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59
– 59화에 계속 –
59화 숙청(肅淸)
형조참의 민영준(閔泳駿), 즉 후일 민영휘(閔泳徽)로 개명하는 자이다. 이번 봉기 때 백성들의 분노가 집중되어 저택이 박살 나고, 어딘가 숨어 있었다.
대원군이 체포령을 내린 지 얼마 안 되어, 누군가의 고발로 민영준이 체포되었다.
“나는 억울하다! 이건 거짓 자백이야!”
“닥쳐라, 이 역적놈아!”
역적으로 지목된 민영준은 고문을 몇 번 하자 바로 토설했다.
“제, 제가…… 그랬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저 시키는 대로 했을 뿐…….”
“그럼 누가 너에게 대원위와 완화군을 음해하라 시켰느냐?”
“민…… 민겸호입니다.”
죽은 자는 말이 없는 법. 민겸호는 대원군과 완화군을 제거하려 한 극악무도한 역적의 죄까지 더해졌다.
“그럼 누가 너에게 청병을 하라 시켰느냐?”
“주, 중궁전이옵니다…….”
민영준은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떠넘기다가, 마침내 중전의 이름까지 팔았다.
순간 추관(推官)들의 표정이 엄숙해졌다.
“네놈이 하는 말의 무게를 잘 아느냐? 감히 중궁전에 책임을 떠넘기고 네놈이 살아남을 성싶으냐?”
“신은 그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입니다! 중궁전이 아니고서야 누가 감히 주상의 어휘를 팔아 청병을 하겠습니까? 신이 어리석어 속았습니다. 부디 살려 주십시오…….”
민영준의 말은 기정사실이 되어, 민겸호가 대원군과 완화군을 죽이려 하고, 중전이 청나라 군대를 끌어들이려 했다고 보고되었다.
고문으로 얻어낸 자백만이 끝이 아니었다.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궁궐에서 나온 옷을 입고 완화군 대감의 노복이 두창으로 죽었습니다.”
의사 지석영이 증인으로 나와 완화군에 대한 암살 음모를 증언했다.
“이 밀서를 보시오! 역적들이 감히 성상의 어휘를 팔아 청병을 끌어들이려 했소!”
증거가 명명백백하니, 반대 의견이 있을 수가 없었다.
정말로 중전과 민영준이 청군을 끌어들이려 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결과에 상관없이 이선이 민영준을 지목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민씨 척족 중에서도 가장 부패한 자. 전국을 돌아다니면 탐학질을 하여 동학 농민군이 척살 대상 1호로 삼은 자요, 농민군을 진압하기 위해 청군을 끌어들인 자요, 나중에는 일제에 나라를 팔아먹는 데 가담한 자지. 탐관오리, 외국군 청병, 매국이라는 삼관왕을 달성한 역적 중의 역적!’
1894년 동학 농민 운동 당시, 병조판서로 청군을 끌어들이는 데 누구보다 앞장선 게 바로 민영준이었다. 청일 전쟁의 단초를 만들어 버린 자였다.
백성들에게 지탄받던 민영준은 민영휘로 개명했는데, 이후로도 승승장구했다. 한일병탄에도 가담하여 매국의 대가로 자작의 작위과 거액의 자금을 받았고, 엄청난 부귀영화를 누린 끝에 천수를 누리고 80대의 나이로 죽었다.
실제 역사에서 이뤄지지 않았던 역사의 심판이, 바뀐 역사에서라도 이뤄져야 했다.
“유사 이래 세상천지에 이런 참람한 역적이 또 있겠는가! 이 역적들의 뜻대로 되었다면, 나라가 어찌 되었겠는가? 참으로 간담이 서늘한 일이다. 온 나라가 이 역적들의 살점을 씹어먹고 싶으리라!”
대원군의 추상과도 같은 엄명이 떨어졌다.
“감히 성상의 생부와 장자를 모해하려 한 역적 민겸호는 죽었다고 하여 용서받을 수 없다. 부관참시하고 장대에 높이 효수하여 후대의 경계가 되게 하라!”
매장조차 제대로 되지 못한 민겸호의 시체는 무더운 여름 날씨에 이미 썩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가차 없이 칼날이 더해졌다.
“감히 성상의 어휘를 위조하여 밀서를 만들고, 청군을 끌어들여 나라를 도탄에 빠트리려 한 역적 민영준을 저잣거리에서 부대시참(不待時斬)하여 준엄한 본보기를 보여라!”
살아남으리라 믿고 자백을 했던 민영준은 미쳐 날뛰었다. 형장으로 끌려가던 민영준이 백성들을 향해 외쳤다.
“나는 정말 억울하다! 이건 모두 대원군이 조작한 사건이다!”
“끝까지 반성하지 않는구나, 이 도적놈!”
“나라 곳간을 도적질한 것만으로 모자라서, 나라를 팔아먹으려 해? 이 더러운 역적놈아!”
“죽어서 죗값을 치러라!”
탐관오리의 대명사 민영준은 백성들의 조롱과 저주를 받으며 참수되었다.
“역적은 삼족을 멸하는 것이 조종(祖宗)의 전례(典例)이나, 연좌를 묻지 않겠다. 스스로 그 죄를 자복하는 자는 너그러이 사면하리라.”
역적의 삼족을 멸하라는 상소가 쏟아졌지만, 뜻밖에도 대원군은 관대한 처분을 약속했다. 이는 이선의 건의를 받아서였다.
“역적 민겸호의 죄가 어찌 그 아들 영환과 영찬에게 연좌로 적용되어야 하겠습니까? 더욱이 영환은 민태호의 양자로 들어갔으니 연좌로도 처벌 대상이 아닙니다. 이제 조선도 외국과 수교를 맺고 세상에 널리 알려졌습니다. 대명률(大明律)이 아니라 새로운 형법을 채택해야 합니다. 죄는 오직 당사자만이 처벌을 받고, 가족에게 연루되지 않아야 합니다.”
“너의 말이 옳다.”
대원군 본인도 옥사의 확대를 꺼렸다.
“대감, 정녕 여흥 민문을 멸문시키려 하십니까? 민문은 대감과 주상의 외가이자 처가이기도 합니다. 부디 가문의 명맥은 잇게 해 주십시오.”
아무리 원수여도 민겸호는 부대부인의 동생이니 처남이고, 그 아들은 처조카였다. 친정의 멸족을 막아달라고 눈물로 읍소하는 부인의 청을 거절하자니 마음에 걸렸다.
민겸호가 자신을 죽이려 했음에도, 관대히 그 일족을 용서했다는 이선의 행보에 사람들은 칭송했다.
“완화군은 정말 관대하신 분이군. 어찌 원수의 일족을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임금님의 맏아들이라 그런가, 역시 타고난 그릇이 달라. 어린 나이에도 어찌 저렇게 의젓하고 총명하실꼬.”
“백성을 아끼는 마음도 남다르니, 장차 나라의 복일세.”
대원군의 관대한 조처는 곧 효과를 발휘했다.
이미 민겸호와 민영준이 역적으로 단죄당하고, 자수하는 자는 사면해 준다는 말에 민응식(閔應植)의 마음도 흔들렸다.
“허, 대체 이를 어쩐다?”
중전은 바로 민응식의 충주 장호원 집에 있었다.
봉기 당일, 차마 며느리가 맞아 죽는 걸 볼 수 없었던 부대부인 민씨가 가마를 보내 탈출을 도왔다.
가까스로 탈출에 성공한 중전은, 익찬 민응식의 한양 집에 숨었다. 하지만 한양이 완전히 대원군과 봉기군의 손에 들어서자, 위험하다고 판단한 민응식과 측근들은 중전을 성 밖으로 빼냈다.
경기도 광주와 이천을 지나 이조판서 민영위의 여주 집에 머물던 중전은, 이조차도 불안하여 충청도 충주의 민응식 본가에 숨었다.
실제 역사라면 중전의 탈출을 도운 공로로 출세를 거듭하게 된 민응식이지만, 바뀐 역사에서는 난처하기 짝이 없는 처지였다.
중전은 궁궐에서 맞아 죽을 뻔한 충격에, 태어나서 처음 하는 장거리 여정에 탈진한 듯 몸져누운 상황이었다.
병석에 누운 중전을 극진히 모시던 민응식은, 한양에 들려오는 소식에 마침내 심경의 변화를 일으켰다.
충주목사에게 사람을 보내 은밀한 정보를 전한 것이다.
보고는 며칠 후 운현궁으로 닿았다. 대원군의 심경은 복잡하기 짝이 없었다.
중전의 처분을 놓고 고민하던 대원군은,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독단적으로 결정을 내렸다.
“익찬 민응식의 집에 계신 분을 충주 미륵사에 모시고 엄중히 보호하되, 잡인의 출입은 일절 금하게 하라. 민응식에게는 적당한 관작을 주고 한양으로 오라고 하라.”
대원군은 차마 중전을 한양으로 잡아 오거나 죽이라 할 수 없었다.
‘곧 중전의 폐서인이 결정될 터인데, 한양으로 끌고 와서 공공연히 죄를 물으면 더 시끄러워질 터. 왕실의 체면이 대체 뭐가 되겠나? 그렇다고 일국의 국모였던 이를 은밀히 죽일 수야 있나. 이미 중전의 손발은 다 잘려 나간 것이나 다름없다.’
대원군은 씁쓸하게 웃었다.
‘중전, 이건 내가 그대에게 주는 마지막 은혜요. 충주에서 편안히 사시구려. 부처님 보면서 마음도 달래고. 세자는 내가 잘 키워드리리다.’
이선도 대원군의 속내를 짐작하고, 구태여 중전의 처분에 관해 묻지 않았다.
‘조선은 엄연히 유교 국가다. 아무리 저쪽에서 나를 죽이려 했을지라도, 자식이 어머니와 대립하는 건 모양새가 안 좋지. 청군도 안 오고, 폐서인까지 되면 중전은 그걸로 끝이다. 정치적으로 제거한 것으로 족하다. 중전에 대한 처분은 대원군에게 일임하는 게 낫다.’
임오년 6월 27일. 봉기 발생 18일 후.
중전 민씨의 폐서인을 알리는 임금의 교지가 반포되었다.
“고하노라.
왕후 민씨는 파당을 끌어들여 과인의 총명을 가리고, 백성을 착취하고 과인의 정령을 어지럽히며, 벼슬을 팔아 탐욕과 포악이 지방에 퍼지니, 도적이 사방에서 일어나서 종묘사직이 위태로워졌다.
민씨와 그 패거리는 또한 과인의 군사를 홀대하여 변란을 격발시켰다.
더욱이 과인의 명령을 위조하여 청국에 차병을 요청하였으니, 이는 나라의 변란을 꾀한 일이다.
사변이 터지자 과인을 떠나 몸을 숨기니, 아무리 찾아도 나타나지 않았다.
아! 민씨는 왕후의 작위와 덕에 타당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죄악은 씻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런 자가 어찌 선왕의 종묘를 감히 받들겠는가.
이에 과인은 삼가 조종의 고사를 본받아, 왕후 민씨를 폐하여 서인으로 삼노라.”
더없이 준엄한 명령이었다.
민심은 열렬히 환영했고, 집권층이었던 노론 사대부들조차 입을 다물었다.
폐비는 보통 언제나 첨예한 여론의 충돌을 불러일으켰지만, 유교적 명분론에 충실한 성리학자들도 반대할 수 없었다.
명분도, 실리도, 이에 뒤따르는 증거도 확실한 폐비에 감히 이의를 제기하거나 반대하는 자는 없었다.
폐비 민씨는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점차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 갔다.
“내부의 위협을 숙청했으니, 이제 외부의 위협에 대비해야 할 때입니다.”
대원군도 외세가 개입할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었다.
“청국과 일본을 말하는 것이냐?”
“그렇습니다. 청국은 시생이 어떻게든 무마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만, 일본은 어찌 나올지 모르겠습니다.”
이선은 사건 초기에 이홍장, 장수성, 정여창에게 밀서를 보냈다는 사실을 알렸다.
‘조선과 청나라 사이에 전신이 없으니 답답해 죽겠구먼. 역사대로라면 슬슬 답이 나올 때가 됐는데.’
“청국과 일본은 내가 최대한 달래 보려고 했느니라.”
대원군은 정권을 잡자마자 즉시 청국 예부와 일본 외무성에 정권 교체를 알리고, 부산과 원산으로 사람을 보내 일본 영사관과 개항장의 체류 일본인을 보호하라 명했다.
“미국과 영국의 반응도 걱정입니다. 저들이 수교 조약을 맺은 건 봉기 이전이기 때문입니다.”
“네 말대로, 영국에게도 조약을 그대로 비준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알렸다.”
영국 군함 플라잉피시 호는 하나부사 공사를 일본에 호송하고, 정보 파악을 위해 다시 인천으로 돌아와 월미도에 정박했다.
대원군은 이선의 조언을 받아, 인천으로 반접관을 보내 영국과의 수호 통상 조약을 그대로 비준할 것이니 걱정 말라고 했다.
“우리가 어떻게 나오든, 외세는 내부의 문제를 트집 잡아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저들이 억지를 부린다면 단호히 맞설 뿐! 병인년과 신미년에도 적을 무찔렀던 조선이다.”
대원군의 호언장담에도 불구하고, 조선이 외세를 막을 힘이 없다는 건 누구보다 그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소손이 어찌 나라를 지키려는 할아버님의 충정을 모르겠습니까? 하지만 서양의 힘은 강하고, 조선은 약한 게 현실입니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야 없는 노릇 아니겠느냐?”
“그렇기에 소손이 할아버님의, 아니 시생이 조선의 걱정을 덜어드리기 위해 준비해 놓은 게 있사옵니다.”
“그게 무엇이냐?”
“성조에 충성하기 위해 돌아온 자들이, 인천에서 어명을 기다리고 있은 지 오래입니다.”
이선의 말에 대원군은 깨달은 바가 있었다.
“근데 그들은 아라사 군복을 입고 있지 않더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 마시옵소서. 청국에서도 상승군과 상첩군이라 하여 서양인들을 고용한 적이 있사옵니다. 제가 그 상승군 사령관을 지낸 영국인을 압니다. 이홍장과 친분이 가깝지요.”
이선은 ‘차이니스 고든’의 사례를 언급했다.
“하물며 이들은 모두 조선 태생이고, 조선에 충성하고자 하옵니다. 그리고 아라사군 소속이 아니라 상승군과 같은 의용군입니다. 조선의 호적에 다시 올리고, 조선군으로 편입하면 됩니다.”
“그거 묘안이로군. 하지만 사대부의 반발도 적지 않을 텐데.”
대원군이 결단을 내리지 못하니, 이선이 사열을 제안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니, 일단 이들의 무력을 직접 관찰하고 사열하심이 어떻겠습니까?”
“좋다. 다만 이들 전부를 한양으로 불러들이면 민심이 겁을 먹고 동요를 일으킬 수 있으니, 일단 소수만 부르거라.”
이선은 대원군의 우려를 이해 못 하는 바가 아니었다. 조선 백성들은 서양식 군대에 익숙하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그럼 1개 소대만 입경시키도록 하겠습니다.”
이선은 일본인이나 서양인이 아닌, 조선어를 쓰는 조선인이 근대적 지식을 갖추고, 근대적 무장을 하면 어떤 힘을 가지게 되는지, 조선의 지배층에게 똑똑히 보여 주려 했다.
‘자, 이제 시작이다!’
본격적인 국가 재조(再造)는, 이제부터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