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704
3부 119화 국혼(國婚)
광무 26년 6월 9일, 국혼 당일.
아침 일찍, 황태자 이진은 경복궁을 나섰다. 긴장된 탓인지 밤을 꼬박 새웠지만, 이상하게도 피곤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는 생각에, 활력이 넘쳐나는 것 같았다.
황태자의 예에 따라 9류 면관에 9장문이 새겨진 면복을 입고 궁궐을 나와, 가례도감 도제조 김옥균이 이끄는 행렬과 함께 아관으로 향했다.
타티야나 로마노바도 아관에서 단장을 하고 태자를 기다렸다. 머지않아 태자의 행렬이 도착했다.
“그대의 적의가 너무나도 잘 어울리니,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타티야나는 조선의 법복(法服)인 적의(翟衣)를 입었다. 오직 왕대비, 왕비, 왕세자빈만이 의례에 입을 수 있는 법복이었다.
대한제국 선포 후에는 황제국의 의례에 따라 적의도 격상되었다. 왕비가 황후로 격상되었으므로, 황태자비가 입는 적의는 옛 조선 왕비의 예와 같았다.
“황공할 따름입니다, 전하.”
타티야나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서양인, 아니 외국인이 적의를 입는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 자체로 너무나도 생경한 모습이었으나, 타티야나의 미모와 날씬한 체구는 어떤 옷도 잘 어울리게 했다.
“절차에 따라 전안례를 행하고자 하옵니다.”
전안례(奠雁禮)는 태자와 태자비가 동서로 마주 보고 선 후, 태자가 북쪽 벽 앞에 놓은 상 위에 기러기를 올리는 의식이다.
이진은 상 위에 살아 있는 기러기를 올렸다. 이윽고 이진은 동쪽에 서고, 타티야나는 서쪽에 서서 예를 표했다. 동과 서를 대표하는 두 사람이 북쪽에서 하나로 이어지듯, 의식 절차가 상징적이었다.
“전안례가 끝났으니, 경운궁으로 향하시어 국혼의 예를 올리고자 합니다.”
이진은 말에 오르고, 타티야나는 황실의 가마에 올랐다.
아관을 출발하여 가마를 타고 홍교를 넘었다. 아관과 경운궁을 잇는 무지개다리인 홍교는 본래 황실과 정부만 이용할 수 있어 교통이 통제되어 있었다. 그런데도 황성 주민들은 홍교 아래에 도열하여 만세를 외쳤다.
“대한국 만세!”
“황태자 전하 천세!”
“국혼을 경하드리옵니다, 전하!”
“백년해로하시옵소서!”
국민들의 열렬한 환영에 이진은 미소를 지었다.
조선 역사상 최초로 거행되는 외국 공주와의 국혼에, 적잖은 국민이 우려와 불만을 표명했다. 전례 없던 일이라 외국인 태자비가 이해되지 않았다.
“서양인 황태자비라니, 이게 말이 되나?”
“서양인이 장차 대한의 황후가 된다니, 말도 안 돼. 500년 전통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그 소생에서 태어날 아이는 분명 서양 혼혈일 터. 어찌 황제가 혼혈일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권위가 절정에 도달한 황제가 추진하는 일에 감히 노골적으로 반대를 표명하는 이는 드물었고, 존경해마지 않는 황제의 선택에 지지를 보내는 이가 더 많았다.
“감히 황실의 일은 가타부타 논하는 거 자체가 불경이 아닌가?”
“황제 폐하께옵서 국가의 백년대계와 태자 전하를 위하여 정한 일인데, 어디 함부로 입을 놀리는가?”
“500년 전통을 계승하되 새로이 거듭났기에 대한이 오늘날 강국의 반열에 오른 것이 아닌가? 언제까지 전통 타령만 할 건가?”
“어찌 혈통을 운운하는가? 로마노프 왕가는 유럽, 아니 세계적으로도 최고의 명문가이거늘.”
“하물며 황태자비가 되실 분은 아름답고 현숙하며, 비록 외국에서 태어나 살았을지라도 유학의 도리를 익힌 효녀가 아니던가? 국본의 배필로 손색이 없다!”
국혼은 별다른 반대 없이 진행되었다.
적어도 오늘은, 황성 주민들은 태자와 새 태자비에게 열렬한 환호를 보냈다.
“태자 전하의 국혼은 실로 국가의 경사일세.”
“암, 그 대영제국 황태자가 친히 축하하러 올 정도니, 대한의 위상이 얼마나 높아진 것인가.”
“대영제국 황태자와 황태자비께서는 육촌 간이라지. 황태자비께서 대제국의 황녀라는 게 새삼 느껴지는군.”
“대한의 위상이 하늘을 찌르는구나. 대한국 만만세!”
정부의 선전 덕에, 국민들은 국가적 위상이 격상되었다는 환희를 느꼈다. 황태자비는 대제국의 공주요, 하객으로 참석한 웨일스 공은 대영제국의 후계자니, 대한제국이 이들과 동렬에 선 열강이 되었다는 기쁨을 주었다.
아관에서 경운궁은 지척이라 금방 도착했다. 태자 일행이 경운궁에 이르자, 궁내부대신 이강이 황실을 대표하여 태자와 태자비를 맞이했다.
“중화전에서 황태자비 책봉 절차가 있사옵니다.”
중화전(中和殿)의 왕좌에는 이선이 황제를 상징하는 12류 면관과 12장 면복을 입고 앉아 있었다. 그 곁에는 구룡사봉관을 쓰고 황후의 적의를 입은 김아영과 황태후 김씨가 앉았다.
정전에 황실 일원들과 칙임관 이상의 관리들이 시립한 가운데 책비례(冊妃禮)가 거행되었다. 이강은 황제의 책문을 대독하였다.
「봉천승운 황제는 이르노라. 황태자를 존중해야 나라의 근본이 중하여지는 법이므로, 삼가 배필을 두어 인륜을 두터이 한다. 어찌 만방(萬方)이 이로부터 튼튼해지지 않겠는가? 아! 타티야나 로마노바는 러시아 황제의 차녀이자 제국의 공주로서 가문이 고귀하고, 단정하고 깨끗한 성품은 천성을 이루며, 덕의(德義)는 본받을 만하니, 태자와 더불어 존중하며 자손을 번창하게 하라.」
타티야나는 그동안 한국어를 열심히 익혀 의사소통은 문제가 없게 되었지만, 고어(古語)로 가득한 책문은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말없이 고개를 숙이며 책봉 절차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이에 짐은 그대를 황태자비로 책봉한다. 은혜로운 명을 공손히 받들고 배필 된 체모를 훌륭히 빛내리라. 열성조를 조심스럽게 받들고 길이 자손을 번창하게 함으로써 하늘이 주는 경사를 받으리라. 효도하고 공경하며 근면하고 검박함으로써 많은 복과 부귀를 누리리라. 그대는 공경히 임무를 수행하라.」
책문 낭독이 끝나자, 전 내각총리대신이자 가례도감 도제조 김옥균이 문무백관을 대표하여 외쳤다.
“신 김옥균 등은 삼가 아뢰건대, 황태자비의 덕이 대지와 같아서 동궁에 정위(正位)하시고, 만대(萬代)를 창성(昌盛)하여 휘음(徽音)을 밝게 계승하시니, 모든 신민들은 기뻐하는 마음을 품게 되었습니다. 신 등은 기쁨을 견디지 못하여 삼가 만만세수(萬萬歲壽)를 올립니다!”
김옥균의 선창에 시립해 있던 황족과 관리들이 일제히 만세를 외쳤다.
“대한국 만세!”
“대황제 폐하 만세!”
“황태자 전하 천세!”
“황태자비 전하 천세!”
이로써 책봉 절차는 마치고, 노씨(魯氏) 성을 하사받은 타티야나 로마노바는 정식으로 대한제국의 황태자비가 되었다.
국혼의 마지막 절차로 함녕전에서 동뢰연과 조현례(朝見禮)가 있었다.
동뢰란 ‘제사의 희생을 같이 먹는 것’으로, 의식을 마치고 마주 앉아 술잔을 나누는 절차이다.
태자는 함녕전으로 들어가 동쪽에서 서쪽을 향하여 앉고, 태자비는 서쪽에서 동쪽을 향하여 앉았다. 예식원경 이영이 말했다.
“교배(交拜)하시옵소서.”
태자비가 먼저 술잔을 들어 잔을 비우자, 이어서 태자도 답배를 하였다.
한 잔을 비우고 다시 두 번째 잔을 연거푸 마신 후, 세 번째는 작은 박을 반으로 쪼갠 술잔에 따라졌다.
“합근(合巹)하시옵소서.”
세 번째 잔을 비우자, 이영이 북쪽에서 남면(南面)하고 있는 황제를 향해 아뢰었다.
“예필(禮畢)하였사옵니다.”
이선이 고개를 끄덕이자, 이영은 다시 태자 부부에게 말하였다.
“이제 일어나시옵소서.”
마침내 혼인 절차가 마치자, 이진과 타티야나는 안도하는 심정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제 신랑 신부는 각자 다른 방에 들어가 면복과 적의를 벗고 소례복(小禮服)으로 갈아입었다. 태자는 적색 곤룡포, 태자비는 녹색 당의(唐衣)를 입었다.
조현례는 시부모님께 인사를 드리는 절차였다. 황색 곤룡포로 갈아입은 이선과 황후의 황색 당의로 갈아입은 입은 김아영이 태자 부부를 맞이했다.
조현례 절차에 따라 타티야나는 시아버지에게 대추를, 시어머니에게 포를 폐백 음식으로 올렸다.
대추를 받아 선 이선이 궁내부 신료들에게 일렀다.
“이제 태자와 태자비에게 덕담을 하고자 하니, 경들은 모두 물러나도록 하라.”
“삼가 명을 받듭니다, 폐하.”
네 사람만이 남자, 이선이 웃으면서 말했다.
“태자비가 고생이 많았다. 어렵고 힘들었지?”
“아니옵니다, 폐하.”
타티야나가 고개를 숙이면서 답하자, 이선이 손을 내저었다.
“아니긴 무슨. 나도 26년 전에 군의 예로 혼례를 치를 때도 힘들었는데 너는 오죽하겠느냐. 간소하게 진행하고 싶었는데, 황족들이 황제의 예를 저버리면 안 된다고 하도 성화라 혼례 절차를 따랐다.”
이선 자신은 전통 예식을 간소화하고 싶었지만, 제국 선포 이후 첫 황태자의 국혼이니만큼 황태후와 종친들도 물러서지 않았다.
기실 보수적인 황태후가 황실의 큰 어른으로서 외국인과의 국혼을 승인해 줬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양보였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내줘야 하는 법, 간택을 자신의 뜻대로 결정한 이선은 예식 절차만은 양보했다.
“태자는 들어라. 너는 이제 한 여인의 지아비가 되었다. 태자비가 비록 한국인으로 살기로 다짐하였지만, 그 근본은 너도 알다시피 러시아인이다. 머나먼 나라에 바뀐 환경에서 홀로 궁에 있으려니 얼마나 외롭고 힘들지 짐작이 간다.”
이선은 이진과 타티야나의 관계는 걱정하지 않았다. 걱정되는 건 문화 차이였다. 유럽에서 가장 보수적이고 경직된 황실 예법으로 악명 높았던 러시아라지만, 동양은 그보다 훨씬 보수적이고 경직된 예법을 갖고 있었다. 조선 기준에서 보면 러시아도 ‘예의를 모르는 금수’와도 같았다.
대한제국 선포 이래 이선은 황실전범을 제정하고, 대한예전을 반포하여 황실 예법을 서양의 예법과 유사하게 대대적으로 뜯어고쳤지만, 제도가 바뀌어도 사람들의 머릿속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전통적인 궁인들을 모두 내보내고 급료를 받는 궁내부 관리와 시종으로 바꾸어 새로운 제도에 적응하게 하였지만, 황실의 보수적이고 경직적인 문화는 쉽게 바뀌지 않았다.
“나와 황후 또한 태자비를 아끼고 사랑하고, 영친왕과 친왕비도 도울 것이다만, 이 궁궐에서 태자비가 의지할 수 있는 곳은 오직 너뿐이다. 네가 태자비를 사랑하고, 존중하고, 지켜주어야 한다. 그게 바로 네 새로운 의무다.”
이선은 거듭 걱정이 되었다. 황실과 국민 상당수가 외국인 황후에 거부감을 느끼는 상황이었다. 자신도 며느리를 언제나 보호해 주겠지만, 남편인 이진이 누구보다 지켜 주어야 했다.
존경하는 부친의 당부에 이진은 고개를 숙였다.
“삼가 명을 받들어, 언제나 태자비를 사랑하고, 존중하고, 지켜 주겠습니다.”
“이런, 내 명이 아니라 네 마음에서 우러나와야지.”
“예? 아, 이르다 뿐이겠습니까? 진정으로 아내를 사랑하고 존중하고 지켜 줄 것입니다.”
이선의 농담에 이진이 화들짝 놀랐다. 여전히 모범생다운 아들의 태도에 이선은 빙긋 웃었다.
“태자비는 들었지? 네 남편이 너를 평생토록 사랑하고, 존중하고, 지켜 줄 것이다. 너 또한 남편을 그리 대해 주길 바란다.”
“평생토록 태자 전하를 사랑하고 존중하겠습니다.”
“그래. 네가 황궁 생활하는 건 쉽지 않을 것이다. 설령 네 출신을 문제 삼아 헐뜯고 시기하는 무리가 있더라도, 개의치 마라. 천박하고 어리석은 자들은 상대할 가치도 없는 법이다. 네가 황태자비로서 의무를 충실히 수행한다면, 모든 국민이 너를 우러러보게 될 것이다.”
“예, 폐하.”
“이런 말이 고인에게 외람될 수 있겠으나, 이해하고 들어 주길 바란다. 너는 네 어머니 알렉산드라 황후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네 어머니는 네 아버지를 진심으로 사랑했지만, 바로 그 사랑이 독이 되고 말았다. 결코, 남편을 통해 정치에 개입해서는 아니 된다. 너는 이미 한국인이 되었다. 러시아에 대해서는 네 고향으로만 기억해 두거라.”
타티야나는 정치에 무관심하고 순종적인 성품이었으므로, 어머니 알렉산드라와 달리 정치에 개입할 능력도 의지도 없다는 걸 이선은 잘 알고 있었지만, 마지막으로 당부를 했다.
이선이 걱정하는 건, 오히려 이진이 아내와 처가를 의식해 러시아 문제에 개입하는 것이었다. 가뜩이나 혁명과 소비에트에 혐오감을 느끼고 있는 이진이 결혼을 통해서 더 의식을 강화하면 곤란한 일이었다.
아무런 정치적 힘도 없는 태자비보다는, 태자를 겨냥한 말임을 직감한 이진은 고개를 숙였다.
“맹세컨대, 결코 그러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래. 나는 너희를 믿는다.”
이선은 표정을 풀며 미소를 지었다.
“내 오랜 소원이기도 하지만, 너희를 위해서라도, 나는 황실을 서양식으로 만들고 싶다. 내가 모범으로 삼고 있는 건 영국 왕실이다.”
“아, 그래서 웨일스 공을 초청하셨는지요?”
“하하, 물론 에드워드를 본받으라는 건 아니고. 네가 에드워드보다 훨씬 낫다.”
이선은 웃음을 터뜨렸다. 자기 아들이라서가 아니라, 이진이 파락호 에드워드보다 훨씬 나았다.
에드워드가 영국 역사상 최초로, 웨일스 공으로서 영국을 대표해 전 세계를 순방하며 높은 인기를 끌고 있다지만, 그의 본질을 아는 이선으로는 ‘모범’이 될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조지 5세, 그리고 메리 왕비를 본받도록 하여라. 내 생각에 그 두 분이야말로 20세기 군주의 모범이다. 나의 시대는 자강이 시급하였지만, 너희의 시대는 다르다. 국민을 대표하여 국가의 위신을 드높이고, 만사에 모범을 보이고, 국민을 아끼고 사랑해 주길 희망한다. 유럽 왕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태자비가 태자를 보좌하여 역할을 다해 주기를 바란다.”
“그리 하겠사옵니다, 폐하.”
당부의 말을 끝낸 이선이 아내를 향해 발언권을 넘겼다.
“원, 늙으니까 어찌나 걱정이 많아지는지. 덕담보다는 잔소리가 너무 길었구나. 그럼 이제 황후께서 새 출발을 한 신랑 신부를 위해 덕담을 해 주시오.”
아영은 무언가 말을 하려다, 갑자기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숙였다.
“황후?”
“어마마마, 어인 일이시옵니까?”
아영은 소매를 들어 눈물을 낚더니, 자세를 바로이 했다.
“송구하옵니다, 폐하.”
“왜 그러시오? 어디 불편한 곳이라도······.”
이선은 아내가 눈물 흘리는 이유를 짐작하면서도, 짐짓 모르는 척 물었다.
“아니, 아닙니다. 그럴 리가 있겠사옵니까. 단지 우리 아들이 이렇게 커서 혼례를 올렸다는 생각에, 저도 모르게 감격의 눈물이 나왔습니다. 황후로서의 체모를 지키지 못해 송구할 따름입니다.”
“그 무슨 말씀이시오. 나 역시 감개무량하여 속으로는 눈물이 날 것 같구려. 다만 오늘은 기쁜 날이니, 눈물을 흘리기보단 미소를 지으며 신랑 신부의 앞날을 축하해 줍시다.”
“예, 마땅히 그리하겠사옵니다.”
아영은 눈물 자국을 지우며 미소를 지었다.
“이미 황제 폐하께옵서 당부의 말씀을 모두 하셨으니, 나는 짧게 말하도록 하겠다. 태자, 지금 이 순간이 어떠한가?”
“예, 기쁘고 행복하옵니다. 동시에 제 의무를 실감합니다.”
“태자비도 기쁘고 행복하니?”
“예, 그러하옵니다.”
아영은 만면에 기쁨의 미소를 지으며 장남과 맏며느리의 손을 맞잡았다.
“나 또한 그렇단다. 나는 너희 부부가 언제나 오늘처럼 기쁘고 행복하면 좋겠구나. 한국어에는 이런 표현이 있단다.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될 때까지, 즉 검은 머리가 하얗게 물들 때까지, 영원히 기쁘고 행복하길 바란다.”
어머니의 덕담에 이진도 가슴이 뭉클해졌다.
타티야나는 한국어가 모국어가 아니었으므로 모든 말을 이해하는 건 아니었지만, 시부모님의 진심만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예, 영원히 그리 하겠사옵니다.”
이진과 타티야나는 영원히 놓지 않겠다는 듯, 맞잡은 손을 꼭 잡았다.
삽화
사진은 실제 영친왕비(이방자)의 적의입니다. 1922년 영친왕비가 순종을 알현하고 전통 예식으로 혼례를 치렀을 때 입었던 옷이라지요. 국립고궁박물관이 소장하고 있습니다.
작가의 말
대한제국 선포 후에 국혼은 1907년 황태자 이척(순종)과 황태자비 윤씨(순정황후)가 전부입니다. 고종실록과 승정원일기에 기록된 부분을 참고했는데, 기록이 워낙 간략하여 조선왕조의 가례도 참고해서 구체적인 내용은 제가 상상했습니다.
마지막 국혼은 영친왕 이은과 이방자(마사코)의 사례도 있기는 한데, 이건 일본+서양풍이라 참고가 불가;; 1922년 순종을 알현할 때 다시 전통식으로 혼례를 했다고는 합니다만… (그때 입은 옷이 영친왕비 적의)
??? : 허허 아들 결혼에 이리 걱정이 되다니… 이제 나도 늙었는가…