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635
3부 50화 세대교체
9월 첫째 주, 대학생들의 동맹휴학으로 시작된 시위는 점점 더 많은 인원을 불러 모아 격화되고 있었다. 면책특권을 가진 신민당과 진보당 의원들은 시위에 적극 합류하여 정치적 정당성을 부여했다.
예상하지 못했던 사태에 정부는 당황했다.
“경찰력을 동원해 속히 진압해야 하지 않을까요?”
“황성에서 무력을 쓰기는 쉽지 않소. 보는 눈이 좀 많아야지. 특히 외국 대사관이 문제요.”
“아니, 서양에서도 반국가 시위는 가차 없이 때려잡지 않습니까!”
“작금 시위대를 주도하는 게 야당과 대학생인데, 저들을 모두 외세의 조종을 받는 반역자로 규정할 수는 없지 않소!”
경찰이 해산을 시도해도, 시위대는 비폭력을 유지하며 파고다공원과 황성광장에 버티고 들어섰다. 때마침 9월 초의 좋은 날씨는 시위대의 장기투쟁도 가능하게 했다.
“학생들, 이거 먹고 해. 나랏일도 먹어 가면서 해야지.”
“아이고, 감사합니다.”
“학생들, 힘내라! 우리야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기 바쁜 사람들이지만, 자네들은 장차 나라를 이끌 사람들이잖아? 그런데도 우리 같은 사람들 처지를 헤아려서 시위에 나서 주니 고맙네.”
공원과 광장 주변의 노점상들이 음식을 싸 들고 시위대를 응원했다.
대개 시골에서 올라온 이들은 날품팔이 노동자 출신이었고, 그나마 조금 자리를 잡은 게 노점상이었다. 이들은 오랫동안 경찰과 자본의 횡포에 반감을 품고 있었지만, 어떻게 표출할 방법이 없었다. 그런데 ‘존경받는 학생들’이 자신들을 대신해 노동해방의 구호를 외치니 고마울 따름이었다.
전에 없는 계급적 융합과 단결이 이뤄졌다. 평소에는 만날 일도 없는 대학생과 빈민, 지식인과 무학자(無學者), 사무노동자와 육체노동자, 의회 의원과 투표권 없는 서민 등이 한자리에 어울렸다.
대한국민이라는 공통점, 변화를 열망한다는 공통점이 이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은 것이었다.
“이러다가 정말 큰일 나겠습니다. 정권 넘어가게 생겼어요.”
“에이, 설마. 그렇게까지야. 백성들이 모여서 한풀이나 하는 거지.”
“설마가 사람 잡는 법입니다. 러시아와 독일에서 벌어진 일을 보고도 느낀 바가 없습니까?”
“으음, 시위를 완전히 금지하려면 황성에 계엄령을 선포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계엄령은 법적 절차가 필요하니 그럴 필요까지야 있겠소만, 그래도 유사시에 대비해 준비하시오.”
정부는 계엄령 선포까지는 고려하지 않았지만, 경찰력으로 진압이 실패할 경우 군대 투입까지 결의했다.
계엄령은 각의에서 결정하더라도, 최종 선포는 황제의 권한이었다. 현재 황제는 부재중이니 대리청정 중인 황태자가 재가해야 했다.
“계엄령 선포는 결코 재가할 수 없소.”
“전하! 작금의 상황이…….”
“황제 폐하께서 내게 전문을 보낸바, 시위가 격화되어 황궁이라도 점령되지 않는 한 계엄령은 허락하실 수 없다 하셨소. 그리 알고, 폐하께서 귀국하시면 그때 다시 여쭈시오.”
이진은 이선의 명을 들어 계엄령 선포를 거부했다.
“황공하옵게도, 폐하께서 해외에 계시다 보니 아직 상황의 중대성을 모르시나 봅니다!”
“대체 언제 귀국하시는 겁니까?”
“6일경에 인천항에 입항하리라는 전보가 왔소.”
“폐하께서 귀국하시는 즉시 계엄령을 상주합시다. 폐하께서 저 무지한 인간들에게 정권을 넘기실 리가 없으니!”
개화당 정부가 이선의 귀국을 기다리듯, 야당과 시위대도 고대했다.
“황제 폐하께서 국민의 외침을 저버리시지 않을 거요.”
“암, 언제나 국민을 중시하는 분이니까.”
결국 최종판단은 ‘주권자’인 황제 이선에게 달려있었다.
* * *
항해 동안 이선은 정보의 물리적인 제약 속에서 정확한 상황을 파악하려 시도하고, 귀국 후의 정국을 구상했다.
이선이 처음 원산 발포를 보고받은 건 싱가포르를 떠나 홍콩으로 향하는 배 안에서였다.
“이게 무슨 소리야? 원산에서 폭동이 발생해 경찰이 부득이하게 발포했다니?”
이선은 정부에 상세하게 보고하라고 명령을 내렸지만, 움직이는 배 안에서는 시차를 두고 단문(短文)을 주고받는 게 한계였다.
홍콩에 기항한 후에야, 주재 영사관을 통해 이선은 정부의 ‘상세한 보고’를 받을 수 있었다.
“모스크바의 배후조종으로 인한 좌익 폭동이라니, 이게 말이 되나?”
이선은 정부 보고를 일방적으로 신뢰하지 않았다. 그는 즉시 익문사에 비밀 전보를 보내 정확한 진상파악을 하라고 명을 내렸다.
기선이 상해에 도착한 후에야, 이선은 ‘진상’에 접근할 수 있었다.
대한매일신보를 인용한 상해의 영문판 신문을 읽은 후, 이선은 정부의 정보 조작을 의심했다.
“짐작이 가는군. 군경이 노동자를 사살하고 그 책임을 노조에 돌리는 게 아닌가. 모스크바의 배후조종이 실제로 존재나 하겠나?”
이선은 오랜 동지였던 개화당에 분노와 배신감을 느꼈다. 군경에 의해 학살당한 노동자들에 대한 비애의 감정이 들었다.
국가를 급진적으로 개혁할지라도 가급적 유혈사태는 피하려고 노력했는데, 결국 이런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예정되었던 중화민국 정부와의 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상해에 체류하는 동안, 이선은 정부의 보고, 이진의 보고, 익문사의 보고를 잇달아 받았다.
이제 이선은 완전히 확신할 수 있었다. 동시에 기이한 안도감이 느껴졌다.
‘개화당이 제 무덤을 파는구나. 그동안 쳐 낼 명분이 모호했는데, 이제 확실해졌다.’
개화당 통치가 35년에 이르면서, 정부뿐만 아니라 관료집단과 군부와 재계에 이르기까지 개화당의 영향력은 컸다.
물론 이선이 개화당 우파를 날려 버린다 할지라도 이들은 절대복종하겠지만, 명분이 부족하다면 속으로는 반감을 품을 터였다.
이선은 황제의 위신이 깎이지 않고, 국가에 손실을 최소화하며, 명분이 충실하고, 민의를 존중할 숙청 방안을 고민했다.
이제 개화당은 스스로 그 명분을 제공한 것이었다. 여기에 정치적 기술이 더해져야 했다.
“서울에서까지 시위가 확산되었단 말이지. 그래, 모름지기 젊은이라면 이 정도 의기는 있어야지!”
서울에도 시위가 확산된다는 보고에 이선은 오히려 만족감을 표명했다.
국가를 통치하게 된 지 어언 수십 년. 장기집권한 권력자의 오만에서 예외가 아니었던 이선은, 국민이 너무 국가에 순종적이라고 생각해왔다.
이래서야 근시일 내로 보통선거와 입헌군주제로서의 이행이 무의미하다고 판단되던 이선에게, 한국 국민이 정부의 부당함에 언제나 복종하는 건 아니라는 걸 증명하고 있었다.
이선은 이진에게 정부가 계엄령이나 시위 진압을 요청하더라도 절대 응하지 말라고 훈령을 내린 후, 회담을 마치자마자 즉각 귀국길에 올랐다.
광무 23년 9월 5일.
대한제국 황제 이선을 태운 황실 기선은 인천항에 입항했다. 항해 시작 5주 만이자, 유럽으로 향한 지 8개월 만의 귀국이었다.
“대한국 만세! 대황제 폐하 만세!”
황태자 이진을 필두로, 내각 대신들, 황족들, 원훈들, 고위관료들, 근위사단 장병들이 황제의 귀국을 환영했다.
“아바마마, 귀국을 감축드리옵니다.”
“폐하께서 구주에서 거두신 빛나는 외교적 성과에 모든 국민이 기뻐하고 있사옵니다.”
이진과 민영환의 환영사에 이선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군악대의 국가가 울려 퍼지고, 귀국 환영행사가 준비되었으나 이선은 고사했다.
“나라를 오랫동안 비워서 처리할 일이 많소. 즉시 황성으로 가겠소.”
경인선 황실특별열차에 이선과 이진, 대신과 황족, 원훈이 탑승했다.
이선의 시선이 차례차례 그들 모두에게로 향했다. 봉천에 체류하며 만주 문제를 관리하던 김옥균도 부랴부랴 귀국해 이선을 맞이했다. 하지만 예전과 달리 이선이 제일 먼저 지목한 건 김옥균이 아니었다.
“지금 호명하는 사람만 빼고 자리를 비켜 주시오. 금릉위, 총리대신, 내무대신, 군무대신.”
갑작스러운 호명에 좌중은 서로를 쳐다보며 황제 전용실에서 물러섰다.
박영효, 민영환, 이규완, 박유굉만이 남자 이선은 정중하던 태도를 버렸다.
“경들은 무슨 일을 이따위로 하는가?”
갑작스러운 질책에 네 사람은 깜짝 놀랐다.
“총리! 짐이 경에게 총리의 대임을 맡기고 떠난 건, 개화당에 휘둘리지 말고 오직 짐과 황태자에게 충정을 바치고 국가를 잘 관리하라는 의미에서였다. 그런데 어찌하여 나라를 이 지경까지 만들었는가!”
“폐하…….”
가장 먼저 민영환을 질책한 이선은, 박유굉에게 다음 화살을 돌렸다.
“군무! 경은 짐과 함께 대한국군의 기틀을 잡은 사람이다. 그래서 짐은 경에게 오랫동안 참모총장과 군무대신의 자리를 맡겼다. 그런데 그 자리에 오래 앉게 되니 국군이 경의 사유물로 보이는가?”
“폐, 폐하. 어찌 그런 말씀을…….”
이선의 차가운 시선은 이규완에게로 향했다.
“내무! 짐이 경을 그 자리에 임명한 건, 엄정함과 청렴함을 높이 평가해서였다. 그런데 경은 국내 치안의 총책임자로서, 사태를 이 지경까지 키울 수 있단 말인가!”
“화, 황공하옵니다. 신의 죄를 청하옵니다. 일부 불령한 세력이 치안을 위협하고 있사오니, 조속히 진압할 수 있사옵니다. 폐하께서 계엄령만 선포해 주시오면…….”
이규완이 즉시 고개를 숙이며 죄를 청했지만, 그 방향이 완전히 틀렸다. 이규완은 황제가 ‘치안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자신을 질책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마침내 이선은 분노를 터뜨렸다.
“아직도 그대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는가? 그 엄정한 잣대로 국민을 멋대로 재고, 그들을 향해 총을 쏘라고 임명한 자리가 아니란 말이다!”
대신들은 이제야 비로소 이선이 왜 분노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들은 전에 없던 황제의 분노에 몸을 떨면서도, 동시에 의아함을 느꼈다.
“폐하. 감히 성상의 뜻을 헤아리지 못한 신등의 죄를 청하지 않을 수 없사오나, 원산에서의 총격은 부득이한 일이었습니다. 시베리아 파병을 결정한 시점에서 군수공업의 중심지이자 대러시아 항로의 중심지에서 총파업이 계속되었고, 파업을 주도하는 노조의 배후에 러시아가 의심되는바…….”
박영효가 모두를 대표해 정당성을 호소하자, 이선이 차갑게 말을 끊었다.
“증거는 있는가?”
“예, 일당의 자백을 받았습니다.”
“발포와 고문으로 받아 낸 자백 말인가?”
이선은 대한매일신보 영문판과 제국익문사의 보고서를 그들의 면전에다가 던졌다.
“이게 기군망상(欺君罔上)이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인가! 그대들은 위로는 짐과 태자를 속이고, 아래로는 국민을 속였다! 그러고도 그대들이 무사하리라 생각했는가!”
황제의 분노에 네 사람은 일제히 무릎을 꿇고 조아렸다.
“폐하, 신등이 감히 대죄를 저질렀다면 죽어 마땅하옵니다! 하오나 어찌 감히 기군망상의 대죄를 범하려 했겠나이까?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그럼 짐과 태자, 국민을 속이려 한 게 아니란 말인가?”
“그렇사옵니다. 설령 저들 노동자들은 순량하다 할지라도, 원산노련 무리가 불순한 사회주의 사상에 물든 것은 분명합니다. 사회주의자들의 전염력은 필히 차단해야 하옵니다! 러시아와 독일에서 벌어진 일이 대한에서도 일어날지 모르는데, 어찌 국가의 녹을 먹는 자로서 방관만 하겠습니까?”
그들의 입장에서 볼 때는 기군망상이 아니었다. 황제와 국가를 위한 명백한 당위였다.
“그래? 경들 모두 그렇게 생각하는가?”
“진실로 그러하옵니다, 폐하!”
“러시아와 독일뿐만 아니라, 프랑스와 이탈리아, 심지어 영국과 미국에서도 노동자들의 파업이 격심해졌다고 들었습니다. 어찌 광무 23년이란 한 해에 이런 위기가 세계에 동시다발적으로 터지겠사옵니까? 소비에트 러시아의 존재와 인터내셔널인지 국제사회주의인지 하는 집단의 거대한 조종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정부, 관료, 군대, 경찰은 한마음으로 국가를 옹위할 마음뿐입니다! 신성한 국체에 도전하는 이들은 결코 용납할 수 없사옵니다!”
이선은 의외로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경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짐이 진상을 확실히 조사한 다음에 처결하도록 하겠소.”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대신들은 일제히 고개를 조아리며 성은을 외쳤다. 그들은 황제가 자신들의 충정에 설득되었다고 믿었지만, 실상은 정반대였다.
‘구제불능이구만.’
차라리 책임을 면피하기 위한 정보조작과 기군망상이었다면, 이선은 주요 책임자만 처벌하고 넘어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개화당 우파는 확증편향에 빠져 있었다. 자신들이 만든 ‘붉은 위협’이라는 세계관 속에 스스로 갇혀, 총파업이니 노동조합이니 사회주의니 적기니 하는 걸 보면 외부의 조종과 폭동 조장을 의심했다. 모조리 뿌리 뽑아야 할 독초이자, 사전에 방역해야 할 전염병이었다.
‘개화당 우파, 아니 개화당 전체, 아니지, 고위관료집단 전체가 저리 생각하는 거라면 머리부터 뜯어고치는 수밖에 없군. 편협한 확증편향에 빠진 자들에게 국가의 키를 맡길 수 없지.’
중앙에서 정책을 집행하는 대신들이든, 발포 명령을 내린 현장 지휘관이든, 노동자들을 학살한 것에 죄의식을 느끼는 이는 거의 없었다. 그들은 자신이 옳은 일을 했다고 생각했다.
이는 그들이 유혈을 즐긴다거나 소시오패스라서가 아니었다. 어찌 보면 20세기 초를 살아가는 지배층의 시대적 한계였다.
실제 1919년에 벌어진 일들을 살펴보자.
식민지 조선의 3.1운동과 독립투쟁은 일본 제국주의자에 의해 철저히 짓밟혔다. 사망자가 수천 명에 이르러도, 일본 당국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일본 제국주의가 특별히 잔혹해서 그런가? 서구 자유주의의 본산 영국도 마찬가지였다. 같은 시기 인도 암리차르에서 벌어진 학살은 그에 못지않게 끔찍했다. 비무장한 군중 수천 명을 학살하고도, 영국 식민당국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아시아에서 벌어진 식민주의만의 문제인가? 반드시 그렇지도 않았다.
유럽에서도 광기가 넘쳐흘렀다.
내전중인 러시아에서는 적색테러와 백색테러가 반복적으로 자행되었다.
독일 바이에른 소비에트 공화국과 헝가리 소비에트 공화국은 우익의 반격으로 무수한 희생자를 내고 막을 내렸다. 실패한 적색혁명의 끝에는 백색테러가 뒤따랐다.
영국은 아일랜드 독립투쟁을 가차 없이 짓밟았다. 프랑스도 노동자 총파업에 총알을 아끼지 않았다.
이탈리아 공업지대의 ‘붉은 2년’은 파시스트의 반동적 폭력으로 제압되었고, 스페인 소작농들의 저항은 대지주와 결탁한 국가권력에 의해 짓밟혔다.
상대적 무풍지대였던 그 미국에서조차도, ‘1차 적색공포(First Red Scare)’라고 불리는 1919년에 공포와 탄압이 절정에 달했다. 백인 자경단에 의한 흑인 학살을 공권력이 눈감아 주고(‘붉은 여름’), 노동조합의 총파업을 무력으로 분쇄했다.
전례 없는 총력전과 사회주의 혁명의 위협은, 인간의 희생에 대한 관념을 무디게 만들었고, 위협이 되리라고 의심되는 분자를 쓸어버려야 한다는 사고방식을 정당화시켰다.
여기에 동양에서는 전통적인 관존민비(官尊民卑) 관념이 결합하면서, 국가에 저항하는 백성은 진압해도 문제가 없다는 사고방식을 관료집단 상당수가 공유했다.
만약 이선이 원산 학살만을 명분으로 개화당을 권좌에서 끌어내리려 한다면, 관료집단은 겉으로는 절대복종해도 속으로는 이해를 하지 못할 터였다.
유감스러운 일이긴 하다. 근데 도대체 그게 정부 권력을 교체할 만한 일이란 말인가?
‘아무래도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겠어.’
단순히 권력의 교체가 아닌, 세대교체가 필요했다.
이선은 내심 다음으로 할 일을 결정하고, 결심을 굳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