 의화단에 맞서 50일간 공사관 구역을 지키는 데 일익을 담당했다.
이들이 기억하는 의화단 폭동과 이번 반란은 차원이 달랐다. 의화단 폭동이 망조가 든 나라의 최후발악이라면, 이번 반란은 정말로 거대한 제국을 뒤엎을 기세였다.
“러시아군의 출동 명령은 답하지 말도록. 상황이 정확히 파악할 때까지 움직이지 않는다.”
“예!”
이동휘는 러시아군의 요청을 일단 무시했다.
6일 오전. 밤새도록 초조하게 연락을 기다리던 이동휘와 안중근에게 드디어 소식이 도착했다.
“키예프 전선사령부의 전문입니다.”
“오, 그래!”
「키예프에서도 페트로그라드와의 연락은 차단되어 있음. 본국과도 연락이 차단된 것으로 보임. 본국의 훈령이 키예프로 도착함.
상황이 명확할 때까지, 주러시아 주둔군은 현 위치를 고수하라. 본국 정부의 훈령 없이 절대로 러시아 내부 문제에 개입하지 말 것.」
“하아, 역시 그렇군.”
이동휘는 안도의 한숨을 흘렸다. 자신이 잘못된 판단을 내리지 않았다는 안도감이었다.
“아무래도 페트로그라드에 전령을 보내야겠어. 전화도 전보도 안 되니 그 수밖에 없지.”
“그럼 소관이 직접 가겠습니다.”
“아니야, 현재 상황이 어떤지도 모르는데 장군이 직접 가면 어떡하나? 연락장교를 보내지.”
전령을 보내려던 차에, 누군가 급하게 사령부로 들어왔다.
“장군! 대사관의 이위종 공사입니다.”
“오, 공사! 직접 오셨군요. 대체 페트로그라드 상황은 어찌 되어 갑니까? 전화와 전보가 모두 연락이 안 됩니다.”
“오늘, 아니지, 어제부터 교외로 나가는 전화와 전보가 모두 끊겼습니다. 반란군이 전신국을 장악한 것으로 보입니다. 철도도 마찬가집니다. 역이 반란군에게 넘어갔어요. 지금도 말 타고 달려왔습니다.”
이위종은 헐떡이면서 의자에 주저앉았다. 이동휘는 급히 부관에게 물을 가져오라고 시켰다. 물을 마시고 한숨 돌린 이위종이 말을 이었다.
“그렇게 상황이 심각합니까?”
“주둔군 상당수는 반란에 가담한 것으로 보입니다. 러시아 정부와 군부는 상황을 통제하지 못합니다. 사실상 페트로그라드의 대부분 구역이 넘어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런, 역시 군대를 안 보내기를 잘했군.”
이동휘는 러시아군의 요청을 전했다. 이위종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 러시아 정부로부터 군대 출동이 가능하냐는 문의가 들어오기는 했습니다. 본국의 훈령을 받고 답을 준다고 했죠. 황성에 전문을 보낸 직후에 전신이 끊겼습니다.”
“그랬군요. 우리도 지금 막 본국의 훈령을 전해 받은 차입니다. 키예프 전선사령부를 통해서 온 겁니다.”
훈령을 읽어 보던 이위종이 탄성을 터뜨렸다.
“역시 우리 정부가, 성상께서는 현명한 판단을 내리셨군! 대사관도 불개입을 권고했습니다. 지금 페트로그라드는 군대로 절대 진정 못 시킵니다. 우리가 군대를 투입시켜 봤자, 거대한 파도 위에 떠 있는 기름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제 반란이 아니라 혁명입니다.”
* * *
대한제국, 황성.
페트로그라드에서 혁명이 터졌다는 소식은 시시각각 전해졌다.
“폐하, 주러시아대사관에서 급전이 도착했습니다.”
이선은 즉시 급전을 확인했다. 페트로그라드 시위가 군대의 반란으로 확산됐다는 보고였다. 모든 게 불확실하지만, 주둔군 상당수가 반란에 가담한 것으로 추정됐다.
‘마침내 올 것이 왔구나.’
이선은 한숨을 쉬며 눈을 감았다.
결국, 러시아 혁명은 현실로 다가왔다. 실제 역사보다 단지 2개월 늦춰졌을 뿐이었다.
“대사관에 상황이 바뀔 때마다 계속 보고하라고 전하게. 아니, 특별한 상황이 없어도 4시간에 한 번씩은 보고하라고 해.”
“예, 폐하!”
통신의 비약적인 발전은 유라시아 반대편의 페트로그라드와 서울도 전보로 연결해 주었지만, 실시간은 아니었다. 상황의 변화를 초조하게 기다려야 했다.
“폐하, 주러시아대사관에서 급전이 도착했습니다!”
「러시아 정부, 정확히는 군부로부터 주러 한국군을 반란 진압에 투입시켜 달라는 요청이 도착했습니다. 현재 페테르고프에 해병1여단이, 가치나에 근위2사단이 주둔 중입니다. 본국의 훈령을 바랍니다.」
“미쳤나? 수도 봉기에 외국군을 투입해서 진압시켜 달라고? 이런 어리석은 놈들이 있나?”
이선은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다 문득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생각해 보니 임오군란과 갑신정변, 동학농민전쟁이 있었군.’
애초에 이선이 왜 정권을 잡았고, 어떻게 역사를 바꿀 수 있었는가?
바로 임오군란에서 청군의 개입을 막는 것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실제 역사에서는 도성에서 일어난 반란조차 진압하지 못해 외세에 손을 내밀고, 그 결과 조선은 청과 일본이 각축하는 종속적 처지로 전락됐다. 임오군란의 청군 개입이 없었더라면 갑신정변도 없었을 테고, 역사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됐을 것이다.
바로 이선은 그때로부터 역사를 바꾸었다. 임오군란의 청군 개입을 막으면서 시작된 한국사의 변화는, 35년이 지나 놀라울 정도로 바뀌고 말았다. 실제 역사와 비하면 천지개벽이었다.
‘35년 만에 유사한 상황이라. 임오군란도 분명 궁궐을 습격할 정도의 반란이지만, 민씨의 전횡과 녹봉 지연에 분노한 구식군인 수천 명의 반란이라 민중의 신임을 받는 대원군을 내세워 손쉽게 가라앉힐 수 있었지. 쌀을 풀어서 해결됐고. 하지만 러시아는 수십만 민중과 수도 주둔군 수만이 결합한 반란 아닌가. 빵을 내줘서 진정시킬 단계는 이미 지났지. 누굴 내세운다고 해도 분노는 가라앉지 않을 것이다.’
이선은 왕실에 대한 민중의 분노와 군대의 반란을 적절하게 활용하여 집권한 당사자이기 때문에, 민심에 맞서는 게 얼마나 무의미한지 알고 있었다.
임오군란과 현재의 혁명은 유사한 측면이 있었지만, 폭발력이란 측면에서 비교 불가였다. 1882년 조선인들의 절대다수는 근왕에 충실했다. 단지 민씨의 전횡과 물가폭등, 녹봉 지연이 방아쇠를 당기게 한 것이다.
러시아도 단기적으로 황후의 전횡, 물가폭등, 식량배급 지연이라는 유사한 상황이지만, 혁명의 기원은 수백 년간 축적된 장기적 문제라서, 근본적인 수술이 없고서는 단지 시간만 지연할 뿐이었다.
하지만 차르와 러시아 정부는 근본적인 수술을 거부한 채 파멸적인 전쟁에 뛰어들었고, 그 결과는 민중의 분노와 혁명이었다.
「현재 페트로그라드의 상황은 모든 게 불확실합니다. 군중의 분노는 쉽사리 잠재워지지 않을 것입니다. 주둔군 다수가 반란에 넘어갔습니다. 군대를 투입 시킨다 한들, 어떤 결과를 낳을지 불투명합니다. 감히 아뢰건대, 현재로서는 관망이 최선의 방책입니다.」
대사 이완용의 공식적인 전문 외에도 공사 이위종이 사신(私信)을 첨부했다. 이위종은 러시아에서 오래 체류했고, 제국익문사 러시아 지부도 이끌고 있었다. 현재 러시아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한국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미 불개입으로 마음을 굳힌 이선은, 결단을 내려 러시아에 전문을 보냈다.
이위종과 울리야노프의 경고, ‘인민에 맞서는 권력자는 결국 쓰러진다’는 경고에 귀를 기울였다기보단, 이선 자신이 알고 있는 역사적 지식이 그런 결단을 내리라고 조언했다. 쿠데타라면 모를까, 민중혁명은 외국군 몇만이 투입된다고 막을 수 있는 성질이 아니었다.
「수신 주러시아군 사령부. 상황이 명확할 때까지, 주러시아 주둔군은 현 위치를 고수하라. 본국 정부의 훈령 없이는 절대로 러시아 내부 문제에 개입하지 않는다. 러시아군의 요청이 있더라도 시간을 지연하라.」
「수신 주러시아 대사관. 현재의 상황이 지속되면, 현 정부는 총사퇴하고 이를 대체할 임시정부가 두마에서 조직될 가능성이 크다. 정국을 누가 지도하고 있는지 신속히 파악해서 접촉해야 한다. 상황을 파악하여 본국에 보고하라.」
대사관으로 보낸 전문은 전신 차단으로 수신이 되지 않았지만, 사령부로 보내는 전문은 무사히 전달되었다.
대한제국은 혁명에 개입하지 않았다.
* * *
스타프카도 정보가 없어 우왕좌왕하는 건 매한가지였다. 페트로그라드에서 700km 떨어진 모길료프에서 니콜라이 2세는 상황파악을 못하고 있었다.
「상황이 전례 없이 심각합니다. 수도는 무정부 상태입니다. 정부는 마비에 빠졌습니다. 철도 운송이 중단됐습니다. 민중의 불만이 심각합니다. …… 조속한 양보가 필요합니다. 하루라도 미루는 것은 죽음과도 같습니다.」
5월 4일, 두마에서 처음 올라온 보고서에 차르는 코웃음을 쳤다.
“또 뚱보 로잔코가 헛소리를 지껄이는군. 그래서 자기한테 총리를 넘기라 이거지? 대답할 가치조차 없다.”
차르는 아직까지 상황을 모르고 있었다. 바로 그날 황후로부터 ‘폭동이 일어났으나 염려할 수준은 아니’라는 전문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즉각 페트로그라드에 병력을 보내 반란을 진압하도록.”
이때만 해도 니콜라이는 금방 해결되리라 믿었다.
하지만 5일에 수도에서 반란이 확산되었다는 소식이 잇달아 쏟아졌다. 주둔군의 다수가 반란에 가담했다는 급보였다. 그마저도 페트로그라드의 전신이 끊겨 정확한 상황 파악이 불가능했다. 급히 한국군에 개입을 요청했지만 이조차도 답이 없었다.
「상황 급박함. 양보 필요함. 속히 차르스코예 셀로로 귀환 바람. 알릭스.」
6일, 차르스코예 셀로의 별궁에 있어 전신이 끊기지 않은 황후로부터 급보가 전해졌다. 알렉산드라로부터 양보가 필요하다는 말은 생전 처음이었다. 니콜라이는 이제야 현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상황이 심각한가 보군. 짐은 즉시 차르스코예 셀로로 가겠다.”
“예, 폐하!”
니콜라이는 즉각 모길료프에서 황실 열차를 차고 차르스코예 셀로로 귀환했다. 때늦은 조치였다.
5월 6일 일요일, 병사들은 감옥과 구치소를 해방하고 정치범 수천 명이 풀려났다. 시위대의 수는 더욱 늘어났다.
시 외곽의 연대들과 심지어 장갑차 부대까지 혁명에 가담했다. 붉은 깃발을 단 장갑차의 출현에 시위대는 환호했다.
마지막까지 정부에 충성하던 부대들은 해군부에서 농성하다가, 끝내 포기하고 겨울궁전으로 퇴각했다. 겨울궁전을 제외한 전 구역이 혁명에 넘어갔다.
수도의 정부군은 대부분 소멸하였다. 주둔군 15만 중에서 혁명에 가담한 병사들은 12만이 넘었다.
수도는 무정부 상태였지만, 차르의 정부를 대체할 새로운 권력이 출현하고 있었다.
혁명의 승리가 임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