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675
3부 90화 왕족들의 협력
함경선(원산-경흥)과 평원선(평양-원산) 기차를 타고 올가와 함께 평양에 돌아온 이선은, 그녀를 곧장 5남매의 거처인 러시아 총영사관으로 보내고 자신은 흥경궁으로 향했다.
“폐하, 신 강, 부르심을 받고 왔습니다.”
“음, 의친왕 왔는가.”
이선이 가장 먼저 의논 대상으로 삼은 건 아우인 의친왕 이강이었다.
황형으로부터 뜻밖의 이야기를 전해 들은 이강은 놀랐다.
“러시아 공주가 황태자비라니, 가능하겠습니까?”
“해 봐야지. 나는 진이 원한다면 반드시 성사시킬 생각이네.”
“본인이 원하는 혼인이라면, 그게 가장 바람직한 일이지요. 훌륭한 선택이십니다.”
조선 왕실 최고의 이단아답게, 이강은 전혀 반대하지 않고 동조했다. 이선의 예상대로였다.
“그래, 자네라면 이해해 주리라 생각했네. 내 마음을 이해해 줄 수 있는 종친은 자네뿐이지.”
이강은 문득 옛 기억이 떠오른 듯 씩 웃었다.
“러시아에 갔을 때가 떠오르는군요. 그때 제가 미국 배우랑 결혼한다고 할 때 황형께서 결사반대하지 않으셨습니까. 2천만의 총의…….”
이강이 새삼 옛 일을 찌르자, 어지간한 비난을 들어도 꼼짝 않는 이선이 무안해하며 손을 내저었다.
“도대체 그게 언제적 일이란 말인가? 이만하면 잊을 때도 된 거 같은데.”
“24년 전 일입니다. 생생한 기억이지요.”
“원, 민망하구만. 말했다시피, 그때는 내 후계자가 없었던 시기네. 만약 내가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아우들 중에서 후계를 결정했어야 했어. 척이 세자에서 물러난 이상, 자네 아니면 영이었지. 적자인 영이 계승하더라도 그때 나이 겨우 열 살이었네. 그렇다면 자네가 나를 대신해서 대업을 이어야 하는데, 왕족으로서의 지위를 포기하겠다고 하니 내가 화가 나지 않았겠나?”
이선의 구구절절한 해명에 이강이 껄껄 웃었다.
“하하, 황형의 깊은 뜻을 제가 어찌 모르겠습니까? 다만 정작 영은 원하는 대로 혼인을 허락해 주시니, 소신으로서는 부럽고 한스러울 따름입니다.”
“이보게, 영이 혼사를 올릴 때만 해도 광무 17년이야. 내가 자식이 여섯이나 되었을 때니까 자유롭게 허락한 거지. 자네도 영처럼 10년만 늦게 태어났어도 내가 마음대로 허락했을 거야. 그리고 지금 자네는 마음대로 살고 있지 않나?”
올해 마흔넷이 되었음에도, 이강의 여성편력은 악명 높을 정도였다. 일부일처의 새 원칙을 따라 본처는 한 명이었지만, 첩실과 정부(情夫)가 여럿이었다.
그 사이에서 얻은 서자들은 모두 본처 소생의 적자로 만들었으니, 본처 김씨는 삼종지도의 윤리대로 지아비에게 복종은 해도 속을 끓고 있었다.
“제가 한량에 주색잡기 즐기는 파락호여야 개화당 원훈들이 좋아하지 않겠습니까.”
이강의 주색잡기는 반은 취향이었지만, 반은 처신이었다. 이영이 외국 여인과 결혼하여 멀리 외국에서 머물지만, 본국에 있는 자신은 한량 노릇으로 정치에 관심이 없다는 걸 증명해야 했다.
“오해야. 아무도 자네를 경계하는 사람은 없네. 영도 마찬가지고.”
“지금은 그렇겠지요. 하지만 10년 전만 해도, 제가 집 밖으로 나가가기만 해도 감시하는 사람들이 따라붙곤 하였습니다. 신하된 도리로 폐하께 드릴 말씀은 아닙니다만, 시간이 지나서 신도 말씀드리는 겁니다.”
어린 이진이 정윤(正胤)으로 받들어질 무렵, 개화당 원훈들은 이영을 유학이라는 명목으로 사실상 추방하길 원했다. 이강에 대한 경계는 이영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감시의 끈은 이어져 있었다.
“……그들이 과잉대응했었지. 지나간 일이지만, 내가 대신 사과하겠네.”
“아닙니다, 신이 감히 폐하께 사과를 받으려고 드린 말씀이 아닙니다. 단지 장남이 후계자가 되었다고 하여 차남의 재주가 쓰이지 못하고, 의심의 대상이 되는 게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이강도 미국에서 유학하고 총명했던 인물이니만큼, 나름 국가를 위해 큰일을 해 보겠다는 야망이 있었다.
하지만 개화당 정부에서 이강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왕자에게 국정을 맡는 지위를 내주는 건 결사반대였다. 왕자의 신분으로 대신의 자리에 오른 건 완화군의 사례면 충분했다.
그렇다고 이영처럼 외교관 역할이 주어진 것도 아니었다. 이선의 배려로 궁내부의 요직을 역임하고 황실의 재산을 관리하는 중책도 맡았으나, 그가 본래 원했던 건 대신의 자리에 올라 형을 보좌하는 것이었다.
나름 야망과 재주가 있음에도 좌절되자, 이강은 주색잡기를 탐함으로써 시름을 달랬다.
“예친왕은 그렇다 쳐도, 정친왕을 경계하는 이들이 종친 중에 적지 않습니다. 신은 그저 안과 은이 자유롭게 살기 바라는 마음입니다.”
이강은 이안의 몇 안 되는 후원자였다. 종친들 사이에서 따돌림 당하는 이안을 아끼고 후원했다.
“자네가 우려하는 바를 내 어찌 모르겠나. 그래서 더욱 이 국혼을 추진하고 싶네. 생명은 모두 존귀하니, 모범이 되어야 할 황실에서 혼혈이라는 게 흠이 돼서는 안 돼. 안도, 영의 자식도 모두 존중받아야 하네. 장차 태어날 진의 자식도 마찬가지고.”
황형의 뜻을 이해한 이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신은 폐하께서 하시고자 한다면 따르겠습니다. 신이 무엇을 하면 되겠습니까?”
“고맙네. 태상황과 종친의 반대가 거셀 터. 자네가 나서 줬으면 하네. 젊은 종친들을 중심으로 찬성 여론을 조성해 주게. 국민적 여론은 내가 조장할 터이니, 자네는 황실을 맡아 주게.”
이강은 문득 쓴웃음을 지었다.
“아시다시피 황실 내에서 제 평판은 최악 아닙니까. 차라리 순친왕 형님이 낫지 않겠습니까?”
“물론 척이 선두에 서면 좋겠지. 종친 중에선 서열이 가장 높고, 태상황의 효자니. 하지만 창경궁에 은둔하다시피 사는데 번거롭게 불러내기 미안하네. 우리가 판을 만들어 둔 다음에 이름 올리는 거라면 모를까.”
“하긴 그렇군요. 그럼 영친왕은 어떻겠습니까? 러시아 귀족 여인과 결혼하였으니, 황실의 선례로 내세우기에는 바람직하지 않겠습니까.”
“안 그래도 영에게 가족들과 함께 본국으로 들어오라 했네. 천추경절 이전까지는 도착할 거야.”
이선은 이영을 주영대사에서 해직하고, 궁내부 예식원경(禮式院卿)으로 임명해 불러들였다. 이영의 아내 아나스타샤와 아들이 한국에 들어오는 건 처음이었다.
“오오, 간만에 영을 보겠군요. 저는 제수씨와 조카를 본 적이 한 번도 없는데, 이번에 볼 수 있겠습니다.”
“음, 그 아이가 혼혈일지라도 영친왕가는 계승될 거네. 일단 자네 아들 우처럼 공의 지위를 부여할 생각이네.”
이선은 이영의 사례를 전례로 삼아, 이진의 국혼을 추진할 생각이었다. 이를 위해 영친왕가에 대한 예우를 최고로 할 생각이었다.
“아무튼 영은 당사자니까 본인이 직접 나서긴 곤란하고, 자네가 나서 줘야 하네. 비록 자네가 어른들 사이에서는 평판이 안 좋을지라도, 청년들 사이에선 인기가 좋지 않나. 어차피 세대교체는 필연이야.”
이강이 주색잡기만 하는 건 아니라서, 다양한 사회적 활동을 했다.
대한적십자사 총재로서 자선활동을 하고, 황제와 황태자를 대리해 여러 곳을 방문해 사회적 약자를 후원하는 역할을 했다.
이강의 황족답지 않은 파격적인 언행과 태도에 보수적인 이들은 못마땅하게 생각해도, 젊고 진보적인 이들은 ‘사동궁(의친왕) 전하’를 좋아했다.
“예, 알겠습니다. 신 이강, 삼가 폐하의 명을 받들어 국혼의 성사를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음, 자네를 믿겠네. 잘 부탁하네.”
이선은 아우에게 강한 신뢰감을 표명했다.
* * *
광무 24년 11월, 인천항.
영친왕 이영은 영국으로부터의 오랜 항해를 마치고, 마침내 본국으로 돌아왔다.
“긴 여정이었군요.”
“예, 5주나 걸렸으니까요.”
이영은 말없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항해 기간을 말한 게 아니라, 귀국 명령이 떨어질 때까지 걸린 시간을 생각했다.
광무 11년에 유학을 떠난 이래, 13년 만의 완전 귀국이었다. 중간에 두 차례 귀국을 하긴 했지만, 어른들께 인사를 드리기 위한 짧은 체류였다.
약관의 청년은 어느덧 서른넷의 아버지가 되어 있었다.
‘황형께서는 왜 나를 갑자기 소환하셨지? 아버님의 건강이 나쁘다는 말은 들었다만, 그토록 안 좋으신 겐가? 정혜의 말로는 거동은 불편하셔도 의식에는 지장이 없다 하였는데. 손자가 태어났는데도 인사 한 번 없었다니, 나도 참 어지간히 불효자로군.’
이영은 더욱 우울한 기분이 되었다. 아나스타샤와 결혼한 이후, 태상황과의 연락은 완전히 끊기고야 말았다. 그토록 아들을 아끼던 태황후와도 관례적인 인사만 주고받을 뿐이었다.
그나마 동생인 정혜공주가 있어 중재자 역할을 했다. 부모와 오빠 사이를 중재해 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정혜공주는 남편이 젊은 나이에 요절하는 바람에, 나이 서른도 안 되어 과부가 되고 말았다. 과부의 재가(再嫁)를 금하는 관습을 악습으로 여기는 큰오빠 이선이 재혼을 권했으나, 그녀는 사양하고 시부모님을 모셨다.
여동생의 처지가 딱한데, 이영은 자신의 일로 누를 끼치고 싶지 않아 연락을 자제했다.
자연히 이영은 황실에서 고립되다시피 했다. 그나마 이복형 이강이 종종 연락을 해 황실의 동향을 알 수 있었다.
오늘 인천으로 마중 나온 것도 이강이었다.
“영아, 오랜만이다. 이 얼마만이냐?”
“형님, 너무 오랜만에 인사드려서 송구할 따름입니다. 제 처와 자식들입니다.”
“이아나스타샤입니다. 의친왕 전하를 뵙습니다.”
아나스타샤가 시아주버니를 향해 한국식 예법으로 인사를 했다. 그녀는 본래 한국어를 못했지만, 한국인으로 자랄 아들 교육을 위해서라도 열심히 언어와 예법을 익혀 둔 상태였다. 성도 남편 성을 썼다.
“제수씨께서는 듣던 대로 굉장한 미인이시군요. 도대체 공부밖에 모르는 백면서생 녀석이 갑자기 여인에게 반해 결혼하겠다고 해서 놀랐는데, 뵙고 나니 이해가 됩니다.”
“형님!”
이강의 농담에 이영이 얼굴을 붉혔다.
그래도 이강의 말이 빈말은 아니었다. 세월이 흘러 서른이 가까워졌지만, 아나스타샤 브론스카야는 여전히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웠다.
“안녕하세요, 백부님. 이연이옵니다.”
“오, 네가 내 조카 연이로구나. 몇 살이니?”
“네 살이옵니다.”
“하하, 우리 우가 제일 잘 생겼다고 생각했는데, 이 아이도 참 잘생겼군. 우에게 좋은 친구가 되겠구나. 아, 우는 내 아들이자 네 사촌형이란다. 운현궁의 계승자지.”
이영과 아나스타샤의 아들인 이연(李緣)은, 어머니를 닮아 하얀 피부에 갈색 고수머리와 녹색 눈을 지닌 잘생긴 아이였다.
“눈이 참 예쁘구나. 네 어머니의 아들이라는 건 누가 봐도 알겠다.”
녹안은 열성이지만, 아나스타샤의 에메랄드 빛 눈이 아들에게 유전되었다.
아름다운 눈이었지만, 이영은 걱정이 되었다.
“대한에는 너무 드문 일이라 걱정입니다.”
“너무 걱정 말게. 이 아이는 황족 아닌가. 정친왕도 혼혈인데 누가 감히 뭐라 그러는가? 그래, 연이 너는 정친왕이 좋아하겠다. 너 정친왕을 아니?”
어린 이연이 아버지를 향해 돌아보자, 이영이 대신 답했다.
“황제 폐하의 아드님이시다. 네게는 사촌형이지.”
“아아~.”
이연은 작은 머리를 끄덕였다.
“자자, 그럼 날도 추운데 어서 기차에 탑시다. 황실열차가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으니.”
이강은 이영의 가족들을 역으로 인도했다. 영친왕이 절반 정도는 잊혀진 존재라고는 하나, 태상황의 적자이자 황제의 아우였다. 근위대가 절도 있는 자세로 그들을 호위했다.
황실용 특별열차에 올라탄 후, 이영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제가 왜 갑자기 소환됐는지, 형님은 알고 계십니까? 혹여 태상황의 환우에 문제라도…….”
“아아, 태상황께서 중풍으로 편찮으시긴 하네.”
“그렇다고는 들었습니다만, 괜찮으신 겁니까?”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네. 대원왕께서 원체 건강하셨으니, 그 아드님이신 태상황께서도 장수하실 게야.”
이강은 어릴 적부터 부친과의 사이가 빈말이라도 좋지 못했으므로, 태도가 꽤나 냉소적이었다.
“그렇다면 정치적인 이유인지요?”
“뭐, 그렇다고 볼 수 있겠지.”
정치적인 이유라는 말에 이영으로선 올 것이 왔나 싶었다.
“혹시, 정부가 소비에트 정권과 협정을 맺었기 때문입니까? 제 아내가 백군을 지지한 장군의 여식이라서? 그렇다면 제게만 책임을 묻기를 바랍니다.”
순간 아나스타샤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브론스키 장군은 옛 제정 장성들 대부분이 그랬듯이 백군을 지지했다. 연로하여 직접 전투에 나서진 않았으나 백군 정부를 지지하는 원로로서 크림반도까지 함께 움직였다.
“아니, 그럴 리가 있겠나? 대한은 로마노프 황실 사람들도 보호하고 있는데. 정치적 이유라는 건 그런 게 아니야.”
이영의 걱정은 터무니없는 것이었다. 이강은 차분하게 이선이 추진하는 국혼에 대해 설명했다.
“태자께서 러시아 공주랑 국혼을요? 그게 가능한 일입니까?”
이영은 문자 그대로 경악을 금치 못했다.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그렇다면 세기의 로맨스로군요! 어쩜 이렇게 아름다운 일인지.”
조선 왕실의 보수성을 모르는 아나스타샤로서는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여전히 관념적으로 옛 러시아를 그리워하는 귀족으로서, 러시아 여대공이 대한제국 황태자와 결혼한다는 건 환영할 일이었다.
“그렇지요. 그래서 아우님과 제수씨의 도움이 필요한 겁니다.”
“제가 뭘 도와드리면 될까요? 무엇이든 말씀해 주세요.”
여전히 경악 속에 잠겨 있는 이영과 달리, 아나스타샤는 기쁘게 받아들였다.
“두 분은 대한 황실과 외국 명문가가 결합한 선례지요. 두 사람의 미담이 앞으로 언론에 많이 실리게 될 겁니다. 연기할 필요도 없이, 그냥 자연스럽게 바람직하고 훌륭한 가정임을 보여 주면 됩니다. 두 사람은 천생연분일 테니까.”
꽤 시간이 흘렀지만, 이영과 아나스타샤 부부 간의 금슬은 여전히 좋았다.
“아우님은 먼저 국제결혼의 경험이 있는 이로써 진에게 이런저런 조언을 해 줬으면 하네.”
“예에…….”
“제수씨께서는 러시아 공주님에게 조언을 해 줬으면 합니다. 한국 황실의 여인으로서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제 도움이 필요하다면 얼마든지요. 하지만 저도 한국에서의 삶은 잘 모르는데…….”
남편으로부터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긴 했어도, 아나스타샤도 한국 생활은 처음이었다.
“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도와주는 이들이 있을 테니까. 제수씨께선 같은 처지의 여인으로서, 또 러시아인으로서 공유할 수 있는 게 많을 테니까요. 하실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공주님을 도와주면 됩니다.”
“예,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
한국 황실에서 홀로 서양인으로 살아갈 날을 염려하던 아나스타샤는 반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타티야나의 벗이자 조언자가 될 준비를 했다. 시숙모(媤叔母)가 아니라 언니처럼 돕고 싶었다.
‘거 참, 황형의 속내는 감히 짐작할 수도 없군. 나는 계승권을 스스로 포기하기 위해 아나스타샤와의 결혼을 택한 측면도 있는데, 진은 계승권을 유지하면서도 러시아 공주랑 결혼한단 말인가? 그럼 정녕 서양인 황태자비, 백인 황후를 둔다고? 황실은 물론이고, 국민들이 받아들일까?’
순탄치 않은 미래를 예상하던 이영은, 문득 생각이 미치는 바가 있었다.
‘진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아나스타샤와 연을 위해서라도 이 국혼은 성공해야 해. 안을 위해서이기도 하고. 황실에 서양인 배우자와 혼혈아가 많아진다면, 누가 감히 정통성을 문제 삼겠는가. 가급적 황실의 일에는 나서지 않으려고 했다마는, 황형께서 내가 나서길 원한다면 앞장서서 이 국혼을 성사시키도록 해야겠다.’
아내와 아들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이영으로선, 그들이 한국에서 살아갈 미래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이 국혼을 성사시켜야겠다고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