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561
– 242화에 계속 –
2부 242화 한청보호조약
중화민국, 남경.
10월 1일, 중국 국내의 격렬한 논쟁 끝에 중화민국은 독일에 선전포고했다.
대총통 손문과 국민당은 참전에 반대했으나, 호국전쟁 종결 이후 실권자로 떠오른 국무총리 단기서가 참전을 밀어붙였다.
그 과정에서 정치적 혼란이 또다시 발생했다.
“미국이 참전한 이상, 이 전쟁은 연합국이 이깁니다. 의화단전쟁 이후 독일과 오스트리아에 지급할 배상금을 중단하고, 불평등조약을 개정하고 독일에 할양한 영토를 되찾을 기회입니다.”
단기서는 명망 높은 양계초와 중국진보당을 내세웠다.
“크림전쟁 당시, 사르데냐의 카보우르 총리는 영국과 프랑스의 편을 들어 파병했습니다. 아무 상관없어 보이는 전쟁인데도 말이지요. 그 결과, 프랑스는 사르데냐를 지지했고 이탈리아 통일의 기회가 열렸습니다.”
양계초와 중국진보당은 참전의 실리와 명분을 주장했다.
1. 연합국은 약소국가의 권리를 보위하고 민족자결을 내세웠으니 참전하는 것이 중국에 유리하다.
2. 전후에 평화회의를 소집할 것이고, 중국 문제를 제기할 때 참전해야만 발언권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3. 미국이 민족자결을 촉구하고 있으니, 중국은 미국과 행동을 같이해야 한다.
4. 참전으로 중국의 위신이 높아질 것이다.
그럼에도 전쟁 반대 여론이 우세했다. 대총통 손문, 부총통 여원홍, 외교총장 오정방, 국민당 총재 송교인 등은 모두 반대했다.
1. 연합국에는 일본과 한국도 있다. 연합국이 중국 문제에 성의를 보일 리가 없다.
2. 만약 독일이 승리한다면 반드시 중국에 보복할 것이다.
3. 전쟁 전에 중국을 압박하던 나라는 독일이 아니라 다름 아닌 영국, 프랑스, 러시아, 일본이다.
4. 지금은 내치가 중요한 시기다. 참전을 명분으로 삼아 군부가 민주주의를 해칠 수 있다.
5. 가장 중요한 문제. 중국은 참전하여 유럽까지 작전할 능력이 전무하다.
여러 반대에도 불구하고, 독일 유학파로 친독파였던 단기서는 갑작스럽게 반독파로 변신했다. 단기서는 국무회의에서 선전포고 의결을 강행하고 의회를 윽박질렀다.
“참전 없이 산동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중국이 최소한 성의라도 보여야 되찾을 것 아니오!”
표면적인 이유는 일본과 한국이 점령 중인 독일령 산동을 되찾는 방법은 중국이 연합국으로 참전하는 길밖에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보다 실질적인 이유는, 군벌의 최강자인 단기서는 참전이 자신의 권력을 강화할 절호의 기회라 여겼다. 참전을 명분 삼아 연합국으로부터 차관과 무기를 들여와 안휘군벌을 강화하고, 이를 통해 중국 재통일의 기반으로 삼겠다는 복안이었다.
내각책임제하에서 국무총리인 단기서의 권력, 군벌 최강 실력자로서의 위상, 참전을 향한 연합국의 로비는 의원들을 움직이기에 충분했다.
“이 전쟁은 서양인들의 전쟁이지 중국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소이다! 아무런 이익도 얻지 못할 것이오!”
손문과 국민당이 단기서의 계략을 모르는 바가 아니었으니 반대하는 것도 당연했다.
국민당의 반대로 의회에서 다수를 확보하는 데 실패하자, 단기서는 각지의 독군들을 매수하여 연명으로 국회해산을 요구했다.
“선전은 대총통의 권리이며, 양원의 결의안은 법률과 동등한 효력을 갖는다. 나는 선전포고를 할 생각도, 의회를 해산할 생각도 없다.”
손문은 오히려 단기서를 국무총리에서 경질했다. 승부수를 띄운 것이었다.
“내가 아니었더라면 장훈의 복벽 야욕과 원세개의 독재 야욕을 누가 무찌를 수 있었겠는가? 민국의 내각책임제에는 총통이 총리를 자의적으로 경질할 권리가 없다!”
단기서는 남경을 떠나 고향인 합비에 진을 쳤다. 단기서를 따르는 안휘파 병력이 모여들고, 옛 북양군 파벌들이 모두 단기서 지지 의사를 밝혔다.
“작금의 정치는 중국의 통일과 발전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금 중국에 필요한 건 강력한 지도력이다. 국회를 해산하고 재선거를 실시한다.”
단기서는 남경을 향해 최후통첩을 던졌다. 당장이라도 군대를 이끌고 남경으로 진격할 기세였다.
“연합국은 단기서 총리의 주장대로 조속히 독일에 선전포고한다면, 적극적인 원조를 아끼지 않겠다.”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 공사 모두 단기서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혔다. 미국, 러시아, 한국은 애매한 중립 태도를 보였다.
북방 군벌들과 연합국의 지지를 등에 업은 단기서는 남경으로 진격을 개시했고, 결국 손문은 남경을 포기하고 퇴각했다.
“단기서 이놈, 원세개와 다를 바가 하나도 없구나! 군벌을 타도하지 못하면 혁명 완수는 불가능하다!”
단기서는 군대를 이끌고 남경에 입성하여 즉시 새 정부를 조직했다. 대총통은 공석으로 두어 손문에게 복귀를 촉구했지만, 이는 형식적인 쇼에 불과했다.
중화민국 해군은 대총통에 여전히 충성할 의사를 밝혔고, 손문과 국민당 인사들은 군함을 타고 광동 광주(광저우)로 향했다.
“나는 전력을 다하여 간흉(奸凶)을 제거하고 약법을 회복하며, 민국 원년에 다하지 못한 대업을 완성함으로써 지난 수년간에 공을 이루지 못한 부끄러움을 씻고자 한다.”
손문이 광주에서 호법(護法)정부를 선언하자, 광동·광서·사천·호남·귀주·운남 6성은 호법정부 지지를 천명했다. 특히 호국전쟁의 주역인 사천의 채악이 단기서 토벌을 천명했다.
나머지 12성은 단기서를 따르기로 하니, 중화민국은 다시 북방의 군벌정부와 남방의 호법정부로 분열되고 말았다.
중국의 분열과 혼미는 끝나지 않았으니, 혼란의 양상은 멈출 기미가 없었다.
* * *
대청국, 성경 봉천부.
중국이 혼란에 빠진 바로 그 무렵, 한국은 2차 파병을 하여 파병군이 남만주철도로 이동했다.
“어서 오십시오, 이 대인. 노고가 많으십니다.”
“하하, 노고라고 할 게 뭐 있겠습니까. 만주가 좀 춥다는 거 빼고 괜찮습니다. 양 대인도 평안하셨습니까?”
“덕분에 평안히 잘 지내고 있습니다.”
청국 외무대신 양돈언과 금위군 통령 장작림이 봉천역에서 이완용을 맞이했다.
“귀국 군대의 강성함을 보니, 천하의 러시아도 원병을 요청할 만합니다.”
“음, 대한국군의 용맹함은 유럽에까지 떨쳤지요.”
양돈언의 말은 단순한 아부가 아니었다. 만주에도 15만 병력이 있기는 했지만, 대부분 오합지졸이었다. 쓸 만한 병력은 장훈이 데려온 옛 북양군의 일부인데, 그마저도 복벽전쟁에서 큰 손실을 입었다.
복벽전쟁 패전과 장훈의 실각 이후, 장작림이 청국 군부의 실세로 급부상하여 한국식으로 새 군대를 양성했다.
중화민국군은 휘하 병력을 다 합치면 80만 대군 운운했다. 현실은 군벌들로 산산조각이 나서 단일한 군대 따위는 없었고, 그나마 가장 강하다는 단기서 직계 안휘군 병력도 7개 사단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복벽전쟁 패전은 청국으로 하여금 중국의 보복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게 했고, 더욱 한국에 의존하게 했다.
“단기서, 그 무지막지한 역적 놈이 민국의 권력을 잡았다니, 혹여 전쟁을 부추길까 봐 걱정입니다.”
“지금 단기서는 손문과 싸우느라 정신이 없지만, 남방을 제압하고 나면 필연적으로 북벌을 부르짖을 겁니다.”
“하지만 만약 그렇게 되더라도, 대한은 형제지국인 대청이 침범당하지 않도록 보호할 겁니다. 대한은 외교적 노력도 아끼지 않고 있으니, 이미 서양 열강의 독립보장도 받은 터입니다.”
이완용은 한껏 거드름을 피우며 위세를 드러냈다. 서양 열강이 모두 청국의 독립을 보장했다는 말에 양돈언은 크게 기뻐했다.
“과연 귀국은 대청의 형제지국입니다!”
“물론 여기에는 대한이 연합국의 전쟁에 승리할 수 있도록, 귀국이 협조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는 걸 아시리라 믿습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1916년, 1차 파병 당시에 양국은 한국군이 청국 영토를 전략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협약을 맺었다.
이완용의 방문 목적은 새로운 협약으로 대체하여, 실질적인 보호조약을 체결하는 것이었다.
‘길게 끌 생각 없다. 국군이 만주를 통과하기 전에 마무리 지어야지.’
이완용과 함께 온 제1근위사단의 위용에 만주인들은 감탄과 공포라는 양가적인 감정을 느꼈다.
“예전에 만주에 왔던 아라사와 일본군도 저렇게 정예하지는 않았다네.”
“그 강대하다는 아라사가 도움을 요청하다니, 한국군은 도대체 얼마나 강하단 말인가?”
“세계 최강의 군대라는 덕국 군대하고도 대등하게 싸우고 있다 하지 않는가.”
“그러니 아라사뿐만 아니라 영국, 법국, 미국도 한편으로 끌어들이려고 하지.”
“대청이 중국의 침략으로부터 살아남으려면 반드시 저들이 우리의 동맹으로 있어야 하네.”
제국익문사는 만주에 과장된 소문을 흘렸다.
한국군은 열강인 러시아가 원병을 요청할 정도로 강력하며, 중국이 곧 만주를 침략할지도 모르지만 한국군이 보호해 주리라는 소문이었다.
“하지만 저 조선인들은 만주를 집어삼킬 궁리로 가득한 탐욕스러운 자들이야. 우린 모두 중화의 후예인데, 어찌 조선을 믿는단 말인가?”
만주라고는 하지만 인구 구조상 만주족보다 한족이 더 많았고, 중국과의 통합을 부르짖는 범중국주의자가 없는 건 아니었다.
“난 그런 건 모르겠고, 내 땅만 가지면 그만이야.”
“그래. 조선은 농민을 위한 나라라고 하지 않는가.”
하지만 대부분 산동과 하북 일대에서 경작할 땅을 찾아 만주로 온 빈농들이 대부분이라, 실체도 없는 중화민족주의보다는 토지개혁을 성사시킨 나라인 한국이 더 솔깃하게 다가왔다.
심지어 한국이 완고한 청 조정을 압박해서 만주 일대에서 토지분배를 강행하려 한다는 소문도 돌았다. 이른바 ‘시정 개선’이었다.
“외신(外臣)이 대청을 찾은 이유는, 대한국 황제 폐하의 친서를 전달하기 위함입니다.”
“오, 귀국 황제 폐하께서는 강녕하십니까?”
“예, 강녕하십니다.”
이완용은 아직 12세에 불과한 선통제를 대신해 섭정하고 있는 총리대신 숙친왕 산기에게 이선의 친서를 전달했다.
친서에는 대한제국군이 만주를 경유해 러시아로 이동하도록 청국이 협력을 아끼지 않는 것에 감사를 표하고, 대한제국이 동양 평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대청황실의 안녕과 영토보전을 세계에 승인받기 위해 노력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대한은 러시아 파병의 대가로, 러시아와 미국으로 하여금 대청의 독립과 영토보전을 영구히 승인하도록 하였습니다.”
“오, 귀국의 군사와 외교는 참으로 탁월합니다. 황제 폐하께 고맙다는 말씀을 전해 주십시오.”
“대한이 대청과 동양 평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으니, 응당 귀국도 마땅한 노력을 하기를 바랍니다.”
“노력이라 한다면?”
이완용이 고개를 숙이며 정중한 어조로 말했다.
“대한의 선례를 따라 시정을 개선하여 대청의 국부를 튼튼히 하고, 민심을 존중하여 군민공치를 이룩해 황실이 진정 국민으로부터 존숭받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옵니다. 특히 근래 세계의 대세는 민족자결로 향해 나가고 있으니, 만몽회장(滿蒙回藏)이 공영하는 대청국을 세계의 모범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좋은 말씀이시오. 반드시 대청도 귀국을 본받아 문명개화를 완수할 것이오.”
이완용은 단순히 말의 상찬만 늘어놓자고 온 게 아니었다.
“이에 대한국은 대청의 공영과 동양의 평화를 위하여, 다음과 같은 조약을 맺기를 희망하는 바입니다.”
이완용이 내민 조약의 초안을 본 숙친왕의 표정이 흔들렸다.
온갖 아름다운 문장으로 가득했지만, 청국의 주권을 한국의 제약하에 두겠다는 의미였다.
“폐국(弊國)과 귀국은 이미 형제지국인데, 이런 조약까지 필요가 있겠소이까?”
“현재 중국은 약육강식의 혼란으로 접어들었습니다. 중국이 특정 군벌에 의해 통일된다면, 그는 제일 먼저 청국을 집어삼키려 할 것입니다. 중화민족주의자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청조의 멸망을 부르짖으며, 특히 단기서는 공공연히 청국 토벌을 외치지 않습니까?”
“과연 그렇소. 하지만 이런 조약을 맺게 되면, 신민들이 귀국의 우호적인 저의를 의심할까 우려가 되오.”
“그 무슨 말씀이십니까?”
“귀국이 만주를 집어삼키려 한다는 세간의 소문이…….”
그러자 갑자기 이완용이 정색했다.
“그 무슨 말씀이십니까! 대한은 귀국과 황실이 중화민국으로부터 멸망당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왔습니다. 대한이 나서지 않았더라면, 귀국이 중국 18성을 제외한 영토를 지킬 수 있었겠습니까?”
“그건 고맙게 생각하오. 하오나 귀국에는 만주 병합을 부르짖는 자들이…….”
“아, 그자들은 재야세력이니 논할 가치조차 없습니다.”
“귀국 의회에 있는데 어찌 재야세력이란 말이오?”
이완용은 정중한 자세를 저버리고, 냉소적인 어조로 말했다.
“전하, 그들이 하는 말을 듣고 싶으십니까? 그럼 제가 전해 드리지요. 우리 한국인들은 저 병자년 삼전도의 치욕을 아직 잊지 못했다! 군주를 끌어내 삼배구고두의 굴욕을 시키고, 수십만의 백성을 끌고 가 노예로 삼았다. 그 치욕과 원한을 생각하면 심양을 불태우고 황태극의 무덤을 파헤쳐도 시원치 않다!”
“뭐, 뭐요!”
한국에 우호적인 숙친왕도 얼굴이 벌개져서 소리질렀다.
“이처럼 귀국은 280년 전 아국을 침범해 고통과 치욕을 안겨 주었습니다. 하지만 대한 황제 폐하와 정부는 그 원한을 잊고, 귀국을 진정 형제지국으로 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세간의 소문 따위를 믿고 아국의 진의를 부정하는 것입니까?”
이완용의 압박에 숙친왕은 입을 다물었다.
“이는 어디까지나 귀국이 시정 개선에 성공하여 강국의 일원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드리는 제안입니다. 귀국이 진정으로 강성해지면, 대한은 스스로 조약을 폐기할 것입니다.”
신해혁명 당시 만주 이전을 주도한 숙친왕은, 현실적으로 중국에 맞서 청조를 보호해 줄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고 인식했다.
중화민국을 참칭하는 역적들에게 먹히느니, 차라리 한국에 이권을 내주고 생존을 도모하는 게 나았다.
저항해 본다 한들, 어차피 한국의 군사력은 현재 청국으로서 맞설 수도 없고, 열강 모두가 한국을 지지하는 상황에서 선택의 여지도 없었다.
“귀국의 진의를 믿어 의심치 않소. 그럼 외무대신과 구체적인 조약에 대해 논의하도록 하시오.”
숙친왕의 재가가 떨어지자, 협약 체결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몇몇 문구만 수정되었을 뿐, 원안은 대부분 관철되었다.
1917년 10월 30일, 정사(丁巳)년 경술(庚戌)월 을사(乙巳)일.
280년 전, 태종 홍타이지가 볼모로 잡혀 온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을 앉혀놓고 승전을 축하하던 성경 봉황루.
이날 이곳에서 정식명칭은 제2차 한청협약인, 한청보호조약이 체결되었다.
제1조. 한청 양국 사이의 항구적이고 변함없는 친교를 유지하고, 동양의 평화를 영구히 이룩하기 위하여, 대청제국 정부는 대한제국 정부를 확고히 믿고 시정 개선에 관한 충고를 받아들인다.
제2조. 대한국 정부는 대청국의 황실을 확실한 친의로서 안전·강녕하게 한다.
제3조. 대한국 정부는 대청국의 독립과 영토보전을 확실히 보증한다.
제4조. 제3국의 침해나 내란 위험으로 인하여 대청국의 황실 안녕과 영토보전에 위험이 있을 경우, 대한국정부는 속히 필요한 조치를 행한다.
제5조. 대청국 정부는 대한국 정부의 행동이 용이하도록 충분히 편의를 제공한다. 대한국 정부는 4조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하여 전략상 필요한 지점을 상황에 따라 차지하여 이용할 수 있다.
제6조. 대청국 정부는 대한국 정부가 추천하는 인사를 외교·재정고문으로 하여 대청국 정부에 초빙하고, 외무·재무에 관한 사항은 일체 그의 의견을 물어 실시한다.
제7조. 대청국 정부는 외국과의 조약 체결이나 기타 중요한 외교 안건, 외국인에 대한 특권 양여와 계약 등의 처리에 관해서는 미리 대한국 정부와 상의한다.
제8조. 대한국 정부와 대청국 정부는 상호의 승인을 경유하지 아니하고, 훗날 본 협약 취지에 어긋나는 협약을 제3국과 맺을 수 없다.
선통 7년 9월 15일, 광무 21년 10월 30일.
대청제국 내각의정대신 겸 외무대신 양돈언
대한제국 특명전권대사 이완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