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572
– 253화에 계속 –
2부 253화 육참골단(肉斬骨斷)
“이 부장은 근위군단을 이끌고 전선 동쪽을, 노 부장은 3군단을 이끌고 전선 서쪽을 맡아 주시오.”
“예, 알겠습니다.”
근위1사단과 근위2사단을 합쳐 ‘근위군단’을 편성해 이동휘 부장이 지휘를 맡고, 본래 3군단 소속의 제5, 7, 9보병사단은 노백린 부장이 지휘를 맡았다.
근위군단 병력은 3만 6천, 3군단 병력은 4만 5천.
“후방에는 예비대를 배치하여 전선의 변화에 대응하겠소.”
사령관 홍범도는 새로 증원된 제6보병사단과, 제1기병사단과 제1해병여단을 예비대로 배치했다. 이들의 역할은 전선에 균열이 발생할 경우 신속히 투입되는 역할이었다.
예비대 병력은 2만 4천. 총 병력 10만 5천이었다.
“크라스노예 셀로, 아 이거 외국어라 길고 발음도 어렵구만. 병사들에게 일일이 숙지시키기도 어렵고. 대체할 단어 없소?”
“붉은 마을이란 뜻이니, 적촌(赤村)이 어떨까요?”
“적촌이라, 어감이 썩 좋지 못하군. 꼭 적(敵)의 본거지처럼 들리는데.”
“붉은 홍(紅)자를 쓰지요. 러시아 황제가 머물렀던 곳이니 촌보다는 도(都)가 좋겠고.”
“홍도(紅都)라, 들으니 꼭 내 이름에서 따온 거 같은데. 뭐, 상관없겠지.”
그리하여 한국군 사이에서는 크라스노예셀로가 홍도로 통했다. 공교롭게도 마치 사령관의 이름에서 따온 것 같았다.
“홍도 앞 전선에 몇 겹의 참호와 방어선을 설치했소. 독일군이 쉽게 돌파하진 못하겠지만, 듣자 하니 그들의 돌격대가 무시무시하더군. 러시아군이 이들로 인해 연전연패하고 있다지.”
독일군 돌격대.
1916-17년 브루실로프가 실시한 충격부대 전술에서 영감을 받고, 독일 제8군 사령관 후티어(Oskar von Hutier) 장군이 제창한 침투전술, 포병 전문가 게오르크 브루흐뮐러(Georg Bruchmüller)가 계획한 일제포격전술이 결합하여 탄생한 후티어 전술.
그 개념은 다음과 같다.
1. 공세를 가할 지점을 선정. 공격 목표는 전(全) 전선의 참호가 아니라 반드시 일점에 집중. 막대한 양의 포탄을 쏟아붓는 ‘허리케인 포격’으로 적군에 혼란을 불러일으킨다.
2. 포병의 이동탄막 지원을 받아 돌격대를 투입시킴. 경보병이 포격이 찢어 놓은 전선의 틈새로 신속히 침투하여 적의 방어 거점을 돌파한다.
3. 이후 중화기(경기관총, 박격포, 화염방사기)로 무장한 보병이 돌격대가 지나친 적 강화진지를 공략하며 돌파구를 더욱 확대한다.
4. 공세의 마지막 단계로 일반 보병이 진격, 적의 핵심 방어선을 공략.
이러한 전술은 1917년 제8군의 리가 공략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냈고, 이후 독일군의 전술로 채택되었다. 카포레토 전투에서 이탈리아군을 대파하고, 트란실바니아에서 루마니아군을 섬멸하고, 플랑드르에서 연합군의 공세를 격퇴한 전술이 되었다.
여기에 독일군이 다년간에 시행착오 끝에 탄생시킨 ‘돌격대’가 등장했다.
돌격대는 각 부대에서 최고의 정예병을 선발, 최초의 기관단총인 MP18과 수류탄을 지급했고, 좋은 무장과 빠른 기동력을 결합해 전선을 휘저었다. 정예보병을 이용한 일종의 전격전이었다.
후티어 전술과 돌격대는 1918년 동부전선의 승리에 혁혁한 기여를 했다. 러시아군은 허리케인 포격과 돌격대 투입만으로 전의를 상실하고 도주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세상에 완벽한 전술이란 없는 법이다.
“물론, 대책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5월, 차르스코예 셀로, 연합군 합동회의.
러시아군, 한국군, 미군, 영국군, 프랑스군, 체코군 대표단이 모여 임박한 독일군의 공세에 대해 의논했다.
특히 후티어 전술과 돌격대에 대한 대응을 놓고 고민하던 차에, 서 있던 러시아군의 젊은 장교가 입을 열었다.
“전선 참호를 종으로 길게 늘어트려 종심방어를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적들이 전선 돌파를 손쉽게 할 수 없도록.”
연합군 장성들이 쳐다보니, 중령 계급은 달고 있었지만 새파랗게 젊은 장교였다. 누군가로부터 어딜 감히 끼어드느냔 말이 나오려던 차에, 미군 참모장 맥아더 대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리가 있군요. 얇은 방어선을 여러 겹으로 깐 종심방어진으로 적의 공격을 둔화시키고 적의 소모를 늘린다.”
“그렇습니다. 후방에 기동 예비대를 두면 역습도 가할 수 있을 겁니다.”
이들의 의견을 검토하던 노백린도 고개를 끄덕였다. 프로이센 전쟁대학 유학파 출신인 노백린은 독일군의 전략전술에 대하여 전문가로 통했다.
“독일군은 거듭된 성공으로 방심하고 있을 겁니다. 그들은 분명히 같은 전술을 시도할 터인데, 종심방어는 지연전을 펼치고, 적의 진격을 막는 데 충분히 효과적인 전술이라고 판단됩니다.”
총사령관 브루실로프도 고개를 끄덕였다.
“1916년 우크라이나 방어전이 생각나는군. 후방에 기동 예비대를 두고, 적의 공격능력이 소모된 시점에서 역습을 가해 반격으로 나설 수도 있겠군.”
브루실로프는 자리에서 일어나 젊은 장교의 어깨를 치며 격려했다.
“미하일 니콜라예비치, 귀관의 나이가 몇 살이랬지?”
“스물다섯입니다, 장군.”
“역시 젊은이의 발상이 좋군. 이 전술은 더욱 심도 있게 논의해 보겠네.”
새로운 종심방어의 개념을 제안한 젊은 장교의 이름은 미하일 니콜라예비치 투하쳅스키(Mikhail N. Tukhachevsky), 혁명 이후 장교단의 부족으로 빠르게 중령까지 진급했으나 나이는 겨우 25세였다. ‘러시아 혁명의 붉은 나폴레옹’으로 비견될 혁신적인 전략가로서 처음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투하쳅스키가 제안한 개념은 브루실로프와 연합군 지휘부가 논의 끝에 완성했다.
“좋아, 이대로 신속히 참호를 판다. 러시아 혁명군사위원회가 노동력이라면 얼마든지 제공해 주겠다는군.”
한국군도 새로운 교리를 빠르게 받아들였다.
전선을 횡으론 얇지만 종으로 깊은 형태로 형성했다. 철조망-참호-기관총-포병-예비대로 이어지는 두터운 방어선이 이어졌다.
여기에 한국군은 역공을 위한 비장의 무기도 준비해둔 터였다.
“적에게 돌격대가 있다면, 우리에겐 기동대가 있다.”
독일군 돌격대가 MP18로 무장하고 있다면, 한국군 기동대는 표도로프 자동소총으로 무장했다.
1916년, 러시아군 포병장교 블라디미르 표도로프(Vladimir G. Fyodorov)는 ‘소총에 가까운 자동화기’를 개발했다. 그에게 영감을 준 프랑스제 쇼사 경기관총보다 월등히 좋은 성능이었다. 자동으로 장전과 발사가 가능했고, 300발 정도는 지속사격이 가능했다.
표도로프가 개발한 소총은 러시아군에 채택되었고, ‘1916년형 표도로프 자동소총’으로 명명되었다.
하지만 본격적인 양산이 들어가기도 전에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으니, 바로 1917년 혁명이었다.
전황이 갈수록 악화되면서, 기존 총기의 생산만으로도 러시아의 산업 능력이 한계에 부딪혔다. 가격도 비싸고 생산에 시간이 걸리는 이 새로운 총의 생산은 러시아 군수산업에 적잖은 부담이 되었다.
당초 2만 5천 정을 주문했던 러시아 군부는 5천 정으로 줄였고, 실제 생산된 양은 그보다 적었다.
이때 한국이 구원자로 등장했다. 표도로프 자동소총의 성능을 확인한 한국군은 생산계약을 제안했고, 탄환도 한국군이 공급하기로 했다. 표도로프는 러시아군에도 공급하는 조건으로 기술이전과 한국 생산을 허용했다.
1917년 하반기부터 표도로프 자동소총은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생산궤도에 들어섰고, 1918년 5월까지 2만 정을 생산해 러시아로 보냈다.
이중 상당수가 한국군 소유로 들어갔고, 무장만 놓고 보면 한국군은 독일군에 손색이 없었다.
* * *
독일군의 공세에 맞서 지연전을 수행한 연합군은 페트로그라드 교외의 종심방어선으로 후퇴했다.
“적이 페트로그라드 교외에 방어선을 형성했다고 하는데, 최후의 발악에 불과하오.”
“미군, 영국군, 체코군, 한국군, 러시아군으로 구성된 잡동사니 군대라. 서로 간에 의사소통이나 제대로 되겠나?”
“주 전력을 한곳에 집중해서 돌파하도록 합시다. 어디가 좋겠소?”
확보한 정보를 토대로 연합군의 배치상황을 살피던 북부군 사령부는 결론을 내렸다.
“한국군 전선을 돌파하지요. 이들 병력은 개중에 제법 많지만, 적군 중에서도 최약체입니다. 애초에 한국이란 나라가 대전쟁에 참여한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지요. 아무리 영국과 러시아의 하수인이라지만.”
“동양인들이 유럽의 대전쟁에 끼어드는 게 가소롭긴 했지. 카이저께서도 굉장히 불쾌해하셨는데, 이번 기회에 박살을 내줘야겠군.”
“그동안은 요리조리 잘 빠져나가서 전력을 보존한 모양인데, 이번에도 일제 공격만 감행하면 혼비백산할 겁니다.”
독일군은 패퇴를 거듭하는 러시아군, 오합지졸이라 무시하는 미군, 정규군도 아니라고 취급하는 체코군보다 한국군을 더 경멸했다. 국력에 대한 무시에 인종적 편견까지 더해졌다.
“신속히 한국군 전선을 돌파하여, 크라스노예 셀로를 점령하고 페트로그라드로 가는 길을 연다! ”
“Jawohl!”
독일군은 승리를 자신했다. 마침내 페트로그라드 함락이 머지않았다고 판단했다.
“전쟁의 시작과 끝은 모두 내 머리에서 나온다. 이번만은 힌덴부르크와 루덴도르프가 공을 훔치지 못하게 해야지.”
북부군의 실질적인 지휘관, 참모장 호프만 소장은 개전 초기 러시아군을 섬멸한 마주리안 전투의 공로자였다. 주된 작전 계획은 대부분 참모인 그의 머리에서 나왔다.
하지만 승리의 영광은 새로 부임한 사령관 힌덴부르크와 참모장 루덴도르프가 누렸다. 독일의 전시 프로파간다는 노장 힌덴부르크와 지략가 루덴도르프를 내세웠고, 일개 참모였던 호프만의 존재는 지워져 버렸다.
호프만으로선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었다. 능력을 인정받아 장군으로 진급하긴 했으나, 전공을 도둑맞은 기분을 4년 내내 지울 수 없었다.
“노랑 원숭이들과 빨갱이들을 때려잡고 6월 말까지 페트로그라드에 정복자로서 입성한다. 역사는 나를 동부전선의 승리자로 기록하리라.”
호프만은 승리를 자신했다.
13년 전 러일전쟁 관전무관으로 한국을 방문한 바 있었던 호프만은, 한국군의 전력을 형편없이 보았다. 머나먼 동양 국가의 약소한 군대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나라가 독일제국에 맞서려 하다니, 가소롭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1918년 6월 15일. 독일 북부군의 총공세가 개시되었다.
발트해에 접한 오라니엔바움, 철도 요충지인 가치나에 독일군의 공세가 집중되리라는 연합군의 예상과 달리, 이쪽 전선의 공세는 조공이었다.
독일군의 주공은 크라스노예 셀로의 한국군을 향했다.
콰앙! 콰앙!
천지를 찢는 굉음과 함께 포탄이 한국군 참호를 향해 뒤흔들었다.
“제기랄, 전쟁 막판이 되도 저놈들 힘은 꺾이지 않는군.”
“포격이 끝나면 적의 돌격대가 진입할 거다! 대비하라!”
한국군이 독일군의 주공을 상대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산동 전역과 우크라이나 전역에서 싸운 경험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건 비교대상이 못됐다.
독일군은 어떻게든 신속히 페트로그라드를 함락시켜 동부전선을 종결시키겠다는 일념이었고, 맹렬한 기세로 달려들었다.
“Heil Kaiser!”
“Gott mit uns!”
타다다다다다당!
독일군 돌격대가 한국군 참호를 향해 돌진했다. 기관총탄이 쏟아지는데도, 전투라면 이골이 난 돌격대는 한국군의 전선을 뚫고 침투해 나갔다.
이어서 중무장한 독일군이 계속 밀려들었다. 박격포의 포성과 함께 화염방사기의 불꽃이 튀었다.
“퇴각! 퇴각하라!”
한국군 전방부대는 견디지 못하겠다는 듯, 일선의 참호를 포기하고 퇴각했다.
독일군은 한국군 일선을 손쉽게 접수했다.
“좋아, 역시 한국군은 형편없군. 이대로라면 페트로그라드로 가는 길이 쉽게 열리겠어.”
독일군은 거듭 공세를 감행했다.
그런데 방어선 하나를 뚫으면 또 다른 방어선이 나타났고, 전선에 균열이 발생했다고 생각하면 예비대가 신속히 그 자리를 메꿨다. 한국군 후방의 포대는 독일군을 향해 격렬하게 포화를 쏟아 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조화야? 한국군이 그렇게 많나? 10만 남짓이라고 하지 않았나?”
“추가 파병을 한 게 아닐까요? 동양인이니까 일본군일수도…….”
“말이 되나? 그런 정보는 없었어!”
전투 중에는 독일군 지휘부가 생각지도 못했던 추태도 있었다.
“이봐, 여길 보라고! 먹을 게 이렇게 많은데!”
“원숭이 놈들. 전쟁에서 싸울 생각은 안 하고, 후방에서 잘 처먹고나 있었군.”
“오, 이건 꽤나 먹을 만한데.”
“이봐, 여기 술도 있어!”
1918년 독일군은 기아상태였다. 그야말로 순무로 버티고 있는 상황이었다. 우크라이나에 진주한 남부군은 그나마 상황이 나았지만, 북부군이 진격하는 경로에는 러시아군이 밀 한 이삭 남겨 놓지 않고 퇴각했다.
식량 상황이 나쁜 건 러시아도 마찬가지라지만, 아르한겔스크를 통해 미국이 식량을 보급하면서 최소한 페트로그라드 주위의 보급은 원활했다.
굶주린 독일군은 ‘동양인 따위’도 자신들보다 잘 먹는다는 사실에 분개했다. 식량은 보이는 족족 먹어 치우려 들었고, 그렇게 방심하다가 한국군의 반격에 밀려나는 경우가 허다하게 발생했다.
“이런 어리석은 놈들! 전선만 돌파하면 식량은 얼마든지 얻을 수 있다! 페트로그라드, 아르한겔스크, 무르만스크에는 미국이 보낸 식량이 산처럼 쌓여 있다고 한다! 이겨서 노획하면 된다!”
천하의 독일제국군이 식량을 얻자고 싸우는 꼴이 참으로 한심스러운 일이었지만, 그게 바로 동부전선 공세의 핵심이었다.
하지만 독일군에는 야속하게도 한국군의 방어선은 계속 나타나고 있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추태냐! 왜 저런 3류 동양 군대의 전선조차 뚫지 못하는 거야! 어떻게든 뚫고 나가란 말이다!”
독일군은 귀신에 홀린 기분이었다. 마치 밀푀유 케이크처럼, 방어선이 계속 이어졌다. 방어선 하나가 무너지면 다른 방어선이 채워졌다.
“25일에 총공세를 한다. 반드시 이틀 안에 전선을 뚫어라!”
호프만은 공세 날짜를 못 박았다. 더 이상 시간을 끌 여유가 없었다.
“아슬아슬하게 버텨 나가고 있군.”
“조금만 삐끗하다가는 무너질 겁니다.”
한국군은 그야말로 분투하는 중이었다. 독일군의 맹렬한 공세를 철벽같은 방어로 버티고 있었다.
참호전이라는 건 본질적으로 방어 측에 압도적으로 유리하고, 이를 타개하기 위해 나온 게 전차나 돌격대다.
분명 돌격대의 성과는 탁월했지만, 인간이라는 한계는 어쩔 수 없었다. 돌격대는 서서히 소모되었고, 독일군의 물자도 한없이 소모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종심방어전에 몰두하고 있는 한국군은 희생을 내며 참호를 거듭 내주면서도, 독일군을 서서히 소모시켰다.
“예전에 팔켄하인이 육군대학에서 그랬지. 적의 피를 말려서 쓰러트리는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고.”
“황제 폐하께서도 그러셨지요. 우리가 죽더라도, 적도 과다출혈로 죽을 각오를 해야 한다고.”
그런 의미에서, 한국군 장교단은 총력전을 부르짖던 팔켄하인의 수제자라고 할 수 있었다.
기실 따지고 보면 그동안 독일군의 피를 말렸던 건 연합군이지만, 한국은 거기에 최후의 일격을 가하려고 했다.
“조금만 더 버텨 보세. 분명히 적 공세에 한계가 오는 순간이 올 거야. 그때 반격한다.”
“예!”
독일군 총공세 10일 차, 한국군은 철통같은 방어로 전선을 지켜 나갔다.
전선 사수에 집중하고 있던 한국군은, 반격의 때를 가늠했다.
육참골단(肉斬骨斷), 자신의 살이 베이더라도 적의 뼈를 자르기 위한 대반격의 순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