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55
– 55화에 계속 –
55화 입궁(入宮)
“와아아아!”
엄청난 기세의 봉기군에, 궁궐을 지키던 수문장과 위병도 방위를 포기하고 도망쳤다.
봉기군은 그대로 돈화문을 지나 창덕궁으로 난입했다. 그동안 백성들에게는 금단의 영역이었던 곳이었다.
“저기 김보현이 있다!”
“저놈도 민겸호와 함께 도적질한 놈이지!”
전 선혜청 당상, 경기감사 김보현은 그 와중에도 위세를 지키려 했다.
“네, 네 이놈들! 감히 궁궐에 쳐들어와서 대신을 겁박하다니, 정신이…….”
“네놈이야말로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구나!”
“어억!”
봉기군은 김보현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은 채, 그 자리에서 쳐 죽여 버렸다.
유례없는 사태에 궁궐은 아수라장 그 자체였다. 임금조차 어찌해야 할지 몰라 쩔쩔매고 있었다.
난이 터진 어제, 임금은 사태의 책임자인 병조판서 겸 선혜청 당상 민겸호와 경기감사 김보현을 파직하고, 영의정 이최응과 무위 대장 이경하를 경질했다.
자신의 친형인 이재면을 무위 대장으로 임명해 난의 안정과 궁궐의 안전을 도모했지만, 오히려 난은 더 격화되어 끝내 범궐(犯闕)까지 발생한 것이다.
“오늘의 일에 대해 어떻게 차마 말할 수 있겠는가? 다만 부덕한 내가 외람되이 크나큰 왕업을 이어 백성들을 제대로 돌보아 주지 못한 결과 전에 없던 이런 변고를 초래하였다. 이것이 어찌 그들이 일부러 화를 즐겨 그런 것이겠는가? 첫째도 나의 잘못이고 둘째도 나의 잘못이다. 일이 이에 미치니 절로 한심해진다.”
임금은 민망함을 느꼈다. 따져보면 그 누구보다 자신의 책임이 가장 큰 상황이었다.
얼마 전, 아홉 살 난 왕세자의 가례(嘉禮)에 국고가 휘청거릴 정도로 돈을 썼다. 세자를 총애하는 중전의 성화를 이기지 못한 탓이었지만, 결국 책임은 임금의 몫이었다.
“승정원의 승지들은 일일이 효유(曉諭)하여 그들로 하여금 물러가게 하라.”
하지만 효유로 끝날 일이 아니었다. 명령을 집행해야 할 승지들도 이미 승정원을 떠난 상황이었다.
“흥인군께서 난군에 의해 살해당했다고? 대체 어쩌다 일이 이 지경이 되었는가! 이 일을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김보현에 이어 이최응이 맞아 죽었다는 소식까지 전해지자 임금은 황망하기 짝이 없었다.
흥인군 이최응은 대원군 이하응의 친형임에도 사이가 원수나 다름없었다. 권좌에 오른 동생에 대한 열등감이 있었던 이최응은 대원군의 실각 이후 적극적으로 민씨의 편에 섰고, 영의정까지 오르며 승승장구했다.
그 결과 이최응은 ‘왕족임에도 민씨 척족 일파’라고 찍혀 봉기군에게 제일 먼저 살해당했다. 이최응은 집이 안전하다고 믿고 있다가, 난입한 병사들을 피해 담을 넘던 중에 살해당했다.
“전하, 아뢰옵기 황공한 일이오나, 이 난국을 진정시킬 수 있는 분은 오직 한 분뿐입니다.”
신임 무위 대장 이재면이 말했다.
“대원군 말씀입니까?”
임금도 대원군 말고는 해결할 수 있는 인물이 없다는 걸 이성적으로 알았다. 하지만 감정적으로 용인이 되지 않았다.
“지금 사직(社稷)과 양궁(兩宮)의 안위를 지킬 수 있는 분은 오직 아버님뿐이십니다. 전하, 옥체를 보존하소서!”
이재면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신하가 임금에게 권하기보다는, 형제로서 간곡하게 청하는 듯했다.
“……형님은 아버님의 입궁을 모시십시오.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모든 권한을 드릴 터이니, 어머님과 함께 신속히 오시라고.”
“신은 부덕하오니 이런 중책을 맡을 수가 없나이다.”
“아버님, 이러실 때가 아닙니다. 난병이 대전의 목전까지 침입했습니다. 정녕 왕실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는 걸 보셔야겠습니까?”
왕명을 받은 대원군은 형식적으로 고사하는 시늉을 몇 번 하다가, 거듭되는 이재면의 권유에 마침내 팔인교(八人轎)에 올라탔다.
“재면아.”
대원군이 작은 목소리로 아들을 불렀다.
“예, 아버님.”
“네가 호조판서와 훈련대장을 맡아야겠다. 먼저 파탄 난 재정과 군대부터 해결해야지. 완화군이 너를 도울 것이다.”
이재면이 놀라워했다.
“완화군이 조선으로 돌아왔습니까?”
“그래. 주상을 뵈어야 하니, 자세한 건 다음에 이야기하자꾸나.”
“아버님, 난병이 범궐한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입니다. 부디 주상의 권위를 지켜 주십시오.”
“쯧, 왕실의 체모와 권위는 이미 민씨로 인해 땅에 떨어졌느니라. 안동 김씨 세도를 겨우 끝내니 또 다른 외척이 나대는 꼴을 어찌 보겠느냐? 이 나라는 전주 이씨의 나라니라! 외척이 다시는 날뛸 수 없다는 걸, 놈들에게 똑똑히 보여 줄 것이야.”
대원군은 팔인교에 올라 호령했다.
“창덕궁으로 가자!”
운현궁에서 창덕궁까지의 거리는 가깝지만, 사람들로 인해 꽉 메워져 있었다.
“쉬이- 물럿거라! 대원위 대감 행차시다!”
“대원위 대감이다!”
“와아아아-!”
“국태공 천세!”
“국태공이시여, 도탄에 빠진 나라를 구해 주소서!”
대원군의 입궁 소식에 백성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내질렀다.
대원군 집정기에도 이런저런 실수들이 많았지만, 백성들 사이에선 적어도 대원군은 ‘나라를 제대로 다스린 어른’으로 기억되었다.
구관이 명관이라고, 임금의 친정 10년 동안 실정이 거듭되고 민생이 파탄나면서, 대원군을 그리워하는 여론은 갈수록 커지고 있었다.
이들은 대원군이 집정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리라는 소박한 기대를 품고 있었다.
오랜만에 창덕궁에 입궁하면서, 대원군은 감회가 새로웠다. 마침내 권좌로 복귀한 것이다.
“대, 대원위 대감! 살려 주십시오!”
누군가 대원군을 알아보고 미친 듯이 달려왔다. 바로 그 뒤로는 무기를 들고 쫓아오는 이들이 있었다.
“민겸호를 죽여라!”
내관 복장으로 갈아입고 수염을 가리면서 도망다니던 민겸호는, 마침내 정체가 들통나자 맞아 죽을 상황이었다.
“대원위 대감이시다!”
“와아아아아!”
봉기군도 대원군을 알아보고 일제히 환호성을 내질렀다.
“대, 대감. 살려 주십시오. 제가 죄를 지었다곤 하지만, 대감의 처남이자 주상의 외숙이 아닙니까?”
민겸호가 혈연관계를 들어 목숨을 구걸하자, 봉기군이 외쳤다.
“합하! 다른 자는 몰라도, 나라를 도적질한 민겸호는 절대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합하와 저희 모두를 역적으로 몰아 죽이려고 한 놈입니다!”
민겸호는 대원군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오, 오해입니다. 대감, 제발 저를 살려 주십시오. 대감만이 저를 살려 주실 수 있습니다!”
대원군은 쓴웃음을 지었다.
“민심이 이러한데, 내가 어찌 대감을 살릴 수 있겠소이까?”
대원군은 민겸호를 외면하고 팔인교를 움직이게 했다.
“죽어라, 이 개자식아!”
“으아악!”
대원군이 시야에서 벗어나자마자, 봉기군은 그 자리에서 민겸호를 때려죽였다.
“자, 이제 중전을 잡으러 가자!”
“와아아!”
난장판이 된 궁을 보면서 대원군은 심경이 복잡해졌다.
‘민심이라는 호랑이 등에 올라타 질주하긴 했지만, 과연 이 호랑이를 어떻게 잠재워야 할 것인가?’
노회한 정치가인 대원군은 민심을 파악하고 이용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예전과 다른 변수가 있었다.
‘청국과 일본, 서양은 또 어찌해야 할꼬?’
민심을 잠재울 자신은 있었지만, 외세라는 변수를 어떻게 해결할지 순간 머리가 지끈했다.
‘완화군이 북양 대신과 아라사 황제와 친분이 두텁다고 했지. 완화군을 궁으로 불러들여 중책을 맡겨야겠다.’
대원군은 왕실 중심의 친위 내각을 구상했다. 재정과 군사는 장자인 이재면에게, 내정은 조카인 이재원에게, 외교는 장손인 이선에게 맡기고, 자신이 이를 총괄할 생각이었다.
이날은 비가 내렸다가 그쳤다. 양력 7월 하순의 뜨거운 열기는 좀 식혔지만, 습도로 인해 푹푹 쪘다.
백성들이 일으킨 뜨거운 바람이 한성 곳곳에서 타올랐다. 이들의 분노가 집중된 건 민씨 척족의 집이었지만, 그다음은 일본이었다.
“왜놈들을 몰아내자!”
“한양의 쌀값이 오른 건 다 왜놈들 때문이다!”
“왜놈들이 조선의 부를 다 가 가져간다!”
강화도 조약 이후 일본과 무관세로 무역협정을 맺음에 따라, 조선 쌀이 개항장을 통해 빠져나가는 대신 일본이 중개하는 서양산 사치품이 들어왔다.
그 결과, 쌀 가진 지주나 돈 많은 관리들 입장에서 좋은 일이었지만, 가난한 백성들 입장에서 일본은 물가 폭등의 주범이었다.
민중의 반일 감정은 점차 누적되다가, 그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백성들은 무기를 들고 돈의문 밖의 청수관(淸水館), 즉 일본 공사관을 향해 몰려들었다.
“잠시 멈추시오! 나는 운현궁에서 보낸 사람이오! 이미 왜인들은 모두 도주하였소이다. 모두 돌아가도록 하시오!”
그는 바로 안영흠이었다. 이선이 대원군에게 부탁한 일이자, 그에게 내린 밀명은 바로 일본 공사관 습격을 막는 것이었다.
대원군은 일본을 혐오했지만, 그도 외교적 마찰을 빚지 않기를 원했다. 이선의 뜻에 동의한 대원군은, 미리 일본 공사관 습격을 막으라는 명을 내렸다.
“대체 어디로 도망쳤단 말이오?”
“이미 늦었소. 인천으로 도주했다 하오.”
“쫓아서 죽입시다!”
“에잇, 사내가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베야지! 공사관이라도 불 질러 버립시다!”
“기다리시오! 만약 일본 공사관을 불 지르고 왜인들을 죽인다면, 잠시의 통쾌함은 풀릴지 모르나 저들이 이를 명분 삼아 미쳐 날뛸 것이오. 이는 대원위께서 원하시는 일이 아니외다! 대원위 합하의 명을 따르시오!”
이는 바로 이선이 안영흠에게 한 말이기도 했다.
대원군의 명이라는 말에 마침내 백성들은 공사관의 포위를 풀고, 삼삼오오 흩어졌다.
하나부사 요시모토(花房義質) 일본 공사와 공사관 직원들은 가까스로 인천을 향해 도주하는 데 성공했다. 이들을 호위하고 있는 이는 다름 아닌 장무영이었다.
23일에 군란 발발 소식을 듣고 인천으로 온 장무영에게, 이선은 즉시 명을 내렸다.
“일본 공사가 인천으로 도주할 터이니, 그를 인천까지 데려오도록 하게.”
장무영과 1개 분대 병력은 다시 말을 달려 서대문에 이르렀고, 공사관 습격을 간발의 차이로 막고 인천으로 도주를 도왔다.
그러나 아예 피해가 없는 건 아니었다.
7월 23일 밤, 봉기군이 가장 먼저 하도감을 습격하자마자, 별기군은 싸워 보지도 않고 항복했다.
“네놈도 항복해라!”
“대일본제국의 군인더러 폭도에게 항복하라니!”
별기군 교관인 호리모토 레이조(堀本禮造) 소위만이 칼을 빼서 저항하다가, 봉기군에 의해 참살당했다.
“죽어라, 왜놈!”
호리모토를 따르던 일본 순사 3인도 저항하다가 살해당했다. 이는 이미 봉기 초기에 발생한 일로, 이선이나 대원군도 손을 쓸 수 없었던 일이었다.
하나부사와 일본인들이 피폐해진 꼴로 인천으로 도착하자, 인천에 있던 서양 외교관들은 비로소 정변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나부사 공사, 이게 어찌 된 일이오?”
하나부사는 조선에 부임하기 전에 러시아 주재 외교관을 지낸 적 있어, 베베르와도 안면이 있었다.
“한성에 난리가 났습니다. 폭도들이 궁궐을 점령하고 한성 곳곳을 난장판으로 만들고 있어요. 현재 일본인 13인의 생사가 불분명합니다. 일본국은 이 사태가 매우 유감스럽습니다.”
그 말을 듣고 있던 이선이 물었다.
“앞으로 어찌할 겁니까?”
“만약 일본인이 폭도에 의해 살해당했다면, 조선국이 책임을 져야지요. 이는 문명국의 법도를 어긴 일입니다.”
“아, 그래요? 현재 일본 외무경이 이노우에 카오루 맞지요?”
“그렇습니다만.”
“20년 전 일본에서도 서양 공사관 습격을 즐겨 했다고 들었는데. 아마 그때 영국 공사관에 불 지른 사람들이 현재 일본의 최고 권력자들이라지요. 그러니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겠군요. 이노우에 외무경이 ‘문명국’다운 해결책을 찾길 바랍니다.”
이선은 빈정거리는 어조로 말했다.
1863년, 영국 공사관 방화를 주도한 인물은 그 당시 조슈의 과격한 양이파 무사였던 이토 히로부미와 이노우에 카오루였다. 현재 그들은 메이지 일본의 핵심 권력자였다.
“그리고 내가 그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사람을 보내 공사와 공사관 직원들의 피신을 도왔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그리고 체류 일본인의 생사가 확인되는 대로 알려 주겠습니다.”
하나부사는 이선에게 정중하게 고개를 조아렸다.
“일본국은 공의 호의를 잊지 않을 것입니다.”
7월 25일, 하나부사와 공사관 직원들은 마침 인천에 정박해 있던 영국 측량선 플라잉피시 호를 타고 일본을 향해 떠났다.
얼마후, 안영흠이 인천에 이르렀다. 대원군의 명을 받고 오는 길이었다.
“완화군 대감, 입궁하시라는 대원위 합하의 명이 떨어졌습니다.”
“음, 나도 당장 가고 싶지만, 여기서 해결할 일이 조금 남아 있소. 부탁한 건 갖고 왔소?”
“예, 여기.”
대원군의 직인이 찍혀 있는 종이들이었다. 빈 종이라, 내용은 이선이 채우면 됐다.
“이걸 다 발송한 후에 가야겠소.”
이선은 종이들을 챙겼다. 즉시 외국으로 보낼 문서들이었다.
“한양의 혼란은 좀 진정되었소?”
“예. 대원위 대감께서 조정을 맡자마자, 진정되었습니다.”
역시 대원군의 민심 장악 능력은 대단했다.
“성상께서는 무탈하시오?”
“다행히도 무탈하십니다.”
“그럼 중궁전도 무탈하시오?”
순간 안영흠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저, 그게……. 중전께서 승하하셨다는 전교가 반포되었습니다. 이미 빈전이 차려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