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65
– 65화에 계속 –
65화 개화당(開化黨)
개화당의 지도자 김옥균의 충성을 받아낸 이선은, 김옥균과 함께 한양으로 돌아왔다.
얼마 후, 김옥균은 ‘백의 정승’으로 불리는 개화당의 막후 지도자 대치 유홍기를 대동하고 왔다. 50대의 유홍기는 백발이 성성했지만, 얼굴과 몸가짐은 활력이 돌았다.
“군 대감, 소인은 광통교에서 의원을 하는 유홍기라 하옵니다.”
“고균(김옥균)으로부터 이야기 들었소이다. 관직은 없지만, 젊은이들의 사표(師表)가 되어 백의정승이라고 불린다지요.”
“과찬이십니다. 소인은 그저 비천한 자로, 환재(박규수) 대감과 금석(오경석)의 유지를 이어 나라를 힘써 바꿔 보려는 젊은이들과 의논을 할 뿐입니다.”
유홍기는 겸손히 자신을 깎아내렸지만, 그는 대대로 역관과 의원을 하며 부를 축적한 중인 명가 출신이었다.
오경석도 중인이라지만 역관으로서 정2품 관리까지 올라 양반의 반열에 오른 이였다.
하지만 중인이라는 근본적인 신분적 한계 때문에 아무리 관직에 올라도 정치 참여에는 제약이 있었다. 문과에 급제한 사대부만이 요직을 맡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재능과 식견을 갖춘 중인들은 이를 매우 한스럽게 여겼다.
도성의 중인들은 양반 세도가에 대한 경멸과 분노가 누적되었고, 이들이 근대적인 사고방식을 갖게 된 근본적인 원인이었다.
“비천하다니요? 의원만큼 중요한 일이 없지요. 사람을 살리는 일보다 더 고귀한 일이 어디 있소이까? 앞으로 나라에서 의학과 의원을 크게 육성할 것이외다.”
이선의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이선은 의원과 역관으로 대표되는 중인 지식층을 중용할 의사가 있었다.
“소인의 벗인 의원 지석영으로부터 군 대감에 대한 말씀을 누차 들을 수 있었습니다. 존귀한 몸으로 먼저 종두를 접종하시고, 이를 널리 반포하라 권하셨다지요. 그 말을 듣고 저는 이미 군 대감께서 깨어계신 분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유홍기와 지석영은 의원에다가 개화파였으니 서로 잘 아는 사이였고, 지석영은 완화군의 선각자적인 면모에 대해 여러 번 찬양했었다.
“아, 그래요. 지 의원의 노고가 많지요. 나는 종두법을 조정의 이름으로 전국에 널리 퍼트릴 생각입니다.”
‘종두를 맞으면 소처럼 미련해진다’는 종두법에 대한 오해 때문에 지석영의 종두장은 한때 공격을 받기도 했으나, 돌아온 이선의 적극적인 옹호로 안정을 되찾았다.
더욱이 지석영은 중전의 완화군 모해 미수에 대해 결정적인 증언을 했으므로, 대원군의 신임도 얻게 된 상황이었다.
“군 대감의 현명함에는 거듭 감탄을 금할 길이 없나이다. 조선에서 개화의 뜻을 따르고자 하는 무리는 모두 군 대감께 충성을 다할 것입니다. 부디 저희를 밝은 길로 이끌어 주시옵소서.”
김옥균에 이어 유홍기의 지지는, 개화당뿐만 아니라 도성의 중인 실무층의 지지를 받게 된다는 뜻이었다.
“고맙소. 앞으로 의원은 할 일이 많아질 겁니다. 유 선생도 힘써 나를 도와주십시오.”
“명을 따르겠습니다.”
개화당의 정신적 지도자인 유홍기와 실질적 지도자인 김옥균이 모두 충성을 맹세하니, 그 무리가 모두 은밀히 완화궁으로 모여들었다.
“삼가 완화군 대감을 뵙사옵니다!”
명문가 출신으로는 금릉위(錦陵尉) 박영효, 홍문관 부제학 홍영식, 승지 박영교, 규장각 대교 서광범, 교서관 부정자(副正字) 서재필 등이었다.
박영효는 철종의 사위로, 부마인 금릉위라 불리며 왕실의 일원으로 대우받았다. 박영효와 영교 형제는 박규수의 일족으로, 그의 영향으로 일찌감치 개화사상에 눈을 떴다.
홍영식은 영의정 홍순목의 아들, 서광범은 참판 서상익의 아들이니 최고 명문가의 자제들이자 신진 관료들이었다.
지도부는 이처럼 명문 양반들이었지만, 김옥균은 중인·평민·승려·군인 등 신분을 초월한 각계각층의 인물들을 동지로 규합해 둔 터였다.
무관 출신 오위장 유혁로, 무관 출신 사상가 강위, 강위의 제자인 중인 변수(邊樹), 역관 백춘배, 의원 지석영 등.
판관 이인종, 군관 이희정과 신복모, 승려 탁정식, 보부상 통령 이창규, 종로 금은상 남흥철, 동대문 배추 장사 윤경순, 군졸 이응호와 이은돌 등은 아예 평민이거나 그 이하였다.
“그대들도 개의치 말고 안으로 들어오시오.”
“저희는 미천하온데 어찌 군 대감과 한자리에…….”
중인 이하는 모두 방밖에 서 있었다. 김옥균이 아무리 그들을 동지로 대우해 준다지만, 왕족인 완화군은 까마득하게 높은 사람이었다. 감히 동렬에 설 생각을 하지 못했다.
“고균의 동지는 내게도 동지나 다름없소. 같은 뜻을 품은 동지들에게 반상의 구분 따위는 의미가 없소. 모두 안으로 들어오시오.”
이선은 김옥균 못지않게 신분제를 개의치 않는 모습을 보였다.
“하, 하오나 어찌…….”
차마 들어오지 못하고 쭈뼛거리자, 이선이 거듭 권유했다.
“그대들은 천하장안의 사례를 알 것이오. 이들은 모두 중인 이하였지만, 대원군께서도 편히 대하셨소. 나는 할아버님의 이런 면모를 존경하오. 그러니 개의치 말고 들어오시오.”
“황공하옵니다!”
그들은 모두 감격하여 마음으로부터 이선에 대한 존경심과 충성심이 싹 텄다.
모두 방에 모여들자, 김옥균이 개화당을 대표하여 발언했다.
“소생이 생각하건대, 조선의 개혁은 이른바 양반을 잡초처럼 솎아내는 데부터 시작되나이다. 이제 세계가 상업을 위주로 해서 서로 생업의 많음을 경쟁하는 시대를 맞이했습니다. 나라에서 만약 양반을 제거해서 그 폐단의 근원을 모두 없애는 데 힘쓰지 않는다면, 국가의 패망을 기다릴 뿐입니다.”
그 자신이 양반이면서도, 양반들이 듣기에 더없이 신랄하기 짝이 없는 말을 하는 김옥균이었다.
이선이 가만히 보니 박영효와 홍영식은 약간 거북한 표정을 지었지만, 김옥균은 개의치 않았다.
“나라에서는 부디 속히 무식 무능하고 수구완루한 대신과 관리들을 내쫓아서, 문벌을 폐지하고 인재를 선발해서 중앙집권의 기초를 확립해야 하옵니다.”
김옥균 뒤에 서 있는 자들은 하나같이 기대되는 표정이었다. 말만 들어도 통쾌한 모양이었다.
“또한 세계의 견문을 보며 생각한 바가 있사오니, 서양 각국은 모두 독립국입니다. 어떤 나라를 막론하고 독립한 후에 화친을 할 수 있거늘, 조선은 홀로 중국의 속국이 되었으니 매우 부끄럽습니다. 조선은 언제 독립해서 서양 국가들과 동렬에 설 수 있겠습니까?”
김옥균은 일본에 다녀온 후에 가진 확신을 말했다.
“동서양의 정세를 살펴보니, 일본은 동양의 영국이 되길 원합니다. 조선은 마땅히 동양의 법국(프랑스)이 되어 자주 부강한 국가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선 대경장개혁(大更張改革)을 단행해야 하옵니다!”
‘일본이 동양의 영국 노릇을 하려 하니, 조선이 동양의 프랑스가 되는 걸 보고 싶다.’
김옥균이 평상시에 입버릇처럼 했다는 말이었다.
“나는 조선을 떠나 아라사로 가 태서(유럽)의 풍습을 직접 볼 수 있었소. 오늘날 영국·법국·덕국·미국 등이 강성해진 데에는, 인재를 출신과 무관하게 재능에 따라 두루 선발해서 활용한 덕이 크오.”
이선은 자신의 유럽 경험으로 운을 뗐다.
“그렇다고 하여 이들 나라에 귀족이나 신분의 우열이 없는 것도 아니오. 정부가 나라의 흥성을 위해 인재를 적절히 활용하려 함이지. 예를 들어 보로서(프로이센)나 아라사는 지금도 전제 군주의 나라이고, 신분제가 존재하오. 그러나 국가를 다스리는 공무원, 특히 군인은 신분을 가리지 않고 능력 있는 이를 우대하오.”
이 시대 조선 전체를 통틀어 서양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이선이었다.
“고균이 동양의 법국이 되고 싶다 말하였는데, 지금으로부터 꼭 백 년 전에 법국에선 큰 정변이 일어나 인민이 그 임금을 끌어내렸소. 동양에서 볼 때 이는 흉악한 반역이겠으나…….”
“소생이 동양의 법국이 되고 싶다고 한 건 그런 의미가 아니오라, 지리적 위치가 그러하니 법국 못지않은 부강한 국가가 되고 싶다는 의미였습니다.”
김옥균이 급히 해명했다. 듣기에 따라 반역으로 몰릴 수 있는 말이었다.
“하하, 이 시대 동양의 기준에서 보면 그렇다는 거고. 서양에서는 위대한 혁명으로 기념하고 있소. 중요한 건 영국의 산업 혁명과 법국의 정치 혁명으로부터 서양의 근대가 시작되었다는 것이오.”
이선은 20세기 역사학의 담론, 이른바 ‘이중 혁명(dual revolution)’의 개념을 간략히 설명했다.
“동양도 그러하니, 일본이 조선보다 먼저 개항하고 산업의 혁신을 이뤄냈소. 그렇다면 조선은 무엇을 해야 할까? 무조건 일본을 흉내 내야 할까? 아니면 청국을 흉내 내야 할까? 아니요, 그렇지 않소. 법국과 같이 정치에서 일대 혁신을 이뤄내야 하오. 마침 조선에는 백성의 힘이 있으니, 이를 개화의 동력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바뀐 역사에서 임오군란은 구식 군대의 시대착오적인 봉기가 아니라, 프랑스 대혁명의 서막이 되었던 바스티유 습격 사건에 비유되는 기억이 되길 바라는 이선이었다.
그러려면 지배층의 교체와 민중의 의식 변화가 필요했다. 새로 정권을 맡은 대원군이나 그를 지지하는 민중이나, 아직 소박한 전근대적 인식에 머물러있었다.
“장차 내가 집정을 맡게 되면 낡은 신분제를 폐지하고, 개화된 세상에서 재능과 노력에 따라 성공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고자 하오. 또한, 그 어떤 외세도 감히 넘볼 수 없는 부강한 자주독립국을 이뤄낼 것이오.”
이선의 단호한 외침에, 개화당 전원은 일제히 탄성을 내질렀다.
“오오……!”
“그때가 언제이겠사옵니까?”
지금 당장에라도 세상이 바뀌는 걸 보고 싶어 하는 듯했다. 하지만 이선은 조급하지 않았다.
“지금은 대원군께서 집정하고 계시니, 일단 적폐 청산은 대원군께 맡기도록 합시다. 이는 운현궁의 전문 분야이기도 합니다.”
[대원군은 용맹 과감하여 혁신을 단행함에 있어서 옛일에 구애받지 않았고 남의 말에 좌우되지 않았으며, 권위를 배제하고, 문벌을 타파했으며, 군포를 개혁하고, 서원을 철폐하는 등의 탁월한 추진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오랜 관습인 동주, 철벽도 손을 대기만 하면 깨는, 실로 정치상 대혁명가였다.]박은식(朴殷植), 『한국통사(韓國痛史)』, 1915
개신 유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인 박은식의 평가처럼 대원군은 탁월한 추진력을 가진 개혁가였지만, 본질적으로 보수적 개혁의 한계가 있었다.
대원군을 찬양했던 박은식은, 바로 뒷구절에서 시야가 좁아 나라를 중흥할 시기를 놓쳤다고 통렬하게 비판한다. 오직 대원군만이 국가를 중흥할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평가였다.
하지만 이는 대원군에게 너무 가혹한 평일지도 모른다. 대원군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조선 지배층이 가진 본질적 한계이기 때문이었다.
‘무작정 급진 개혁을 시도했다간 이들 급진 개화파처럼 대내외의 공격을 받고 무너질 것이다. 향후 몇 년간은 대원군에게 서정 개혁을 맡겨 내치를 튼튼히 하고, 나는 외교와 국방에서 이를 보조한다.’
이선은 갑신정변의 선례를 차분히 생각했다. 튼튼한 지지 기반 없이 무조건 급진 개혁을 추진하면, 격렬한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오히려 보수반동만 불러일으킬 것이었다.
‘먼저 민중이 근대화에 긍정하고 지지할 수 있게 만들어야지. 그러기 위해서는 개화당이 외치는 것처럼 신분제 폐지만큼 확실한 게 없다. 하지만 지금 당장 신분제를 폐지하자고 하면 양반들이 격렬히 반대하고, 아무리 대원군이라 할지라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이선은 씁쓸히 웃었다. 대원군이 손자 이선을 총애함은 잘 알고 있었지만,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연로한 대원군은 영원히 이선과 함께 할 수 없었다.
‘지금은 차분히 힘을 축적하여 때를 기다린다. 지금은 대원군과 함께해야지만, 결국 결별할 시기가 오겠지. 바로 그때, 대개혁을 선포하고 급진 개혁에 돌입한다.’
“나는 조정에서 그대들을 등용하여 요직에 진출할 수 있도록 돕겠소. 세력을 모아 힘을 키우고, 대경장 준비를 하려면 족히 2, 3년이란 시간이 필요할 것이오. 우리 모두 적절한 때를 기다리며 실력을 양성하도록 합시다. 모두 철저히 비밀을 지켜 주길 바라오. 국가의 성패가 경들의 지모에 달렸소!”
“예!”
“군 대감의 뜻을 받들도록 하겠나이다!”
개화당 인사들이 일제히 새로운 지도자, 이선을 향해 머리를 조아렸다.
이들은 새로운 시대가 오기를 진정으로 꿈꾸었다. 이선이 마침내 그들의 꿈을 이뤄질 거라 생각이 되니, 저도 모르게 힘이 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