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615
3부 30화 황태자의 정치
광무 23년 6월, 대한제국 황성 경운궁.
올해 1월부터 대리청정 중인 이진은, 처음에는 국무회의에 참석하고 군주의 역할을 대리함이 어색하기 짝이 없었지만 어느새 꽤나 익숙해졌다.
“황태자 전하, 금일 결재하실 문서입니다.”
“음, 알겠소.”
이진은 매일 회의에 참석하고 막대한 양의 공문서들을 처리하면서, 새삼 부황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부황께서는 수십 년 동안 매일 이렇게 일을 하셨단 말인가?’
물론 이진도 어릴 적부터 봐 왔기에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이선은 일 중독자라고 할 정도로 국무에 빠져 살았다. 이선의 침전에는 언제나 새벽 늦게까지 불이 켜져 있었다. 어떤 날에는 이진이 아침 문안 인사를 드리기 위해 함녕전을 찾으면, 밤을 꼬박 새운 이선이 자리에 앉아 고심하고 있었다.
‘매일 국가의 진로를 결정하셨으니, 단순히 국무만 수행할 뿐인 나는 비할 바도 못 되지.’
이선은 매일 국가의 진로를 고뇌하고 결단을 내렸다. 물론 개화당 인사들과 유능한 참모들이 이선의 수족이 되어 함께 국가를 이끌었지만, 머리는 이선이었다.
‘나는 부황처럼 할 수가 없겠지. 그래, 입헌군주도 괜찮겠지. 부황의 성심도 그러하고.’
이진은 도저히 자신은 부황처럼 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대리청정을 하고 있다지만 사실상 내각의 결정 사항을 추인하고, 중대사는 파리의 이선에게 문의하고 재가하는 쪽이었다. 말하자면 견습생에 더 가까웠다.
“전하, 너무나 잘하고 계십니다. 국무에 임하시는 전하의 면모를 뵙자니, 마치 폐하의 젊은 시절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 늙은 신하는 감개무량할 따름입니다.”
“국가의 원훈이자 부황의 공신인 금릉위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기쁠 따름입니다.”
철종의 부마인 박영효는 황실의 일원으로 예우를 받아, 황실 행사에도 빠짐없이 참석했으므로 이진이 어릴 적부터 자주 보는 사이였다.
개화당의 1인자인 김옥균이 이선의 오른팔이라면, 2인자인 박영효는 왼팔이었다. 하지만 김옥균과 달리 이선과의 인간적 신뢰를 쌓는 데 실패한 박영효는, 대신 이진과의 관계를 강화했다. 이진은 원훈 박영효를 존중하고 잘 따랐다.
“그러하옵니다. 전하께옵서는 성상과 같은 성군의 자질이 있으십니다.”
“과찬이십니다, 당숙.”
이진이 또한 가깝게 지내는 이는 흥친왕 이준용이었다.
운현궁의 자산을 계승한 이준용은 철저한 근왕파를 자처하며 제국당을 창당했지만, 이선은 사촌 이준용의 야심을 탐탁지 않게 여겨 중추원 종신의관의 명예직만 내주고 정치에는 관여하지 못하게 했다.
운현궁에 대한 배려로 이선은 백부 이재면의 칠순을 맞이하여 예외적으로 친왕 작위를 내렸다.
흥친왕이 서거하자, 장남 준용이 작위를 계승했다. 황실전범에 따르면 친왕 작위는 증손까지 세습이 가능했다.
오랫동안 정치에서 배제되어 있던 이준용은, 황실의 큰 어른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청국이 몰락하고 러시아와 독일에서 군주제가 무너졌다고 해서, 대한의 군주제가 흔들릴 일은 없다. 대한 황실의 존엄성은 만세에 이르리라.”
본래 급진개화파를 대표하는 박영효와 대원군계열 보수파를 대표하는 이준용의 관계는 빈말이라도 좋지 못했지만, 근래에는 손을 잡고 뭉쳤다.
러시아 혁명과 독일 혁명은 한국 정치가들에게 위기의식을 심어 주었으니, 한때 급진개화파였던 박영효는 보수파로 선회했다.
서재필로 대표되는 개화당 좌파가 신민당에 더 가깝다면, 박영효의 개화당 우파는 제국당과 손을 잡는 길을 택했다. 이들은 일각에서 나오는 보통선거권과 영국식 입헌군주제 논의에 반대했다.
“지엄한 군상대권을 어찌 의회에게 내줄 수 있단 말인가?”
“무지한 인민에게 보통선거라니, 가당키나 한 소리인가!”
박영효는 이미 퇴임한 총리요, 이준용은 명예직인 중추원 종신의관이었으나, 이들은 막후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이들은 이진의 대리청정이 기회라고 생각했다. 도저히 속내를 짐작할 수도 없고, 감히 맞설 수도 없는 이선과 달리, 미래의 군주인 이진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했다.
정부 각료들이라고 해서 보수성이 다르지 않았다.
개화당 집권층의 사고방식이 버젓이 드러난 건, 3월 1일 보통선거권 집회와 5월 1일 노동절 집회에서였다.
“국민 여러분! 연합국의 승리는 바로 자유와 평등의 세계적 승리입니다. 반동적인 러시아와 독일에서 전제정이 무너지고, 국민이 선출한 의회가 권력을 잡았습니다. 영국과 미국에서도 여성을 포함한 완전한 보통선거권이 쟁취되었습니다. 이렇듯 보통선거는 세계적 추세입니다. 우리 국민들도 세금을 내고, 병역의무를 지는데, 왜 투표권은 제한받아야 합니까? 부자들만 의원을 선출할 권리가 있습니까? 모든 국민이 투표권을 행사해야 합니다!”
“옳소!”
1919년 3월 1일, 종로 파고다 공원에 보통선거권을 요구하는 시민이 모여들었다. 신민당과 진보당 양당이 공동주최하고, 재야단체들이 결합했다.
1919년 세계의 혁명적 분위기는 한국에도 전파되어, 정당이나 단체에 속하지 않더라도 정치참여의 욕구가 큰 시민들이 결집했다. 그 수는 물경 수만에 이르렀다. 파고다 공원에서 집회는 종종 있는 일이었지만, 정치 집회로서는 전례 없는 숫자였다.
“우리 성상께서는 현명하시고 정세에 밝으시며, 신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성군이시니, 진정한 일군만민의 군민공치를 이루시길 원하십니다. 하나 저 개화당 무리가 성상의 밝은 통치를 막고자 하니, 신하된 도리로도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겠습니까!”
“대한국 만세! 황제 폐하 만세!”
야당은 ‘군상대권에 맞서는 반역’이라는 정치적 공세에 맞서, 국가와 황제에 대한 분명한 충성심을 밝혔다.
“모든 국민에 선거권을 부여하고, 보통선거를 실시하라!”
“의회를 정부의 꼭두각시가 아닌, 진정한 민의의 장으로 삼자!”
“보통선거! 진정한 군민공치! 대한국 만세!”
시위대가 파고다 공원에서 피맛골과 청계천을 지나, 경운궁과 의회 양원, 각국 대사관이 있는 정동 방향으로 진출하려 하자, 경찰이 진을 치고 막았다.
“해산! 집회는 즉각 해산하시오!”
“사전에 허가를 받은 합법적인 집회인데, 무슨 권리로 해산한단 말이오?”
“황제 폐하의 황궁이자 태자 전하의 어소를 침범하려고 하니, 이는 보안법 위반이오!”
경찰은 보안법 원문과 내무대신의 포고령을 낭독했다.
「내무대신은 사회의 안녕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 결사의 해산을 명할 수 있다. 경찰관은 사회의 안녕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 집회 또는 다중의 운동 혹은 군집을 제한, 금지 또는 해산할 수 있다.」
보안법은 1914년 박영효 내각에서 제정한 법률로, 전시 하에 시위나 파업을 제한하기 위해 만든 법이었으나, 종전 후에도 노동운동이나 농민운동을 제한하는 용도로 쓰였다.
“우리는 대한국 헌법에서 보장한 집회결사의 자유를 따르고 있소! 보안법이 헌법보다 상위에 있단 말인가!”
“우리는 대한의 충성스러운 국민이다! 황태자 전하의 명이라 왜곡하지 마라!”
“내무대신은 각성하라! 순검은 물러나라!”
시위대에서 비판과 함께 거센 야유가 쏟아지자, 경찰은 곤봉과 채찍을 빼 들었다.
“선을 넘는 즉시 보안법 위반으로 체포한다! 진압준비!”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경찰은 곤봉을 휘두르며 시위대를 향해 위협하기 시작했다. 기마경찰은 채찍을 휘두르며 시위대를 내쫓았다.
“해산, 해산! 폭력에 맞서지 말고 해산합시다!”
“순검이 강압한다고 해서 물러날 수는 없소!”
“민의를 짓밟는 경찰은 물러나라!”
“저들에게 폭력을 행사할 명분을 주지 말고 물러납시다!”
집회를 주도한 이들이 야당 의원들이니 만큼, 시위대와 경찰의 무력 충돌을 막으려고 애썼다. 결국 시위대는 분노를 삭이고 자진해산했다.
“같잖은 놈들. 성상께서 유럽에 계시다고 이러는 건가? 황제는 무섭고 정부는 만만하다 이거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신민당과 진보당이 세를 결집시키려는 겁니다.”
“신민당과 진보당의 정권 찬탈 음모입니다! 결코 용인해 줘서는 안 됩니다!”
민영환 내각은 집회를 막아 버렸다. 개화당 우파에 속하는 내무대신 이규완은 계몽주의자에 청렴결백한 인사였지만, ‘체제 변환 시도’는 결코 용납하지 않았다. 그런 점에선 민영환도 마찬가지였다.
내각의 2인자인 참정대신 윤치호가 정부와 의회의 가교 역할을 하며 극한대립을 막고 있었지만, 박영효와의 파워게임에서 완전히 밀려 버린 상황이었다.
원훈 중 김옥균은 중국에 외유 중이고, 서재필은 파리에 있고, 유길준은 병석에 누워 있으니 박영효의 독무대였다.
“무작정 강경책으로만 나설 게 아니라, 일정부분 양보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성상께서는 언제나 진압이 능사가 아니라 하셨습니다.”
“좌옹(윤치호의 호), 지금은 양보할 때가 아니라니까. 우리가 경장에 나섰을 당시, 유림과 지방 사족들에게 양보만 했다간 절대로 경장을 성공시키지 못했네. 단호한 지도력으로 그들을 굴복시켰지.”
“그때와 지금은 시대가 다르지요.”
“마찬가지야. 작금 러시아와 독일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면 모르나? 인민은 하나를 양보해 주면 둘, 셋을 요구하고, 계속 내줘도 만족하지 못해. 좌옹도 우리 국민이 아직 정치적으로 성숙하지 못하다는 걸 잘 알고 있지 않나. 보통선거권? 아직 한 세대는 더 필요해. 30년은 일러.”
민영환과 박영효의 집회 금지 주청에 이진은 반문했다.
“저들이 제법 목소리가 크니, 내가 직접 야당 대표들과 만나서 담화를 하면 좋지 않겠습니까?”
“천부당만부당합니다, 전하. 지엄한 군상대권을 대리하고 계신 황태자께옵서 어찌 민당의 무리들을 친견하신단 말씀이옵니까? 마땅히 신등이 저들을 다독이도록 하겠사옵니다.”
“음, 알겠습니다. 하지만 관용과 양보를 베풀어야 합니다. 야당을 다독이고, 체포된 이가 있다면 석방시키세요. 나는 부황의 성심이 관용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하의 어지신 마음에 신등은 감읍할 따름이옵니다. 마땅히 그리하겠사옵니다.”
이진 자신도 ‘민당’을 불신했다. 그래도 보통선거권 요구라면 이진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이진은 자유주의적 개혁의 필요성에는 공감했다.
하지만 사회주의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5월 1일, 제29주년 노동절.
국제 노동자의 날인 5월 1일은, 서양에서는 매년 대규모 노동자 집회가 있는 날이었다.
한국은 지금껏 무풍지대라 할 수 있었으나, 올해는 달랐다.
러시아에서 불어오는 사회주의의 북풍이 동양에까지 닿고 있었고, 공업화와 호황으로 성장한 노동계급이 대오를 갖추기 시작했다.
정부와 기업의 어용노조를 탈피한 노동자들의 자발적인 조합이 형성되고, 사회민주주의를 전파하는 신한청년단이 노동운동에 이론적 뒷받침을 했다.
1919년 5월 1일은 노동계급이 한국 역사상 최초로 결집하는 자리였다. 파고다 공원에서 집회가 불허되자, 공장이 모여 있는 동대문 일대에 집결했다.
“동지들! 새로운 시대의 바람이 불어오고 있습니다. 세계의 변화를 보십시오. 더 이상 근로인민은 천대받고 억압받는 계급이 아닙니다. 새 시대의 변혁을 담당하는 주역이자, 당당한 주권자입니다! 노동자가 국가의 주인이 된 러시아와 독일은 물론이요, 영국과 프랑스, 미국에서도 일 8시간 노동과 공공부조 도입이 현실화되었습니다!”
신한청년단장 여운형이 단상에 올라 연설했다. 여운형은 다른 지식인들과 달리 탁월한 대중연설가이기도 했다.
“하지만 작금 대한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근로인민은 어떤 대우를 받고 있습니까? 저임금, 과다노동, 부당해고, 노조파괴, 사회적 차별에 시달립니다. 성상께서는 근로인민을 긍휼히 여겨 선진적인 법안을 도입하셨지만, 정책 집행자들과 자본가들은 이를 무시하고 농락하기 일쑤입니다. 이는 개화당 정권이 거대 자본과 유착한 게 원인이요, 근로인민의 목소리가 배제된 게 근본적 원인입니다.”
“옳소!”
“근로인민에게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듭시다! 근로기준법 준수! 임금인상! 8시간 노동 도입! 부당해고 금지! 노동조합 존중! 산업재해 인정! 공공부조 확대! 보통선거권 부여!”
여운형은 이러한 요구를 직설적인 구호로 압축했다.
“양반상놈 없는 세상, 빈부귀천 없는 세상, 모두가 배불리 먹고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 나갑시다!”
“와아아아!”
첫 노동절 집회는 공장 노동자 수천 명이 참석했고, 연설과 구호를 외친 후 자진해산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정부는 노동절 집회를 용납할 생각이 없었다. 소비에트에 대한 공포는 한국도 예외가 없었으니, 노동절 집회는 그 전조로 보였던 것이다.
내무대신의 명을 받은 경찰이 동대문에 집결했다.
“해산! 여러분은 불법 집회를 하고 있다. 즉시 해산하라!”
“때가 되면 해산할 것이오. 잠시만 기다려 주길 바랍니다.”
“여러분은 보안법과 방역법을 모두 위반하고 있다! 즉시 해산하지 않으면 진압하겠다!”
“순검 놈들아! 우리가 뭘 잘못했다고 죄인 취급이냐!”
“너희가 한번이라도 인민의 편에 선 적이 있느냐, 정부의 개들아!”
무소불위 경찰에 대한 반감은 일반 국민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바였지만, 특히 노동자들은 더했다. 파업이나 노사갈등이 발생하면 경찰은 반드시 사측 편을 들어 노동자들을 제압했다.
“동지들! 우리는 어디까지나 비폭력 집회를 해야 합니다! 저들이 진압할 명분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여운형과 지도부의 필사적인 만류에도, 경찰을 비난하는 목소리는 계속 커졌다. 살기등등한 분위기가 형성되자, 경찰이 먼저 곤봉을 빼들었다.
“보안법 위반, 방역법 위반에 관리모욕죄 추가! 현행범들이다. 즉각 체포하라!”
삐익!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경찰들이 곤봉과 채찍으로 노동자들을 구타하기 시작했다. 노동자들도 돌을 던지며 저항했지만, 경찰을 상대해 낼 수는 없었다.
여운형과 신한청년단 지도부, 집회에 참석한 노동자들은 줄줄이 체포되어 경찰서로 끌려갔다. 종로 인근 경찰서 유치장이 미어터져 분산 수용을 해야 할 정도였다.
“뭐 특별히 위해를 가한 건 없어 보이니, 적당히 훈방조치 합시다.”
“적색 바람이 불기 전에 초장에 진압해야 합니다. 무지한 노동자들은 그렇다 쳐도 저들을 선동한 지식인 무리들은 풀어 주면 안 됩니다.”
“특히 이 여운형이란 작자가 문젠데, 아니 국가의 녹을 먹고 외교관까지 지낸 작자가 사회주의를 선동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여운형 그 친구, 똑똑하고 호감 가는 친구였는데 어쩌다가 길을 잘못 들었는지……. 탄압이 능사는 아니니까, 잘 이야기해 봅시다.”
윤치호가 딱하다는 듯 혀를 끌끌 찼다. 민영환은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계급정당이니 노동조합이니 두 번 다시 헛소리 못 나오게 해야 합니다. 언론을 확실히 통제해서, 사회주의의 위험성을 널리 알리시오. 러시아에서 무슨 짓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똑똑히 알려야 합니다.”
개화당 정부는 사회주의는 물론이고, 일체의 사회개혁 요구도 사회주의로 취급했다.
과거 급진개화파였던 이들이 누구보다 사회개혁을 두려워하고 혐오했다.
“아뢴 대로 하십시오.”
이진도 내각의 조처를 재가했다.
미국,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에서도 격렬한 노동운동이 벌어지고 있으나, 당국은 당근과 채찍을 동시에 휘둘렀다. 한국은 더욱 엄히 나가야 했다.
‘위대한 러시아가 한 순간에 난장판이 된 걸 보았지. 사회주의 혁명 운운하는 놈들은 무질서의 파괴의 근원이다. 절대로 용인할 수 없다.’
1917년 러시아 방문에서 받은 충격으로, 이진은 민중 집회와 노동자 파업에 극도로 부정적인 인식을 갖게 되었다. 의회 의원들이라면 국민의 대표로서 존중해 주겠지만, 근본 없는 민중의 무리라면 달랐다.
이진은 자신이 올바른 판단을 내리고 있으며, 부황이라도 같은 결정을 내리리라고 생각했다.
파리의 이선은 국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보고 받고 있었으나, 전면에 나서지 않았다.
단지 지금은 황태자의 정치를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