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625
3부 40화 진정한 국민국가
프로이센 쿠데타가 실패로 끝났다는 소식을, 이선은 유럽의 마지막 방문지인 그리스에서 들었다.
비록 쿠데타의 여파로 독일은 더욱 혼란스러워지겠지만, 이선은 쿠데타가 실패했다는 사실에 만족했다.
‘파시스트들은 용인할 수 없다. 파시즘이 전간기의 특징이라고는 하지만, 원류인 이탈리아 파시즘과 독일 나치즘을 막으면 파시즘의 확대는 최대한 늦출 수 있겠지.’
이선은 공산주의 못지않게, 아니 그보다 더 파시즘을 혐오했다.
이탈리아 파시즘, 독일 나치즘, 일본의 천황제 군국주의, 기타 등등. 파시스트와 그 일파들이 저지른 끔찍한 만행을 알고 있는 이선으로선, 국익을 떠나 역사적인 관점에서도 용납할 수 없었다.
‘이탈리아와 독일에서 파시즘이 승리하여 전례를 보이면 대한도 시끄러워질 게 아닌가. 갈수록 민족주의와 팽창주의 성향이 강해져서 우려스러운데. 장차 대한에서 극단주의 세력의 위협이 있다면 그건 왼쪽이 아니라 오른쪽에서 올 거다.’
이선은 사회주의 세계혁명보다는 파시즘 세계혁명을 더 우려했다. 지금 한국의 정치구도를 보면 사회주의가 승리할 가능성은 극도로 미미했다. 하지만 민족주의와 팽창주의가 파시즘과 결합해서 극단화될 가능성은 있었다.
이선이 살아 있을 때는 그들을 완전히 제압할 수 있겠지만, 만약 자신이 죽고 난다면 그 뒤를 장담할 수 없었다. 이선은 안정적인 헌정 시스템을 구축하기로 결심했다.
국제질서 수정주의 세력의 득세와 새로운 전쟁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쳐도, 파시즘은 절대로 용인할 수 없었다. 유럽에서도 파시즘은 패배해야 했다.
“조약을 거부하는 독일 쿠데타 세력이 몰락한 건 기쁜 일이지만, 조약을 부정하는 세력은 언제든지 등장할 겁니다.”
이선의 말에 그리스 총리 베니젤로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당장 터키만 해도 용납하지 않을 분위기 아닙니까.”
아직 오스만제국과의 강화조약은 확정되지 않았지만, 영국 총리 로이드조지의 강력한 주장으로 오스만제국의 해체는 기정사실이 되었다.
1. 이스탄불과 보스포루스 해협은 명목상 오스만령으로 남겨 두되 연합국 통제위원회가 관리한다.
2. 이스탄불을 제외한 트라키아(터키령 유럽) 전체와 아나톨리아 서부 스미르나(이즈미르)는 그리스로 할양한다.
3. 아나톨리아 남부는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세력권으로 한다.
4. 아르메니아의 독립과 쿠르드의 자치를 승인한다.
5. 아라비아는 헤자즈 왕국에 귀속된다.
6. 이라크와 팔레스타인은 영국이, 시리아와 레바논은 프랑스가 위임 통치한다.
이대로라면 사실상 오스만제국은 산산 조각나고 연합국의 보호령이 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동시에 오스트리아-헝가리와의 강화조약도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었으나, 연합국 간의 이견으로 도나우 연방의 생존여부가 진통을 겪고 있었다.
“고토를 수복하려는 귀국 국민의 열망은 충분히 이해합니다만, 패전국에 지나친 굴욕을 안겨 주는 건 곤란합니다. 이는 반드시 새로운 전쟁을 불러일으킬 겁니다.”
그리스는 마침내 ‘위대한 이상’, 고토수복을 실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스가 열망하던 콘스탄티노폴리스(이스탄불) 수복은 보스포루스 해협의 지배를 원했던 영국에 의해 가로막혔으나, 로이드조지는 그리스 최대 후원자였다. 영국의 후원을 받아 그리스군은 스미르나와 서부 지역에 진주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지나친 과욕은 금물이지요.”
베니젤로스는 탁월한 외교적 성과를 발휘하여, 그리스는 파리강화회의의 승리자가 되었다.
그러자 그리스 민족주의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그리스 국력의 한계를 뛰어넘는 팽창을 외치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현실주의자인 베니젤로스는 그게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었고, 조약에서 정해진 지역 이상으로는 넘어가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베니젤로스의 정적인 왕당파는 동로마 재건을 부르짖었고, 호전적인 여론이 결집했다. 군부도 오스만을 완전히 제압하고 팽창에 나서자고 외쳤다.
이는 탁월한 외교가인 베니젤로스도 통제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상대적 온건파인 베니젤로스는 파리에서 외교적 승리를 거두고도 격렬한 비난을 받고 있었고, 차기 총선에서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다.
이선은 여기까지 온 김에 이스탄불을 방문했다. 오스만제국 문제는 한국과 무관했으나, 흑해 너머에서 벌어지는 러시아 내전과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정보를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현재 이스탄불은 명목상 오스만 정부가 통치했지만, 연합국 해협통제위원회의 군정이 이뤄지고 있었다.
“그동안 노고가 많았네, 안 부장.”
“황공하옵니다, 폐하.”
이선이 해협통제위원회의 한국 대표인 안중근 부장을 격려하자, 안중근이 겸손히 고개를 숙였다.
“근래 여기 상황은 어떤가?”
“연합국에 순응하는 자유주의 신정부를 세웠으나, 터키인들은 연합국의 통제에 반발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도 연합군의 점령에 반대하는 격렬한 대중시위가 있었습니다.”
“그래, 누군들 외국군 점령을 환영하겠나. 당연한 결과겠지.”
이선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나라와 달리, 오스만의 수도 이스탄불은 연합군의 직접적인 지배에 들어갔다. 러시아의 남하에 대비하는 목적이라고는 하지만, 현지 주민들 입장에선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
“지금 터키 동부에서는 갈리폴리 전투의 영웅인 케말 파샤가 연합군 점령에 반대하는 국민위원회를 조직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궐석재판에서 반역죄를 선언했지만, 민심은 그쪽으로 쏠리고 있습니다.”
‘결국 케말도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는군.’
훗날 터키인의 국부, ‘아타튀르크(터키의 아버지)’가 되는 케말 파샤가 역사의 전면에 등장했다.
유능한 장군으로 갈리폴리 방어전의 영웅인 무스타파 케말(Mustafa Kemal)은 연합군의 점령과 과도한 할양 요구에 반발해 아나톨리아 동부로 이동, 저항위원회를 조직하고 있었다. 케말은 자신이 오스만제국의 장군이 아니라 ‘터키 민주공화국의 군인’이라고 선언했다.
“신은 사실 일전에 케말 파샤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가 직접 제 사무실에 찾아왔었지요.”
“호오, 어떤 대화를 나눴는가.”
「나는 군인이자, 동시에 터키의 개혁과 근대화를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귀국이 단기간에 거둔 놀라운 성과에 감탄을 금치 못합니다. 특히 귀국 황제 폐하는 우리 터키인들은 개혁의 모델로서 본받고 싶습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터키인들이 자주적인 국민으로서 주권을 행사할 수 있을 때 이룰 수 있는 일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외세의 점령을 물리칠 것입니다. 그 후에 귀국에 사절을 보내 진정한 우호를 맺고 가르침을 청하겠습니다.」
케말 파샤는 터키의 근대화를 꿈꾸는 청년 튀르크당의 일원이기도 했으므로, 급진적 근대화를 이룩한 한국은 당연히 그에게 있어 롤모델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한국이 터키를 옥죄는 연합국의 일원이 된다면, 결국 적이 될 수밖에 없다는 말이기도 했다.
“파샤의 입장이 충분히 이해가 되네.”
“신은 오래전부터, 아시아의 단결과 자주독립을 희망했습니다. 물론 그동안의 터키는 오히려 소수민족을 억압하는 제국이었지요. 하지만 제국을 무너트리고 진정한 국민국가로서 재탄생하게 된다면, 신은 파샤의 결단을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안중근은 과거 시종무관이었던 것처럼 솔직히 자신의 속내를 밝혔다가, 고개를 숙였다.
“황공하옵니다. 신하된 처지로 감히 함부로 국체를 논하다니…….”
“아닐세. 나는 경의 솔직함을 좋아하네. 경의 말에 동감하기도 하고.”
안중근은 팽창주의적 아시아주의자가 아니라, 진정한 의미의 아시아주의자였다. 그가 터키에 감정이입했다기보다는, 오스만제국에서 청국과 중국을 보는듯했다. 만약 중국이 소수민족들의 자결권을 존중하여 모두 독립시키고, 진정한 국민국가로 거듭난다면 동양평화의 일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 흑해 너머의 상황은 어떤가?”
이선은 안중근의 어색함을 달래기 위해 일부러 화제를 돌렸다.
“예, 남러시아 백군과 소비에트 적군이 돈바스 전선에서 치열한 교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백군의 공세에 유조프카(도네츠크)가 점령되었고, 적군은 가까스로 전선을 유지하고 있다 합니다. 서부로 퇴각했던 우크라이나군도 키예프 방면으로 공세를 개시, 수도 탈환을 앞두고 있다 합니다.”
“그 말대로라면, 백군이 우세한 게로군?”
“표면적으로는 그렇습니다만, 관전무관으로 있는 김광서 부령의 생각은 다릅니다.”
“무엇이 문제인가?”
“분명 백군의 조직력과 지휘능력이 더 뛰어나기는 합니다만, 지도부가 극도로 경직되어있다고 합니다. 예컨대 토지개혁은 소비에트 정부가 일방적으로 한 거니까 새로 소집될 의회에서 결정한답시고 취소하고 있어서 농민들의 반발을 사고 있습니다.”
이선은 냉소를 흘렸다.
“그럴 줄 알았네.”
“그리고 우크라이나군은 분명 소비에트 정권에 맞서는 ‘적의 적’인데, 백군은 이들도 반역자 취급하면서 키예프 방면으로 공격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합니다.”
“러시아 우익들의 반동적 이념과 대러시아주의가 어디로 가겠나? 결국 그 경직된 태도가 그들의 발목을 잡고 말 것이네. 하지만 아시아에서 대한의 안보를 위해서 백군이 최대한 버텨 주는 게 좋지.”
이선은 안중근에게 지시사항을 은밀히 일렀다. 안중근은 고개를 끄덕였다.
‘역사대로라면 그리스는 결국 케말 파샤의 터키 대국민회의에 패배하게 되지. 아마 특별한 변수가 없는 한 그리되겠지. 그리스는 한국의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고토수복’에 대한 열망이라면 한국도 그리스 못지않았다.
물론 만주는 이미 한국이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상황이었으므로 이미 그 목표는 달성했다고 할 수 있었지만, 일부 팽창주의자들은 고구려와 발해의 부활을 운운하며 병합까지 외치고 나섰다. 우익들 사이에서는 공공연히 그런 주장이 튀어나왔다.
대한제국이 ‘7대 승전국’이 되고, 북방의 대국인 러시아마저 동아시아에서 철수하는 상황이 되자, 팽창주의자들은 이제 거리낌이 없었다.
이선은 국내에서 들어오는 소식을 듣고 혀를 찼다.
‘미친놈들 아닌가? 지금껏 청국을 보호국으로 만들어 만주의 실질적 지배를 인정받으려고 얼마나 노력했는데, 병합으로 열강의 공적이 되라고? 설령 어떻게 병탄한다 해도, 만주를 병탄하면 배보다 배꼽이 커진다는 걸 모르나? 그 일제조차도 만주를 괴뢰국으로 만족했건만, 점점 선을 넘는군.’
이선에게 있어 고토수복이라는 건 어디까지나 대내외적 명분일 뿐, 그 자체가 목표가 될 수 없었다.
이미 만주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상황에서 무리수를 둘 이유가 없었다. 명목상 민족자결이 대세가 된 베르사유 체제하에서는 병탄조차 불가능하고, 병탄한들 안정적으로 관리하기는 힘들었다.
심지어 발해의 고토인 연해주를 되찾고, ‘범(凡)한민족’인 몽골의 독립을 위하여 러시아와 일전을 벌여야 한다는 주장까지 등장했다. 극소수에 불과하다고는 해도, 이선은 이런 주장이 나온다는 거 자체가 사회의 병리적 현상이라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전쟁에서 져 본 적이 없이, 운 좋게 외교의 혜택을 다 누려서 그런가? 자주독립을 넘어 만주까지 지배하게 되었는데도 부족한가?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군.’
기실 이선의 책임이 없는 건 아니었다.
역사적 지식을 활용하여 지도력을 발휘해 외교든 전쟁이든 연전연승을 거듭해 왔고, 국력을 능가하는 막대한 성과를 냈다. 변화한 역사의 한국인들은 이게 정말로 자신들의 실력이라고 믿게 되었다.
현재의 한국은 마치 원역사의 러일전쟁 이후의 일본을 보는 느낌이었다.
‘이래서야 일제의 길을 걷겠는걸. 그나마 다행인 건 군부의 문민통제가 확실하게 되어 있고, 황제의 권위가 절대적이라 정부고 군부고 국민이고 전부 복종한다는 거지. 근데 이런 전제주의 체제로 얼마나 더 갈 수 있나?’
이선이 내심 숙청을 결심한 개화당 우파를 비롯한 정치 엘리트 몇몇을 교체한다고, 궁극적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내가 영원히 살지 않는 이상 1인 지배체제로는 한계가 있다. 개화당이 지향하는 일본식 과두제라고 나은 건 없다. 결국 답은 대의제의 강화와 민주헌정인데…….’
지배세력과 지식층 대부분은 민족주의, 팽창주의, 아시아주의에 공감했다.
그나마 야당인 신민당이나 진보당이 대외문제보다는 국내개혁에 집중하는 편이었지만, 이들도 ‘아시아의 문명국인 대한제국의 지도적 위치’를 부정하는 건 아니었다.
물론 대다수 민중은 먹고살기에 바빠 이런 고담준론에 무관심했지만, 시야를 돌리고 대중을 동원하기 위한 선동은 언제든지 나타날 수 있었다.
보통선거와 입헌군주정이 도입된 후에도, 대중과 결합한 파시즘의 가능성은 충분히 있었다.
‘정치적으로 성숙하지 않은 상태에서, 극단의 시대를 맞이하는구나. 자주독립과 부국강병, 열강 합류라는 외적 목표는 확립했으나, 내적 문제는 산적해 있지. 하, 목표 하나를 달성하면 다음 목표가 문제니.’
이선은 ‘역사의 진보’를 확신하는 19세기적 관점을 따르면서 국민의 시대로 이행을 준비했지만, 유럽에서 파시즘과 극단의 시대가 마침내 모습을 드러내는 걸 보면서 다시금 고민에 빠졌다.
‘과연 지금의 정당과 국민에게 권력을 넘겨도 되는 것인가? 충분히 정치적으로 성숙되어 있는가?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팽창주의에 나서지 않을까? 팽창주의 우익, 혹은 파시즘이 집권하는 거 아닌가? 그리스와 일본, 이탈리아와 독일의 실패를 한국이 답습하는 거 아닌가?’
한동안 낙관적이던 이선은 다시 회의적으로 변했다.
‘아무래도 내가 오래 살아야겠다. 입헌군주정을 실시하고도 성숙한 정치 체제가 확립될 때까지 10년은 더 이행기가 필요하겠어.’
이선은 장기집권 중인 지도자의 모순으로 빠져들었다. 「이 나라는 내가 아니면 안 된다.」
이선이 보기에 근본적인 문제는, 유교적 충군 이념이 지배하는 국가에서, 갑자기 효율적인 위로부터의 근대화를 거치면서 민족주의 이념이 지배하는 국가가 되자, 국민이 국가에 복종하는 걸 당연히 여긴다는 것이었다.
국민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는 당위적 관념이 이선을 지배하면서도, 내심으로는 정치가와 국민을 불신했다.
하지만 이는 이선의 오만, 권력자의 오만이었다.
한국 국민이 정부의 부당함에 언제나 복종하는 건 아니었다. 지난 40년의 근대화 결과, 한국인들도 서서히 외적 근대화만이 아니라 자유와 평등이라는 근대의 가치를 내재화하고 있었다.
이선과 정부 엘리트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상황이, 국내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진정한 국민의 시대는 위로부터의 일방적인 결단이 아니라, 아래에서도 함께 일어섬으로써 이뤄질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