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606
3부 21화 국가 간의 평등
“실례합니다만, 먼저 폐하께 알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미합중국 정부는 기존의 비밀외교 관행에서 벗어나, 오직 공개된 형태로의 외교를 지지합니다.”
윌슨은 세계대전 이전의 관행이었던 비밀외교 폐지와 공개외교 전환을 촉구했고, 이에 따라 파리강화회의는 완전히 공개적인 형태를 보였다.
혁명 러시아의 비밀외교문서 폭로로 제국주의 국가 간에 밀약이 얼마나 치밀하게 진행됐는지 윌슨을 알 수 있었다.
윌슨이 보기에, 이선은 로이드조지나 클레망소를 뺨치는 밀약의 달인이었다. 특히 니콜라이 2세 같은 전제군주를 다루는 데는 이선만 한 인물이 없었다.
‘그동안 미국은 비밀외교를 전혀 안 한 것처럼 말하는구만.’
원역사의 시어도어 루스벨트와 태프트는 일본과 밀약을 맺었고, 변화한 역사에서는 한국과 밀약을 맺었다. 미국도 다를 바 없는 제국주의 국가였다.
어찌 됐건, 이선은 윌슨의 주장을 존중하기로 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전권대표단이 대한제국을 대표해 외교를 수행하고, 짐은 비공식적으로 조율할 뿐입니다. 오늘 각하와의 회견은 비공식적 회견이고, 정책을 결정하는 자리가 아니라 의견을 참조하는 자리가 될 겁니다. 물론 우리가 나누는 대화도 모두 기록되겠지요.”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선은 호의적인 미소를 지어 보였다.
“강화회의를 실질적으로 추동하는 4인위원회의 선례를 따라서 말입니다.”
수많은 회의에서 격론이 오고 갔지만, 실질적인 의사결정은 4인위원회 혹은 ‘빅4’, 즉 윌슨-로이드조지-클레망소-오를란도가 내렸다.
4인위원회는 비공식적으로 매일, 많은 경우에는 하루에 3번도 만났고, 모든 주요 결정을 내렸다. 기록을 남기고 다른 대표단에도 대부분의 내용을 공개했으므로 밀약은 아니었으나, 공개된 회의는 이들의 결정을 동의하는 자리였다.
‘사실상 3거두가 대부분을 다 결정하는 상황이니, 우리가 각자 접촉해서 협상하지 않을 수가 있겠나?’
이선은 이미 클레망소, 로이드조지, 오를란도와 비공개 회견을 해서 외교적 성과를 얻어 냈다. 이들은 한국의 요구를 대부분 수용할 의사를 보였다.
프랑스와 러시아 개입에 대한 전략적 모호성을 내세워 전쟁 이후에도 군사동맹관계를 유지하기로 했다. FT-17전차의 기술이전과 현지생산에 동의를 받아냈다.
영국과도 기존의 동맹관계를 유지하고, 만주 세력권을 인정받았다. 처칠을 움직여 압류된 독일 전함의 분배 참여 및 해군 건함기술 이전, 항공기 기술이전도 협력을 얻어 냈다.
이탈리아와는 이해관계가 떨어지기는 했으나, 강화회의에서 연대하여 중견국의 이익을 도모하고, 국제연맹 인종·국가 평등규약을 함께 추진하기로 했다.
이제 남은 건 윌슨의 미국이었다.
‘러시아 사회주의라는 붉은 유령의 위협 덕에, 영국과 프랑스가 예전과 달리 매우 협조적이었다. 러시아의 존재가 아니었으면 이렇게 많은 걸 받아낼 수 없었을걸.’
이선은 사실 혁명 러시아의 존재가 고마웠다. ‘세계혁명’의 전파를 우려하는 영국과 프랑스는 러시아에 과도한 공포감과 적대의식을 느끼고 있었고, 한국은 러시아와 인접한 지정학적 위치를 내세워 수혜를 받을 수 있었다.
러시아에 대한 영불 연합국의 정책은 변죽만 요란한 ‘NATO(No Action Talk Only, 말만 하고 실천은 하지 않는다)’였다. 누군가 먼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아야 하는데, 영불 연합국은 그 역할을 폴란드-체코슬로바키아-한국-일본이 맡길 원했다.
그 결과 강화회의에서 서방의 총애를 받는 유럽 국가로 폴란드와 체코슬로바키아가 있다면, 아시아 국가는 단연 한국이었다.
‘하지만 미국의 입장은 영불과 다르지. 다른 방법으로 공략해야 한다.’
대서양 너머로 힘을 과시함과 동시에 아시아-태평양으로의 진출을 원하는 미국은, 아시아에서 새로운 파트너를 찾았다.
그동안 한국과 일본은 모두 미국을 상대로 적절한 파트너임을 강조해 왔다. 한국 정부와 일본 정부 모두 파리에서 미국의 새로운 대외정책에 따를 의사를 밝혔다.
그런데 결국 경쟁에서 한국이 앞서기 시작했다.
일본이 추구하는 북수남진·해주육종 정책은 이선의 유도와 러일전쟁 무승부로 인해 강요된 사항이었지만, 일본 군부를 주도하게 된 해군의 관점에서 궁극적인 충돌 대상은 미국이었다.
영국에 이어 미국의 하위파트너 역할을 수행할 준비가 되어 있는 문민정부와 달리, 군부는 중국과 태평양에서 확장정책을 추구했다.
「만약 우리가 점령한 독일령 태평양 군도와 산동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군부와 국민여론은 결코 받아들이지 못할 겁니다. 귀국의 양해를 바랍니다.」
일본대표단은 거듭 설득했지만, 미국은 일본이 남태평양으로 진출하고, 산동까지 독점하려는 행태에 불쾌감을 느꼈다.
태평양 연안 주들은 일본인 이민에 위협을 느끼고 이민금지까지 내린 상황이었다. 특히 캘리포니아는 일본인의 토지 소유와 임차조차 금지시켰다.
캘리포니아에서 겨우 4천 표 차 승리를 거두어 재선에 간신히 성공한 윌슨은 여론을 신경 써서 일본에 강경한 정책을 추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에 비하면 한국은 미국과 충돌할 지점이 거의 없었다. 한국인의 미국 이민은 제한적이었고, 그나마 하와이에 집중되었다. 미국이 원하는 대로 만주의 문호개방과 이권 제공도 협력적이었다.
‘미국과 확실한 협력관계를 형성해야 해. 윌슨과 민주당이 차기 대선에서 패배하더라도, 공화당이 정책을 계승할 수 있도록.’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공화당 대선후보로 전 육군참모총장 레너드 우드 장군이 급부상하고 있었다.
공화당과 가까운 우드는 윌슨의 견제로 서부전선 원정군 사령관 자리를 퍼싱에게 내주고, 한직이라 할 수 있는 동부전선 원정군 사령관을 맡았다. 예상 밖의 선전으로 동부전선이 승리로 끝나자, 사령관 우드와 참모장 맥아더의 명성은 올라갔다.
승전 분위기를 타고 ‘전쟁영웅’의 위상은 올라갔고, 야전 군인으로 남은 퍼싱과 달리 우드는 정치적 야심이 충분했다.
우드는 동부전선에서 함께 싸운 한국과도 좋은 관계를 맺었고, 유럽-대서양 문제에 집중하고 있는 다른 미국 정치가들과 달리 아시아-태평양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윌슨과 민주당은 공화당 대선후보로 급부상하고 있는 우드를 견제할 필요성을 느꼈고, 우드가 주창하는 아시아-태평양 정책도 선수를 칠 생각이었다.
윌슨은 당대나 후대에서나 고결한 척하는 위선적 이상주의자로 평가되지만, 어찌 됐건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 재편을 최초로 추진한 대통령이다. 단순히 이상주의를 넘어 그게 미국의 국익에 가장 바람직한 일이라고 믿었다.
이선은 이 모든 조건을 감안해, 낚싯밥을 던졌다.
“각하. 일본이 끝까지 산동 영유를 고집한다면, 이는 명백히 민족자결과 중국의 주권을 침해하는 일이지만, 영국과 프랑스가 동의한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대신 완벽한 명분을 만들어야 합니다.”
“완벽한 명분이라면?”
“일본이 요구한 국제연맹 규약, 인종 혹은 국가 간의 평등을 승인하는 겁니다.”
“음, 그건…….”
윌슨은 난색을 표했다. 국제연맹의 주창자로서는 당연히 동의해야 할 대의명분이었지만, 그는 선뜻 동조하지 못했다.
이상주의적인 대외정책뿐만 아니라, 윌슨은 미국 국내에서도 진보적 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했다. 연방준비제도 설립, 연방소득세 부과, 독점금지법 강화, 파업과 보이콧 합법화, 산업별 8시간 노동제의 순차적 시행은 윌슨의 개혁성을 보여 주었다.
하지만 남북전쟁 이후 최초의 남부 출신 대통령, 남부의 중심지인 버지니아 출신이라는 정체성이 윌슨의 발목을 잡았다.
윌슨은 동양인 제자들을 받아들였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노골적인 인종차별주의자는 아니었으나, ‘인종분리’를 지지했다. 그는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든 남부의 인종주의 여론을 결코 무시할 수 없었다.
“각하께서 추진하는 국제연맹은 인류 최대의 이상이 실현되는 장입니다. 그런데 인종 간의 평등이라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국제연맹은 서양 백인만의 장이라는 비판을 받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선은 그런 사정 같은 건 모른다는 듯, 일부러 정론을 내밀었다. 도덕적 이상주의를 지향하는 윌슨에게는 정론이 더 큰 타격이었다.
“폐하, 일본의 요구는 순수한 인종평등 문제가 아닙니다. 평등규약의 구체적인 조문을 보면, ‘국제연맹에 참가하는 나라는 각국 내에 거주하는 외국인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건 명백히 미국과 호주의 일본인 이민금지를 겨냥한 겁니다. 대놓고 이민금지법을 비난할 수 없으니, 반대하기 어려운 명분을 내세운 거지요.”
윌슨의 분석은 타당했다. 일본이 순수한 의도로 인종평등규약을 앞장서서 주창하는 게 아니었다.
“각하, 저라고 그걸 왜 모르겠습니까? 일본은 서양의 입장을 시험하려는 겁니다. 일본 민족주의 여론은 의심합니다.”
「일본의 국력이 상승한 지금도, 서양은 여전히 우리를 2류 열강 처지로 놓으려 한다. 그러니 인종평등규약은 서양의 입장을 가늠할 최소한의 장치다.」
“국내용으로는 그렇고, 국제적으로는 중국 침략을 정당화하기 위해서입니다. 유색인종의 대표자 역할을 자처하는 명분을 확보하려는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니 그 명분을 파쇄해야지요. 한쪽에서는 인종평등을 내세우며 한쪽에서는 이웃나라를 멸시한다면, 누가 일본의 진정성을 믿겠습니까?”
윌슨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여전히 난처하다는 어조로 말했다.
“미국도 인종평등규약의 명분이 충분하다고 여깁니다. 반대하기가 어려운 제안이지요. 문제는 영국이 반대한다는 겁니다.”
일본이 제안하고 한국이 재청한 인종평등규약에, 세계 약소민족의 후원자를 자처하는 러시아는 당연히 동조했다. 이탈리아는 한국과 일본의 협력을 얻으려는 전략적 목표로 동의했다.
제국주의 국가일지언정, 자유·평등·우애라는 대혁명의 기치를 들고 있는 프랑스도 동조했다. 프랑스 대표 레옹 부르주아는 당대 서양에서 보기 드문 인종평등론자이기도 했다.
문제는 영국이었다. 미국 대표 하우스와 프랑스 대표 부르주아가 미국 독립선언과 프랑스 인권선언을 인용하여 ‘모든 인간의 평등’은 18세기 계몽주의와 혁명의 당연한 결과라는 걸 상기시키자, 영국 대표 밸푸어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18세기의 환상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백번 양보해서, 특정국가에서 태어난 모든 국민은 평등할 수 있습니다. 우리 서유럽 사람들은 모두 평등하지요. 하지만 서유럽의 진보된 인종과, 중앙아프리카의 미개한 인종이 어떻게 평등할 수 있습니까? 인종 간의 평등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보수당 전 총리이자 외무장관 밸푸어는 20세기 초 서양 보수주의자들의 시각을 여실히 드러냈다.
이 관점에서 볼 때, 인종은 결코 평등할 수가 없었다. 인종 간에는 차등이 있고, 앵글로색슨 문명이야말로 인류의 정점에 있었다.
영국은 ‘유색인종’뿐만 아니라 유럽 주변국에 대해서도 거침없는 비난을 가했다.
러시아도 ‘유사 유럽에 불과한 야만인들’이었다. 영국에 맞서는 아일랜드는 ‘하얀 검둥이들’이었다. 건국하자마자 신속히 영토 팽창에 나서며 갈등을 빚는 폴란드는 ‘동유럽의 아일랜드’였다.
물론 밸푸어는 현실주의적인 국제정치가이자 영일동맹-영한동맹의 기획자이므로, ‘동양의 친구들’이 불쾌할 만한 여지는 차단하려고 했다.
“물론 피부색이 모든 걸 결정하지는 않습니다. 개화되고 진보한 유색인종은 백인과 다름없는 성취를 낼 수 있습니다.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과 한국이 대표적인 사례지요. 하지만 두 나라를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은 갈 길이 멉니다.”
요컨대 한국과 일본은 ‘명예백인’으로 대접받을 권리가 있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명예백인 대접받는 동양인 입장에서도 궤변임에는 틀림없었다.
한국과 일본 대표단이 거듭 불만을 표명하자, 영국은 이들을 달래기 위해 당근을 제시했다.
‘진취적이고 개화된 국가’인 한국과 일본은 ‘미개국’인 중국을 분할하는 데 가담할 자격이 있었다. 영국이 한국의 만주 영유, 일본의 산동 영유를 지지하는 이유 중의 하나였다.
“영국의 반대는 중요한 게 아닙니다. 영국도 결국 명분상의 이유로 기권이 한계일 겁니다.”
영국도 도저히 명분상 반대할 수 없자, 자치령인 호주와 남아프리카의 결사반대를 이유로 들었다.
백호주의와 인종분리 정책을 추진하는 호주와 남아프리카는 본국이 인종평등 규약에 찬성하면 용납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영국은 영연방 자치령의 수장으로서 이들을 대변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으나, 영국의 입장에 동조하는 국가들은 극소수였다. 오직 미국만이 애매모호한 태도를 보일 뿐이었다.
“의장인 각하께서 결단하실 일입니다.”
한국과 일본은 영국의 반발을 고려해 ‘인종 간의 평등’을 ‘국가와 국민 간의 평등’으로 수정했고, 이미 규약위원회 23개국 중 대부분의 동의를 얻었다. 규약위원회는 규정상 과반으로 처리할 수 있었다.
“으음, 본인은 미국민의 대표자로서 남부와 서부의 여론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국제연맹의 대의를 위해서도, 국익을 위해서도 평등규약은 실현되어야 합니다. 모스크바는 세계 약소민족과 식민지의 보호자를 자처하고 있습니다. 만약 국제연맹이 부정한다면, 국제노동자연합(인터내셔널)에게 명분이든 실리든 지고 들어가는 겁니다. 국제연맹이 최소한의 모양새라도 취해 주지 않으면, 식민지 민족주의자들을 모두 사회주의로 전향시키고 말 겁니다.”
실제로, 파리강화회의와 국제연맹의 위선에 실망한 식민지 민족주의자들은 1920년대 대거 사회주의로 전향했다. 제국주의에 맞서 민족해방을 지원해 주는 국가는 소비에트 러시아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폐하께서도 영국과 프랑스처럼 러시아가 새로운 주적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한국은 러시아가 부정하는 자본주의 시장질서와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존중합니다. 하물며 짐은 군주인데, 그들이 짐을 용납하겠습니까? 이념상의 적이지요, 하하.”
한국은 혁명 러시아와 나쁘지 않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음에도, 이선은 일부러 차이를 더 부각시켰다.
“베를린의 군국주의자들은 식민지 인민에 희망을 주지 못했습니다. 독일이 영국과 프랑스를 무찌른다 한들, 제국주의 국가의 본질이 바뀌지는 않으니까요. 하지만 모스크바의 사회주의자들은 다릅니다. 영국과 프랑스는 러시아 대외확장의 변형이라고 생각하지만, 식민지 인민이 보기에는 전례 없는 희망의 약속을 주고 있습니다. 최소한 국제연맹은 평등을 존중하는 태도라도 보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유럽의 이념이었던 사회주의가 세계로 번지게 되는 걸 보게 될 겁니다.”
국제연맹이 인종평등규약을 추가하더라도 본질이 바뀌지 않는 이상 사회주의의 확산을 막을 길은 없겠지만, 최소한 명분상이라도 확보해 두자는 말이었다.
“과연, 일리가 있는 말씀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짐이 모스크바를 주적으로 여기는 건 아닙니다. 경쟁자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러시아를 지나치게 적대하면, 오히려 이들은 공포심리 때문에라도 혁명을 수출하려 들 겁니다.”
“저는 진작부터 러시아 개입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러시아 인민들은 러시아의 정치 체제를 선택할 권리가 있고, 현재의 정부는 혐오스럽다 할지라도 어찌 됐건 다수의 선택을 받은 정부입니다.”
이선은 윌슨 앞에서는 클레망소나 처칠을 만날 때와는 다른 입장을 보였다.
“우리 아시아-태평양 국가들은 유럽 국가들과 달리 러시아와 적대할 이유가 없습니다. 오히려 그들을 달래 가며, 새로운 국제질서에 협력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동의합니다만,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영국-프랑스와 척을 진 러시아는, 사실상 해외투자가 끊긴 상황입니다. 지금이야 사회주의 정책을 추진한다고 외국자본과 척을 지고 있지만, 결국 외화는 필요하기 마련이지요. 미국의 달러가 필요해질 순간이 올 겁니다.”
“그거 꼭 포드 씨의 의견과 비슷하군요.”
“하하, 포드 의원의 선견지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미시간주 상원의원으로 진출한 포드는 러시아 봉쇄 반대와 선제적 투자를 외치며 ‘러시아 사회주의자들에게 달러의 맛을 보여 주면 생각이 바뀔 것이다’라고 외쳤다.
“구체적인 계획은 다음과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