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60
– 60화에 계속 –
60화 무력시위(武力示威)
“고려대대 1중대 1소대는 즉시 한양으로 오라.”
이선의 명을 받아, 고려대대에서도 최정예인 1중대 1소대 병력이 한양으로 향했다.
고려대대는 대개 함경도 출신이라, ‘서울’에 대한 동경이 강한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한양으로 돌아가는 걸 금의환향처럼 여겼다.
“이야, 서울 구경을 다 해 보는구먼.”
“이게 다 러시아 땅에서 출세한 덕분 아니겠나, 하하.”
“아닐세. 다 우리 왕자님 덕이지 뭐.”
“맞네. 왕자님이 아니었더라면 우린 가족들과 함께 연해주에서 홍호자 놈들에게 시달리고 살고 있었겠지.”
고려대대 병사들의 이선에 대한 충성심은 강했다. 이선이 온 이후로 그들의 삶이 바뀌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고려대대 1중대 1소대가 배를 타고 한양에 입경했다. 러시아제 소총에 러시아군의 연녹색 군복을 입고 있어 이색적으로 보였다.
“왜, 왜군인가?”
“그럼 왜놈들이 한양까지 쳐들어왔단 말이야?”
민심이 동요하려 하자, 이선이 직접 모습을 드러내 민심을 위무했다.
“저들은 모두 조선인이오, 우리 조선의 군대다. 그대들은 걱정하지 말라.”
“우리도 함경도 출신 조선인이오.”
“고향이 함경도 경흥이외다.”
고려대대는 모두 조선인의 용모에 조선어를 쓰고 있어, 이색적인 복장에도 백성들에게 큰 거부감을 주지 않았다.
얼마 전까지 서양식 훈련을 받던 별기군이 있었으나, 이들은 일본 교관에 의해 일본어로 훈련을 받았기 때문에 민중의 반감이 상당했었다.
백성들은 초록색 도포를 입은 별기군을 ‘왜별기’라고 부르면서 경멸했다. 군란 직후 별기군은 가장 먼저 해산되었다.
이선은 별기군의 사례를 들어 철저히 사전 교육을 해 둔 상황이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러시아어는 쓰지 말고 조선어만 쓸 것. 군기를 엄정히 할 것. 백성들에게 일제의 민폐를 가하지 말 것.”
이선은 공식적으로 ‘범월죄인’인 이들에게, 밝은 미래를 약속했다.
“고려대대 여러분! 그대들은 조선군의 자랑스러운 정예 부대가 될 것이다. 그대들로부터 대조선 육군의 기초가 시작되리라.”
“와아아!”
고려대대는 조선군으로의 편입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이들은 이주 1세대로 여전히 조선에 대한 충성심이 강한 이들이었다.
양화진을 통해 들어온 고려대대 1개 소대는 돈의문(서대문) 밖에 멈췄다.
“입경을 허락한다.”
마침내 임금의 승인이 떨어지자, 고려대대 병사들은 보무도 당당하게 한양으로 입경했다.
고려대대는 돈의문 근처, 경복궁 중건 이후 전각 몇 개만 남은 경희궁(慶熙宮)에 들어섰다.
옛 경희궁 숭정전의 넓은 공터에서 임금의 친견 하에 군사 사열이 이뤄질 예정이었다.
작은 세계에 갇혀 있는 사람들에게, 충격 요법만큼 확실한 효과가 없었다.
“대원위 납시오!”
대원군이 조정 대신들을 이끌고 먼저 경희궁에 이르렀다.
“오셨습니까, 할아버님.”
“흠, 제법 정예로 보이는구나.”
양력 8월의 무더운 날씨 속에서, 대열을 유지하며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고려대대 병사들을 보며 대원군이 가볍게 감탄을 하였다.
“주상 전하 납시오!”
임금이 경희궁에 거동하자, 왕족과 문무 관료가 일제히 예를 표했다.
“대조선국 천세! 주상 전하 천세!”
사전에 이선이 시킨 대로, 고려대대 병사들이 일제히 천세(千歲)를 외쳤다.
임금은 놀라워하면서도, 기쁜 낯으로 이선에게 물었다.
“저들이 조선과 과인을 위해 외치는 것인가?”
“그러하옵니다. 서양에서는 군주가 그 군대를 친견하였을 때, 국가와 군주를 위하여 만세를 외칩니다. 특히 저들이 살았던 아라사에선 군주에 대한 충성심이 지극합니다.”
“호오, 대체 누가 서양은 군신의 도리도 없는 금수의 나라라고 하였던가? 서양 또한 방법이 다를 뿐, 나라와 군주를 아끼는 마음이 지극하지 않은가?”
서양에 대해 우호적인 임금은, 서양식 군복을 입은 고려대대를 보는 것만으로 불편함을 느끼는 원로 대신들을 향해 들으라는 식으로 말했다.
“저들은 비록 한때 범월죄인이었으나, 아라사에서도 조선을 늘 잊지 못하였나이다. 민병을 결성하여 고된 훈련을 받아 정예가 되었고, 청국 마적을 격퇴해 연해주의 우리 백성들을 보호하였습니다. 이제 성조(聖朝)와 성상이 그리워 조선으로 돌아와, 나라를 위해 충성하고자 하옵니다. 신이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이들을 너그러이 용서하시옵소서.”
이선의 청에 임금은 기쁘게 맞이했다.
“나는 이미 작년에 통리아문을 통해, 아라사에 사는 우리 백성 중 재주 있는 이들을 뽑아 선발하라 하였다. 너희가 완화군의 지도를 받아, 조선으로 돌아와 나라를 위해 힘쓰려 하니 참으로 갸륵한 일이다. 나는 너희 모두를 사면할 것이니, 지난 일은 개의치 말고 나라에 충성할지어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이선이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하니, 고려대대 병사들도 일제히 고개를 조아렸다.
“이제 사열과 시연을 하겠나이다.”
“그리하라.”
임시소대장을 맡은 정유진이 군도를 빼 들고 외쳤다. 조선에 돌아오기 전 6주간 단기 부사관 훈련을 받은 정유진은, 교관으로서의 기초적인 경험이 있었다.
“소대, 행진!”
“발맞추어- 갓!”
소대는 러시아식 분열 행진을 시작했다. 조선에는 아직 근대적 군사 용어가 없어서 옛 어휘에서 따오거나, 아니면 아예 단어 창조를 해야 했다.
소대 병력이라고 해도 50여 명이오, 가뜩이나 큰 러시아제 소총에 총검까지 꽂고 있으니 그 위압감이 대단해 보였다.
“이야, 위세가 대단한데.”
“에이, 이걸 가지고 뭘……. 별기군 기억 안 나시오? 별기군도 저 정도는 했소이다. 근데 막상 군란 일어나니까 전부 도망치드만.”
대신들이 속삭거리는 말이 이선의 귀에 들렸다. 이선은 피식 웃으면서, 다음 순서로 들어갔다.
“소대, 거총!”
병사들이 일제히 총을 들어 과녁을 향했다.
“방포!”
탕! 탕탕! 탕탕탕!
총구가 불을 뿜자, 과녁판이 일제히 뚫려 나갔다.
러시아군 제식 소총인 베르단(Berdan) 1870 소총은 비록 단발이지만, 조선군이 쓰던 총과 비교 불가능할 정도로 사정거리는 길고 정확도는 높았다.
별기군하고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별기군의 사열을 받은 경험이 있던 임금은 이를 깨달았다.
“역시 양총은 대단하구나.”
“그러하옵니다. 저들의 정예함이 참으로 보기 좋사옵니다.”
임금이 서양 무기의 탁월함을 깨달았다면, 대원군은 무기를 운용하는 병사들의 정예함을 깨달았다.
대원군은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때 북방 출신 포수들을 편성해서 강화도로 보낸 바 있었다. 실제로 이들은 정식 군인 못지않은 활약을 보였다.
본래 ‘호랑이를 화승총으로 잡던’ 함경도 포수 출신에게 신식 총이 주어졌으니, 호랑이에게 날개가 달린 격이었다.
“하지만, 저렇게 빨리 총을 쏘아대면 총알이 금방 떨어질 것입니다. 총알이 떨어지면 어찌 싸운단 말입니까? 빈 총으로 창과 칼을 당해낼 수 있겠나이까?”
“…….”
어떤 늙은 대신의 지적에, 이선은 말할 것도 없고 대원군도 할 말을 잃었다. 이선은 꾹 참고 웃는 낯을 유지했다.
“좋은 지적입니다. 대감의 말씀처럼, 전투 중 총알이 떨어지지 않게 군수 보급을 하는 건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그리고 물론 근접전에 대비해야지요. 다음 차례가 근접전입니다.”
이선이 손짓을 보내자, 정유진이 명령을 내렸다.
“소대, 착검(着劍)하라!”
병사들은 허리에 찼던 총검을 총에 꽂았다. 러시아군 특유의 날카롭고 긴 총검으로 인해 더 위압적으로 보였다. 작열하는 태양이 총검에 반사되어 반짝거렸다.
“돌격!”
“와아아아!”
푹! 푸욱!
병사들이 돌격하여 총검으로 과녁을 찔렀다.
러시아군은 독일식 포격전보다 육탄돌격을 선호하는 만큼, 단기 훈련이라 할지라도 고려대대에 총검 돌격을 꽤 집중시켜서 가르쳤고, 실제로 마적과의 근접전에서 상당한 성과를 보이기도 했다.
짝짝짝-.
대원군이 손뼉을 치자, 임금과 대신들도 잇달아 손뼉을 쳤다.
‘아직 기뻐하기엔 이르지.’
이선은 마지막으로, 자신이 보유한 최강의 무기를 보여 줄 예정이었다.
“기관포, 준비!”
조선 사람들이 보기에는 총보다 대포에 훨씬 가까웠기에, 이선이 ‘기관포’라 명명한 개틀링 건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이때만 해도, 숭정전에 모인 조선의 임금과 신하들은 대포를 시연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귀를 막을 준비를 했다.
하지만 그들이 보게 될 광경은, 그전에 보았던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방포!”
드르르륵…….
기관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격렬한 화망(火網)이 시야를 압도했다.
타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당!
기관포는 순식간에 표적을 박살 냈다.
1분에 600발을 발사할 수 있는 개틀링 건은, 첫 번째 표적을 박살 낸 직후 제2, 제3의 표적을 갈기갈기 찢어 버렸다.
이건 그나마 이선이 탄약을 아끼려고 맛보기만 보여 준 것이었다.
이를 이뤄낸 인력은 많지도 않았다. 딱 2명에 불과했다. 바로 기관포 사수와 탄약수였다. 이들 모두 왕이나 대원군, 조정 대신들이 보기엔 ‘천하디천한 함경도 출신의 상놈들’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죽음의 공포를 보여 주었다. 죽음 앞에서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다. 근대는 누구든 평등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대원군의 표정이 놀라움에서, 점차 경악으로 굳어져 갔다. 그 역시 개틀링 건의 위력에 대해선 말로 들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직접 보기는 처음이었다.
개틀링 건을 직접 본 대원군은 조선의 앞날을 책임진 권력자로서 심각성을 느꼈다.
“서양인들은 이토록 동양을 압도한단 말인가…….”
“그러니 대국조차 감당하지 못하고 북경이 오랑캐에게 함락된 것 아니겠소.”
대신들도 경악으로 물들어가며 속닥거렸다.
‘북경이 함락된 1860년엔 개틀링 건은 있지도 않았다. 앞으로 기관총까지 나오면 어쩌려고…….’
이선만이 유일하게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에게 개틀링 건은 시작에 불과했고, 이 시대 서양의 가장 압도적인 무력을 상징하는 맥심 기관총이 나오면 재빨리 갈아탈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인간은 미지의 존재에 공포를 느끼면, 순응이 아니라 반발이 먼저 느끼는 법이다.
늙은 대신들은 갑자기 정신승리를 시작했다.
“분명 저들의 무기와 기세가 빼어나니, 실로 놀랍긴 하옵니다. 하오나 비록 서양의 무기가 더 좋을지 몰라도, 동양의 정신을 어찌 당해 내겠나이까?”
“그렇사옵니다. 병인년과 신미년에 우리가 오랑캐를 무찌를 수 있었던 것은, 무기가 더 좋아서가 아니었습니다. 결사 항전을 지휘한 조정의 각오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싸운 병사들의 의기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는 원로 대신들이 임금보다 대원군 들으라고 하는 말이 분명했다.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를 ‘승리’로 이끈 건 대원군의 최대 업적이었다.
예전의 척화론과 달리 갑자기 태도를 전환해서 서양과 수교하고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겠다는 대원군의 표리부동함, 서양 무기를 들여 정권을 수호하려는 계획을 비난할 기세였다.
이선이 논리적으로 반박하려는데, 대원군이 먼저 입을 열었다.
“경들은 신미년 광성보에서 죽은 우리 병사가 몇인지 아시오?”
“어재연 장군 이하 300 의사가…….”
“그렇소. 300여 충의지사가 목숨을 잃었소. 그들 모두가 장렬히 순절했지.”
“그러하옵니다! 충의지사들의 장렬한 죽음이 있었기에 저 양이의 무리가 물러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럼 적군은 몇 명 죽었는지 아시오?”
이는 정확히 아는 사람이 없었다.
“우리가 300이 죽었으면, 적도 100명 이상…….”
대원군이 벌컥 화를 냈다.
“3명이오, 3명! 아군이 300 넘게 죽는 동안 적은 3명이 죽었단 말이오!”
1871년 광성보 전투.
어재연 이하 조선군 500여 명은 광성보를 지키기 위해, 문자 그대로 최후의 1인까지 싸웠다. 총알이 떨어지면 화살로, 화살이 떨어지면 돌로, 돌이 떨어지면 모래라도 뿌렸다.
그 장렬한 투쟁과 달리, 전투는 일방적인 학살극이었다.
미군의 압도적인 포격과 조직적인 화망에 조선군은 아무리 저항해도 소용이 없었다. 그나마 미군 전사자 3명도 조선군 수백 명이 필사적으로 화승총을 쏴서 만든 결과였다.
비록 미군은 조선의 결사 항전에 경악해 수교 요구를 거두고 물러나긴 했지만, 결코 조선의 승리라고 할 수 없는 전쟁이었다.
대원군은 척화 의식의 승리라고 대대적으로 선전하며 정권을 안정시켰다. 하지만 이는 정치적 수사에 불과했다.
‘승전’의 기세를 몰아 숙원 사업이었던 서원 철폐를 단행했지만, 진짜 이긴 전쟁이 아니라는 건 그 누구보다 대원군 자신이 잘 알고 있었다.
“진정한 양이(攘夷)란 무엇입니까? 무턱대고 서양을 배척하는 게 양이가 아닙니다. 양이(洋夷)의 우수한 기술과 무기를 받아들여 국권을 수호하고 양이를 격파할 힘을 키우는 것, 이것이 바로 청국과 일본에서 말하는 진정한 양이입니다.”
청의 양무파와 일본의 존왕파들이 서구식 개혁으로 선회한 후, 자국의 보수파들을 설득할 때 내세운 명분이다.
“전하, 바라옵건대 조선도 진정한 양이로 나아가야 하옵니다!”
이선은 조선에 돌아온 이래 가장 강력한 어조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