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578
– 259화에 계속 –
2부 259화 군주의 운명
광무 22년(1918) 11월 15일. 원수부 연무장.
“친애하는 대한국군 장병 제군! 짐은 그대들의 대원수로서 경의를 표한다. 국군은 자주독립과 동양평화를 넘어 세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투쟁하였고, 마침내 독일 군국주의자들을 격파하여 연합국의 승전에 기여하였다. 세계 각국이 대한국군을 향하여 칭송을 보내고 있다. 짐은 그대들이 자랑스럽다!”
이선은 러시아에 파병한 근위사단을 대신해 수도 방위를 맡고 있는 1사단 장병들 앞에서 승전 축하 연설을 했다.
아직 러시아에 잔류 중인 파병군 장병들, ‘홍도의 승리자들’에게는 찬사가 쏟아지고 있었다.
“제군! 머나먼 러시아에서 스러져간 전우들의 희생을 잊지 말자. 그들의 고귀한 희생이 있었기에, 우리는 승리의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전사자들은 호국영령이 되어 영원히 대한과 함께할 것이다. 대한은 그들을 영원히 잊지 않으리라!”
이선이 대원수의 군모를 벗어 전몰장병에게 엄숙히 경의를 표하자, 장병들도 즉시 고개를 숙였다.
“대전쟁이 끝났다고 하여 대한국군의 역할이 사라지지 않는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질서가 도래하니만큼 더욱 중요한 역할이 부여될 것이다. 본연의 임무인 국토방위와 동양평화를 위하여, 세계의 자유와 신질서를 위한 국군의 사명은 계속되리라. 충용무쌍한 대한국군에 영광 있으라!”
황제의 연설이 끝나자마자, 일제히 만세가 쏟아졌다.
“대한국 만세! 대황제 폐하 만세!”
“대한국 만세! 대원수 폐하 만세!”
이선의 연설은 활자로 인쇄되어 전국에 퍼졌다.
동시에 황제의 명의로 국민의 노력에 경의를 표하는 승전 선포문도 반포하였다.
“아아, 우리 대한도 자랑스러운 승전국의 일원이로군.”
“천하 제일가는 군사강국이라던 독일이 무너진 것도 놀라운데, 대한이 승리에 기여했다니 너무나 자랑스럽네.”
“황제 폐하께서 반포하신 바와 같이, 국군의 영웅적인 투쟁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 아니겠나?”
“암, 홍범도 장군부터 일개 병사에 이르기까지 파병군은 진정 영웅이지.”
승전에 대한 공로로, 사령관 홍범도 이하 파병군 장병들은 1계급 특진을 부여받았다.
공훈을 세운 이들이 이미 진급되었음을 감안하면, 올 한해에 2계급 특진을 이룬 이도 있었다. 대표적으로 불과 서른에 부령으로 진급한 기동대 지휘관 김좌진이 있었다.
“대한국 육군 대장 홍범도에 대훈위 이화대수장을 수훈한다.”
홍범도는 대한제국군 창설 이래 다섯 번째로 대장의 지위에 올랐다.
최초로 대장 계급을 받은 윤웅렬, 한규설, 한성근은 군부의 원훈으로 예우받아 일종의 명예직으로 받았다면, 제복군인으로서는 초대 참모총장 박유굉에 이어 홍범도가 실질적인 두 번째 대장이었다.
‘평안도 상한’ 출신 홍범도로서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영광이었다. 홍범도가 이룩한 전공과 영광은 수많은 청년에게 자극이 되었으니, 바로 근대가 만들어 낸 영웅담이었다.
11월 17일, 대전쟁 종전 1주일 후.
경운궁에서 대한제국과 연합국의 승전을 기념하는 축연이 열렸다.
내각 각료, 원훈, 칙임관급 고위관료, 군부 장성, 중추원과 민의원의 정당 대표, 각국 대사들이 초청을 받았다.
“대전쟁에서 희생된 모든 연합국 장병들에게 애도와 경의를 표합니다. 세계의 평화와 자유를 위한 그들의 고귀한 희생은 영원히 잊히지 않을 것입니다.”
축연은 기쁘면서도 차분한 분위기였다.
승전 이후 거대한 국민적 기쁨을 누린 영국, 프랑스, 러시아, 이탈리아 등과 달리 한국에서는 머나먼 대륙에서 벌어진 전쟁이었기에 느낌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예컨대 러시아는 200만의 전사자를 냈고, 프랑스는 120만, 영국은 100만, 이탈리아도 60만의 청년들이 전사했다.
동부전선에서는 광대한 영역에서 기동전이 벌어진만큼 전사자보다는 포로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으나, 4년간 끝없는 참호전이 반복된 서부전선에서는 병력 대비 전상자 비율이 높았다.
특히 프랑스 같은 경우엔 총인구 4천만 중에 청년층만 120만이 희생됐으니, 인구학적 손실이 보통 큰 게 아니었다.
이에 비교하여 전쟁 후반부에 참전한 미국의 전사자는 10만 이하, 한국의 전사자는 1만 이하, 일본의 전사자는 1천 이하였다.
동시에 전시 호황을 가장 많이 누린 나라도 이 3국이었으니, 그야말로 최대의 수혜자였다.
“연합국 일원은 대한제국에 경의를 표합니다. 황제 폐하의 군대는 동부전선을 지탱할 수 있도록 놀라운 분투를 했습니다.”
“실로 그렇습니다. 대한제국 만세!”
주한대사들은 대한제국에 경의를 표했다. 다분히 외교적 수사일 수도 있겠으나, 대한제국군이 병력 숫자는 적어도 동부전선의 결정적인 전환점 역할을 한 건 명백한 사실이었다.
이 점에서, ‘피는 흘리지 않고 과실만 누린’ 일본과 한국을 바라보는 시선은 분명히 달랐다.
「우리는 지금껏 일본 또는 한국을 서양 문명의 충실한 수제자로만 생각해 왔다. 저들은 빠르게 서양 문명을 받아들였고, 한 세대 만에 급진적인 변화를 이끌어 냈다. 우리는 그들을 기특하게 여겼고, 서양 열강의 테이블에 앉을 권리를 줬다.
하지만 이제 그렇게만 볼 일이 아니다. 전통적인 강자 러시아의 패권은 약화됐다. 중화제국은 사라졌다. 동양에서 한국의 위상은 더할 나위 없이 확고해졌다. 독일을 격파하는 데 일익도 담당했으니, 이들이 이제 우리를 향해 무엇을 요구하겠는가?
전쟁이 끝나면, 활력이 넘치는 새로운 강자에게 청구서가 날아 들어올 터이다.」
종전 이후 모든 언론의 관심사가 유럽으로 향할 때, 한국의 역할을 주목한 기자도 있었다.
이는 상당히 정확한 지적이라 할 수 있었다. 대청제국과 러시아제국이 붕괴한 유라시아 동부 힘의 진공 속에서, 새로운 강국으로 등장한 대한제국은 열강을 향해 청구서를 내밀 준비가 되어 있었다.
* * *
시간을 잠시 앞으로 돌려서, 1918년 10월.
전쟁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선이 내민 첫 번째 청구서의 대상은 러시아였다.
만약 페트로그라드가 함락되었더라면, 취약한 신생 러시아 민주연방공화국의 운명조차 알 수 없었다. 러시아가 승전국 대열에 합류할 수 있었던 데에는 한국의 역할이 결코 적지 않았다.
러시아는 북만주와 몽골의 세력권을 포기하기로 약속했다. ‘차르 정권의 제국주의적 야욕’을 비난하며 ‘민족자결’을 약속한 사회민주주의자들에게는 명분상 어렵지 않은 선택이었다.
북만주와 몽골은 명목상 ‘자주독립국 대청국’의 세력권으로 복구되었으나, 그 청국을 외교적으로 조종하는 게 어느 나라인지는 뻔한 사실이었다.
이선은 또 다른 청구서도 내밀었다. 바로 퇴위한 차르 니콜라이 2세 일가의 망명이었다.
「니콜라이 로마노프의 망명은 허용할 수 없다. 차르는 재위기 자행된 국가적 범죄에 대한 재판을 받아야 한다. 전시 섭정으로서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할 알렉산드라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 자녀들은 책임이 없으므로, 이들의 망명은 허용할 수 있다.」
러시아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은 차르 부부 망명 불가, 자녀들은 허용이었다.
하지만 한국의 요구에 대한 비공식적인 답변은 달랐다.
차르의 재판을 거세게 요구하는 소비에트 대의원들과 달리, 정부 당국자들은 처분을 놓고 고민했다.
명분상으로는 재판이 옳았다. 프랑스 혁명이 루이 16세를 재판정에 세웠듯이, 러시아 혁명도 니콜라이 2세를 재판정에 세워야 했다.
루이 16세의 처형을 강력히 요구했던 자코뱅 혁명가 생쥐스트(Saint Just)의 말을 인용하자면.
「군주는 통치하든가 죽어야 한다. 군주는 누구도 무죄로 군림할 수 없다. 군주가 무죄가 되면 혁명이 유죄가 된다.」
혁명으로 폐위된 군주의 운명에 대하여, 똑같은 논리가 니콜라이 로마노프에게 적용될 수 있었다.
영국 혁명이 찰스 1세의 목을 잘랐고, 프랑스 혁명이 루이 16세의 목을 잘랐듯이, 러시아 혁명은 니콜라이 2세의 목을 원했다.
하지만 때는 20세기였고, 퇴위한 군주의 공개재판과 처형은 부담스러운 정치적 처리였다.
니콜라이 로마노프는 이제 일개 시민이었다. 비록 군주로서는 무능하고 무책임할지언정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는 좋은 사람이었다.
재판에 세웠다가 러시아 국내뿐만 아니라 대외적으로도 동정표를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가장 바람직한 건 니콜라이 로마노프가 조용히 죽어 주는 건데, 이제 50세에 불과하니 그럴 수도 없겠군.”
“그럼 암살도 하나의 방법이지. 차르라면 자다가도 이를 갈고, 테러라면 이골이 난 사회혁명당 좌파를 적당히 자극하면…….”
“말도 안 되는 소리. 인민의 여망을 대리하여 재판정에 세워 심판을 받으면 모를까, 그런 짓은 혁명의 대의를 스스로 더럽히는 짓이오.”
“공화국이 한국의 신세를 진 건 사실이니, 한국의 요청대로 니콜라이 로마노프를 보내 줍시다.”
“그랬다가 차르가 다시 정치적 재기를 노린다면? 곤란하기 짝이 없는 일이오.”
“지금 니콜라이에게 그럴 능력이 어딨소? 인민 중에 그를 그리워하는 이가 얼마나 있소? 제헌의회 선거결과에서 나타났듯이, 왕당파에 대한 지지는 바닥을 깁니다. 우익도 왕정복고는 포기했소. 이제 니콜라이 로마노프는 역사의 쓰레기통으로 사라진 퇴물에 불과합니다.”
가장 강경히 차르 처벌을 외치는 사회혁명당 좌파뿐만 아니라, ‘혁명전쟁’의 승리자로서 인기가 급상승 중인 트로츠키도 거듭 재판을 요구했다.
하지만 사회혁명당 우파, 사회민주노동당 국제주의파를 대표하는 블라디미르 울리야노프는 차르의 도주를 허용하자는 입장이었다.
개인적으로 보면 니콜라이는 블라디미르의 형 알렉산드르를 처형한 차르 알렉산드르 3세의 아들이었다. 개인적인 원한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으나, 그는 보다 대국적인 견지에서 바라봤다.
‘쿠데타 실패와 제헌의회 선거 참패 이후 의기소침한 우익을 결집시킬 수도 있어.’
차르는 이미 정치생명이 끝장났으나, 구체제의 표상이라는 상징성까지 사라진 건 아니었다.
구체제의 상징인 차르를 단죄하면 좌익과 공화국 지지파는 더 결속되겠지만, 동정론을 불러일으켜 왕당파와 우익을 결집하는 정치적 분란을 만들 소지가 있었다.
러시아는 내전 중도 아니었으므로, 혁명세력도 굳이 차르를 시급히 처형해야 할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인민위원협의회가 갑론을박 중에 내린 결론이 한국에 전달되었다.
「러시아공화국 정부는 망명을 허용하진 않지만, 차르가 해외로 도주하는 건 막지 않겠다.」
이선은 러시아공화국 당국자들의 정치적 딜레마를 파악하고 있었기에, 이런 답변이 오리라 예상했다.
‘국익을 생각하면, 반드시 니콜라이 일가의 망명이 필요한 건 아니다. 하지만 니콜라이에게는 개인적인 빚이 있지. 그를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다.’
통치자의 관점에서 보자면 니콜라이가 지금 겪고 있는 일은 자업자득이었고, 굳이 그를 데려와서 얻는 이익도 없었다.
하지만 어쩌니저쩌니해도, 이선이 37년 전 처음 러시아로 향한 이래, 니콜라이는 오랜 벗이었다.
서로 도움과 은혜를 베푼 것을 떠나, 인간적으로 비참하게 죽도록 내버려 둘 수가 없었다.
“좋아. 그러면 니콜라이 일가를 망명시킬 구조대를 준비해 볼까.”
이선은 정부가 아닌 제국익문사를 통해 망명시킬 생각이었다.
러시아가 공식적으로 망명을 허용한 게 아닌 만큼, 대한제국 정부가 연루되면 곤란했다. 어디까지나 이선과 대한제국 황실의 ‘개인적인’ 행동이었다.
공식적으로는 내무독판에서 물러나 야인 신분인 제국익문사 독리 이회영이 구출 책임자로 선정됐다.
이어 제국익문사의 러시아 요원들이 선발되었는데, 황실을 대표해서는 뜻밖의 인물이 선정되었다.
“안아, 너도 이제 성년이 되었으니 황실을 위해 행동할 때가 왔다.”
“예, 아바마마. 하명하시옵소서.”
정친왕 이안의 나이 어느덧 열일곱. 조선왕실의 예법으로는 이미 관례(冠禮)를 치른 나이였다.
백인혼혈인 이안은 유독 키가 크고 외모도 조숙해 보여서, 이미 성인처럼 보였다.
“러시아 차르 일가를 망명시킬 계획이다. 비공식적인 임무고, 정부와 무관하게 황실이 하는 일이다. 황실 대표로 네가 가 줘야겠다. 황태자가 이런 일까진 할 수는 없고, 의친왕이나 영친왕은 러시아에서 얼굴이 너무 잘 알려져 있으니까 곤란하다. 네 외모는 러시아에 알려지지 않았고, 또 러시아인처럼 보이니.”
이선은 차분히 아들에게 망명 계획을 설명했다. 이안은 언제든 부황의 명을 수행할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내심 약간 당혹스러웠다.
‘어머니께서 차르를 얼마나 싫어하는지 잘 아실 터인데…….’
이안의 정체성은 태어나고 자란 한국 황실에 있었지만, 동시에 모친인 마르가리타를 각별하게 여겼다.
독립운동가 출신인 어머니의 영향을 받은 이안은 폴란드에 애착을 느끼는 만큼 차르에 반감을 느꼈다. 러시아 혁명 소식에 그 자신도 내심 기쁘게 생각한 터였다.
‘그런데도 내게 맡기신다는 건…….’
부황의 말처럼 효율성을 따져서일 수도 있었고, 차남이 성년이 되어 임무를 받고도 개인적인 감정에 휘둘리는지 시험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전자라면 마땅히 따라야 했고, 만약 후자라면 더더욱 따라야 했다.
이안은 나이를 먹어 가면서, 황실 내부에서 자신의 애매한 위치를 인지했다.
‘숙부님처럼 존재만으로 견제대상이 되는건가. 난 서자니 제위를 계승할 가능성도 없는데. 혼혈이라는 이유만으로 거부감을 느끼는 거겠지.’
부황은 여전히 자신을 아끼고 사랑했지만, 종친과 정부 고관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그리 곱지 않다는 걸 인지했다.
이복형, 황태자 이진도 어려운 존재였다. 자신을 우애로서 대했지만, 과연 그게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럴수록 이안이 매달려야 할 곳은 부황뿐이었다.
‘그래도 이제 보호를 갈구하며 어리광을 부릴 나이는 지났다는 것이겠지.’
이안은 황제의 아들로서 자신에게 책무가 주어졌음을 깨달았다.
“신(臣) 안, 마땅히 지엄한 어명을 따르겠나이다.”
“그래. 극비를 요하는 일이니 누구에게도 알리지 마라. 물론 네 어머니에게도 비밀이다. 네가 성년이 되어 맡은 첫 임무니, 잘 해내길 바란다. 어려운 일은 이회영 영감이 다 잘 처리할 터이니 그에게 맡기도록 하고, 네게 특별히 해 주고 싶은 말은…….”
이선은 이안에게 특별한 지시사항을 전달했다.
뜻밖의 말에 이안은 더욱 놀랐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예, 하명하신 대로 하겠습니다.”
얼마 후, 이안은 이회영이 이끄는 제국익문사 요원들과 함께 러시아 국경을 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