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699
3부 114화 희년을 선포하라
광무 26년(1922) 5월 31일, 임술년 5월 5일.
황제 이선의 55번째 탄일인 건원절(乾元節)을 맞이하여, 전국적으로 성대한 축제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대한국 만세!”
“대황제 폐하 만세!”
“황태자 전하 천세!”
매년 돌아오는 건원절이지만, 올해는 더욱 특별했다. 작년에 태황제의 국상으로 건원절 행사가 간소하게 치러져, 2년만의 행사라 국민이 기뻐하는 건 아니었다.
올해는 바로, 만백성이 오랫동안 고대해 왔던 황태자 이진의 가례(嘉禮)와 맞물려 있었다.
이선은 본래 길일로 지정된 음력 5월 5일과 겹치는 건원절에 맞춰 가례를 행하라고 명하였지만, 가례도감 도제조 김옥균과 의논하여 날짜를 약간 조정했다.
“폐하. 신의 생각으로는, 소조(小朝)의 가례도 국경일에 해당되는 국가의 큰 경사이온데, 대조(大朝)의 건원절과 가례를 같은 날에 행하기보다는 그 직후에 행하시어 만백성과 오래토록 기쁨을 함께 하심이 어떠하신지요?”
요컨대 건원절부터 가례까지 국가적인 축제로 삼자는 제안이었다. 이선은 흔쾌히 승낙했다.
“하긴, 건원절과 가례가 겹치면······. 올해는 짐의 탄일보다 소조의 가례가 더 주목을 받는 게 좋겠지. 국민에게 축제의 기회를 주는 것도 좋은 생각이고. 그렇게 합시다.”
그리하여, 황태자의 가례일은 건원절 9일 뒤인 광무 26년 6월 9일로 결정되었다.
“광무 26년은 황제 폐하께옵서 성수(聖壽) 55세를 맞이하시고, 원구단을 쌓고 칭제건원하시어 새로운 하늘을 연지 꼭 25주년이 되었으며, 선제 고종 태황제께옵서 희년(稀年, 71세)을 맞이하는 해이자, 또한 황태자 전하께옵서 가례를 올리시니 실로 국가의 대경사가 아니라 할 수 없습니다. 이에 신등은 크나큰 기쁨과 함께 황실에 경의를 표하고자 합니다.”
국무총리대신 이상설 이하 문무백관이 경복궁 근정전에 모여 경의를 표하자, 이선도 기쁘게 화답했다.
“고맙소. 실로 광무 26년은 대한과 짐에게 있어 특별한 해가 아닐 수가 없소. 이에 짐은 희년(禧年)을 선포하니, 만백성과 함께 이 기쁨을 함께 누리고자 하오.”
“대한국 만세! 대황제 폐하 만세!”
황태자의 가례일은 임시 국경일로 지정되었고, 5월 31일 건원절부터 비공식적 국경일인 6월 6일 흥경절에 이어 10일간 전국적인 축제분위기를 형성하도록 하였다.
황태자의 가례는 대한제국 선포 이후 첫 국혼으로, 구본신참의 원칙에 따라 조선의 전통혼례 위에 영국 왕실의 혼인을 참고로 했다.
“대한은 조선을 계승하였으니, 열성조의 아름다운 전통을 따르는 것은 후손 된 이로서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하나 대한은 제국으로서 새로운 예전(禮典)을 갖추었고, 경들도 알다시피 황태자비는 서양 사람이다. 전통을 참고하되 간소화하여 진행하라.”
이선의 명을 받은 가례도감은 전통예식을 따르되 간소화하였다.
왕세자비의 간택과 가례 절차는 세종대왕의 교시 이래 오랜 전통이었으니, 성종 대에 반포된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를 참고하여 진행하였다.
5월 24일, 가례 16일 전.
이날은 황태자비의 납채(納采)의례가 있었다.
납채란 신랑 될 사람의 왕실에서 신부 될 사람의 집에 혼인을 청하는 의례이다.
가례도감 도제조 김옥균과 부제조 이강, 이영, 이재극이 로마노프 황실이 거주하는 아관(俄館, 러시아 대사관)을 방문하여 납채 의식을 거행했다.
“삼가 황제 폐하의 명을 받들어 청하옵나이다. 폐하께옵서는 선조의 예에 따라 저를 시켜 납채를 청하게 하였사오니, 납채의 예를 받으시옵소서.”
김옥균의 말이 끝나자, 이강이 문명(問名)절차로 직접 붉은색 비단보자기로 치장한 살아있는 기러기를 들고 외쳤다.
“대한제국 황태자 전하께옵서 러시아제국 타티야나 니콜라예브나 여대공 전하께 혼인을 청하옵니다.”
기러기는 정기적으로 남쪽(양)과 북쪽(음)을 왕래하기 때문에, 이를 음양의 법칙을 따르는 것으로 보아 폐백으로 사용한다.
기러기가 세시음양(歲時陰陽)에 역행하지 않고 도(道)에 따라 순조롭게 살아가듯이, 혼인하고자 하는 당사자도 음양의 원리에 따라 겸손한 마음으로 살아가라는 의미였다.
사전에 예고를 받았음에도, 보자기 밖으로 빼꼼 긴 목을 빼놓은 기러기의 모습에 로마노프 공주들은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흘리고야 말았다.
“정말 살아 있는 새잖아! 이 나라의 결혼 예법은 진짜 재미있네.”
“나스챠, 가만히 있어!”
아나스타샤가 귀엽다는 듯 기러기 머리를 만지려고 하자, 올가가 빠르게 속삭였다.
“내 손녀는 어리석고 또한 잘 가르치지 못하였사오나, 폐하께서 명하시니 어찌 감히 사양할 수 있겠습니까?”
멀리 덴마크에서 한국을 찾은 황태후 마리야 표도로브나(덴마크의 다그마르)의 말을 이영이 한국어로 통역했다.
다그마르는 사전에 합의한 대로 신부 집안을 대표해서 국혼절차를 행했지만, 내심 불편했다. 생경한 한국의 결혼예법이 문제가 아니라, 이 결혼 자체가 내키지 않았다.
“할머니, 저는 정말 괜찮아요. 할머니께서 진심으로 손녀의 결혼을 축복해 주시면 좋겠어요.”
타티야나의 심지 굳은 말에, 다그마르는 손녀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복해 주었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 한편에는 불안한 생각이 남아 있었다.
결혼예법의 차이에서 볼 수 있듯이, 서양 기독교 문화권에서 자란 타티야나가 동양 유교 문화권의 왕실에서 잘 적응할지 의문이었다.
“부족함을 무릅쓰고 삼가 납채를 받드나이다.”
이윽고 궁내부에서 정친예물(定親禮物, 혼인을 정하여 친척이 된 것을 기념하는 예물)인 색색의 최고급 비단 66필을 전하자, 로마노프 공주들은 찬탄을 흘렸다.
“정말 아름다워! 역시 비단은 동양이야.”
“나스챠, 제발 가만히 있으라니까······.”
이번에도 아나스타샤가 감탄하며 비단을 만지려 하자, 올가는 허리를 쿡 찌르며 만류했다.
이영은 그 모습에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흘렸다.
‘저 말괄량이 아나스타샤 공주 덕에 다들 기운 차리면서 산다지. 진이 아름다운 아내와 재미있는 처제를 두게 되었어.’
예법상 폐백과 예물은 원칙적으로 처가 선조 사당의 신위에 고해야 하나, 당연히 로마노프 왕가에는 신위가 없었으므로 절차를 제외했다.
대신 한쪽에 모셔진 니콜라이 2세와 알렉산드라 황후의 초상화 앞에 고하였다.
“외신 대한제국 전 총리대신 가례도감 도제조 김옥균, 대한제국 황태자 전하와 러시아제국 타티야나 니콜라예브나 여대공 전하의 혼인을 청하오니, 양위(兩位)께옵서는 폐백과 예물을 받아 주시옵소서.”
김옥균이 초상화 앞에 기러기와 비단을 놓고 세 번 읍(揖)하며 고하였다.
이러한 광경을 처음 보는 로마노프 황실 사람들은 생경하다 못해 어색할 지경이었지만, 엄숙한 분위기에 따라 고개를 숙였다.
납채 절차를 마친 후, 별실에서 다과를 들었다.
“이로써 납채 절차가 끝났습니다. 원칙적으로는 납채가 끝난 후에도 납징(納徵)・고기(告期)・책비(冊妃)・친영(親迎)・동뢰(同牢)의 절차를 필요로 하나······.”
김옥균의 말에 로마노프 황실 사람들이 대체 그게 무슨 뜻이냐는 듯 쳐다보았다. 사전에 합의한 사항 말고 절차가 또 있냐는 물음의 표시였다.
“황제 폐하께옵서 간소화하라고 명하셨으므로, 이후의 절차는 태자 전하께서 친히 공주 전하를 맞이하는 친영만 행하고, 동뢰연을 치르고자 합니다. 먼저 9일 오전에 경복궁에서 동양의 예법에 따라 혼례를 치르고, 이어 오후에는 경운궁에서 서양의 예법에 따라 예식을 올리고자 합니다.”
“예, 알겠습니다.”
타티야나는 고개를 숙이며 얼굴을 붉혔다.
이어서 이강이 말했다.
“경복궁 혼례에는 대한제국 황실과 칙임관 이상의 관리들이 참석할 예정이고, 경운궁에서는 한국 주재 외교관과 각국에서 파견할 특사가 참석할 예정입니다. 신부 들러리는 예정한 대로 마리야 여대공께서, 신랑 들러리는 영국의 마운트배튼 경께서 맡아 주실 예정입니다.”
마리야가 놀라워하며 되물었다.
“디키, 아니 루이 마운트배튼 경께서도 참석하시나요?”
마운트배튼 경, 애칭 ‘디키(Dickie)’는 바로 바텐베르크(Battenberg)의 공자이자 빅토리아 여왕의 외증손자인 영국해군 대위 루이 마운트배튼(Louis Mountbatten)을 지칭한다.
루이 마운트배튼은 영국 왕실의 인척인 동시에, 러시아 황실의 인척이기도 했다. OTMAA 5남매하고도 이종사촌 간이라 친분이 두터웠다.
“예, 아시다시피 영국 왕태자 전하께서 하객으로 참석하십니다. 마운트배튼 경은 왕태자 전하의 수행원으로 참석할 예정인데, 서양식 결혼식에는 들러리가 필요해서 부탁드렸습니다. 물론 흔쾌히 수락하셨고요.”
이어서 이영이 청했다.
“내일 영국 전함이 부산항에 입항합니다. 저와 정친왕이 부산으로 가서 맞이할 예정인데, 로마노프 황실에서도 대표자를 보내시겠습니까?”
“신부 들러리니까 마땅히 제가 가겠습니다!”
마리야가 기다렸다는 듯이 손을 번쩍 들었다. 그러자 아나스타샤도 질 수 없다는 듯 손을 들었다.
“저도 같이 가겠습니다! 올가는 타티야나를 도와야 하니 서울에 남아야겠지만······.”
아나스타샤는 눈짓을 하며 올가를 슬쩍 쳐다보았다. 올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러시지요. 오늘 밤에 야간열차로 출발할 예정입니다. 시일이 촉박합니다만 준비 부탁드리겠습니다.”
* * *
5월 25일, 대한제국 부산항.
대영제국 순양전함 HMS 리나운(HMS Renown)이 웅장한 위용을 드러내며 부산항에 입항했다.
1903년 한영일동맹 체결 이후 영국 해군 전함이 한국의 항구에 기항하는 건 종종 있는 일이었지만, 이번에는 특별한 방문이었다.
바로 영국 왕태자, 즉 웨일스 공 에드워드 알버트 크리스티안 조지 앤드류 패트릭 데이비드(Edward Albert Christian George Andrew Patrick David)가 탑승하고 있었다.
“흠, 여기가 한국인가. 바다 바로 뒤로 산이라. 확실히 산이 많다는 게 느껴지는군.”
함상에서 부산항의 전경을 바라보던 에드워드가 느끼는 첫인상은 산이 많은 나라였다.
“바다와 산이라. 나폴리가 떠오르는군. 얼마 전에 방문했던 가고시마와도 비슷한 느낌이고.”
에드워드 곁에 있던 훤칠한 체격에 빼어난 외모의 미남이 부산을 나폴리와 가고시마(사쓰마)에 비교했다. 그가 바로 마운트배튼 경 루이였다.
루이는 에드워드보다 6살 어렸지만, 6촌 형제인 두 사람은 절친한 관계였다.
공식적으로는 웨일스 공과 해군 대위였지만, 사석에서는 애칭으로 부르는 사이였다. 에드워드는 가족들에게 미들네임인 데이비드라고 불렸다.
“나폴리와 비교할 수는 없지. 이탈리아가 아무리 2류 열강이라 할지라도 문명국인데. 이런 동양 촌구석하고 비교하면 이탈리아인들 속이 쓰릴걸.”
“그래도 가고시마는 괜찮지 않았어? 데이비드도 시마즈 저택에 갔을 때 사무라이 갑옷 입었잖아. 언제 그런 경험을 또 해 보겠어?”
1922년 4월, 일본은 동맹국 ‘대영제국 황태자 전하’의 방일을 열렬히 환영했다.
형식은 일본 황태자 히로히토의 영국 방문 답방이었지만, 영국에서 히로히토를 환대한 것과 비교가 안 될 열렬한 환호로 에드워드를 맞이했다. 영국에 일본은 동맹이자 ‘극동의 헌병’이지만, ‘동양의 영국’을 자처하는 일본에 영국은 위대한 제국이자 모범이었기 때문이었다.
1921년, 히로히토는 일본 황태자로서는 최초로 세계일주에 나섰다. 보수적인 일본 황실 내에서는 반발이 적지 않았으나, 하라 내각에서는 적극 추진했다. 이선과 한국 황실이 적극적인 황실 외교와 해외 방문으로 상당한 외교적 성과를 거둔 것에 자극을 받아서였다. 국혼 문제로 하라를 내심 괘씸하게 여겼던 히로히토도 적극 환영했다.
히로히토는 아시아, 유럽, 미국을 거쳐 귀국했는데, 특히 동맹국 영국에서 장기간 체류하며 환대를 받았다. 영국은 히로히토를 국빈으로서 정중히 대우했고, 조지 5세는 히로히토를 ‘나의 아들과도 같다’라고 말하며 매우 아껴 주었다. 마치 니콜라이 2세가 이진을 대하는 것과 같은 태도였다.
이에 히로히토와 일본 황실은 크게 감격하였고, 에드워드의 방일에 맞춰 열렬한 환대를 준비하였다.
에드워드도 영국을 대표하여 일본의 환대에 응했다. 히로히토와 함께 일본 전통행사에 참석하고, 한 달에 걸쳐 일본 명승지를 두루 방문했다.
에드워드는 일본 전통을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 더욱 환영을 받았다. 기모노를 입고 일본 전통행사에 참석하고, 선상파티에서는 인력거꾼처럼 법피(法被) 차림으로 나타나 사람들을 웃게 하는가 하면, 규슈 가고시마의 시마즈 공가(公家)를 방문할 때에는 사쓰마 전통 사무라이 행렬에 답례하며 그 자신도 사무라이 갑옷을 입고 행진했다.
영국 왕태자의 이러한 모습에 일본인들은 크게 감격하였고, 더욱더 열렬한 환호를 보냈다.
“하! 그거야 일본이 동맹이니 비위 맞춰 주려고 해 준 거지. 원숭이 흉내가 저들의 전문이니, 나도 따라 해 줘야 하지 않겠나? 뭐, 사무라이 흉내는 좀 재미있었다만.”
하지만 그건 에드워드의 본심이 아니었다.
조지 5세가 히로히토를 아들처럼 대해 주듯 에드워드도 겉으로는 형제처럼 대해 줬지만, 절대로 본심이 아니었다.
「히로히토는 원숭이들의 대장, 즉 고급 원숭이지. 일본에 인구가 얼마나 많은지 알아? 그것도 불과 한 세대 만에 저렇게 늘어난 거야. 정말이지 일본인들은 토끼처럼 빠르게 번식한다니까!」
겉으로는 일본과 히로히토에게 최상의 예의를 보이던 에드워드는, 정부(情婦)에 보내는 편지에서는 경멸감을 한껏 드러냈다.
에드워드는 내심 일본, 아니 유색인종을 경멸했다. 순방국과의 우호 도모라는 웨일스 공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내색하지 않고 ‘코스프레’를 하는 것뿐이었다.
「호주 원주민을 봤어. 내가 본 인류 중 가장 혐오스럽더군! 그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인간의 형상 중 가장 저급해, 아니, 인간이라기보다는 원숭이지.」
1920년 호주를 방문했을 때도, 겉으로는 원주민의 경의 표현을 정중히 받아들였지만, 역시나 속내는 경멸과 차별의식으로 가득했다.
“아무리 러시아가 망했다지만, 대제국의 공주이자 빅토리아 여왕의 외증손녀가 이런 동양 촌구석으로 시집을 온다니. 차르가 저승에서 통탄할 일이지. 참 기가 막힐 노릇이야.”
“데이비드, 넌 한국 황태자의 하객으로 온 거야. 난 신랑 들러리고.”
“나 참, 루이 네가 뭐가 아쉬워서 한국 황태자의 들러리를 서 줘야 하나? 하긴, 그림은 볼 만하겠군. 영국 최고의 미남인 네가 황태자 옆에 서 봐라. 얼마나 비교가 되겠나? 백인의 우월함과 황인종의 열등함을 한껏 체험할 수 있을걸.”
“데이비드, 아니 웨일스 공 전하······.”
루이 마운트배튼이 정색하려 하자, 에드워드는 피식 웃었다.
“알아, 알아. 다 외교의 일환이지. 일본에서 그랬듯이, 나는 얼마든지 한국인의 친구를 흉내 낼 수 있어. 한복도 준비해 놨다고. 애드미럴 리랬나? 옛 한국 해군 제독.”
“아, 이순신 제독. 해군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장이지.”
이 무렵, 이순신의 명성은 영국 해군에서도 자자했다. 해군사관학교 교과목에도 실릴 정도였다.
“그래. 제독의 초상화를 보니 한국 전통갑옷도 꽤나 그럴싸하더군. 입어 봐도 괜찮을 것 같아.”
“흠, 그거 좋은 생각이네. 한국인들은 제독을 숭배하니까.”
“하여튼 걱정하지 말게, 루이. 한국인의 벗으로서, 한국 황태자를 형제처럼 대해 줄 준비는 끝났으니.”
루이는 에드워드가 최소한 겉으로는 완벽한 외교적 의전을 갖추었으므로, 걱정은 하진 않았다.
오히려 그의 생각은 곧 다른 쪽으로 향했다.
작가의 말
3부 본편 시작합니다. 외전도 본편하고 연결되는 내용이니, 혹시 외전을 안 보셨다면 보시는게 본편 독해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원래 왕실의 가례절차는 와 , 에 의거하여 작중 묘사보다 훨씬 복잡합니다만, 더 자세히 묘사했다가는 쓰는 저도 읽는 독자님들도 질릴것 같아 생략했습니다. 살아있는 기러기를 납채 절차에 쓰는건 좀 재밌더군요.
작중 묘사된 에드워드의 혐성(…)은 고-증입니다. 에드워드가 인종주의자이자 훗날 나치추종자가 된건 유명한 일화죠. 다만, 20세기 전반 서양의 인종차별의식은 워낙 만연해있어서, 에드워드가 특이할 건 없습니다. 적어도 에드워드는 웨일스공이었기에 겉으로는 티를 안 냈습니다. 순방국마다 코스프레 잘하기로도 유명했고… 다만 왕위에서 물러난 후에는 더이상 자제할 필요가 없다고 여겼는지 나치들과 어울린거 보아 본심은…
본편 연재 재개 기념으로 내일은 연참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