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66
– 66화에 계속 –
66화 권력의 향방(向方)
개화당 인사들이 완화궁에서 물러난 후, 숙원(淑媛) 이씨가 이선을 불렀다.
“완화군. 잠시 이 어미랑 이야기 좀 하시지요.”
“예, 어머니.”
지난 7월에 이선이 조선에 돌아온 후, 2년 반 만에 감격의 모자 상봉이 이뤄졌다.
암살을 피해 홀로 도망쳤던 아들이, 승리자로 당당히 귀환하자 영보당도 얼마나 기쁜지 몰랐다.
더욱이 완화군을 질시하고 죽이려 했던 중전 민씨가 폐출당하고, 영보당에게 숙원 첩지가 주어졌다. 그녀로선 숙원(宿怨)을 풀고 숙원(宿願)을 이룬 셈이었다.
하지만 이선이 귀국한 이래 거의 집에 들어오지도 않고 정신없이 일만 하자, 숙원 이씨는 자연스레 걱정하는 마음이 들었다.
“군이 나라를 위해 힘쓰는 건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국정에 관한 일은 국태공께 맡기고, 군은 이제 좀 쉬는 게 어떻겠습니까? 이제 혼례도 들고 후사도 생각해야…….”
“콜록, 콜록!”
이선은 차를 마시다가 하마터면 뿜을 뻔했다.
“완화군, 괜찮습니까?”
“아, 괜찮습니다.”
이선은 잠시 진정했다가 답했다.
“소자의 나이 이제 겨우 열다섯인데, 어찌 벌써 혼례를 올리겠습니까?”
“열다섯이면 이미 성인이지요.”
이 시대에 열다섯 살이면 어른 대접을 해 주고, 혼례도 올렸다. 특히 왕족은 더욱 빨랐다. 이선도 열한 살에 관례(冠禮)를 올렸었다.
“열다섯이면 절대로 늦지 않습니다. 세자께서는 아홉 살에 가례를 올리지 않았습니까?”
‘……가례랍시고 돈 펑펑 쓰다가 민씨 멸망의 도화선이 됐잖아.’
“세자는 국본이니 저와 다르지요.”
이선이 정색을 하니 숙원도 아차 싶었다.
“완화군,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오해하지 말고 들으십시오.”
“예, 어머니.”
“사세가 이렇게 됐지만, 군은 결코 저위(儲位, 세자)를 탐내선 안 됩니다. 한때 나는 군이 세자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나 역시 모든 욕심을 버렸습니다. 어미 된 마음으로, 나는 군이 권력에서 멀어져 자유롭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청국도 가고, 태서도 가고…….”
숙원은 진심으로 걱정했다. 기세등등하던 중전과 외척들이 단숨에 몰락하는 걸 보고, 그녀는 권력에 대한 두려움이 생겼다.
‘언제 세도를 누렸다가 언제 몰락할지 모르는 게 운명 아닌가! 결코 내 아들이 저래서는 안 된다.’
“결코 국태공이나 성상과 맞서 싸우면 안 됩니다. 군은 국태공의 손자이자, 성상의 장자임을 잊지 마십시오. 비록 두 분의 사이가 좋지 못하나, 장손이자 장자의 말은 귀담아들으실 겁니다. 두 분의 화해를 종용하고, 군은 정무에서 물러나도록 하세요.”
상황이 그렇게 간단하지 못하기에, 이선은 차마 뭐라 대답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어머니의 마음을 이선이라고 모를 리가 없었다.
“알겠습니다. 어머님의 염려, 늘 마음 깊이 새겨 두겠습니다.”
이선이 외교 상황을 보고하러 운현궁에 들어갔다. 보고를 마친 후, 그날따라 대원군이 은근한 어조로 이선의 속내를 물었다.
“중전을 이미 폐했으니, 동궁은 어찌하면 좋겠느냐?”
‘말이 씨가 된다더니.’
마침 운현궁에는 대원군파 대신과 유생들도 있었다. 이선은 대원군이 자기를 떠보려는 걸 알았다.
“어찌하긴 어찌합니까? 충심으로 받들어야지요.”
“폐비의 아들을 국본으로 놔두자고? 너는 연산군과 폐비 윤씨의 전례를 잊었느냐?”
“경종 대왕과 폐비 장씨의 전례도 있지요. 더욱이 성상께서 보령이 한창이신데 어찌 후계를 논한단 말입니까? 이는 신하 된 자의 도리가 아닙니다.”
이선이 하는 말이 진심인지, 위선인지 대원군은 종잡을 수가 없었다.
“저위를 왜 국본(國本)이라 하겠느냐? 나라를 이을 근본이기 때문이다. 국본은 튼튼해야 한다. 네가 총명하고 민씨의 변란을 바로 잡는 공을 세웠으니 저위에 올라도 자격이 충분하다.”
“아니, 그럼 제가 세자가 되고 싶어서 지금까지 일을 벌였다는 이야기밖에 더 되겠습니까?”
그럼 그게 아니란 말이냐, 하는 표정으로 대원군이 이선을 쳐다보았다.
“너는 천하를 호령하고 싶은 욕심도 없느냐?”
“있지요. 하지만 모든 건 순리를 따라야 하는 법입니다. 한번 정해진 임금과 세자를 쉽게 바꿔선 안 됩니다. 저는 결코 저위에 오를 생각이 없습니다.”
‘허, 이놈 봐라? 어린 녀석이 역시 만만치가 않아.’
‘하여튼 음흉한 노인네야. 은혜와 부담을 동시에 주려고 하는구만. 내가 이대로 세자나 임금이 되면, 모양새가 뭐가 되나? 대원군의 꼭두각시밖에 더 되나?’
대원군과 이선은 서로 웃고 있었지만, 머릿속으로는 빠르게 계산하고 있었다.
이선의 단호한 대답에, 결국 대원군도 뜻을 꺾었다.
“허허, 네 충심이 갸륵하다. 그럼 이 사안은 다음에 논의하자꾸나.”
“예,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선은 대원군의 노림수를 짐작했다. 대원군이 자신으로 세자를 갈아치우면, 명분이든 실리든 이선은 대원군에게 의존해야 했다.
‘더욱이 세자가 되면 정해진 법도란 게 있으니 궁을 마음대로 벗어날 수도 없고, 모든 사안은 대원군의 통제하에 놓이겠지. 그럴 수야 있나? 권력은 쟁취하는 것이지, 누가 던져 주는 게 아니다.’
이선은 즉시 창덕궁으로 입궐하여, 세자가 있는 동궁으로 갔다.
“완화군 입시옵니다!”
“혀, 형님. 어서 오시옵소서…….”
나이 아홉 살, 아직 어린 세자는 벌벌 떨며 자리에서 일어나 이선을 맞이했다.
자신을 총애하던 어머니는 폐비되었고, 장인인 민태호는 목숨은 건졌으나 함경도로 유배되었다.
세자의 신분은 한없이 불안했다. 세자는 폐비 민씨가 저지른 모든 악행의 근원이라는 극언까지 나왔다. 아무리 어린 세자라 할지라도, 자신을 둘러싼 험악한 분위기를 읽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선은 정치적 계산을 떠나, 인간적으로 어린 세자의 처지가 딱했다.
‘쯧, 이 상황이 어떻게 세자의 책임인가.’
“저하, 비록 사사로이 형제라고는 하나, 저하는 국본이시고, 신은 신하에 불과합니다. 어찌 국본이 신하에게 먼저 예를 갖출 수 있겠습니까? 제 절을 받으십시오.”
이선이 세자에게 절을 하니, 세자도 화들짝 놀라 답례했다.
“저하, 공부는 잘되어 가십니까?”
“예? 할아버님의 배려로…….”
세자에게는 엄청난 공부가 요구되었다. 하지만 공부가 손에 잡힐 리가 없었다.
“저하께서는 장차 보위를 이으실 분이니, 성학(聖學)을 열심히 공부하셔야지요.”
“예? 아, 예, 예! 시강원의 스승님께서도 그리 말씀하십니다. 하오나…….”
세자가 쭈뼛거리면서 말을 하지 못하자, 이선이 먼저 말을 꺼냈다.
“세간에서 구구절절 말이 많습니다만, 저하께서는 들으실 필요가 없습니다. 신은 저하의 신하입니다. 신하 된 자로서 어찌 감히 저위를 탐내겠습니까? 저는 저하를 충심으로 보좌할 것입니다. 심려치 말고 열심히 학문을 닦고 수양하소서.”
“혀, 형님!”
뜻밖의 선언에, 세자가 눈물을 흘렸다.
이선은 세자의 손을 잡고, 한 손으로 그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저하와 저는 성상의 아들이요, 형제이옵니다. 세상에 형제보다 더 가깝고도 신뢰할 사이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니 신을 믿어 주소서.”
“예, 고맙습니다, 형님…….”
이선은 세자에게만이 아니라, 모두에게 들으라는 식으로 큰 소리로 말했다.
“감히 국본을 흔들려 하는 자는, 나 이선이 용서치 않으리라!”
이선의 말은 빠르게 소문이 돌았다.
“완화군이 세자께 충성하고 보호하겠다고 선언하셨다는데.”
“폐비가 얼마나 완화군을 미워했는데, 과연 그릇이 크네.”
“그러게 말이야. 형제간의 우의가 남다르구만.”
“우의? 그게 진심이겠나? 여론을 살펴보려고 그러는 게 아니고?”
“아닌듯하네. 이미 운현궁으로 들어가 저위를 탐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는데.”
“그래? 대원군 앞에서 그리 말했다면 진심이로구만. 대원군이 어떻게든 세자로 만들어 줄 터인데…….”
“아직 어려서 그런가? 마음만 먹으면 세자 자리는 아무것도 아닐 터인데.”
“완화군은 정말로 권력에 욕심이 없나 보이.”
“할아버지와 다르게 말이야. 흐흐!”
“이 사람아, 말조심하게. 지금이 운현궁 세상인데…….”
“흥! 운현궁의 노욕을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나.”
“그건 그래. 대원군이 완화군을 내세워 성상과 세자를 폐위시키려 들까 봐 걱정이었다네.”
“그건 역적질이지! 그럼 폐비와 민겸호가 아니라 대원군이 역적이 되는 거 아닌가?”
“그랬다간 신료, 아니 사대부 전체와 등을 돌려야 할걸.”
“그나마 완화군이 중도를 지켜서 다행이네. 총명한 데다 겸손하니, 나라의 복이야!”
이선의 처신을 칭찬하는 여론이 쏟아지니, 대원군은 쓴웃음을 짓고 이선은 미소를 지었다.
‘세자가 되면 하루 종일 궁에 있으면서 성리학 공부만 해야 하고, 왕실의 어른들에게 문안인사 가고, 자유 시간도 없고. 절대 그 짓은 안 한다.’
이선은 이미 계산이 다 되어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허울뿐인 군 작호 따위는 필요 없지.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세자가 더 허울이다.’
본래 조선의 법도대로라면 왕족의 정치 참여가 철저히 금지되어 있었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은 왕의 생부인 대원군이 최고 권력자이고, 왕의 형인 이재면이 호조판서 겸 선혜청 당상 겸 훈련대장이었다.
왕의 장자인 이선도 얼마든지 관직에 올라 요직을 맡을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대원군 정권이 안정되자, 이선은 예조참판 김홍집을 움직여 시무(時務) 관료들이 목소리를 내게 했다.
“통리아문을 혁파하고 의정부로 돌아간 것은 구례를 회복한 일이었으나, 작금의 정세는 외교의 일이 급합니다. 예조만으로는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없습니다. 시무가 급합니다. 청국의 총리아문을 본받아 군국의 기무를 처리하게 하는 기관을 세우소서.”
1881년, 임금은 청의 총리각국사무아문을 본받아 통리기무아문을 만들었다. 하지만 단순한 외교 기구가 아니라, 국내외의 군국 기무를 총괄하는 기관이었다.
옛 제도를 선호하는 대원군은 집권 이후 통리기무아문을 폐기하고 의정부로 복귀했다. 하지만 이미 시대가 크게 바뀐 상황이었다.
“기껏 없앤 통리아문을 다시 만들자니, 이게 가당키나 한 말이냐? 통리아문이 대체 비변사와 다를 바가 무엇이냐? 의정부 말고 다른 기관은 필요 없다.”
대원군이 거부 의사를 밝히는데, 이선이 그를 설득했다.
“아니, 그렇게 보실 일이 아닙니다. 지금 할아버님께서 섭정을 하고 계신다지만, 법적 근거가 있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어디까지나 조선은 국왕이 다스리는 군주제 사회였다. 대원군이 국왕의 생부라지만, 법적 근거를 갖고 통치하는 건 아니었다.
1873년의 대원군 실각과 1882년 재집권에 대한 반발에서 드러나듯, ‘지체 높은 사인(私人)’의 통치에 대해 저항감을 가진 신료와 사대부가 수두룩했다.
“그래서?”
이선이 대원군의 아픈 점을 건드리니, 대원군은 눈을 흘겼다.
“청국 총리아문의 수장이 누구인지 아실 것이옵니다.”
“공친왕이지. …… 아하, 네가 말하고 싶은 게 뭔지 알겠다.”
총리아문은 청나라 최고 정무 기관인 군기처의 대신들이 겸임하지만, 그 수장은 황족인 공친왕이 맡았다.
“청국과 공친왕의 선례를 따르십시오. 그럼 청에서도 좋아할 거고, 중국의 일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사대부들도 감히 반대하지 못할 것입니다.”
대원군은 무릎을 쳤다.
“묘안이다. 그럼 새 기관의 당상을 내가 맡으면 되겠구나. 반대가 있으면 중국의 전례를 따랐다고 하면 그만이고.”
“그렇지요. 이왕이면 시무에 밝은 관료들을 등용하면 나라에도 도움이 되고, 보기에도 좋을 것입니다.”
“음, 그리하도록 하자.”
임오년 7월 20일, 1882년 9월 2일.
임금의 전교가 있었다.
“국가에 일이 많은 이런 때에는 문제를 의논하는 장소가 없어서는 안 된다. 기무처를 합문 안에 두되, 응당 갖추어야 할 절목은 와서 모이는 신하들이 마련하여 올리도록 하라.”
청의 군기처와 총리아문을 모델로 한 기무처(機務處)가 설치되었다.
“호조판서 이재면, 이조판서 김병시, 병조판서 조영하, 예조참판 김홍집, 호군 김윤식, 부호군 홍영식, 부사과 어윤중, 교리 신기선, 교리 김옥균, 그리고 영정종경 이선을 기무처에 모이게 하라. 군국의 사무를 기무처 총재 대원군께 가서 의논하게 함으로써 품지하여 재결하도록 하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균형 잡힌 인선에, 대원군의 집권에 불안감을 가졌던 신료들, 특히 개화파가 환영했다.
절묘한 인선이었다. 대원군과 가까운 보수·척족 세력에서 이재면, 김병시, 조영하가 기무처 당상으로 임명되어 수장인 총재 대원군을 보좌하게 되었다.
또한 실무를 맡을 상근직으로 시무(온건) 개화파인 김홍집, 김윤식, 어윤중, 신기선이 임명되었다.
이들은 항상 궁궐 내에 숙직하면서, 중요한 사무를 처리할 예정이었다.
그리고 변법(급진) 개화파인 홍영식과 김옥균이 처음으로 국가의 결정에 관여하는 직책에 진출했다.
새로운 정치 구도가 형성된 것이다.
실제 역사에서도 임오군란 직후에 기무처가 등장하긴 하나, 그 형태는 달랐다.
내정·재정·군사·외교에 이르기까지, ‘군국의 사무를 총괄’하는 기구가 된 기무처는, 개화파들의 주도로 조선을 재건할 비상 기구가 될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