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566
– 247화에 계속 –
2부 247화 민주주의 연방공화국
“비록 불상사가 있었지만, 제헌의회 선거는 예정대로 11월 12일에 진행합니다.”
우익 쿠데타 실패의 분위기 속에서, 보통선거로 선출되는 제헌의회 선거에서 좌익이 압승하리라는 건 분명해 보였다.
1917년 11월 25일(율리우스력 12일). 러시아 역사상 최초로 보통선거·평등선거·직접선거·비밀선거의 4대 원칙에 의한 선거가 실시되었다. 남녀를 막론하고 20세 이상의 모든 성인에게는 투표권이 있었다.
워낙 방대하고 넓은 땅에서 수많은 사람이 투표를 진행한 만큼, 선거가 진행되고 투표를 집계하는 데만 한 달이라는 시간을 필요로 했다.
“사회혁명당 324석, 사회민주노동당 201석, 우크라이나 사회당 55석, 입헌민주당 48석, 카자크 연합 18석, 카자흐 자치당 15석, 그루지야 사회민주당 10석, 아르메니아 혁명연맹 10석, …….”
마침내 12월에 집계를 마치고 투표 결과가 발표되었다.
이는 세계에서도 손꼽힐 민주주의 기획으로, 그때까지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인민이 투표한 선거였다.
선거에서 제외된 독일군 점령지역을 빼고도 약 4,500만여 명이 투표권을 행사했다. 전체 투표율은 60% 이상이었고, 의외로 ‘후진적인’ 농촌에서도 놀라운 참여율을 보였다. 1916년 1,800만여 명이 투표한 미국 대선보다 2.5배나 많은 숫자였다.
“이는 위대한 러시아 인민의 승리입니다!”
“민주주의 러시아 만세!”
선거 결과는 혁명정당들의 압승이었다. 도시와 전선에서는 사회민주노동당이, 러시아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농촌에서는 사회혁명당이 압승했다. 혁명정당들은 득표의 75%를 차지했다.
“어떻게 이런 결과가? 부정선거 아닌가?
“인민의 외침을 무시하고, 혁명과 제헌의회를 무력으로 파괴하려 했던 우익이 참패하는 건 당연한 결과 아닌가?”
우익과 왕당파는 참담한 패배를 경험했다. 우익을 대표하는 입헌민주당은 우크라이나 자치정당에조차 밀렸다. 10월당과 왕당파는 명함조차 내밀지 못할 정도로 지리멸렬한 참패였다.
“도시민이 재산권을 위해 투표하고, 노동자가 노동권을 위해 투표하고, 농민이 토지를 위해 투표하고, 병사와 그 가족들이 평화와 동원 해제를 위해 투표했다. 어디에 비정상적이고 비현실적인 면이 있는가?”
부정선거의 징조는 어디에도 없었다. 혁명정당들이 실효성은 차치하더라도 민중의 마음을 사로잡았기에 가능한 결과였다.
농민들이 즉각적인 토지개혁을 외치는 사회혁명당에 몰표를 던지고, 노동자와 병사가 프롤레타리아와 평화의 정당을 자임하는 사회민주노동당을 지지하는 건 당연한 귀결이었다.
제3국의 관찰자들조차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자유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던 전제정의 러시아에서, 한 번도 민주주의를 경험해 보지 못했던 인민이 놀라운 민주주의적 성과를 이룩해 냈다.
이는 민주주의의 본산이라는 영국, 프랑스, 미국에서도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였다.
“러시아 인민은 혁명의 자랑스러운 후계자이다. 18세기와 19세기에 민주주의는 서유럽과 미국을 상징했으나, 20세기에는 러시아가 민주주의의 상징이 될 것이다. 미합중국 정부와 미국인은 위대한 러시아 인민에게 경의를 표하는 바이며, 세계의 자유와 민주주의의 승리를 위하여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
혁명정당의 압승이 껄끄럽기 짝이 없었던 영국과 프랑스와는 달리, 미국은 즉각 환영을 표했다.
윌슨 행정부는 러시아가 ‘세계 민주주의 기획’의 첫 성공사례라고 믿었고, 사회민주주의 정부가 들어선다고 해도 충분히 대화가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대한제국 정부는 러시아 전체 국민의 의지가 선거로서 표출되었음을 높이 평가한다. 한국과 러시아는 우방이자 혈맹으로서, 새로운 정부와도 혈맹의 관계가 이어지기를 희망한다.”
대한제국도 선거 결과에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러시아에 주둔하던 파병군 장병들은 자연스럽게 민주적 분위기에 영향을 받게 되었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투표권을 행사하다니, 정말 대단하군.”
“의무가 있으면 권리도 있어야지. 당연한 말이야. 우리 모두 병역의무가 있잖아. 그럼 투표권도 있어야지. 이제 대한도 보통선거를 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대한은 러시아와 다르지. 우리 황제 폐하만큼 현명하신 군주가 또 어디 있단 말인가. 폐하의 지도력이 없었다면 어찌 대한이 자주독립과 문명개화를 이룰 수 있었겠나? 헌법도 폐하께서 흠정하셨다고!”
“맞아. 보통선거로 의회가 선출된다 한들, 황제 폐하를 능가할 수 있겠나?”
“누가 군주권을 제약하자고 했나? 대한국민이 충분히 의무를 다하고 있으니, 전 국민의 투표로 의회를 선출해 황제 폐하를 보좌하자는 거지.”
“대한은 아직 일러. 그만큼 국민이 진정으로 계몽되었다고 할 수 있나?”
“국민을 얕보지 말게. 전제정의 후진적인 신민이었다는 러시아조차도 민주주의의 자질을 보이지 않았나?”
“지금처럼 황제 폐하와, 폐하께서 임명하신 정부가 운영해도 충분히 나라는 잘 돌아가!”
“누가 아니랬나? 세계의 대세를 따라 진정한 군민공치를 이룰 때가 됐다는 거지!”
장병들 사이에서 옥신각신 논쟁이 일었다.
옛 전제군주제에서 벗어나, 현재의 프로이센식 입헌군주제도 굉장히 진보적인 체제라고 받아들이는 한국인들이 다수였다.
예로부터 통치라는 건 ‘나라님’과 ‘나리’들께서 알아서 하시는 거였다. 지금은 ‘폐하’와 ‘각하’들께서 좀 더 세련된 정치를 하고 있었다.
대한제국이 세계와 교류하고, 유럽의 전쟁에 참여하게 되면서, 일부 한국인들은 자연스럽게 세계 사정에 눈을 뜨게 되었다. 민족주의와 민주주의는 세계적 대세가 되어가고 있었다.
러시아는 혁명으로 황제를 몰아내고, 민주주의를 쟁취했다. 그리고 선거로 민주적 의지를 표명했다.
한국군 장병들은 여전히 ‘대황제 폐하의 충성스러운 신민이자 병사들’이었지만, 자연히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짐은 제헌의회 선거에서 나타난 러시아 국민의 뜻을 존중하여, 제위에서 물러나겠다. 나 미하일 알렉산드로비치 로마노프는, 퇴위한 후에도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러시아와 제헌의회에 충성을 바칠 것을 맹세하며, 국가를 위하여 봉사하겠다. 러시아의 앞날에 신의 은총이 가득하길 기원한다.」
제헌의회 선거로 재신임 여부를 물어 제정을 연장시키고자 했던 미하일 2세는, 제헌의회 선거 결과가 알려지자 퇴위 조서를 발표했다.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선거에서 압승한 이상, 제정 폐지는 시간 문제였다.
제정과 우익의 지배를 연장하려고 했던 쿠데타가 실패한 시점에서, 사실상 제정은 끝장이었다. 결과적으로 우익 왕당파들이 스스로 목을 조른 셈이었다.
“조상님들을 뵐 낯이 없지만, 이로써 연극은 끝났네. 모두 수고 많았어.”
“황제 폐하!”
“흐으윽…….”
미하일 2세는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 애초에 제위에 미련이 없기도 했고, 단 7개월에 불과했던 꼭두각시 황제 노릇에서 벗어나니 오히려 개운한 심정이었다.
차르의 퇴위와 제정의 종식을 슬퍼하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했다. 황실의 측근들, 늙은 신민들뿐이었다. ‘어버이 차르’에 대한 신화는 이미 깨져 있었고, 러시아인들은 새로운 시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1917년 12월 26일(율리우스력 13일).
로마노프 왕조는 1613년 초대 차르 미하일(1세)의 즉위로 시작하여, 18대 차르 미하일(2세)의 시대에 종말을 맞이했다.
로마가 로물루스로 시작해서 로물루스(아우구스투스)로 끝나고, 동로마가 콘스탄티누스(1세)로 시작해서 콘스탄티누스(11세)로 끝났듯이, 공교롭게도 제3의 로마를 자처하던 로마노프 시아도 미하일로 시작해 미하일로 끝이 났다.
왕조 수립 304년, 표트르 대제의 러시아제국 건국 196년 만의 일이었다.
로마노프의 쌍두독수리 깃발은 겨울궁전에서 천천히, 그리고 영원히 내려왔다.
* * *
해가 바뀌어, 1918년 1월 15일(율리우스력 1월 2일).
페트로그라드 타우리드 궁전에 제헌의회가 소집되었다.
1825년 데카브리스트 혁명 이래 러시아 인텔리겐치아의 오랜 염원, 수천만 러시아 인민의 의지가 표명된 제헌의회였다.
제헌의회를 지지하는 수많은 군중이 타우리드 궁전 주위를 둘러쌌다.
“제헌의회 의장으로 사회혁명당의 빅토르 체르노프가 선출되었음을 선포합니다.”
제1당인 사회혁명당 중도파의 체르노프가 의장으로 선출되었다. 체르노프는 사회혁명당 대표이자 임시정부의 농림부장관을 역임하며 토지개혁을 준비해왔다.
“부의장에는 마리야 스피리도노바, 이라클리 체테텔리, 레프 카메네프가 선출되었습니다.”
사회혁명당 좌파를 대표해 스피리도노바, 제2당인 사회민주노동당 방어주의파를 대표해 체레텔리, 국제주의파를 대표해 카메네프가 부의장으로 선출되었다.
좌익의 압도적인 우세 속에서, 제헌의회는 신속히 ‘인민의 염원’을 실시했다.
“러시아는 노동에 기초를 두는 민주공화국이다.”
“러시아는 자유로운 민족의 연대에 의한 연방공화국이며, 소수민족의 평등과 자결권을 존중한다.”
정치체제는 민주공화국, 각지에서 쏟아지는 자치의 요구를 받아들여 연방의 형태를 갖게 되었다.
“러시아는 하나이며 분열할 수 없소!”
“그건 차르 시대의 논리일 뿐이오! 모든 민족은 자유롭게 국가를 결성할 권리가 있소!”
우익은 ‘하나이며 분열할 수 없는 러시아’를 내세웠지만, 자결권을 부르짖는 소수민족 정당들과 이에 동조하는 좌익이 압도적으로 우세했다.
“제헌의회는 러시아 민주주의 연방공화국을 선포합니다!”
“공화국 만세!”
1월 17일, 격렬한 논쟁 끝에 표결이 이루어졌고, 의장 체르노프는 ‘러시아 민주주의 연방공화국(Росси́йская Демократическа Федеративная Республика, РДФР)’을 선포했다.
독립을 요구한 폴란드와 핀란드의 독립은 인정되었고, 자치를 요구한 우크라이나·그루지야·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투르키스탄(중앙아시아) 등은 자치정부를 구성해 연방의 일원이 되기로 했다.
“토지개혁은 무상몰수 무상분배의 원칙으로, 지역 농민 공동체와 농민 소비에트를 중심으로 대토지 몰수 및 분배를 진행합니다. 이미 농민 공동체가 점유한 토지는 그대로 소유권을 이양합니다. 소규모 토지를 소유한 부농의 소유권은 인정합니다.”
“무상몰수 무상분배라니, 미쳤나! 그럼 지주의 권리는 대체 어떡하란 말이오?”
“그동안 수 세기에 걸쳐 착취해놓고서, 무슨 대가를 바란단 말인가?”
우익의 격렬한 반대에도, 좌익정당들은 인구의 절대다수인 농민의 염원인 토지개혁 법안의 초안을 마련해 표결을 강행했다.
“이로써 토지개혁 법안이 가결되었음을 선포합니다!”
“만세! 러시아 인민의 염원이 이뤄졌다!”
“이건 다수의 의견을 빙자한 독재요! 이래서야 우리는 있으나 마나 아닌가? 우린 퇴장하겠소!”
입헌민주당과 소수의 우익 블록은 일제히 의석에서 일어나 퇴장했다.
그러자 급진좌익을 대표하는 트로츠키가 일어나 이들을 비웃었다.
“가련하고 불쌍한 자들아, 너희가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가라! 역사의 쓰레기통으로!”
“옳소!”
노동자 농민의 대표들은 환호성을 보냈고, 지주와 자본가의 대표들은 이를 갈았다.
군부와 우익은 숫자에 밀려 침묵에 들어갔으나, 이들의 불만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다.
“표결로 이길 수 없다면, 총칼로 이기면 된다.”
“저 미치광이 사회주의자들이 얼마나 집권하는지 두고 봅시다. 몇 달 못 되어 국가를 거덜 내고, 인민들은 진저리를 내게 될 거요.”
“입으로만 평화를 부르짖는 빨갱이들이 당장 독일군은 어떻게 막을 건가?”
“맞소! 빨갱이가 지배하느니 차라리 카이저가 페트로그라드를 점령하는 게 낫겠군!”
내전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내전의 가능성이 싹텄다.
찬란한 기대와 달리, ‘러시아 민주주의 연방공화국’의 미래는 아직 불투명했다.
* * *
“그래, 결국 이렇게 되었는가.”
러시아에서 전해진 소식에 이선은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 역사처럼 볼셰비키의 ‘10월 사회주의 혁명’은 없었지만, 사회주의 정당이 민주적 선거를 통해 집권했다.
결국 역사의 진보는 민주주의라는 방향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진정으로 축하할 날입니다. 마침내 러시아인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은 날이 왔군요. 살아서 이런 날을 보게 될 줄은.”
한국인들 대부분은 러시아의 소식에 무덤덤하거나 충격적이라는 반응을 보냈지만, 마르가리타는 진정으로 기뻐했다.
러시아를 떠난 지 어언 20년이지만, 옛 폴란드 독립 혁명가였던 그녀는 제정의 몰락과 사회민주주의의 승리에 환호를 보냈다.
“의외로군. 당신은 러시아라면 무조건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그건 오해죠. 내가 싫어하는 건 차르와 러시아 제국주의자들이에요. 러시아인들이 민주주의, 공화주의, 사회주의, 민족자결주의, 국제주의를 지지한다면 환영할 일이죠. 러시아 민주연방공화국을 위하여!”
어느덧 만 49세를 맞이한 마르가리타의 얼굴에는 기품 있는 중년부인의 모습이 보였지만, 가슴에는 여전히 뜨거운 열정이 남아 있는 듯 보였다.
“흠, 하긴. 새 정부를 구성하는 이들은 진작 폴란드의 독립을 승인한 바 있었지. 소비에트는 억압받는 모든 민족의 자결권을 승인하겠다고 했고.”
“그래요, 차르와는 완전히 다르죠.”
“하지만 그게 진정한 독립을 의미하는 건 아니지. 지금 명목상 폴란드는 독립되었지만, 사실상 독일이 지배하는 종속국이 아니오?”
이선이 정곡을 찌르자, 마르가리타도 쓴웃음을 지었다.
“폴란드인들은 독일이 세운 괴뢰 왕국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아요. 이제 폴란드, 아니 유럽의 진정한 적은 러시아 제국주의가 아니라 게르만 제국주의라는 의미죠. 게르만 제국주의를 완전히 분쇄해야만, 유럽은 자유와 민주주의로 재건될 거예요.”
“맞소. 그래서 동부전선을 포기할 수 없는 거지. 민주주의 러시아가 아무리 자결권을 존중해 소수민족들의 독립을 승인한다 한들, 독일 제국주의가 이를 집어삼킨다면 의미가 없소. 독일은 폴란드, 리투아니아, 발트, 우크라이나, 캅카스를 모두 지배하려고 할 거요.”
이선은 독일의 전쟁목표를 알고 있었다. 중동부유럽에 확고한 패권국가로 군림하려는 독일제국의 야심을.
“하지만 러시아인들이 더 이상 싸우길 원치 않다면서요?”
“제국주의 전쟁이라면 그렇지. 하지만 혁명의 방어라면 이야기가 다를 거요. 러시아인들이 아무리 전쟁에 신물이 난다고 해도, 동유럽이 독일의 노예가 되는 걸 원치 않을 테니까.”
“하긴, 그렇군요. 혁명을 성공시킨 인민은 새로운 주인이 나타나는 걸 원치 않죠. 하물며 이민족이라면.”
“바로 그거요.”
분명히 제헌의회 선거결과는 전쟁에 반대하는 러시아인들의 표심을 드러냈다.
뭉뚱그려서 ‘사회혁명당’과 ‘사회민주노동당’ 단일 명부로 합쳐져 있기는 했지만, 사회혁명당 좌파와 사회민주노동당 국제주의파는 즉각적인 강화를 부르짖었다. 이들의 강화 공약을 보고 투표를 던진 러시아인이 많았다.
하지만 동유럽을 지배하려는 독일의 야심을 알게 되는 순간, 러시아도 ‘혁명전쟁’의 필요성을 깨닫게 될 터였다. ‘
아니, 깨닫지 못하면 깨닫게 해 줘야 했다.
그때까지 한국군의 역할은 러시아가 전쟁에서 이탈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미국을 꼬드겨서 동부전선에서 민주주의 성전(聖戰)이 일어나도록 판을 만들어야겠군.’
동부전선의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제국의 전쟁에서 혁명전쟁으로 바뀌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