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703
3부 118화 군주이자 부친
경운궁과 주한영국대사관은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다. 특히 경운궁에서도 서쪽에 위치한 석조전은 지척에 있었다.
대사관에 여장을 푼 에드워드와 사절단 일행은 황제를 알현하기 위해 경운궁으로 입궁했다.
“궁전이 대사관 바로 옆이라서 편하군.”
“이 지역을 정동이라고 하는데, 각국 대사관이 모여 있지요.”
대안문에서 석조전까지 짧은 거리였지만, 황실 근위대가 웨일스 공 일행을 호위했다. 석조전에는 대형 태극기와 유니언잭이 엇갈리듯 내걸렸다.
“대영제국 황태자 전하 입시옵니다!”
“His Royal Highness The Prince of Wales, The Duke of Cornwall!”
공식적으로 영국 군주의 칭호는 ‘국왕(King)’이자 계승자의 명칭도 ‘웨일스 공’이었지만, 대한제국을 비롯한 동양 국가들에서는 관행적으로 ‘대영제국 황제’와 ‘황태자’로 번역해 호칭했다. 영국 국왕은 인도제국 황제를 겸하기 때문에 틀린 표현도 아니었다.
이선은 왕좌에서 일어나, 만면에 미소를 띠우고 에드워드와 악수를 했다.
“대한제국에 방문함을 환영합니다, 전하.”
“환대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황제 폐하.”
황실 사진사가 재빨리 악수하는 장면을 사진으로 찍었다. 즉위 초기에만 해도 황제가 외국 왕족과 악수를 하는 것에 어색함을 느끼는 이들이 적지 않았지만, 이제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국왕 폐하의 친서를 삼가 봉정합니다.”
“폐하께서는 강녕하십니까?”
“강녕하십니다.”
에드워드가 정중한 태도로 친서를 봉정하자, 이선은 받아서 선 채로 친서를 읽었다.
한영수교 40주년을 기념하여 웨일스 공을 파견하니 양국의 우호가 만대에 이뤄지길 기원하며, 황태자 이진의 국혼을 축하한다는 의례적인 문서였다.
“폐하의 친서를 읽어 보니 새삼 귀국의 덕을 느낄 수 있습니다. 축하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는 말을 전해 주기를 바랍니다.”
“예, 폐하.”
“전하의 방문을 다시금 환영합니다. 자, 축연을 준비했으니 어서 갑시다.”
석조전에는 전에 없이 성대한 축연이 준비되었다.
에드워드 윈저란 인물이 어쨌든, 영국 황태자는 대한제국 선포 이래 방한한 최고급의 국빈이었다.
1891년 러시아 황태자 니콜라이 대공(후일 니콜라이 2세), 1899년 독일 카이저의 아우이자 해군 제독인 하인리히 대공, 1907년 일본 황태자 요시히토(후일 다이쇼) 이래 최고의 국빈이었다.
더욱이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이자 당대 최강국이었고, 대한제국의 동맹국이었으므로 더욱 환대했다.
‘역사가 바뀌었으니, 이 친구가 에드워드 8세로 기록될지 윈저 공으로 남을지는 아직 미지수지. 뭐 성격을 생각하면 결국 후자가 되겠지만.’
이선은 원역사 에드워드 8세의 행보, ‘사랑 때문에 왕위를 포기한’ 세기의 로맨티스트로 포장되었지만, 친(親)나치이자 극우 파시스트 성향을 알고 있었다. 이처럼 미덥지 않은 인물이었지만, 역사가 바뀌었으니 어찌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국혼에 웨일스 공의 참석 자체가 대한의 위상이 오르는 일이니, 당연히 후대해야지.’
동양 왕가와 서양 왕가가 결합하는 건 전례 없는 일이었다. 각국의 축하를 받기는 했지만, 이는 의례적인 표현일뿐이었다.
대부분의 유럽 국가에서는 인종-종교적인 문제로 인해 이 결혼을 고깝게 여기고 있었고, 일부 우익들은 ‘황인이자 이교도’를 대(大)유럽 왕가의 일원으로 결단코 인정할 수 없다고 공공연히 폄하했다. 각국 왕실도 대한제국 황실을 진정 유럽 왕가의 일원으로 여기지 않을 터였다.
하지만 속내가 어쨌든 간에, 웨일스 공 에드워드가 결혼식 하객으로 참석하게 되었으므로, 이는 유럽 왕가의 공인을 받게 된 결과였다.
조지 5세는 동방의 군주에게 최상의 예우를 표한 것이었고, 이선이 그동안 공들여온 대영(對英) 외교가 국익을 넘어 황실 차원에서도 성과를 발휘한 셈이었다.
1922년 6월 6일은 한영수교 40주년 기념일이었다. 웨일스 공의 방한 기념행사는 이날 절정에 도달했다. 이선은 친히 주한영국대사관을 방문하여 기념식에 참석했다.
“대한제국과 대영제국이 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한 지 어언 40년. 그동안 이 나라에 커다란 변화가 있었듯, 양국 관계도 놀라운 진전이 있었습니다.”
1882년 6월 6일 제물포에서 조영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된 지 꼭 40년, 양국의 관계는 경천동지할 만큼의 변화가 있었다.
영국은 조선과 조약을 맺기는 했지만, 공사급 파견이 아닌 영사급을 파견하고 거문도 점령을 강행한 점에서 알 수 있듯이, 청국의 속국이자 가난한 미개국으로 취급했다.
조선이 청국을 격파하고 자주독립을 쟁취한 후에도, 러시아와 친밀한 이선을 ‘러시아 스파이’ 취급하는 무례를 저지르곤 했다.
이선의 오랜 외교적 노력 끝에, 1903년 한국은 영국의 동맹이 되었다. 영국은 일본에 이어 한국을 ‘제2의 극동 헌병’으로 고용했다고 여겼지만, 20세기 한국의 비약적인 국력 신장은 영국도 놀라게 했다.
한국은 동부전선에서 독일을 격퇴하는 데 일익을 담당했고, 소비에트 러시아의 아시아 진출을 막는 방파제 역할도 했다.
영국은 이제야 비로소, 한국을 단순히 극동의 헌병이 아닌 동등한 동맹국으로 존중하기 시작했다.
“한영 양국은 동양과 서양에서 자유와 희망의 가치를 공유하는 동맹이자, 세계를 지배하려던 프로이센 군국주의에 맞서 싸운 전우입니다. 동양 평화, 아니 세계 평화를 위한 한영 양국의 우호는 만대에 걸쳐 지속될 것입니다. 양국의 우호여, 영원하라!”
“영원하라!”
이선의 축사에 영국인들도 일제히 화답했다.
이윽고 영국대사관이 주최한 축연이 이어졌다. 이선은 에드워드의 옆자리에 앉았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이선이 문득 질문을 던졌다.
“이런 질문 해도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웨일스 공에게 궁금한 게 있습니다.”
“무엇이든 말씀하십시오, 폐하.”
“웨일스 공은 결혼하지 않습니까? 모든 영국민들이 간절히 고대하고 있을 터인데요.”
에드워드의 얼굴에 미소는 사라지지 않았지만, 이런 질문을 하도 많이 받아서 질린 터였다. 그만큼 능숙하게 답했다.
“제 반려가 될 여인을 찾게 된다면 언제든지 결혼할 생각입니다.”
“그래요, 옳은 말입니다. 동양에서는 스무 살 전후한 시기에 결혼하는 관례지요. 어째서 국혼을 시키지 않느냐는 황실과 정부의 성화에도, 짐은 태자가 진정한 사랑을 찾을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참으로 관대하십니다, 폐하.”
“짐이 태자를 결혼시키니, 마음의 짐이 모두 사라진 느낌입니다. 아마 국왕 폐하께서도 같은 생각을 하지 않나 싶군요.”
1919년 이선이 영국을 방문했을 당시, 조지 5세와 꽤 친밀하게 대화를 나눴었다. 조지 5세는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군주였지만, 자신의 가장 큰 소원으로 ‘장남의 결혼’을 꼽을 정도였다.
“부왕께 송구스러울 따름입니다. 하오나 저는 한국 태자 전하처럼 진정한 사랑을 찾기 전까지는 기다릴 생각입니다.”
“하하, 웨일스 공은 진정한 로맨티스트군요! 그럼 어서 진정한 사랑을 찾기를 바랍니다.”
이선의 격려에 에드워드는 건배로 화답했지만, ‘부왕께 송구스러운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노인네 뜻대로 순순히 결혼해 줄 생각은 없지.’
조지 5세와 에드워드, 부자간의 불화는 뿌리 깊었다.
조지 5세는 군주로서는 훌륭했지만, 부친으로서는 그렇지 못했다. 해군 장교 출신으로서 언제나 엄격한 자세를 유지했던 조지 5세는, 자식들에게도 엄격하게 대했다. 특히 후계자가 될 장남에게는 더욱 엄격하고 냉정했다.
에드워드는 어릴 적부터 부왕의 엄격함에 반감을 품었고, 나이가 먹을수록 더욱 엇나가게 되었다.
‘이진과 타티야나의 결혼이 진정한 사랑인지는 모르겠지만, 국가적인 반대에도 황제가 결단을 내려서 성사시킨 건 틀림없지. 내가 진정한 사랑을 찾는다고 해서, 노인네가 황제처럼 순순히 결혼을 허락해 줄까? 어림도 없지.’
에드워드는 내심 고깝게 여겼던 이진이 처음으로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왕이 자식을 이해해 주고, 자식의 뜻대로 결혼을 시켜 준다니.
물론 이진은 어릴 적부터 이선의 뜻을 따르기 위해 노력하던 모범생이었고, 에드워드는 왕실의 반항아라는 중대한 차이가 있었지만, 그 자신은 엇나감을 부왕 조지 5세 때문이라고 여겼다.
‘타티야나, 올가라면 노인네가 좋아했을까? 진작 올가랑 혼인할 걸 그랬나?’
에드워드의 시선은 로마노프 황실을 대표해서 참석한 올가에게 향했다. 올가는 전쟁 전 에드워드의 국혼 후보였었다. 이제 올가는 처신을 조심하는 망명자가 아닌 황실의 사돈을 대표하는 당주로서 공식행사에 참석했다.
‘차라리 진작 결혼했으면, 잔소리 듣지 않고 정부를 거느렸을지도 모르지. 할아버지처럼.’
에드워드의 생각은 엉뚱한 방향으로 흘렀다. 결혼으로 의무만 다하고, 조부 에드워드 7세처럼 정부를 두겠다는 안이한 발상이었다.
‘근데 내 취향은 올가보다는······.’
에드워드의 시선은 올가에서 아나스타샤 브론스카야, 즉 영친왕비 이서아로 향했다.
이서아가 런던에 있을 때부터, 에드워드는 그녀만 한 미인을 못 봤다고 생각했다. 이서아의 나이도 어느덧 서른을 넘겼지만, 원숙한 유부녀 취향인 에드워드에게는 오히려 그쪽이 더 좋았다.
근엄한 조지 5세를 분노하게 만드는 이유가 바로 장남의 성적 취향이었다. 하필 정부(情婦)를 만나도 유부녀나 이혼녀만 건드리고 있으니, 국교회의 수호자인 영국 국왕으로서는 용납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삼촌은 러시아 미녀 귀족이고, 조카는 러시아 공주냐. 한국 왕실 취향은 확고하군.’
에드워드는 내심 혀를 찼다. 자신의 국혼 후보였던 타티야나가 ‘한참 격이 떨어지는’ 이진과 결혼하는 것도 내심 고까운데, 이서아의 미모가 한국에 두기에는 더욱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쳇, 그림의 떡이로군.’
아무리 호색한으로 유명한 에드워드라지만, 외교적 분란이 될 짓은 하지 않았다. 런던 주재 모국(某國) 외교관 부인과도 바람을 핀 적이 있었지만, 왕족 부인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였다.
그저 눈으로만 쳐다보며 술잔을 기울일 뿐이었다.
* * *
그날 밤, 경운궁 석조전.
이선은 간만에 황후 김아영과 함께 밤을 보냈다.
“이제 진의 결혼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구려.”
“예, 그러하옵니다.”
“뭐랄까, 마음이 참 시원섭섭하오. 내 아들이 벌써 결혼할 때가 되다니. 어린아이였던 시절이 생생한데.”
이선이 새삼 소회를 말하자, 아영이 빙긋 웃었다.
“그게 모든 부모의 마음 아니겠습니까.”
“그렇소. 일국의 군주라고 해도 다르지 않지.”
“군주라고 해도 부모인 건 같으니까요.”
“그래요. 어느 나라건 다르지 않지요. 영국 또한 마찬가지일 터. 황후께서는 영국 황태자를 직접 보니 어땠소?”
“참으로 예의 바르고 말과 행동에 격조가 높은 것이, 과연 대영제국의 황태자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영의 관찰에 이선은 웃음을 흘렸다.
“하하, 그건 겉모습이지. 에드워드는 영국에서 파락호로 유명하다오.”
“그렇습니까?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던데······.”
아영은 진심으로 놀랐다는 듯,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서양이 동양보다 결혼 시기가 늦다곤 하지만, 에드워드의 나이는 만으로 27세, 우리 나이론 스물아홉이오. 혼기가 지났지. 왜 그렇겠소?”
“왕위를 계승할 후계자에게 국혼보다 중요한 일은 없을 터인데. 혹여 주변에 적당한 혼처가 없는 게 아닐지요?”
“그럴 리가 있겠소? 외국 왕실도 있고, 아니더라도 국내의 귀족 영애들이 있는데. 그런 문제가 아니오.”
이선이 술잔을 비우자, 아영이 술을 따라 잔을 채웠다.
“에드워드가 성적(性的)으로 방종하거든. 거느린 정부가 여럿이라오. 특히 유부녀와 이혼녀들로. 영국 국왕께서 이 문제로 꽤나 속을 썩힌다지요.”
“설마요! 일국의 태자가······.”
“오늘도 계속 제수씨, 영친왕비를 쳐다봅디다. 속으로 무슨 생각했을지 뻔하지. 남편이 한국 황제의 아우만 아니었더라도, 벌써 추파를 보냈을걸.”
신교육을 받았어도, 황후로서 정숙한 유교적 여인 그 자체인 아영은 얼굴을 붉혔다.
“어찌 그리 망측할 수가! 그 예의 바른 태도 뒤에 그런 음탕한 속내가 있다니, 놀랍군요.”
“왕족으로서 얼굴에 가면을 쓰는 건 당연하지요. 하물며 차기 군주가 될 사람이라면야.”
이선은 쓴웃음을 지으면서 술을 들이켰다.
“나 또한 마찬가지고. 공식적으로는 언제나 가면을 쓰고 있지요. 그건 진도 마찬가지일 거고.”
“······.”
“돌이켜 보면, 나는 제법 좋은 군주라고 생각하오. 국가와 국민을 위해 최선을 다했고, 그만한 성과도 거뒀으니, 좋은 군주라 자부해도 되지 않겠소?”
이선이 평소답지 않게 스스로 치켜세우자, 아영은 술잔을 채우며 웃으면서 화답했다.
“폐하께서는 대한의 청사(靑史)에 길이 남을 성군이십니다.”
“고맙소. 분명 좋은 군주지만, 좋은 아버지는 되지 못했소. 난 그게 못내 마음에 걸리는군.”
“폐하! 어찌 그런 말씀을······.”
아영이 당치않다는 듯 고개를 젓자, 이선은 거듭 술을 들이켰다. 이번만은 아영도 술잔을 채우지 않았다.
“국정이 바쁘다는 핑계로, 진이 어렸을 때부터 아비 노릇 제대로 하지 못해서 미안할 따름이오. 그건 진만이 아니지. 안, 은, 희, 라, 금 모두 마찬가지요. 언제나 국가를 신경 쓴다는 생각으로, 자식들에게 아비 노릇을 제대로 해 본 적이 없소. 다들 반듯하게 자라 줘서 고마울 따름이지······. 다 황후의 덕이오. 나 대신 고생이 많았소.”
아우 이영이 이진과 나눈 대화를 완곡한 어조로 보고하자, 이선은 그때야 모범생으로만 여겼던 자식의 속내를 눈치챌 수 있었다. 그 이후로는 아들과 보내는 시간을 대폭 늘리고, 대화의 시간을 자주 가졌다.
“폐하,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폐하께서는 사사로이는 저의 지아비이자 아이들의 부친이시지만, 황제로서 만백성의 어버이십니다. 3천만 신민을 적자(赤子)로 두고 계신 군부(君父)이시니, 세간의 부친들과는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폐하께서는 국가의 어버이로서 단 하루도 의무를 저버린 날이 없으시다는 걸, 누구보다 제가 잘 압니다.”
아영이 정색하며 황제로서의 의무를 일깨우자, 이선은 씁쓸한 표정을 거듭 지었다.
“그리 말해주니 고맙소. 맞소, 난 군주로서 의무를 다했지. 하지만 마음 한편에는 회한이 남아 있다오. 허허, 나도 이제 늙어서 그런가, 별말을 다 하는군.”
“폐하.”
아영이 표정을 부드럽게 하며 말했다.
“폐하께서는 군주로서나 부친으로서나 언제나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이 나라의 국운이 이렇게 성장하고, 아이들이 무탈하게 성장한 것도 다 폐하의 덕입니다.”
이는 단순히 아첨이 아니었다. 이선은 현대적 감각을 갖고 아버지로서 자식들에게 잘해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갖고 있었지만, 조선의 전통적 군주-부친으로서 이선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군주이자 부친이었다. 당장 선대왕들과 비교해도, 그처럼 자식에게 신경을 많이 쓴 왕은 드물었다.
“진에 대해서도, 그리 생각하지 마시옵소서. 진은 진심으로 부황을 경모(景慕)하고, 인생의 사표(師表)로 삼고 있습니다. 폐하가 아니었더라면, 아들, 그것도 가문을 계승할 장남이 원하는 결혼을 그 누가 허락했겠습니까? 일반 사대부들조차 어려운 일입니다. 부디 자책하지 마시옵고, 성심을 편안히 하시옵소서.”
아내의 진심 어린 말에, 이선은 비로소 표정을 풀고 밝은 미소를 흘렸다.
“고맙소. 내게 그리 말해 줄 수 있는 건 황후뿐이오. 황후 덕에 마음이 편해지는구려. 그럼 기쁜 마음으로 우리 장남의 혼례를 지켜봅시다.”
이선은 황제의 아내이자 자식들의 어머니로서 역할을 다한, 인생의 동반자인 아영의 손을 꼭 잡았다.
작가의 말
??? : 웨일스 공의 취향은 참으로 조조와도 같으니, 어찌 충효를 알겠습니까? 반드시 사직에 누를 끼치고 왕위를 잃고 말 것입니다.
사실 군주로서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은 소설도 마찬가지지요. 주로 황제로서 정치외교적 활동을 하는 것만 보여주고 있으니…
하지만 작중에서 일일이 다 묘사하다보면 늘어질것 같아 빠진 것뿐이지, 황제도 사생활이 있고 가족들하고도 잘 지냅니다.
비록 김아영의 등장이 드물다지만 궁에서 매일 보는 사이입니다! 이진을 제외한 다른 자식들과 대화하는 씬은 안 나왔어도 자주 대화합니다! 궁궐 밖에 사는 마르가리타와 이안&이라도 주말마다 만납니다!
– 라고 받아들여주셨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