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585
3부 0화 프롤로그
구질서의 붕괴, 신질서의 도래 : 1919년의 세계
[1919년의 동아시아]1919년, 4년간 세계를 전화(戰火)로 물들였던 대전쟁이 마침내 종결되었다.
‘좋은 시절(Belle Époque)’은 영원히 끝났다. 근대의 낙관성이 지배하던 제국주의 구세계는 철저히 붕괴하였고,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불확실성의 시대가 도래했다.
승전국은 프랑스 파리의 궁전에 모여 ‘모든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의 종지부를 찍고자 한다. 구세계의 종말을 확인하고, 세계의 자유주의적 신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민족자결주의와 식민지 해방의 대의를 내세웠으나, 열강의 속내는 여전히 그들의 방식대로 세계를 운영해나가고자 한다.
한편, 전혀 다른 방식으로 새로운 세계를 꿈꾸는 이들도 있다. 바로 ‘세계혁명.’
러시아에서 시작된 사회주의와 민족해방의 바람은, 차리즘과 반동주의를 분쇄했다. 러시아에서 불기 시작한 혁명의 바람은 중동부유럽으로 확산되었고, 마침내 독일에서 카이저가 몰락했다. 중부유럽 각국에서 민주공화국이 선포되었다.
유럽에서 시작된 혁명의 열기는 아시아까지 확대될 양상을 보이니, 바야흐로 세계혁명의 가능성이 탐지되었다.
자유주의자와 보수주의자는 점증하는 사회주의의 위협에 공포를 느끼고, 이 간극을 틈타 자유주의와 사회주의 모두를 부정하는 ‘제3의 위치’, 파시즘의 토양이 싹트고 있었다.
유사 이래, 인민-국민의 힘이 이토록 강한 시기가 없었다. 어떤 정치세력도 인민-국민의 지지 없이 살아남을 수 없었다.
때는 1919년. 대전쟁의 상흔 위에서, 자유주의, 사회주의, 민족주의의 격렬한 대립이 폭풍처럼 닥치고 있었다.
1919년(광무 23년, 다이쇼 8년, 중화민국 8년) 각국 정세
미합중국(United States of America)
국가원수/정부수반 : 우드로 윌슨 대통령 (민주당)
정치체제 : 민주공화정 (대통령 중심제)
인구 : 약 104,514,000명
활력 넘치는 젊은 국가, 미국은 명실 공히 대전쟁의 최대 승리자였다. 1917년, 대전 후반부에 개입하여 연합국의 승리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연합국 주요 국가들, 영국·프랑스·이탈리아·러시아 모두 미국에 막대한 채무를 지고 있었으며, 미국의 부와 생산력은 전례 없는 수준으로 확대되었다. 미국은 이를 토대로 경제적 패권을 넘어 국제정치적 패권을 확보하고자 한다.
윌슨 대통령은 구 제국들의 패권을 빼앗아, 국제연맹 중심의 신질서를 확립할 구상을 갖고 있다. 물론 영국과 프랑스는 순순히 패권을 내놓을 생각이 없으며, 미국 내의 전통적 고립주의자들도 윌슨의 구상에 반발하고 있다.
대영제국(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Ireland)
국가원수 : 조지 5세 국왕
정부수반 : 로이드조지 총리 (자유당-보수당 거국내각)
정치체제 : 입헌군주정 (의회내각제)
인구 : 약 447,249,000명 (본토 42,944,100)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은 19세기 대부분을 ‘위대한 고립’으로 자족해왔다. 영국은 유럽의 전쟁에 개입하지 않는 걸 원칙으로 삼았으나, 독일제국의 빠른 성장과 세계패권 도전은 영국으로 하여금 대전쟁에 뛰어들게 하였다.
대전쟁에서 막대한 물적, 인적 희생을 낸 영국은 지쳐있었다. 청년층 인구의 상실, 미국에 진 막대한 채무는 영국에게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여전히 영국의 해양패권과 식민지는 굳건했으며, 경쟁자 독일을 무너트린 영국은 세계제국 유지를 위해 사활을 다하고 있다.
영국은 윌슨의 허황된 계획에 동참할 생각이 없으나, 미국의 경제력과 힘을 필요로 한다. 독일의 부활을 막고, 프랑스를 견제하고, 러시아의 붉은 위협을 저지하는 것이 영국의 새로운 세계전략이다.
프랑스 공화국(République française)
국가원수 : 레몽 푸앵카레 대통령
정부수반 : 조르주 클레망소 총리 (급진당 거국내각)
정치체제 : 민주공화정 (의회내각제)
인구 : 약 94,696,000명 (본토 38,600,000)
프랑스 공화국은 대전쟁 최대의 공로자였다. 독일군에게 점령된 국토의 일부는 4년 동안 계속된 전쟁으로 잿더미가 되었고, 4천만 인구 중에서 청년 인구 120만 명을 상실하는 희생을 감당했다.
엄청난 희생을 낸 프랑스의 대독 혐오증은 정점에 달해있었다. 베르사유 궁전에서 독일제국을 선포한 1871년의 굴욕을 똑같이 되갚아주고, 독일의 힘을 최대한 약화시키는 것이 프랑스의 목표이다.
독일이 두 번 다시 전쟁을 못 일으키게 하고, 중부유럽에 폴란드-체코슬로바키아-루마니아-세르비아로 이어지는 독일 포위망을 건설하며, 러시아가 프랑스에 진 막대한 차관을 불이행하지 않도록 압박하기 위해, 프랑스는 미국의 신질서 구상에 일부 동참할 여지가 있다.
이탈리아 왕국(Regno d’Italia)
국가원수 :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 국왕
정부수반 : 비토리오 오를란도 총리 (자유당 거국내각)
정치체제 : 입헌군주정 (의회내각제)
인구 : 약 35,717,000명
이탈리아는 1915년 삼국동맹을 빠져나와 연합국에 합류했다. 전쟁 기간 내내 고전을 면치 못했지만, 힘이 빠진 오스트리아-헝가리에 최후의 일격을 날리고 승전국의 반열에 올라설 수 있었다.
승전국 이탈리아는 표면적으로 미국·영국·프랑스와 동렬에 섰으나, 이들 ‘빅3’은 이탈리아를 내심 동등한 열강으로 여기고 있지 않다. 이탈리아는 연합국과의 밀약에서 합의한 바와 같이, 아드리아해 연안일대를 차지하여 합스부르크 제국의 분할에 동참하고 싶지만,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빅3의 태도는 유보적이다. 열강들의 무시에 이탈리아인들의 분노가 쌓이고 있었다.
러시아 민주주의 연방공화국(Росси́йская Демократическа Федеративная Республика, РДФР)
국가원수 : 두마 최고상임위원회
정부수반 : 소비에트 인민위원협의회 (사회혁명당-사회민주노동당 연립정부)
정치체제 : 민주공화정 (두마/소비에트 이중권력)
인구 : 약 125,640,000명
러시아는 1917년 혁명으로 재탄생했다. 차리즘은 붕괴하고, 임시정부가 들어섰다. 제헌의회 선거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사회주의자들이 전체 득표수의 4분의 3을 차지하는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 것이었다. 이는 토지개혁을 열망하는 농민들과 해방을 갈구하는 노동자들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농민을 대표하는 사회혁명당과 노동자를 대표하는 사회민주노동당은 불안한 연립정권을 이어나갔다. 신생 공화국은 연합국의 지원을 받아 ‘인민전쟁’을 선포, 마지막 힘을 쥐어짜내 독일과의 전쟁에서 승리했다.
200만의 희생을 내고 승전국의 대열에 선 러시아는, 국제정치보다는 국내변혁에 더욱 중점을 두고 있다. 이들의 당면한 과제는 토지개혁과 산업국유화, 반동우파의 위협을 꺾는 것이다.
러시아의 사회주의 실험을 우려하는 서방 연합국의 정치적 개입에 맞서, 러시아 사회민주당의 국제주의 파벌은 ‘세계혁명’을 선동하고 있다. 이들의 구상에 따르면, 러시아 다음은 독일의 차례였다.
독일 공화국(Deutsches Reich)
국가원수 : 공석 (프리드리히 에버트 임시 총리)
정부수반 : 노동자평의회 인민위원협의회 (사회민주당-독립사회민주당 연립정부)
정치체제 : 민주공화정 (의회/노동자평의회 이중권력)
인구 : 60,898,584명
독일은 4년간의 총력전이 무색하게도, 패전하고 말았다. 군인과 노동자가 봉기한 11월 혁명은 호엔촐레른 왕가와 모든 독일의 왕공제후들을 쓸어버렸다. 사회민주당이 주도하는 새로운 독일 공화국이 제국의 잔해 위에서 섰다.
하지만 신생 공화국의 위치는 너무나도 허약했다. 연합국은 독일에 가혹한 보복을 예고하고 있고, 독일 국내의 우익들은 패전을 ‘배후에서 비수에 찔린’ 것이라고 왜곡했다. 극좌파는 러시아를 본받아 급진적인 개혁에 나서자고 선동했다.
독일 공화국은 외부의 압력, 내부의 위협 속에서 가까스로 민주주의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대일본제국(大日本帝國)
국가원수 : 다이쇼 천황 요시히토
정부수반 : 하라 다카시 내각총리대신 (입헌정우회)
정치체제 : 외견적 입헌군주정 (군주에게 책임지는 정부)
인구 : 약 59,724,260명 (대만 포함)
일본은 러일전쟁의 참화를 기억하고 있기에, 대전쟁에는 거의 개입하지 않았다.
대전쟁 기간 동안 일본의 산업발전과 무역진흥은 정점에 달했으며, 서양 열강의 부재 속에서 중국 남부로 정치적·경제적 영향력을 확대해나갔다.
국내적으로는 ‘다이쇼 데모크라시’의 영향으로 헌정과 정당정치가 자리 잡히게 되었으며, 특히 1918년의 쌀소동은 번벌 정치인들의 완전한 몰락으로 이어졌다. 신임 총리 하라 다카시는 최초의 정당정치인 출신 총리로, 보수적 자유주의자로서 확고한 헌정질서와 문민통제를 확립하고자 한다.
일본의 대외적 목표는 대만을 기반으로 복건과 절강으로 진출, 남경의 중화민국 정부(북양파)를 배후조종하여 장강 이남에 대륙진출의 교두보를 확보하는 것이다.
중화민국(中華民國)
국가원수 : 손문 대총통 (호법정부)
정부수반 : 단기서 국무총리 (북양정부)
정치체제 : 민주공화정 (실질적으로 군벌 연립정권)
인구 : 약 400,000,000명 (정확한 통계 없음)
신해혁명은 청조를 무너트렸으나, 중국의 혼란은 지속되었다. 중국 각 성은 군벌들로 분열되었다. 1916년 원세개의 권력찬탈에 이은 호국전쟁은 혼란이 정점에 달했음을 의미했다.
정부의 정통성은 손문과 국민당에 있었으나, 가장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한 북양파 군벌 단기서는 손문을 몰아내고 정권을 장악했다.
손문은 광동으로 피신하여 별도의 호법정부를 수립했다. 손문의 목표는 단기서를 몰아내고, 진정한 민주공화국을 홥리하는 것이다.
단기서의 목표는 손문과 호법정부를 굴복시키고, 각지의 군벌들을 제압하여 진정한 중국통일을 이룩하는 것이다. 그 다음 목표는 만주의 청조였다.
대한제국(大韓帝國)
국가원수 : 이선 황제
정부수반 : 서재필 내각총리대신 (입헌개화당)
정치체제 : 외견적 입헌군주정 (군주에게 책임지는 정부)
인구 : 약 25,012,000명 (본토와 신영토 포함, 자치령 제외)
대한제국은 대전쟁의 주요 승리자 중 하나이다. 대전쟁은 한국으로 하여금 최소한의 희생으로 최대한의 이득을 쟁취하도록 했다.
서양 열강의 부재, 특히 러시아의 혼란을 틈타, 한국은 청국을 압박하여 만주를 독점적으로 지배할 권리를 획득했다.
경제적으로도 대호황을 맞이하여, 1918년에 이르면 한국은 무역적자에서 흑자로, 채무국에서 채권국으로 변신했다.
대한제국은 동부전선의 승리에도 기여하였으니, 동양의 약소국이 승전 7대국, 7대 열강의 반열에 올라서는 순간이었다.
1919년, 대한제국의 위상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았다.
하지만 세계에는 전례 없는 혼돈이 닥치고 있었으니, 이 혼돈의 시기에, 대한제국이 나아가야할 방향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