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659
3부 74화 외교의 본질
“동지, 무슨 일을 이렇게 합니까? 이건 동지의 명백한 오류요!”
“죄송합니다, 동지. 전적으로 제 잘못입니다. 중앙위원회에 보고하여 철직(撤職)되어 마땅합니다.”
보이틴스키의 질책에 박진순이 고개를 숙였다. 변명의 여지가 없는 실수였다.
‘촉망받는 청년 이론가이자 뛰어난 선동가라. 하지만 언변이 유창하고 여러 외국어를 구사한다고 능숙한 외교관이 되는 건 아니지.’
기실 이는 박진순 한 사람의 책임이 아니었다.
러시아 혁명 이후 구체제의 외교관들은 절대다수가 물러났고, 새로운 이들이 외교를 맡았다. 당연히 외교경력이 일천했고, 외교보다는 선전에 치중했다.
파리강화회의 러시아 대표로 참석했던 트로츠키도 ‘혁명적 화법’으로 연합국 대표단을 경악시키지 않았던가.
공치사나 연회와 같은 당대 외교관례를 ‘부르주아적 위선’으로 규정하고 바로 실질적인 논의에 들어가는가 하면, 외교적 수사 없이 면전에서 열강의 위선과 제국주의 정책을 비판하곤 했다.
혁명 최고의 영웅으로 떠오른 트로츠키를 모범으로 삼던 청년이, 트로츠키처럼 행동하려 드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여긴 공개외교의 현장인 파리도 아니었고, 박진순도 트로츠키급 거물은 더더욱 아니었다.
“박 동지의 오류는 당에서 논의하여 결정할 겁니다. 아무튼, 이승만이 저런 태도를 보이는 건 이유가 있을 거라 봅니다.”
“이유요? 감정을 참지 못해 터뜨리는 걸로 보였습니다만…….”
“순진하기는. 이승만은 주미 대사와 파리강화회의 대표단까지 지낸 제국주의 외교관이오. 그런 자가 감정을 조절하지 못해 그 난리를 쳤겠소? 어떻게든 트집을 잡아 협상을 엎으려고 한 거요. 동지는 이승만의 계략에 말려든 거고.”
보이틴스키는 혀를 찼다. 이승만의 권위적이고 고압적인 자세를 직접 경험한 박진순으로는 계략이 아닌 본심으로 느껴졌지만, 상관의 의견을 따랐다.
“그렇다면 계략을 파악하지 못한 제 잘못입니다. 죄송합니다.”
“사과를 받자고 한 말은 아니오. 중요한 건 그자가 왜 그랬느냐지. 분명히 김규식은 우리와의 협상에 긍정적이었소. 그런데 한국 외교를 대표하는 이승만은 같잖은 이유로 엎어 버렸지. 왜 그랬을까?”
“유화파인 김규식과 달리 이승만은 반러 반소 강경파입니다. 그로선 이 협상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다면 이게 한국 정부의 뜻이겠소? 아니면 이승만 개인의 독단이겠소? 여기에 따라 협상의 여지가 달라지겠지.”
“한국 정부의 뜻이라면 공식적으로 거부했겠지요. 태도를 문제 삼아 엎지는 않았을 겁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오. 김규식과 다시 접촉을 취해 봐야겠군. 이유야 어쨌건 이승만에게 사과해서 꼬투리 잡을 여지가 없도록 해야 합니다.”
“예, 제 오류니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몇 번이라도 고개를 숙이겠습니다.”
“수석인 내 책임도 있소. 아프다고 병석에 누우면 안 되는 거였는데. 이번엔 내가 직접 나서겠소.”
보이틴스키는 이승만에게 사과의 뜻을 표하고 회견을 청했으나, 이승만은 만나 주지도 않았다.
“외무대신과 동격인 사람이 직접 오라고 하시오. 치체린이 오든가, 아니, 트로츠키 정도는 와야 협상할 수 있소!”
문전박대하고 장춘을 떠난 이승만은, 남만주철도 특별객실 안에서 흥얼거렸다.
“어디 속 좀 타 봐라, 빨갱이 놈들. 시간 끌면 아쉬운 게 너희지 우리냐.”
이승만이 느낀 분노의 감정은 진짜였지만, 분노를 참지 않고 터뜨린 건 다분히 계산적인 행동이었다.
이승만의 외교 경력 어언 15년, 감정조절을 못 할 정도로 아마추어는 아니었다.
소비에트 외교관들의 상식을 깨는 태도도 경험해 보지 못한 건 아니었다. 당장 파리에서 트로츠키의 ‘파격적인’ 외교를 직접 경험해 보지 않았던가?
‘그 애송이가 내 예상보다 더 신경을 건드려서 열 뻗치게는 했지만, 꼬투리 잡을 구실로는 충분했지.’
이승만은 처음부터 협상을 파투 낼 생각이었다. 어떻게든 명분을 잡아 협상을 엎어 버리려 했던 이승만에게, 박진순의 무례한 태도는 구실에 지나지 않았다.
이승만의 현실인식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 소비에트는 믿을 수 없다. 극동 공화국은 언뜻 보면 소비에트의 일방적인 양보로 보이지만, 어디까지나 거짓 유화정책에 불과하다. 유럽에서의 내전, 폴란드와의 전쟁으로 인해 극동에서 일시적으로 후퇴하려는 것뿐, 결국 태평양 연안까지 적화 야욕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둘째. 그렇다면 무의미한 협상을 해서 저들에게 시간을 벌어 줄 게 아니라, 무력을 동원해서라도 선제적으로 극동을 제압해야 한다.
셋째. 만약 소비에트와 협상한다면, 서방 국가들과의 신뢰관계는 어찌하는가? 서방, 특히 영국은 한국을 러시아의 동진을 저지하는 극동의 보루로 여기지 않는가? 서방에서 폴란드가 그렇듯이, 동방에서는 한국이 러시아를 막는 보루가 되어야 한다.
이승만은 황제에게 이렇게 아뢸 생각이었다.
물론, 그의 속내가 정치적 현실주의로만 냉정히 돌아가는 건 아니었다.
첫째. 1차 협상이 성공한 상태에서 2차도 그대로 받아들여지면, 그 공로는 모두 김규식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미국 유학 시절부터 김규식을 경쟁자로 여겼던 이승만으로서는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둘째. 박영효 일파의 실각 이후 개화당 우파는 지도자를 잃었다. 하지만 한국 내에 보수주의, 팽창주의, 반사회주의 여론이 사라진 건 아니다. 차기에 정권을 잡으려면, 이들의 욕구도 만족시켜 줘야 한다.
셋째. 보다 본질적인 문제로, 이승만은 확고한 입헌군주제 지지자였다. 분명히 정당중심 입헌군주제로 전환했음에도, 여전히 국가의 중대사, 특히 군사와 외교는 황제가 전적으로 결정했다. 현재 외무대신은 그저 황제의 전령에 불과했다. 이승만의 생각으로는, 외무장관이 외교정책을 총괄하고 민의에 선출된 총리가 정책을 책임지고 추진해야 했다.
‘물론 성상은 불세출의 지도자이시지. 하지만 성상의 시대가 영원할 수는 없지 않나. 성상이 언제나 옳으리란 법도 없고. 잘못된 결정을 내리는 군주에게 간하는 건 무릇 신하된 도리 아닌가? 그런데 작금의 내각에는 예스맨들로만 가득 차 있으니. 총리인 이상설 대감도 황제라면 꼼짝을 못해.’
이승만은 일전의 외무대신들과 달리, 수족이 아닌 본인이 머리가 되길 원했다.
그의 생각에 대소 유화책은 잘못된 정책이었다. 만약 협상을 하더라도, 한국이 절대적인 우위를 누린 상태에서 소비에트를 제압해야 했다.
* * *
‘극동 공화국’ 계획은 소비에트 러시아가 막대한 영토를 자발적으로 잘라 내는 것이니 만큼, 분명히 엄청난 양보였다.
“현지에서 목숨 걸고 투쟁한 파르티잔 동지들은 결코 백군 반동들, 제국주의 국가와의 타협을 원치 않을 겁니다. 이건 그들을 저버리는 행위입니다!”
“붉은 군대가 한국군이든 일본군이든 모조리 몰아내고 태평양까지 진격해야 합니다! 발트해에서 태평양까지 러시아는 분열할 수 없습니다!”
극동 공화국 계획은 소비에트 내부의 강경파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울리야노프와 ‘볼셰비키’는 표결에서 다수를 차지했다.
남부의 백군, 서부의 폴란드와 건곤일척의 대결을 벌이는 동시에 극동에서 다른 열강과 전쟁을 벌이고 싶지 않다는 현실적 이유가 지배적이었다.
극동에 완충국을 설립한다는 계획이 승인된 건, 볼셰비키가 내전으로 위축되었다기보다는 역설적으로 세계혁명을 낙관적으로 보았기 때문이었다.
“반드시 공업 선진국, 노동계급이 다수를 이루는 나라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발발해서 러시아 혁명과 연결되어야 한다. 바로 독일, 오스트리아, 프랑스, 영국이다.”
“아시아 혁명의 물적 토대는 아직 확립되지 않았다. 일본과 한국에서 자본주의가 비교적 발전했다고는 하지만, 아시아 인구의 절대 다수는 농민이며, 식민지 문제가 가장 시급하다. 아시아에 사회주의 혁명을 촉발시키는 건 아직 이르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유럽 혁명이 다가올 역사의 필연이라고 생각했다.
노동자가 아닌 농민이 절대 다수인 농업국가 러시아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났다는 것은, ‘정통 마르크스주의’ 입장에선 용인할 수 없는 변형이었다.
그 변형을 바로 잡는 건, 독일과 같은 산업 선진국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는 것이었다. 1918년 11월 혁명처럼 독일 내부에서 들고 일어나면 가장 좋은 일이지만, 혁명을 앞당기기 위해 ‘붉은 군대가 총검으로 촉진’시킬 수도 있었다.
이 논리에 따라, 1920년대 초반 소비에트의 모든 전력은 서방을 향해 쏟아져야 했다. 혁명의 객관적 토대가 확립되지 않은 아시아에서는 한발 물러서서 때를 기다려야 했다.
* * *
1차 협상과 달리 2차 협상이 결렬되자, 보고를 받은 이선은 이승만과 김규식을 모두 평양으로 소환했다.
6월 21일, 평양 흥경궁.
“협상을 맡은 두 사람의 의견이 확연히 갈라지니, 청취를 하지 않을 수가 없구려. 협상 여부에 대해 고견을 말씀해 보시오. 자유롭게.”
“소비에트가 제안한 극동 공화국 계획은 대한이 추진하는 제3안과 거의 근접하며, 전쟁이 아닌 외교로 거둘 수 있는 최대치의 성과입니다.”
소비에트 대표는 계속 김규식과 접촉을 취하며 협상을 호소했고, 김규식은 극동 공화국 협상을 지지했다.
이승만이 태도를 문제 삼아 협상을 깨트렸다니, 김규식으로서는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외교는 어떠한 상대하고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신은 외무대신이 어찌하여 이 협상을 깨트리려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국익이 결정되는 중대한 자리에, 겨우 상대의 말투를 문제 삼아 결렬시킨다니요!”
‘말도 안 되는 일이지. 근데 설마 그 이승만이 겨우 감정 조절을 못해서 일을 망쳤단 말인가?’
이선도 이승만의 행태가 어이가 없었고, 뭔가 다른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김규식의 비판에 이승만이 정색을 했다.
“판무관도 알다시피 나는 미국에서 근무하던 당시 인종차별을 당한 바 있습니다. 외교관 신분에 면전에서 인종차별을 당하고도 참고 넘어갔던 내가 그 정도도 못 참겠습니까? 단순히 말투가 문제가 아닙니다.”
이승만뿐만 아니라, 외교관 신분으로도 인종차별을 당한 이들이 수두룩했다. 윤치호처럼 주미 대사관에서 근무하다 백인에게 인종차별성 폭행을 당한 경우도 있었다. 그 후에 윤치호가 미국에 대해 양가적인 감정을 느끼게 됐다는 건 유명한 일화였다.
“폐하, 신이 한 말씀 올려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오, 자유롭게 하시오.”
이승만은 자신이 생각하는 협상을 중단해야 할 이유 세 가지를 댔다.
“……동방에서는 한국이 러시아를 막는 보루가 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폐하께서도 파리에서 그토록 외교적 노력을 경주하신 게 아닌지요?”
“뭐, 경의 말은 충분히 일리가 있소. 실제로 짐도 그렇게 노력했던 게 사실이고.”
이선이 의외로 순순히 이승만에게 동조하자, 이승만이 말을 더했다.
“저들은 절대로 적화 야욕을 저버리지 않을 겁니다. 저들이 바이칼 동부 3주를 포기하는 것처럼 보여도, 선거를 통해 집권한 뒤, 국군을 철수시키고 결국에는 소비에트와 합병하려 들 겁니다.”
“흠, 그래서 협상 자체를 그만둬야 한단 말이오?”
“억측입니다, 폐하! 물론 소비에트도 야욕이 있을 겁니다. 그런데 대한은 극동에 전략이 없단 말입니까? 극동 공화국이 수립되어도, 안전장치를 만들어놓으면 됩니다! 한소 양국 모두 극동 공화국의 합병을 금지한다는 조항을 넣고, 군대 철수 문제도 순차적으로 풀어 나가면 됩니다.”
김규식은 대안도 내놓았다. 한국군이 연해주 고려인의 보호를 명분으로 주둔을 이어 나가다, 극동 공화국군이 편성되는 과정에서 고려인 장교단이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
“판무관은 세계혁명을 부르짖는 사회주의자들의 야욕을 너무 과소평가하는군요. 러시아제국에서 분리한 국가들의 독립을 인정했다가, 이제 와서는 서방 연합국과 반혁명 세력의 도구로 쓰이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군대를 투입시키고 있지 않습니까? 극동에서도 똑같이 굴 겁니다.”
“순서의 선후를 분명히 하시지요, 외무대신. 서방연합국이 먼저 소비에트를 봉쇄하고 내전에 개입하지 않았습니까?”
“허어, 김 공은 아주 위험한 사상을 갖고 있군요. 그럼 세계혁명을 부르짖는 무리들이 선동하는 걸 가만히 내버려 둡니까?”
“말씀이 지나칩니다, 외무대신! 어찌 어전에서 폐하의 신하에게 위험한 사상을 운운할 수 있습니까?”
가만히 듣고 있던 이선은, 이쯤에서 개입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외무대신, 짐은 판무관의 충정을 믿어 의심한 적이 없소. 그리고 판무관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고.”
“폐하, 신의 뜻은…….”
“소비에트 러시아가 세계혁명을 부르짖는 위험한 체제인 건 틀림없는데, 저들의 당면한 목표는 유럽이지 아시아가 아니오. 유럽 열강이 호들갑 떤다고 해서 우리까지 그럴 필요는 없소. 객관적으로 아시아에 사회주의 혁명의 조건이 있다고 생각하시오? 전혀 없소.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더 기계적인 세계관을 갖고 있다는 걸 명심합시다. 농업이 대세인 아시아에서는 부르주아 민주주의 단계라 인식하고, 서방 제국주의를 흔들기 위해 식민지의 진보적 민족주의자와의 연합을 시도할 거요.”
역설적이게도, 황제 이선이 신료들보다 당대 마르크스주의에 대해 더 조예가 깊었다.
조한민에게 번역본을 구해 각종 사회주의 저작들을 읽었고, 심지어 울리야노프와 트로츠키의 최신 저작도 탐독했다.
지피지기백전불태였다. 공포는 무지에서 비롯된다. 상대의 세계관을 이해해야 공포와 증오를 피하고, 제대로 된 대응책을 준비할 수 있었다.
“소비에트의 의도를 못 믿겠다고? 그건 저들도 마찬가지요. 저들도 제국주의 국가를 못 믿겠지. 원래 외교라는 게, 완전히 신뢰하는 나라끼리만 하는 것도 아니지 않소? 하물며 동맹끼리도 완전한 신뢰는 없소. 상호불신과 탐색은 외교의 기본이고, 이해관계를 따져 국익을 쟁취하는 게 외교의 본질이오.”
이선도 황제인 이상, 소비에트 체제를 불신하고 혐오했다. 하지만 외교란 불신하고 혐오하는 대상과도 할 수 있었다.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국익을 쟁취한다면.
“외무대신의 예측대로 소비에트의 의도가 일시적 양보 후에 궁극적인 적화에 있다면, 우리도 그에 맞춰 대응하면 그만이오. 대한에는 충분히 그럴 능력이 있소. 외교적 수단을 고려하여 저들을 제압합시다.”
이선은 협상을 지속할 뜻을 분명히 했다. 김규식이 고개를 조아리며 물었다.
“하오면, 신이 협상을 계속 진행하오리이까?”
“아니오, 잠시 때를 기다립시다. 외무대신이 시간을 잘 끌어 줬소.”
“예?”
“협상을 지속할 터이니, 모스크바에 밀사가 아닌 정식 전권위원을 보내라고 하시오. 어차피 저들도 밀사는 탐색 차원에서 보낸 걸 터이니, 충분히 응할 것이오. 전권위원을 임명해서 극동으로 오는 데 시간이 걸리겠지. 그럼 충분하오.”
이승만과 김규식이 의아한 표정을 짓자, 이선이 빙긋 웃었다.
“육군정보부의 보고에 따르면, 폴란드의 총공세가 임박했소. 금주(今週)에 폴란드가 우크라이나와 동맹을 맺고 키예프를 향해 공세를 개시할 거요. 그럼 모스크바는 다급해지겠지.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건 저쪽이 될 터이니, 잠시 기다려 봅시다.”
이선은 진심으로 폴란드군의 선전을 기원했다.
폴란드가 아닌, 대한제국을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