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548
– 229화에 계속 –
2부 229화 권위의 붕괴
러시아로 향하는 대한제국 특사단은 만주를 경유했다. 청 황실의 환대를 받은 후, 하르빈(하얼빈)에서 러시아 동청철도 고등판무관 겸 경비대 사령관 호르바트(Dmitry L. Horvat) 중장과 회동했다.
“이 어려운 시기에 축하사절로 러시아에 방문하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우리 두 나라는 우방이자 연합국의 일원이니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흰 수염을 길게 기른 호르바트는 한동안 북만주의 실질적인 지배자였다. 동청철도 고등판무관은 하르빈과 흑룡강성 일대의 북만주를 통제했다.
3차 한러협약이 체결되고, 이윽고 혁명이 터지면서 북만주는 점점 한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졌다.
제 코가 석 자인 러시아 임시정부는 철도경비대 병력 일부를 본토로 돌려보내고, 동청철도에 대한 재정지원을 줄였다. 호르바트는 한국에 지원을 요청했고, 이선은 흔쾌히 받아들였다.
덕분에 하르빈과 북만주의 러시아인 사회는 혁명의 무풍지대로 남아 있었다.
“전해 들어오는 소식을 들으면, 러시아 상황은 혁명 전과는 확연히 다릅니다. 지방으로 갈수록 혼란과 무정부 상태가 심합니다.”
“상황이 그렇게 심각한가요?”
“국가의 권위가 도처에서 붕괴하고 있습니다. 이대로 가다간 사회주의자들이 러시아를 망치고 말 겁니다.”
호르바트는 귀족이자 제정에 충성하는 장군답게 혁명에 대해 악감정을 드러냈다. 사회주의자에게 굴복하느니 차라리 한국과 손잡겠다는 게 그의 속내였다.
“정부나 군대에 반감을 가진 자들이 많지만, 그래도 한국은 연합국이니 환영할 겁니다. 아무쪼록 편안한 여정이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장군. 귀국길에 다시 뵙지요.”
대한제국 특사단은 만주리에서 러시아 영토인 치타로 진입했다. 이진은 1913년 로마노프 왕조 30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갔던 행로와 똑같은 길을 가고 있었지만, 분위기는 4년 전과 확연히 달랐다.
“자유의 나라, 새로운 러시아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혁명 만세!”
기존의 주지사는 해임되었고, 임시정부가 파견한 새로운 주지사가 맞이했다. 치타뿐만 아니라, 러시아 전역에서 총독과 지사가 교체되었다.
지방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건 지사, 두마, 젬스트보도 아닌 농민 소비에트였다. 우랄산맥 동쪽의 러시아에는 농민이 압도적으로 다수였고, 각 지방의 농민 소비에트가 이들을 대표했다.
임시정부 입장에서는 그나마 다행인 건, 농민 소비에트는 사회혁명당 우파, 즉 온건파 인민주의자가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들은 임시정부 지지와 ‘혁명적 방위주의’를 채택했다.
“세상이 달라지긴 크게 달라졌군.”
“놀라운 일입니다.”
조선인의 후예인 한국인들은 급진적인 사회혁명을 경험해 본 적이 없었으므로, 러시아의 변화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혁명은 곧 권위의 붕괴였다. 차르와 국가뿐 아니라, 국가를 상징하는 권위도 인민들에게 거부당하고 있었다. 귀족, 관료, 법관, 경찰, 장교, 사제, 자본가, 지주뿐만 아니라 심지어 마을의 장로와 가부장의 권위도 추락했다.
그동안 억압받았던 이들, 노동자, 소작농, 병사, 학생, 여성, 소수민족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한번 둑이 무너지자 막혀 있던 물이 홍수처럼 쏟아졌다. 여기저기에서 평의회, 위원회, 조합, 정당이 결성되어 새로운 목소리를 냈다.
즉, 혁명의 시대였다.
치타에서 모스크바까지는 8일이 소요되었다. 전쟁으로 철도 사정이 말이 아니었지만, 대한제국 특사단에 우선권이 주어져 빠르게 이동할 수 있었다.
7월 4일, 모스크바에 도착하고 나서야 특사단은 진정한 혁명의 소용돌이에 들어왔다는 걸 체감했다.
도시 곳곳에 백청적의 삼색기와 함께 소비에트의 붉은 깃발이 휘날렸다. 군인들은 가슴에 혁명을 상징하는 붉은 리본을 달았다. 제복에 훈장을 달고 으스대던 무리가 사라지고, 검소한 신사복이나 간소한 군복 차림을 한 사람들이 주를 이뤘다.
“달라진 모스크바를 보니 너무나 기쁘고 행복하군요. 여러모로 편의를 봐줘서 감사합니다.”
특사단 열차에 동석했던 부하린은 모스크바에서 내렸다. 부하린은 모스크바에 도착할 때까지 정치 활동을 자제해 달라는 한국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여정 동안 부하린을 주로 상대했던 이는 특사단의 일원인 여운형이었다. 동년배인 두 사람은 이념의 차이를 넘어 금세 가까워졌다. 부하린이 추구하는 협동조합 형태의 사회주의는 덴마크식 협동조합운동을 이끌었던 안창호와 여운형의 관심을 끌었다.
급진좌파인 정치이념이 주는 분위기와 달리 부하린은 인간적으로 소탈하고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매력적인 화술이라면 한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여운형이 토론 상대가 되었다.
“역사의 진보는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습니다.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에서 프롤레타리아트 사회주의 혁명으로의 진보는 필연입니다. 귀국이 현명한 선택을 하길 바랍니다.”
“나는 자유주의자로서 선생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지만, 민주주의란 다양성을 포용하는 것이라 믿습니다. 선생의 앞날에 행운이 있기를 바랍니다.”
부하린과 여운형은 국적과 이념을 뛰어넘어 우의를 맺었다. 이때만 해도 서른 내외의 청년들인 이들이 장차 두 나라를 대표할 정치가가 되리라곤 아무도 생각하지 못할 때였다.
“어서 오십시오. 러시아 임시정부는 대한제국 특사단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임시정부의 외무장관, 입헌민주당 지도자 밀류코프가 직접 모스크바에 와서 특사단을 맞이했다.
분위기를 전환할 만한 상징적 이벤트를 열망하던 임시정부에게, 대한제국 특사단의 방문은 진심으로 환영할 일이었다.
대한제국은 연합국의 일원이자, 군사동맹을 체결한 동맹국이었고, 동부전선에 유일하게 군단급 병력을 파병한 나라였다.
“외무장관께서 바쁘신 와중에도 모스크바까지 직접 와 주시다니, 환대에 감사드립니다.”
“소중한 우방의 특사단이 오는데, 어찌 페트로그라드에서 가만히 기다리고 있겠습니까?”
물론 러시아 임시정부가 외교적으로 가장 기대고 있는 건 영국과 프랑스요, 경제적으로는 미국에 기대고 있었다. 한국은 열강들과 비교하면 현저히 영향력이 작았지만, 국내의 정치적 선전용으로는 이만한 소재가 없었다.
「보라! 머나먼 극동의 국가인 한국도 러시아의 국토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함께 싸우고 있다. 러시아의 군인인 여러분이 이들만 못해서야 되겠는가? 우리의 모국 러시아와 혁명을 방위하자!」
러시아군의 사기저하는 눈에 띄게 심해졌다. 병사들도 전쟁 지속에는 반대하지 않았지만, 군대위원회를 조직해 장교들에게 맞섰다. ‘혁명의 방어’에는 동의하지만, 공세에는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으려고 했다.
이러니 전선 전체를 통틀어 가장 군율이 엄정하고 전의가 충만한 병력이 한국군이란 말이 나올 정도였다.
국군 중에서도 정예부대가 뽑혀 왔을뿐더러, 탁월한 야전 지휘관이자 구식 군대의 사병 출신으로서 병사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홍범도 부장이 지휘하는 한국 파병군은 상하좌우가 똘똘 뭉쳐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황태자 전하. 원로에 노고가 많으셨습니다. 신임 주러시아 특명전권대사가 삼가 인사 올립니다.”
“반갑소, 대사.”
신임 주러시아 대사가 이진과 특사단을 맞이했다.
혁명 직후, 러시아 대사 이완용이 물러나 귀국하고 새로운 인물이 대사에 부임했다.
바로 제국익문사 구주지부장 조한민이었다.
“아니, 대체 조한민이 누구야?”
“국영통신사 특파원 출신이라는데?”
외교가에서는 주러시아 대한제국 특명전권대사로 임명된 조한민의 정체에 대해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들, 예컨대 주러시아 공사이자 제국익문사 러시아 담당인 이위종 같은 이는 환영했다.
“조 형이라면 새로이 정세를 주도할 이들에 대해 누구보다 가장 잘 알고 있는 분이지. 아직도 구체제의 연장이라 생각하는 영국, 프랑스 대사와는 달라.”
조한민은 러시아 혁명가들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소비에트 지도자들도 ‘제2인터내셔널의 벗’인 조한민에게 만족감을 표했다. 10년간의 활동이 마침내 빛을 발휘하는 순간이었다.
특사단과 주재 외교관들은 역할을 분담했다.
이진은 황실, 이영은 군부, 이상설은 정부, 이회영은 정보부, 조한민과 이위종은 외무부와 노동자 소비에트를 전담했다.
안창호와 전봉준도 야당 정치인 자격으로 두마와 정당, 농민 소비에트를 전담했다.
황실을 맡은 이진은, 숙부 이영과 함께 새 차르 미하일 2세를 알현했다.
“황제 폐하, 대한제국은 황제 폐하께서 전 러시아 국민의 황제로 즉위하셨음을 축하드립니다. 이에 대한제국 황제 폐하의 국서를 삼가 봉정합니다.”
“고맙소. 한국 황제 폐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전해 주시길 바랍니다.”
미하일 2세는 이선의 국서를 정중히 받아들였다.
“이 어려운 시국에 황태자께서 직접 와 주니 너무나 기쁩니다.”
“한국과 러시아는 동맹이요, 우리 황실과 러시아 황실은 형제나 다름없으니, 당연히 직접 와서 축하드려야 마땅한 일입니다.”
“참으로 고마운 말씀입니다. 짐은 귀국과 귀국 황실의 우의를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외교적 수사가 아니라, 미하일은 진심으로 기뻐해 보였다.
미하일 2세와 로마노프 황실의 권위는 추락해 있었다. 여전히 모든 정부 명령은 차르의 결재를 받아 차르의 이름으로 선포되었지만, 모든 실권은 임시정부에 있었다. 아니, 이조차도 소비에트의 지지가 없으면 사상누각이었다.
여전히 군대와 농촌에서는 차르와 제정에 대한 지지가 남아 있었지만, 혁명의 수도인 페트로그라드에서는 완전히 고립된 처지였다.
제헌의회 선거에 제정의 존속 여부를 건 미하일은 필사적이었다.
미하일은 몸소 농민들이 먹는 흑빵과 죽을 먹고 검소한 생활을 하며 국민의 지지를 얻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지만, 페트로그라드 시민들은 극히 냉소적이었다.
“오직 신속히 농지개혁을 완수하시어 제정에 대한 농민의 지지를 확보해야 합니다.”
극동 총독 스톨리핀도 혁명 이후 해임되었다. 그는 해임을 기쁘게 받아들이며 페트로그라드행 기차에 올랐다. 지도자를 잃은 10월당과 군주제 지지자들은 스톨리핀을 영수로 추대했다.
총리 재임기에 숱한 탄압을 받았던 사회주의자들은 스톨리핀에게 저주를 퍼부었지만, 군주제 지지자들의 구심점이 된 스톨리핀은 개의치 않았다.
특히 혁명 이후 테러리즘을 당론에서 저버렸다고는 하지만, 제정 관료 테러 경력이 혁혁한 사회혁명당은 스톨리핀을 혐오의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농민들 사이에서 광범위한 지지를 얻고 있는 사회혁명당은 스톨리핀에게 있어서도 최대 위협이었다.
혁명 이후 재빨리 사회혁명당의 주도권을 장악한 케렌스키가 스톨리핀과 사회혁명당의 휴전을 중재하긴 했지만, 갈등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비록 한국이 작은 나라이긴 하나, 한국의 농지개혁은 중요한 참고사례입니다. 마침 한국 특사단이 방문하였으니 잘 되었습니다. 한국식 농지개혁을 대대적으로 홍보하여 농민들에게 기대를 주고, 지주들도 안심시켜야 합니다.”
스톨리핀의 조언을 받아들인 미하일은, 한국 특사단에 자문을 요청했다.
물론 이진은 기쁘게 받아들였다.
‘부황의 업적을 대국인 러시아에서도 참고한다니, 역시 부황께서는 세계적인 지도자로구나.’
“특사단에 농림대신에 재임하며 농지개혁을 주도한 전봉준 의원이 있습니다. 농촌계몽운동과 협동조합운동을 이끈 안창호 의원도 있지요. 실무에 정통하니 자문으로 손색이 없을 겁니다.”
‘동양의 협동조합운동’을 이끈 안창호, ‘농민운동과 토지개혁’을 이끈 전봉준은 두마와 농민 소비에트에서 환영을 받았다.
“폐하, 제가 차르스코예 셀로를 방문해도 되겠습니까?”
“짐이야 동의하지만, 외부인이 형님을 만나려면 법무부의 허가가 필요합니다.”
미하일이 난처함을 보이자, 이진은 내심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일국의 황제가 그 정도 결정도 못 내리고, 법무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허울만 남은 제정 러시아의 현실에 경악을 하던 이진은, 옛 역사를 떠올리며 납득하였다.
‘하긴. 연산군이나 광해군처럼 폐위되어 유배되었다고 생각하면, 외부인이 만나는 건 문제가 있지. 대한도 태상황이 외국 사절을 만나려면 외무부와 부황의 동의를 얻어야 하니까.’
이진이 법무부에 정식으로 요청하자, 법무장관 케렌스키는 흔쾌히 동의했다. 니콜라이 2세가 반동파의 구심점이 되길 원치 않는 임시정부는 외부인의 회견을 제한했지만, 한국 황태자가 개인적으로 만나겠다는 것까진 막지 않았다.
이진은 이영과 함께 차르스코예 셀로를 방문하여 선황 니콜라이 2세 일가를 만났다.
“진이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황제 폐하,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오, 황태자. 오랜만에 이렇게 만나니 너무나 반갑구려. 그런데 나는 더 이상 황제가 아니니, 황제라고 호칭하지 않았으면 하오.”
니콜라이는 진심으로 이진을 반겼지만, 황제라는 호칭에는 쓴웃음을 지으며 손사래를 쳤다.
“제게 있어 폐하는 영원한 황제요, 제 부황의 영원한 친우이십니다. 누가 듣는 사람도 없는데, 폐하라고 호칭한들 문제 될 게 무엇이겠습니까?”
“오, 정말이지……. 고맙소. 퇴위한 이후에는 다들 나를 죄인 취급하는데, 오직 황태자만이 예전과 다름이 없구려.”
4월 혁명과 퇴위 이후, 황실과 군주제 지지자들조차 니콜라이와 알렉산드라를 비난했다. 수백 년 동안 누적된 제정의 모든 문제점이 니콜라이 2세의 무능함 때문이라고 비난받았다.
니콜라이는 억울했지만, 제정의 존속을 위해 입을 다물어야 했다. 모든 비난을 니콜라이와 알렉산드라가 받은 덕에 가까스로 미하일 2세와 로마노프 왕조는 살아남을 수 있었다.
“부황께서도 폐하께 안타까운 마음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이진은 이선이 쓴 서한을 니콜라이에게 전달했다. 이제 국서나 친서가 아닌, 사신(私信)이었다.
편지를 읽던 니콜라이의 눈시울이 문득 붉어졌다.
“그대의 부친은 여전히 내 벗이구려. 진작 그의 말을 들었더라면, 이 지경까지 오지 않았을 터인데.”
니콜라이는 한숨을 쉬었다. 퇴위하고 나니 후회되는 일이 한둘이 아니었지만, 이선의 조언을 들었더라면 이 지경까지는 오지 않았을 터였다.
“뭐, 그래도 퇴위하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한 점은 있소. 무엇보다 가족들과 늘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으니 행복하구려.”
가정적인 니콜라이는 비로소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에 만족했다. 가족과 함께 식사하고 산책하며, 궁전의 텃밭을 가꾸며 순무 농사를 지었다.
니콜라이는 퇴위한 후에야 비로소 행복을 찾았고, 다섯 아이의 아버지로서 삶을 충실히 살고 있었다.
“그대의 부친이 여전히 내 벗이라 믿고, 부탁하고 싶은 게 있소.”
“무엇이든 말씀하십시오, 폐하.”
“앞으로 정세가 어떻게 바뀔지 모르오. 나와 알릭스는 그렇다 쳐도, 아이들까지 혁명에 휘말리는 건 원치 않소. 영국에 망명을 요청했는데, 아직 답이 없구려. 만약 끝내 영국에서 답이 없다면…….”
니콜라이는 퇴위 후 신변의 불안을 느끼고 영국에 망명을 요청했지만, 영국은 이렇다 할 답을 주지 않았다.
영국 왕실과 정부는 국민감정을 고려하고 있었다. 반독 여론이 극에 달해 있었고, ‘폭군 니키’와 ‘독일 간첩 알릭스’는 절대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귀국에서 우리 가족을 받아 줄 수 있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