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58
– 58화에 계속 –
58화 역적(逆賊)
“폐서인이라?”
대원군이 처음으로 흥미를 보였다.
“그렇습니다. 무턱대고 죽었다고 하면 누가 받아들이겠습니까? 중전의 죄상을 모두 공개해서 공론이 등을 돌리게 해야지요.”
“일리가 있다. 하지만 폐비 절차는 쉬운 일이 아니다. 이 또한 반발이 적지는 않으리라.”
“옷으로 시신을 대신해 장례 치르는 것보단 반발이 적을 겁니다. 더욱이 민씨의 죄상을 만천하에 공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중전뿐만 아니라 외척 전체를 날려 버려야 합니다. 이는 할아버님의 집정에 정당성을 부여해 줄 겁니다.”
가뜩이나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정권을 잡았는데, 살아 있는 왕비를 죽었다고 공식화하고 무작정 장례를 강행한 대원군의 조치는 확실히 무리수였다.
옷으로 시신을 대신해 장례를 치르는 행위는, 유교적 명분론이 지배하는 조선에서 용인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는 결국 조선의 관료와 사대부 대부분이 보혁을 막론하고 대원군에게 등을 돌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대원군은 신료와 사대부들의 적극적인 저항에 부딪혀, 무의미한 국장 절차에 집권 기간 33일의 정력을 다 소모했다고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니 대내외적 위기에 제대로 대처할 수도 없었다.
“시아버지가 며느리를 탄핵하는 모양새가 좋지 못하다면, 직접 나서실 것도 없습니다. 할아버님을 따르는 사대부들이 많이 있지 않습니까? 소론과 남인들은 할아버님을 지지하고, 민씨 척족이라면 이를 갑니다. 이들에게 맡기십시오.”
대원군은 손자의 말이 옳다고 생각이 들면서도, 순간 놀라움을 느꼈다.
이선의 뛰어난 정치적 감각은, 노회한 권력자인 대원군조차 놀라게 할 정도였다.
‘왕재는 왕재구나. 내 자손 중에 내 뜻을 이을 아이가 드디어 등장했군. 어쩌면 조선과 왕실의 명운이 이 아이에게 달렸을지도 모르겠다.’
“좋다. 추진해 보자.”
다음 날.
여전히 왕비의 장례를 철회해 달라는 신료들의 상소가 빗발쳤다.
“곤전(坤殿)의 옥체를 찾지 못한 일도 망극한 일이온데, 어찌 옷으로 국장을 치르려 하시옵니까?”
“세간에서도 이런 일은 없사옵니다. 일국의 국모를 어찌 여염집의 아녀자만도 못한 대우를 하시렵니까?”
“이는 차마 받아들일 수 없는 하교이옵니다. 하교를 거두어 주시옵소서!”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대원군이 마침내 그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성상께서는 경들의 충정을 깊이 가납(嘉納)한다 하시었소. 국장 절차를 취소할 것이오.”
“오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임금, 아니 대원군이 마침내 비정상적인 방법을 철회한다는 말에 신료들은 환영의 뜻을 보냈다.
“중전께서는 난을 피해 살아 계실지도 모르니, 사람을 풀어 속히 찾아보도록 하겠소.”
“지당하신 말씀이옵니다!”
순간 대원군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가 날린 화살은, 이미 과녁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전하! 신등(臣等)은 연명으로 엎드려 아뢰옵니다. 중전 민씨의 악행이 하늘을 찌르오니, 이는 청사에 유례가 없는 일이옵니다. 그 죄악은 이루 말로 할 수 없사오니, 신등은 신하 된 자로서 죽음을 각오하고 감히 열거하지 않을 수가 없사옵니다!”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돈화문 앞에 거적을 깐 한 무리의 유생들이 탄핵을 시작했다.
“민씨는 척족들과 파당을 조성해, 벼슬을 팔아 탐욕과 포악이 온 나라에 펼치게 하였습니다. 그 썩은 내가 온 나라를 진동하고 있나이다!”
“민씨는 세자의 무병장수를 기원한답시고, 무당과 점술사들을 끌어들여 치성을 올려 막대한 국고를 축내는 해괴한 짓거리도 서슴지 않고 저질렀습니다!”
“민씨 일파는 나라의 곳간을 도적질해 백성은 평안할 틈이 없었습니다. 난을 일으킨 병사와 백성들은 본래 유순한 백성이었거늘, 어찌 감히 무기를 들었겠습니까? 적신(賊臣) 민겸호와 그 일당의 참담한 행위로 인해 분연히 일어선 것입니다!”
“왜인과 통교를 하면서도, 어리석은 조약을 맺어 나라의 부가 모두 왜국으로 향하는 데도 민씨 일파는 사치와 방종에 여념이 없었사옵니다. 이는 망국의 징조였습니다!”
“성상과 세자께서 모두 궁에 계시는데, 중전은 일국의 국모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를 지키지 않고, 정체를 감추어 홀로 도피하였사옵니다. 이는 성상에 대한 불충이요, 세자에 대한 불의입니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다 잘 아는 공적인 비판이고, 유생들은 새로운 증거도 제시했다.
“또한 민씨는 일국의 국모로서 그 본분을 다하지 못하고, 후궁과 그 자녀를 투기하고 박해했나이다. 영보당 이씨와 궁인 장씨는 성상의 왕자를 생산했음에도, 내명부의 첩지조차 받지 못하고 궁에서 쫓겨나야 했습니다. 일국의 국모가 되어 어찌 투기가 이토록 강할 수 있단 말입니까?”
“민씨는 투기에만 그치지 않을 뿐 아니라, 성상의 장자인 완화군 이선을 모해(謀害)하여 두창을 옮겨 죽이려 하였습니다. 이선을 대신하여 노복이 죽지 않았더라면, 성상의 장자는 죽음을 면치 못했을 것입니다!”
“이 얼마나 참담한 행위입니까! 후궁의 자식도 엄연히 중전의 자식이거늘, 어찌하여 민씨는 하늘이 내린 모자의 인연을 끊고 이런 사특한 짓을 벌일 수 있단 말입니까?”
“완화군 이선이 마침내 조선으로 돌아오니, 역적 민겸호와 그 일당은 또다시 모략을 부렸나이다. 어명을 거역하고 병사들을 사사로이 고문하여, 국태공과 완화군을 역모의 수괴로 몰려고 했습니다!”
비록 서자라 할지라도, 왕의 아들을 죽이려 했다는 건 엄청난 혐의였다.
“신등은 통탄하옵니다. 아! 대체 저 민겸호의 무리는 누구를 믿고 이런 간악한 짓을 벌일 수 있단 말입니까?”
“성종 대왕 때의 폐비 윤씨와 숙종 대왕 때의 폐비 장씨가 사특하였다 하나, 나라에 끼친 해가 민씨만 하겠사옵니까? 한나라의 여후(呂后)도, 당나라의 무측천(武則天)도 감히 이러지는 못했습니다!”
“민적(閔敵)의 죄악은 하늘을 찌르고, 백성의 고통과 원망은 땅을 뒤덮습니다. 민적이 성상의 밝은 치세를 더럽히니, 신등은 이를 더 이상 묵과할 수가 없었나이다!”
유교적 명분론과 실체적 증거를 들어 민씨를 탄핵하던 유생들은, 마침내 본론을 꺼냈다.
“전하의 성단에 종묘사직의 운명이 달렸나이다. 전하께옵서는 성종 대왕과 숙종 대왕의 성단을 받들어, 중전을 폐출하소서!”
“중전을 폐하시고 도적 민씨의 잔당을 토벌하시어, 나라의 기강을 바로 하소서!”
“중전을 폐하시고 토적(討賊)을 하소서!”
본래 대원군은 막후정치에 능한 인물이었다. 대원군은 자신을 지지하는 소론과 남인계 유생들을 동원해 폐비 여론을 조성했다.
민씨에 대한 탄핵은 그 어느 때보다 날카로웠다. 유교적 명분론과 실제 증거의 논리가 탄탄해서, 폐비 반대 여론을 입 밖으로 내기 어려웠다.
여론은 거의 궐석재판 분위기였다.
“세상에, 중전이 그런 짓까지 저질렀을 줄이야.”
“그럼 그동안 민씨들이 저지른 모든 악행의 배후에 중전이 있다는 건가?”
“완화군도 죽이려 했다잖아. 국고만 도적질한 게 아니었군.”
“짐승도 어린 자식은 예뻐하는 법인데, 지아비의 자식을 죽이려 하다니. 왕실에서 그래도 되나?”
“당연히 안 되지! 그러니 중전을 폐한다는 거 아닌가?”
“일국의 국모를 폐한다는 일은, 그렇게 가볍게 논의될 일이 아닙니다. 먼저 중궁전을 찾아 모시고 해명을 들어봄이 옳을…….”
폐비에 반대하는 신료와 사대부들도 옹호 논리가 궁색해서, 기껏해야 절차상의 문제를 제기할 뿐이었다.
“대감, 그 무슨 해괴한 말씀이십니까! 이미 국모로서의 책임을 지지 않고 도망친 중전입니다. 이미 꽁꽁 숨어 버린 사람을 대체 어디서 찾는단 말입니까?”
“초유의 사태입니다. 중전의 죄악이 이미 하늘을 찔렀으니, 백성의 비난을 피해 도망친 것이지요!”
중전이든 민씨든 죄다 도망쳐 버렸으니, 대원군파는 자신의 죄를 감당하지 못하고 도망쳤다는 논리를 펼쳤다.
임금은 자신은 배제하고 폐비가 논의되는 것에 불쾌함을 느꼈지만, 일단 입을 봉하고 있었다.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이선은, 최후의 일격을 준비했다.
“군 대감! 청국과 내통하려던 자를 잡아 왔습니다!”
‘됐다!’
이선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군란 직후, 이선이 계속 인천에서 대기하며 고려대대에게 엄중 경계를 명한 이유 중의 하나가 여기에 있었다.
‘분명히 청국에 파병을 요청하러 가는 자가 있을 것이다. 누가 어떤 방법으로 가려는지는 모르지만, 가장 빠른 길은 인천에서 천진으로 가는 것이다. 시일을 다투려면 반드시 인천에서 밀항을 하겠지.’
고려대대는 인천부사의 협조하에 제물포항을 철저히 방비했고, 마침내 성과를 거뒀다.
“네 이놈! 어딜 도망치려 하느냐!”
수상한 거동의 사내가 밀항을 하려다 잡히자, 몸수색 끝에 밀서가 나왔다.
밀서의 내용을 읽은 정유진의 표정이 요동을 쳤다. 그는 즉시 말을 달려 한양으로 향했다.
이선은 청병(淸兵)의 청병(請兵)을 원하는 밀서를 들고 즉시 대원군을 찾아갔다.
밀서를 읽어나가던 대원군의 표정이 점차 일그러지다, 마침내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밀서는 ‘난민(亂民)과 그 배후에 있는’ 대원군의 반역 행위를 통렬히 비난하고, 조선 스스로 반란을 진압할 능력이 없으니 대청 황제에게 진압을 요청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런 천하의 역적놈을 보았나! 대체 어떤 역적놈이 오랑캐에게 청병을 요구하는 것이냐? 나라를 팔아먹을 역적놈이로구나!”
“마지막을 보시지요.”
밀서 끄트머리에는 국왕의 어휘(御諱, 이름)가 적혀 있었다.
“설마 주상이……?”
“에이, 설마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주상께서 보내는 밀서라면 옥새를 찍었겠지요. 누군가 주상의 어휘를 빌려 청국과 내통하는 참담한 짓거리를 한 것 아니겠습니까?”
대원군은 이선의 말을 즉시 이해했다.
‘이를 명분 삼아 주상을 끌어내리는 건 너무 위험한 짓이다. 이건 정말 신료와 사대부 전체랑 척을 지는 일이다. 사대부 전체와 등을 지고 어찌 나라를 다스리겠는가?’
‘백번 양보해서 사대부와 척을 지는 건 감내하더라도, 임금은 형식적으로 청나라에 책봉되었고 국왕의 이름으로 외국과 조약을 맺었다. 국왕의 폐위를 명분 삼아 청나라든 일본이든 외세가 개입할 가능성이 충분하다. 설령 승리하더라도 상처만 남을 것이다. 지금의 조선에 내란을 일으킬 여유는 없다.’
대원군도 이선도, 머리 회전이 빨랐고 이해관계도 일치했다.
“이 일은 보통 심각한 사안이 아니다. 즉시 입궁하자.”
대원군은 즉각 창덕궁으로 들어가 임금을 알현했다.
“대원위 입시오!”
대원군은 들어오라는 말도 기다리지 않고 편전으로 들어갔다.
“전하, 실로 참담한 문서를 찾게 되어 전하께 즉시 보고를 드리지 않을 수가 없나이다!”
형식적인 인사만 올린 후, 대원군은 즉시 서한을 임금에게 넘겼다.
서한을 읽는 임금의 표정이 요동쳤다.
자신이 보낸 밀서가 들켜서인지, 아니면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팔아서 청병을 요구한 것에 분개한 건지 알 수 없었다. 대원군도 구태여 묻지 않았다.
“전하, 신이 생각하건대, 이는 어떤 역적놈이 성상의 어휘를 팔아 저지른 역적질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 그렇습니다. 어떤 역적이 감히 과인의 이름을 팔아 파병을 요청한단 말입니까?”
“이런 역적은 조선 역사에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대체 누가 이런 참담한 짓을 저질렀을까요?”
“그, 그러게나 말입니다.”
대원군이 무서운 눈빛으로 쳐다보니, 임금의 목소리가 떨렸다.
“아마도 백성들의 봉기와 신의 집정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본 자, 즉 민씨 일파가 아니겠습니까? 민씨 일파가 아니고서야 누가 감히 임금의 이름을 파는 간 큰 짓거리를 하겠습니까?”
“아, 아버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민씨 일파가 그랬겠지요!”
임금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책임을 민씨에게 전가하는 데 동의했다.
“나라를 팔아 외국군을 끌어들여 제 백성을 죽이려 하고, 정권을 탈취하려 한 이 역적을 어찌 토벌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맞습니다. 엄히 다스려야 합니다.”
“신은 공적으로는 전하의 신하요, 사사로이는 생부가 됩니다. 나라와 사직을 도적질하려는 민씨의 무리와 다릅니다. 전하께서 신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걸 잘 알고 있사옵니다. 하지만 나라와 왕실에 대한 신의 충정만은 의심하지 말아 주시옵소서.”
대원군이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니, 임금이 화들짝 놀라 일으켜 세웠다.
“무슨 말씀을 그리하시옵니까. 소자가 아버님을 어찌 의심하겠습니까?”
대원군은 고개를 들었다.
“신에게 전권을 내려 주소서. 신이 이 간악한 역적의 무리를 뿌리 뽑고 종묘사직을 보호하겠나이다.”
“……그리하십시오.”
청으로 가려던 밀사에게 극심한 고문이 가해졌다. 밀사는 그렇게 신념이 투철한 자가 아니었다. 곧 대원군과 이선이 원하는 답을 주었다.
“형조참의 민영준이 시켰습니다……. 중전마마를 보호하고 난병을 진압하여 대원군을 끌어내리려면 청군을 끌어들여야 한다고…….”
“평상시에 민영준이 대원군이나 완화군에 대해 원망하는 말을 했던가?”
“예, 민겸호와 어울리며 늘 말하기를, 화의 근원인 운현궁을 없애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완화군은 중궁전과 동궁의 눈엣가시이니 죽어야 한다고…….”
“뭣이? 당장 역적 민영준의 거처를 수색하여 체포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