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628
3부 43화 로마노프 왕조 계승
“니콜라이 로마노프를 처형하다니, 대체 누가 이따위 명령을 내렸단 말인가!”
예카테린부르크 우랄 소비에트의 보고를 받은 사회민주노동당 중앙위원회는 분노했다.
처형의 이유는 ‘니콜라이 부부가 백군과 내통하여 도주를 시도하였으므로 부득이하게 사살’했다는 것이었다.
갑작스러운 사태에 우랄 소비에트도 당황하긴 마찬가지였다. 니콜라이가 도주하려 했기에 사살했다는 경비대 지휘관 이반 이바노프의 말은 도저히 믿기 힘들었다. 일부러 유인해서 암살했다는 게 합리적인 추론이었다.
“이리되면 모든 책임은 우리가 질 판이니. 어쩔 수 없군. 백군과 내통해서 도주하다가 부득이하게 사살했다고 보고를 올리게.”
결국 우랄 소비에트는 책임 면피를 위해 상황을 조작했다. 증인도, 증거도 없으니 말만 잘 맞추면 되는 상황이었다.
니콜라이의 죽음을 증언할 유일한 인물인 알렉산드라도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니키! 아, 안 돼! 니키…….”
남편의 죽음을 본 알렉산드라는 충격에 빠져 통곡했다.
“당신은 죽이지 않겠다. 재판에서 인민의 심판을…….”
“나도 죽여라, 이 살인자야! 너희들이 증오하는 건 나도 마찬가지 아니냐! 니키가 죽어야 한다면 나 혼자 살 생각도 없다!”
슬픔과 충격으로 이성을 잃은 알렉산드라는 남편의 원수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녀는 마지막 힘을 끌어 모아 이반의 목을 붙잡고 흔들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이반은 엉겁결에 장전된 총을 당겼다.
탕!
총알이 알렉산드라의 가슴을 꿰뚫었다. 그녀는 피를 내뿜으며 남편의 곁에 쓰러지고 말았다.
독일 헤센 대공가에서 빅토리아 여왕의 외손녀로 태어나, 러시아의 황후가 되어 군림했던 알릭스 폰 헤센 – 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는 사랑하는 남편과 한날한시에 세상을 떠났다. 향년 47세.
고집스럽고 편협한 성격으로 인해 숱한 잘못을 저지르며 니콜라이의 몰락에 기여한 알렉산드라지만, 남편에 대한 사랑만큼은 진심이었다.
이로써 23년간 전 러시아의 황제와 황후로 군림했던 니콜라이와 알렉산드라 부부는 역사의 무대에서 영원히 퇴장했다.
“인민의 착취자이자 학살자인 니콜라이 로마노프는 당연한 대가를 치른 겁니다!”
“아무리 착취자이자 학살자였어도, 프랑스 혁명기의 루이 16세 재판처럼 혁명재판소의 적법한 심판을 받았어야 했소!”
“그러다 반혁명세력 손에 넘어갔으면? 혁명기에는 신속한 결단을 내릴 필요가 있는 겁니다.”
사회혁명당(SR) 좌파는 니콜라이의 ‘처형’이 자신들의 명령에 의한 것임을 밝혔다. 다수파 사회민주노동당(RSDLP)은 SR 좌파의 독단이 불쾌했다.
“이미 다 말라비틀어진 제정복고파가 뭐가 위협적이었단 말인가! 오히려 반혁명세력에 순교자 니콜라이라는 칭호만 넘겨주게 생겼군!”
“그럴 수야 없지요. 적당히 상황을 조작해서 발표합시다.”
“에쎄리(SR)의 사고방식은 여전히 테러리스트 집단에 불과하오. 이제 저들과는 도저히 한배를 탈 수가 없소. 당면한 반혁명세력의 위협을 물리치고 나면 에쎄리와는 결별해야 합니다.”
정통 마르크스주의를 자처하는 RSDLP와, 인민주의 테러리즘을 계승한 SR 좌파의 불편한 동거는 한계에 도달하고 있었다. 울리야노프와 RSDLP 지도부는 소비에트 정부에서 SR 좌파의 축출을 결심했다. 단지 내전이란 급박한 상황으로 인해 오월동주가 계속될 뿐이었다.
「러시아 인민의 적, 유혈 처형자, 반혁명의 헌병, 왕관을 쓴 강도, 가장 사악한 폭군 니콜라이 로마노프는 범죄의 대가를 치렀다. 소비에트는 그를 안전히 보호했음에도, 니콜라이는 반혁명세력과 내통하여 탈출을 기도했다. 이에 경비대는 추적 중 부득이하게 저항하는 니콜라이를 사살할 수밖에 없었다. …… 과거 영국 인민이 찰스 1세를 처형하고, 프랑스 인민이 루이 16세를 처형하였듯, 러시아 인민은 폭군에게 당연한 심판을 가한 것이다!」
이미 SR 좌파가 니콜라이 처형을 공공연히 떠들어댔으므로, 사건 3일 만에 소비에트 정부는 공식적으로 니콜라이의 죽음을 인정했다. 소비에트는 ‘군주제의 범죄’에 따른 정당한 처형이었음을 강변했다.
알렉산드라의 죽음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언급되지 않았다. 아무리 평판 나쁜 황후일지라도, 부부가 모두 살해당했다는 게 알려지면 동정여론이 쏠릴 것을 우려 해서였다.
“잘 죽었어. 저 피의 폭군이 죽인 우리 동포들이 어디 한둘이야? 당연히 대가를 치러야지.”
“그 프랑스 왕처럼 수도에서 공개처형 되지 못한 게 아쉽군. 나도 만세를 외쳤을 텐데.”
소비에트의 공식 발표는, 니콜라이를 폭군으로 생각하는 노동자와 농민들의 암묵적인 지지를 받았지만, 반대쪽의 분노와 혐오를 불러일으켰다.
* * *
“이런 살인마 볼셰비키 놈들! 어떻게 전 러시아의 군주였던 분을 재판도 없이 처형할 수 있단 말인가?”
“백군과 내통했다는 혐의는 거짓이다! 볼셰비키가 초법적으로 처형하기 위해 조작한 혐의다!”
“니콜라이 2세는 볼셰비키에 의해 저질러지고 있는 범죄의 순교자다!”
보수주의자-국가주의자인 백군 지휘부도 니콜라이 2세를 실패한 군주로 여겼으므로, 전쟁에서 이겨도 그를 복위한다든가 제정을 복고한다든가 계획은 없었다. 일부 제정복고파도 니콜라이가 아닌 명망 있는 황족을 내세울 계획이었다. 그만큼 니콜라이는 정치적 파산 상태였다.
하지만 살아 있는 ‘실패한 폭군’보다는, 죽은 ‘순교자 군주’는 백군에게 더 유용한 존재였다. 백군은 당연히 니콜라이 2세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했다. 울리야노프가 애당초 우려했던, ‘순교자 니콜라이’ 신화가 만들어지려 하고 있었다.
“아, 이럴 수가! 아버지!”
“재판도 없이 잔인하게 죽이다니, 나쁜 놈들!”
“아버지께서 이렇게 돌아가실 줄 알았다면, 절대로 함께 모시고 왔어야 했는데…….”
순수하게 니콜라이의 죽음을 슬퍼하는 건, 오직 그의 자녀들뿐이었다. 누군가에게는 피의 폭군일지 몰라도, 그들 남매에게는 사랑하는 아버지였다. 대련의 5남매는 슬픔과 충격을 느끼며 대성통곡했다.
“어, 어머니는 안전하신 거야?”
“모르겠어……. 알 수가 없어.”
“저놈들이 어머니까지 죽이기 전에 구출해야 해!”
지금껏 어떠한 정치적 행동도 마다하던 5남매는, 대한제국 황실과 정부를 향해 청원했다. 드미트리 파블로비치 대공이 이들을 대리하여 평양에서 황태자 이진을 만났다.
“대공, 제게 황제 폐하는 백부님과도 같은 분이셨습니다. 참으로 슬픈 일이고, 가슴이 아픕니다. 다섯 분께 제 조의를 전해주십시오.”
“감사합니다, 황태자 전하. 저 무지막지한 볼셰비키가 황제 폐하를 시해하였으니, 정통성을 계승한 자녀분들까지 위협할지도 모릅니다.”
“물론입니다. 대련이 위험하다면 평양 흥경궁으로 모시겠습니다. 여기선 그 누구도 넘보지 못할 겁니다.”
이진은 흔쾌히 5남매의 안전과 이주를 약속했다.
“신변보호를 강화하면 어디서든 안전은 지킬 수 있습니다. 니콜라이 2세께서 서거하신 이상, 이를 계승할 알렉세이 대공께서 로마노프 왕조의 정통을 이어야 합니다.”
5남매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정치적으로 전혀 돌출되지 않아야 하는 게 답이었다.
하지만 드미트리 대공이나 제정복고파의 생각은 달랐다. 알렉세이는 차례비치(황태자)였고, 정통성을 계승할 사람은 단연코 알렉세이뿐이었다. 그다음 계승순위인 키릴 대공이 선수를 치기 전에 알렉세이를 계승자로 선포할 생각이었다.
“망명정부를 세우겠다는 의미입니까?”
“그건 아닙니다. 단지 상징적인 의미로 계승을 선포하는 거지요. 황태자 전하께서 도와주신다면, 로마노프 왕조의 계승을 선포할 수 있을 겁니다.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결정권자인 이선이 제정복고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었으므로, 드미트리는 전략을 바꿨다. 로마노프 왕조에 동정적인 이진과 소비에트와 일전을 벌이길 원하는 팽창주의자들을 움직여, 극동 러시아 지역에 군주제 복고를 시도할 생각이었다.
“알겠습니다. 부황께 아뢰고, 정부와 의논해 보겠습니다.”
이진의 속내로 말할 것 같으면, 그는 진심으로 니콜라이 2세의 죽음에 분노를 느꼈고, 5남매에게 깊은 동정심을 가졌다.
‘아무리 실정을 했다고는 하나, 어찌 제국의 황제였던 분을 살해할 수 있단 말인가. 무도한 반역자 놈들! 잔인한 혁명가 놈들! 저놈들은 모든 군주제 국가의 적이다. 마땅히 토벌해야 한다.’
니콜라이와 5남매에 대한 개인적 감정은 차치하더라도, 이념적인 이유에서라도 이진은 소비에트 러시아를 용납할 수 없었다.
황제의 적장자로 태어나 제왕으로서의 의무를 익힌 그의 사고방식에서, 신민이 군주를 끌어내리고 처형한다는 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는 군주제에 대한 근본적인 도전이었다. 백번 양보해서 실정에 책임을 치고 퇴위할지라도, 잔혹하게 살해한다는 건 있을 수가 없었다.
“전하, 이 대역무도한 역적들을 외국의 일이라고 용납해서는 안 됩니다. 저 사악한 혁명주의자들은 러시아 내부에서만 준동하는 게 아니라, 어디서든 파업과 반란을 선동합니다. 저들을 징벌하지 않으면, 동양에도 저 참람한 역적의 무리가 태동할지 모릅니다.”
“그렇습니다. 반드시 토벌하여 후환을 없애야 합니다. 러시아의 정통을 이은 황태자가 대한에 망명한 건, 하늘이 준 명분입니다. 정통 러시아를 복원하길 원하는 러시아 충의지사들과 함께 싸워야 합니다.”
“서방 연합국도 이를 원하고 있습니다. 명분과 실리를 모두 충족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러시아에 개입할 절호의 기회라 판단한 박영효와 이준용 등 팽창주의자들은, 이진에게 로마노프 왕조의 계승을 인정하고 내전에 개입하자고 종용했다.
팽창주의자는 아니지만 철저한 근왕파이자 혁명을 혐오하는 총리 민영환도, 니콜라이의 죽음을 계기로 박영효 쪽으로 기울어졌다. 정부는 개입주의가 대세를 이루었다.
“제공(諸公)의 충심 어린 조언에 감사드리오. 하지만 내가 대리청정 중이라 하나, 이는 부황께서 결정하실 일입니다. 부황의 재가를 받는 게 우선입니다.”
이진은 이미 로마노프 왕조 계승 인정과 러시아 개입으로 기울어졌지만, 이선의 뜻을 따를 생각이었다. 그는 숭배하고 존경하는 부황의 뜻을 거스를 생각이 없었다.
* * *
그 무렵, 이선은 귀국길에 올라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 도착했다. 수에즈 운하를 지나기 위해 잠시 이집트에 대기하는 중이었다.
제국익문사에서 보내온 보고를 받아든 이선은 냉소를 흘렸다.
‘박영효가 세력몰이를 한단 말이지.’
이선이 비록 해외에 있어 장악력이 일시적으로 떨어졌다고는 하나, 국내 상황을 아예 모르는 건 아니었다. 익문사는 도처에서 황제의 눈과 귀가 되었고, 개화당이든 군부든 재계든 모두 감찰 대상이었다.
기실 박영효는 비밀결사로 활동하는 게 아니라 공개적으로 활동했다.
그를 따르는 파벌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진심으로, 자신들이 황제와 국가에 충성하고 있으니 아무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이선도 그 점을 부정하는 건 아니었다.
‘충성은 하지. 방향이 틀렸다는 게 문제지만.’
이선은 박영효의 능력과 공훈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에게 대임(大任)을 맡긴 건 다름 아닌 자신이었다. 역대 총리 중 가장 긴 7년이란 기간을 맡긴 것도, 능력에 대한 인정이 없었으면 안 되었을 일이었다.
김옥균과 같은 인간적 유대는 없었어도, 최소한 군신유의(君臣有義)는 충분했다.
「금릉위(박영효)를 어찌하면 좋으리까?」
「그를 따르는 이가 많은데, 파벌 형성만으로 쳐 낼 수야 없지. 계속 감찰하면서 행동을 살피도록.」
과거 조선시대처럼 붕당을 형성했다고 처벌할 수 있는 시대도 아니었다. 정당은 공개적이었고, 따르는 이가 많았으며, 상당수 여론의 지지도 받고 있었다.
더욱이 박영효는 선왕의 부마, 개화당 지도자, 전임 총리, 국가의 원훈이라는 권위까지 있었다. 69세인 김옥균이 노쇠하여 은퇴 수순에 접어든 현시점에선, 황제를 제외하고 최고 권력자나 다름없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권좌에서 내려와야 했다.
‘황실 인척으로 장차 태자를 그릇된 방향으로 이끌 여지가 있어. 원훈이라는 명목으로 국정을 농단할 수 있고.’
1861년생인 박영효는 이선보다 7살 위였으나, 이선은 박영효가 더 오래 살 거라고 생각했다.
실제 박영효는 1939년까지 장수했다. 1894년 암살당했던 김옥균이나 1914년에 병사했던 유길준이 여태 살아 있는 건 역사의 변화였다. 79세에 자연사한 박영효의 수명이 그보다 늘었으면 늘었지 줄진 않았을 터였다.
본래 이선은 유고 시 오랜 동지였던 박영효에게 고굉(股肱)을 맡길 생각이 있었으나, 이제 쳐내야겠다는 확신을 가졌다. 그가 생각하는 국가의 미래상과 자신이 생각하는 미래상은 너무나도 달랐다.
‘문제는 쳐낼 명분을 어떻게 만드느냐…….’
명분이 있어야 했다. 군주의 뜻대로 환국(換局)이라도 할 수 있는 시대도 아니었다. 명색이 헌법을 지닌 근대국가에서, 합법적인 방식으로 끌어내려야 했다.
박영효는 아슬아슬하게 선을 지키고 있었다. 적어도 법을 크게 위배하는 행동은 한 적 없었다.
부패 혐의를 찾아 탄핵할 수는 있겠지만, 국가자본주의 관치경제 특성상 정경유착은 뒤따를 수밖에 없었다. 즉 이건 박영효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결국 현시점에서, 팽창주의 파벌이 돌출하는 가시적인 지점은 러시아 개입 문제로군.’
박영효와 팽창주의 파벌은 어떻게든 러시아에 개입하고 시베리아에 군대를 보내고 싶어 했다. 그 과정에서 무리수를 둘 여지가 충분했다. 이선은 귀국 후에 이를 명분 삼아 쳐 낼 준비를 했다.
그런데, 이선이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놀라운 소식이 러시아에서 들려왔다.
“니콜라이가……, 처형당했다고?”
이선은 니콜라이의 죽음을 알리는 전보를 받아들고, 저도 모르게 힘을 주어 구겼다.
‘이렇게 허무하게 죽다니……. 허, 결국 이렇게 되고 마는 건가. 역사의 굴레는 벗어나지 못하는 건가.’
이선은 애도와 분노의 감정을 가다듬으며,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역사가 변화했으니, 성격이 바뀐 볼셰비키가 처형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는데. 내 오산이었군. 결국 저들은 상종하지 못할 극렬 과격파인가.’
정확한 상황을 알지 못하는 이선으로선, 탈출로 인해 부득이하게 사살했다는 공식적인 소비에트의 발표보다는, 볼셰비키가 탈출을 조작해서 불법적으로 처형했다는 백군의 선전 쪽으로 기울어졌다.
‘이 친구야, 차라리 진작 망명이라도 하지 그랬나! 그대가 비록 저지른 실수가 많을지라도, 나는 보호해 줄 수 있는데!’
비록 니콜라이가 군주로서 치명적인 실격을 지닌 암군이자 신민을 고통에 빠트리게 한 폭군이었을지언정, 이선 개인에게는 어린 시절부터의 오랜 벗이었다.
지난 38년간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흘렀다.
1881년 처음 만난이래, 얼마나 많은 도움을 주고받았는가. 이선이 니콜라이의 목숨을 구한 적이 있었지만, 한국의 자주독립과 부국강병에 니콜라이가 보낸 도움도 적지 않았다.
설령 니콜라이의 죽음이 실정과 학살에 대한 자업자득이자 인과응보였을지라도, 벗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성적으로는 이해해도, 감정적으로는 용납하지 못할 일이었다.
“폐하…….”
동행하고 있던 마르가리타와 이안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이선을 쳐다보았다.
폴란드 독립투사였던 마르가리타는 ‘압제자 니콜라이’에게 전혀 좋은 감정이 없었지만, 이선과 니콜라이의 오랜 친우관계를 알고 있었으므로, 이선이 느낄 감정을 이해했다.
이안 역시 5남매와 친밀해지면서, 그들이 아버지의 죽음에 얼마나 슬퍼할지 짐작이 되었기에, 안타까운 마음을 금치 못했다.
“오늘은 혼자 있고 싶군.”
이선의 말에 마르가리타와 이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방에서 나갔다.
이선은 아무 말 없이 술잔에 술을 가득 따랐다. 북쪽을 향해 높이 치켜들고, 단숨에 들이켰다.
씁쓸했다. 그 어느 때보다 알코올의 쓴맛이 입안을 강하게 감돌았다.
이선은 그 어느 때보다 쓰디쓴 표정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