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550
– 231화에 계속 –
2부 231화 측은지심
“전하, 그게 그렇게 즉흥적으로 결정할 사안이 아닙니다!”
이진이 손쉽게 꺼낸 말에 이영은 경악했다.
“즉흥적이라니요? 아닙니다. 저도 여러 가지를 고려해 봐서 드린 말씀이지요.”
“전하께서는 본인이 하신 말씀이 본국에 들어가면 어떤 파문이 일어날지 고려 안 하십니까? 제위를 계승할 대한제국 황태자가 외국 공주, 그것도 퇴위한 황제의 딸과 약혼을 하겠다니요! 누가 그걸 받아들이겠습니까?”
“숙부님도 태상황의 적자이자 계승권이 있는 황족인데 러시아 귀족 여인과 결혼하지 않으셨습니까.”
이영은 이진의 태연한 태도에 저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였다.
“저와는 상황이 다르지요! 저는 진심으로 아내 될 사람을 사랑했고, 태자도 아닐뿐더러, 그리고…….”
– 황형의 신하들이 내 존재를 경계하니, 그들을 안심시키기 위해서라도 계승권에서 멀어질 행동을 해야 했소.
이영은 차마 그 말은 태자에게 할 수가 없었다. 황형에게 누가 되는 말이었다.
“저도 여인을 사랑할 수 있지요. 제 나이가 스물하나, 10년 전 숙부님과 같습니다. 숙부님이 처음 숙모님을 만난 때가 아니던가요?”
“……사랑해서 그런 결정을 내렸단 말인가요? 그럼 네 황녀 중에 어느 분입니까?”
“타티야나 공주는 아름답고 조각 같지요. 성품도 차분하고 순종적입니다. 특히 아픈 동생 알렉세이를 헌신적으로 돌보는 모습이 인상적이더군요. 대한 황실에서도 어울리는 풍모라고 생각되지 않으십니까?”
타티야나가 네 황녀 중에서 가장 인기가 많고, 그만큼 혼담도 많이 들어왔던 건 사실이었다. 이진의 말처럼 동양인도 좋아할 외모와 성격이었다.
“타티야나 여대공이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신붓감이었던 건 틀림없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릅니다.”
“그래서 안타깝다는 겁니다. 아아, 고귀하신 황녀로 태어나 축복받은 삶을 누려야 마땅한데도, 세상이 바뀌어 새장 속에 갇혔으니 어찌 안타까운 마음이 들지 않겠습니까.”
이영은 조카가 진심으로 말하는 건지, 연극을 하는 건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전하께서 측은지심이 드는 건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동정은 애정이 아닙니다, 전하.”
“맹자께서 말씀하시길, 측은지심은 어짊의 극치(惻隱之心, 仁之端也.)라고 하였습니다. 부황께서는 제가 성리학보다는 신학문을 배우길 원하셨지만, 유독 맹자만큼은 중시하셨지요. 진은 성현의 말씀을 따르고자 합니다.”
“다음 문장은 기억 못 하십니까?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은 옳음의 극치이고, 사양하는 마음은 예절의 극치이고, 옳고 그름을 아는 마음은 지혜의 극치이다. 이는 옳지 못한 일입니다!”
이영은 더욱 정색하며 반박했다.
“제가 어찌 옳고 그름을 구분 못 하겠습니까? 이는 인의와 국익을 모두 고려한 바이기도 합니다.”
“그 무슨 말씀입니까?”
“니콜라이 2세, 그 조부이신 알렉산드르 2세부터 부황과 대한에 베푼 은혜가 얼마나 큽니까. 그 은혜를 모르면 인의에 어긋나는 행동이지요.”
“그건 성상께서 두 황제를 암살에서 막은 보답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예, 그러니 이번에는 우리가 은혜를 베풀어야지요. 그 케렌스키라는 자가 말한 이유 때문에라도 대한으로 모셔 와야 합니다.”
“설마, 반혁명세력의 중심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이진은 빙긋 웃으면서 술잔을 들어 올렸다.
“바로 그렇지요. 군주를 끌어내린 것도 모자라서, 재판에 세우려고 한다? 말도 안 되는 처사입니다. 러시아라고 애국자, 충의지사가 없겠습니까? 황제를 폐위하고, 질서를 파괴하고, 권위를 능멸하고, 사유재산권을 부정하고, 군대마저 해체하려 드는 무리들이 나라를 지배하도록 놔두겠습니까?”
이진은 노골적으로 소비에트와 사회주의, 아니 그보다는 ‘무질서’를 혐오했다. 그가 4년 전에 봤던 아름다운 러시아는 사라지고, 무질서와 혼란만이 가득했다. 미래의 군주로서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미 전 황제는 민심을 잃어 퇴위한 분입니다! 무엇보다 대한이 러시아의 국내 사정에 개입하면 안 됩니다. 성상께서 그걸 용인하시겠습니까?”
“저도 당장 하자는 게 아닙니다. 단지 유용한 패를 확보해 두자는 거지요. 품으로 들어오는 새를 쫓아내지 말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혁명 직후의 혼란상이 전하의 눈에는 탐탁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러시아는 진보의 길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억압받던 노예의 나라에서 자유와 평등의 나라가 됐습니다. 대한의 우방인 영국, 프랑스, 미국 정부도 그렇게 평하지 않습니까?”
“영국, 프랑스, 미국! 압니다, 저도 알지요! 왜 부황께서 제 교사를 이 세 나라 사람들로 채용했겠습니까? 이들은 늘 말해 왔습니다. 입헌군주제, 군민공치, 보통선거권, 자유와 평등. 얼마나 훌륭한 개념인지 제게 가르쳤지요.”
이진은 술잔에 담긴 포트와인을 쭉 들이켰다. 높은 도수에 얼굴이 확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 그는 술을 즐기지 않았지만, 성년이 된 이후 부황의 취미를 함께하기 위해 포트와인을 마셨다.
“성년이 되고 나서, 부황께서는 제게 많은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실무뿐만 아니라 사적인 영역에서도 전에 없이 많은 대화를 나눴지요. 외국 이야기도 많이 했습니다. 부황께선 모르시는 게 없으니까요.”
이진의 나이가 스물이 되고 지난 1년간, 이선은 전에 없이 장남과 많은 대화를 나눴다. 특히 두 사람만의 술자리에선 심중에 담은 말을 하곤 했다.
「영국,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네덜란드 등이 채택하고 있는 보통선거권과 정당정치에 기초한 입헌군주제. 이 체제가 얼마나 민의에 더 충실한지, 이들 왕실이 얼마나 국민에게 사랑받고 있는지 너도 이제는 알겠지. 국민의 지지와 사랑 속에서 왕실은 굳건히, 영구히 존속할 것이다.」
「명심하겠습니다.」
「그에 반해 러시아와 독일은 우리의 반면교사다. 전제군주국 러시아가 왜 무너졌는가? 내 누누이 네게 말해 왔지만, 황제와 정부가 국민의 목소리에 전혀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민을 멸시하는 나라에선 혁명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독일이 그 길을 따라가고 있다. 프로이센 군부가 파멸의 길로 이끌고 있지. 두고 보아라, 독일제국도 2년 안으로 혁명으로 붕괴하고 말 터이니.」
“저 강대한 독일이 무너지리라곤 믿겨 지지 않지만, 부황의 예측은 틀린 적이 없었습니다. 니콜라이 황제께서 변화하지 않는다면 결국 혁명이 일어날 거라 우려하셨는데, 현실이 됐죠. 과연 부황은 언제나 옳습니다. 모든 걸 뜻대로 이루시고, 반드시 승리하시지요!”
이영은 조카에게서 이런 모습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마치 자신의 어린 시절처럼 다방면의 교육을 받고, 모범생처럼 모든 과제를 수행하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었다.
“하지만 혁명 이후, 새 황제 미하일 2세의 신세를 보십시오. 소비에트인지 뭔지 하는 역적놈들이 대놓고 제정 폐지와 전 황제 재판을 부르짖는데, 정부 대신이란 놈들은 눈치 보기만 바쁩니다. 황제는 흑빵과 죽을 먹으면서 농민 흉내나 내고! 이게 어디가 황제의 풍모입니까!”
“이는 제정을 살리기 위한 고육지책이지요. 제정의 존속 여부를 제헌의회에 맡기지 않았습니까.”
“애초에 왜 사직(社稷)을 선거에 맡긴단 말입니까? 러시아처럼 국민의 대부분이 교육받지 못한 나라에서 보통선거라니, 가당치도 않습니다. 두고 보십시오. 장담하는데, 선거에서 공화파와 사회주의자들이 이깁니다. 특단의 조치가 없잖는 이상.”
이진은 보통선거와 제헌의회에도 반감을 느꼈다. 그가 잠시 지켜본 혁명은 무질서 그 자체였다. 아무리 남의 나라 일이라지만, 군주정 자체가 모욕을 받는 기분이었다.
“그렇다면 그 또한 민심입니다. 대한에서 보통선거권을 부여한다 한들, 국민이 군주정에 반대하겠습니까? 만장일치로 군주제를 지지할 겁니다. 대한의 군주는 민심과 함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 말이 그 말입니다. 영국식 입헌군주제를 안 해도, 국민은 황제와 황실을 지지할 겁니다. 국민 절대다수는 정치가 군주가 하는 거라고 생각할 겁니다. 그런데 대한은 서양처럼 혁명을 두려워하는 처지도 아닌데, 영국식 입헌군주제를 해야 한단 말입니까?”
“누가 영국식 입헌군주제를 하자고 하던가요? 서재필 총리? 이상설 외무대신? 신민당? 진보당?”
“바로 부황께서 원하십니다!”
이진은 소리 높여 외치더니, 술잔을 다시 들이켰다.
“성상께서 직접 그렇게 말씀하시던가요?”
“부황께서 왜 저를 이 혼란스러운 러시아로 보냈는지, 성심을 짐작합니다. 민의를 따르지 않는 군주는 파멸하고, 영국식 입헌군주제를 채택한 러시아가 과거보다 더 낫다는 걸 제 눈으로 직접 보길 바라셨겠지요. 특사단을 이상설 대감이 이끌고, 야당인 안창호와 전봉준 의원을 대동한 이유도 미루어 짐작합니다. 모두 각 정당에서 민심의 여망을 대표하는 이들이 아닙니까?”
이선과 이영의 생각보다, 이진은 훨씬 명민(明敏)했다. 단지 부황 앞에서 자신의 정치적 의견을 개진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는 부황께 감히 속내를 드러낼 자신이 없었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그나마 동복동생인 이희가 말벗이 되었지만, 그녀에게도 속내는 털어놓지 않았다. 그러니 누구도 그의 속내를 알지 못했다.
이 순간이 처음이었다. 본국이 아닌 외국에서, 청자는 한 사람만을 두고.
“신하 된 도리로 감히 성심을 짐작하겠습니까마는, 전하께서 짐작하신 바가 옳을 것입니다.”
이영은 이선의 편지를 떠올렸다. 이진이 러시아의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고, 민심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을 수 있도록 잘 지도해 주라는 내용이었다.
아마 이상설, 안창호, 전봉준, 김규식, 여운형, 조한민, 이위종 등에게도 비슷한 지침을 내렸으리라.
“부황께서는 제가 못 미더우신 게지요. 하긴, 부황의 위대한 업적을 누가 감히 따르겠습니까. 탁월한 지도력으로 개화, 자주독립, 부국강병을 모두 이루신 부황의 마지막 목표가 바로 입헌군주제지요!”
“성상께서는 결코 태자를 못 믿어서 그러시는 게 아닙니다. 성상은 언제나 천명과 시운(時運)을 따르셨습니다. 작금 세계의 대세는…….”
“금세기의 천명은 민심에 부응하는 것, 저도 압니다. 하지만 대한은, 동양은 서양과 다릅니다. 서양을 제외하고 입헌군주제 하는 나라가 일본 말고 또 있습니까? 일본은 그럴 만도 합니다. 다이쇼 천황은 여러 번 만나 봤지만, 그분은 사람은 좋아도 통치할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입헌군주제로 가는 게 당연한 수순이지요.”
다이쇼 본인이 정신건강에 문제가 있어서 통치에 무관심하기도 했지만, 이른바 ‘다이쇼 데모크라시’로 인해 일본은 정당내각이 주도하는 입헌군주제가 확립됐다. 비단 군주만의 문제는 아니었지만, 이진은 자연스레 군주의 특질을 따졌다.
“하지만 나는 혁명으로 퇴위할 니콜라이 2세도, 건강이 불안정한 다이쇼도 아닙니다. 나도 위대한 군주인 부황의 피를 물려받았단 말입니다!”
이진의 격정적인 토로에, 이영은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고심했다.
“쓸데없는 말이 너무 많아졌군요. 송구합니다. 본론으로 돌아가서. 측은지심, 뭐 어떻습니까? 21년 전, 부황께서 러시아에 즉위 축하 사절로 왔을 때. 정치범으로 잡힌 파란양, 아니 안과 라의 어머니를 구해 주지 않으셨습니까.”
“그건…….”
“이 또한 측은지심의 발로지요. 만약 부황께서 그분을 구하지 않으셨으면, 안과 라는 태어나지 못했겠지요.”
– 만약 부황께서 황제가 안 되었으면, 나는 태어나지 못했겠지요.
그 말은 속으로 삼켰다. 감히 입 밖으로 뱉을 수 없는 말이었다.
이진은 성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옛일을 알게 됐다. 증조부인 대원군이 왕위를 원치 않는 아버지를, 황제 즉위와 조선 명문가 여인과의 혼인을 압박하여 뜻을 이루었다고.
분명 부황은 모후를 존중하고 아꼈다. 2남 2녀를 낳을 만큼 금슬도 좋았다.
하지만 이진이 짐작하건대, 그건 의무이지 사랑은 아니었다. 부황이 오래전부터 사랑한 대상은 파란양이지 모후가 아니었다.
만약 부황이 즉위하지 않았더라면, 굳이 조선 여인과 결혼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고, 아마 자신과 형제들은 태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이 되자, 이진은 진심으로 증조부가 고마웠다. 부황이 어울리는 건 황제지 총리나 친왕 따위가 아니었다. 대한제국의 초대 황제, 광무제가 될 사람은 부황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후계자는 이진 자신이어야 했다.
“저 또한 부황처럼 측은지심을 발휘해 그들을 구하고 싶은 겁니다. 황제와 황후는 정치적 책임이 있다고 쳐도, 그 자녀들은 무슨 죄가 있어서 연금되어 감시받고 살아야 합니까? 이야말로 무고한 정치범이지요. 부황께서도 외면하지 않으실 겁니다.”
이진은 언제나 부친을 삶의 모범으로 삼고, 의식적으로 따라 하고자 했다. 하다못해 커피와 와인을 마시고, 축음기로 서양 고전음악을 듣고, 승마와 테니스를 즐기는 것조차 이선을 따라 하는 것이었다.
“그럼 약혼 이야기는…….”
이선이 21년 전 정치적 박해에 처해 있었던 마르가리타를 구한 것처럼, 정치적 위기에 처한 황녀들을 구하고 싶다.
정말로 측은지심인지, 강박적 행위인지는 몰라도 이영의 귀에는 그렇게 들렸다.
“러시아 정부를 설득하기 위한 방편이지요. 처가를 모시고 간다고 하면 설득력이 생길 터이니. 뭐, 정말로 타냐 공주는 좋은 배필감이라고 생각하지만, 제가 사적인 감정으로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
“대한의 차기 황후가 서양인이고, 차차기 황제가 서양인 혼혈이라면, 종친이나 사대부는 말할 것도 없고 신민들도 용납하지 않겠지요.”
황제의 후계자라는 지위를 늘 의식하고 사는 이진은 진심으로 약혼할 생각이 없었다.
“러시아 황실 입장에서도, 동양인 이교도 사위를 원하겠습니까? 동양인이란 건 바꿀 수 없다 쳐도, 정교회 개종은 원할 텐데 그건 안 될 말이지요. 반대로 황녀 입장에서 생각해도, 유교 국가의 황후가 되고 싶진 않겠지요? 걱정 마십시오, 숙부님. 약혼은 어디까지나 망명의 수단입니다.”
술이 올라 붉어진 얼굴로 열심히 떠들어 대는 조카를 보면서, 이영은 측은지심이 들었다.
‘대한의 황태자로서 부황의 업적을 계승해야 한다는, 과도한 의무감과 강박 관념이 이 아이를 망가트렸구나. 차라리 나처럼 평범한 군주의 막내로 태어났더라면, 그런 압박도 받지 않았을 것을. 어쩌다 위대한 군주의 맏이로 태어나서…….’
그동안 감정을 꾹꾹 눌러오며 살아왔던 이진이, 왜 하필 러시아에서 자신에게 털어놓는지 이해됐다.
여기서 말하면 그 누구의 귀에도 들어갈 일이 없었다.
오늘 나눈 대화를, 이영이 누구한테 말할 수 있겠는가? 자신이 황형에게 보고한다 한들, 황태자를 비난한다는 오해를 살 수도 있었다. 황제의 자식들을 제외하면 가장 계승서열이 높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이영은 후계와 관련된 일에는 입을 다물어야 했다.
“전하. 아니, 진아. 친왕과 황태자가 아닌 삼촌과 조카로서 말하고 싶다.”
이영은 조카에게만은 말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내 비록 너만큼 황형과 많은 대화를 나누진 못했지만, 그분의 진심을 안다. 황형은 왕좌를 무거운 책무로 여긴다. 국가와 2천만 국민의 안위를 책임져야 하는 무거운 책무지. 그로 인해 얼마나 많은 고심을 거듭했겠느냐. 대한의 힘이 아직 미약했을 때에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늘 고심하셨다. 이제는 세상이 달라졌으니, 그 무거운 짐을 네가 짊어지지 않기를 바라시는 거다.”
“…….”
“황형은 네게 반석에 오른 국가를 맡기고 싶으신 거다. 네 부친이 가장 믿고, 아끼고, 자랑스러워하는 건 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맏이인 진이 너란 말이다.”
숙부의 진심 어린 말을 들은 이진은 잠시 고개를 숙였다. 눈가가 촉촉해지려는 걸 억지로 참았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일부러 웃는 낯을 했다.
“그러니 더욱 부황의 기대에 부끄러움이 없는 아들이 되어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