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553
– 234화에 계속 –
2부 234화 독일의 제안
광무 21년 6월 4일, 대한제국 황성.
“서부전선의 공세는 실패하고, 동부전선의 전황도 암울하고. 결론은 미국 참전밖에 없군.”
이선은 세계 각지에서 들어오는 보고를 들으며 한숨을 쉬었다.
그는 대략적인 전황을 예측했지만, 연합국 내에서 대한제국의 발언권은 크지 못했다. 애초에 파병 병력이 적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나마 동부전선은 개입할 여지가 충분했지만, 서부전선은 나설 여지가 없었다. 이선도 서부전선 개입은 포기했다. 러시아군이 붕괴하지 않고 동부전선의 활로를 뚫는 게 대한제국의 역할이었다.
“얼마 전 독일이 무제한 잠수함 작전을 통보하지 않았나? 미국이 반응을 보일 때가 됐는데.”
독일은 6월 1일부로 무제한 잠수함 작전을 재개했다. 미국의 참전을 우려해 독일은 무제한 잠수함 작전을 최대한 미루고 있었지만, 결국 미국의 분노를 감내하는 길을 택했다.
“예, 오늘 윌슨 대통령의 상원 연설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아마 모종의 조치가 있을 듯합니다.”
미국 동부와 한국 간에는 14시간의 시차가 있었으므로, 미국의 결론이 도달한건 다음날 오전이었다.
“주미대사관의 급전입니다!”
「미합중국 정부의 요청을 받아, 미국 상원은 독일에 단교를 선언. 주미 독일 대사관에는 즉각 퇴거가 요구되었음.」
‘좋아! 단교라면 사실상 참전 수순이군. 미국만 참전하면 전쟁은 기울어진다.’
이선이 가장 우려하던 건, 미국의 참전 없이 러시아가 혁명으로 붕괴하는 것이었다. 이제 그런 우려는 접어도 됐다.
‘하지만 윌슨의 성격을 보건대, 단교가 즉각적인 참전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뭔가 다른 계기가 필요해. 독일이 멕시코에 미국 남부의 영토 탈환을 걸고 참전을 요청하는 전보를 보냈다가 들통난다든지.’
독일의 외교정책은 무리수에 무리수를 거듭하고 있었고, 이선이 나서지 않고 가만히 놔둬도 미국이 참전할 요인을 만들 가능성이 농후했다.
하지만 이선은 구경만 할 생각이 없었다. 이미 역사에 변화가 발생했으므로, 어떤 변수가 더 추가로 발생할지 모를 일이었다.
대한제국은 직접 외교와 첩보의 전쟁에 뛰어들기로 결심했다. 이는 이선의 장기이기도 했다.
“주미대사관에 긴급 훈령을 보내도록.”
* * *
무제한 잠수함 작전이 재개되자, 독일에서 해군 못지않게 분주히 움직이는 건 외무부였다.
외무대신 치머만은 멕시코와 일본을 동시에 끌어들여 미국의 참전을 막겠다는 기상천외한 계획을 세웠다.
“미국의 참전을 막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
멕시코는 1910년 독재자를 몰아낸 혁명 이래, 정치개혁으로 한정하려는 도시와 토지개혁을 부르짖는 농촌 간에 내전이 계속되었다. 신해혁명으로 공화국은 쟁취됐지만, 이해관계로 분열된 중국과 상황이 비슷했다.
혼돈이 거듭되면서 미국이 내전에 개입해 최대 항구인 베라크루스를 점령했고, 멕시코의 반미감정은 높아졌다. 독일은 은근히 멕시코의 반미여론을 부추기고 있었다.
독일은 새로 정권을 잡은 카란사(Venustiano Carranza)대통령에게 접근했다. 카란사는 반미·친독적 경향을 보였고, 치머만은 여기에 기대를 걸었다.
독일은 멕시코가 19세기에 상실한 미국 남부 영토의 탈환이라는 막대한 선물을 약속하면, 멕시코가 참전하리라는 기대를 걸었다.
마찬가지로, 독일은 일본에도 막대한 선물을 약속하면 연합국을 변절하리라는 기대를 걸었다.
이 기상천외한 계획을 뒷받침할, 독특한 인물이 역사의 전면으로 나섰다.
“가능하면 멕시코와 일본을 모두 끌어들여 미국을 견제한다. 그렇다면 나 이상의 적임자도 없지.”
주중국 독일공사 파울 폰 힌체(Paul von Hintze)제독은 독특한 경력을 갖고 있는 인물이었다.
해군 장교였던 힌체는 1898년 동아시아 함대에 복무했고, 미서일 전쟁을 참관했다. 필리핀 구매를 계획하고 있던 독일은 미국의 필리핀 점령에 분노했으니, 힌체는 이때부터 ‘장차 미국에 맞설 일본’의 존재에 주목했다.
본국으로 돌아간 힌체는 빌헬름 2세에게 발탁되었고, 1903년부터 장장 7년간 러시아에서 주재 무관으로 근무했다. 카이저는 외무부를 탐탁지 않게 여겼고, 측근인 힌체는 차르에게 보내는 개인 특사나 다름없었다.
뛰어난 화술을 지닌 힌체는 차르와 돈독한 관계를 맺었고, ‘빌리-니키’의 연결고리 역할을 했다. 1906년 독러동맹, 즉 비외르쾨 밀약을 주선한 것도 바로 힌체였다. 러시아 대사보다 비선인 힌체가 더 영향력이 높을 지경이었다.
카이저의 신뢰를 받게 된 힌체는 해군 소장으로 진급하고, 남작 작위를 받았다. 그는 이때부터 본격적인 직업 외교관의 길을 걷게 되었다.
“독일에서 카이저께 직보할 수 있는 러시아, 멕시코, 동아시아 모두의 전문가는 나밖에 없으니까.”
힌체는 주한 대리공사를 역임한 뒤, 1911년 주멕시코 공사로 부임했다. 1914년 대전쟁 발발 직전까지, 힌체는 멕시코에 친독 정권을 세우기 위해 노력했다. 힌체의 노력은 미국의 베라크루스 점령으로 실패했고, 이윽고 대전쟁이 발발하자 주중 공사로 임명되어 중국으로 부임했다.
비록 한영일 연합군의 산동 점령은 막지 못했지만, 힌체는 중국이 전쟁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그는 중국 군벌들 여럿과 친분을 맺었는데, 특히 프로이센 전쟁대학 출신인 단기서와 가까웠다. 중국이 일본의 13개조 요구에 직면하자, 힌체는 앞장서서 일본을 규탄했다.
“중국을 점령하고 분할하려는 일본과 연합국의 음모에 맞서, 독일은 중국을 보호할 것입니다!”
1916년 가을, 중국 호국전쟁의 여파로 오쿠마 시게노부 내각이 사퇴했다. 13개조 요구를 강요했던 외무대신 가토 다키아키는 일본 내에서도 강력한 비판을 받고 당분간 정계를 떠나야만 했다.
친영파인 오쿠마와 가토가 사퇴하고, 독일 유학파인 고토 신페이가 후임 총리로 취임하자 힌체는 기대를 걸었다.
겉으로는 중국의 보호자를 자처하면서, 힌체는 은밀히 일본과 협상을 시도했다.
“일본은 동양의 프로이센인데, 편을 골라도 한참 잘못 골랐습니다. 영국은 일본을 하위 파트너로 취급할 뿐, 그 이상의 역할을 맡길 생각이 없습니다. 독일은 다릅니다. 우리는 영국과 프랑스처럼 자유주의의 위선을 떨 생각도 없습니다. 솔직하게 이권만 논의합니다.”
1917년 5월, 힌체는 주중 일본공사관과 접촉하여 조건을 내밀었다.
“일본이 편을 바꾸기만 한다면, 일본은 아시아와 태평양의 최강자가 될 겁니다. 우리는 옛 원한을 잊었습니다. 키아우초우(교주만)와 일본이 점령한 독일령 태평양의 섬들을 일본에 할양하겠습니다. 영국과 프랑스가 중국에 보유한 이권들도 일본에 넘기게 만들어 드리지요. 전후에 일본이 중국에 대하여 어떤 조치를 가하더라도, 반대하지 않을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더 나아가서?”
“미국은 태평양의 패권을 놓고 일본과 필연적으로 충돌할 겁니다. 미국 서부와 하와이에서 강행하는 일본 이민 배척만 봐도 알 수 있지요. 필리핀인들은 미국의 압제에 맞서, 아시아 열강인 일본의 지원을 희망합니다. 대전쟁인 지금이 절호의 기회입니다. 일본이 미국과 일전을 벌인다면, 독일의 지원을 받는 멕시코가 뒤따르게 될 겁니다. 그럼 필리핀과 하와이도 일본의 세력권으로 확보하게 될 겁니다.”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군요. 본국에 보고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독일의 제안은 곧 일본 내각에 전해졌다.
“근래 미국과 관계가 껄끄럽다고는 하지만, 연합국을 저버리고 독일과 손잡는 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요. 독일의 호언장담과 달리 러시아도 그렇게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겁니다.”
외무대신 모토노 이치로는 독일의 제안을 일축했다. 얼마 전까지 주러시아 대사를 지난 유럽통이자, 일본 정가 내에선 드문 친러파였다.
“독일령 산동과 태평양. 영국과 프랑스가 보유한 중국 이권을 넘기고, 중국에서의 자유행동을 보장. 더 나아가 필리핀과 하와이를 일본의 세력권으로?”
고토는 독일의 엄청난 제안에 웃음을 흘렸다.
대만총독부 민정장관을 지내며 북수남진 이론의 기틀을 닦고, 남만주철도 주식회사 일본측 대표를 역임한 고토는, 필리핀과 만주철도 문제를 놓고 미국과 여러 번 대립한 경력이 있었다. 단순히 독일 유학파라서가 아니라, 이런 전력이 있어 독일도 기대를 걸어 본 것이었다.
“현실적으로 생각해 보지요. 영국, 프랑스, 러시아, 그리고 미국은 일본을 위협할 힘이 있지만, 독일은 그럴 수가 없소.”
고토는 북수남진과 해주육종을 택한 일본이 언젠가 태평양의 패권을 놓고 미국과 충돌하리라고 예상했지만, 일본의 국력을 생각하면 당장은 어림도 없다고 판단했다. 독일-일본-멕시코 동맹으로 미국과의 일전을 벌이겠다는 독일의 허황된 말을 믿고 움직이기에는 지나친 도박이었다.
“해상로의 안전은 제국에게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데, 현시점에서 영국과 미국을 적으로 돌리는 건 자살행위요.”
전쟁이 진행되는 동안, 일본 역시 수출이 급증하여 전시호황을 맞이했다.
주로 철도를 이용해 러시아와 중국에 수출하는 한국과 달리, 일본은 선박으로 유럽과 미국에까지 수출했다. 대륙철도 안전에 사활을 거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은 해상로 안전에 사활을 걸었다. 갈수록 해군의 역할은 중요해졌고, 육군의 존재는 미미해졌다.
“그럼 즉시 거절하고, 연합국에도 통보하지요. 독일이 일본과 접촉한 걸 알면 연합국이 불안해할 겁니다.”
“아니, 답변은 하지 맙시다. 연합국에도 알릴 필요 없고. 그들이 불안해도 상관없소. 그들이 새삼 우리의 가치를 알아주면 고마운 일이지.”
일본은 연합국, 특히 전쟁 전부터 동맹인 영국의 거듭되는 지상군 파병 요구를 거절했다. 함대를 지중해와 대서양에 파견해 대잠(對潛) 작전에 투입하는 것만으로도 역할은 충분하다고 역설했다.
연합국에 있어 일본은 ‘독일의 동맹국이 아닌 것만으로 다행’인 나라였다. 연합국은 일본의 행태에 불만을 느꼈지만, 일본이 독일에 붙는 걸 막기 위해 계속 달래고 있었다.
일본은 피를 흘리지 않은 채 호황과 이익을 마음껏 누리고 있었지만, 연합국 사이에서 외교적 신뢰를 상실하는 중이었다.
“외무부에서는 멕시코와 일본에 집중할 생각이라지만, 중국과 한국도 포섭을 시도해 봐야지.”
힌체의 계획은 동아시아에 집중됐다. 멕시코 공사를 역임한 그는 멕시코의 현실을 잘 알고 있었고, 멕시코가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결심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고 판단했다.
“일본과 한국을 포섭하고, 중국의 실력자인 단기서도 끌어들여 동아시아판 삼국동맹으로 확대한다.”
허황되기 짝이 없는 계획처럼 보였지만, 그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힌체는 7년간 러시아에서 카이저의 특사 역할을 하며 니콜라이 2세와 가까워졌다. 니콜라이와 이선의 돈독한 관계에 대해서도 자연히 잘 알게 되었다.
이선이 1907년에 페테르부르크를 방문했을 때, 힌체는 차르의 소개로 이선과도 친분을 맺었다.
「대령은 동아시아 함대에 복무하며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고 하셨지요?」
「예, 1899년에 동아시아 함대 사령관 하인리히 대공을 수행하여 방문한 바 있습니다.」
「아, 그랬군요. 대한제국은 독일제국을 개혁의 모범으로 여기고 근대화를 추진 중입니다. 한국에서는 10년이면 강산이 변화한다는 말이 있는데, 다음에 오면 더욱 진보한 한국을 볼 수 있을 겁니다.」
이선의 말처럼, 1910년 주한 대리공사로 부임한 힌체는 한국의 빠른 진보를 체험할 수 있었다. 1900년대에 한국은 비약적인 발전을 이뤄 냈고, 그가 보기에 한국은 동양의 새로운 프로이센이었다.
4년 후 중국 공사로 돌아온 힌체는, 그가 친구라고 여겼던 러시아와 한국이 모두 독일의 적이 되자 유감스럽기 짝이 없었다.
1917년 4월 혁명으로 니콜라이 2세가 퇴위하고 러시아가 혁명의 소용돌이로 들어가자, 힌체는 마침내 기회가 왔다고 판단했다.
‘한국 황제는 니콜라이 2세와 절친한 사이지. 차르를 이용해 이익도 많이 봤고. 차르의 폐위를 순순히 받아들일까?’
힌체는 독일이 속히 러시아와 단독 강화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한국을 이용할 여지가 있다고 생각했다.
한국의 러시아 파병군은 규모는 적어도, 붕괴 위기에 놓인 러시아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었다.
힌체는 외무대신을 거치지 않고 카이저에게 자신의 계획을 직보(直報)했다.
「혁명으로 힘을 잃은 러시아가 독일과 강화협상을 논의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외무부가 러시아 사회민주당 좌익에게 자금을 보내 더욱 급진적인 혁명을 부추긴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는 위험한 전략입니다. 전통적으로 러시아 우익은 친독적이었습니다. 독일은 러시아 우익, 군주제 지지자들과 손을 잡아야 합니다. 제 복안에 따르면, 의외로 한국이 우리의 연결고리가 될 수 있습니다. …….」
힌체의 보고서에, 혁명과 사회주의자를 혐오하는 카이저는 만족감을 느꼈다. 카이저는 즉각 한국과 접촉해 보라고 훈령을 내렸다.
중화민국 상해, 모처(某處).
주중대사관 무관 신규식 정령은 독일공사와 비밀리에 접촉했다.
“유감스럽게도 독일과 한국이 적국이 되었지만, 두 나라는 본래 매우 우호적인 국가였습니다. 주한 공사를 지낸 바 있는 본관은 매우 안타깝습니다.”
“각하의 말씀에 동감합니다. 대한국, 특히 우리 국군은 프로이센을 모범으로 삼았지요. 적이 되어 매우 유감입니다.”
“참모총장 힌덴부르크 장군, 전임 참모총장 팔켄하인 장군께서도 한국군의 근대화에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랬지요. 팔켄하인 장군은 본관에게도 스승이나 다름없습니다. 적으로 만나고 싶지 않았습니다만…….”
한동안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한담을 나누던 힌체는, 곧 본론으로 들어갔다.
“러시아 혁명은 유럽과 아시아의 질서를 근본적으로 흔들고 있습니다. 러시아 혁명가들은 국가 간의 전쟁이 아닌 계급 간의 전쟁을 선동합니다. 이들이야말로 가장 두려운 적입니다.”
“우려스러운 일이지요.”
“만약 이들이 러시아에서 집권한다면, 러시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나라들, 서로는 독일과 동으로는 한국이 위험해질 겁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공동의 적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이 없잖아 있습니다만, 현재 우리는 적입니다.”
“정치는 생물이라, 적과 동지는 언제나 바뀌는 법이지요. 귀관은 한국 황제 폐하의 중국 정보원으로 알고 있습니다.”
“과대평가이십니다. 저는 일개 주재무관에 불과합니다.”
“귀관처럼 중국에서 오랫동안 근무한 사람이 일개 주재무관일리가요. 내가 러시아에서 오랫동안 주재무관을 역임했기 때문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 누구보다 잘 압니다.”
신규식은 이선의 명을 받아 은밀히 제국익문사 중국지부를 이끌어 왔다. 힌체가 정확한 신분을 파악하지는 못했어도, 대략 어떤 임무를 수행하는지는 짐작했다.
“나는 독일 황제 폐하의 명을 받아 움직입니다. 귀국 황제 폐하께 전해 주십시오. 독일의 특별한 제안을 전달해 드리고 싶다고.”
“전달해 드리지요. 제안의 내용을 알 수 있겠습니까?”
“좋습니다. 지금부터 말씀드리는 내용은 극비이며, 오직 귀국 황제 폐하와 정부 책임자들만이 알아야 합니다.”
힌체는 목소리를 낮추고 ‘특별한 제안’을 전달했다.
“…… 만약 모든 게 계획대로 이뤄지면, 귀국은 만주뿐만 아니라 러시아 극동도 차지할 수 있을 겁니다. 더 구체적인 세부사항은 귀국 정부의 정책을 결정할 수 있는 당사자를 만나 말씀드리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