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657
3부 72화 완충국 계획
1920년 5월.
소비에트 적군은 혁명 3주년에 내전에서 결정적인 승기를 잡았다.
남부전선에서는 백군의 방어선을 돌파하고, 철수하는 프랑스군의 뒤를 이어 흑해 최대 항구인 오데사를 점령했다. 백군의 주력이 있는 돈-쿠반 전선을 향한 적군의 공세는 더욱 강화되어, 로스토프를 함락하고 백군의 본거지인 예카테리노다르(크라스노다르)로 진격했다.
적군은 동부전선에서도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고 이르쿠츠크에 진입, 바이칼 호에 이르렀다.
전러시아 임시정부는 가까스로 치타로 퇴각했지만, 붕괴 직전에 놓였다. 이제 시베리아 백군이 스스로의 힘으로 적군을 몰아낼 가능성은 사라졌다.
치타로 도주한 임시정부는 한국과 일본에 지원을 호소했다. 이제 이들이 기댈 수 있는 건 열강의 도움, 특히 한국 육군의 전면적인 개입이었다.
황성 경복궁. 대한제국 국무회의.
5월에 새로 출범한 개화당-신민당 연립정부가 직면한 최초의 국제문제는 바로 러시아 내전이었다.
“치타로 이전한 러시아 임시정부가 전면적인 지원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현재 국군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현재 대한국군은 치타-만주리, 치타-블라디보스토크의 철도를 통제하고 있으며, 5개 사단 7만여 명이 주둔하고 있습니다. 러시아 극동에서 발흥하는 파르티잔과 달리, 소비에트 정규군은 한국군과의 충돌을 회피하는 듯합니다.”
군무대신 이동휘가 현황 보고를 했다.
치타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의 도시와 철도는 한국군이 통제하고 있어, 한국군과의 확전을 꺼리는 적군이 섣불리 공격할 가능성은 없었다.
“국군의 도움 없이 러시아군이 극동을 유지할 가능성은 얼마나 되겠습니까?”
“비관적입니다. 적군의 주력이 8-9할 정도는 유럽에 집중되어 있다는 첩보에 따르면, 당장 극동을 향해 공격하진 않겠습니다만, 언젠가는 적군이 공세를 펼치리라 추정합니다.”
“러시아 국내 문제에 대한이 개입을 꼭 해야 하는 겁니까? 러시아 문제는 러시아인들 스스로에게 맡기면 되지 않겠습니까?”
내무대신 안창호는 개입 반대론자였다. 신민당은 대부분 개입 반대로 기울어져 있었다.
‘국내 개혁의 동력을 전쟁에 빼앗길 수는 없다.’
“연해주에는 20만 동포가 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됩니다. 그들은 오랫동안 대한에 협력을 했습니다. 만약 우리가 그들을 저버린다면, 적군이 가만히 두겠습니까? 연해주는 반드시 지켜 내야 합니다.”
군무대신 이동휘는, 군부 내부에서 문민통제를 지지하고 대외개입을 최소화하자는 온건파에 속했으나, 그런 그도 군부를 대표해서 연해주만은 포기할 수 없다는 의견을 분명히 했다.
“연해주뿐만이 아닙니다! 저 소비에트 과격파 도당하고는 결코 국경을 접해선 안 됩니다. 세계 적화의 음모를 막아 내려면, 그들에 맞서 싸우는 이들은 모두 우리의 동지입니다. 러시아 임시정부를 도와 바이칼 동부 3주라도 지켜 내도록 해야 합니다.”
외무대신 이승만은 가장 강경한 개입주의자였다. 본래 친영반러파로 제정 러시아의 남하조차 거부했던 이승만인데, 하물며 이념적으로 혐오대상인 소비에트 러시아와 국경을 접하는 건 참을 수가 없었다.
‘외교관이 평화적 해법을 논하지 않고, 전쟁을 논해? 뭔 외교관이 군인보다 더 호전적이야?’
안창호는 이승만의 강경론에 불편한 기색을 보였지만, 이승만은 반대로 내심 혀를 찼다.
‘작금의 국제정세 이해도 없는 샌님 같으니. 대한이 반소 반러의 보루가 되지 않는다면, 미국이나 영국이 우리에게 얼마나 대단한 가치를 느끼겠나?’
총리 이상설은 일전에 박영효와 개화당 우파의 강경론에 반대하던 입장이었지만, 연해주만큼은 확실히 지켜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했다.
“어떤 정부일지라도, 해외에 살고 있는 동포 또한 한민족이라고 생각합니다. 내전의 위기에 처한 재러시아 동포들을 지켜야 한다는 대한국 정부의 입장은 확고합니다. 동포 대부분이 거주하는 연해주에서는 물러설 수 없습니다.”
결국 국무회의에서는 황제가 제시한 3가지 안을 놓고 의논에 나섰다.
「1안. 1860년 북경 조약의 철회, 즉 연해주의 분리독립 인정.」
“연해주 인구의 20%가 한인이니, 보호라는 명분에는 가장 적절합니다.”
「2안. 1858년 아이훈 조약의 철회, 외흥안령 이남 아무르·연해주의 분리.」
“1안과 2안의 명분은 소비에트 정부가 진정한 제국주의 철폐를 원한다면, 러시아 제국주의가 청국에 강요한 불평등조약과 영토 할양을 부정하라.”
「3안. 바이칼 동부 전 지역, 자바이칼·아무르·연해주 3주의 분리.」
“시베리아 분리주의자들은 우랄 동부 전 지역의 독립을 원했지만 현재로선 불가능하지요. 성상께서도 가능한 최대선이 바이칼 동부 3주가 아닐까 생각하십니다.”
이승만은 보고를 이어 나갔다.
“1안은 동포 보호라는 확실한 명분이 있습니다. 2안은 청국 정부, 이를 대신하는 주만 고등판무관부에서도 요구하는 사항입니다. 3안은 몽골 정부가 부랴트까지 포함하길 원하기 위해 요구하고, 백군 시베리아 분리주의자들도 최소한 바이칼 동부 3주에는 독자정권을 세우길 원합니다.”
“현실적으로 2안이나 3안은 소비에트 정부가 받아들이지 않을 것 같은데.”
“일단 대한국 정부는 청국, 몽골, 러시아 임시정부를 대리하여 소비에트에 요구할 수 있는 건 다 요구해 보고, 협상으로 타협해 나가는 게 좋을 듯합니다.”
“으음. 논의된 바가 이와 같사오니, 소조께서 결단해 주시옵소서.”
침묵하며 경청하고 있던 이진에게 결정권이 주어졌다.
이진의 본심으로 따지면, 이승만의 주장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소비에트로부터 정통 러시아를 수복하진 못할지언정, 최소한 그들과 맞서는 동지들을 저버려서는 안 될 일이었다.
‘대한의 국익을 위해서도, 망명자들을 위해서도 바이칼 동부 3주는 지켜 내야 한다.’
하지만 이진은 본심을 드러내지 않았다. 결정은 부황의 몫이었다.
“대조의 명을 받들어 대리청정 중이라고는 하나, 외교와 군사의 일은 전적으로 대조께서 판단하실 일이오. 대조께 아뢰고 재가를 받도록 하시오.”
“예, 전하.”
평양 흥경궁.
외무대신 이승만과 군무대신 이동휘는 직접 평양으로 왔다.
보통은 전문과 전화로 해결하지만, 중대한 사안이니만큼 이선이 직접 이들을 불러들였다.
“그래, 외무대신은 러시아 내전 개입 문제에 대해 어찌 생각하시오?”
황제의 질문에 이승만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영국과 프랑스가 대한의 개입을 원하여 지원하였으니, 지금보다 더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하지 않을지요?”
“경은 대한의 외교를 책임지고 있네. 영국이나 프랑스의 입장보다는 대한의 이익을 먼저 생각해야 하지 않겠나? 영국이나 프랑스도 국내 문제로 인해 한발 물러서고 있지 않나?”
이선의 질책을 받은 이승만은 아차 싶었다.
5월 1일, 영국과 프랑스에서는 러시아 내전 개입에 반대하는 좌파정당과 노동계급의 대대적인 시위가 벌어졌다.
이미 국내 여론 문제로 우크라이나에서 철수한 프랑스는 직접 개입을 삼가는 대신, 폴란드를 지원하여 대리전을 추구했다.
영국 총리 로이드조지는 개입에 더욱 회의적으로 변했고, 격화되고 있는 아일랜드 독립전쟁과 그리스-터키 전쟁에 더 관심을 보였다.
처칠과 그 주변의 강경파들만이 ‘반소 십자군’을 부르짖는 상황이었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신도 대한의 국익을 먼저 고려해서 드린 말씀입니다. 백군이 패배 위기에 몰린 이상, 세계혁명을 외치는 소비에트 도당과 국경을 접할 수는 없습니다.”
“경은 외교관인데 외교적 해법이 아니라 군사적 해법을 선호하는 것처럼 들리는군.”
“꼭 군사적 해법을 의미하는 바가 아닙니다. 물론 최선의 전략은 외교적 승리겠지만, 외교도 대화가 되는 대상과 하는 것입니다. 소비에트 과격파들에게 무슨 외교적 신뢰성이 있겠습니까? 폐하께서 명하신다면 신은 그들과 협상을 하겠습니다만, 세계혁명을 부르짖는 저들이 과연 진지하게 협상에 응할지 의문입니다.”
“군무대신은 어찌 생각하시오? 러시아로 진격하면 승산이 있는가? 경은 러시아통이 아닌가.”
러일전쟁을 지척에서 경험하고, 러시아 주재무관을 지내고, 대전쟁 동부전선 파병군 참모장으로 군대를 이끌었던 이동휘는 군부 내에서 러시아통으로 알려져 있었다.
“폐하,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충용무쌍한 우리 국군은, 황명이 떨어지면 어디든 달려갈 것입니다. 이미 페트로그라드 전투에서 승리를 경험한 국군입니다. 하오나…….”
“계속하시오.”
“적군의 주력 대부분이 유럽에 있는 만큼, 단기전에서는 필히 승리를 거둘 것입니다. 철도를 따라 이르쿠츠크나 심지어 우랄산맥까지도 진격이 가능하겠지요. 하지만 장기전이 된다면 장담할 수 없습니다. 러시아는 너무나도 넓고, 교통은 취약합니다. 땅이 너무 광활하기 때문에 극동조차 완전히 제압하는 것조차 한계를 느껴, 주요 도시와 철도만 지키는 형편입니다.”
총력을 동원하면 단기적으로는 적군을 격파하고 진격이 가능하겠으나, 장기적으로는 답이 없는 소모전이 되고 말 것이다.
이선도 전적으로 동의했다.
‘우리가 방어하는 입장이라면 모를까, 러시아를 공격한다는 건 미친 짓이지.’
“동의하오. 전쟁은 말할 것도 없고, 극동에 장기간 대군을 파병하는 것조차 번거로운 일이오. 소비에트 러시아와의 전면전은 가급적 회피하되, 외교적 수완을 동원해 극동에 완충국을 설립합시다.”
“예, 폐하.”
이선은 러시아 극동에, 한국과 소비에트 사이의 완충국(緩衝國, buffer state) 설립을 구상했다.
“3안을 최대 목표로 하되, 최소한 연해주에는 대한의 세력권이 보장되어야 하오. 한인 동포 보호, 북경 조약 부정, 러시아 임시정부의 지원 요청, 할 수 있는 명분은 다 쓰시오. 동시에 대한은 구 러시아 영토를 단 1인치도 병합하지 않고, 공정한 중재자이자 보호자로만 남겠다고 선언하시오.”
구체적인 지침을 내린 이선은 이승만을 지목했다.
“외무대신, 경과 만주의 우사(김규식)에게 소비에트와의 협상을 맡기겠소. 조한민과 이위종이 모스크바와 접촉을 취해볼 것이오. 그들이 특사를 파견하면, 특사와 접촉하여 협상을 하시오.”
“예, 삼가 명을 받듭니다. 하온데 저들이 협상을 거부한다면 어찌 하올지?”
“그건 두고 봐야 알겠지만, 만약 소비에트가 완충지대를 거절하고 동진한다면 전쟁밖에 없겠지.”
이선은 전쟁과 평화의 대안을 모두 고려하고 있었다.
* * *
러시아, 모스크바.
소비에트 정부는 내전의 승리가 임박했다는 전황보고에 크게 기뻐했다.
노동자 농민의 붉은 군대는 남부, 북부, 동부에서 잇달아 승리를 거두었다. 반혁명 백군은 분쇄되어 흑해, 발트해, 태평양에 빠져 죽을 운명이었다.
얼마 전까지 모스크바 함락을 우려했던 소비에트 정부는 승리에 도취되어 있었다.
승리의 상징이 된 국방인민위원 트로츠키는 절정의 인기를 자랑했고, 처음엔 오합지졸 같던 붉은 군대도 내전을 거치며 더욱 강력해지고 있었다.
‘붉은 군대의 총검으로 러시아를 넘어 유럽에까지 혁명을 촉진시킨다!’라는 낙관론이 소비에트를 지배했다.
“이미 이르쿠츠크를 해방했으니, 동부전선의 진격은 여기서 멈춥시다. 더 이상 진격하는 건 한국과의 전면전을 야기할 수 있소.”
수상 격인 인민위원협의회 의장 울리야노프가 극동에서의 휴전을 제안했다.
“하지만 극동에서 투쟁하는 파르티잔 동지들이 받아들이겠습니까?”
“유감이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오. 전쟁에는 우선순위라는 게 존재하니까. 유럽에서 백군, 폴란드군과 싸우는 동시에 아시아에서 한국과 전쟁을 벌일 순 없소.”
“의장 동지, 한국이라면 왜 그렇게 소극적인 겁니까? 영웅적인 붉은 군대는 동서남북 동시에서 싸워 이길 수 있습니다!”
울리야노프는 인상을 찌푸렸다.
1년 전, 그는 조한민과 ‘극동에서의 당분간 휴전’을 합의했다. 시베리아 백군의 우랄 공세로 휴전은 깨진 것이나 다름없었고, 적군도 시베리아로 반격하여 이르쿠츠크까지 도달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한국과의 대립을 회피하고자 했다. 단순히 혁명 전에 밀약을 맺고 지원을 받았다든가, 휴전을 합의했다든가 문제가 아니었다.
“우리의 우선적인 목표는 내전의 승리와 유럽 혁명, 특히 독일 혁명이오. 소비에트의 전력을 투입해도 유럽에서 승리할지 자신이 없소. 그런데 극동에는 독일군과도 싸워 이긴 한국군 수십만이 있소. 한국이 개입하면 혼자 싸우려 들까? 일본과 미국도 덤벼들 수도 있소. 그들과 전면전을 벌이면 우리는 힘을 분산시켜야 하오. 그럴 때가 아닙니다. 유럽을 먼저 해방시킨 후에, 아시아로 나아가야 합니다.”
사회주의자들에게는 공통되는 신념이 있었으니, 바로 독일 혁명이었다. 마르크스의 모국이자, 유럽 최고의 산업국가인 독일에서 혁명이 일어나야만, 그들이 꿈꾸는 세계혁명이 가능했다.
오랜 망명 생활로 절반은 독일인이나 다름없는 울리야노프는 더욱 그러했다. 독일 혁명과 비교한다면 다른 모든 건 부차적이었다. 우선순위가 떨어지는 극동 문제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렇지요. 독일에서 혁명을 성공시켜야 합니다!”
“인구도 희박하고, 혁명의 조건도 갖춰지지 않은 극동에 매진할 이유가 없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바이칼 너머에는 반혁명 세력이 준동하고 있습니다! 반혁명 세력에게 극동을 넘겨줄 수는 없습니다!”
“물론 그럴 수야 없지. 동지들, 나는 중앙위원회에 극동 완충국을 세울 것을 제안합니다. 이는 극동 전문가 동지들의 제안이기도 합니다.”
울리야노프가 내놓은 완충국 안은 다음과 같았다.
1. 바이칼 동부의 자바이칼, 아무르, 연해주 3주를 분리하여 완충국, 가칭 ‘극동 공화국’을 수립한다.
2. 극동 공화국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국가로, 사적 소유권과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인정한다.
3. 다당제를 보장하고, 제헌의회 선거로 민주적 정부를 선출한다. 극동의 소비에트 조직도 사회민주노동당으로 재편되어 제헌의회 선거에 참여한다. 백군 정부에 속했던 정당들의 선거 참여도 허용한다.
4. 소수민족의 자치권을 존중한다. 지역에서 비중이 높은 소수민족, 예컨대 연해주 내 고려인 자치주와 자바이칼 내 부랴트 자치주를 설립한다.
“소비에트 영토를 잘라 내서 부르주아 민주주의 완충국이라니요. 이야말로 저들 제국주의자들이 원하는 바가 아닙니까?”
“어차피 그 지역은 현재 반혁명 세력이 통제하고 있소. 이보 전진을 위한 일부 후퇴일 뿐이오. 극동 공화국은 소비에트 정부가 한국, 일본, 중국, 미국 등과 협상하는 동방의 창구가 될 것이오.”
“첩보에 따르면 극동에 일본군 1만, 한국군은 7만이나 주둔 중이라고 합니다. 이들이 남아 있으면 완충국이 아니라 괴뢰국이 될 뿐입니다!”
“당연히 외국군 철수는 조건으로 내걸어야지요.”
물론 울리야노프라고 일방적인 양보만 할 생각이 없었다.
1. 극동 전역에서 모든 세력은 즉각 휴전에 돌입하고, 상호 간에 과거의 책임을 묻지 않는다.
2. 연합국은 백군, 특히 극우 반동세력(제정 복고파, 대러시아주의자)에 대한 지원을 배제해야 한다.
3. 한국, 일본, 미국은 극동 공화국의 주권과 영토를 보장한다.
4. 현재 극동 영내에 주둔 중인 외국군은 극동 공화국의 영토에서 철수한다.
울리야노프가 제안한 완충국, 극동 공화국 안은 인민위원협의회와 중앙위원회에서 다수를 얻었다.
중앙위원회의 지시를 받은 외무인민위원부는 협상을 위해 특사를 선발해서 한국으로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