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616
3부 31화 독립이라는 역
1919년 봄, 대한제국 정친왕 이안은 난생처음으로 유럽에 가게 되었다.
유럽으로 향하는 5주간의 기나긴 항해조차도 이안에게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러시아 차르 일가의 망명을 돕기 위하여 이르쿠츠크까지 간 적도 있다지만, 그건 여행이 아닌 임무였다. 이번은 진정 마음 편하게 기쁜 마음으로 떠날 수 있었다.
물론 이번에도 비공식적인 유람은 아니고, 공식적으로 폴란드 정부의 초청을 받아 모친 마르가리타와 함께 유럽을 방문하게 되었다지만, 바로 그렇기에 이안은 더욱 기뻤다.
“마침내 해방된 조국으로 돌아간다니, 지금까지 산 보람이 있구나.”
마르가리타는 진정 감개무량한 표정으로 유럽행을 받아들였다. 폴란드의 독립을 열망하는 투사였던 그녀는 마침내 일생의 소망을 이룩한 것이었다.
이안의 정체성은 엄연히 한국인이었으므로 어머니의 나라인 폴란드에 대한 애착은 그다지 없었지만, 어머니가 그토록 열망하던 독립이 이뤄지고 자유롭게 방문할 수 있다는 사실에 기쁘기 한량없었다.
“황명으로 당분간 유럽에 다녀오게 됐어요. 여러분의 체류에 불편함이 없도록, 궁내부가 최선을 다할 겁니다. 혹시라도 불편한 점이 있으면 서울의 궁내부로 연락을 하세요.”
이안은 대련에 망명 중인 올가·타티야나·마리야·아나스타샤·알렉세이 5남매와 당분간 작별을 고했다. 꽤나 돈독한 우정이 들었던 5남매는 이안의 유럽행에 아쉬워하면서도, 동시에 부러움을 느꼈다.
“어머님과 함께 유럽행이라니, 정말 부럽네요.”
“우리도 6년 전에 부모님과 함께 바르샤바를 방문한 적 있어요. 그때만 해도 정말 평화로웠는데, 지금은 많이 달라졌겠죠. 폴란드는 최전선이었으니까.”
불과 몇 년 전만해도 러시아 황제의 자녀로 제국 이곳저곳을 방문했던 5남매는, 이제 새장 밖으로 벗어나지 못하는 가련한 신세였다.
반대로 러시아제국의 정치범 신세였던 마르가리타는 독립한 조국의 초청을 받아 돌아가게 되었으니, 실로 운명의 극적인 반전이었다.
이안은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러시아제국의 붕괴는 그의 어머니에게 있어 일생의 소망을 이룬 일이었으나, 5남매에게는 재앙의 서곡이었다. 간신히 살아남긴 했어도, 가혹한 운명은 한치 앞도 짐작할 수 없게 했다.
“친왕 전하, 한 가지 부탁을 드려도 될까요?”
“예, 말씀하세요.”
“저희 친척인 드미트리 대공이 지금 중국 상해에 망명 중이라고 해요. 대련을 방문해서 저희를 만나고 싶어 하는데, 청국 정부가 입국을 허용해 주지 않는다고 하네요. 어떻게 입국할 방법이 없을까요?”
드미트리 파블로비치 대공은 알렉산드르 2세의 손자로 니콜라이 2세의 사촌이자 5남매의 당숙이었다.
하지만 나이는 27세로 올가와 4살 차이고, 어릴 적부터 가깝게 지냈으므로 친오빠 같은 존재였다.
“드미트리는 위험한 인물이 아니라 좋은 사람이에요. 그도 조국을 떠나 망명 중이라고 하니, 재회할 수 있으면 정말 기쁠 것 같아요.”
원역사에서 드미트리 대공은 유수포프 공작과 함께 라스푸틴 암살의 주역이었다.
이선의 개입으로 라스푸틴이 일찌감치 실각하는 바람에 역사의 주목은 받지 못했으나, 근위대 장교로서 동부전선에서 전공을 세운데다, ‘제정을 수호하기 위한’ 쿠데타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던 만큼 제정복고파들의 인기가 높았다.
쿠데타 실패 이후 좌천되어 캅카스 전선에서 복무하던 드미트리는 제정 폐지 소식에 불안감을 느끼고 페르시아를 거쳐 인도로 망명했다. 인도에서 영국행을 준비하던 중 5남매가 대련으로 망명했다는 소식을 듣고 동아시아로 향했다.
“으음……. 입국이 안 된다면 이유가 있을 터인데, 알아보겠습니다.”
“네, 꼭 부탁드립니다.”
일부 복고파들은 드미트리와 올가가 혼인하여 로마노프 황가의 정통을 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선은 입국을 불허하도록 했다.
그냥 친척끼리 재회만 한다면 상관없는 일이었지만, 드미트리의 입국을 계기로 복고파들이 제정복고를 선언하기라도 한다면 쓸데없는 일이었다.
“순수하게 친척 간의 재회가 목적이라면 입국을 허용하겠소.”
5남매의 부탁을 받은 이안은 황태자 이진에게 청원했고, 이진은 흔쾌히 입국을 허용했다. 다만 정치적 행위는 일절 금지한다는 조건을 붙였고, 드미트리도 이를 준수하겠다고 서약했다.
근래 러시아 정세가 혼란에 빠지면서, 극동지역의 귀족과 부르주아지가 국경을 넘어 하얼빈으로 몰려들었다. 하얼빈을 조차하여 통치하는 동청철도 경비대는 소비에트 정부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으므로, 하얼빈이 극동지역 우익의 거점이 되고 있었다.
만주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한국 정부도 유사시를 대비해 이들의 망명을 받아들이도록 했다.
마침내 러시아에서 내전이 발발하자, 망명자들은 기회가 왔다 여기고 대련의 5남매를 내세워 이른바 ‘러시아제국 망명정부’를 구상했다.
이선은 이러한 구상을 망상으로 여겼지만, 주청 영국 공사가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망명자들의 기세가 올랐다.
5월 중순, 한국과 소비에트 러시아 간에 우발적인 충돌까지 발생하여 적대관계가 되자 망명자들의 기세는 더욱 올랐다.
이들은 연합국, 특히 한국군의 힘을 빌려 제국 재건의 기회가 왔다고 판단했다.
“러시아의 적법한 통치자는 오직 로마노프 왕가뿐이다!”
“정통 러시아제국을 재건하자!”
“알렉세이 대공 전하 만세!”
6월, 하얼빈에서 망명귀족들을 중심으로 제정복고가 선언되었다. 본인의 동의 없이 알렉세이 대공을 계승자로, 드미트리 대공을 섭정으로 선포했다.
이선은 사회혁명당과 자치주의자가 주도하는 시베리아 임시정부를 지원할 생각이었으므로, 제정복고파의 주장은 언감생심이었다.
복고파의 기반이 될 동청철도 경비대 사령관 호르바트 장군조차 한국의 설득을 받아 시베리아 임시정부에 동조하였으므로, 복고 선언은 그들만의 잔치에 불과했다.
“우리는 어떠한 경우에도 정치에 개입할 생각이 없으며, 제정복고는 러시아 국민이 결정할 사항이지 망명자인 우리가 마음대로 결정할 일이 아닙니다.”
올가 여대공은 5남매를 대표하여 제정복고에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다분히 한국 정부의 압력을 받기도 했지만, 5남매의 맏이로 사실상 가장 역할을 수행하는 올가는 아픈 알렉세이를 내세워 제정복고파의 모험에 가담할 생각이 없었다.
이로써 제정복고 선언은 작은 해프닝 정도로 끝나고 말았다.
하지만 5남매의 운명은 결코 평안함을 유지할 수 없었다. 황제의 자녀로 태어난 시점에서, 그들은 주목받을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드미트리, 망명귀족들이 바보 같은 짓 못 하도록 단속해 줘요.”
올가는 드미트리 대공과도 순수하게 가족 간의 재회로 생각했을 뿐, 결혼해서 로마노프 왕가의 정통을 계승하겠다는 생각도 없었다.
“올가, 물론 망명자들이 바보짓을 하고 있지. 하지만 마침내 소비에트에 맞서는 전쟁이 일어났으니, 어떻게든 제정복고의 불씨를 만들어야 해.”
“우리나 드미트리 모두 한국 황제 폐하의 양해를 얻어 이곳에서 살고 있는 처지에요. 괜히 나서서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요.”
“영원히 여기서 살 수는 없어. 언젠가는 수복될 러시아로 돌아가야지. 너는 차르의 장녀고, 알렉세이는 황태자야. 너희에게 주어진 운명을 피하지 마.”
“…… 알료샤는 아파요. 분명히 말하는데, 당분간 어떤 행동도 할 생각이 없어요.”
올가의 단호한 거부에 드미트리도 더 이상 채근하지 않고 물러났다.
‘차라리 유럽으로 망명하면 복잡한 일에 휘말리지 않을까. 영국은 안 되겠지만, 외할머니의 나라인 덴마크에서 받아 준다면…….’
올가는 문득 어리지만 사려 깊은 이안이 떠올랐다. 폴란드에 잘 도착했는지, 어찌 지내는지 궁금했다.
* * *
마르가리타와 이안은 이탈리아령 트리에스테 항구에 도착한 후, 기차를 타고 오스트리아 빈을 거쳐 폴란드 남부 크라쿠프에 도착했다.
이안은 말로만 듣던 유럽, 특히 아름답다고 소문이 자자하던 제국의 수도 빈의 황폐한 모습에 놀랐다. 숙부 이영이 오스트리아 공사를 지내던 시절, 빈의 아름다움을 얼마나 찬미했던가.
하지만 빈은 이제 몰락한 패전국의 수도였다.
이미 전쟁 때부터 심각한 물자부족에 시달렸던 오스트리아는, 패전 이후에도 상황이 결코 나아지지 않았다. 연합국의 봉쇄는 조약을 강요할 목적으로 계속되었고, 수백만 인구가 거주하지만 식량 반입이 극히 줄어든 빈은 극심한 기아에 빠졌다.
잘 차려입은 아이들도 굶주린 배를 움켜잡고 무료배급소를 기웃거리고, 전락한 귀족의 부녀들이 길거리에서 가재도구를 팔고, 과거에는 권위를 뽐내고 다녔을 장교가 초라한 군복 차림으로 구걸했다.
“정말 너무하구나. 어린아이들이 굶주리는 일은 없어야 하는데…….”
마르가리타는 폴란드 분할에 가담한 프로이센과 합스부르크 제국에도 좋은 감정이 없었지만, 아이들이 굶주리는 현실에 연민을 느꼈다.
‘번영하던 국가도 전쟁에서 패하면 이렇게 되는구나.’
이안은 고대하던 유럽의 첫 모습에 경악했다.
도처에는 붉은 깃발이 휘날렸다. 분노한 노동자들은 황제와 정부의 무능함, 연합국의 가혹함을 규탄하며 시위를 벌였다.
‘이러다가 러시아에 이어 베를린과 빈에서도 사회주의 혁명이 발생하면 어쩌려고 이러는 거지?’
물론 연합국도 이안이 인식하는 문제를 고려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연합국에서도 동정적인 여론은 있어 봉쇄를 철회하고 식량을 공급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적잖았지만, 중부동맹국에게 가혹한 보복을 원하는 강경한 여론이 지배적이었다.
그 무렵 영국에서는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굶주리는 아이들을 위한 모금이 전개되었지만, ‘적국의 아이들을 위해 돈을 모으려 하는 배신자’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100만 이상의 전사자를 낸 영국과 프랑스의 대중은 결코 적국을 용서하지 않으려고 했다.
폴란드 공화국 수도 바르샤바.
4년간의 전쟁으로 폐허가 된 건 폴란드도 마찬가지였지만, 마침내 독립을 쟁취한 신생국가의 활력이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왕자님!”
“폴란드 국민은 왕자님을 환영합니다!”
이안은 폴란드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환대를 받았다. 그 자신도 놀라울 정도였다.
마르가리타를 향해서는 더욱 열렬한 찬사가 쏟아졌다.
“아, 마침내 돌아왔구나!”
크라쿠프 역에 도착한 마르가리타가 기차에서 내려 감격한 표정으로 해방된 조국의 전경을 바라보자, 환영하는 인파가 몰려나왔다.
“얀코프스카 여사, 해방된 조국으로 어서 오십시오!”
“폴란드의 모든 애국자들은 여사의 귀국을 열렬히 환영합니다!”
신문은 호외를 찍어 마르가리타의 귀국을 알렸다.
조용한 방문을 원했던 마르가리타로서는 놀라운 일이었다.
한때 마르가리타가 현 폴란드 국가원수인 유제프 피우수트스키의 폴란드 사회당 조직에 가담하여 독립운동에 동참한 건 분명한 사실이었으나, 1896년에 체포되어 한국으로 떠난 이후로는 독립운동에서 멀어져 있었다.
유제프의 형인 브로니스와프를 통해 비밀리에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했지만, 오히려 그녀 자신은 폴란드 독립에 기여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
그런데 폴란드 언론은 ‘구국의 여인’ 운운하며, 가는 곳마다 열렬한 환영인파가 뒤따랐다.
수도 바르샤바에 도착하자, 더 많은 환영인파가 쏟아져 나왔다.
“여러분, 환대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마침내 조국을 해방시키는 날까지 투쟁했던 동지들에게 진심으로 경의를 표합니다. 조국의 해방을 위해 헌신한 동지들과 달리, 머나먼 곳에서 조용히 살았던 저를 이토록 환대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영문을 모르겠는 마르가리타가 환대에 겸양의 뜻을 보이자, 사람들이 화답했다.
“여사께서 지난 시간 동안 폴란드 독립을 위해 헌신한 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도와주셨지요.”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파리에서는 한국 황제 폐하께서 폴란드를 돕고 계시지 않습니까?”
폴란드인들은 베스트셀러 소설 ≪한국의 삶≫이 진실이라고 오해했다.
한국이 우방국인 러시아의 편을 들지 않고 러일전쟁에서 중립을 지키고, 폴란드 독립운동을 배후에서 지원하고, 마침내 독립을 쟁취한 폴란드를 파리에서 적극 지지하는 모양새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애국자인 여인이 한국 황제에게 간청하고, 한국 황제가 사랑하는 연인을 위하여 행동했기 때문이다.
당사자인 이선이 들으면 기가 막혀 코웃음을 칠 일이었지만, 이미 그런 신화가 만들어졌다.
「구국의 여인이 마침내 조국으로 돌아왔다!」
이미 폴란드에서는 여성 애국투사의 신화가 대대로 이어져 내려왔고, 나폴레옹이 아끼는 정부(情婦)이자 애국자였던 마리아 발레프스카의 존재로 인해 나폴레옹도 폴란드 해방의 후원자로 여겨졌다.
나폴레옹이 폴란드 독립을 지원한 건, 당연히 애인의 말을 들어서가 아니라, 적대국인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를 견제할 친불국가를 세울 목적이었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이선은 그럴 필요성조차 못 느꼈고, 소비에트 러시아와의 관계가 악화되자 폴란드와의 관계를 강화할 필요를 느끼는 정도였다.
하지만 연합국의 호의를 기대야 하는 빈약한 신생국 입장에서는, 연합국 최고위원회에 속하는 국가의 황제에게 폴란드 애인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하물며 독립운동가였으니 말할 것도 없었다.
요컨대 마르가리타는 제2의 마리아 발레프스카여야만 했다.
“얀코프스카 동지, 이게 얼마 만입니까?”
신생 폴란드 공화국의 최고 권력자, 정부수반이자 군 통수권자를 겸임하는 ‘임시 국가원수’ 유제프 피우수트스키가 직접 마르가리타를 맞이했다.
“원수 각하, 해방된 조국에서 각하를 뵙게 되니 기쁨을 감출 길이 없습니다.”
“원수 각하는 무슨, 예전처럼 동지라고 부르세요. 마침내 자유로워진 조국으로 돌아왔음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피우수트스키가 손을 내밀자, 마르가리타는 눈물을 흘리며 손을 맞잡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안은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어머니가 이런 모습을 보이기는 처음이었다.
“오, 한국의 왕자님. 초청에 응해 폴란드에 와주셔서 기쁘게 생각합니다.”
“초청과 환대에 감사드립니다, 각하. 부황께서 제게 각하께 드릴 서한을 첨부하셨습니다.”
이안은 이선으로부터 받은 전문을 피우수트스키에게 전달했다. 원수는 내용을 읽더니 곧 반가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폐하께서 폴란드의 정부에 초청에 응하여 친히 오신다 하니 기쁠 따름입니다. 자, 그러면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오찬이 준비되었습니다.”
모스크바 크렘린이 소비에트 정부의 청사로 쓰이듯, 바르샤바 왕궁이 임시 정부청사로 쓰이고 있었다. 과거 시베리아에 유배되었던 혁명가들이 권좌에 앉아 권력을 행사했다.
피우수트스키도 시베리아 유형을 선고받은 바 있고, 그 이유도 현 러시아 정부를 이끄는 블라디미르 울리야노프의 형 알렉산드르가 조직한 혁명 조직에 가담했었기에, 오늘날의 러시아 지도자들과는 똑같이 제정에 맞섰던 ‘동지’였다.
하지만 피우수트스키는 세계혁명을 꿈꾸는 소비에트 지도자들과는 결정적으로 달랐다.
전투적인 폴란드 사회당을 이끌었던 사회민주주의자였지만, 독립 이후의 세계관은 달랐다.
“동지, 바르샤바 역에 처음 도착했을 때 기분이 어땠습니까?”
“너무나 감격스러웠지요. 마침내 조국이 해방되었다는 것, 정부가 수립되어 저를 초청했다는 것, 자유로이 조국에 돌아와 동포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 모두가 감격스러웠습니다.”
“나 역시 작년 11월에 바르샤바 역에 도착했을 때 크나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때 결심했지요.”
피우수트스키는 확고한 어조로 말했다.
“우리는 그동안 사회주의라는 붉은 열차를 탔으나, 독립이라는 역에서 내렸습니다.”
피우수트스키에겐 조국이 사회주의보다 훨씬 중요했다. 사회주의는 어디까지나 독립의 수단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