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565
– 246화에 계속 –
2부 246화 혁명의 방어
“아, 대사관입니까?”
“안중근 참장이십니까? 이위종 공사입니다.”
잡음이 좀 섞이긴 했어도, 페트로그라드 대사관과 페테르고프 사령부 사이에 전화 연결이 이뤄졌다.
“본국으로부터의 훈령을 전해 드립니다. 파병군은 러시아 정부의 정식 요청이 없는 이상, 러시아 국내 문제에 관여하지 말고 현 주둔지를 고수하라.”
“알겠습니다. 발트함대 수병들로부터 함께 방어하자는 제안이 들어왔습니다만, 정부의 정식 요청이라고는 할 수 없으니 무시하면 되겠군요.”
“아, 그런데 조금 전에 대사관에 러시아 정부의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케렌스키 총리의 명의로 된 요청입니다.”
「러시아 정부는 동맹 대한제국군이 반란군에 맞서 페트로그라드 수호를 위한 작전에 합류하길 요청한다. 조속한 답변을 희망한다.」
파병군 중 제2근위사단, 제9보병사단, 제1기병사단은 얼마 전 우크라이나 전선을 떠나 페트로그라드를 향해 재배치 중이었다. 2차 파병군은 이제 막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타고 유럽으로 접근 중이었다.
즉, 현재 수도 인근에 있는 한국군은 제1해병여단뿐이었다.
“정식 요청이란 말입니까? 그럼 어찌합니까? 본국에 새로운 훈령을 문의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본국과 전문을 주고받을 시간적 여유는 없을 듯합니다. 그리고 본국에서는 이럴 경우를 대비해서도 훈령이 있었습니다.”
“예, 말씀하십시오.”
“러시아 정부의 정식 요청이 들어올 경우, 동맹의 요청을 무시할 수는 없다. 출진은 하되 가급적 후방에 배치하라. 교전이 불가피할 경우, 사세(事勢)를 파악하여 교전 여부를 결정하라. 상황의 급박함을 고려할 때, 일일이 본국에 훈령을 요청할 필요 없이 대사관과 현지 지휘관의 재량에 맡긴다.”
풀이하면 출진은 하되, 교전은 피하고 최대한 생색은 낼 수 있는 후방의 방위를 맡으라.
교전이 불가피하면 유리한 쪽을 따르라. 임시정부가 유리하면 이들을 도와 반란군을 진압하고, 반란군이 유리하면 교전을 회피하고 빠져나가라.
얼핏 들으면 계산적이었지만, 동맹으로서의 우의와 국익을 모두 지키기 위한 방책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제1해병여단은 현 위치에서 방어태세를 갖추도록 하겠습니다.”
“예, 대사관에서는 신속히 상황을 파악하여 정기적으로 정보를 공유하겠습니다. 장군께서는 협의를 위해 페트로그라드로 와 주십시오.”
이제 결정은 대사관과 안중근의 판단에 달려 있었다. 안중근은 휘하 병력을 소집했다.
“우리는 러시아 정부의 요청을 받아 페트로그라드 수호를 위한 작전에 돌입한다. 여단은 페테르고프에 방어진을 구축하라. 본관은 러시아군과의 작전 협의를 위해 페트로그라드에 다녀오겠다.”
“옛!”
해병1여단 4천여 명은 즉각 진지를 구축하고 전투태세를 갖추기 시작했다.
대한제국군이 수도 방어를 위해 함께 싸울 뜻을 보이자, 발트함대 수병들도 환호성을 내질렀다.
“우리의 동지들, 한국군 만세!”
“함께 반란군을 격퇴하자!”
안중근과 참모들이 페트로그라드로 향하는 기차에 오르자, 수병들은 그를 향해 일제히 만세를 외치며 환호를 보냈다.
페트로그라드 소비에트.
“전선에서, 공장에서, 농지에서, 거리에서 인민의 목소리는 더욱 분명해지고 있다. 그런데도 이스폴콤(Ispolkom, 소비에트 집행위원회)은 임시정부와 부르주아지의 눈치를 보느라 정신이 없다. 인민은 소비에트에 외치고 있다. 권력을 잡으라고!”
“부르주아지의 눈치를 보며 끌려다녔건만, 돌아온 것은 저들의 배신뿐이다. 반혁명을 단호히 분쇄하고, 혁명을 수호하자!”
사회민주노동당 ‘국제주의파’의 울리야노프, 트로츠키, 부하린 등은 거듭 임시정부와 소비에트 지도부의 무능을 규탄했다. 여기에 스피리도노바가 이끄는 사회혁명당 좌파가 합류하면서 급진좌익 블록의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
“혁명의 수도 페트로그라드를 지키기 위해서, 반혁명에 맞서는 인민투쟁위원회는 병사 동지들에게 투쟁할 것을 요청합니다. 또한 철도 노동자들을 비롯한 모든 운송 노동자들은, 반란군의 수도 진격을 막기 총파업에 돌입하길 바랍니다.”
군부 쿠데타는 급진좌익의 힘이 결정적으로 커지는 계기가 되었다. 그동안 소비에트를 이끌던 온건파 사회민주주의자를 대신해 급진좌익 블록이 인민투쟁위원회를 주도하게 되었다.
방위파를 대표하여 내무장관으로 입각한 체레텔리와 국제주의파를 대표하여 트로츠키가 공동으로 위원장을 맡아 혁명의 방어에 나섰다.
“혁명의 아성, 크론시타트의 발트함대 수병 동지들이 수도를 지키기 위해 달려오고 있습니다!”
“와아아아아아!”
“노동자-병사 동지들이여, 우리는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소비에트의 요청에 따라 페트로그라드 주둔군이 임시정부에 충성의사를 밝히고, 반란군에 맞서 싸울 준비를 했다. 주둔군은 시내의 극우 폭동을 진압하기 위해 출동했다.
“저들은 반역자다. 진압하라!”
“사격!”
검은 100인단을 비롯한 극우단체들이 아무리 날뛴다 한들, 정규군의 상대가 될 리가 없었다. 발포 몇 번에 시체를 쌓고 뿔뿔이 흩어져 버렸다.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자, 정변 계획에 가담했던 사빈코프의 생각이 달라졌다.
분명히 가급적 평화적으로 해결하자고 합의했음에도, 극우 폭동과 군사 쿠데타가 잇달아 발생하게 되자 사빈코프는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건 분명히 사전에 합의되지 않은 사항이다. 군부는 처음부터 합의를 지킬 생각이 없었던 게 아닌가? 소비에트뿐만 아니라 두마와 임시정부도 박살 내고, 극우파가 주도하는 군사독재를 만들려고?’
사빈코프는 군부가 자신을 이용만 하고 버리려는 게 아닌지 의심했다. 그는 전쟁 승리를 위한 거국정부를 원했지, 극우 왕당파의 집권을 바란 게 아니었다. 만약 극우 왕당파가 재집권하면, 왕년의 급진 테러리스트인 사빈코프의 안전도 보장할 수 없었다.
섣부른 의심은 아니었다. 군부독재가 수립되면, 극우는 정말로 소비에트와 사회민주노동당 다음에 임시정부와 사회혁명당도 때려잡을 생각을 했다. 극우의 눈에는 급진좌익이나 중도좌익이나 똑같이 ‘빨갱이’였다.
결론에 도달하자 사빈코프는 케렌스키를 찾아 쿠데타 계획에 대해 모두 밝혔다.
케렌스키는 군부가 정부의 등 뒤에서 칼을 꽂을 준비를 하고, 심지어 영국조차 음모를 은밀히 지원했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배신자 놈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북서전선군 사령관 코르닐로프 대장, 참모차장 루콤스키 중장, 서부전선군 사령관 데니킨 중장, 1군 사령관 마르코프 중장, 돈 카사크 아타만 칼레딘 대장, 3기병군단장 크리모프 중장 등이 쿠데타에 가담한 것으로 보입니다.”
“가관이군! 브로실로프 장군은 뭘 했나? 이토록 군부를 통제하지 못했다니!”
점차 쿠데타의 전모가 드러나자 임시정부는 경악했다. 쿠데타에 가담한 거물급 장성이 여럿이었다. 모두 전쟁영웅으로 불리던 사람들이었다. 모길료프의 스타프카에서조차 이들을 통제하지 못했다.
“병사들이 저들을 모두 따를 리가 없소. 저들을 모두 반역자로 규정하고 체포 명령을 내리시오.”
“예!”
케렌스키는 사빈코프를 재신임하고, 육군차관으로서 페트로그라드 방위를 맡겼다.
극우 세력의 섣부른 발호로, 쿠데타 세력은 내응할 수도 있었던 사빈코프와 사회혁명당 우파도 적으로 돌리고야 말았다.
“한국군이 수도 방위를 위해 함께 싸울 태세를 갖춰 주니, 정부를 대표해 감사드립니다.”
“아닙니다. 동맹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할 뿐입니다.”
케렌스키는 조한민과 안중근에게 감사를 표했다.
페트로그라드 주둔군과 발트함대 수병들이 임시정부에 충성의사를 밝히고 수도 방위에 나서긴 했지만, 이들이 진정으로 임시정부에 복종하는 군대라고 할 수는 없었다. 이들은 소비에트의 요청이 있어야만 움직였고, 임시정부는 이제 완전히 소비에트에게 목줄이 잡힌 상황이 되고 말았다.
임시정부는 외국군인 한국군이 가장 믿을 만한 군대라는 역설적인 상황에 직면했다.
“귀국 해병여단에게 겨울궁전의 방비를 맡기고 싶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리하지요.”
안중근도 흔쾌히 받아들였다. 겨울궁전은 정부청사이자 페트로그라드의 심장부였다. 수도까지 뚫린 상황이 아니고서야 교전 가능성은 극히 낮고, 생색은 내기 딱 좋은 상황이었다.
명령을 받은 제1해병여단은 즉시 페트로그라드로 진입하여 겨울궁전 방위에 나섰다.
“우리의 충실한 동맹군, 한국군 만세!”
임시정부를 지지하는 인사들은 겨울궁전으로 진주하는 한국군을 향해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겨울궁전 앞에 러시아 삼색기와 함께 태극기가 휘날리는 기이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한편, 반란군의 주력인 제3기병군단은 철도를 이용해 진격했다. 캅카스 원주민사단, ‘야만사단’은 수도에서 남쪽으로 겨우 45km 떨어진 가치나까지 진입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들의 진격은 여기서 막히고 말았다.
“더는 못간다!”
노동자들, 특히 러시아의 교통에서 매우 핵심적인 부분을 차지하는 철도 노동자들이 반군의 진격을 막기 위해 나섰다.
철도노조는 반군의 진격 경로에 목재를 가득 실은 열차 차량들을 배치해 길을 막고, 철도 수 킬로미터를 끊어 버렸다. 이제 수도로 진격하고 싶으면 말을 타고 이동해야 하니, 신속한 진격은 불가능해졌다.
우정통신노조는 전선군 사령부와 반란군을 잇는 통신선을 끊어 버렸다. 3기병군단장 크리모프 중장은 사령부는 물론이고 예하 사단들과도 제대로 연락할 수 없었다.
“캅카스 무슬림 형제들이여! 그대들은 반란군의 야욕에 이용만 당하고 있을 뿐이다. 임시정부와 소비에트는 차르 전제정권과 달리 종교와 인종의 완전한 평등을 보장했다. 곧 선출될 제헌의회를 통해, 그대들의 권리는 헌법으로 보장받게 될 것이다. 제헌의회는 토지와 자유를 약속한다. 만약 반란군이 원하는 대로 제헌의회가 선출되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영원히 차르의 노예로 남을 것이다!”
진격이 지지부진해짐을 틈타, 소비에트에서 보낸 선동가들이 부대에 접근하여 맹렬히 사자후를 내뿜었다.
캅카스 무슬림 입장에서는 차르 전제정권보다 임시정부와 소비에트가 종교적으로나 인종적으로나 권리를 보장해 줄 게 자명했다.
“황제 폐하께서 명령을 내려, 소비에트의 독일 간첩들을 토벌하라고 하셨다는데…….”
“그건 명백한 거짓이다! 반란군 수뇌부가 황제의 이름을 팔아 거짓 명령을 내린 것이다. 황제를 대리하는 임시정부 국무총리 케렌스키의 명령서를 낭독하겠다.”
코르닐로프와 반란군 수뇌부를 규탄하고 체포하라는 케렌스키의 명령서는 미하일 2세의 재가를 받았다. 차르의 본심이 무엇이든 간에, 겨울궁전 안에서 임시정부에 봉대되어 있는 미하일로서는 케렌스키가 요구하는 대로 서명해 주는 수밖에 없었다.
“완전 거짓부렁이었군! 우리가 속은 거였어!”
“반란군을 타도하자!”
“아니다, 이놈들아! 우리가 아니라 소비에트 선동가들, 독일 간첩들이 너희를 속이는 거다! 황제 폐하께서는 우리가 진격하기만을 기다리신다!”
“닥쳐, 이 사기꾼아! 정부와 인민들은 물론이고, 그 황제도 아니라잖아!”
초대 사단장이었던 미하일 2세에게 충성을 바치는 것도 장교들 이야기지, 병사들 입장에서는 크게 와닿는 이야기도 아니었다.
병사들은 즉각 혁명위원회를 구성하여 임시정부에 충성을 맹세하고, 반대하는 장교들을 체포했다.
똑같은 상황이 우수리 기병사단에서도 벌어졌다. 인민투쟁위원회에서 보낸 선동가들이 병사들과 접촉하자, 병사들은 자신들이 속은 걸 깨닫고 임시정부에 충성을 맹세했다.
“젠장! 대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3개 사단 중 2개 사단이 반란에서 빠져나오자, 남은 건 돈 카자크 제1사단뿐이었다. 돈 카자크는 아타만(카자크가 선출한 지도자) 칼레딘을 비롯하여 대부분이 소비에트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으므로, 끝까지 싸울 뜻을 보였다.
돈 카자크 사단은 반란군 중에서 유일하게, 정부를 지지하는 발트함대 수병들과 교전을 벌였다. 카자크 사단이 서전에서는 승리하여 가치나 북방으로 진출했다.
3기병군단 사령부는 카자크 사단만을 이끌고 45킬로미터를 행군하여 수도에 닿을 가능성을 가늠해보았다.
이미 신속한 기습의 이점이 사라진 상황에서, 1개 사단만으로 방위군을 뚫고 수도로 진입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한 목표였다.
“페트로그라드에서 폭동이 발생했다고 하지 않았나? 그건 어찌 됐나?”
“정확한 상황은 통신이 끊어져 파악이 불가능하나, 주둔군에 의해 진압된 것 같습니다.”
“제기랄, 이런 어설픈 계획이라니. 페트로그라드에서 내응한다고 하더니만 우리 편은 하나도 없지 않나!”
3기병군단은 결국 진격을 포기했다.
임시정부에서 특사를 보내 신변의 안전과 공정한 재판을 약속하며 항복을 권유했고, 결국 장교들은 저항을 포기하고 항복했다.
“조국을 구할 마지막 카드가 실패했군. 이제 더는 살 가치가 없어.”
절망에 빠진 크리모프 중장은 자결했다. 그를 따르는 장교는 아무도 없었다.
“반란분자들을 신속히 체포하라!”
11월 4일(10월 22일), 쿠데타는 단 3일 만에 실패로 끝났다. 북서전선군 사령관 코르닐로프 등 쿠데타 주모자들은 정부에 충성을 맹세한 부대에 의해 체포되어 이송되었다.
공공연히 쿠데타를 지지했던 서부전선군 사령관 데니킨과 쿠데타 동조자들도 병사들에게 체포되어 감금되었다.
쿠데타를 주도한 장교연맹은 해체되었고, 쿠데타 가담자들은 줄줄이 체포되었다.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고 난 뒤에야 각 전선과 야전군 사령관들은 정부에 뒤늦은 충성을 맹세했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고, 임시정부는 전선군과 야전군 사령관을 모두 교체했다. 참모총장 브루실로프는 군부를 통제하지 못한 책임으로 사임하고, 친정부 인사들로 총사령부가 채워졌다.
“이로써 군부와 장교들은 언제든 혁명을 타도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게 입증되었다! 저들은 다시 차르 전제정권으로 역사를 돌리려 한다!”
“군부를 타도하라! 장교들을 타도하라!”
이제 군의 붕괴는 현실이 되었다. 장교들이 대거 쿠데타에 가담함에 따라, 병사들은 이제 군부의 권위를 절대로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우익들이 쿠데타에 가담한 걸 봤지? 저들은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파괴할 생각밖에 없어.”
“모든 건 제헌의회 이후로 미루자고 하더니, 그 제헌의회 선거에서 질 것 같으니 쿠데타를 조장해?”
“반혁명 세력을 응징하자!”
우익의 몰락도 기정사실이 되었다. 입헌민주당과 10월당은 쿠데타 연루설을 부정했지만, 이들이 쿠데타의 승리를 기원한 건 분명해 보였다. 우파정당들의 대중적 신뢰는 급격히 무너져 내렸다.
혁명 영웅이었던 사빈코프가 쿠데타에 연루되었다는 사실도 충격이었다. 사빈코프는 사회혁명당에서 제명당하고 육군차관직에서도 물러나야 했다.
어떻게든 자유주의자들과의 연립정권을 유지하려던 온건파 사회주의자들의 타격도 컸다.
“민주공화국, 토지개혁, 8시간 노동, 평화, 프롤레타리아트 권력! 노동자-농민-병사 소비에트 만세! 제헌의회 만세!”
이와는 반대로, 선명성을 외치던 급진파 사회주의자들의 주가는 치솟았다. 소수파였던 급진파는 소비에트에서 처음으로 다수를 구성하기 시작했고, 인민투쟁위원회를 주도했던 트로츠키가 페트로그라드 소비에트 의장으로 선출되었다.
10월 쿠데타는 우익의 명백한 자멸행위였다. 제헌의회 선거를 저지하고, 국가와 군의 권위를 되살려 전쟁을 승리로 이끌려던 이들의 계획은 완전히 역효과를 낳았다.
‘조국과 군대’를 수호하겠다는 명분으로 일으킨 쿠데타가, 역설적으로 그들의 목을 조르는 상황이 되고야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