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677
3부 92화 천추경절(千秋慶節)
천추경절(千秋慶節), 또는 천추절은 황태자 이진의 탄일(誕日)이다. 본래 천추절은 조선시대에는 국왕의 탄일을 의미했으나, 대한제국 선포 이후에는 황태자의 탄일이 되었다.
대한제국에서 황제의 탄일은 건원경절(乾元慶節), 태상황의 탄일은 만수성절(萬壽聖節), 황후의 탄일은 곤원절(坤元節)로 기념되었다.
이 중에서는 물론 황제 이선의 탄일인 건원절이 가장 중요했다. 건원절이 되면 대한제국 전역에 축제 분위기가 되었다.
「매년 건원경절이 되면 만백성이 경축하는 행사가 열려 충군애국하는 정성을 드러내었으니, 사람들이 모두 크게 기뻐하였다. ……」
조선 개국과 대한국헌법 반포를 기념하는 8월 14일 개국기원절(開國紀元節), 대한제국 선포와 황제의 즉위를 기념하는 4월 11일 계천기원절(繼天紀元節), 5월 31일 건원경절, 9월 8일 만수성절은 대한제국 4대 국경일로 성대히 기념되었다.
이외에도 세종대왕의 탄일이자 독립전쟁(조청일전쟁) 승전을 기념하는 5월 15일 국경절(國慶節), 민간 차원에서 기념하다 근래 국가 주관으로 격상된 10월 3일 단군절(檀君節), 평양을 서경으로 격상시키고 고구려 계승의지를 천명한 6월 6일 흥경절(興慶節)도 국경일로 기념되었다.
고조선 건국, 고구려 계승, 조선 개국, 독립전쟁 승전, 대한제국 선포와 황제 즉위, 헌법 반포 등 국경일은 근대국민국가의 수립과 국민적 통합을 상징하는 날이 되었다.
「소조는 짐을 대리해 국정의 중책을 맡고 있으니, 실로 국가의 동량(棟梁)이라 할 수 있다. 광무 24년 천추경절은 건원경절의 전례에 의거하여 기념하도록 하라.」
천추절은 건원절에 비견될 국경일은 아니었으나, 올해는 특별히 성대하게 개최되었다.
명목상의 이유는 대리청정을 시행하는 소조의 공로를 치하하기 위함이나, 이진이 황위 계승 후에 나타날 입헌군주의 상을 확립하기 위한 일종의 예행이었다.
11월 20일 천추절 오전, 경복궁에서 황제가 참석하는 폐현례(陛見禮)가 있었다.
종친 및 문무백관과 함께 부황에게 예를 표한 이진은, 폐현례를 마치고 경복궁을 나서 독립문으로 향했다. 여기서부터는 태자가 주인공이라 할 수 있었다.
“대한국 만세!”
“대황제 폐하 만세!”
“황태자 전하 천세!”
11월 하순의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황태자를 환호하는 인파가 도열해 만세를 외쳤다.
근위기병대의 호위를 받으며 무개차(無蓋車)를 타고 있는 이진은 거수경례로 군중의 환호에 답례했다.
원수 예복을 입은 젊은 황태자의 절도 있는 거동에 군중은 거듭 환호했다.
“태자께서 영명하시니 국가의 복일세.”
“암, 위대한 황제 폐하의 장자이신데.”
“대한의 미래가 창창하구만, 하하.”
이진이 독립문이 도착하자 중추원 의장 김가진이 의회 양원을 대표하여 경의를 표했다. 독립문의 현판을 쓴 이가 바로 김가진이기도 했다.
이진은 무려 나이가 50살 이상인 국가의 원로에게 정중히 화답하고, 자신과 동렬에 앉기를 권했다.
“황공하옵니다. 노신이 어찌 감히 소조와 동렬에 앉겠습니까?”
“경은 국가의 원훈이자, 중추원 의장으로서 의회양원을 대표하니 곧 민의를 대표하는 분입니다. 사사로이 따져도 경은 내게 가르침을 준 스승이었는데 어찌 위에 서겠습니까? 사양하지 말고 편히 배석하십시오.”
이진은 어릴 적에 김가진에게서 서예와 외국어를 배운 바가 있었으므로, 개인적으로는 사제지간이라 할 수 있었다.
얼핏 보면 유교적 전통에 따라 옛 스승을 배려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이는 상징적인 배석이었다.
김가진은 개화당 출신의 원훈으로, 동시에 초대 민의원 의장이자 4선 의원, 현 중추원 의장이었다.
작년 최초로 총리가 의회에서 선출될 때도 김가진이 의장으로서 결정적인 역할을 맡았다.
즉 김가진은 대한제국 의회정치의 살아 있는 화신이었다. 이진이 그를 특별히 배려한다는 건, 곧 의회정치를 배려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이곳 독립문은 대한의 독립과 제국 선포를 기념하는 자리로, 공교롭게도 나와 탄일이 같습니다. 이처럼 나는 독립과 칭제건원이라는 역사적 영광 속에서 태어난바, 위로는 열성조의 대업을 받들고 아래로는 국민의 민의를 존중하여…….”
이진이 태어난 광무 원년(1897) 11월 20일은 공교롭게도 독립문 완공일과 같은 날이었다. 이선은 독립문 기념행사에서 아들의 탄생 소식을 들었다.
독립문이 새로운 자주국가 대한제국을 상징하는 문이 되었듯, 같은 날에 태어난 이진은 그 상징성을 계승하였다.
“대한국 만세!”
“대황제 폐하 만세!”
“황태자 전하 천세!”
이진의 연설이 끝나자 김가진 이하 양원 의원들은 일제히 만세를 외쳤다.
의원들은 의회를 대표하는 노(老)의장을 존중하는 태자의 세심한 배려와 민의를 존중할 것을 다짐하는 연설에 내심 감격한 터였다.
국가의 상징이자 헌정을 대표하는 미래의 입헌군주로서 손색없는 모습이었다.
‘국가적 상징이라. 부황께서 내게 맡기고자 하시는 역할이라면 마땅히 따라야겠지. 국민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다는 게 참 좋은 일 같다.’
기실 이진은 근대적 입헌군주로서 훌륭한 자질을 보이고 있었다.
민의를 대표해 의회가 선출한 정부에 실질적인 통치를 맡겼다.
그렇다고 아예 손을 놓은 건 아니었다. 황제를 대신해 국무회의에 성실히 참석해 의논하고, 부처 간의 갈등을 조율하고, 승인하고 결재했다. 총리 이상설 이하 대신들은 소조를 충실히 보좌했다.
이진은 다양한 국가 행사에 참석하고, 정기적으로 황성과 지방을 순행하며 민심을 청취했다.
이 모든 게 형식적인 절차라 할지라도, 정치인과 국민의 입장에서 볼 때는 굉장한 진보로 느껴졌다.
“소조께서는 역시 젊으셔서 그런가. 확실히 대조와는 다른 면이 있으시네.”
“국가를 발전시키기 위해 만기친람하셨던 대조의 시대와는 다른 면이 있으니까, 소조께서도 서양 군주의 사례를 참고하신 것 같네.”
“과연, 동양의 전통적 군주제와 서양의 입헌군주제의 결합이로군. 대한의 표어인 구본신참(舊本新參)이라 할 수 있겠어.”
여론의 추이를 보면, 이선이 이진에게 대리청정을 맡긴 효과가 서서히 나타나고 있었다.
실질적으로 이선의 구상대로 국가가 돌아가고 있다고 해도, 국민 사이에서는 이진이 새로운 시대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여전히 이선을 향한 국민적 충성과 황제의 권위는 절대적이었으나, 새로운 리더십에 대한 기대가 서서히 형성되었다.
* * *
천추절 저녁에는 경운궁 돈덕전에서 축연이 열렸다. 축연에는 칙임관 이상의 문무관과 직계 황족, 주한 외국 사절과 그 가족들이 참석했다.
외국 황족들도 초청받았는데, 올해는 예년 행사에 참석하던 청국과 일본 황족 외에도 로마노프 황족들이 참석했다는 게 특별했다.
연회에서 문관들은 연미복(燕尾服)을, 무관들은 군복 예복을 착용하여 서양식 복식을 갖추었다.
황태자 이진도 원수 예복 차림이었다.
“황태자 전하의 24세 천추경절을 경하드립니다. 황태자 전하 천세!”
“황태자 전하 천세!”
“경하드립니다, 전하!”
의친왕 이강의 선창에 참석자들이 일제히 경의를 표했다. 이진은 자리에서 일어나 답례를 했다.
“천추절을 축하하기 위해 참석해 주신 모든 내외빈께 감사드립니다. 부디 즐거운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전의 폐현례가 전통 동양식이라면, 저녁의 축연은 완전히 서양식이었다.
한국의 근대건축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 우크라이나계 러시아 건축가 아파나시 세레딘-사바틴이 건축한 양옥 전각에서, 양식과 양주를 먹고 마시며 무도회를 열었다.
서양 왕실이 주최한 연회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꼭 겨울궁전에 있는 것 같아.”
“불과 수년 전 일인데, 머나먼 옛날 같구나.”
모처럼 축연과 무도회에 참석한 로마노프 왕가의 대공들은 옛 추억에 잠겼다. 망해 버린 제국의 영화가 눈에 아른거렸다.
“옛날 생각만 하지 말자. 이제 이곳이 우리의 새로운 터전이니까.”
“그래, 현재를 살아가며 미래를 생각해야지.”
축연에 참석한 대공들을 향해 호기심 어린 시선들이 쏟아졌다.
외교사절도 아닌 이들이 황태자의 생일 축연에 초대받았다는 걸 신기하게 여기는 눈빛이었다. 이들이 대표하는 러시아제국은 이미 망한 나라였고, 로마노프 왕가는 제위를 상실했다.
물론 영국이나 프랑스 등지에 망명한 로마노프 왕족이나 명문 귀족들도 나름의 예우는 받았지만, 대부분 처량한 망명자 신세였다.
“안녕하십니까, 여대공 전하. 저는 혁명 전에 페테르부르크에서 주재했었습니다. 서울에서 뵙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만,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오, 그러시군요. 정말 반갑습니다.”
아무리 몰락했다고는 하지만 제국의 후예들이었다. 서양인 사절들은 이들을 찾아 인사하고 예의를 표했다.
“대한제국 황실에서 저들 중 한 사람을 며느리로 들이려 한다는 소문이 있소.”
“뭐, 정말이오? 그게 말이 되오? 동서양 왕가 간의 결합은 전례가 없는 일인데?”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요. 한국은 오랜 역사와 전통을 내세우면서도, 또 어떤 면에서는 기이할 정도로 진보적이니까.”
“하긴, 저기 있는 영친왕비를 생각하면 놀라울 건 없겠군.”
한국 황실이 서양 왕가의 결혼을 참조한다는 소문이 주한 외교가에 돌았다. 더 구체적인 소문은 로마노프 왕가의 여대공과 한국 왕자의 결혼이었다.
“그래서 누구와 누구라던가요?”
“그것까진 모르겠군요. 아마 저들과 교류가 깊은 정친왕 이안이 아니겠소?”
“하긴, 이안 왕자도 혼혈이니까 러시아 공주와 결혼해도 이상하지 않겠군.”
“근데 태자께서 아직 결혼 안 했는데, 둘째 왕자의 혼사를 알아본단 말이오?”
“태자의 국혼은 국가적인 사안이니까 공들이는 거겠지요. 일본 황가에서 국혼을 청했다고 하지 않소. 아마 그쪽이 아니겠소?”
“아니, 내가 듣기론 청국 왕가라던데요. 저기 서 있는 장교가 청국 숙친왕의 아들인데, 그 여동생이 후보라는 소문이 있습니다.”
외교관들은 자신이 아는 정보를 풀며 속닥거렸다. 그만큼 이진의 국혼은 외국에서도 관심사였다.
“…….”
대한제국 육군 장교 예복을 입고 있는 숙친왕의 아들 헌원은 말없이 술잔을 기울였다.
여동생 현사와 황태자의 국혼 성사 가능성을 반반으로 여기긴 했지만, 막상 좌절되니 속이 쓰렸다.
「짐이 미처 몰랐는데, 태자는 러시아 공주와 3년 전부터 이미 약혼을 준비했다고 하더이다. 짐은 태자의 뜻을 존중해 주기로 했소. 숙친왕께는 직접 사죄의 서찰을 보내겠소. 대신이라고 말하긴 뭐하지만, 그대 남매들에게는 확실히 보상을 하겠소.」
헌원은 알겠다고 하는 수밖에 없었다. 한국의 보호를 받는 입장에선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대신 헌원과 현사 모두 대한제국 황족과 혼례를 올리기로 했다.
‘어쩌면 잘된 걸지도 모르겠다. 이 나라에는 대청과 만주 황실을 형제라고 하면서도 내심 경멸하고 싫어하는 이들이 허다하지 않은가. 내 누이가 황태자비가 됐다 한들, 황실에서 고립됐을 거야.’
황태자와의 국혼에 열을 올렸던 숙친왕과 달리, 막상 한국에서 살고 있는 헌원 자신은 회의적이었다.
한국에서 교육받아 친한파인 그조차도, 만주를 향한 한국인들의 우월의식에 종종 분노의 감정을 느꼈다. 여동생이 정략결혼으로 황태자비가 됐다 한들, 행복할 거라는 기대가 전혀 들지 않았다.
‘그런데 러시아 공주라니. 한국 황실 취향도 참 특이하구만. 동양 왕실에서 서양 공주가 적응이 잘될 리가 있나?’
4인의 공주 중 누가 황태자비 후보인지는 헌원도 몰랐지만, 경쟁의식보다는 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찬과 축연 이후에는 무도회가 열렸다.
참석자는 여자에 비해 남자가 압도적으로 많았으므로, 무도회에서 춤을 출 수 있는 건 한정적이었다.
“황태자 전하께서 주최이시니 먼저 파트너를 택하시지요.”
“아, 그래야지요.”
축연에 참석한 외교관 영애들의 시선이 일제히 황태자를 향해 쏠렸다.
이진은 고려할 필요도 없이, 로마노프 여대공들을 향해 걸어갔다.
“타티야나 니콜라예브나 여대공 전하, 함께 춤을 추시겠습니까?”
“기꺼이 받들겠습니다. 영광입니다, 황태자 전하.”
이진이 타티야나를 파트너로 선택하자, 만인의 시선이 두 남녀를 향해 쏠렸다.
“역시 로마노프 공주로군요.”
“뭐, 참석한 여인 중에서 제일 격이 높은 건 분명하니까요.”
“타티야나 공주야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무도회 파트너였으니, 당연한 수순이겠지요.”
이진이 타티야나를 선택한 걸 이상하게 여기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황태자의 파트너로 공주는 자연스러웠고, 4자매 중에서도 타티야나는 무도회 파트너로서 가장 인기가 높았던 공주였다.
황태자가 파트너를 선택하자, 참석자들이 자유롭게 짝을 지어 무도회를 시작했다. 이강은 미국 외교관 영애와, 이영은 당연히 아내와 파트너가 되었다.
황실 악단이 러시아 음악 ≪아무르강의 물결(Амурские волн)≫을 연주하자, 남녀들은 왈츠를 추기 시작했다.
1920년 기준으로 왈츠는 서양에선 시대에 뒤떨어진 감이 있지만, 서양식 무도회가 드문 대한제국에서는 최신에 속했다.
곡 선택이 의도적인 감이 있어, 이진은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물론 음악도 좋다지만, 아무르강이 동양과 서양의 결합을 상징하는 건가?’
이진은 자신의 손을 잡고 춤을 추는 파트너의 하얀 얼굴에 시선이 끌렸다.
하얀 피부와 적갈색 머리칼. 동양인과는 완전히 다른 이목구비.
처음 만났을 때부터 동경하는 공주이긴 했지만, 자신의 결혼 대상이 되리라곤 상상도 못 했었다.
순간, 이진은 실수로 박자를 놓쳐 타티야나의 발을 밟았다.
“미, 미안합니다. 아무래도 춤은 서툴러서…….”
이진이 부끄러워하며 사과하자, 타티야나는 빙긋 웃으면서 빠른 영어로 속삭였다.
“왈츠는 서양의 춤이니까, 전하께서 익숙하지 않은 게 당연하죠. 반대로 저는 동양의 춤이 익숙하지 않으니 실수가 잦을 거예요. 그땐 전하께서 저를 도와주세요.”
이진은 타티야나의 말이 단순히 춤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서로 간에 살아온 문화가 다르고, 상대의 문화에 익숙하지 않다. 하지만 상대를 배려하고 함께 배워 가다 보면, 서로를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예, 물론 저도 언제든 전하를 도울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이진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자신의 말에 어딘가 부족한 점이 있다 싶었다.
‘살아가던 세상을 잃고, 부모를 잃었다. 머나먼 타지에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 그래도 좌절하지 않고 가족들을 위해 헌신한다. 이 얼마나 심지 굳은 여인인가.’
이진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데 서툴렀다. 어릴 때부터 계승자로서의 의무를 강하게 의식하고 있는 이진은 감정을 드러내는 일 자체가 드물었다. 하물며 여인을 상대로는 더욱 그러했다.
평소의 이진이라면, 결코 이 순간에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을 터였다. 하지만 이 순간만은 말하고 싶었다.
“돕는다는 말로는 내 마음을 표현하기가 부족하군요. 타티야나 니콜라예브나, 당신을 평생 지켜 주고 싶습니다.”
속내를 거의 드러내지 않는 이진으로선, 참으로 드물게도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밝히는 순간이었다.
“…… 감사합니다, 전하. 저도 전하와 함께하고 싶습니다.”
타티야나의 목소리는 너무 작아서, 음악 소리에 묻히고야 말았다. 주위 사람들은 그들의 대화를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을 터이다.
하지만, 눈앞의 이진은 그녀의 말을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예, 함께할 것을 맹세합니다. 저는 오늘의 맹세를 영원히 간직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