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663
3부 78화 하얼빈 회담
“……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일어나십시오, 두 분 대공.”
“저희가 무리한 부탁을 드리는 건 압니다. 하지만 저희가 호소할 곳은 오직 황태자 전하뿐입니다. 전하께서는 지금 섭정을 맡고 계시지 않습니까?”
“아니, 대리청정은 서양의 섭정과 다릅니다. 국가의 대소사는 황제 폐하께서 결정하십니다.”
“정통 러시아를 수복한다면, 러시아인들은 그 은혜를 잊지 않고 한국에 보답할 겁니다.”
“제발…… 도와주세요.”
이진이 난처함을 표하자, 타티야나와 마리야는 눈물을 흘리면서 호소했다.
여인의 눈물을 본 이진으로서는 더더욱 난처했다.
‘저들이 불안감을 느끼고 있는 것도 당연하지. 입장 바꿔 생각해 보면, 대한이 러시아와 홀로 전쟁을 벌이는 데 미국이 지원해 줬다가 갑자기 발을 빼 버리면, 대한은 얼마나 당혹스럽겠는가? 이해가 되지 않는 바는 아니다.’
이진은 감정적으로는 망명자들의 호소에 동조했다.
마음만 같아서는 들어주고 싶다고 해도, 그럴 수는 없었다.
아무리 대리청정 중이라고 해도, 황제는 엄연히 부황이었다. 특히 외교와 군사 문제는 처음부터 부황이 전담하겠다고 하였다. 이미 부황이 내린 결정이었고, 그걸 자신이 뒤집을 수는 없었다.
“…… 알겠습니다. 황제 폐하께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아아, 그래 주신다면!”
“관대하신 황태자 전하, 감사드립니다!”
타티야나와 마리야는 이진의 손을 하나씩 잡고 손등에 거듭 입을 맞췄다. 서양 문화에서는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지만, 이런 일에 익숙하지 않은 이진은 더더욱 당황했다.
“으, 으음. 그럼 전 황제 폐하를 뵈러 가겠습니다. 두 분은 마음을 편히 가지고 기다리세요.”
“정말 감사합니다. 주님의 가호가 함께하시길!”
두 자매는 이진이 황제를 설득해 주리라 믿고 자리에서 물러섰다. ‘사촌’의 인정에 호소하는 것이 망명자인 그들이 할 수 있는 최대치였다.
마찬가지로, 들어주는 시늉을 해 주는 게 이진이 베풀 수 있는 인정의 최대치였다.
부황에게 망명자의 불안감을 덜어 달라는 호소를 전하긴 하겠지만, 외교정책을 변화해 달라고 건의할 수는 없었다.
“대전쟁부터 오랫동안 함께 싸운 전우들을 버리고 적과 협상하다니, 이건 배신 아닌가?”
“세계의 적화를 꿈꾸는 빨갱이들을 어찌 믿고 협상한단 말인가?”
사실 협상 반대의 목소리는, 이진이 아니라 군부와 외무부 일각에서 나오고 있었다.
소비에트와의 협상에 반대하는 백계 러시아인과 고려인들의 청원서가 관계부처에 잇달아 들어오면서, 소장파 장교와 외교관 사이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나왔다.
블라디보스토크, 러시아 주재 한국군 사령부.
소비에트와의 협상이 예정되면서, 극동 각 지역에 배치되어있던 한국군의 대부분은 연해주로 이동했다.
“이미 국군과 백군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치타까지 철도를 장악하고 있다. 적군이 쳐들어온다면, 백군과 함께 적들을 몰아내면 그만이다.”
“대한의 방어를 위해서는 만주가 필요하고, 만주의 방어를 위해서는 러시아 극동이 필요하다. 극동이 위태로우면 만주가 위태로워지고, 장차 대한의 안보까지 위태로워진다.”
황제이자 대원수의 명을 철통같이 신봉하는 군부 1-2세대 장성급과 달리, 1900년대 이후 무관학교에 진학한 3세대 영관급 장교들은 대한제국의 ‘역사적 사명’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특히 유능한 장교들을 대거 배출하여 군부의 유망주로 떠오르는 무관학교 23기(1906년도 입학)·24기·25기 기수들.
30대 초반인 이들은 어릴 적에 독립전쟁과 북벌전쟁의 승전 분위기 위에서 영웅으로 떠오른 군대에 지원했고, 육군대학에서 심도 있게 전략을 배우고, 대전쟁 동부전선에 참전하여 그 강력한 독일군을 격파하는 데 일조했다.
대표적인 인물로 김광서(경천) 부령, 지대형(청천) 부령, 홍사익 부령, 김좌진 부령, 송호성(宋虎聲) 참령, 이응준(李應俊) 참령, 신태영(申泰英) 참령 등이 있었다.
이중 김광서는 폴란드에 파견되어 있었고, 원수부 참모본부에서 근무하는 홍사익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모두 시베리아와 극동에 파견되어 있었다.
“원수부에서는 현지 사정을 모르기에 적과 협상 타령하는 겁니다. 협상이 타결되면, 준동하는 파르티잔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질 것 같습니까? 지금까지 소비에트 지원 없이 싸워 왔던 파르티잔입니다. 장담하는데, 볼셰비키도 그들을 통제 못 합니다.”
연해주 주재 정보부 장교인 이응준은 소장파 중에서도 가장 강경했다.
“백군의 호소에 응답해야 합니다. 파르티잔이 있는 한 결국 전투는 계속될 수밖에 없고, 백군은 생존을 위해서라도 싸워야 합니다. 주둔군 철수를 요구하는 협상이라면 안 하는 게 낫습니다.”
이응준은 대전쟁 동부전선에서 분전하다 독일군의 포격에 맞아 중상을 입고 퇴역한 이갑 부장의 사위이기도 했다. 이갑은 간신히 살아남았지만 반신불수가 되어 연명했다. 명예를 중시하던 군인으로선 엄청난 고통이었다.
그는 존경하는 선배이자 장인이 피를 흘린 땅에서 물러날 수 없었다. 완충국을 건설하려면, 파르티잔을 모조리 소멸시키고 세워야 했다.
“귀관의 말이 옳네. 황성과 서경에서야 지도만 보고 선을 긋고 있으니 상황파악이 안 되겠지. 그동안 적들과 싸워 왔던 건 우리와 백군이야. 전우들이 흘린 피가 얼마인데, 여기서 물러나라고!”
1918년 동부전선에서 맹활약하여 소장파의 영웅으로 떠오른 김좌진도 마찬가지였다.
작년에 잠시 본국으로 돌아간 걸 제외하면, 그는 1916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전방에서 싸워 왔다. 전쟁 중에 태어난 아들 얼굴조차 가물가물했다.
피로 피를 씻고, 전우들이 목숨을 바친 땅인 러시아에서 물러나는 건, 전략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선배님, 장교단의 의견을 모아 원수부에 건의해주십시오. 홍 부령님이 작전과장으로 계시지 않습니까. 그분이라면 우리를 이해해 주실 겁니다.”
침묵을 지키고 있던 지대형에게 이응준이 채근하자, 어렵게 입을 뗐다.
“어려운 일이야. 이는 대원수 폐하의 명이네. 홍사익 그 친구라고 별수 있겠나? 우리 모두 대원수 폐하의 군인인데, 황명이 떨어진 이상 따라야 하네.”
지대형의 말은 정론인지라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얼굴에는 불만의 기색이 역력했다.
“자, 제군. 너무 실망하지 말고 각자 할 일을 하자고. 협상이 반드시 관철되리라는 법도 없으니. 상명하복인 우리도 이런 목소리가 나오는데, 저 과격한 적색분자들 사이에선 불평이 없겠나? 일단 기다려 보세.”
“예, 알겠습니다.”
지대형의 권유에 모두 자리에서 일어섰다. 결국 소비에트와의 협상이 결렬되리라고 믿으며.
* * *
협상을 위해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이르쿠츠크에 당도한 소비에트 전권대표 카라한에게, 현지 파르티잔 대표들의 반발이 전해졌다.
“극동 지방의 파르티잔은 소비에트 정부의 극동 공화국 계획에 극렬히 반발하고 있습니다. 반기라도 들 기세입니다.”
“극동 파르티잔은 정부의 통제를 벗어나 있소. 아무리 우리의 행정력이 미치지 않는다지만, 지나치게 독립적이야. 중앙위원회에서도 우려하는 중입니다.”
“만약 이들이 협상을 깨려 한다면 어찌합니까?”
“그들 태반이 아나키스트지. 아나키스트의 의견까지 배려해 줄 필요는 없소.”
극동 파르티잔의 상당수는 아나키즘 계열이었다.
사회민주노동당은 ‘정통 마르크스주의’였으므로, 아나키즘에 부정적이었다.
사회주의와 아나키즘의 대립은 거슬러 올라가면 제1인터내셔널 시기 마르크스와 바쿠닌의 대립으로부터 비롯됐다.
우크라이나에서도 백군에 맞서 마흐노의 아나키스트 흑군과 연합을 맺고 있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적의 적은 동지’이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우크라이나 흑군은 마흐노라는 카리스마적 지도자가 있어 단합되어 있지만, 극동 아나키즘 계열 파르티잔은 말이 좋아 아나키스트지 독립적인 테러리스트나 다름없었다.
“만약 반동 백군, 외세 제국주의자들과 협상하면 파르티잔은 극동이 완전히 해방될 때까지 전투를 계속 이어 나가겠다고 엄포를 놨습니다.”
“각 부대에 정치위원들을 다시 파견해 소비에트 정부의 명령에 복종하라고 지시하시오. 소비에트와 신생 공화국의 명령에 복종하는 파르티잔만이 인민의 동지요, 거부하는 자는 극좌 모험주의자들이오.”
극동 협상 전권위원 카라한은 단호한 명령을 내렸다.
“카라한 동지, 협상장소인 치타는 아무래도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거긴 백군 잔당들이 모여 있지 않습니까.”
“한국 정부로부터 대표단의 신변보호를 약속받았소. 만약 우리 신변에 문제가 생기면 그건 한국의 책임이지.”
“그게 만약 백군이 테러를 저지른다면 한국 책임이 맞습니다만, 협상에 반발하는 아나키스트들이 치타로 잠입해 테러라도 저지른다면……. 테러라면 이골이 난 작자들 아닙니까.”
현실적인 우려였다. 만약 한국 대표단과 소비에트 대표단이 테러라도 당한다면, 범인이 누가 됐건 전쟁을 피할 길이 없었다.
백군 강경파와 파르티잔 강경파 모두 전쟁 지속을 외치니, 어느 쪽도 일을 저지를 수 있었다.
“알겠소. 장소 변경을 논의해 봅시다.”
소비에트 정부는 안전을 우려하여 회담 장소를 치타에서 적군이 통제하고 있는 베르흐네우딘스크(울란우데)로 변경하자고 제안했다.
“소비에트 영역 한복판에서 회담하자니, 안 될 말이오.”
“베르흐네우딘스크도 치타도 극동 공화국의 예상되는 영토입니다. 협상에 반대하는 과격분자의 공격에 대비해서 옮기자는 것뿐입니다.”
“안전하기로 따지면, 차라리 청국 영토가 훨씬 안전하지요. 청국도 이 협상의 당사자이니만큼, 하르빈으로 장소를 변경합시다.”
“하르빈은 작년에 스톨리핀이 저격당한 바로 그 장소 아닙니까! 어찌 안전을 보장한단 말입니까?”
“바로 그렇기에 안전합니다. 저격 사건 이후 발본색원하여 치안을 완전히 회복했습니다. 만주와 시베리아를 통틀어 회담하기에 하얼빈만큼 안전한 장소도 없을 겁니다.”
밀고 당기는 논의 끝에, 결국 대한제국의 주장대로 하얼빈이 관철되었다.
본래 러시아가 조차한 ‘하르빈’은 백군이 지배하다, 1919년 10월 저격사건 이후 한국군이 주둔하며 통제하게 되었다.
1920년 7월 17일, 하얼빈역.
9개월 전과 달리 역에는 태극기와 청국 오색기 옆에, 러시아 삼색기 대신에 적기가 걸려 있었다.
열차의 도착에 맞춰 울려 퍼지는 군악대의 연주도, 러시아 국가가 아니라 소비에트 국가로 쓰고 있는 인터내셔널가였다.
만주에서 인터내셔널가가 공식적으로 연주되는 첫 사례였다.
“먼 길에 노고가 많으셨습니다.”
“인터내셔널가 연주를 들으니 피로가 싹 풀리는 기분이군요. 귀국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대한제국 주청 판무관 겸 한청 양국의 전권대표를 맡은 김규식입니다.”
“소비에트 공화국 정부 외무부인민위원 겸 전권대표를 맡은 레프 카라한입니다.”
김규식의 소개에 카라한은 전문 외교관이나 다름없는 세련된 영어와 매너로 화답했다.
아르메니아 변호사 출신인 카라한은, 그를 만나본 영국 외교관 로버트 록하트경이 극찬할 정도였다.
「검게 휘날리는 머리카락과 잘 다듬어진 수염을 가진 아르메니아인인 카라한은 혁명의 아도니스였다. 그의 매너는 완벽했다. 그가 화를 내는 모습을 본 적도 없고, 연락을 주고받는 내내 동료들에게 스파이, 배신자로 질책을 당할 때도 입에서 불쾌한 말을 낸 적도 없다.」
록하트는 러시아에서 활동하던 외교관이자 영국 비밀정보국 첩보원으로, 백군의 쿠데타 계획에 동조했었다. 그런 이가 극찬할 정도로 카라한의 외모와 인품은 훌륭했다.
“제가 들으니 한국 황제 폐하께서는 애주가시라더군요. 제 고향인 아르메니아 브랜디를 두 병 준비했습니다. 한 병은 폐하께 드리는 소비에트 정부의 선물이고, 한 병은 대표께 드리는 제 선물입니다.”
“이런, 참으로 귀한 선물이로군요. 감사합니다.”
내전과 원거리를 뚫고 온 선물에 김규식이 감사를 표했다. 김규식은 술을 안 마시는 편이었지만, 애주가인 이선이 받으면 기뻐할 선물이었다.
“황제 폐하께서 귀국 대표단의 안전에 각별히 신경 쓰리고 명하셨습니다. 귀국 대표단을 위해 오찬을 준비했습니다. 함께 이동하시지요.”
“예, 감사합니다.”
하얼빈의 최고급 러시아식 호텔에서 오찬이 이뤄졌다.
소비에트 강경파들이 보면 ‘부르주아적 일탈’이었지만, 카라한은 이도 외교의 일부라고 생각했다.
사회민주노동당 우파, 즉 ‘멘셰비키’에 속했던 카라한은 대외 온건파였고, 울리야노프로부터 외무차관에 발탁된 이후에 강경파들로부터 끊임없이 비난을 당했지만, 소비에트의 국제적 이익을 위해 노력하는 외교관이었다.
“하얼빈을 방문한 오랜만입니다. 그동안 도시가 많이 발전했군요.”
“호오, 오신 적 있으십니까?”
“예, 차르 정권의 동청철도 노동조합 탄압을 변호하는 임무를 맡아 하얼빈에 온 적이 있습니다.”
제정 시기 하얼빈에서 활동하고, 이르쿠츠크에서 유배생활을 하며 아시아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카라한은 소비에트 정부 내에서 손꼽히는 아시아 전문가였다.
“그러셨군요. 동청철도는 러시아 제국주의가 청국에 강요한 불평등조약의 산물이었습니다. 러시아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청국과 한국의 노동자들도 저임금을 받으며 고생했지요.”
김규식이 자연스럽게 동청철도 문제로 전환했다. 한국의 협상 목표 중 하나는 동청철도의 청국 ‘반환’, 즉 대한제국의 통제였다.
“차르 정권의 제국주의적 행태는 비판받아야 마땅합니다. 노동 현장이 얼마나 열악했는지는, 제가 당시 변호를 맡았으니 누구보다 잘 알지요. 동청철도 연결은 만주에 대한 명백한 침탈이었습니다.”
“과연 그렇지요.”
카라한은 김규식의 의견에 동조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호락호락 넘어가지는 않았다.
“하지만 동청철도 부설조약은 불평등조약으로 강요한 것이 아니며, 1896년 청국 대신 이홍장의 러시아 방문 당시 비테 장관과 협상하여 정식으로 체결된 조약입니다. 동청철도의 소유권은 러시아에 있으며, 오늘날에는 이를 계승한 소비에트 정부에 있습니다.”
“부설조약 자체를 부정하는 건 아닙니다. 그런데 청국이 부설을 허용한 조건은, 일본의 침략으로부터 러시아가 만주를 공동으로 방어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정작 1900년 의화단 반란 진압을 명분으로 만주를 점령한 건 러시아 아니었습니까?”
새삼 20년 전 역사가 소환되어 논쟁의 소재로 쓰였다.
“그때는 한국도 만주를 함께 점령하지 않았습니까. 결국 러시아는 만주에서 물러났지만, 귀국은 아직도 만주에 있지요.”
“대한은 대청국의 형제국이자, 대청의 보호를 맡게 되었습니다. 그에 비해 러시아는 1858년과 1860년, 위기에 처한 청국을 압박해 불평등조약을 맺어 광대한 영토를 빼앗아 갔지요. 제국주의 조약의 극치인 아이훈조약과 북경조약은 폐기되어야 합니다.”
마침내 역사 논쟁은 1858년 제2차 아편전쟁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되었다.
“판무관, 지나간 조약의 합법성을 따지면 한도 끝도 없을 겁니다. 왜, 1689년 네르친스크 조약까지 거슬러 올라가지요?”
“바로 그겁니다! 대청국은 러시아와 완전히 동등한 조약을 맺었던 네르친스크 조약 체제로 되돌아가길 원합니다.”
김규식은 마치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극동 지도를 꺼내 전면에 걸었다.
1920년 극동공화국(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