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658
3부 73화 모스크바에서 온 밀사
“아시아의 노동자와 농민에게 소비에트 러시아는 목마른 길손이 생명수를 얻는 오아시스입니다. 아시아의 노동자에게는 권총도, 소총 한 자루도 없기에 지금 우리는 혁명을 시작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완전무장한 제국주의 병사에 맨손으로 맞설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동방에 나타날 때, 아시아의 인민은 여러분과 함께하리라 확신합니다. 동방에는 여러분이 도착하길 기다리는 거대한 대중과 민족들이 있습니다!”
“와아아아아!”
아시아 여러 민족, 특히 서남아시아 민족들을 대상으로 한 ‘동방 인민 대표자회의’, 그리고 제3인터내셔널(코민테른) 창립대회에서 맹활약한 동양인 청년이 있었다. 어찌나 열성적으로 연설을 내뿜는지, ‘동양의 울리야노프’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청년의 이름은 미하일 박, 한국 이름은 박진순(朴鎭淳).
연해주에서 태어난 고려인 2세로, 어렸을 때부터 수재로 이름나 학교에서 러시아인을 제치고 수석을 도맡았다.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지만, 1917년 혁명을 맞이하게 되었다.
스무 살 한창 피 끓는 젊은이답게 박진순도 혁명에 동참하게 되었다.
고려인 수재는 대개 학비가 없고 공직이 보장되는 사범학교나 사관학교에 진학했다.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장교가 된 이들은 대부분 백군을 택했지만,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교사가 된 이들은 대부분 혁명을 선택했다.
시골로 배치된 초임 교사들은 농촌의 열악한 현실, 가난하고 굶주린 아이들을 보면서 좌경화되었고, 지식인이 부족한 농촌에서 교사들은 혁명의 선봉장 역할을 했다.
그중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한 박진순은 극동 소비에트 대표로 모스크바에 보내졌고, 울리야노프의 눈에 띄게 되었다.
“박 동지, 동지에게 극동 문제의 중책을 맡기고 싶소.”
“당의 명령이라면 무엇이든 따르겠습니다!”
울리야노프는 외무인민위원 치체린과 함께 박진순을 면접했다. 혁명의 총아로 떠오르고 있긴 하지만 이제 나이 스물넷, 박진순은 떨리는 손으로 중앙위원회의 명령서를 받았다.
“보이틴스키 동지를 보좌하여, 동양 제국주의자들과 타협을 이뤄 내시오. 공식적인 외교사절은 아니지만, 그에 준하는 예우를 받기로 했소.”
박진순은 ‘극동 공화국’ 협상의 중책을 맡게 되었다. 러시아어와 한국어를 모국어로 쓰고, 독일어와 일본어도 할 수 있다는 언어 구사능력 외에도, 당의 노선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는 점을 높이 평가받았다.
“지금은 동양 제국주의자들과 전쟁을 벌여서는 안 될 시기요. 그들과 타협하여 극동 공화국을 설립하도록 하시오. 구체적인 설명은 치체린 동지가 해 줄 것이오.”
* * *
1920년 6월, 모스크바를 출발한 밀사 보이틴스키(Grigori Voitinsky)와 박진순은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타고 적군의 최전선인 베르흐네우딘스크(울란우데)에 도착했다.
극동에서 소비에트 권력을 대표하는 알렉산드르 크라스노쇼코프(Alexander Krasnoshchyokov)는 극동 공화국 계획을 모스크바에 건의하고, 승인을 받았다. 극동 공화국이 수립되면, 그는 극동 사회민주당의 지도자로 제헌의회를 주도할 계획이었다.
“충분히 승산이 있는 계획입니다, 동지들. 극동 인민들은 백군의 패악에 질려 있는 상황입니다. 파르티잔 토벌이라는 명목으로 불사른 농촌이 한둘이 아니니, 백군과 농민들과의 사이는 극악이지요.”
“백군은 그렇다 쳐도, 자칭 러시아 임시정부의 제헌의회에는 멘셰비키, 사회혁명당, 입헌민주당, 시베리아 자치주의자들이 있지 않습니까? 이들은 농민들에게 꽤 인기가 있었을 터인데.”
“백군 사령부는 모든 정당을 얼굴마담, 허수아비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내전에는 힘 가진 놈이 우선인데, 군사력 가진 건 결국 대러시아주의 군부니까요. 정당들도 군부에 질린 건 마찬가집니다.”
“그럼 군부와 우익을 배제한 민주공화국 연립정부가 가능하겠습니까?”
“이미 협상 중입니다. 연해주를 제외한 지역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받았습니다. 연해주는 한국의 입김이 너무 강해서, 쉽게 손을 쓸 수가 없습니다.”
모스크바에서 온 밀사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한국과 협상이 필요하겠군요.”
“예. 여기서부터 동쪽은 백군과 한국군 점령 지역이니, 각별히 조심하셔야 합니다. 한국 측에선 신변 보장을 약속했습니다만, 퇴각하는 백군은 거듭된 패전으로 제정신이 아닌 상태입니다.”
밀사들은 백계 러시아인 사업가와 통역관으로 위장하여 백군 점령지역인 치타를 돌파, 러시아-만주 국경을 넘었다.
6월 15일, 하얼빈역.
“여기가 8개월 전 스톨리핀이 죽었다는 그곳인가? 하필 여기서 만나다니 기분이 묘한 걸.”
“러시아와 만주를 잇는 중간지점이니까요. 여기서 만나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긴 합니다.”
공교롭게도 한국과 소비에트 양측 대표가 만나는 장소는 하얼빈이었다. 밀사들이 도착한 곳은 백군 총리 스톨리핀이 암살당했던 바로 그 장소였다.
“어서 오십시오, 먼 길에 고생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내전 중이라 쉽지 않은 여정이었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대한국과 대청국 정부가 소비에트 정부 특사 여러분의 안전을 보장합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관리는 주청 고등판무관부 차석 판무관 김규식이었다. 김규식은 밀사들을 모처로 안내하여 바로 협의에 들어갔다.
소비에트 밀사는 1차로 명목상 ‘청국을 대표하는’ 김규식과 접촉한 뒤, 2차로 한국을 대표하는 이승만과 협상이 예정되어 있었다.
“본인은 대청국 정부와 국제연맹의 승인을 받은 고등판무관부 차석대표로서, 대청국 외무부를 대신하여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대청과 러시아는 17세기 네르친스크 조약 이래 공정하고 대등한 관계를 맺고 있었으나, 19세기에 이르러…….”
한국 외교관인 김규식이 청국 정부를 대표한다는 게 모순이긴 했으나, 제국주의 국제정치의 흔한 현실이기에 소비에트 밀사들은 굳이 문제 삼지 않았다. 문제는 실질적인 논의였다.
“1858년 아이훈 조약과 1860년 북경 조약은 명백히 침략 전쟁 중 발생한 불평등 조약입니다. 특히 북경 조약은 영국과 프랑스군이 북경을 점령한 상황에서, 러시아 외교관이 중재를 명목으로 방대한 영토를 빼앗아 갔으니, 이는 전형적인 제국주의적 행태입니다.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소비에트 정부는 마땅히 불평등 조약을 부정해야 할 것입니다.”
“이미 소비에트 정부는 제정이 중국과 맺은 불평등조약을 폐기하고, 천진의 러시아 조계를 중화민국 정부에 반환했습니다만, 백군이 무시하고 점령을 이어 나가고 있습니다.”
“귀국의 진의는 높이 평가합니다만, 우리는 러시아와 중국의 관계가 아니라, 러시아와 청국의 관계를 논의하고 있습니다. 불평등조약의 피해자이자 계승국은 중화민국이 아니라 대청국입니다.”
김규식은 ‘중국과 청국은 다르며, 러시아와의 국경분쟁 대상은 청국이다’라는 걸 분명히 했다.
“그럼 청국은 무엇을 원하십니까?”
“제국주의 불평등조약인 1858년 아이훈 조약과 1860년 북경 조약을 폐기하고, 스타노보이 산맥(외흥안령) 이남 아무르와 연해주를…….”
“설마 청국에 할양하란 말씀은 아니시겠지요? 조약을 맺은 지가 60년 지났습니다. 이 지역에 거주하는 러시아 국민은 근 200만에 달합니다.”
“물론 아닙니다. 끝까지 듣고 말씀하시지요. 대한제국, 대청제국, 일본제국, 미합중국, 소비에트 정부가 공동으로 보장하는 자치국을 세웠으면 합니다. 기본적으로 아무르와 연해주 2주를 영토로 삼지만, 몽골 정부는 부랴트인이 다수 거주하는 자바이칼 주도 자치에 포함되길 희망합니다. 이 지역에는 별도의 부랴트-몽골국을…….”
김규식은 지도를 가리키며 자치국가 안을 설명했다. 밀사들은 모스크바의 ‘극동 공화국’안과 대동소이하다는 걸 확인했다.
“좋습니다. 그럼 이제 소비에트 정부의 제안을 전달하지요.”
소비에트의 제안을 전달받은 김규식은 깜짝 놀랐다. 외무부 동료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소비에트는 더 많은 양보를 해 왔던 것이다. 그가 생각했던 최대치는 1858년 아이훈 조약의 부정, 즉 한국이 준비했던 2안이었다.
“바이칼 동부, 자바이칼, 아무르, 연해주를 모두 포괄하는 독립국이라고요?”
“그렇습니다. 정치체제는 민주공화국, 경체제제는 사적소유권을 인정하는 자본주의입니다. 정부는 제헌의회 선거로 선출합니다.”
제안서를 꼼꼼히 읽어본 김규식은, 이만하면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한도 애초에 민중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사회혁명당과 시베리아 독립파들을 지원하지 않았나. 백군 반동파들은 시대착오적인 작자들이야. 소비에트에 반대하는 온건 민주주의자들이 정권을 잡는다면 바람직한 일이지.’
백군 반동파에 대한 지원 철회, 극동에서의 외국군 철수라는 조건이 걸리긴 했지만, 철수라는 건 그렇게 당장 손쉽게 이뤄질 일이 아니었다.
‘물론 이렇게까지 양보한다는 건 다른 노림수가 있겠지만, 전쟁 없이 협상으로 이 정도를 이룰 수 있다면, 충분히 받아들일 만한 조건이다.’
검토를 마친 김규식은 악수를 청했다.
“귀국의 제안을 청국 정부에 상신하겠습니다.”
“예, 긍정적인 검토 바랍니다.”
“그리 하겠습니다. 한국 외무대신이 장춘에서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럼 저희는 바로 한국과의 협상에 나서겠습니다.”
사실 말이 좋아 ‘청국과의 협상’이지, 실질적으로 김규식이 한국을 대표해서 밀사들을 만난다는 건 양쪽 모두 아는 사실이었다.
박진순은 김규식이 외무부 내에서 합리적인 온건파라는 걸 파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다음 협상 대상인 이승만은 대표적인 친서방반러파에, 반소비에트 강경파였다.
협상이 쉽지 않으리라는 예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우사(김규식)는 호구인가? 빨갱이들이 하는 약속을 믿는단 말인가? 세계 적화 음모로 발광하는 자들이 이렇게 큰 양보를 들고 나온다면, 분명히 다른 이유가 있다는 걸 파악해야지!”
소비에트-청국 협상, 실질적으로 소비에트-한국 1차 협상안을 받아들인 이승만은 혀를 찼다.
이승만은 크나큰 불신을 가진 채로 장춘에서 밀사를 만났다.
하필 여기에 수석특사 보이틴스키가 과로에 감기가 겹쳐 몸져눕자, 차석인 박진순이 이승만과의 협상에 나섰다.
‘대한의 대신인 내가 저런 애송이 빨갱이랑 동렬에서 협상을 해야 한다니, 체면이 말이 아니로세.’
이승만으로선 그 자체로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차관도 아닌 국장급에서 만나도 격이 맞을까 말까했다. 황제의 명만 아니었더라면, 직접 만날 일도 없었을 터였다.
속내가 무엇이든, 외교관인 이승만은 본심을 감추고 웃는 낯으로 악수를 했다.
“대한제국과 러시아 양국은 수교 이래 오랜 우방이었으며, 특히 대한 황제 폐하께서는 러시아를 특별히 여기십니다. 지난 몇 년간의 불행한 일로 양국 관계가 악화되었다고는 하나…….”
이승만이 외교관례상 양국의 우호를 언급하며 공치사를 이어 나가자, 박진순이 말을 끊었다.
“외무대신, 말씀 중에 죄송합니다만, 소비에트 정부는 외교에서 유럽 제국주의식 공치사가 불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즉시 실질적인 논의가 이뤄졌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싸가지 없는 놈을 보았나?’
이승만은 더욱 불쾌했으나, 여전히 웃는 낯을 유지했다.
“아, 그래요. 소비에트는 일반적인 국가랑 스타일이 다르지. 그럼 그렇게 합시다, 선생.”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
“선생? 호칭 문제부터 바로 잡읍시다. 귀하가 러시아 태생이라 잘 모르나 본데, 대신에게는 각하나 대감이란 경칭을 붙이는 게 조선의 예의올시다?”
“우리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모두를 동지라고 부릅니다. 수상에 해당되는 동지도 예외가 없지요.”
‘건방진, 역시 빨갱이들은 위아래도 없나?’
미국 유학파로 미국식 개혁을 추구했지만, 본질적으로 조선 사대부 가문 태생인 이승만은 보수적이었다. 양녕대군의 후손으로 왕족이라는 자부심도 강했고, 전통적 예의범절을 중시했다.
그가 보기에 박진순은 머리는 좀 똑똑할지 몰라도, 함경도 촌구석에 살다 러시아로 이주한 집안 2세에 나이도 아들뻘이고, 직위도 한참 낮았다. 그런데 맞먹으려고 드니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비공식적이라고는 하지만, 내가 소비에트 정부를 대표해서 이 자리에 왔는데 어찌 위에 서려고 한단 말인가?’
박진순도 동등해야 할 외교 협상에서 한쪽이 우위에 서려고 하니 불쾌하긴 매한가지였다.
“좋소, 호칭은 마음대로 하시오. 어찌됐건 간에, 나나 선생이나 똑같이 한민족이요. 각자 방향성은 달라도,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하고 있다고 생각하오. 선생이 러시아에서 학문을 익히다 혁명가가 된 건, 다 동포들을 위한 일이라 믿고 싶소. 나 역시 미국에서 그 어려운 박사과정 공부를 하고 외교관이 된 건, 대한의 자주와 자강을 위하여…….”
이승만 나름에는 박진순을 존중한답시고 하는 말이었지만, 박진순은 정색을 했다.
“물론 선생께서도 어려운 공부를 하셨을지 몰라도, 러시아의 우리하고는 다릅니다. 우리는 굶주림이 뭔지 압니다. 차르의 감옥도 밥 먹듯이 드나들었습니다. 하지만 선생은 미국에서 정부 장학금을 받으며 편하게 살지 않았습니까?”
“뭐시라? 누가 편하게 살아?”
이승만이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나는데도, 박진순은 거듭 비판했다.
“외교라는 것도 그렇습니다. 대체 파리에서 뭘 했습니까? 식민지 인민들의 호소는 외면하고, 열강들끼리 땅따먹기만 한 게 아닙니까? 우리 소비에트 정부는 동방 인민 대표자회의에서 아시아인들의 절박한 호소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선생은, 윌슨의 제자입네 하고 서양 제국주의자들과 한 패가 되어, 파리에서 파티나 즐기지 않았습니까!”
만약 보이틴스키가 있었다면 말렸겠지만, 젊은 박진순은 결국 혈기를 누르지 못했다.
가뜩이나 파리강화회의와 제국주의의 위선에 경멸감을 느끼고 있는데, 이승만이 노골적으로 자신을 내려 보자 참지 못하고 터트리고 만 것이었다.
“뭐시라? 이런 버르장머리 없는! 고얀 사람 같으니라고!”
이승만은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그때서야 실수를 깨달은 박진순은 사과하며 김규식과 논의한 협상안을 들고 나왔다.
“제 말이 무례했더라면 사과드리겠습니다. 우리는 어디까지나 이 자리에 협상을 위해 모인 것이니만큼…….”
하지만 이승만의 분노는 멈추지 않았다. 이승만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극동 공화국이라고? 이유는 빤하지. 아직 내전도 안 끝났고, 폴란드와 전쟁을 앞두고 있으니, 극동에 완충국을 세워 시간을 벌려는 거겠지. 겉으로는 민주공화국 운운하지만, 대한국군이 완전히 철수하고 나면 뭘 하겠나? 그때는 마각을 드러내 볼셰비키가 정권을 잡고 소비에트에 합쳐 버리겠지!
“어찌 귀국과 협상하려는 진의를 그토록 모독할 수 있단 말입니까!”
“나는 빨갱이들이 하는 말은, 콩으로 메주를 쓴다고 해도 안 믿네. 우사를 어떻게 꼬드겼는지 몰라도, 나는 안 넘어가! 속지 않는다고!”
이승만의 강력한 거부에 박진순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좋습니다! 외교를 거부한다면, 남은 건 전쟁이겠지요! 반혁명 백군을 분쇄한 영웅적 노농적군이 극동을 휩쓸게 될 겁니다! 이만 가 봐도 되겠습니까?”
“가야 하고 말고! 썩 돌아가! 도무지 상종할 사람이 못 되는구만! 괘씸한 사람 같으니라고!”
자리에서 일어선 박진순이 예의상 목례를 했지만, 이승만은 고개를 돌려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결국 박진순이 문을 닫고 나가자, 이승만은 문 밖을 향해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60만 대한국군을 앞에 두고 가소롭게 협박이라니! 노농적군이라고? 어림도 없다, 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