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680
3부 95화 광무 25년
1921년의 새해가 밝았다.
광무 25년 원단(元旦)을 맞이하여, 경운궁에서는 신년 폐현례가 있었다.
이선은 겨울마다 찾아오는 고질적인 감기와 몸살로 인해 올해 폐현례는 간소화하고, 축연도 참석하지 않았다.
“광무 25년 새해를 맞이하여, 대한국에 무궁한 영광이 깃들기를 기원하옵니다! 대한국 만세! 대황제 폐하 만세!”
국무총리대신 이상설의 선창에 문무백관이 일제히 만세를 외쳤다.
“대한국 만세! 대황제 폐하 만세!”
“대한국 만세! 대황제 폐하 만세!”
이선은 왕좌에서 일어나 만세에 화답했지만, 예년과 달리 신년 축사는 하지 않았다.
“광무 25년, 대한에 평화와 번영이 깃들기를 바라는 바이오. 총리대신과 각부대신, 문무관리들은 소조를 보좌하여 국가를 반석 위에 올려 주길 바라오.”
짧은 답례사를 마친 이선은 대신들과 악수를 하고난 후 자리를 떴다. 총리 이상설이 백관을 대표하여 황제를 편전까지 모셨다.
딱 봐도 황제의 얼굴에 피로감이 어려 있는 걸 본 관리들은, 떠나는 황제를 향해 외쳤다.
“황제 폐하, 성수무강하소서!”
“성수만세!”
이선은 고개를 돌려 손을 들어 화답했지만, 자신이 정말 ‘성수무강(聖壽無彊)’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성수무강은 무슨. 장수가 중요한 게 아니라 건강하게 사는 게 중요하지.”
“폐하, 어의에게 진찰을 받으심이…….”
“특별한 중병이 있는 건 아니오. 자잘하게 아픈 곳이 많아서 힘든 거지.”
이선은 역대 군주들과 비교하면 운동과 체력 관리를 열심히 해 왔지만, 나이 50을 넘기자 점점 건강이 안 좋아졌다.
특별히 지병은 없었지만, 과로를 밥 먹듯이 하고, 고질적인 불면증에 시달리다 보니 피로가 누적되어 감기몸살이 툭 하면 찾아왔다.
“세종대왕께서 쉰넷에 붕어(崩御)하셨는데, 짐의 나이가 마침 올해 쉰넷이군.”
“어찌 그런 황망한 말씀을…….”
“선대왕의 수(壽)를 생각해 보면 쉰넷이 적은 나이가 아니오. 후손으로서 감히 선대왕과 비견할 생각은 없지만, 짐은 세종대왕과 정조 선황제처럼 성실히 국정을 다스렸다고 자부하오. 정조 선황제께서는 마흔아홉에 붕어하셨소. 성수무강이라고 하기엔, 왕좌가 오래 살기에 좋은 업이 아니지.”
만기친람 끝에 온갖 병을 안고 살았던 세종이나 정조에 비하면, 그래도 이선은 건강한 편이었다. 본인이 관리도 했지만, 발전된 근대의학의 힘도 크다 할 수 있었다.
이상설이 거듭 고개를 숙이며 황망해하자, 이선은 화제를 전환했다.
“총리는 짐보다 젊은데 건강이 더 안 좋아 보이는구려. 경도 지천명의 나이가 됐으니 건강관리 해야 할 거요.”
이선보다 3살 어린 이상설도 쉰이 넘었다. 역사의 변화로 원역사보다 4년 더 살고 있었지만, 국무총리로서 막중한 업무를 맡다 보니 건강이 급격히 쇠하고 있었다. 권좌에 앉은 자의 숙명이었다.
“황공하옵니다. 신이야 내일 당장 죽어도 국가에 문제가 없겠으나, 폐하께서는 성수무강하셔야 대한의 번영이 만대에 이를 것입니다.”
“아니오. 짐이 죽어도 흔들리지 않아야 진정 굳건한 국가지. 황제 한 사람이 죽는다고 흔들린다면 안정적인 체제라고 할 수 있겠소? 개인의 생존 여부와 관계없는 영속적인 체제를 만들어야지. 그렇기에 정부와 의회에 힘을 실어 주는 거요. 전제군주의 시대는 끝났소. 총리가 소조를 도와 입헌군주제로 가는 길을 열어 주길 바라오.”
이선은 조선의 자주독립과 근대화, 대한제국의 번영과 열강 진입을 이끌어 낸 지도자로서 카리스마적 권위를 누렸다. 황제가 곧 대한제국이었고, 대한제국이 곧 황제였다.
하지만 그런 체제가 영원할 수는 없었다. 이선은 안정적인 시스템을 원했다. 군주의 능력에 의존해야하는 전제군주제보다, 군주-정부-의회 간에 상호견제와 협력이 이어지는 입헌군주제가 안정적인 시스템이었다.
“신 이상설, 목숨을 다하는 한이 있더라도 주어진 책무를 다하겠습니다.”
“허허, 생명은 걸지 마시오. 경도 언젠가 은퇴하여 후속 세대가 성장하는 걸 지켜봐야지.”
그건 반드시 이상설이 아닌 이선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이선은 슬슬 은퇴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입헌군주제로의 전환이 안정적으로 정착하면, 은퇴하고 후속 세대에게 맡겨야지. 그렇다면 내가 황제의 자리에 앉아있을 필요도 없지 않나. 때가 되면 선위해야겠다.’
새해가 되자, 이선은 더욱 선위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광무 25년이라. 만으로 24년이 지났군. 차라리 빨리 선위하여 진으로 하여금 입헌군주의 역할을 맡길까……. 당분간 외교와 군사만 내가 계속 맡고. 대리청정을 맡기나 선위하나 비슷한데, 그래도 되겠지. 왜 태종께서 한창 나이에 세종께 선위했는지 알 것 같군.’
태종은 재위 18년, 52세에 선위했다. 물론 선위하면서도 병권은 내려놓지 않아, 태상왕으로서 군림하며 국가의 중책을 결정했다.
25년이면 사반세기였다. 이선이 대신으로 국정을 맡게 된 갑신년 이후를 생각하면 근 40년이었다.
‘하지만 진에게 당장 막중한 의무를 부여하자니 미안하군. 당분간은 더 앉아 있어야겠다.’
대리청정으로도 막중한 책무를 느끼는 이진이니만큼, 군주가 되면 엄청난 중압감에 시달릴 가능성이 컸다. 아들의 성격을 아는 이선으로선 당장 선위할 계획은 없었다.
이튿날, 일요일을 맞이하여 이선은 ‘정동 파란양저’에 들렸다. 이선이 마르가리타를 만나는 건 1주일에 한 번, 주말 정도였다. 그나마도 평양에 있을 때에는 몇 달이고 만나지 않았다.
“폴란드의 승리를 축하하오. 비스와강의 기적이라고 하더군.”
“제 조국이 반드시 승리하여 독립을 지켜 내리라 믿었습니다. 폴란드인이 존재하는 이상, 폴란드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거니까요.”
마르가리타의 파란 눈이 감격으로 반짝거렸다.
그녀는 암울한 전황을 들으며 한동안 우울해 있었다. 가진 자산을 털어 주한 폴란드대사관을 통해 막대한 지원금을 기부했지만,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으로서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고 자책하고 있었다.
마르가리타는 주한 폴란드인과 함께 명동성당을 찾아 신에게 기도했다. 사회민주주의자이자 무신론자였던 그녀가 신을 찾을 만큼 절박했다는 말이었다. 크리스마스에 마침내 승리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우리 외교관과 군사고문단이 정확한 정보를 전달해 폴란드의 승리에 기여했다는 소식을 들었소.”
“저도 대사님을 통해 들었습니다. 폴란드인들은 결코 한국의 은의를 잊지 않을 거예요.”
이선은 자신의 역할은 빼고, 공을 외교관과 군사고문단에 돌렸다.
마르가리타는 이선이 말은 그렇게 해도 중요한 역할을 했으리라 짐작하면서도, 굳이 이야기하진 않았다. 말이 없어도 서로의 진심을 이해할 수 있는 사이였다.
“음, 지금의 폴란드를 보니까 꼭 27년 전 조선이 생각나더군. 그래서 한국인들도 폴란드의 투쟁에 공감하는 거겠지. 국민이 독립정신을 갖고 있으면, 상대가 아무리 강력하더라도 무너지지 않소.”
“예, 한국이 그랬듯이 폴란드도 반드시 승리해서 유럽 문명을 지켜 낼 거예요.”
한국이 ‘아시아에서 근대 문명을 수호’한다고 자처하듯, 폴란드는 ‘유럽에서 기독교 문명을 수호’한다고 자처했다.
한국에서 중국을 ‘야만적인 비문명국’으로 형상화하듯, 폴란드는 소비에트 러시아를 ‘타타르-비잔틴의 잡종’, ‘적색 야만인’으로 형상화했다.
서방의 시선도 크게 다르지 않았으니, 폴란드 국경에서 한국 국경에 이르기까지, 소비에트 러시아는 ‘격리시켜야 할 전염병 환자’였다.
“피우수트스키 원수는 전쟁을 지속할 생각인가 보던데.”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의 형제들을 러시아의 압제로부터 해방시키기 전에는 전쟁을 끝낼 수 없죠.”
폴란드-소비에트 전쟁은 제3막을 맞이했다. 폴란드군은 다시 네만 강을 건너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를 향해 반격을 개시했다.
대한제국이 만주에 집착하는 것처럼, 폴란드도 우크라이나에 집착했다.
폴란드는 1920년 예산의 60%를 대소전쟁에 투입해서 경제난에 직면했지만, 전쟁을 끝낼 생각이 없었다.
‘…… 명분은 좋아도 러시아 대신에 폴란드가 우크라이나를 위성국으로 삼아 지역열강하고 싶다는 말이 아닌가. 뭐, 이해는 된다. 한국도 만주를 위성국으로 삼아 중국 대신에 지역열강이 된 거니까.’
원역사에서는 폴란드 야당 민족민주당의 반발로 결국 휴전에 이르렀지만, 변화한 역사는 피우수트스키가 원하는 대로 ‘키예프를 해방할 때’까지 계속 전쟁을 이어 나가게 했다
“폴란드의 선전을 기원하겠소. 우리 정부는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폴란드를 돕겠소.”
“정말 감사합니다, 폐하.”
이선은 폴란드나 프랑스가 원하는 대로 극동에서 러시아를 공격해 전선을 분산시켜 줄 생각은 없었지만, 바르샤바 전투처럼 은밀히 정보를 제공해 폴란드의 전쟁수행을 도울 계획이었다.
한국의 입장에서는 폴란드-소비에트 전쟁이 지속되는 게 나쁜 일이 아니었다. 러시아가 계속 폴란드에 발목이 잡혀 있다면, 극동 문제에 신경 쓰지 못할 터였다.
‘영국에서는 로이드조지가 처칠을 누르고 폴란드에 휴전을 강요하고 있다지. 프랑스는 전쟁 지속을 원하고. 미국도 휴전을 요구했었지만, 새 대통령이 취임하면 어찌 될지 모르겠군.’
1920년 11월 미국 대선에서, 예상대로 공화당의 레너드 우드가 압도적으로 승리했다. 남북전쟁의 영웅 그랜트 이후 50년 만의 군인 출신 대통령이었다.
도덕주의적 세계정책을 주장하던 교수 출신 윌슨과 제국주의적 세계정책을 주장하는 군인 출신 우드는 성격이 달랐지만, 전통적인 고립주의를 회피하려한다는 점에서는 같았다.
우드는 개입주의자였고, 특히 시어도어 루스벨트 계파를 계승한 이상 아시아-태평양의 안보를 중시했다. 동부전선 파병군 사령관을 역임한 이로서 옛 전우인 러시아 백군에 우호적이었고, 소비에트 체제에 대한 적대감도 상당했다.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일본이라는 ‘극동의 헌병’을 내세워 러시아의 남하를 막으려 하듯, 우드도 한국을 내세워 소비에트 봉쇄에 나설 가능성이 충분했다.
“의사로서 걱정이 되어 말씀드리는데, 신경 쓰실 일이 많긴 하겠지만 때때로 좀 휴식을 취하도록 하세요. 감기에 자주 걸리는 건, 과로의 영향 탓이라고 봅니다. 폐하께서도 예전처럼 늘 건강하기만 한 청년이 아닙니다. 다행히 스페인 독감은 안 걸렸기에 망정이지…….”
마르가리타는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이선의 초췌한 안색을 보고 염려가 되어 조언했다.
이선도 하마터면 파리강화회의에서 스페인 독감에 걸릴 뻔했다. 윌슨과 로이드조지는 독감에 걸리는 바람에 한동안 고생했다. 이선은 진작부터 마스크를 쓰는 데에 거리낌이 없었던 데다가, 감염자와 밀접 접촉하고도 운이 좋았는지 독감에 걸리지 않았다.
“하하, 내가 늙었다고 타박하는 건가. 하긴 뭐, 나도 이제 50대 늙은이니.”
“그런 이야기가 아니고요.”
농담에 마르가리타가 정색하자, 이선은 미소를 지었다.
“알고 있소. 건강이 제일 중요하지. 앞으론 잘 쉬고 잘 먹도록 하리다.”
“예, 꼭 그러셔야 합니다.”
“근데 잘 먹자니 살이 쪄서 내키지 않는단 말이야. 늙으니까 살찌는 걸 피할 수가 없단 말이오.”
30대만 해도 이선은 운동으로 단련해 군살이 없었지만, 50대가 되면서 점점 나잇살이 붙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폐하는 살 좀 찌셔도 괜찮습니다. 50대에 그 정도면 균형 잡힌 체구죠. 의사로서 충분히 합격 판정 내리겠어요.”
“당신이야말로 50대인데도 그리 날씬하니, 대체 비결이 뭐요?”
어느덧 50대에 들어선 마르가리타도 세월은 피할 수 없어 얼굴에 주름이 들었지만, 여전히 날씬하고 기품이 넘쳤다.
“균형 잡힌 식단으로 적게 먹으니까요. 폴란드 음식은 너무 기름지죠. 젊었을 땐 날씬해도 나이 들면 살찌기에 십상이라니까요. 그런 면에서 한국 음식은 채소가 많아서 좋은 것 같아요.”
“그 논리대로라면 나도 주로 한국 음식 먹는데.”
“폐하께선 술을 많이 드시잖아요. 술 마시면서 안주를 안 먹을 수 있어요?”
“…… 그건 할 말이 없군.”
이선은 필연적으로 대식가를 만드는 궁중음식을 늘 먹으면서도, 의도적으로 탐식은 자제했다.
하지만 애주가로서 술은 늘 마시다시피 했으니, 기실 이선이 주장하는 ‘나잇살’은 술과 안주 때문이었다.
“술 좀 줄이시라니까요.”
“그래도 술은 끊을 수 없소. 술 끊고 100살까지 사느니 술 마시다 80살에 죽을 거요.”
“정말 대단한 논리군요. 그래도 80까지는 살 수 있다고 자부하시는 건가요?”
“희망사항이지. 내가 죽으면 곤란하다고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으니, 최대한 오래 살아야 하지 않겠소?”
이선의 말에 마르가리타는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다.
“하긴. 폐하께서는 이 나라 그 자체이시니까요.”
“이제 그렇게 생각 안 해 줬으면 좋겠는데. 아,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오래 살아야지. 장차 손자, 증손자도 보고…….”
이선은 손자 타령을 하다 새삼 나이가 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친과 조부께서 왜 손자, 증손자를 열망했는지 알 것 같군. 나이 들면 자연스러운 현상이구나.’
장남이 곧 결혼하면, 손자는 볼 수 있을 터였다.
‘문제는 혼혈인 증손자를 태상황이 어떻게 받아들이냐인데, 결국 시대의 변화를 이해해 주시겠지.’
이선은 올해 9월 태상황의 칠순 이후로 혼례를 미룰 생각이었다. 성대한 칠순잔치로 태상황의 기분을 풀게 한 후, 여론을 움직여 국혼을 기정사실화할 생각이었다.
‘더 늦기 전에 국혼을 올려야 해……. 진이 나이가 들고, 손자가 장성할 때까지는 나도 살아 있어야지. 최소한 막둥이가 혼인을 올릴 때까지는.’
늙으면 죽는 게 자연의 섭리였다. 이선은 죽음이 두렵지 않았다.
하지만 3남 3녀의 막내인 이금이 올해로 딱 열 살이었다. 아이들이 장성해서 자식까지 볼 때가지, 이선은 건강하게 살기를 원했다.
광무 25년 1월 19일 밤.
그 날도 경운궁에서 밤늦게까지 문서를 살피던 이선에게, 갑작스러운 소식이 전해졌다.
“폐, 폐하, 차, 창덕궁에서…….”
“무슨 일인가?”
궁내부 직원이 당혹스러워하며 말을 더듬자, 심상찮은 기분이 든 이선이 채근했다.
“태상황 폐하께서 중풍으로 쓰러지셨다고 하옵니다. 어의에 따르면 환후가 심각하다 하옵니다.”
“뭣이? 알겠네. 내 당장 창덕궁으로 가지.”
이선이 나이 들며 죽음을 신경 쓴다지만, 결국 하늘의 손길은 더 나이 든 사람부터 찾아오기 마련이었다.
이선은 복잡한 심정으로 즉시 창덕궁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