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690
3부 105화 아무르강의 유혈
니콜라옙스크에 공포정치가 밀어닥쳤다. 내전 중인 소비에트 정부 치하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적색테러였다.
반혁명분자, 즉 백계 주민들에 대한 무자비한 보복이 이뤄졌다. 당연하게도, 일본인보다 훨씬 많은 수의 러시아인들이 처형당했다.
“살려 주시오! 난 그저 먹고 살기 위해 일본군과 백군에 협력했을 뿐이오!”
“침략자에 빌붙어 개가 되다니, 그게 바로 네놈이 처형되어야 할 이유다.”
“내가 왜 처형되어야 하는 거냐? 나는 차르와 반동에 맞서 정치범 수용소까지 끌려갔다 돌아왔다!”
“유감스럽게도 당신 잘못은 아니지만, 볼셰비키는 혁명을 배신했다. 당원이 책임을 져야 한다.”
개중에는 꼭 백계 주민만 있는 게 아니라, 심지어 백군에게 탄압받던 사회민주노동당원도 있었다. 소비에트 타도를 외친 흑색 반란군에게는 볼셰비키도 반혁명분자였다.
“살려 주십시오! 우리는 고려인이지만 러시아인이기도 합니다. 극동 공화국민이지, 한국 국적이 아닙니다!”
보복의 칼날은 고려인도 피해 가지 못했다. 니콜라옙스크에 거주하는 고려인은 약 400여 명, 대부분 농업과 어업에 종사하는 임금노동자였다. 빈농 출신으로 분류된 일부를 제외하고 모조리 끌려갔다.
“아, 고려인들. 성실한 농민들이지. 연해주 개척에는 고려인의 공이 크지. 한국 제국주의가 없었더라면, 좋은 동지들이 될 수 있었을 텐데.”
트랴피친은 차가운 어조로 빈정거렸다.
“인민의 적 로마노프 반혁명 도당을 싸고돌고, 극동을 침략해 인민을 탄압하고, 연해주를 병탄하려는 한국 제국주의자들! 제국주의자들이 침략을 정당화하기 위해 입버릇처럼 쓰는 변명이 바로 고려인 보호다. 그러니 당연히 대가를 치러야 하지 않겠나?”
“우리는 한국의 침략정책과 무관합니다!”
“그렇습니다! 노동자 농민의 소비에트 공화국 만세! 사회주의 혁명 만세!”
고려인들은 살아남기 위해 소비에트 만세를 외쳤지만, 효과는 전혀 없었다.
“박쥐 같은 놈들. 저놈들을 모조리 처형해 한국 제국주의자들에게 혁명의 준엄한 경고를 보여라!”
얼어붙은 아무르강 위에서 고려인 300여 명은 총살되었다. 얼음 위에 시뻘건 피가 물들었다.
적색테러와 공포정치는 한 달여 동안 지속되었다.
니콜라옙스크 영사관으로부터 공격을 당했다는 소식을 끝으로 연락이 두절되자, 하바롭스크의 일본군은 원군을 파병했다. 아무르강의 빙결이 풀린 5월 말에야 일본군은 기선을 타고 니콜라옙스크에 접근할 수 있었다.
“일본 침략자들에게 선물을 남겨 주고 가야겠군.”
일본군이 접근한다는 소식을 듣자, 흑색 반란군은 도시를 완전히 파괴하고 마지막 숙청을 단행했다. 그때까지 아직 살아 있던 일본 민간인 100여 명도 모조리 처형당했다.
트랴피친은 단순히 피에 굶주린 미치광이가 아니었다. 숙청은 광기라기보다는 냉정한 계산이었다.
일본과 한국이 격노하여 군대를 추가 파병해 전쟁을 일으키면, 극동 공화국과 소비에트 정부도 ‘혁명전쟁’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어설픈 타협은 필요 없다. 혁명전쟁은 유혈 위에서만 이뤄질 수 있다. 동양 제국주의자들과 배신자 볼셰비키가 피를 흘리며 싸우는 동안, 인민은 각성할 것이다. 세계혁명으로 가는 초석이 되리라.”
일본군이 도착하기 전, 흑색 반란군은 도시를 떠나 북쪽의 타이가로 퇴각했다.
러시아인 4천여 명, 일본인 9백여 명, 고려인 3백여 명, 중국인 1백여 명의 피가 흐른 아무르강은 붉은 유혈로 물들어 있었다.
* * *
「니항(尼港)의 참극! 일본 국민 900여 명 참살!」
「극악무도한 과격파 빨갱이들! 항복한 군인은 물론이요, 민간인도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학살!」
「일본 역사상 전례 없는 비극! 도대체 그동안 정부는 무엇을 했단 말인가?」
6월 초, 니콜라옙스크를 탈환한 일본군이 참극의 현장을 대대적으로 알리자, 일본 여론은 격동했다.
그동안 일본군이 점령지에서 저지른 학살과 전쟁범죄는 일본 국민에게 전혀 알려 있지 않았으니, 일본인들은 일방적인 피해자가 된 느낌이었다.
기실 가장 많이 피해를 입은 건 러시아인이었지만, 일본군은 마치 일본인만 학살당한 것처럼 선전했다.
“이런 미친 러시아 과격파 놈들! 이래서 빨갱이는 모조리 죽여 버려야 해!”
“정부는 뭐 하나? 당장 군대를 보내 빨갱이 놈들을 쓸어버려라!”
여론의 격동에 일본 정부는 당황했다. 하라 내각은 극동에 파병한 군대를 올해 안에 모두 철수시킬 계획이었는데, 뜻밖의 암초를 만나게 된 것이었다.
“이런 제기랄, 이래서야 군을 철수시키기는커녕 증파해야 할 판이잖아!”
군축의 된서리를 맞던 육군에겐 다시 없는 명분이 찾아왔고, 8·8함대 건함계획을 세워 건함에만 집중하길 바랐던 해군으로선 당혹스러운 상황이었다.
“이래서 해외의 국민을 지키려면 강력한 육군이 필요하다는 거요! 대대가 아니라 사단이 주둔했더라면 감히 빨갱이들이 쳐들어왔겠냐고!”
“아니, 애초에 대륙의 내전에 끼어들고 점령하지 않았으면 이런 일 자체가 없었을 거 아닌가.”
“그게 무슨 헛소리요? 우리가 개입 안 했더라도 빨갱이들은 천황 폐하의 신민을 죽였을 거요! 정부가 건함에만 정신이 팔린 결과가 이거란 말이오!”
명분을 얻은 육군은 미친 듯이 날뛰었다. 개입론자인 다나카 기이치 육군대신은 대소 전쟁을 부르짖었다.
“당장 병력을 증파하고 극동을 공격해야 합니다!”
“일로전쟁을 또 하자는 거요? 아직 전쟁의 상흔이 남아 있는데, 그 미친 전쟁을 또 하자고?”
“천황 폐하의 군인과 신민들이 떼죽음을 당했는데, 가만히 당하고만 있을 겁니까?”
강경한 여론을 등에 업고 날뛰는 육군을 제어하기 위해, 정부와 해군은 대책을 준비해야 했다.
“대소 전쟁은 말도 안 되는 헛소리고, 꼭 필요한 지역만 점령합시다.”
“해군도 블라디보스토크, 니콜라옙스크, 페트로파블롭스크캄차츠키를 점령할 필요는 있다고 봅니다.”
“동의합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철수는 중단하고, 문제가 된 니콜라옙스크로는 증파하고, 치시마(쿠릴)열도를 통해 캄차카로 진격합시다.”
일본군은 극동지역의 3대 항구인 블라디보스토크, 니콜라옙스크, 페트로파블롭스크캄차츠키(캄차카)를 모두 점령할 계획을 세웠다.
“최소한 연해주는 극동에서 확실히 분리합시다.”
“연해주에는 한국군이 대거 주둔하는데, 이들과는 어찌할 생각입니까?”
“한인들도 살해당했다고 하니 함께 움직여야지. 연해주 점령은 이들에게 맡깁시다.”
“아니, 그럼 연해주를 한국에 갖다 바치자는 겁니까?”
하라는 강경한 어조로 군부를 제어했다.
“명심하시오, 우리는 일로전쟁의 실수를 되풀이할 수 없소. 만약 소비에트와 전쟁하더라도, 한국 육군이 주력을 맡아야 하오. 우린 지원만 해 주면 됩니다. 대륙에서 피를 흘리는 건 이제 우리의 몫이 아니라 저들의 몫이 되어야 한단 말이외다. 알겠소?”
* * *
「연해주 북방, 흑룡강 하류의 항구 니콜라옙스크에서 적색 과격분자들의 대광란! 주민 수천 명이 학살당해!」
「극악무도한 범죄! 우리 동포 300여 명, 단지 한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학살!」
니콜라옙스크의 참상은 곧 한국에도 전해졌다.
대한제국이 고려인 보호라는 명목으로 내전에 개입했고, 고려인 상층부가 한국에 협력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민족이 고려인이라는 이유로 집단처형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잔혹한 내전이 3년째 진행 중인 러시아에서는 백색테러와 적색테러가 반복적으로 자행되어 학살이 흔한 일이었지만, 이런 일이 드문 한국에서는 경악 그 자체였다.
「특보! 살해당한 우리 동포 중에서는 대한제국 국적도 30명 있어! 대한국민이 대거 학살당한 사건!」
「적색분자들의 이중성 – 앞으로는 평화를 부르짖으며, 뒤로는 학살극을 벌이다! 학살자들은 소위 극동 공화국 인민혁명군 제4여단!」
“이런 미친놈들, 우리 동포들이 뭘 잘못했다고 양민들을 학살한단 말이냐?”
“동포의 원수를 갚자! 러시아 빨갱이들을 쓸어버려야 한다!”
고려인 동포 300여 명이 학살당했다는 소식에 이어, 그중 한국 국적도 30여 명이 포함되어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휘발성은 더욱 커졌다.
“그러게 애초에 내가 뭐라 했습니까? 저 사회주의자놈들과는 타협이 의미가 없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앞으로는 평화를 말하지만, 뒤로는 전쟁을 도발하고 있지 않습니까!”
대소 강경론을 주장하던 외무대신 이승만이 기세등등하게 소리쳤다. 그는 자신의 예상이 맞아떨어졌다고 확신했다.
“극동 공화국의 해명에 따르면, 학살의 주체는 정부 위원을 살해하고 반란을 일으킨 과격파 반란군이며, 극동 정부와는 무관한 일이라고 합니다.”
학살 소식을 전해 들은 한국 정부는 극동 정부, 아니 그 배후의 소비에트 정부를 향해 격렬히 항의했다. 항의에 직면한 소비에트 정부는, 매우 드물게도 유감의 뜻을 보내왔다.
「니콜라옙스크에서 학살을 자행한 전(前) 인민혁명군 제4여단은 정치위원을 살해하고 반란을 일으킨 극좌 모험주의자 부대다. 희생자의 대부분은 극동 국민으로, 극동 공화국 정부는 책임을 통감하고, 학살을 자행한 반란군 부대를 섬멸하고 책임자들을 처단하겠다고 약속한다.」
“이거 다 헛소리라니까요. 문제가 되니까 꼬리 자르기 하는 거 아닙니까? 애초에 학살자들은 소비에트를 지지하던 파르티잔이었고, 소위 인민혁명군의 일원이었습니다. 이건 대한제국과 국민에 대한 명백한 선전포고입니다!”
이승만과 개화당 우파뿐만 아니라, 의외로 신민당에서도 강경한 주장이 쏟아졌다.
“대한제국 정부는 재외국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이는 소위 극동 공화국이 우리를 속였기 때문입니다!”
“대한국민이 피를 흘렸는데, 이를 묵과할 순 없습니다!”
러시아 국적을 지닌 고려인이든, 러시아에 거주하는 한국인이든 지리적 특성상 대개 관북(함경)-관서(평안) 사람이었다. 이번에 살해당한 이들도 대부분 고향이 그쪽이었다. 서북지방을 정치적 기반으로 삼는 신민당으로선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더욱이 연립정부에 참여한 이상, 신민당은 ‘개화당과 비교하면 대외정책에 유약하다’라는 이미지를 벗어날 필요가 있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더욱 강경한 목소리가 쏟아졌다.
“일본 정부가 공동으로 이 사건에 대응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조약을 위반하고 학살을 저지른 소위 극동 공화국을 엄중히 심판해야 합니다!”
“특단의 조치를 취해, 러시아 과격파를 토벌해야 합니다!”
“연해주의 우리 동포들을 지킵시다!”
광무 25년 6월, 정부, 의회, 언론에서 연일 성토가 쏟아졌다. 여론은 전례 없이 격동되고 있었다.
“이게 무슨 개 같은 일이야! 미친 러시아 놈들, 대체 군대 관리를 어떻게 하는 거야!”
이선도 분개하긴 마찬가지였다.
국상으로 인해 올해 계천기원절과 건원절은 행사 없이 조용히 넘어갔다. 애국주의적 열기를 불러일으키는 국경일을 그냥 지나간 대신, 북쪽에서 전해 온 소식이 애국주의 광풍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사회주의자들이 아니라 아나키스트, 그중에서도 극렬 모험주의자들이 저지른 범죄란 말이지? 그럼 엄밀히 말하면 소비에트 정부와 적대하는 사이가 맞는 것 같은데?’
21세기에 이선우로 살던 시절에 좌익 이념에 대해서도 체계적으로 연구했으므로, 이선은 현재 소비에트를 주도하는 마르크시스트와 아나키스트의 지향성도 다르고, 사이가 좋지 못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특히 백군 붕괴 후에는 적군은 어제의 동지인 흑군을 탄압하기 시작했고, 아나키스트는 볼셰비키의 배신에 격노했다. 그 여파가 머나먼 극동에까지 밀려온 것이다.
‘아무리 봐도 소비에트와 대한을 모두 엿 먹이려고 벌인 계획적인 도발이다.’
문제는, 한국인들이 마르크시즘과 아나키즘의 차이를 전혀 구분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사회주의자’건, ‘무정부주의자’건, 한국인들의 눈에는 똑같이 좌익 적색분자였다.
‘저놈들은 아나키스트도 아니고, 아나키즘을 참칭하는 학살자들에 지나지 않잖아. 이런 놈들의 미친 짓거리 때문에 전쟁을 각오해야 한다고?’
대한제국은 역사상 처음으로, 여론이 전쟁을 원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이선으로선 원치 않는 상황이었다.
“폐하, 이번 기회에 연해주를 확고하게 점령할 수 있도록 증파를…….”
“군무, 경은 상황을 잘 알고 있으면서 그런 무책임한 말을 하나! 유격전이 지긋지긋하지 않나? 기껏 수렁에서 빠져나오려고 하니까 더한 수렁에 들어가는 상황이 아닌가!”
지금도 대한제국군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하바롭스크로 이어지는 연해주의 주요 도시들과 철도를 통제하고 있긴 하지만, 점과 선을 연결하고 있을 뿐이었다.
광활한 러시아의 대지는 파르티잔 활동에 최적의 공간이었다. 게릴라전과 토벌, 끝없는 소모전의 반복이었다.
“현재 인도양을 항해 중인 백군 남러시아군과 흑해함대를 블라디보스토크로 보내 연해주의 통치를 맡기시지요. 대한은 그들을 지원하는 형태로 나서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럼 극동 공화국과의 관계는 어쩌잔 말인가?”
“현재 블라디보스토크의 잔존 백군도 극동과의 분리를 원하고 있습니다. 대한이 신호만 보내면, 이들은 즉시 정변을 일으켜 새 정부를 수립할 겁니다.”
서로를 싫어하던 외무대신 이승만과 군무대신 이동휘가 모처럼 한마음이 되어 군사개입을 주장했다.
심지어 개화당에 이어 신민당도 개입에 동조했다. 개입에 반대하던 내무대신 안창호도 당내 대세가 결정됨에 따라 동조하는 지경이었다.
“소조의 생각은 어떤가?”
“소자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이진은 잠시 긴장하다가, 목소리를 높였다.
“대신들의 의견이 옳습니다. 대한국민이 학살당한 사건은 결코 용납할 수 없습니다. 적색 과격파들과는 어떠한 타협도 불가능하다는 게 증명됐습니다. 대한국군을 연해주로 증파해 새 정부를 수립하는 걸 돕고, 우리 동포들과 러시아 양민들을 보호해야 합니다.”
이진으로서는 처음으로 부황의 뜻에 반대되는 의견을 내놓는 순간이었다.
이선은 말없이 잠시 침묵하다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잠시 휴회하겠소. 소조는 짐을 따라오도록.”
“예, 폐하.”
이선은 이진을 집무실로 데리고 들어갔다.
“태자. 대신들의 의견을 따르겠다는 거냐, 네 생각인 거냐.”
“제 생각입니다. 이건 전쟁의 방식이 아닙니다. 극좌 과격파들은 선을 넘었습니다. 대한국군이 학살자들을 엄중히 심판하고, 동포들을 지켜야 합니다.”
이진이 진심으로 분개한 듯 말했다.
이선은 대답하지 않고, 문서철에 담긴 전문 한 무더기를 넘겨줬다.
“읽어 보라.”
전문은 1919년과 1920년 극동에서 한국군의 작전 상황을 다룬 비밀보고서들이었다. 그중에서도 한국군과 백군과 연합하여 시행한 ‘빨치산(파르티잔) 토벌 작전’에 집중되어 있었다.
“이, 이건…….”
「…… 중대는 새벽에 빨치산의 기습공격을 당해 5명이 전사함. 인근 마을에 들어가니 빨치산과의 내통이 의심되는 정황들이 발견. 남성 25명을 끌어내 즉결심판하여 총살함.」
「백군 지휘부는 의심되는 마을들을 모조리 불태우자고 제안함. 마을들이 빨치산 투쟁의 근거지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 이에 사단 사령부는 동의했음. 각 부대 병력이 진입하여 마을들을 불태움. 이주를 거부하고 저항하는 주민들은 적으로 간주해 전부 사살함. 순응하는 양민들은 소개(疏開)시켰음. ……」
작전인지 전쟁범죄인지 구분이 모호한 보고가, 극히 냉정한 필치로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그건 선악의 문제, 좌우의 문제가 아니었다. 생존의 문제였다. 죽이지 않으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였다.
모든 전쟁은 참혹하다. 하지만 전선의 구분이 없는 전쟁은 더욱 참혹하다.
피로 피를 씻는 행위가 반복되었다. 아름다운 아무르강은 유혈로 물들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