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555
– 236화에 계속 –
2부 236화 거인의 포효
주중 독일공사 힌체와 악수하고 헤어진 김옥균은 치머만의 명의로 된 전문을 들고 귀국했다.
전문은 곧장 이선의 손으로 들어갔다.
“훌륭하오, 고균. 솔직히 문서를 받더라도 외무대신 명의로 된 전보까지는 기대 안 했는데. 독일이 이렇게까지 허술할 줄이야.”
“황공하옵니다. 과연 폐하의 예상대로였습니다.”
이선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명목상으로든 실제로든 연합국의 일원인 한국과 일본을 끌어들이고자, 독일의 야욕이 듬뿍 담긴 전문을 넘겨주다니.
아무리 국가 간의 비밀외교가 대세인 시대라지만, 내용이 공개되리라곤 생각지도 않는 태도였다.
“비스마르크 시대의 독일은 외교로 유럽을 조종했는데, 어쩌다 이 지경까지 되어 버렸단 말인가.”
이선은 33년 전 독일을 방문해 비스마르크를 만났던 기억을 떠올리며 혀를 찼다.
아르투르 치머만이 무능한 외교관은 아니었다. 성에 ‘폰(von)’이 들어가지 않는 데에서 알 수 있듯이, 독일제국 역사상 최초로 귀족이 아닌 평민 출신 외무장관이었다. 그만큼 능력을 인정받은 외교관이었다.
연합국을 향한 음모도 잇달아 수행했다. 1916년 아일랜드 부활절 봉기를 배후에서 지원하고, 영국과 러시아의 압력을 받는 페르시아를 동맹국에 끌어들이려 하고, 인도 민족주의자들과 접촉해 반영 반란을 선동했다. 러시아 혁명에도 개입해 러시아를 동부전선에서 빼내려고 했다.
멕시코-일본-한국을 향한 제안도 이런 음모의 연장선에 있었다.
문제는 이런 범세계적인 음모들이, 거대한 계획과 달리 성과는 거의 없다는 점이었다.
“내 기억하기로 힌체 공사는 꽤 유능했었는데, 근거 없는 희망에 목을 매다니.”
“신도 이리 쉽게 전문을 내주는 걸 보고 내심 놀랐습니다.”
실제 역사에서 파울 폰 힌체는 사실상 독일제국 최후의 외무장관이었다. 1918년 가을 패전을 직감하고 연합국과 교섭하기 위해, 군부에 맞서 독일의 입헌개혁을 밀어붙인 것으로 봐선 분명히 현실감각이 있었다.
치머만보다는 훨씬 진지한 인물이었던 건 분명한데, 그조차도 외교관답지 않은 비현실성을 드러냈다.
그만큼 독일 외교의 오만함과 초조함을 반영하는 태도였다. 연합국은 이미 10개국이 넘었지만, 중부동맹국은 오스만과 불가리아가 합류한 게 전부였다.
군부의 확전 결정에 외무부는 어떻게든 새로운 동맹을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렸고, 외교관들은 막대한 이권과 영토를 보장해서 동맹을 확보하겠다는 고전적인 수법에 매달렸다.
“아무튼 그의 선물은 감사히 받아들이도록 하지.”
“미국에 전문을 보낼까요?”
“아니, 조금만 기다려 봅시다. 미국에서 온 정보를 보니, 결정적으로 쓰일 때가 곧 올 것 같소.”
이선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 * *
영국, 런던.
해군본부 산하 비밀정보부, 이른바 ‘40호실’은 암호해독을 전담했다.
독일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지만, 40호실은 이미 독일의 암호체계를 깨고 해독에 성공했다.
여기에는 러시아의 결정적인 도움이 있었다. 러시아는 발트해에서 좌초한 독일 순양함을 나포했는데, 독일이 완전히 파기했다고 생각한 코드북(암호책)을 샅샅이 뒤져 가며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러시아는 사본을 영국에 넘겨주었다.
페르시아에서의 독일의 모험도 득이 되었다. 독일 정보장교 빌헬름 바스무스(Wilhelm Wassmuss)는 페르시아의 반영 봉기를 선동하여 영국을 긴장시켰다. 영국은 국제법까지 어겨 가며 바스무스를 습격해 체포에는 실패했지만 짐을 빼앗는 건 성공했고, 여기에서 또 다른 코드북을 확보했다.
두 개의 코드북을 확보한 영국은 독일의 암호체계를 깨트리는 데 성공했다.
“독일 놈들, 진심인가? 이거 역정보 아닌가?”
5월 중순, 40호실은 독일 외무부가 멕시코에 보낸 전문을 해독하는 데 성공했다. 40호실을 이끄는 레지널드 홀(Reginald Hall) 해군 대령은 독일 외무대신 치머만의 명의로 된 전문의 내용을 보고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극비! 6월 1일부로 무제한 잠수함 작전을 개시할 예정. 그렇지만 우리는 미국이 중립을 유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중립 유지가 실패할 경우, 다음 조건으로 멕시코에 동맹을 제의하라.
공동 전쟁 수행, 공동 평화 조약. 텍사스·뉴멕시코·애리조나 등 옛 영토를 되찾는 데 독일의 절대적인 지원 보장.
세부 사항은 귀하에게 일임하며, 미국이 참전할 시 극비리에 멕시코 대통령에게 해당 조건을 제시하라. 일본에도 미국에 맞서는 동맹을 제안했으며, 무제한 잠수함 작전으로 영국이 몇 달 안에 굴복하여 강화협상을 맺게 되리라는 전망도 첨부하길 바람. 수취주의. 외무대신 치머만.」
하도 황당한 이야기라 역정보가 아닌가 의심했지만, 미국의 참전을 간절히 열망하던 영국은 매우 유용한 정보가 되리라 확신했다.
문제는 영국이 이 중대한 정보를 쉽게 공개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개전과 동시에 영국은 독일의 대서양 통신선을 차단했다. 독일은 중립국인 스웨덴의 통신선을 활용해 대양 너머와 연락을 주고받았지만, 영국의 도청을 우려했다. 독일은 미국에 읍소하여 미국의 통신선을 직접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영국은 이 통신선마저도 도청하고 있었다.
“우리가 미국의 통신선을 도청하지 않고 전문을 입수했다는 걸 납득시키고, 또 우리가 독일의 암호를 해독하고 있다는 걸 알리지 않으려면, 우회 조치가 필요하다.”
영국이 전문을 공개하면 미국은 자국 통신선도 도청된 사실에 불쾌감을 느낄 터고, 독일은 암호가 들통난 걸 알게 되어 암호체계를 바꿀 터였다. 이런 위험을 감수하고 발표하더라도, 고립주의 여론이 지배하는 미국은 ‘이 황당한 문서는 영국의 조작’이라고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대안을 찾아봅시다.”
6월 한 달 동안, 영국 정보부는 여러 작업을 동시에 행했다. 마치 멕시코에서 암호문 전문을 직접 얻은 것처럼 일을 꾸몄다.
6월 25일 월요일, 영국 외무장관 아서 밸푸어는 주영미국대사 월터 페이지에게 전문을 전달했다.
강력한 참전 지지자인 페이지는 이 전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바로 파악했다. 그는 즉각 국무부에 전문을 보냈다.
“빌어먹을 독일 놈들! 우리가 제공한 통신선으로 이따위 음모를 꾸미고 있었단 말인가?”
국무장관 로버트 랜싱(Robert Lansing)은 전문을 받아들이는 순간 격분하여 소리쳤다. 중립이 지배적이었던 윌슨의 각료들과 달리, 랜싱은 참전을 희망했다.
랜싱은 즉각 윌슨에게 전문을 보고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직전의 국무회의에서, 윌슨은 참전을 외치는 각료들을 비판했다.
윌슨은 무제한 잠수함 작전에 맞서 상선의 무장을 요청하는 법안을 바로 내일 의회에 요청할 예정이었다. 어떻게든 중립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었다. 하지만 그 윌슨조차도, 이 전문을 받아들이는 순간 한계에 부딪혔다는 걸 인지했다.
“그자들이 우리한테 이럴 수가 없어! 우리가 중립을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데!”
여론은 여전히 고립주의가 우세했다. 24일 일요일에는 개신교회를 중심으로 평화를 지키자는 기도의 날이 열렸고, 전미평화회의는 평화결의안을 채택했다.
여당인 민주당은 중립 유지로 기울어져 있었고, 야당인 공화당은 참전파와 평화파로 분열되어 있었다.
“겁쟁이 윌슨은 독일이 발로 차서 전쟁터로 밀어 넣기 전에는 참전하지 않을 겁니다.”
강력한 참전파인 시어도어 루스벨트 전 대통령은 윌슨을 비난해 왔다.
그런데 정말로, 문자 그대로 ‘독일이 윌슨을 발로 차서 전쟁터로 밀어 넣는’ 상황이 현실이 되었다.
“독일 군국주의자들이 결국 우리를 전쟁으로 떠미는군.”
전문이 언론에 공개되는 순간, 여론은 격동할 터였다.
“호외요! 호외! 독일, 미국에 맞서는 동맹 추진! 미국 전쟁 개입 시 멕시코와 일본에 공격 부탁!”
“뉴욕타임스 호외입니다! 독일, 멕시코에 참전 대가로 텍사스-아리조나-뉴멕시코 병합을 제안!”
1917년 6월 28일. 공교롭게도 사라예보 사건 3주년이 되는 날에, 치머만 전보가 언론에 공개되었다.
“독일 놈들이 미쳤나? 이따위 음모를 꾸미다니?”
“내 고향 텍사스를 멕시코놈들에게 넘긴다고? 이런 죽일 놈들을 봤나!”
여론은 급격히 반독과 참전 지지로 나아갔다.
그런데 모두가 동조하는 건 아니었다.
“이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 문서입니까? 멕시코를 끌어들이려고 미국을 자극해요?”
“이건 영국 요원들이 미국을 끌어들이려고 조작한 문서입니다!”
친독파와 평화 지지자들은 치머만 문서를 영국의 조작이라고 치부했다. 미국의 수뇌부는 조작이 아니라는 걸 파악했지만, 영국이 암호를 해독했다는 사실을 공개하기 전에는 확정을 지을 수가 없었다.
「본 문서는 독일 외무부와 무관하며, 어떠한 문서도 멕시코 정부에 전달하지 않았습니다.」
「6월 30일 오늘까지, 멕시코 정부는 독일제국 정부로부터 어떠한 동맹제의도 받은 바 없습니다.」
「본국은 금시초문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습니다.」
멕시코 정부, 멕시코 주재 독일공사, 일본공사 모두 전문의 내용을 부정했다. 비밀외교는 관행이었으므로, 공개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미국은 이들이 모두 거짓말을 한다고 확신했지만, 결정적인 증거를 내놓을 수 없었다.
바로 이때, 결정적인 증거가 나타났다.
“대통령 각하, 전보 사건으로 얼마나 고심이 크십니까. 평화를 지키기 위한 각하와 미국민의 노력이 이렇게 배신당하다니요!”
주미 한국대사 이승만은 과장된 어조로 옛 스승에게 위로의 말을 했다.
“독일이 우리의 등에 칼을 꽂았으니, 결국 전쟁을 피할 수 없게 됐소. 문제는 전문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는 건데…….”
“저는 확실하다고 단언합니다.”
“그래요? 혹여 귀국에도 독일의 제안이 들어온 바가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대한제국 황제 폐하와 정부는 독일이 요청한 극비 약속을 지키기 위해 전문의 공개를 꺼렸지만, 미국을 향한 이중적 행태가 드러난 이상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이승만은 더욱 과장된 어조로 말했다.
“무엇보다 대한제국은 미합중국과의 우의를 중시하며, 각하께서 구상하는 새로운 세계의 구축을 위하여 협력하고자 합니다. 우의와 협력의 뜻으로 각하께 독일의 전문을 전달합니다.”
이승만이 넘긴 건 바로 치머만의 명의로 된 6개 조항 전문이었다.
한국과 일본을 상대로도 독일이 음모를 꾸몄다는 게 확연히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고맙소, 대사! 귀국의 우의와 협력에 진심으로 감사를 전해 주십시오. 미합중국은 귀국의 호의를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윌슨은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이승만에게 악수를 청했다. 명백한 감사의 표시였다. 이승만은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악수를 했지만, 내심 웃고 있었다.
‘이제 미국의 시대가 올 거다. 사실이 어쨌건 간에, 바로 내가 미국의 참전을 이끈 외교관으로 기억되겠지.’
「독일, 일본에 제안! 필리핀을 일본의 세력권으로 넘기고, 하와이를 독립시켜 역시 일본의 세력권으로 넘긴다.」
「독일, 한국에도 러시아 극동을 할양하는 조건으로 동맹을 제안! 한국, 이를 거부!」
미국 독립기념일인 7월 4일, 미국 언론에 독일의 새로운 음모가 공개되었다.
한국의 독립기념일 선물이었다.
“이런 미친 독일 놈들, 이제 하와이까지 일본에 넘기려고 해?”
“하와이 다음은 캘리포니아겠지! 어쩐지 하와이와 캘리포니아에 일본인들이 득실거리더니!”
“그렇다면 일본도 독일이랑 한패 아니야?”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유럽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미국 동부가 참전 여론이 강했다면, 중부와 서부는 대전쟁에 무관심 그 자체였다. 특히 서부에서는 참전에 대한 반감이 컸다.
그런데 독일의 새로운 음모는 서부의 주민들도 격동하게 했다.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아시아와 교류가 많은 서부에서는, 러일전쟁 이후 일본에 대한 거부감이 커졌다. 중국계 이민자에 이어 일본계 이민자도 거부 대상이 되었다.
일본이 하와이를 차지하고, 더 나아가 캘리포니아까지 진출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자, 서부에서도 참전의 목소리가 커졌다.
「독일이 일본에 영토와 이권을 대가로 참전을 요구한 건 사실이나, 일본은 연합국과 미국에 대한 우의를 지키기 위해 즉각 거부했다. 일본제국은 연합국의 최종승리를 위하여 끝까지 분투할 것이다.」
일본은 급히 성명을 발표해 독일의 제안을 이미 거부했음을 밝혔다.
하지만 일본에 대한 윌슨의 불신은 더욱 깊어진 터였다.
“음흉한 일본 놈들. 만약 내용을 공개하지 않았더라면, 계속 입을 다물고 있었겠지. 일본에 비하면 한국은 신의가 있다. 신속하게 전문을 넘겨줘 진상을 밝히도록 도움을 줬으니.”
치머만의 명의로 된 새로운 전문의 공개는, 여론을 더욱 반독과 참전으로 밀어 넣었다.
루시타니아 침몰 사건이 미국인들의 분노를 불러일으키기는 했으나, 그건 머나먼 대양의 일이었다. 대부분 미국인들에겐 전쟁은 남의 일이었다.
하지만 독일이 이웃나라와 공모하여 미국의 영토를 빼앗으려 했다. 더 나쁜 건 동방의 음흉한 국가에 미국의 등을 치라고 한 음모였다.
전미가 단결했다.
“독일은 이미 우리를 적으로 간주하고 있다. 우리도 그들을 친구로 여길 이유가 없다!”
“독일을 타도하자!”
“프로이센 군국주의에 맞서 자유를 지키자!”
여론은 급격히 참전으로 기울어졌다. 기존에는 4대 6 정도로 참전 반대가 더 높았다면, 단숨에 8대 2까지 참전을 지지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나는 어떻게 미국이 독일제국의 비밀전문을 얻게 되었는지 확신하지 못합니다. 아마도 일부 국가가 비밀외교의 신의를 깨고 누설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합니다. 미국인들이 우리 행동에 그렇게 흥분하는 건 결코 정당하지 않습니다. 비록 이렇게 되어 불행한 일이지만, 국가가 외교로 동맹국을 찾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7월 26일, 치머만은 제국의회에서 전보를 보낸 사실을 인정했다. 그는 암호가 해독되었을 거라곤 생각도 못 했다. 멕시코, 일본, 한국 중 어느 한 나라, 혹은 모두가 독일을 배신하고 미국에 정보를 누설한 거리라 확신했다. 치머만은 ‘배신’을 원망하며, 어떤 나라가 신의를 깼는지 찾았다.
“전쟁 중임에도 불구하고, 독일과 일본 사이에 있는 적대감보다 미국과 일본 사이의 적대감이 더 강하다고 생각합니다. 멕시코는 미국의 압제를 받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독일은 새로 부상한 적에 맞서, 동맹을 추구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독일은 미국의 중립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어디까지나 미국이 중립을 포기할 경우에 한정한, 방어적인 취지의 동맹일 뿐입니다.”
치머만은 자신의 행동이 정당하다고 생각했으나, 미국 입장에서는 마침내 사실을 실토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7월 31일, 미합중국 상하원 합동회의.
“독일제국, 프로이센 군국주의는 자유의 본능적인 적입니다. …… 세계는 민주주의를 향유해야 하며, 더욱 안전하게 되어야 합니다. 정의가 평화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미국인들은 깨닫게 되었습니다. 미국인들은 미합중국을 탄생시킨 원칙을 위해 싸울 것이며, 신이 미국을 돕고 계시기에 미국은 승리할 것입니다! 신이 우리와 함께하시길!”
“와아아아아아!”
의회에 선전포고를 요청하는 윌슨 대통령의 연설이 끝나자, 폭풍과도 같은 함성과 환호가 쏟아졌다.
8월 2일, 상원은 압도적인 표 차로 참전에 찬성표를 던졌다. 이틀 뒤, 하원 역시 압도적인 지지로 참전에 동의했다.
“전보로 흥한 자, 전보로 망하리라. 하늘 위의 비스마르크가 보고 있다면 대성통곡하겠군.”
미국의 선전포고 소식에 이선은 만족감을 느꼈다.
1870년, 프로이센 재상 겸 외무대신 비스마르크는 ‘엠스 전보 사건’을 터트려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을 부추겼다. 모두의 예상을 깨고 단기간에 압도적 승리를 거둬 베르사유 궁전에서 독일제국을 선포했다.
그로부터 47년이 지나, 비스마르크의 머나먼 후계자는 전보로 위기를 자초했다.
1917년 8월 4일, 미합중국은 독일제국에 정식으로 선전포고했다.
거인이 잠에서 깨어나 포효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